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도겸은 별장으로 돌아가 차를 세웠지만, 꾸물대며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그는 눈앞의 별장을 바라보았다. 정은이 떠난 이곳은 더 이상 ‘집’이라고 할 수 없었다.도겸은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밀폐된 공간에서 연기는 그 속에 갇혀 흩어질 수가 없었다.붉은 빛이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서 타오르자, 하얀 연기와 함께 곧 도겸의 눈앞을 가렸다.그는 어둠 속에 빠져 마치 밤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담배 한 대를 피우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원래 막연했던 눈빛은 담배가 다 타버린 후 갑자기 맑아졌다.‘정은이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난 정은이를 가졌었고, 지금 잃었다고 해서 앞으로 다시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야. 그냥... 내가 정은을 되찾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도겸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다음 담배꽁초를 버리고 별장으로 걸어갔다.연희는 문 앞에 서서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도겸은 손목 시계를 보았다.‘새벽 1시, 허...’“도겸 씨, 저...”연희가 입을 연 순간, 도겸은 곧장 그녀를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비록 그의 앞에 덩그러니 서 있었지만, 연희는 마치 공기와 다름없었다.연희의 미소가 갑자기 굳어졌다.그러나 그녀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도겸 씨, 제가 오늘 저녁에 직접 요리를 했는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어요. 저를 차단한...”도겸은 걸음을 멈추며 몸을 돌려 연희를 바라보았다.“왜, 난 원망하고 있는 거야?”“아니요... 그냥 저를 차단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도겸 씨와 연락이 안 돼서 너무 걱정이에요.” 연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남자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거절하기도 귀찮은 모양이다.그러나 연희는 눈치채지 못한 듯 식탁 옆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줄곧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 음식들은 이미 네다섯 번 데웠으니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거예요...”도겸은 식
“도겸 씨, 제가 넥타이 해드릴게요.”“허... 나 오늘 검은 셔츠를 입었는데.”연희는 멈칫하더니 의문을 드러냈다. “저도 알아요.” ‘됐어.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도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반 마디도 더 하고 싶지 않았다.‘검은 셔츠에 여러 가지 색깔의 넥타이를 매치하다니, 허... 하긴, 배운 게 있어야 뭘 매치하든가 하지.’도겸은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잘 할 수 없으면 안 해도 돼.”말을 마치자, 연희가 어떤 표정이든 상관하지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밤이 되자 도겸은 일을 마치고 회사를 떠났다.차 안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좀처럼 차에 시동을 걸지 않았다.담배를 다 피워서야 도겸은 담배꽁초를 끄며 차를 몰고 떠났다.별장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그는 강가를 따라 두 바퀴 돌았다.중간에 서영숙이 전화를 했는데 그는 받지 않았다.운전하다 보니 도겸은 또 어느새 익숙한 골목에 다다랐다.이번에도 함부로 주차를 해서 욕을 먹었다.“젠장! 마세라티면 다야? 돈 많으면 다냐고!”“요즘 우리 골목에 고급차가 좀 많은데? 얼마 전에 그 포, 포... 뭐였더라?”“포르쉐!”“그래, 대체 무슨 일이래?”...8시, 정은은 제시간에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쓰레기를 버렸다.도겸은 앞유리를 통해 탐욕스럽게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오늘 파란색 꽃무늬의 긴 치마를 입었다. 머리카락은 길어졌고, 부드럽게 등에 드리워져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있으니 개성 있으면서도 나른해 보였다.도겸이 차에서 내려와 쫓아가려던 참에, 누군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재석이 말했다.“강도겸, 우리 또 이렇게 만났군.”“비켜!”정은이 쓰레기를 버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것을 보고 도겸은 다급해졌다.그러나 재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정은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서야 다시 시선을 돌렸다.“네가 조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내가 뭘 못할 것 같아?!”재석은 화내지 않았고 목소리도 무척 담담했다.“당신은 남을 미행하고
[네, 동건이 형도 있어요.]“어딘데.”[우리가 자주 가는 그 술집이요.]“15분만 기다려.”...술집, 소란스러운 음악, 화려한 불빛.룸 문을 닫자,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았다.“도겸아, 왔어?” 고동건은 몸매가 풍만하고 옷차림이 노출된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 도겸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바로 웃으며 인사를 했다.도겸은 곧장 소파에 가서 앉았다.동건은 곁의 여자에게 눈짓을 했고, 여자는 바로 요염하게 웃으며 도겸의 곁으로 다가갔다.“나 건드리지 마.” 도겸은 여자의 유연한 손을 붙잡더니 자신의 허벅지에서 옮겼다.여자는 웃음이 굳어졌고, 동건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왜? 마음에 안 들어?” 동건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바꿀 수 있어.”도겸은 자신에게 와인 한 잔을 따랐다.“흥미가 없어서 그래.”“야, 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어. 소정은을 떠났으니 여자들 막 만나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설마... 그 임신한 여자친구가 너무 엄격한 거가? 말도 안 돼...”예전에 정은도 도겸을 단속할 수 없었으니 연희는 또 어떻게 성공을 하겠는가?술 한 잔을 마시며 도겸은 동건을 상대하지 않았다.동건은 여자를 자기의 곁으로 돌아오라고 불렀다.여자는 방긋 웃으며 곧 순순히 그의 품속으로 안겼다.동건은 미녀를 껴안고 도겸을 보며 웃었다.“놀러 나왔는데 왜 우거지상을 하고 있어? 누가 또 너를 건드렸니?”“아니.”“그럼 우리한테 웃어줘 봐?”도겸은 짜증이 났다.“꺼져! 내가 개그맨이냐? 작작 좀 하지 그래.”동건은 크게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와서 물었다.“네 아이의 출산 예정일이 언제니? 어쩌다 내가 삼촌이 됐을까? 쯧쯧...”도겸은 차갑게 눈을 치켜떴다.“일부러 이러는 거지?”동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선우는 어이가 없었다.“동건이 형, 그 깐족대는 표정 좀 하지 마요.”“어?” 동건은 눈을 깜박였다.“그렇게 티 나?”“그럼요.”“그래, 그럼 나도 좀 참아야지.”“도겸이 형, 동건이 형을
선우는 조용한 곳에 가서 전화를 받으려 했다.그러나 도겸과 동건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도겸은 주위를 향해 입을 다물라는 손짓을 했고, 동건은 즉시 음악을 껐다.빠르면서도 호흡이 척척 잘 맞았다.선우는 침을 삼키며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맞은편의 정은은 한참을 고민한 후에야 선우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정했다.이미숙의 계약이 곧 만료될 예정이어서, 유보영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편집장을 다시 찾아야 했다.그리고 새로운 편집장은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소설을 출판한 경험이 있어야 했다.물론 손에 보급자원이 있다면 더욱 좋았다.이리저리 생각해 보니, 정은의 친구들 중 미디어 출판 업계를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선우밖에 없었다.정은이 고민한 이유는 선우에게 입을 열기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선우가 만약 이 방면의 자원이 있다면, 틀림없이 대범하게 자신에게 소개해줄 것이다.비록 지금 도겸과 이미 헤어졌지만, 정은과 선우는 이미 도겸을 건너뛴 친한 친구였다.유일하게 망설인 이유가 바로 이미숙을 대신해서 이 결정을 내릴지, 아니면 먼저 이미숙에게 간단하게 알려준 다음 소통을 해볼지였다.그러나 오늘 아침 집에 전화를 할 때 소진헌은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는 최근 영감이 폭발하여 연속 일주일간 밤을 새웠어. 그러나 정신은 여전히 말짱했고. 난 네 엄마에게 영향을 줄까 봐 뒤뜰에서 흙을 뒤집고 비료를 주는 것조차도 소리를 내지 않았어.‘만약 이때 엄마와 이 일을 상의한다면. 엄마는 틀림없이 창작을 중단할 거야.’그래서 이리저리 생각하다 정은은 이를 악물고 이미숙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렸다.‘어차피 먼저 편집장을 찾아주기만 하면 돼. 받아들일지 말지는 엄마 자신에게 달려 있어. 더군다나 믿음직한 편집장을 찾을 수 있을지조차 문제야...’[선우야, 너 지금 바빠?]“바쁘긴요, 하나도 안 바빠요. 바빠도 누나의 전화를 받을 시간이 있어야 해요!”[농담도 참. 오늘 마침 너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선우는 정은이 동건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도 먼저 입을 열어 정은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렸다.게다가 선우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물어보는 것일 뿐, 될지 안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그럼 정은 누나, 일찍 쉬어요, 끊을게요.”선우는 통화를 마쳤다.“허, 넌 그러고도사내 자식이야? 소정은이 대체 너에게 무슨 약을 먹였길래, ‘누나’ ‘누나’하면서 다정하게 부르는 건데? 오글거려 죽겠네.” 동건은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형이 뭘 알아요? 난 친구를 항상 진심으로 대했으니 눈에 거슬리면 보지 마요.”“친구?” 동건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소정은은 이미 도겸과 헤어졌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친구야?”이 말이 나오자, 도겸도 참지 못하고 선우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선우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똑바로 앉더니 표정도 엄숙해졌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정은 누나는 전에 날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비록 지금 도겸이 형과 헤어졌지만, 나와 누나는 여전히 친한 친구예요.”“널 도와줘?” 동건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뭘 도와준 적이 있는데?”선우는 가볍게 기침을 했다.“말하자면 얘기가 길어서 오늘은 말하지 않겠어요. 다들 술 마셔요. 참, 동건이 형, 형에게 도움을...”“아, 오줌 쌀 것 같으니까 화장실 좀 다녀올게.” 동건은 토끼보다 더 빨리 달아났다.선우는 동건이 일부러 도망친 것 같다고 느꼈다.물론 그는 확실히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동건은 룸에서 나오더니 화장실에 가지 않고 테라스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그는 무슨 난제에 시달렸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걸음을 서성거렸다.그리고 무척 초조해 보였다.담배가 다 타자, 동건은 다른 하나에 불을 붙였다. 가끔 한 모금만 피우면서 나머지가 다 타도록 내버려 두었다.이때 동건은 담배꽁초를 끄더니 마치 무슨 결정이라도 한 듯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정은은 선우와 전화를 한 뒤, 핸드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샤워하러
[그때 호텔에서 네가 날 도와줬잖아. 난 그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비록 넌 도겸과 헤어졌지만, 그 은혜는 갚아야 하지.]‘방금 난 여기에서 담배를 두 대나 피웠고, 20분 정도 걸렸는데. 소정은은 뜻밖에도 직접 나에게 전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 선우가 분명히 말했잖아, 나에게 자원이 있다고! 그것도 최고급 자원이야! 소정은은 어쩜 이리 둔한 것일까? 날 뭘로 보고?’동건은 입을 삐죽거렸다.[믿을 만한 편집장을 찾고 있다고? 이따가 그 사람 연락처 보낼게.]정은도 엄살을 부리거나 괜한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동건이 말을 이렇게까지 했으니 거절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바보와 다름없었다!“고마워요.”[은혜를 갚은 것뿐이야.]전화를 끊고 동건은 즉시 그 편집장의 톡을 찾아 정은에 보내려 했다.그러나 이 순간, 그는 자신에게 정은의 톡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동건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 뭐지... 톡 친구 요청 좀 통과해. 걱정 마, 난 심현빈과 같은 늑대가 아니니까. 절친의 전 여자친구에게 조금도 분수에 넘치는 생각이 없어.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이따가 명함을 받은 다음 날 삭제해도 돼.]“이미 수락했어요.”[응.]명함을 보낸 다음, 동건은 핸드폰을 접고 다시 룸으로 돌아갔다.선우가 물었다.“화장실을 이렇게 오래 갔다니, 똥구덩이에 빠진 건 아니겠죠?”“꺼져!”여자는 동건이 돌아온 것을 보고 바로 웃으며 다가왔다.“동건 도련님, 방금 저를 두고 떠나셨다니.”“그렇지 않으면 나랑 같이 남자 화장실에 갈 거야?” 동건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렸다.여자는 즉시 아양을 떨며 그를 가볍게 노려보았다.“동건 도련님, 오늘 저녁에 제 노래를 주문하시는 건 어때요?”동건은 사악하게 웃으며 그녀를 한 번 훑어보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여자는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약간의 실망을 드러냈다.‘이 재벌 집 도련님들은 정말 통이 크고 여자를 달래는 수법도 대단하지만, 정말 너무 매정하다니깐. 마음이 너무 딱딱해!’...
선우는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난 정은 누나와 자주 연락을 했는데, 왜요?”동건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마치 도겸의 마음을 꿰뚫어본 것 같았다.“난 네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아. 선우가 소정은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 일과 내가 오늘 손을 써서 소정은을 도와준 일에 대해 넌 의혹을 느낄 거야. 우리가 네 체면을 봐서 소정은을 잘 대해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소정은이란 사람 때문인 건지.”동건은 말하면서 잠시 멈칫했다.“난 분명하게 알려줄 수 있어. 소정은이란 사람 때문이야. 너와 상관없어. 선우도 마찬가지일 거고.”도겸은 눈살을 찌푸렸다.“왜?”동건은 흥얼거리며 웃었다.“사람들은 교제를 할 때, ‘거래’를 하기 마련이잖아? 시간이 갈수록 친분을 쌓은 거지. 넌 소정은이 너와 함께 한 6년 동안 단지 네 그림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는 한 달에 적어도 두세 번 모이지 않았어? 그러니 우리도 소정은과 접촉할 기회가 적지 않았어. 선우부터 말하자.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소정은이 네 컴퓨터를 고쳐주었고 또 프로그래밍까지 써줬었지?”“맞아요!” 선우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정은 누나는 프로그래밍이 아주 대단했어요. 내가 그때 한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상대방은 하마터면 장부에 손을 쓸 뻔했어요. 정은 누나가 자동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날 도와 그 장부를 정리했거든요.”“그리고 그때...”선우는 유유히 말했지만, 도겸은 들을수록 막막해졌다.그들이 말하는 그 ‘소정은’과 자신의 기억속에서 매일 집에 틀어박혀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한 ‘소정은’이 정말 같은 사람인가?“나만 얘기할 순 없죠. 그때 정은 누나가 형을 도와줬잖아요...”“에힘!” 동건은 선우의 말을 끊었다.“그만 해, 나 갈 테니까 너희 둘도 좀 일찍 돌아가.”말이 끝나자 재빨리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빨리 좀 가줘요.”...정은은 동건이 보낸 명함을 받고 클릭한 다음 친구 추가 신청을 보냈다.저
왕미자가 몸을 돌리자, 연희는 바로 미소를 지었다.“그럼 이모님이 수고하세요. 난 졸려서 먼저 방으로 돌아가 자야겠어요.”말이 끝나자 연희는 나풀나풀 주방을 떠났다.왕미자는 영문을 몰랐다.‘이게 무슨 일이래? 전에는 자기가 해장국 가져다주겠다고 난리를 피우지 않았어? 왜 갑자기 성격이 바뀐 거야?’왕미자는 해장국을 반쯤 그릇에 부은 다음 쟁반에 놓고 안방으로 향했다.도겸은 오늘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저녁을 먹지 않아 위가 또 은근히 아프기 시작했다.마침 왕미자가 뜨거운 해장국을 들고 올라오자, 그는 거절하지 않고 단숨에 다 마셨다.왕미자는 빈 그릇과 쟁반을 가지고 방에서 물러났고, 또 가볍게 문을 닫아주었다.도겸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하면서 위의 통증이 점차 사라지기를 기다렸다.얼마나 지났는지, 그는 위가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지만 몸은 갈수록 뜨거워졌다.에어컨 온도를 낮추려고 힐 때, 누군가 갑자기 안방으로 들어왔다.연희는 맨발로 침대 앞으로 걸어왔다. 이미 취한 채로 침대에 쓰러진 남자를 보며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도겸은 더워서인지 단추 두 개를 풀었고, 얼굴에 새빨간 홍조가 나타났다.침대 가장자리에 늘어진 팔은 튼튼하고 힘이 있으며 손은 뼈마디가 분명했다. 특히 오늘 짙은 색의 셔츠를 입어 무척 도도해 보였고,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연희는 그들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관계를 가졌을 때를 떠올렸다.그때의 도겸도 이렇게 곤드레만드레 취했고, 입으로는 줄곧 정은의 이름을 불렀다.살짝 열린 셔츠를 통해, 연희는 남자의 볼록한 목젖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움직이더니 얼른 도겸의 몸에 달라붙었다.손가락으로 남자의 가슴을 가볍게 매만지며 은근히 아래를 향했다.순간, 도겸은 몸을 돌리더니 그녀를 등졌다.연희는 놀라서 벌떡 일어섰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고 있는 잠옷을 보았다. ‘그땐 소정은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도겸 씨의 욕망을 불러일으켰었지.’연희는 눈알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
“이 시간이 됐으니까 그러지. 우리를 보러 와도 아침에 찾아왔을 텐데. 너답지 않게 왜 그래.”현빈은 웃으며 이춘재를 부축하고 거실로 향했다.“제가 오고 싶어서 그래요. 두 분이 무슨 손님이에요? 약속을 잡고 만나뵐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하하하, 넌 아주 바쁜 사람이니 시간을 좀 낼 수 있다는 게 쉽지 않아.”“할아버지, 지금 저를 헐뜯으시는 거예요, 칭찬하시는 거예요?”이춘재는 웃음을 터뜨렸다.현빈은 소파에 앉자, 엉덩이 아래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책 한 권이었다.표지에는 뜻밖에도 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아, 이거 제가 차에 둔 책 아니에요?” 현빈은 한눈에 이 책이 자신의 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책 모서리를 접는 것에 익숙해져서 접힌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맞아! 지난번에 네 차에서 내릴 때 가져갔는데,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어!”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읽어 보셨어요?”이춘재는 고개를 끄덕였다.“절반 봤지.”“그래서 제가 들어오기 전에 여기 앉으셔서 이 책을 읽고 계셨어요?”이춘재는 아직 벗지 않은 돋보기를 밀었다.“왜? 안 돼?”“눈이 아프지도 않으세요?”이때,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봉수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도 그렇게 말했다! 나처럼 다음 독서앱을 다운로드해서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 스스로 볼 필요도 없잖아. 한 글자 한 글자 안경을 쓰고 보는 것보다 더 편리하지 않니?”이번에 현빈은 정말 깜짝 놀랐다.“할머니도 이 책을 읽어... 아니다, 이 책을 듣고 계셨어요?”봉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현빈아, 이리 와, 내가 말하는데,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잘 썼어!”“재밌어요?”“그럼. 제1화와 2화에서 쓴 묘사 좀 들어봐. 글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니깐.”현빈이 이어폰 하나를 받아 귀에 꼈다.[임수천은 온몸이 흠뻑 젖었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때, 그는 갑자기 앞에 별장 한 채가 있는
“그래요.” 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 먼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언니! 저도 데리고 같이 가요! 저도 같은 방향이잖아요!”서준은 그녀를 잡아당겼다.“넌 왜 눈치 없이 끼어드는 건데? 이따가 내가 차로 데려다 줄게.”“그, 그럴 필요가 있을까?” 방금 민지는 너무 심하게 서준을 비웃었기에, 이따가 이 깍쟁이가 복수를 할까 봐 두려웠다.“당연하지.”현빈은 재석과 정은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좁고 긴 눈을 가늘게 떴다.차에 탈 때, 정은은 목도리를 벗었고 재석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정은이 뜻밖에도 정말 그에게 건네주었다니.임정식은 다가와서 현빈의 어깨를 두드렸다.“이 상태로 운전하려고? 방금 너 술 많이 마셨잖아. 법을 위반하는 일은 하지 말자...”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조 교수님은요? 술 안 마셨어요?”“아니.” 임정식은 손을 흔들었다.“그렇게 확신하세요?”“바로 내 옆에 앉았으니까. 그럼 나도 당연히 재석이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그런데 왜 옆에 술잔이 놓여 있었는데요? 안에 소주까지 따랐잖아요?”“소주? 난 재석이 사이다 따르는 것을 보았는데.”‘그래, 조 교수! 또 날 당하게 만들다니.’곧 기사가 차를 몰고 왔고, 현빈은 차를 타고 떠났다.창밖의 경치를 보면서 현빈은 턱을 매만졌다.‘정은이 집 근처에 집 하나 사야 되나? 다음에 또 이런 상황 생기면, 나도 조 교수처럼 핑계를 댈 수 있잖아!’그러나 이 생각도 잠시, 현빈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토끼가 무서워해. 겁을 먹으면 숨을 것이고, 다시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할 거야. 강도겸이 바로 그 예지. 그러니 난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돼. 하지만... 조재석 그 자식 정말!’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별이 밤하늘을 꾸미기 시작했고, 귓가에서 울리던 도시 소음도 조금 사라진 것 같다.평일의 일정에 따라 기사는 현빈을 본가로 데려다 주어야 했다. 그러나 현빈은 갑자기
그리고 10살 된 서준의 사진이었다.“이렇게 뚱뚱했어?!” 정은은 놀라서 외쳤다.사진 속의 서준은 어릴 때처럼 귀엽지 않았는데, 마치 작은 곰처럼 뚱뚱해졌다.그렇다, 뚱뚱할 뿐만 아니라 엄청 까맸다.눈은 볼살에 의해 실눈으로 변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마침 여름이었는데, 상반신은 셔츠, 하반신은 반바지를 입고 있어 웅장하고 건장한 사지를 드러냈다.정은은 기침을 하며 엄숙하게 현빈을 제지했다.“보지 마요. 남의 프라이버시를 훔쳐보는 것은 좋지 않잖아요.”“너도 봤잖아?”“난 고의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지금 더 이상 보지 않았어요.”“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여기에 놓은 거 아니야? 아! 이 뚱뚱한 아이가 서준이었구나?! 어쩜 이렇게 부풀어 오른 풍선과 똑같니?”“정말 못됐어요.”현빈은 맞받아쳤다.“너도 마찬가지야. 지금 왜 활짝 웃고 있는데?” 정은은 재빨리 입술을 오므렸지만 여전히 참지 못했다.평소에 그렇게 관리를 잘하고, 탄산음료를 일절 건드리지 않는 서준이 뜻밖에도 이런 쓰라린 기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정은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어쩐지 몸매 관리에 그렇게 열중하더라니. 어릴 적 뚱보로 고생을 한 적이 있었구나.’현빈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괴로워하는 정은을 보고,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이때, 재석의 담담한 목소리가 두 사람 뒤에서 울려 퍼졌다.“무슨 일이 그렇게 웃겨요?” 정은은 웃음을 뚝 그쳤다.“선, 선배님이 여기 왜 왔어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재석을 보았다.재석은 담담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다, 정은이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무슨 재밌는 일이길래 그래? 나에게 말해줄 수 있어?”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현빈이 먼저 말했다.“죄송하지만 이건 우리 사이의 비밀이에요.”그러나 재석은 아예 현빈을 보지 않았고, 시선은 오직 정은에게 떨어졌다.“그래?”정은은 즉시 눈을 부라렸다.“비밀은 무슨. 말도 참 이상하게 하네요... 선배님, 이것 좀 봐요.”재석은 여유
현빈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정식 형, 취하신 거 아니에요? 지금 아직 학생이니, 학업에 몰두해야지, 이런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면 안 되죠. 그러다 소문이 나면 누구에게도 안 좋잖아요.”임정식은 잠시 멈칫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 좀 봐, 술을 좀 마셨다고 말이 많아졌군... 맞아, 학생은 공부에 전념해야지. 다른 일들은 나중에 얘기하자!”말을 마치고 다른 손님과 인사하러 갔다.재석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방금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요.”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왜요? 교수님께서 무슨 의견이라도 있으세요?”“이 세상에 자신의 아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부모님은 없을 거예요. 심 대표님은 당연히 거리낌이 없겠지만, 다음에 입을 열기 전에 남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부터 먼저 생각해봐요.”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정은이를 위해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아니라고 할 건가요?” 재석은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직시했다.“심 대표님은 똑똑한 사람이니, 내가 굳이 안 밝혀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은데.”“세심하고 다정한 척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교수님만 정은을 관심하는 것이 아니니까. 전 교수님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좋아요, 신경 쓰는 이상 정은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마요.”“위험이라고요?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굳이 이렇게 겁을 먹으실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은 말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내일은요? 제멋대로 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남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아요.”“정식 형은 마음이 넓어서 이대로 넘어가겠지만, 다른 가문이나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들었다면 정은이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현빈은 표정이 굳어지자 눈빛이 어두워졌다.“정말 정은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면을 고려해야죠.”말을 마치고 재석은 성큼성큼 떠났다....케이크를 먹은 정은은 손에 크림이 묻었다. 이미 휴지로 닦았지만 여전히 끈적끈적했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이렇게 컸는데도 부부의 감정은 여전히 달콤했다.임정식은 너무 아파서 가볍게 기침을 하며 표정을 굳혔다.“내 말은, 아들도 컸으니 사랑을 처음 깨닫는 것도 정상이잖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소녀와 소년이 어딨겠어?”장인화는 정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 아이 정말 반듯하고 곱게 생겼네. 문제는 기질이 아주 좋다는 거야! 듣자니 이번에 스스로 실험실을 짓자고 아이디어를 낸 아이가 바로 이 아이라면서? 정말 리더십이 강한 아이군!”보면 볼수록 흐뭇한 장인화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서비대학교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이 아이는 오히려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잖아. 결국 뜻밖에도 해냈다니! 우리 서준이가 이렇게 훌륭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면 나는 절대로 반대하지 않을 거야.”임정식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사실 지금의 임씨 가문에 있어, 그들은 이미 극치의 성공을 거뒀기에 정치적인 혼인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며느리가 정은이라면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임정식은 즉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나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우리 집사람 말 들어야지.”재석과 현빈은 바로 이 두 부부 옆에 서 있었다.‘우리가 보이지도 않나 봐?’재석은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고, 현빈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누군가 어깨를 부딪히자 재석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임정식은 손을 비비며 물었다.“재석아, 정은이 네 학생 맞지?”“에.”“방금 지켜보니까 두 사람 사이가 괜찮은 것 같은데?”“정식 형,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헤헤... 그냥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 정은이의 부모님은 J시 사람인가? 넌 알고 있어? 우리와 만나게 해줄 순 없을까? 그냥 친구 사귀는 셈으로 말이야.”“몰라요.”“그렇구나...”임정식은 실망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그럼 넌 정은이 이 아이가 어떻다고 생각하니? 서준이와 꽤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내 아들은 잘생겼지, 정은은 똑똑하고 예
“그건 아니죠.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심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조상은 친척 관계였으니, 촌수를 따지자면 서준이는 심 대표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한 것 같은데?”이것이 바로 현빈이 상인으로서 임씨 가문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양가는 친척이었다.재석은 담담하게 웃었다.“서준이의 동창들도 자연히 따라서 삼촌이라 불러야지.”이 말이 나오자, 현빈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심씨와 임씨 가문은 확실히 친척이지만, 그것은 이미 어느 세대의 일인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지금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석은 기어코 촌수를 따지며 호칭까지 바꾸었다.정은은 눈동자를 굴리며 바로 얌전하게 외쳤다.“삼촌, 안녕하세요!” 말을 마치자, 정은도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정말 열받네! 누가 정은이의 삼촌이 되고 싶다는 거지?! 젠장, 심 대표님도 삼촌보다 듣기 좋잖아! 조재석, 우리 두고 보자!’...밥을 먹은 다음, 음식이 다 내려갔다.이윽고 네모난 케이크가 올라왔다.임정식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었다.“서준아, 생일축하한다. 네가 이 케이크처럼 시종 모서리가 뚜렷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교활해지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계속 정직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감사합니다, 아버지.”장인화는 임정식 옆에 서 있었는데, 그가 말을 마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들아, 빨리 소원을 빌어야지!”예년에 서준은 집에서 생일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르지 않았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친지들이 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과 마음이 잘 맞는 두 친구까지 있으니, 서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소원 빌기도 이제는 적응이 잘 됐다.서준은 눈을 감고 잠시 사색에 잠겼고, 과장하게 두 손을 모으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눈빛은 매우 확고했다.그는 웃으며 촛불을 불어 껐다.민지가 앞장서서 박수를 쳤다.다른
‘왜 이렇게 춥지?’재석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의외였다.조씨 가문의 어르신과 서준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사이가 엄청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후에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하나는 장사를 했고, 하나는 정치를 배웠다.그리고 모두 각자의 영역 내에서 성공을 이루었다.그동안 조씨와 임씨 두 집안은 줄곧 왕래가 있었지만, 임씨 집안은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자주 모이지 않았다.이번에 임씨네 초대장을 받은 소기봉은 이를 매우 중시해서 직접 오려고 했는데, 그저께 알레르기성 천식이 재발하여 입원했다.어쩔 수 없이 큰아들인 소지언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언은 상인으로서 최근 몇년간 임씨 가문과 친분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은 또 상인과 교제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언이 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그렇게 이 일은 조지훈에게 떨어졌다.그는 변호사였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장 적합했다.그러나 임정식은 검사 쪽의 지도자로서, 변호사인 지훈은 상인인 지언보다 신분이 더욱 예민했다.결국 재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마침 그는 임정식과 또 친분이 있어 재석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지언은 이 일을 제기할 때 재석이 거절할까 봐 걱정했다.그의 동생은 각종 학술 세미나를 제외하고 이런 접대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며, 가장 큰 취미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재석에게 이런 연회를 참석하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순조로웠다.“동, 동의한 거야?”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형, 입 좀 닫아요. 침이 다 흘러나오겠다.”“앗!” 지언은 즉시 입을 닫았지만, 여전히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리고 곧바로 거실로 나와 강서원과 얘기를 했다.“어머니, 재석이 많이 이상해요.”강서원은 영문을 몰랐다.“무당을 좀 찾아서 재석이 봐달라고 할까요?”“뭘 봐?”“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그래요. 정말이에요.”“어?”강서원이 은근슬쩍 물
정은은 평온하게 시선을 거두며 음식에 전념했다.임씨 가문이 손님을 접대하는데 만든 음식은 자연히 아주 맛있었다. 오늘 특별히 미슐랭 등급의 셰프를 청했는데, 정교하고 향기로우며 맛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중간에 간단한 디저트 하나조차도 유명한 휘낭시에도 있었다.이번 식사는 민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행복이었다.“정은 언니, 이거 맛있어요...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빨리 먹어요.”그녀는 먹으면서 정은을 챙겼다.정은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응, 먹고 있어.”두 사람이 음식을 즐기고 있을 때, 서준은 갑자기 일어섰다.“정은 누나, 민지야, 잠깐 나 좀 따라와.”두 사람은 영문을 몰랐다.민지가 물었다.“뭐 하려고?”그녀는 지금 밥을 계속 먹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서준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메인 테이블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하자고.”“인사 안 하면 안 돼?”그들은 정은과 민지를 몰랐으니, 인사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차라리 밥이나 먹는 게 더 낫지!’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니, 서준이 직접 초대한 데다가 또 만나러 갈 사람은 어른들이었으니 민지도 거절하기 어려웠다.만약 단지 친분이 별로 없는 일반 친구라면, 서준은 주동적으로 자기 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두 사람은 컵을 들고 그와 함께 메인 테이블로 갔다.병풍을 돌자, 비록 정은이 이미 예상을 했지만, 재석을 본 순간 여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서준의 할아버지는 중간에 앉았고, 좌우 양쪽에는 할머니와 임정식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재석은 임정식 옆에 앉았다.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현빈도 있었단 것이었는데, 지금 재석 옆에 앉았다.“서준아.” 노부인은 자신의 손자가 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어머, 이 두 아이는 네 친구지?”정은과 민지는 동시에 인사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그래, 안녕하고 말고. 정말 착하구나.”임정식은 얼른 일어서더니 웃으면서 서준의 곁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