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가 지나자, 딩동 소리와 함께 문자 알림이 울렸다.민지는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입금을 알려주는 제시음이었다.맞은편의 하정남이 물었다.[민지야, 돈 받았어?]“어, 받았어, 고마워, 아빠.”2억이 아니라 2억 5천만 원이었다.‘앗싸, 우리 아빠가 5천만 원 더 줬네!’[평소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돈 신경 쓰지 말고 실컷 먹어. 돈이 부족하면 이 아빠에게 말하고. 알았지?]“응! 알았어, 아빠!”통화를 마친 후, 민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뒤를 돌아보니 서준과 정은이 모두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의혹을 느끼며 눈을 깜박였다.“돈 이미 받았어... 왜 날 이렇게 보는 거야?”서준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팔짱을 꼈다.“하민지 학생, 거짓말을 참 잘하는 것 같아.”“뭐?”“집이 시골에 있다고?”“맞아, 우리 마을은 도심 안에 있는데, 주위가 모두 상업지역과 고급 주택이야. 환경이 엄청 좋아서 정말 떠들썩하다니깐!”서준은 말문이 막혔다.정은이 물었다.“부모님에게 직업이 없으시고,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원이라고 했잖아?”“맞아요, 제 아빠가 그곳의 건물주이시거든요. 여러 채 빌딩이 다 저희 아빠의 명의로 된 거예요. 월세를 받아야 하지, 세입자가 어떤 돌발 상황에 부딪히면 그걸 다 해결하셔야 하지.”“예를 들면 수도관이 터지거나, 전기가 끊긴 상황이라면 모두 우리 아빠가 처리하셔야 해요.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관리해야 하니까 경비원과 다름이 없잖아요.”‘사장님이 직접 나서신 셈이지.’정은도 말문이 막혔다.서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는 건 또 뭔데?”“헤헤, 우리 엄마는 요트에서 파티를 여는 것을 좋아하시거든. 우리 아빠도 바다낚시를 좋아하셔서 두 분 자주 바다로 나가셨고.”‘요트? 집에 요트가 있다니!’서준은 계속해서 말했다.“그래서, 넌 집안형편이 가난한 게 아니구나?”민지는 깜짝 놀랐고, 서준에게 되물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서준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
민지가 말했다.“그럼 저는 뭐 하면 되는데요?”“넌 돈을 관리하면 돼.”이날 정은과 서준은 각각 1억을 민지에게 입금했다.‘아, 돈 받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네!’민지는 과자를 먹으면서 은행의 문자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집엔 돈이 많았지만, 민지는 여전히 돈을 사랑했다.‘영원히 돈의 매력에서 헤어져 나올 수 없다니깐. 이 점은 우리 아빠랑 똑같아, 헤헤!’...정은은 CPRT의 국내 딜러가 ‘천양 테크놀로지'라는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알아냈다.이 회사를 따라 그녀는 또 대주주가 류문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류문일의 이름으로 된 기업을 다시 검색해 보니, 복잡다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정은은 익숙한 이름 하나를 찾아볼 수 있었다.[전선우.][여보세요, 정은 누나, 잘 지내고 있었어요?]“그럭저럭. 넌?”[에이,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 넘어져서 종아리가 부러졌는데, 지금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나 됐어요.]“그렇게 심각한 거야?” 정은은 깜짝 놀랐다.[사실 심각한 편은 아니에요. 그냥 오래 휴양을 해야 하거든요. 정은 누나도 제 성격 잘 알잖아요. 저는 움직이기 좋아해서 매일 가만히 누워 있질 못해요.]‘뭐야!’“뼈를 다치면 푹 쉬어야 해. 그래도 의사 말 듣고 편하게 쉬어.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말이야.”[네. 알았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한테 전화를 하신 거죠?]정은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CPRT가 뭐예요? 저는 CPR밖에 몰라요.]정은은 인내심을 가지며 설명했다.“일종의 동적 측정기인데, 일반적으로 생물연구에 쓰여.”[누나가 말한 그 회사는...]“천양 테크놀로지.”[맞아요. 저도 테크 기업, 특히 스타트업에 투자한 적이 있긴 해요. 하지만 솔직히 이 분야는 제가 전문적으로 잘 아는 영역이 아니라서, 대부분 남들이 투자하는 걸 따라갔고, 오래 투자한 적도 없어요. 천양 테크놀로지도 아마 동건 형을 따라 투자했던 걸 거예요. 저는 단순히 돈만 투자했을 뿐, 회사의 결정이나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네?”동건이 말했다.[현빈이가 그 회사 사장이란 말이야.]빙빙 돌다가 그 사람이 자신의 지인이라니.통화를 마치고 정은은 한숨을 쉬며 현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그날 현빈과 적게 만나고 싶다고 한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여우는 너무 교활해서 자칫하면 그의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그래서 정은이 생각해낸 가장 좋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현빈을 멀리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주동적으로 찾아갔다니.‘이건 너무 뻘쭘한데...’...동건은 핸드폰을 내려놓은 다음, 아직도 침대에 누워 쿨쿨 자고 있는 수민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누가 나더러 제시간에 오라고 했는데? 1분도 늦으면 안 된다며?! 그런데 내가 도착했지만 아직 이렇게 자고 있다니! 나 여기서 널 꼬박 40분이나 기다렸어. 조수민, 넌 양심도 없니?!”침대 위의 여자는 몸을 뒤척이더니 계속 잤다.동건은 씩씩거리며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어젯밤에 또 남자 만나러 간 거야?”질문하는 동시에 그는 레이더처럼 방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다행히 남자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이때, 동건의 눈빛은 침대 머리맡의 서랍에 떨어졌다.‘물컵이 왜 두 개지?!’동건은 알 수도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소리를 질렀다.“조, 수, 민!”펑.베개 하나가 날아와 동건의 머리를 찧었다.수민은 몸을 돌려 앉았는데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넌 끝도 없니? 왜 계속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거야?! 기다릴 거면, 기다리고 싶지 않으면 그냥 꺼져!”‘누구도 내 수면을 방해할 수 없다고!’동건은 어이가 없었다.‘어,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게 나한테 화를 낼 수가 있지?!’“야...”“꺼져!”동건은 하마터면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그래! 꺼지라면 꺼져야지! 내가 널 무서워할 것 같아?!’멋지게 몸을 돌려 수민에게 도도한 뒷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때, 동건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더니 발걸음을
“그래! 넌 성질도 더럽고 기억력도 나쁘네. 대체 어떻게 된 거야?”수민은 동건을 향해 베개를 던졌다.“입 닥쳐!”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여유롭게 피했는데, 이미 이런 공격에 익숙해진 것이었다.수민은 또 다른 베개를 들려고 했지만 동건은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뭘 찾는 거야? 그 베개 나한테 있어.” 수민은 어안이 벙벙했다.“그게 어떻게 거기에 있는 거지?”‘기억력도 너무 안 좋네.’“아가씨, 넌 이미 날 한 번 때렸고, 이번이 두 번째야.”“아.”‘꽤 어색하군.’수민이 물었다.“지금 몇 시야?”“10시 30분.” 그녀는 동건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뭐야, 시간이 아직 이르잖아. 미래의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 정성껏 꾸미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것도 당연하지 않겠어?”동건은 말을 하지 않았다.“물 좀...”동건은 얼른 말을 이어받았다.“물을 마시고 싶은 거지?”말이 끝나자, 그는 화장대에서 컵 하나를 가져왔는데, 그 안에는 이미 물이 담겨 있었다.“빨리 마셔. 그리고 얼른 일어나서 화장한 다음 나가자고!”수민은 물을 받았는데, 손이 닿자마자 바로 이상함을 알아차렸다.“따뜻한 물이야?”“응!”‘수민이는 여자니까 따뜻한 물을 마셔야겠지?’“얼음물로 바꿔줘.”“아니, 아침부터 차가운 물을 마시겠다고?” 동건도 아침에 일어나서 얼음물을 마셨지만, 수민은 여자였다.“뭐?” 수민은 눈을 부라렸다.“누가 나 따뜻한 물 마신다고 했어? 정신 나간 거야 뭐야!”“아니, 내가 아는 여자...” “아, 네 전 여자친구들?” 수민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동건은 말을 하지 않았다.“이 바보야!”“아니, 넌 왜 자꾸 욕을 하는 거야?”“네 전 여자친구들은 밀크티 마셔? 일식 먹어? 시원한 칵테일 좋아해?”“그런 게 왜 궁금한데?”“이거 다 차가운 음식이잖아. 게다가 생것도 있네. 그럼 여자들은 아예 손도 안 대는 거야?”‘엥!’동건은 말문이 막혔다.수민은 편안하게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내려
“야, 왜 멍을 때리고 있는 거야? 물 줘.”모든 아름다운 장면은 여자가 입을 여는 순간에 툭 하고 깨졌다.동건은 어이가 없었다.“내 요구 하나 들어주면 안 돼?”“말해봐.”얼음물을 한 모금 마시니 수민은 기분이 상쾌해졌다.“나랑 얘기할 때 말투가 좀 부드러웠으면 좋겠어. 우리는 커플이지 원수가 아니잖아. 이러면 우리 엄마가 걱정하실 거야.”“뭘 걱정해?”“자신의 아들이 너한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하시겠지!”수민은 말을 하지 않았다.“자기야, 이렇게 말하라는 거야? 이 치마 어때? 어머님께서 좋아하실까? 나 엄청 오랫동안 골랐단 말이야...”동건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그 뭐지. 그냥 예전처럼 말해, 그래, 사나운 네가 더 보기 좋아.”‘사나운 수민이가 정상이지.’방금 그녀가 애교를 부릴 때, 동건은 오글거려 죽는 줄 알았다.“다시 한번 말해 봐? 누가 사납다는 거야?”“넌 조금도 사납지 않아.”“너 계속 이 단어를 쓰고 있잖아?!”수민은 가장 빠른 속도로 옅은 화장을 했다.“자, 이제 갑시다.”동건은 어안이 벙벙했다.“화장을 한 거야?”“어때? 아주 자연스럽지? 이건 일부러 민낯처럼 화장을 하는 기술인데, 얼핏 보면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거야. 너 같은 남자를 속이기에 딱이라고. 괜찮지?”이미 여러 번 속은 동건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왜 자꾸 날 욕하는 느낌이 들지?’두 사람이 동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12시가 다 되어 갔다.송보미는 문앞에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마침내 동건의 차를 보았다. 그녀는 재빨리 달려가서 웃으며 맞이했다.수민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송보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수민이 왔어? 얼른 들어와. 햇볕 너무 많이 쬐면 안 좋아.”말하면서 수민을 끌고 안으로 데려갔다.‘엄마 아들인 난 어떡하라고?’“어머님, 죄송해요. 어젯밤에 야근을 해서 오늘 아침에 늦게 일어났거든요. 또 옷을 고르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정말 죄송해요.”동건은 집에 들어서자
“엄청 오래 기다릴 줄 알았는데, 동건이 그 녀석이 이렇게 빨리 여자친구를 찾을 줄은 정말 몰랐어. 이제 드디어 내 며느리에게 줄 수 있다니.”‘역시, 경매장에서 찍으신 거구나. 적어도 몇 억, 심지어 수십 억이 들지도 몰라.’“안 돼요, 어머님, 저는 이 팔찌를 가질 수 없어요.” 수민은 즉시 거절했다.만약 그녀가 동건의 진짜 여자친구라면, 아무리 비싼 팔찌라도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수민이 가짜 여자친구였던 것이다.‘가짜인 내가 수십억짜리 팔찌를 받다니, 쯧쯧... 그건 너무하지.’“팔찌 하나일 뿐, 뭐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안심해, 이건 너희들에게 압박을 주는 것도, 결혼하라고 재촉을 하는 것도 아니야. 난 단지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을 뿐이야.”송보미는 팔찌를 상자에서 꺼내 직접 수민에게 끼워 주었다.“크기가 딱 맞네. 어머, 네 피부톤과 너무 잘 어울린다.”“최고급 비취 팔찌이니 당연히 잘 어울리겠지!’두 사람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동건은 소파에 앉아 히죽거리며 물었다.“무슨 얘기를 방에 가서 한 거야? 그것도 이렇게 오랫동안 얘기를 하다니...”“됐어, 내가 네 여자친구를 빼앗아갔다고 질투하는 거지? 지금 돌려줄게.”송보미는 웃으며 수민을 밀었다.“엄마, 저한테 그런 누명 씌우지 마세요. 전 그런 뜻이 없었단 말이에요...”동건은 턱을 들더니 은근히 부인했다.오후에 수민은 편안하게 마사지를 받았는데, 바깥의 미용실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았다.그녀는 물을 마시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는데, 수민은 물컵을 들고 거실 창문 앞으로 가서 받았다.“여보세요?”[날 기억하시나요? 진성후예요.]수민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날 밤 호텔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당연하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그날 이후로 나한테 연락도 안 했으니까요. 난 누나가 날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남자가 억울해하며 말하자, 수민은 마음이 약해졌다.“너도 전화번호를 안 남겼잖아?”[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수민과 동건을 주시하고 있었다.송보미가 입을 열었다.“어머, 두 사람 얼마나 달콤한지 좀 봐요!”“저는 도련님께서 이렇게 주동적으로 한 여자에게 다가간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수미가 일반 여자아이겠어요? 출신이든 교양이든 모두 훌륭하단 말이에요. 이 녀석도 마침내 제대로 된 신붓감을 찾았네요.”“도련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으셨죠.”“이대로 수민이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난 자다가도 행복해서 일어날지도 몰라요.”“어? 그런데 도련님의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으시죠?”“그래요?” 송보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바라보았다.“정말이네요... 수민이의 몸이 좀 뻣뻣해 보이지 않아요?”‘두 사람 분명히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는데, 이상하다...’아래층에서 동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움직이지 마, 우리 엄마는 이미 의심하기 시작하셨어.”“언제부터 그곳에 서 계셨죠?”“네가 전화를 받을 때부터.”‘망했네.’송보미가 말했다.“왜 껴안기만 하고 진도를 안 나가는 거죠?”수민은 이 말을 똑똑히 들었다.그녀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았다.수민은 동건을 바라보며 말했다.“키스해줘.”“뭐?”“왜 멍을 때리고 그래? 빨리!”동건은 침을 삼키더니 눈빛이 점점 짙어졌다.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맹렬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다음 순간, 동건은 여자의 가녀린 허리를 포악하게 감싸더니 강렬하고 거친 키스를 했다.축축하고 건조하며 입술과 혀가 얽히고설켰다.“어머! 키스하고 있는 것 좀 봐요. 이모님, 우리 얼른 피해야겠죠? 아이들이 난처함을 느낄지도 몰라요.”“그러니까요.”송보미가 떠났다.찰싹!깔끔한 소리가 울려퍼졌다.동건은 영문을 몰랐다.“아니... 왜 내 얼굴을 때리는 거야?”수민은 다리가 나른해졌다.“너 왜 진짜로 키스하는 건데?”게다가 수민은 동건의 얼굴을 때린 게 아니라 그저 가볍게 밀어냈을 뿐이었다.따귀와는 그래도 차이가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안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정은은 그제야 한동안 재석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두 사람은 외출하는 시간이 많이 비슷해서 전에 자주 마주쳤지만, 최근에 정은은 재석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너무 바빠서 그동안 실험실에서 지냈겠지.’정은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저녁에 그녀는 도서관에서 잠시 책을 보다가 돌아왔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8시였다.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뒤에 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재석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정은은 재빨리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선배님.”그러나 남자는 못 들은 것처럼 곧장 지나갔다.‘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거나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그런가?’정은은 집에 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나가서 몇 바퀴 뛸 작정이었다.마침 재석에게 CPRT의 구매 경로를 물어볼 수도 있었다.사실 기계를 사겠다고 할 때, 정은은 가장 먼저 재석과 오미선을 떠올렸다.오미선은 최근에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늘 병원에 찾아갔다. 그래서 정은은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들이 자신의 돈으로 기계를 산 일이 터진다면, 송지혜가 악의적으로 실험실을 강점했다는 사실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이다.‘아마도 병원에서 직접 뛰쳐나와 송지혜 교수님과 학교를 찾아가서 따지시겠지.’그러나 현재 학교는 분명히 송지혜의 편을 들고 있었다. 그러니 오미선이 찾아가도 아무런 좋은 점을 얻지 못할 것이다.‘괜히 화를 내시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그냥 말을 하지 말자.’그래서 재석을 찾는 게 최상책이었다.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정은이 문자를 보내고 또 전화를 걸어도 재석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너무 바빠서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는 거겠지.’그러나 재석을 찾으려 했지만, 오늘에야 결코 만났던 것이다.원래 정은은 이미 현빈에게 연락했는데, 내일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재석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그녀도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분석해 본
항이는 신이 났다.그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비싼 쇼핑백에 담아서 건네줬다.“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항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히죽히죽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까불었다.“이거 좀 봐, 내가 인형을 잘 빚을 수 있다니깐. 그 손님 엄청 좋아하잖아!”[에헴! 정신 차려! 그 오빠가 좋아하는 건 그 예쁜 언니지, 네가 빚은 인형이 아니라고!][그래서, 그 오빠 혼자 몰래 달려와서 인형을 사간 거야?][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어머, 형사님이세요? 눈치도 참 빠르시네요!]...정은은 물을 사고 돌아온 재석이 손에 쇼핑백 하나 들고 있는 것을 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건 뭐예요?”“그냥 뭐 좀 샀어.”그래서 그녀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건너 보행로를 따라 앞으로 가면 도심이었다.정은은 손목 시계를 보았는데, 이미 오후 4시였다.‘이제 돌아가야 하나?’그런 생각을 하기도 무섭게 재석이 입을 열었다.“며칠 후에 난 세미나를 참가하러 K시에 가야 돼. 그곳의 날씨가 많이 따뜻해서 겨울의 양복을 입을 수 없거든. 마침 요앞이 백화점이니 날 도와 옷 한 벌 골라 주면 안 될까?”“좋아요.”지나친 요구가 아니었기에 정은은 동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남성복은 5층에 있었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정은은 소리를 내어 불렀다.“심 대표님?”현빈이 고개를 돌렸다.정은을 본 순간, 현빈은 놀라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한쪽에 있는 재석을 발견하자, 그의 눈빛은 어두워졌다.“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정은아.” 말하면서 현빈은 웃으며 재석을 바라보았다.“또 만났네요, 조 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죠?”정은이 대답했다.“선배님을 위해 얇은 양복 한 벌 골라주려고요. 대표님도 쇼핑하러 왔어요?”“응. 우리 할아버지에게 구두 사드리려고...”이때 현빈은 자연스럽게 난처함을 드러냈다.“하지만 어떤 걸
“미안해요!”“미안.”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며 뒤로 물러났다.눈을 마주치자, 어색함 외에 이상한 감정이 돋아나고 있었다.“선배...”“난...”“아니면 선배님부터 말할래요?”재석은 눈을 반쯤 드리웠는데, 마치 사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개를 드는 순간, 마치 어떤 결심을 한 것 같았다.“정은아, 사실 나...”“봐요, 다 빚었잖아요?” 항이의 건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은은 뻘쭘해서 귀와 얼굴이 빨개졌다. 이 말을 듣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벌써요?”“그래요, 난 원래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였어요.”말하면서 손에 든 인형을 정은의 앞으로 내밀었다.정은은 힐끗 보더니 입가를 실룩거렸다.역시 조금의 기대도 가져서는 안 됐다.전에 본 그 몇 개의 인형은 비록 이목구비가 모호했지만 적어도 이목구비가 있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인형은 이목구비가 없었고, 그저 두 머리를 맞댄 것밖에 알아볼 수 없었다.‘잠깐!’정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건...’“이, 이게 저희라고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그럴 리가요? 이게 딱 보이잖아요! 내가 두 사람이 뽀뽀하는 그 장면을 보고 그대로 빚은 건데! 이건 머리, 이건 목, 이건 서로 닿은 두 입술...”“앗!”정은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재석은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며 전술적으로 가볍게 기침을 했다.“아직도 못 알아보겠어요? 그럼 내가 다시 알려줄게요. 이건 머리...”“아니요!”“네?”정은은 정중하게 말했다.“이제 알겠어요.”“진짜요? 거짓말 아니죠?”“네.”“와! 나한테 인형을 만드는 재능이 있을 줄 알았어. 그동안 아무도 날 믿지 않았지!”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렸다.[저 아가씨 엄청 어색해하던데.][항이 씨, 제발 그 아가씨 내버려둬요. 곧 울 것 같은데.][나도, 정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그 분 아마도 항이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재석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형이라고 하지만 사실 윤곽밖에 닮지 않았고, 심지어 그 윤곽도 좀 이상했다.이목구비, 표정, 동작과 같은 디테일도 없었다.재석은 사실대로 말했다.“너무 대충 만든 것 같아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어.”다시 주위를 바라보니, 노점의 다른 진흙 인형도 모두 이런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너무 못생겼다.이 노점도 정말 이상했는데, 주인이 없고 삼각대 하나밖에 없었다. 위에는 핸드폰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카메라로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정은은 잠시 침묵했다.“그렇긴 해요. 하지만 이 각도에서 보면... 사랑의 신 큐피드와 닮은 것 같은데요?”말이 끝나자마자 노점 뒤에서 갑자기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정말 말 그대로 튀어나왔는데, 마치 스프링을 장착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했다.“아가씨, 내가 만든 인형을 알아보았다니?!” 젊은 남자는 두 눈에서 빛이 났다.‘하늘이시어, 드디어 내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군.’정은은 의아해했다.“정말 큐피드였어요?”“맞아요!”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내 작품을 알아본 사람은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엉엉... 정말 감동이네요!”‘이건 좀...’정은이 말했다.“비록 빚은 인형들의 모양과 이목구비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윤곽을 통해 나름 알아볼 수 있어요. 혹시 피카소가 롤모델인가요?”감격에 겨웠던 남자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날 비웃은 건가요?”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고 재석이 입을 열었다.“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이 인형들은 확실히 특이하게 생겼는데.”‘아니, 어떻게 내 앞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수가 있지? 그래도 난 2백만 팔로워를 가진 진흙 조각 블로거인데. 동물이나 다른 물건은 참 생동하게 잘 빚었지만, 사람만 빚으면 실패했지.’정은은 남자를 응원했다.“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이미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정말 예쁘게 생기셨는데? 너무 일리가 있는 말
재석이 물었다.“점심 먹었어?”“아직이요. 선배님은요?”“잘됐네, 나도 안 먹었는데.”눈을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호흡이나 맞춘 듯 미소를 지었다.20분 후, 재석과 정은은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기름이 지글지글거리는 고급 삼겹살, 남자는 삼겹살 표면이 약간 탈 때까지 뒤집다가 신선한 상추에 싸서 여자 앞에 건넸다.정은은 고개를 숙인 채 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재석을 보며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선배님, 나 혼자 할게요...”그러나 재석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정은에게 입을 벌리라고 했다.정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남자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답장하고 있잖아? 정말 손으로 받을 거야?”정은은 즉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받으려 했다.“답장 다 했으니까 나 혼자 먹을게요.”재석은 쌈을 접시에 담았다.“먼저 손부터 닦아.”정은은 방금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앗, 깜박했어.’후에 정은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고, 재석은 고기 굽는 것을 책임졌다. 고기를 다 구운 후에 직접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선배님, 나한테 주지만 말고 선배님도 얼른 먹어요!”“좋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은의 접시는 줄곧 고기로 가득 찼다.소고기를 입에 넣자, 즙이 절로 나올 정도로 부드러웠다. 정은은 데여서 숨을 들이마셨는데, 혀끝이 따갑고 아팠다.재석은 아이스 코코넛 우유 한 병을 건네주었다.“천천히 마셔.”얼른 두 모금 마시자, 정은은 그제야 좀 나아졌다.재석은 모처럼 덤벙대는 그녀의 모습을 봐서 속으로 기분이 엄청 좋았다.“어때, 좀 괜찮아졌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혀가 아직도 좀 얼얼하네요.”“입 벌려, 내가 한번 볼게.”남자의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 정은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다.십여 초가 지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룸의 온도가 너무 높았는지, 아니면 불판이 너무 뜨거웠는지 볼에 홍조가 나타났다.정은은 얼른 똑바로 앉았다.재석은 시선을 거두었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