진일이 물었다.“제 명의로 교무처에 실험실 하나는 신청하셨어요?”“어, 그래.”“그 실험실은 누구한테 맡기실 예정이죠? 제가 미리 연락할게요.”송지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누구한테도 안 줄 건데.”“그럼 계속 이렇게 차지하시게요?” 비록 미리 예상했지만, 지금 진일의 마음은 여전히 약간 무거웠다.“그래, 그냥 비워두면 돼.”진일은 자신이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전처럼 없었던 일로 받아들이면 된다.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정은이 질문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후, 진일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사용하고 싶지 않으신 이상, 왜 신청을 하신 거죠?”송지혜는 눈썹을 찌푸렸다.‘내가 키운 개가 갑자기 날 향해 짖다니.’그녀의 미소는 더욱 상냥해졌다.“지금은 쓸 필요가 없지만, 앞으로의 일은 누가 알겠어? 학술 자원은 항상 빼앗아야 해. 이런 도리까지 내가 가르쳐야 하는 거야?”“그 실험실에 무슨 자원이 있는 거죠?”“당연하지. CPRT 측정기가 있잖아?”진일은 그녀에게 일깨워 주었다.“저희 과제팀에 이미 한 대 있잖아요.”“두 대가 많은 거야?”“저희에게는 남는 자원이겠지만, 다른 과제팀에게는 아주 중요한...”“남진일.” 송지혜는 입을 열어 그의 말을 끊었다.“오늘 너무 한가한 거야? 실험실 쪽의 일은 다 했어?”“아니요.”송지혜는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없으면 가서 네가 해야 할 일부터 해. 다른 일은 네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비록 넌 천재라서 학술 성적이 뛰어나지만, 누가 오늘의 너를 위해서 기회를 만들어줬는지 잘 생각해!”진일은 이를 악물더니 표정도 갑자기 굳어졌다.송지혜는 차갑게 그를 훑어보았다.그렇게 진일은 마침내 시선을 떨구더니 얌전한 꼭두각시로 돌아왔다.“죄송합니다, 교수님.”송지혜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긴장하지 마. 난 비록 엄격하지만, 너도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실험에 전념해. 모든 정력을 학술에 쏟으면 언젠가는 성과를 거둘 거
진일은 눈을 드리웠다. 비록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소매 안의 주먹을 꽉 쥐었다.한참 뒤, 진일은 힘이 빠진 듯 주먹에 힘을 풀며 저항을 포기하고 굴복을 선택했다.“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동안 많이 신경 써주셔서요.”“나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넌 내가 가장 자랑스러운 학생이잖아? 그러니 나도 당연히 널 중시하고 관심해야 하지 않겠어?”진일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말을 잘 하지 않아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과묵한 인상을 남겨주었다.“자, 이제 그만 돌아가. 논문에 신경을 좀 써주고. 꼭 이번 달에 완성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네가 스스로 시간을 안배해. 난 네가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진일은 몸을 돌려 떠났다.송지혜는 의자에 앉아 유유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지예는 히죽거리며 앞으로 다가갔다.“그래도 이모밖에 없네요. 입을 딱 여시니 바로 깨갱한 거 있죠!”...실험실을 빌릴 수도 없고, 진일이 신청을 취소하지도 않은 이상, 정은 그들은 스스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민지처럼 게걸스러운 아이는 화가 나서 저녁에 밥조차 먹지 않았다.“너무해! 정말 너무해! 학교는 지금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예요?!”서준이 말했다.“학교는 언제나 더 많은 연구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팀에만 신경 쓰잖아. 하물며 남진일 선배가 이미 모든 수속을 끝냈는데, 학교가 무슨 이유로 나서겠어? 어떻게 나서겠냐고?”민지는 한숨을 쉬며 포동포동한 두 손으로 턱을 짚었다.“실험실이 없으면 우리의 과제는 어떡하지?”“빈 실험실이 얼마나 많은데. 문제는 실험실이 아니라 CPRT 측정기야.”측정기가 있으면 어느 실험실이든 상관 없었다.민지는 담담하게 물었다.“그 CPRT 측정기 비싸?”정은은 멈칫했다.서준도 멈칫하더니 잠시 후에야 반응을 했다.“네 말에 일리가 있네!”그러면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기계를 검색했다.“현재 시중에서 가장 좋은 CPRT는 원산지 D국의 Everysto야. 현미경을 갖춘 고급 기계로
30초가 지나자, 딩동 소리와 함께 문자 알림이 울렸다.민지는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입금을 알려주는 제시음이었다.맞은편의 하정남이 물었다.[민지야, 돈 받았어?]“어, 받았어, 고마워, 아빠.”2억이 아니라 2억 5천만 원이었다.‘앗싸, 우리 아빠가 5천만 원 더 줬네!’[평소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돈 신경 쓰지 말고 실컷 먹어. 돈이 부족하면 이 아빠에게 말하고. 알았지?]“응! 알았어, 아빠!”통화를 마친 후, 민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뒤를 돌아보니 서준과 정은이 모두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의혹을 느끼며 눈을 깜박였다.“돈 이미 받았어... 왜 날 이렇게 보는 거야?”서준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팔짱을 꼈다.“하민지 학생, 거짓말을 참 잘하는 것 같아.”“뭐?”“집이 시골에 있다고?”“맞아, 우리 마을은 도심 안에 있는데, 주위가 모두 상업지역과 고급 주택이야. 환경이 엄청 좋아서 정말 떠들썩하다니깐!”서준은 말문이 막혔다.정은이 물었다.“부모님에게 직업이 없으시고,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원이라고 했잖아?”“맞아요, 제 아빠가 그곳의 건물주이시거든요. 여러 채 빌딩이 다 저희 아빠의 명의로 된 거예요. 월세를 받아야 하지, 세입자가 어떤 돌발 상황에 부딪히면 그걸 다 해결하셔야 하지.”“예를 들면 수도관이 터지거나, 전기가 끊긴 상황이라면 모두 우리 아빠가 처리하셔야 해요.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관리해야 하니까 경비원과 다름이 없잖아요.”‘사장님이 직접 나서신 셈이지.’정은도 말문이 막혔다.서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는 건 또 뭔데?”“헤헤, 우리 엄마는 요트에서 파티를 여는 것을 좋아하시거든. 우리 아빠도 바다낚시를 좋아하셔서 두 분 자주 바다로 나가셨고.”‘요트? 집에 요트가 있다니!’서준은 계속해서 말했다.“그래서, 넌 집안형편이 가난한 게 아니구나?”민지는 깜짝 놀랐고, 서준에게 되물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서준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
민지가 말했다.“그럼 저는 뭐 하면 되는데요?”“넌 돈을 관리하면 돼.”이날 정은과 서준은 각각 1억을 민지에게 입금했다.‘아, 돈 받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네!’민지는 과자를 먹으면서 은행의 문자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집엔 돈이 많았지만, 민지는 여전히 돈을 사랑했다.‘영원히 돈의 매력에서 헤어져 나올 수 없다니깐. 이 점은 우리 아빠랑 똑같아, 헤헤!’...정은은 CPRT의 국내 딜러가 ‘천양 테크놀로지'라는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알아냈다.이 회사를 따라 그녀는 또 대주주가 류문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류문일의 이름으로 된 기업을 다시 검색해 보니, 복잡다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정은은 익숙한 이름 하나를 찾아볼 수 있었다.[전선우.][여보세요, 정은 누나, 잘 지내고 있었어요?]“그럭저럭. 넌?”[에이,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 넘어져서 종아리가 부러졌는데, 지금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나 됐어요.]“그렇게 심각한 거야?” 정은은 깜짝 놀랐다.[사실 심각한 편은 아니에요. 그냥 오래 휴양을 해야 하거든요. 정은 누나도 제 성격 잘 알잖아요. 저는 움직이기 좋아해서 매일 가만히 누워 있질 못해요.]‘뭐야!’“뼈를 다치면 푹 쉬어야 해. 그래도 의사 말 듣고 편하게 쉬어.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말이야.”[네. 알았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한테 전화를 하신 거죠?]정은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CPRT가 뭐예요? 저는 CPR밖에 몰라요.]정은은 인내심을 가지며 설명했다.“일종의 동적 측정기인데, 일반적으로 생물연구에 쓰여.”[누나가 말한 그 회사는...]“천양 테크놀로지.”[맞아요. 저도 테크 기업, 특히 스타트업에 투자한 적이 있긴 해요. 하지만 솔직히 이 분야는 제가 전문적으로 잘 아는 영역이 아니라서, 대부분 남들이 투자하는 걸 따라갔고, 오래 투자한 적도 없어요. 천양 테크놀로지도 아마 동건 형을 따라 투자했던 걸 거예요. 저는 단순히 돈만 투자했을 뿐, 회사의 결정이나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네?”동건이 말했다.[현빈이가 그 회사 사장이란 말이야.]빙빙 돌다가 그 사람이 자신의 지인이라니.통화를 마치고 정은은 한숨을 쉬며 현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그날 현빈과 적게 만나고 싶다고 한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여우는 너무 교활해서 자칫하면 그의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그래서 정은이 생각해낸 가장 좋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현빈을 멀리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주동적으로 찾아갔다니.‘이건 너무 뻘쭘한데...’...동건은 핸드폰을 내려놓은 다음, 아직도 침대에 누워 쿨쿨 자고 있는 수민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누가 나더러 제시간에 오라고 했는데? 1분도 늦으면 안 된다며?! 그런데 내가 도착했지만 아직 이렇게 자고 있다니! 나 여기서 널 꼬박 40분이나 기다렸어. 조수민, 넌 양심도 없니?!”침대 위의 여자는 몸을 뒤척이더니 계속 잤다.동건은 씩씩거리며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어젯밤에 또 남자 만나러 간 거야?”질문하는 동시에 그는 레이더처럼 방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다행히 남자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이때, 동건의 눈빛은 침대 머리맡의 서랍에 떨어졌다.‘물컵이 왜 두 개지?!’동건은 알 수도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소리를 질렀다.“조, 수, 민!”펑.베개 하나가 날아와 동건의 머리를 찧었다.수민은 몸을 돌려 앉았는데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넌 끝도 없니? 왜 계속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거야?! 기다릴 거면, 기다리고 싶지 않으면 그냥 꺼져!”‘누구도 내 수면을 방해할 수 없다고!’동건은 어이가 없었다.‘어,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게 나한테 화를 낼 수가 있지?!’“야...”“꺼져!”동건은 하마터면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그래! 꺼지라면 꺼져야지! 내가 널 무서워할 것 같아?!’멋지게 몸을 돌려 수민에게 도도한 뒷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때, 동건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더니 발걸음을
“그래! 넌 성질도 더럽고 기억력도 나쁘네. 대체 어떻게 된 거야?”수민은 동건을 향해 베개를 던졌다.“입 닥쳐!”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여유롭게 피했는데, 이미 이런 공격에 익숙해진 것이었다.수민은 또 다른 베개를 들려고 했지만 동건은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뭘 찾는 거야? 그 베개 나한테 있어.” 수민은 어안이 벙벙했다.“그게 어떻게 거기에 있는 거지?”‘기억력도 너무 안 좋네.’“아가씨, 넌 이미 날 한 번 때렸고, 이번이 두 번째야.”“아.”‘꽤 어색하군.’수민이 물었다.“지금 몇 시야?”“10시 30분.” 그녀는 동건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뭐야, 시간이 아직 이르잖아. 미래의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 정성껏 꾸미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것도 당연하지 않겠어?”동건은 말을 하지 않았다.“물 좀...”동건은 얼른 말을 이어받았다.“물을 마시고 싶은 거지?”말이 끝나자, 그는 화장대에서 컵 하나를 가져왔는데, 그 안에는 이미 물이 담겨 있었다.“빨리 마셔. 그리고 얼른 일어나서 화장한 다음 나가자고!”수민은 물을 받았는데, 손이 닿자마자 바로 이상함을 알아차렸다.“따뜻한 물이야?”“응!”‘수민이는 여자니까 따뜻한 물을 마셔야겠지?’“얼음물로 바꿔줘.”“아니, 아침부터 차가운 물을 마시겠다고?” 동건도 아침에 일어나서 얼음물을 마셨지만, 수민은 여자였다.“뭐?” 수민은 눈을 부라렸다.“누가 나 따뜻한 물 마신다고 했어? 정신 나간 거야 뭐야!”“아니, 내가 아는 여자...” “아, 네 전 여자친구들?” 수민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동건은 말을 하지 않았다.“이 바보야!”“아니, 넌 왜 자꾸 욕을 하는 거야?”“네 전 여자친구들은 밀크티 마셔? 일식 먹어? 시원한 칵테일 좋아해?”“그런 게 왜 궁금한데?”“이거 다 차가운 음식이잖아. 게다가 생것도 있네. 그럼 여자들은 아예 손도 안 대는 거야?”‘엥!’동건은 말문이 막혔다.수민은 편안하게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내려
“야, 왜 멍을 때리고 있는 거야? 물 줘.”모든 아름다운 장면은 여자가 입을 여는 순간에 툭 하고 깨졌다.동건은 어이가 없었다.“내 요구 하나 들어주면 안 돼?”“말해봐.”얼음물을 한 모금 마시니 수민은 기분이 상쾌해졌다.“나랑 얘기할 때 말투가 좀 부드러웠으면 좋겠어. 우리는 커플이지 원수가 아니잖아. 이러면 우리 엄마가 걱정하실 거야.”“뭘 걱정해?”“자신의 아들이 너한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하시겠지!”수민은 말을 하지 않았다.“자기야, 이렇게 말하라는 거야? 이 치마 어때? 어머님께서 좋아하실까? 나 엄청 오랫동안 골랐단 말이야...”동건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그 뭐지. 그냥 예전처럼 말해, 그래, 사나운 네가 더 보기 좋아.”‘사나운 수민이가 정상이지.’방금 그녀가 애교를 부릴 때, 동건은 오글거려 죽는 줄 알았다.“다시 한번 말해 봐? 누가 사납다는 거야?”“넌 조금도 사납지 않아.”“너 계속 이 단어를 쓰고 있잖아?!”수민은 가장 빠른 속도로 옅은 화장을 했다.“자, 이제 갑시다.”동건은 어안이 벙벙했다.“화장을 한 거야?”“어때? 아주 자연스럽지? 이건 일부러 민낯처럼 화장을 하는 기술인데, 얼핏 보면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거야. 너 같은 남자를 속이기에 딱이라고. 괜찮지?”이미 여러 번 속은 동건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왜 자꾸 날 욕하는 느낌이 들지?’두 사람이 동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12시가 다 되어 갔다.송보미는 문앞에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마침내 동건의 차를 보았다. 그녀는 재빨리 달려가서 웃으며 맞이했다.수민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송보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수민이 왔어? 얼른 들어와. 햇볕 너무 많이 쬐면 안 좋아.”말하면서 수민을 끌고 안으로 데려갔다.‘엄마 아들인 난 어떡하라고?’“어머님, 죄송해요. 어젯밤에 야근을 해서 오늘 아침에 늦게 일어났거든요. 또 옷을 고르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정말 죄송해요.”동건은 집에 들어서자
“엄청 오래 기다릴 줄 알았는데, 동건이 그 녀석이 이렇게 빨리 여자친구를 찾을 줄은 정말 몰랐어. 이제 드디어 내 며느리에게 줄 수 있다니.”‘역시, 경매장에서 찍으신 거구나. 적어도 몇 억, 심지어 수십 억이 들지도 몰라.’“안 돼요, 어머님, 저는 이 팔찌를 가질 수 없어요.” 수민은 즉시 거절했다.만약 그녀가 동건의 진짜 여자친구라면, 아무리 비싼 팔찌라도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수민이 가짜 여자친구였던 것이다.‘가짜인 내가 수십억짜리 팔찌를 받다니, 쯧쯧... 그건 너무하지.’“팔찌 하나일 뿐, 뭐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안심해, 이건 너희들에게 압박을 주는 것도, 결혼하라고 재촉을 하는 것도 아니야. 난 단지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을 뿐이야.”송보미는 팔찌를 상자에서 꺼내 직접 수민에게 끼워 주었다.“크기가 딱 맞네. 어머, 네 피부톤과 너무 잘 어울린다.”“최고급 비취 팔찌이니 당연히 잘 어울리겠지!’두 사람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동건은 소파에 앉아 히죽거리며 물었다.“무슨 얘기를 방에 가서 한 거야? 그것도 이렇게 오랫동안 얘기를 하다니...”“됐어, 내가 네 여자친구를 빼앗아갔다고 질투하는 거지? 지금 돌려줄게.”송보미는 웃으며 수민을 밀었다.“엄마, 저한테 그런 누명 씌우지 마세요. 전 그런 뜻이 없었단 말이에요...”동건은 턱을 들더니 은근히 부인했다.오후에 수민은 편안하게 마사지를 받았는데, 바깥의 미용실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았다.그녀는 물을 마시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는데, 수민은 물컵을 들고 거실 창문 앞으로 가서 받았다.“여보세요?”[날 기억하시나요? 진성후예요.]수민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날 밤 호텔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당연하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그날 이후로 나한테 연락도 안 했으니까요. 난 누나가 날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남자가 억울해하며 말하자, 수민은 마음이 약해졌다.“너도 전화번호를 안 남겼잖아?”[아니요,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
“능청스럽게 굴지 마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어때요? 나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어요. 당신이 본 『7일담』이 바로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에요. 그러니 나는 당신과 재계약을 할 수 없어요. 지난 10년간의 감정을 봐서, 우리는 좋게 갈라지죠.”“좋게 갈라져?” 유보영은 냉소를 지으며 드디어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누가 나의 손실을 배상하는 건데?”“당신이 무슨 손실을 입었다는 거죠?” 이미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너와 계약을 했어. 10년, 꼬박 10년, 당신은 좋은 책 한 권도 쓰지 못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아가 계약을 하더니 바로 인기 소설을 출시해? 이미숙, 너 지금 날 갖고 장난하는 거지?”“내가 쓰기 싫어서 그래요? 당신이 줄곧 나의 구상을 부정하고, 나에게 출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가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의 대강을 주었는지 계산해 본 적 있어요? 마지막에는 예외가 하나도 없이 전부 거절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인기를 끄는 작품을 출판하라는 거예요?”“너...”“당초의 계약비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래요, 당신은 확실히 많은 돈을 주었지만, 당신도 날 10년 동안 ‘감금’했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 예전에 쓴 책의 판권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겠죠.”유보영은 시선을 피하더니 다소 마음이 찔렸다.‘이미숙이 어떻게 그 판권에 대해 알았지?’“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죠? 나는 이미 변호사를 청해 계약서를 확인해 보았는데, 당신은 몰래 내 판권을 대리 운영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했죠. 사인할 때 나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쓰라고 했고요.”“허... 그래서? 이제 돈 계산을 하자는 거야? 변호사까지 불렀다고? 진작부터 날 방비했나 보네.”“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요. 전의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날 방해하지 마요.”이미숙은 일어나더니 손님을 내
이 시각, 소진헌은 학교에 수업하러 갔는데, 집에는 이미숙 혼자밖에 없었다.J시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새 책의 대강을 구상했고, 학교 괴담을 주제로 한 공포 소설을 창작할 계획이었다.그사이 정은이 전화를 걸어 실험실 완공식에 초청했지만, 부부는 아쉬움을 느끼며 거절했다.소진헌은 수업을 해야 했기에 떠날 수 없었고, 이미숙은 창작을 해야 해서 방해를 받으면 안 됐다.이야기가 이미 태반이 완성되고, 곧 마지막 장을 끝내려 해서 이미숙은 요즘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유보영이 문을 두드릴 때도 이미숙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문을 열러 가는 길에 머릿속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유보영은 미소 지었다.“오랜만이에요, 이 작가.”이미숙은 이마를 찌푸렸다.“당신이었어요?”“그래요, 그래도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유보영은 내색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인테리어가 이렇게 호화로운 걸 보니 정말 부자가 된 모양이야.’이미숙이 거절을 하기 전에 유보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이미숙은 비록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유보영이 떠들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웃고 있었기에, 예의상 이미숙은 그녀를 내쫓지 못했다.더군다나 이미숙도 유보영이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앉아요.” 이미숙은 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유보영은 앉은 후,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별장 곳곳을 살펴보았다.“이 작가님, 이사를 해도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예전에 이 작가님이 살던 곳에 달려가서 얼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전화해도 항상 전원이 꺼져 있어서 나도 이곳을 찾느라 애를 엄청 썼어요.”이미숙은 대답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게요, 우리 계약도 곧 만기 되어 가잖아요. 그동안 우리는 아주 잘 협력했고, 재계약도 형식일 뿐이에요. 하지만 형식이라도 같이 사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 좀 봐요...”말하면
그리고 유보영의 밑에 이런 작가가 무려 수십 명이나 있었다.“어머!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작가들은 바보 아니에요? 판권 같은 것을 팔려면 작가 본인의 동의를 거치고 사인까지 해야 되잖아요?”장민영은 가볍게 흥얼거렸다.“넌 매일 그렇게 많은 계약을 복사하는데, 위의 상세한 조항을 보지 않았니?”“어?”“유 사장님은 계약을 할 때 이미 작가의 명의로 된 기타 서적의 판권 대리권을 손에 넣었다고. 그럼 작가에게 통지할 필요도 없고, 사인할 필요도 없어. 유 사장님이 가서 잘 이야기한 다음, 작업실 쪽에 공인만 하나 더 찍으면 끝.”“만약 정말 사인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나 찾아서 사인하면 되지 않겠어? 그 사람들 정말 작가 본인을 찾아 가서 대조할 수도 없잖아.”“어머, 그럼 유 사장님은 작가에게 주는 배당금까지 절약한 셈이네? 어차피 작가도 모르니, 돈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겠지.”장민영은 커피 한 모금 마셨다.“그래, 넌 사장님이 좋은 차에 비싼 집을 산 돈이 어디서 났다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명품인데, 내가 듣기로는 그 가방 하나만 해도 수천만 원이라잖아? 정말이야?”“정말이야, 그것도 에르메스.”“쯧쯧...”장민영은 감탄하면서 부러워했다.“가장 비참하게 당한 작가는 추리 소설을 썼다고 들었어. 일찍 엄청난 인기를 끈 두 권의 소설 판권은 유 사장님이 모두 팔았고. 최근 몇년간 또 기타 판권을 연장했는데, 그 작가 혼자만 해도 매달 최소 우리에게 수백만 원의 이익을 가져다줄수 있어.”“추리 소설 작가? 누구지? 요즘 한 추리 소설 작가가 대박 났는데. 이란 책을 써서 지금 아주 난리도 아니야. 작가 이름이... 이미숙이라 한 것 같아!”“이, 이미숙?!” 장민영은 깜짝 놀랐다.“그 제대로 당한 작가도 무슨 미숙이라고 한 것 같은데.”“같은 사람 아니겠지?”“아닐 거야. 유 사장님이 어떻게 새 책을 내줄 수 있겠어?” 장민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긴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