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건은 피식 웃더니 바로 수민을 쫓아갔다.‘여자친구가 실연당했으니 나도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민우는 초라하게 룸으로 돌아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계속 스폰서들에게 술을 따랐다.수민은 그를 차버렸고, 심지어 민우의 협박조차 듣지 않았기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전 대표님, 저희 예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죠. 오늘 처음으로 대표님과 술을 마시는 것이니,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습니다.”전에 민우는 이런 식사 자리에 나온 적이 있었지만, 스폰서들에게 접근할 기회조차 없었으니 같이 술을 마시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선우는 쌀쌀하게 웃으며 가슴을 안았다.“도... 이름이 뭐라고?”“도민우입니다.”“그래, 도민우. 너 주량이 꽤 좋은 것 같은데?”“에이, 아닙니다. 그저 몇 잔 정도 마실 수 있을 뿐입니다.”“오늘 성 대표님의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어서 나왔다며?”민우는 진지하게 말했다.“전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못 주는 것도 아니지. 안 그래요, 성 대표님?”성택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비록 선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잘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민우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선우는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아주 작은 요구가 있어. 너에게 있어 아마도 큰 문제가 아닐 거야.”“말씀하세요.”“이 테이블 위의 모든 술을 다 마셔. 그럼 남자 주인공을 너로 정할게.”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잇달아 시선을 돌리며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민우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전 대표님, 농담도 참.”“농담? 난 엄청 진지해. 물론 내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은 당연히 남에게 줘야겠지.”테이블 위에 여러 종류의 술이 있었다.와인, 소주, 맥주.이것을 다 마시면 죽지 않아도 병원에 한동안 입원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민우는 잠깐 망설이더니 바로 결정을 내렸다.“마실게요.”선우는 박수를 쳤다.“그래.”민우가 고개를 쳐들고 술을 마
“에이, 그건 네 착각이고. 다른 여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 조수민은 감정이 없는 여자야.”동건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쯧쯧, 넌 왜 자꾸 웃어?” 수민은 입을 삐죽거렸다.“그럼 울라고?”“그래, 내가 휴지 줄게.”동건은 말없이 라이터를 꺼냈다.수민이 손을 흔들자, 그는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이야, 이 여자가 드디어 눈치 있게 불을 붙여주려는 건가?’하지만 이것 역시 동건의 착각이었다.탁.수민은 동건의 손을 세게 내리쳤다.“담배 달라고! 왜 엉뚱하게 라이터를 주는 거야? 넌 눈치도 더럽게 없네...”동건은 어이가 없었다. 먼저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이번에 수민이 말할 필요도 없이 얌전하게 라이터로 그녀를 위해 불을 붙였다.불빛은 여자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수민은 고개를 숙였다. 하얀 이빨로 담배꽁초를 문 다음 붉은 입술을 가볍게 오므리자, 담배꽁초에 선명한 립스틱 자국이 나타났다.동건은 뜻밖에도 그 모습이 넋을 잃었다.“야, 불 꺼.”“어? 아!”동건은 라이터를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두 사람은 클럽에서 두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누었다. 와인 한 병을 마시고 나왔을 때, 이미 새벽이 되었다.둘 다 술을 마셨기에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수민은 대리를 부르려고 했지만,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야,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여기 전부 클럽이잖아. 한밤중이라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해.”“그럼 직접 택시 하나 잡으면 되겠다. 내일 시간 내서 다시 내 차 몰고 가야지.”그러나 그 결과, 택시를 타려면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수민은 말문이 막혔다. 이때 그녀는 눈알을 굴리더니 동건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돌아갈 거야?”“난 어디도 안 가.”“그게 무슨 뜻이야?”“맞은편 호텔 봤어?”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런데?”“내 거야.”“그래서?”“직접 호텔에서 자면 되잖아. 귀찮게 왜 집에 가? 너 바보 아니야?”수민은 그제야 깨달았다.“역시 너야. 그럼
이 말을 듣고 동건은 미간을 찌푸렸다.‘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닌데.’“필요 없어, 그냥 데리고 가.”지배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지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치 있게 물러났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지연이 물었다.“도련님께서 호텔에 오시면 꼭 여자를 찾으셨다면서요? 왜 오늘은...”“전에는 줄곧 그랬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이야. 도련님께서 여자 때문에 호텔에 오신 줄 알아?”“그런데 저는...”지연은 어렵게 이번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지배인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도련님의 생각에 달렸으니까. 탓하고 싶으면 너 자신을 탓해. 어쩜 이렇게 운도 없는 거야? 도련님께서 오늘 지치셨기 때문에 쉬고 싶으신 거겠지. 넌 얼른 가서 일이나 해. 주제넘은 생각하지 말고...”여자가 이를 갈았다.다른 한편, 수민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그녀는 동건인 줄 알았다.“밤늦게 무슨 일... 어?”동건이 아닌 한 젊은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수민을 보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미안해요, 내가 문을 잘못 두드린 것 같아요.”“괜찮아.” 말을 마치자마자 수민은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그러나 남자는 문을 받치며 그녀가 닫지 못하게 막았다.수민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또 다른 일 있어?”“정말 날 모르는 거예요?”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은 섭섭함으로 가득 찼는데 은근히 울먹이고 있었다.수민은 웃으며 진지하게 그를 훑어보았다.그녀는 처음부터 문을 잘못 두드렸다는 이유를 믿지 않았다.이곳은 꼭대기층이었고, 스위트룸이 딱 두 칸밖에 없었으니까.그리고 다른 하나는 동건의 방이었다.남자는 자신이 문을 잘못 두드렸다고 했지만, 한밤중에 이렇게 입고 동건을 찾으러 갈 리가 없었다.그는 흰색 티셔츠에 연두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운동화까지 신고 있으니 그야말로 해맑은 대학생이었다.‘청춘이여!’
달빛은 물처럼 부드러웠고, 기나긴 밤이 지났다.이튿날 오전 9시, 동건은 깨어나자마자 수민을 찾아갔다.노크를 하려고 할 때, 문이 안에서 열렸다.“조...”‘엥!’한 젊은 남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머리카락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는데, 딱 봐도 금방 잠에서 깨어난 게 분명했다.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자, 동건은 아예 멍해졌다.이에 비해 성후는 훨씬 담담했다. 그는 동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쉿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안쪽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작게 말해요. 누나 아직 자고 있어요.”말을 마치고 바로 가버렸다.동건은 복도에서 멍을 때리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X발!”‘조수민이 뜻밖에도 내 호텔에서, 내가 안배해준 방에서, 내 맞은편에서 다른 남자와 잤다니?!’동건은 얼른 들어가서 고의로 문을 닫으며 큰 소리를 냈다.그러나 그의 호텔은 최고급이라 전부 무음문을 사용했기에 전혀 큰 동정을 낼 수 없었다.동건은 화가 나서 의자를 발로 찼지만, 바닥에 카펫을 깔았기 때문에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그 카펫은 심지어 퀄리티가 가장 좋은 것이었다.촤악.하다 못해 동건은 창가에 가서 커튼을 열었다. 햇빛이 방안에 쏟아지자, 수민은 마침내 깨어났다.“진성후, 이게 무슨 짓이야?! 방금 한 말 다 잊은 거야?!”수민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지만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침대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그 사람이 성후인 줄 알고 명령했다.“커튼 닫으라고!”수민은 다 좋은데 유독 아침에 일어날 때 성질이 좀 있었다.평소에 정은조차 아침에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동건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여자의 목과 가슴에 키스 자국이 널려 있었고, 심지어 색깔조차 달랐다. 모두 성인이었기에 동건은 두 사람이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조수민! 너 아주 신이 났구나?”이 목소리에 수민은 멍해졌다.그녀가 눈을 깜박거리
“왜 날 그렇게 쳐다봐? 빨리, 나 목말라 죽겠어!”동건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얼음물 한 잔을 마시니, 수민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한테 무슨 볼일 있어?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니까 좀 부끄럽네...”남자가 물을 따르러 가는 틈을 타서 수민은 이미 옷을 다 입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어머, 벌써 11시라니!’“부끄러워? 우리 조수민 아가씨가?! 넌 아주 당당하던데!”동건은 마치 찔려 터진 고무공과 같았다. 전에는 겨우 참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당당하게 나에게 물 좀 따르라고 시켰잖아? 그게 부끄러워서 한 말이 아닌 것 같은데?”말을 마치자 동건은 작은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수민은 눈살을 찌푸렸다.“너 뭐 잘못 먹었어? 왜 나한테 성질이야?”“오늘 아침에 네 방에서 나간 그 남자부터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니야?”수민은 영문을 몰랐다.“설명할 게 뭐가 있어? 넌 여자와 잤다고 특별히 남에게 설명할 거니?”동건은 말문이 막혔다.“아니, 나도 지금 어쨌든 네 남자친구잖아?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난 뭐가 되는 건데?”그를 바라보는 수민의 눈빛은 더욱 의혹에 빠져들었다.“첫째, 넌 내 가짜 남자친구야. 둘째, 난 남들 앞에서 다른 남자와 잔 게 아니라, 단지 내 방에서 잤을 뿐인데. 이게 너한테 무슨 영향을 준다는 거지? 합작하기 전에 우리 이미 약속했잖아, 서로의 감정에 간섭하지 말자고. 난 계약을 위반한 적이 없어. 그런데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동건은 말로 수민을 이길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수민은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그나저나, 이 호텔 정말 좋네. 앞으로 여긴 내 방이야. 다음에 또 와야지.”‘방금 다음에 또 올 거라고 했어?!’“참, 이따가 프론트에 전화해서 룸 카드 한 장 더 준비해 달라고 해.”“뭐 하려고?”“한 장은 나 혼자 쓰고, 다른 한 장은 남에게 주려고!”‘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물어보다니.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예 바보로 된
“그전에.”“도련님께서 분부하셨으니...”“더 전에.”“1901호 방이 체크아웃을 마친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그 여자 이미 떠났다고?!”“네, 약 10분 전에요.”“젠장!”지배인은 영문을 몰랐다.“그 여자들 전부 나가라고 해! 보기만 해도 짜증 나니까.”‘아니, 전에 전화하셨을 땐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짜릿하고 두근거리는 이쪽과 달리, 정은 쪽은 여전히 평온했다.아침 7시, 그녀는 스스로 깨어난 다음, 아침을 차려 놓고 장을 보러 나갔다.9시,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정은은 소진헌이 감탄하는 것을 들었다.“이야, 조 교수는 물리 연구를 잘 할 뿐만 아니라 화초를 다루는 데도 이렇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니!”신발을 바꾸던 정은은 잠시 멈칫했다.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베란다에서 들려왔다.“아니에요, 과찬이세요.”재석이었다.정은은 채소를 주방에 놓은 다음, 아침에 끓인 차 두 잔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소진헌과 재석은 베란다 문을 등진 채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예닐곱 개의 화분이 놓여 있었고, 흙과 식물이 함께 파였다.“아빠, 선배님, 차 좀 마셔요.”“정은이 돌아왔구나. 오늘 시간 있으니까 이 화분들 전부 정리해 줄게. 이 꽃들은 뿌리가 이미 썩었어.”말하면서 소진헌은 손을 뻗으며 차를 받으려 했다. 자신의 손에 진흙이 묻은 것을 보고 그는 얼른 손 씻으러 갔다.“선배님.”재석은 많이 똑똑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일회용 장갑을 꼈기 때문이다.장갑을 벗은 후, 그는 직접 컵을 받았다.“고마워.”“선배님은 언제 왔어요?”“30분 전에.”“오늘은 실험실에 안 가도 되는 거예요?”“오후에 갈 거야.”“그럼 어떻게...” ‘우리 집에 찾아온 거지?’정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재석은 웃으며 대답했다.“조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가시는 아저씨와 부딪쳤거든.”소진헌은 또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재석이 오전에 한가하고 오후에야 실험실에 가면 된다는 것을
갑자기 되살아난 기억에 정은은 당황하기 그지없었다.‘남의 옷깃을 붙잡고 매달린 사람이 나라고?’남자와 눈을 마주치자, 정은은 어색해서 땅만 바라보았다.“생각났어?”“미안해요, 난...”“그런 문제를 물어볼 필요가 있겠어? 당연히 안 되지. 남이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드럼도 아니고. 너도 말했잖아. 많이 두드리면 바보가 된다고.”재석의 말 한마디에 어색한 분위기가 좀 풀렸다.“그럼 왜 내 머리를 두드린 거예요...”그녀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기억이 돌아오자, 정은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분명히 선배님이 먼저 날 건드렸는데...’재석은 정색했다.“그래도 술 좀 적게 마셔. 맛있어도 욕심 부리지 말고.”“네.”정은은 또 어찌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손을 씻고 돌아온 소진헌은 차를 들고 한 입에 마셨다.재석은 천천히 음미하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술에 관한 얘기요...”“참, 조 교수, 자네 점심에 여기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건 어떤가? 우리 술 한 잔 하자고. 지난번에 그 원자력 발전 신기술에 대해 말했잖아... 그때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오늘 계속 이야기하자!”재석은 처음으로 바로 응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넌 어떻게 생각해?”“술, 술은 마시지 말죠?”‘술을 마시다 또 무슨 망신을 당할지도 몰라!’“선배님은 오늘 오후에 실험실에 가야 하잖아요. 그러니 술을 마시면 안 돼요. 아빠도 술 마시지 말고 그냥 식사만 하세요.”소진헌은 고개를 끄덕였다.“조 교수는 마실 수 없지만, 우리 둘이 좀 마시면 되잖아.”“어?” 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정은이는 술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그럼, 어제도 나랑 술 한잔하자고 했는데, 정은이 엄마가 못 마시게 말렸거든.”정은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아빠도 참. 내가 이렇게 눈짓을 하고 있는데! 왜 선배님한테 이런 얘기까지 하시는 거냐고!
이미숙은 어이가 없었다. ‘남을 칭찬할 때 꼭 자신을 어필한다니깐.’오후 1시, 재석은 떠날 준비를 했다.소진헌은 베란다에 앉아 계속 화분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얼른 정은을 불렀다.“정은아, 네 재석 삼촌 좀 배웅해줘!”재석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표정이 굳어졌다.정은은 재빨리 소파에서 일어섰다.“아빠, 그런 말씀 좀 하지 마세요! 선배님, 나 좀 기다려요...”“응.”정은이 재석을 문 밖으로 배웅하자, 소진헌은 작은 소리로 흥얼거렸다.“지난번에 조 교수를 내 동생으로 삼겠다고 했잖아. 그러니 당연히 삼촌이라고 불러야지...”...눈 깜짝할 사이에 소진헌과 이미숙은 이미 J시에서 이주 넘게 머물렀다. 정은은 때가 됐다 싶어 이미숙에게 나석천을 소개해 주려 했다.“엄마, 사실 이번에 아빠랑 같이 J시에 오라고 한 이유가 따로 있었어요.”“무슨 일인데?”정은은 서류 봉투를 꺼내 이미숙 앞으로 밀었다.“이것은 엄마와 유보영이란 사람과 체결한 계약서예요. 전에 전자판을 달라고 한 다음, 그것을 프린트해서 출판인과 지식 재산권 변호사에게 보여 줬어요...”이미숙은 가슴이 떨렸다.정은은 그녀에게 열어보라고 했다.“위에서 붉은 펜으로 표기된 곳은 모두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계약상 이 출판사는 사실 유보영이 주주이고, 그 사람의 가족이 출자한 출판 스튜디오예요.”심지어 정규 출판사라고 할 수도 없었다.출판사는 정규 출판 자격이 있어야 정식으로 도서 번호를 가진 도서를 발행할 수 있지만, 이 스튜디오는 삽화, 오디오 소설, 웹 소설만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이미숙이 10년 동안 제대로 된 책을 발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좋은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보영이 출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래서 유보영은 이미숙이 쓴 시작과 대강을 전부 부결했던 것이다.“출판을 할 수 없는 이상, 애초에 왜 네 엄마를 찾아서 계약을 한 거야? 그것도 10년이란 계약을 체결했잖아?”이미숙은 이미 충격을 받아 멍해졌다. 소진헌은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
“능청스럽게 굴지 마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어때요? 나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어요. 당신이 본 『7일담』이 바로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에요. 그러니 나는 당신과 재계약을 할 수 없어요. 지난 10년간의 감정을 봐서, 우리는 좋게 갈라지죠.”“좋게 갈라져?” 유보영은 냉소를 지으며 드디어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누가 나의 손실을 배상하는 건데?”“당신이 무슨 손실을 입었다는 거죠?” 이미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너와 계약을 했어. 10년, 꼬박 10년, 당신은 좋은 책 한 권도 쓰지 못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아가 계약을 하더니 바로 인기 소설을 출시해? 이미숙, 너 지금 날 갖고 장난하는 거지?”“내가 쓰기 싫어서 그래요? 당신이 줄곧 나의 구상을 부정하고, 나에게 출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가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의 대강을 주었는지 계산해 본 적 있어요? 마지막에는 예외가 하나도 없이 전부 거절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인기를 끄는 작품을 출판하라는 거예요?”“너...”“당초의 계약비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래요, 당신은 확실히 많은 돈을 주었지만, 당신도 날 10년 동안 ‘감금’했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 예전에 쓴 책의 판권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겠죠.”유보영은 시선을 피하더니 다소 마음이 찔렸다.‘이미숙이 어떻게 그 판권에 대해 알았지?’“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죠? 나는 이미 변호사를 청해 계약서를 확인해 보았는데, 당신은 몰래 내 판권을 대리 운영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했죠. 사인할 때 나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쓰라고 했고요.”“허... 그래서? 이제 돈 계산을 하자는 거야? 변호사까지 불렀다고? 진작부터 날 방비했나 보네.”“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요. 전의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날 방해하지 마요.”이미숙은 일어나더니 손님을 내
이 시각, 소진헌은 학교에 수업하러 갔는데, 집에는 이미숙 혼자밖에 없었다.J시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새 책의 대강을 구상했고, 학교 괴담을 주제로 한 공포 소설을 창작할 계획이었다.그사이 정은이 전화를 걸어 실험실 완공식에 초청했지만, 부부는 아쉬움을 느끼며 거절했다.소진헌은 수업을 해야 했기에 떠날 수 없었고, 이미숙은 창작을 해야 해서 방해를 받으면 안 됐다.이야기가 이미 태반이 완성되고, 곧 마지막 장을 끝내려 해서 이미숙은 요즘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유보영이 문을 두드릴 때도 이미숙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문을 열러 가는 길에 머릿속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유보영은 미소 지었다.“오랜만이에요, 이 작가.”이미숙은 이마를 찌푸렸다.“당신이었어요?”“그래요, 그래도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유보영은 내색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인테리어가 이렇게 호화로운 걸 보니 정말 부자가 된 모양이야.’이미숙이 거절을 하기 전에 유보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이미숙은 비록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유보영이 떠들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웃고 있었기에, 예의상 이미숙은 그녀를 내쫓지 못했다.더군다나 이미숙도 유보영이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앉아요.” 이미숙은 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유보영은 앉은 후,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별장 곳곳을 살펴보았다.“이 작가님, 이사를 해도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예전에 이 작가님이 살던 곳에 달려가서 얼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전화해도 항상 전원이 꺼져 있어서 나도 이곳을 찾느라 애를 엄청 썼어요.”이미숙은 대답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게요, 우리 계약도 곧 만기 되어 가잖아요. 그동안 우리는 아주 잘 협력했고, 재계약도 형식일 뿐이에요. 하지만 형식이라도 같이 사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 좀 봐요...”말하면
그리고 유보영의 밑에 이런 작가가 무려 수십 명이나 있었다.“어머!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작가들은 바보 아니에요? 판권 같은 것을 팔려면 작가 본인의 동의를 거치고 사인까지 해야 되잖아요?”장민영은 가볍게 흥얼거렸다.“넌 매일 그렇게 많은 계약을 복사하는데, 위의 상세한 조항을 보지 않았니?”“어?”“유 사장님은 계약을 할 때 이미 작가의 명의로 된 기타 서적의 판권 대리권을 손에 넣었다고. 그럼 작가에게 통지할 필요도 없고, 사인할 필요도 없어. 유 사장님이 가서 잘 이야기한 다음, 작업실 쪽에 공인만 하나 더 찍으면 끝.”“만약 정말 사인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나 찾아서 사인하면 되지 않겠어? 그 사람들 정말 작가 본인을 찾아 가서 대조할 수도 없잖아.”“어머, 그럼 유 사장님은 작가에게 주는 배당금까지 절약한 셈이네? 어차피 작가도 모르니, 돈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겠지.”장민영은 커피 한 모금 마셨다.“그래, 넌 사장님이 좋은 차에 비싼 집을 산 돈이 어디서 났다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명품인데, 내가 듣기로는 그 가방 하나만 해도 수천만 원이라잖아? 정말이야?”“정말이야, 그것도 에르메스.”“쯧쯧...”장민영은 감탄하면서 부러워했다.“가장 비참하게 당한 작가는 추리 소설을 썼다고 들었어. 일찍 엄청난 인기를 끈 두 권의 소설 판권은 유 사장님이 모두 팔았고. 최근 몇년간 또 기타 판권을 연장했는데, 그 작가 혼자만 해도 매달 최소 우리에게 수백만 원의 이익을 가져다줄수 있어.”“추리 소설 작가? 누구지? 요즘 한 추리 소설 작가가 대박 났는데. 이란 책을 써서 지금 아주 난리도 아니야. 작가 이름이... 이미숙이라 한 것 같아!”“이, 이미숙?!” 장민영은 깜짝 놀랐다.“그 제대로 당한 작가도 무슨 미숙이라고 한 것 같은데.”“같은 사람 아니겠지?”“아닐 거야. 유 사장님이 어떻게 새 책을 내줄 수 있겠어?” 장민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긴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