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숙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돌렸다.“별일 없으면 됐어. 그럼 약을 먹어야 하는 건가?”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임산부는 멀쩡하시니 약을 먹을 필요 없어요. 얼른 데리고 돌아가서 잘 휴양하면 돼요.”서영숙이 입을 삐죽거렸다.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연희가 일부러 이런 소란을 피웠단 것을.병상에 누워 있던 연희는 마음이 좀 찔렸다.그녀는 그때 화가 나서 배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깜짝 놀랐는데, 병원에 오니 아무 일도 없을 줄이야.서영숙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내 손자를 봐서라도 참자.병실에 들어가자 서영숙은 참지 못하고 경고를 했다.“제발 좀 가만히 있어! 이런 소란을 피우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너도 그 결과를 잘 알고 있을 텐데!”연희는 목을 움츠리더니 감히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다.“알았어요.”서영숙은 그녀를 노려본 다음 씩씩거리며 나갔다....실험실에서 한동안 바쁘게 일한 정은은 갑자기 오미선의 전화를 받았다.[다음 주에 짬을 내서 우리 집으로 와. 너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거든.]정은은 오미선의 목소리가 전처럼 정정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의심했다.‘이번 주에 시간이 있는데, 왜 꼭 다음 주에 오라고 부르신 거지?’“좋아요.” 정은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오후에 몰래 지하철을 타고 찾아갔다.지난번에 화초를 가꾸러 왔을 때, 오미선은 정은에게 집 열쇠를 주었는데, 갈 때 돌려주지 못하게 했다. 앞으로 오고 싶은 대로 오라고 하면서.마침 그 열쇠도 이제 쓸모가 생겼다.문을 열자마자, 옅은 한약 냄새가 풍겨왔다. 정은은 신발을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말을 하기도 전에 늘 교수님 집에서 밥을 해주던 가정부가 입을 열었다.“정은 아가씨? 여긴 왜 오셨어요? 교수님께서 다음 주에야 온다고 하셨는데?”“누가 왔어요?”안에 있던 사람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왔다.정은은 이 상황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래서 이번 주에 오지 못하게 하신
정은은 코끝이 찡했지만 오미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오미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영원히 과학 연구였다.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과학 연구의 미래에 더욱 신경 썼다.어쩌면 평생 연구를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전진하는 과정에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그게 무슨 대수라고?오미선은 과학 연구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후배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게 비추고 싶었다.“왜 또 울어?”오미선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이런 정은만 보면 마음이 아팠다.정은은 코를 훌쩍거렸다.“누가 울었다는 거예요? 어차피 전 울지 않았어요.”“그래, 넌 안 울었어.” 오미선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제가 안마해드릴게요...”오미선의 고집과 결심을 이해한 정은은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다음, 정은은 종아리를 가볍게 마사지해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오미선은 다리가 훨씬 편안해졌다.“류머티즘이 심해진 것도 요 며칠 변덕스러운 날씨와 관련이 있을 거예요. 저는 이미 발을 담그는 약을 샀으니, 이틀 후에 택배가 올 거예요. 매일 밤 발을 담그면 많이 편해질 거고요.”“알았어.”오미선은 웃으며 책상을 가리켰다.“자, 그 전화번호 가져가.”“네?”“성달수 기억나?”“성 교수님이요?!”“응, 바로 그 영감이야. 네가 내 대학원생으로 됐다는 것을 이미 안 모양이야. 내가 미리 전화를 해서 알리지 않았다고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지금 이미 삐졌어. 난 그 영감을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네가 전화로 위로해줘. 그 영감은 네 말만 들었잖아.”‘성 교수님은 성격이 조금... 내가 무슨 능력으로 위로할 수 있겠어?’생물정보학은 컴퓨터를 도구로 삼아 생물학 빅데이터를 연구하기 때문에, 정보학 방면의 지식에 대한 요구가 비교적 높았다.심지어 프로그래밍까지 배워야 했다.이것은 또한 도겸이 집에서 쫓겨나 두 사람이 지하실에서 지내며 고생을 할 때, 정은이 프로그래밍으로 도겸을 위해 창업할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대학에
정은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눈을 뜨니, 시간은 이미 8시가 되었다. 정은은 재빨리 씻은 다음 곧장 실험실로 달려갔다.재석은 그녀가 오늘 30분 지각한 데다가 안색도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어제 잠을 잘 못 잤어?”정은은 고개를 저었다.“잠을 잘 못 잔 게 아니라 밤을 새운 거예요.”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정은은 얼굴을 두드리며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이제 일해야지!’점심에 밥을 다 먹은 정은은 미친 듯이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재석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너무 빡세게 일하지 말고, 휴게실에 들어가서 좀 자지 그래?”정은은 확실히 졸려서 거절하지 않았다.재석은 계속 일했는데, 두 시간 후, 휴게실을 지나갈 때, 정은이 아직 안에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먼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정은아? 너 괜찮니? 들어갈게.”그는 정은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가볍게 문을 밀었다. 소녀는 한 곳에 몸을 웅크리며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보아하니 너무 깊이 잠든 것 같았다.재석은 한숨을 돌렸고, 다음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진짜 고양이 같네. 조용하고 예뻐.’...이틀 동안 병원에 입원한 연희는 도저히 못 있겠다며 퇴원하겠다고 떼를 썼다.두 가정부도 결정을 내릴 수 없어서 도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쪽은 직접 전화를 끊었다.그래서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서영숙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서영숙은 전화로 연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아이를 임신했다고 제멋대로 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계속 네 몸을 들볶고 싶으면 그렇게 해. 만약 네 뱃속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절대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연희는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뿐, 감히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결국 서영숙은 그녀가 퇴원하는 것을 동의했고, 다시 경고했다.[다음은 없어. 아이 잘 챙기고!]연희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집
도겸은 머리가 아팠고, 따라서 점차 짜증이 났다. 그는 무음모드를 켠 다음, 핸드폰을 책상 위에 엎어놓으며 다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계속해.”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더니 감히 도겸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도겸은 핸드폰을 힐끗 보았는데, 화가 나서 되려 웃음이 나왔다.연희는 그가 준 가족카드를 사용했기에, 무엇을 사든 그 기록은 도겸의 휴대폰으로 발송될 것이다.문자가 끊임없이 들어오자, 도겸은 이마에 핏줄이 나타났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할 때, 연희가 톡을 보냈다.[도겸 씨, 이거 모두 제가 산 건데, 예뻐요? 그리고 당신을 위해 넥타이와 외투까지 샀어요.]도겸은 확인한 다음 냉소를 지으며 연희의 번호를 차단했다.그는 미간을 비비며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도로에서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도겸은 또다시 정은을 떠올렸다.‘요즘 자꾸 정은이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심지어 꿈에도 전부 정은이었어.’전에 도겸도 정은에 가족카드를 주었는데, 기본적인 생활지출과 서영숙에게 선물을 사는 것을 제외하고, 정은은 그녀 자신의 돈을 썼다.도겸은 그녀가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기에 줄곧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벌 수 있을지는 잘 몰랐다.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정은이는 명품을 거의 사지 않았지.’서랍 안의 주얼리며 명품 가방들도 다 도겸이 정은을 위해 산 것이었다. 필요한 상황을 제외하면, 정은은 거의 그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헤어진 후, 그 물건들도 자연히 별장에 남겨졌다. 조금의 미련도 없는 것처럼.마치 쓰레기를 버리듯이 도겸의 집에 버렸다.그러나 연희의 존재는 마치 저주와도 같았다. 시시각각 도겸에게 그가 잃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완벽한 존재이고, 그에 비하면 연희는 얼마나 추악하고 역겨운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백화점에서.연희는 남자가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또 다른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문자가 전송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날 차
그리고 화가 난 채로 침실로 돌아오더니 쿵 하고 문을 닫았다.이튿날 아침, 왕미자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연희가 위층에서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이봐요, 빨리 나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왕미자는 어이가 없었다. 지난번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그녀는 어찌 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이것도 다 경험이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기사님, 그 사람이 또 배가 아프다네요.”[알았어요, 지금 바로 차 몰고 갈게요.]왕미자는 또 서영숙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모님, 그게 말입니다...”그녀는 이 모든 일에 습관되어 순조롭게 보고까지 마쳤다.병원에서.서영숙은 차가운 표정으로 병실 밖의 복도에 서 있었다.의사는 여전히 어제와 같은 말을 했다.“큰 일은 없으니 많이 휴양하시면 됩니다.”서영숙은 참다못해 병실로 들어가 욕설을 퍼부었다.“하다하다 이젠 콩알 만한 일로 병원으로 달려오다니, 넌 여기가 네 집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머리가 없는 거야 뭐야? 아마도 너처럼 이렇게 사람 들볶는 임산부가 없을 거다. 아이를 챙기는 일도 잘 하지 못하다니, 넌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그녀는 전에 정은이 아직 도겸의 곁에 있을 때를 떠올렸다. ‘소정은 그 아이는 매일 우리 도겸이를 잘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종래로 날 귀찮게 하지 않았지. 무슨 일이 생겨도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서 해결했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겨도 떠들지 않고 나와 잘 상의했잖아.’다시 병상에 있는 연희를 보면 서영숙은 그저 짜증이 났다.‘어쩜 매미보다도 더 시끄럽고, 바퀴벌레보다 더 귀찮은 건지! 조그마한 일로 온 집안사람을 들볶다니. 우리가 자기 종이야 뭐야? 누가 그럴 여유가 있다고. 정말 자기를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퉤, 재수없는 것!’연희는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리며 서영숙의 말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날 오후 퇴원한 뒤, 연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또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가겠다고
‘도겸이도 그 아이를 원하지 않잖아. 게다가...’강구염도 아직 이 일을 몰랐는데, 서영숙은 감히 그에게 알리지 못했다.그녀는 강구염이 절대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던 것이다.‘이 두 부자는 마음이 정말 독하지.’지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연희에게 아이를 지우하고 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그래서 서영숙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참, 임 여사의 며느리가 임신했다면서요? 그것도 쌍둥이라고 들었는데.”“그래요, 나도 이제야 알았어요. 우리 아들과 며느리가 어찌나 신중한지, 3개월이 지나서 태아의 상태가 안정되어서야 말한 거 있죠? 뭐 나한테 서프라이즈를 주고 싶었다나? 나도 확실히 깜짝 놀랐죠, 하하...”“정말 축하해요! 우리 은호는 여자친구조차 없는데. 나도 내가 언제 손자를 안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참, 서 여사의 아들은 우리 은호와 동갑이지 않았어요? 이미 여자친구 사귀었나요?”서영숙은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하루 종일 자신의 회사에서 바쁘게 돌아치고 있어요. 그냥 돌아와서 편안하게 가업을 계승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겸손하셔라, 도겸이의 회사가 이미 상장했다고 들었는데!”서영숙은 의기양양하게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여전히 겸손하게 말했다.“에이, 그냥 재미 삼아 그러는 것뿐이에요.”“아이고, 우리 아들은 창업할 마음이 없는 것 같네요. 지금 며느리가 임신했다고 이미 흡족하고 있으니 더욱 아무런 동력도 없잖아요. 나야 아들에게 기대하지 못하겠지만, 이제 며느리 뱃속에 있는 그 두 손자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자기 아버지보다 더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뭘 기대해요? 아직 태아일 뿐이잖아요, 하하...”이 말이 나오자, 모두들 웃음을 금치 못했다.“이건 모르죠? 외국에서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지식을 흡수한다는 연구가 나왔어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남에게 뒤처지면 안 되죠! 어차피 난 이미 우리 며느리에게 국내 최고의 태교 수업을 신청했어요. 며느리에게나 아이에게
연희는 귤 한 조각을 입에 넣더니, 서영숙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거절했다.“아주머니, 저 몸이 불편하단 말이에요. 아시잖아요, 제가 요즘 병원에 자주 입원한 거. 그러니 태교 수업에 갈 수가 없어요...”지난번에 티파티에서 받은 억울함과 비난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연희는 수업을 모임으로 삼아 꽃을 꽂고 차나 맛보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거부감을 느꼈다.서영숙은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갔다.‘이 계집애 지금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낸 거야? 그딴 걸 변명이라고!’[상의할 여지는 없어. 넌 반드시 가야 해!]서영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쪽에서 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연희가 전화를 끊었던 것이다!서영숙은 믿을 수 없단 듯이 핸드폰을 보았다.‘이 천한 것이! 이젠 감히 내 전화를 끊어? 오냐오냐 해줬더니 정말 겁도 없구나. 아이를 낳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날뛰게 굴다. 정말 아들이라도 낳았다면 더 깐족댈 거 아니야?!’여기까지 생각하자 서영숙은 다시 집사를 불렀다.“그 수업표를 들고 도겸이 별장에 한 번 다녀와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전해줘요. 가고 싶지 않아도 괜찮지만, 당장 내 아들의 별장에서 꺼져야 한다고. 우리 가문은 절대로 그 뱃속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저녁 9시, 집사가 돌아왔다.“그 아이 뭐라고 했어요?”“서연희 아가씨께서는 제시간에 수업하러 갈 거라고 하셨습니다.”“흥! 그래도 눈치 빠른 셈이군!”...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연희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그녀는 졸린 두 눈을 뜨며 전화를 받았고, 초조하게 말했다.“누구세요?”[서연희 씨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진별 태교의 선생님이에요. 어젯밤 조교가 수업 시간표를 이미 서연희 씨에게 보냈을 텐데. 첫 수업은 디저트 만들기고, 8시에 시작할 예정이에요. 지금 이미 7시 25분이니, 35분 안으로 달려오실 수 있나요?]상대방은 직접 자아소개를 했다. 아마 연희가 아직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또 한 마디 덧붙였다.[강 사모님께서 말
이렇게 되면 연희는 태교에 전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겸에게 더욱 신경을 쓸 수 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곧 재벌 집안 며느리로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대학을 다니든 안 다니든 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그래서 월요일에 연희는 바로 학교에 가서 자퇴 신청을 했다.그녀는 아프다는 이유로 자퇴를 했으니 심사 절차는 보통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학교에 온 이상, 기숙사에 가서 짐이나 정리하자.’월요일 오후에 수업이 없었기에, 연희가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룸메이트 모두 안에 있었다.연희는 이사 나간 지 오래였다. 비록 평소에 쓰는 물건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룸메이트들은 갑자기 나타난 연희 때문에 깜짝 놀랐다.“연희야, 어쩐 일로 돌아온 거야? 네 남자친구 집에서 지내는 거 아니었어?”“무슨 중요한 물건이라도 깜박한 거야? 우리에게 문자 보냈으면 배달로 보내줬을 텐데.”연희는 입술을 구부리더니 턱을 살짝 들었다.“나 짐 싸러 왔어. 이미 자퇴하기로 결정했거든.”그녀는 오늘 샤넬의 신상 스웨터와 모직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외투는 버버리 클래식 트렌치코트였다. 그리고 손에는 서영숙이 선물로 준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있었다.화려한 옷차림 덕분에 귀티가 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행동거지마다 재벌 집 사모님의 기운이 물씬했다.아직 대학생인 룸메이트들은 또 어찌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겠는가. 그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장나미는 연희와 사이가 가장 좋았다. 연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좀 놀랐다.“자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야. 연희야, 넌 충동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면 안 돼.”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자퇴는 휴학과 다르잖아. 학교에서 비준하면 학적을 보류할 수 없어. 만약 네가 앞으로 후회한다면...”“후회? 내가 뭘 후회해?” 연희는 콧방귀를 뀌었다.“이렇게 결정한 이상, 난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넌 이미 2년 넘게 공부를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
“이 시간이 됐으니까 그러지. 우리를 보러 와도 아침에 찾아왔을 텐데. 너답지 않게 왜 그래.”현빈은 웃으며 이춘재를 부축하고 거실로 향했다.“제가 오고 싶어서 그래요. 두 분이 무슨 손님이에요? 약속을 잡고 만나뵐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하하하, 넌 아주 바쁜 사람이니 시간을 좀 낼 수 있다는 게 쉽지 않아.”“할아버지, 지금 저를 헐뜯으시는 거예요, 칭찬하시는 거예요?”이춘재는 웃음을 터뜨렸다.현빈은 소파에 앉자, 엉덩이 아래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책 한 권이었다.표지에는 뜻밖에도 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아, 이거 제가 차에 둔 책 아니에요?” 현빈은 한눈에 이 책이 자신의 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책 모서리를 접는 것에 익숙해져서 접힌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맞아! 지난번에 네 차에서 내릴 때 가져갔는데,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어!”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읽어 보셨어요?”이춘재는 고개를 끄덕였다.“절반 봤지.”“그래서 제가 들어오기 전에 여기 앉으셔서 이 책을 읽고 계셨어요?”이춘재는 아직 벗지 않은 돋보기를 밀었다.“왜? 안 돼?”“눈이 아프지도 않으세요?”이때,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봉수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도 그렇게 말했다! 나처럼 다음 독서앱을 다운로드해서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 스스로 볼 필요도 없잖아. 한 글자 한 글자 안경을 쓰고 보는 것보다 더 편리하지 않니?”이번에 현빈은 정말 깜짝 놀랐다.“할머니도 이 책을 읽어... 아니다, 이 책을 듣고 계셨어요?”봉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현빈아, 이리 와, 내가 말하는데,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잘 썼어!”“재밌어요?”“그럼. 제1화와 2화에서 쓴 묘사 좀 들어봐. 글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니깐.”현빈이 이어폰 하나를 받아 귀에 꼈다.[임수천은 온몸이 흠뻑 젖었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때, 그는 갑자기 앞에 별장 한 채가 있는
“그래요.” 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 먼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언니! 저도 데리고 같이 가요! 저도 같은 방향이잖아요!”서준은 그녀를 잡아당겼다.“넌 왜 눈치 없이 끼어드는 건데? 이따가 내가 차로 데려다 줄게.”“그, 그럴 필요가 있을까?” 방금 민지는 너무 심하게 서준을 비웃었기에, 이따가 이 깍쟁이가 복수를 할까 봐 두려웠다.“당연하지.”현빈은 재석과 정은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좁고 긴 눈을 가늘게 떴다.차에 탈 때, 정은은 목도리를 벗었고 재석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정은이 뜻밖에도 정말 그에게 건네주었다니.임정식은 다가와서 현빈의 어깨를 두드렸다.“이 상태로 운전하려고? 방금 너 술 많이 마셨잖아. 법을 위반하는 일은 하지 말자...”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조 교수님은요? 술 안 마셨어요?”“아니.” 임정식은 손을 흔들었다.“그렇게 확신하세요?”“바로 내 옆에 앉았으니까. 그럼 나도 당연히 재석이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그런데 왜 옆에 술잔이 놓여 있었는데요? 안에 소주까지 따랐잖아요?”“소주? 난 재석이 사이다 따르는 것을 보았는데.”‘그래, 조 교수! 또 날 당하게 만들다니.’곧 기사가 차를 몰고 왔고, 현빈은 차를 타고 떠났다.창밖의 경치를 보면서 현빈은 턱을 매만졌다.‘정은이 집 근처에 집 하나 사야 되나? 다음에 또 이런 상황 생기면, 나도 조 교수처럼 핑계를 댈 수 있잖아!’그러나 이 생각도 잠시, 현빈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토끼가 무서워해. 겁을 먹으면 숨을 것이고, 다시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할 거야. 강도겸이 바로 그 예지. 그러니 난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돼. 하지만... 조재석 그 자식 정말!’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별이 밤하늘을 꾸미기 시작했고, 귓가에서 울리던 도시 소음도 조금 사라진 것 같다.평일의 일정에 따라 기사는 현빈을 본가로 데려다 주어야 했다. 그러나 현빈은 갑자기
그리고 10살 된 서준의 사진이었다.“이렇게 뚱뚱했어?!” 정은은 놀라서 외쳤다.사진 속의 서준은 어릴 때처럼 귀엽지 않았는데, 마치 작은 곰처럼 뚱뚱해졌다.그렇다, 뚱뚱할 뿐만 아니라 엄청 까맸다.눈은 볼살에 의해 실눈으로 변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마침 여름이었는데, 상반신은 셔츠, 하반신은 반바지를 입고 있어 웅장하고 건장한 사지를 드러냈다.정은은 기침을 하며 엄숙하게 현빈을 제지했다.“보지 마요. 남의 프라이버시를 훔쳐보는 것은 좋지 않잖아요.”“너도 봤잖아?”“난 고의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지금 더 이상 보지 않았어요.”“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여기에 놓은 거 아니야? 아! 이 뚱뚱한 아이가 서준이었구나?! 어쩜 이렇게 부풀어 오른 풍선과 똑같니?”“정말 못됐어요.”현빈은 맞받아쳤다.“너도 마찬가지야. 지금 왜 활짝 웃고 있는데?” 정은은 재빨리 입술을 오므렸지만 여전히 참지 못했다.평소에 그렇게 관리를 잘하고, 탄산음료를 일절 건드리지 않는 서준이 뜻밖에도 이런 쓰라린 기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정은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어쩐지 몸매 관리에 그렇게 열중하더라니. 어릴 적 뚱보로 고생을 한 적이 있었구나.’현빈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괴로워하는 정은을 보고,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이때, 재석의 담담한 목소리가 두 사람 뒤에서 울려 퍼졌다.“무슨 일이 그렇게 웃겨요?” 정은은 웃음을 뚝 그쳤다.“선, 선배님이 여기 왜 왔어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재석을 보았다.재석은 담담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다, 정은이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무슨 재밌는 일이길래 그래? 나에게 말해줄 수 있어?”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현빈이 먼저 말했다.“죄송하지만 이건 우리 사이의 비밀이에요.”그러나 재석은 아예 현빈을 보지 않았고, 시선은 오직 정은에게 떨어졌다.“그래?”정은은 즉시 눈을 부라렸다.“비밀은 무슨. 말도 참 이상하게 하네요... 선배님, 이것 좀 봐요.”재석은 여유
현빈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정식 형, 취하신 거 아니에요? 지금 아직 학생이니, 학업에 몰두해야지, 이런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면 안 되죠. 그러다 소문이 나면 누구에게도 안 좋잖아요.”임정식은 잠시 멈칫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 좀 봐, 술을 좀 마셨다고 말이 많아졌군... 맞아, 학생은 공부에 전념해야지. 다른 일들은 나중에 얘기하자!”말을 마치고 다른 손님과 인사하러 갔다.재석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방금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요.”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왜요? 교수님께서 무슨 의견이라도 있으세요?”“이 세상에 자신의 아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부모님은 없을 거예요. 심 대표님은 당연히 거리낌이 없겠지만, 다음에 입을 열기 전에 남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부터 먼저 생각해봐요.”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정은이를 위해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아니라고 할 건가요?” 재석은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직시했다.“심 대표님은 똑똑한 사람이니, 내가 굳이 안 밝혀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은데.”“세심하고 다정한 척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교수님만 정은을 관심하는 것이 아니니까. 전 교수님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좋아요, 신경 쓰는 이상 정은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마요.”“위험이라고요?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굳이 이렇게 겁을 먹으실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은 말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내일은요? 제멋대로 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남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아요.”“정식 형은 마음이 넓어서 이대로 넘어가겠지만, 다른 가문이나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들었다면 정은이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현빈은 표정이 굳어지자 눈빛이 어두워졌다.“정말 정은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면을 고려해야죠.”말을 마치고 재석은 성큼성큼 떠났다....케이크를 먹은 정은은 손에 크림이 묻었다. 이미 휴지로 닦았지만 여전히 끈적끈적했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이렇게 컸는데도 부부의 감정은 여전히 달콤했다.임정식은 너무 아파서 가볍게 기침을 하며 표정을 굳혔다.“내 말은, 아들도 컸으니 사랑을 처음 깨닫는 것도 정상이잖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소녀와 소년이 어딨겠어?”장인화는 정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 아이 정말 반듯하고 곱게 생겼네. 문제는 기질이 아주 좋다는 거야! 듣자니 이번에 스스로 실험실을 짓자고 아이디어를 낸 아이가 바로 이 아이라면서? 정말 리더십이 강한 아이군!”보면 볼수록 흐뭇한 장인화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서비대학교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이 아이는 오히려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잖아. 결국 뜻밖에도 해냈다니! 우리 서준이가 이렇게 훌륭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면 나는 절대로 반대하지 않을 거야.”임정식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사실 지금의 임씨 가문에 있어, 그들은 이미 극치의 성공을 거뒀기에 정치적인 혼인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며느리가 정은이라면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임정식은 즉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나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우리 집사람 말 들어야지.”재석과 현빈은 바로 이 두 부부 옆에 서 있었다.‘우리가 보이지도 않나 봐?’재석은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고, 현빈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누군가 어깨를 부딪히자 재석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임정식은 손을 비비며 물었다.“재석아, 정은이 네 학생 맞지?”“에.”“방금 지켜보니까 두 사람 사이가 괜찮은 것 같은데?”“정식 형,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헤헤... 그냥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 정은이의 부모님은 J시 사람인가? 넌 알고 있어? 우리와 만나게 해줄 순 없을까? 그냥 친구 사귀는 셈으로 말이야.”“몰라요.”“그렇구나...”임정식은 실망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그럼 넌 정은이 이 아이가 어떻다고 생각하니? 서준이와 꽤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내 아들은 잘생겼지, 정은은 똑똑하고 예
“그건 아니죠.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심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조상은 친척 관계였으니, 촌수를 따지자면 서준이는 심 대표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한 것 같은데?”이것이 바로 현빈이 상인으로서 임씨 가문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양가는 친척이었다.재석은 담담하게 웃었다.“서준이의 동창들도 자연히 따라서 삼촌이라 불러야지.”이 말이 나오자, 현빈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심씨와 임씨 가문은 확실히 친척이지만, 그것은 이미 어느 세대의 일인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지금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석은 기어코 촌수를 따지며 호칭까지 바꾸었다.정은은 눈동자를 굴리며 바로 얌전하게 외쳤다.“삼촌, 안녕하세요!” 말을 마치자, 정은도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정말 열받네! 누가 정은이의 삼촌이 되고 싶다는 거지?! 젠장, 심 대표님도 삼촌보다 듣기 좋잖아! 조재석, 우리 두고 보자!’...밥을 먹은 다음, 음식이 다 내려갔다.이윽고 네모난 케이크가 올라왔다.임정식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었다.“서준아, 생일축하한다. 네가 이 케이크처럼 시종 모서리가 뚜렷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교활해지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계속 정직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감사합니다, 아버지.”장인화는 임정식 옆에 서 있었는데, 그가 말을 마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들아, 빨리 소원을 빌어야지!”예년에 서준은 집에서 생일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르지 않았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친지들이 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과 마음이 잘 맞는 두 친구까지 있으니, 서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소원 빌기도 이제는 적응이 잘 됐다.서준은 눈을 감고 잠시 사색에 잠겼고, 과장하게 두 손을 모으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눈빛은 매우 확고했다.그는 웃으며 촛불을 불어 껐다.민지가 앞장서서 박수를 쳤다.다른
‘왜 이렇게 춥지?’재석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의외였다.조씨 가문의 어르신과 서준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사이가 엄청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후에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하나는 장사를 했고, 하나는 정치를 배웠다.그리고 모두 각자의 영역 내에서 성공을 이루었다.그동안 조씨와 임씨 두 집안은 줄곧 왕래가 있었지만, 임씨 집안은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자주 모이지 않았다.이번에 임씨네 초대장을 받은 소기봉은 이를 매우 중시해서 직접 오려고 했는데, 그저께 알레르기성 천식이 재발하여 입원했다.어쩔 수 없이 큰아들인 소지언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언은 상인으로서 최근 몇년간 임씨 가문과 친분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은 또 상인과 교제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언이 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그렇게 이 일은 조지훈에게 떨어졌다.그는 변호사였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장 적합했다.그러나 임정식은 검사 쪽의 지도자로서, 변호사인 지훈은 상인인 지언보다 신분이 더욱 예민했다.결국 재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마침 그는 임정식과 또 친분이 있어 재석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지언은 이 일을 제기할 때 재석이 거절할까 봐 걱정했다.그의 동생은 각종 학술 세미나를 제외하고 이런 접대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며, 가장 큰 취미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재석에게 이런 연회를 참석하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순조로웠다.“동, 동의한 거야?”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형, 입 좀 닫아요. 침이 다 흘러나오겠다.”“앗!” 지언은 즉시 입을 닫았지만, 여전히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리고 곧바로 거실로 나와 강서원과 얘기를 했다.“어머니, 재석이 많이 이상해요.”강서원은 영문을 몰랐다.“무당을 좀 찾아서 재석이 봐달라고 할까요?”“뭘 봐?”“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그래요. 정말이에요.”“어?”강서원이 은근슬쩍 물
정은은 평온하게 시선을 거두며 음식에 전념했다.임씨 가문이 손님을 접대하는데 만든 음식은 자연히 아주 맛있었다. 오늘 특별히 미슐랭 등급의 셰프를 청했는데, 정교하고 향기로우며 맛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중간에 간단한 디저트 하나조차도 유명한 휘낭시에도 있었다.이번 식사는 민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행복이었다.“정은 언니, 이거 맛있어요...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빨리 먹어요.”그녀는 먹으면서 정은을 챙겼다.정은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응, 먹고 있어.”두 사람이 음식을 즐기고 있을 때, 서준은 갑자기 일어섰다.“정은 누나, 민지야, 잠깐 나 좀 따라와.”두 사람은 영문을 몰랐다.민지가 물었다.“뭐 하려고?”그녀는 지금 밥을 계속 먹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서준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메인 테이블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하자고.”“인사 안 하면 안 돼?”그들은 정은과 민지를 몰랐으니, 인사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차라리 밥이나 먹는 게 더 낫지!’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니, 서준이 직접 초대한 데다가 또 만나러 갈 사람은 어른들이었으니 민지도 거절하기 어려웠다.만약 단지 친분이 별로 없는 일반 친구라면, 서준은 주동적으로 자기 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두 사람은 컵을 들고 그와 함께 메인 테이블로 갔다.병풍을 돌자, 비록 정은이 이미 예상을 했지만, 재석을 본 순간 여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서준의 할아버지는 중간에 앉았고, 좌우 양쪽에는 할머니와 임정식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재석은 임정식 옆에 앉았다.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현빈도 있었단 것이었는데, 지금 재석 옆에 앉았다.“서준아.” 노부인은 자신의 손자가 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어머, 이 두 아이는 네 친구지?”정은과 민지는 동시에 인사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그래, 안녕하고 말고. 정말 착하구나.”임정식은 얼른 일어서더니 웃으면서 서준의 곁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