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은 표정이 차가워졌다.“내가 면접시험을 본 영상은 이미 전 나라의 사람들이 봤으니, 내 점수에 이의가 있다면 학교측에 반영하지 그래. 입만 열면 허튼소리를 지껄이지 말고. 요즘 사회는 소문을 마구 퍼뜨려도 벌을 피할 수 있잖아. 나와 조 교수님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그 주모자가 누구인지, 난 아직 알아내지 못했거든.”정은은 말할 때 눈빛은 서정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녀의 그 어떤 미세한 표정도 놓치지 않았다.정은이 ‘사진’과 ‘주모자’를 언급했을 때, 서정은 시선을 딴 데로 돌렸는데, 마음이 찔린 게 분명했다.정은은 즉시 알아차렸다.‘강서정이 한 짓이었구나. 예상했던 사람이긴 해.’“전부터 계속 날 비난하던데, 설마 날 질투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에이 정말, 내가 왜 진작에 교수님 비위를 맞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넌 뭐가 그리 잘났는데요? 서연희가 우리 오빠의 아이를 임신을 했어요. 아직 모르죠?”정은은 조용히 대답했다.“너보다 조금 일찍 알았을 뿐이야.”“오늘 교수님을 찾으러 왔지? 지금 집에 안 계시니 그만 돌아가.”정은은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몰랐다. 서정은 마치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순식간에 화를 내기 시작했다.“네가 뭔데?! 교수님이 안 계시면, 너도 날 쫓아낼 자격이 없어요! 난 오늘 꼭 들어갈 거예요. 그래서 날 어쩔 건데요?”“정은이는 어쩔 수 없지만, 주인인 난 거절할 수 있겠지?”뒤에서 오미선은 안경을 위로 밀었고, 얼굴은 무척 차가웠다.서정은 안색이 굳어졌다.‘교수님이 언제 오신 거지? 방금 내가 한 그 말들을 들었을까?’“교수님, 저는...”“나 너 기억해.” 오미선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정을 훑어보았다. “지난번에도 날 찾아왔었지.”서정은 오미선이 자신을 기억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기뻐할 겨를도 없이, 오미선은 엄숙하게 말했다.“내가 지난번에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어? 난 교수님이니, 내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온갖 방법
서정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정말이에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그럼.”“저 교수님의 학생으로 되고 싶어요! 사실 저도 교수님을 오랫동안 존경해 왔거든요. 교수님의 학생이 될 수 있다면, 정말 한이 없어요.”그녀는 자신이 방금 오미선의 집에서 나온 것을 잊은 것 같다.“그럼 그렇게 하자, 네 이름은...”서정은 영리하게 말을 이어받았다.“교수님, 저는 강서정이라고 해요. 서비대 생물학과 학생이고요.”“본교의 학생이었구나? 그럼 기초도 괜찮겠군.”송지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참, 서정아, 개학할 때, C강의동에 와서 날 찾아. 내가 널 네 선배님들에게 소개할게.”‘선배님?’서정은 송지혜가 지금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무척 흥분해졌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나도 그 실험팀에 가입할 수 있겠지? 서비대 실험팀은 손꼽히는 수준이잖아. 소정은도 들어갈 수 없을 거야!’여기까지 생각하니 서정은 웃음이 더욱 간절해졌다.송지혜는 서정이 눈치가 빠르고 말까지 잘하는 것을 보며 매우 만족했다.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오미선의 집 방향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흥, 우리 학교에 이름난 교수님이 둘이나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난 오미선보다 훨씬 실력이 있고, 심지어 인맥 방면에서 한 수 위였지만, 하필 학교는 과제 경비, 교육 자원, 심지어 학생 분배까지 모두 오미선의 편을 들어줬지. 대체 왜? 오미선이 나이가 많아서? 경력이 많아서?’그동안 오미선의 과제는 줄곧 정체된 상태였고, 3년이 지나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밑에 있는 대학원생들도 매우 평범했다.‘올해의 학생은 더욱 말할 것도 없지! 오미선이 이번에 선택한 세 명의 대학원생은 수준이 모두 별로라고 들었어. 그중에는 나이가 좀 많은 학생까지 있다나? 몇 번 만에 합격했을지 누가 알아. 늙어서 사람 보는 안목도 따라서 나빠진 거야. 이런 나이 많은 학생은 딱 봐도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데. 오미선만 마음이 약해서 그런 학생을 받
오미선은 방금 소식을 얻었는데, 올해 70%의 대학원 연구 비용이 모두 송지혜의 팀으로 분배되었고, 그녀는 나머지밖에 얻을 수 없었다.잡다한 비용을 제외하면, 지배할 수 있는 부분은 오직 20%도 안 됐다.요 몇 년 실험에 줄곧 새로운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논문이 없으면 학술 성과가 없는 것과 같았다.그렇게 오미선 팀의 비용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녀도 몸이 안 좋은 데다가, 학생들 중 이 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오미선은 길게 탄식을 했다.바로 그때, 맞은편에 사는 송지혜가 웃으며 다가왔다.“오 교수님, 지금 방금 실험실에서 돌아오는 길인가요? 실험팀이 최근에 새로운 발견을 했다면서요? 정말이에요?”오미선은 말을 하지 않았다.“아, 그럼 가짜겠네요. 오 교수님은 매일 실험실로 달려갔으니, 참 부지런해 보이던데, 어째서 성과가 없는 거죠? 올해 오 교수님의 팀에게 남겨준 비용이 또 줄어들었다면서요? 아이고, 나도 전에 이런 돈 없는 고생을 해봤는데. 그때는 오 교수님이 너무 부러웠죠. 뭐 세상일을 모르는 법이죠. 지금 그 운은 마침 나에게 돌아왔으니까요!”여기까지 말하자, 송지혜는 가볍게 웃었다.“하지만 오 교수님이 고생을 좀 해야겠어요.”오미선은 턱을 살짝 치켜들더니 숄을 꽉 잡았다.“10년 전의 실험 비용은 현재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전 생명과학원의 산출은 현재의 두 배예요. 자원의 많고 적음은 최종 학술 산출과 필연적인 연관이 없지만...”오미선은 말머리를 돌렸다.“어떤 사람들은 교수님으로서 나쁜 영향을 끼쳤기에, 대학원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였지만 대등하지 않은 학술성과를 거뒀던 거죠.”송지혜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발뺌하긴요. 계속 이렇게 가다 오 교수님의 실험팀이 앞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조차 문제가 될 텐데! 더군다나 요 몇 년 오 교수님의 학생들 중 아주 휼륭한 학생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으로서 당신은 나보다 더 잘 알
정은에게 지금 다른 생각이 있었지만, 그 전에 좀 더 기다려야 했다.‘계약이 만료되어야만 움직일 수 있어.’...이날, 정은은 평소대로 외출하며 도서관에 가려고 했다.밖에 나오자마자 재석을 만났다.그는 최근에 새로운 과제를 준비해야 했기에 무척 바빴고, 며칠 밤을 새워 금방 실험실에서 돌아왔다.“선배님, 좋은 아침이에요.”정은은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사실 학교 밖에서는 직접 내 이름을 불러도 되는데.” 재석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참, 네 의견을 묻고 싶은데. 전에 너에게 말했던 그 완성하지 못한 과제 기억하니?”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과제는 지금 그녀가 접촉하고 있는 과제 방향과 매우 부합되었다.게다가 그것은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과제였기에, 이대로 포기하기엔 매우 아쉬웠다.“잘 생각해 봤어? 계속 연구하고 싶지 않아?”정은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하지만... 지금 실험실이 없어서 데이터 부분을 완성할 수 없어요. 그래서...”모든 결론은 데이터가 필요하며, 수없이 많은 실험 기록에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정은은 재료도 없고 도구도 없었기에 실험을 전혀 전개할 수 없었다.“내 실험실에 오면 돼.”잠시 멈칫하더니, 재석은 한마디 덧붙였다.“무료로 써.”재석의 실험실은 비록 최근에 설립되었지만, 있어야 할 설비가 하나도 빠지지 않았고, 모두 현재 세계 차원에서 가장 선진적인 기자재였다.“그래도 돼요?” 정은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이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 그것도 나한테 이런 좋은 기회가 떨어지다니.’“내 말이 농담처럼 보여?”정은은 잠시 망설이다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정말 고마워요!”재석은 담담하게 웃으며 눈빛에 미소가 번쩍였다.실험실은 실학동 8층에 있었다.서비대학교의 실험실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매 실험팀에 주어진 정원도 제한이 있었다.그러나 재석의 실험실은 비교적 특수했다. 그들은 직접 기업
재석이 말했다.“아무 시간이나 실험실을 사용할 수 있고, 매일 출근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어. 넌 시간이 있을 때 오기만 하면 돼.”정은은 현재 오미숙이 그녀에게 준 논문을 이해해야 할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의 최신 연구성과에도 관심을 돌려야 했다.이제 또 하나의 정식 논문 과제를 완수해야 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재석은 이런 일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정은의 능력으로, 시간을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절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곧이어 그는 또 정은에게 실험실의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실험실마다 역할이 달랐기에 주의사항도 달랐다. 정은은 열심히 들으며 중요한 점을 적기도 했다.“현재 내가 이끄는 실험팀만 이 실험실을 사용하고 있어. 나 말고도 네 명의 팀원이 더 있는데, 기회 되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경을 쓴 마흔 살 정도 하는 남자가 탕비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몸집이 크고, 근육까지 있어 언뜻 보기에는 건장한 반달곰 같았다.그런데 손에 보온컵을 들고 있었는데, 구기자가 둥둥 떠 있었다. 안에는 심지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났다.“어? 조 교수, 우리 팀에 신입이 들어온 거야?” 남자는 정은을 훑어보았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궁금해하는 동시에 자제했다.‘예의가 있고 분수가 있는 사람이군.’“소개할게. 전진욱, 내 동료이자 실험팀 성원 중 하나야. 서비대에서 기초물리를 가르치고 있어.”“안녕.” 진욱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무서웠던 얼굴은 순식간에 어수룩해졌다. 그야말로 얌전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정은은 잠시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지만, 얼른 웃으며 악수했다.“전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소정은이라고, 소 교수님의...”‘어...’“친구야.”전진욱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재석을 바라보더니 시선은 마지막에 정은의 얼굴에 떨어졌다.‘조 교수가 친구를 데리고 실험실을 참관하러 온 것을 본 적이 없는데...’“젊은 아가씨, 그렇게 긴장하지 마. 날 전 교수님이라
부츠를 신은 긴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카멜색 코트에 흰색 니트를 입고 입었고, 손에는 회색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있었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교함을 드러냈다.수아는 재석을 본 순간, 눈빛이 밝아졌다.“조 교수님, 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 재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수아야, 소개해 줄게.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멤버인데, 소정은이라고 해. 너보다 두 살 어려.” 태민은 가장 먼저 그녀에게 이 소식을 공유했다.수아는 그제야 오늘의 실험실에 한 사람이 더 많아진 것을 발견했는데, 웃음이 그대로 굳어졌다.정은이 오기 전, 수아는 실험팀의 막내였고, 모두들 그녀에게 양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수아도 확실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콜롬비아대학에서 졸업한 다음, 또 서비대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얼굴과 지혜를 가진 미녀였다.게다가 재석의 실험팀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으니, 그 연구능력, 학술수준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정은이 차례대로 인사를 하자, 수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간단하게 얼버무린 다음, 손을 거두어들였다.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정은은 오히려 수아가 자신을 향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옆에 있는 미진은 두 여자아이를 훑어보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재석이 입을 열었다.“사실 정은 씨는 우리 실험팀에 가입한 성원이 아니야.”“...네?”“정은 씨는 자신의 실험 과제가 있는데, 단지 우리의 실험실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야.”‘실험실을 빌린다고?’태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 교수님은 종래로 실험실을 남에게 빌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번에...’다른 사람들도 같은 의혹이 들었다.미진과 진욱은 눈을 마주쳤고, 수아는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재석은 정은을 단독실험대로 데려갔다.“앞으로 이곳은 네 실험대야. 무슨 필요한 것 있으면 나에게 말할 수 있고, 칠판에 적을 수도 있어. 매일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재료를 보충할 거야.”정은은 고개를 살짝 끄
지금 수아는 정은을 향한 시기를 숨기기조차 귀찮았다.사람들은 수아가 이렇게 나올 줄 몰라,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이때, 태민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며 수아에게 말했다.“수아야, 그 실험 데이터는 내가 이미 널 도와서 계산한 적이 있는데, 빨라도 내일 오전에야 결과가 나올 거야. 다들 모처럼 시간이 있으니, 함께 밥을 먹고 긴장을 풀면 얼마나 좋아... 게다가 조 교수님도 평소에 바빠서 입을 열 틈이 없는데. 오늘 교수님이 한턱 낸다고 하시니 우리도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어?”수아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서야 수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재석의 아름다운 얼굴은 조금 차가웠고, 하얀 셔츠는 그를 천사처럼 보이게 했다. 마치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신처럼, 수아는 그런 남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그래요, 나도 모두의 흥을 깨고 싶지 않네요.”태민은 한숨을 돌렸지만 또 은근히 좀 서운했다.‘이 큰 아가씨는 정말 까칠하다니깐. 역시 조 교수님만이 수아의 생각을 좌우할 수밖에 없어.’...사람들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레스토랑으로 갔다.재석은 미리 예약했는데, 한식집이었다. 음식 맛이 매운 편이었지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미진은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오늘 회식 장소에 너무 만족했다.태민은 가장 활발했다. 실험실에 젊은 여자가 적었기에, 그는 정은을 여동생처럼 대하며 열정적으로 불렀다.“정은아, 뭘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시켜. 절대로 사양하지 말고. 우리 조 교수님은 줄곧 대범하고 통이 크시거든. 뭘 먹고 싶어?”미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근히 농담을 했다.“평소에 태민의 말을 믿으면 안 되지만, 오늘 이 말은 사실이야.”“에이 조 교수님, 저 좀 봐주시면 안 돼요? 다음에는 그런 말하지 마세요.”그가 고의로 농담을 하자, 분위기는 단번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정은은 태민에 대한 인상이 꽤 좋았기에, 지금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오직 수아만
곧 요리가 올라왔다.진욱은 향기를 맡자, 배가 꼬르륵 소리 짖기 시작했다. 그는 닭볶음탕을 먹었는데, 고기가 연하고 간이 잘 배었다.“맛있네! 이렇게 제대로 된 닭볶음탕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정말 잘 왔네.”태민은 듣자마자 얼른 맛보았다.“확실히 괜찮네요! 수아야, 너도 조금 먹지 않을래?”“아니요, 다이어트 중이라서요.”태민은 재빨리 닭고기를 자신의 접시에 놓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다이어트 끝나면, 우리 둘이 따로 이곳에 와서 먹자...”수아는 어이없어서 눈을 부라렸다.“누가 당신과 함께 오고 싶다는 거예요?”저쪽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고, 미진도 기분이 꽤 좋았다. 그녀는 정은을 보더니 약간 궁금해하며 물었다.“정은아, 아직 네 나이에 대해 안 물어봤는데. 너 올해 몇 살이야? 9월에 대학원 1학년이면 22? 23?”미진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물었을 뿐, 다른 뜻은 없었다.정은도 아무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담담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올해 26살이에요.”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에, 이 말을 듣고 표정이 이상해졌다.‘26살에 대학원에 합격한 거야? 이건 좀...’태민은 말을 하지 않은 재석을 훔쳐보았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수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마침내 웃음을 지었다.“26에야 대학원에 합격한 거야? 그럼 얼마나 애를 썼을까? 몇 번 시험을 봤는데?”수아가 입을 열자 태민은 재빨리 식탁 밑에서 팔로 그녀를 밀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정은 씨는 조 교수님이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잖아.’애석하게도 수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리 가요,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예요!’정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한 번요. 전체적으로 볼 때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그래?” 수아는 단지 정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정말 그렇게 간단하다면, 왜 대학을 졸업한 후에 바로 시험을 보지
그리고 전에 몇 번 만났을 때도 정은은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된 이상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나았다. 어차피 우연하게 몇 번 만난 것 외에 두 사람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강서원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아이는 생긴 것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본예의도 없군.’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강서원은 발걸음을 재촉했다.“정은아, 너 어디 갔었어? 빨리 와봐, 난 이미 다 골랐어.”이미숙이 정은을 불렀다.“벌써요? 전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엄마가 입어보는 것도 못 봤네요...”“돌아가서 다시 입어볼게.”“네.”“방금 한 여사님을 만났는데, 내가 원피스를 하나 골라줬거든. 그런데 글쎄 자신의 아들이 ‘7일담'을 보고 있다는 거야...”이 시각, 먼 실험실에 있는 재석은 재채기를 여러 번 했다.진욱은 옆에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조 교수, 재채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대체 밖에 여자가 얼마나 있길래...”“지금 많이 한가한가 봐??”진욱은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내일 그냥 혼자 크리스털 호텔의 세미나에 참석해.”‘안 돼!’진욱은 속으로 생각했다.조수진은 몰래 웃었다.“쌤통이다! 그러게 누가 조 교수님을 건드리래!”...정은 일행이 쇼핑을 마칠 때, 시간은 이미 오후 6시가 되었다.그래서 그들은 아예 백화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모녀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의논할 때, 나석천의 전화가 걸려왔다.[이미 레스토랑을 예약했으니 직접 지하 1층으로 내려오세요.]이미숙이 말했다.“편집장님이 밥을 사시다니? 이건 말이 안 되죠.”[제가 작가님을 J시로 초청했잖아요. 그럼 따지고 보면 제가 작가님의 의식주를 모두 책임져야 하죠. 지금은 그냥 밥을 한끼 사는 것일 뿐, 이건 제가 영광이죠.]나석천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랑하고 우렁찼다.이미숙이 L시 사람이라서 입맛이 좀 담백한 것을 고려하여 나석천은 J시와 외지
그러나 일은 점원이 예상했던 것처럼 되지 않았다.강서원은 이미숙에게 다가가더니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이 원피스가 잘 어울리네요.”강서원도 입어보았는데, 나름 괜찮았지만 이미숙이 입는 게 더 잘 어울렸다.사이즈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더 잘 어울렸다.강서원의 기질은 너무 강직해서 부드럽지 못했지만, 이미숙은 딱이었다.부드럽게 생긴 데다가 미소까지 부드러워 이목구비가 무척 편안해 보였다.‘얄밉지 않은 얼굴이야.’말하자면, 강서원은 줄곧 동서인 백지영, 그리고 지난번 다례 수업에서 한복을 입은 정은처럼 기질이 부드러운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나 앞에 있는 이미숙은 의외로 강서원의 마음에 들었다.점원은 한쪽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이미숙처럼 세심한 사람은 재빨리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릴 것이다.그녀는 강서원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고마워요.”이미숙은 곁에 있는 한 원피스를 가리켰다.“여사님은 몸매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원피스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한번 입어봐요...”강서원은 상체가 풍만하고 허리가 가녀려 허리라인이 돋보이는 원피스를 입는 게 더 적합했다.사실 지금 이미숙이 입고 있는 이 원피스는 커팅부터 원단까지 모두 괜찮지만, 허리라인이 뚜렷하지 않아 강서원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뚱뚱해 보이게 만들었다.이미숙이 가리키고 있는 원피스도 검은색이었는데, 입으면 아주 날씬해 보일 수 있었다. 커팅은 허리라인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물고기 꼬리와 같은 하이웨스트 디자인은 나른함을 더했다. 이는 원피스 자체의 엄숙함을 덜어주었다.강서원도 기대를 품지 않고 옷을 입어보았는데, 뜻밖에도 그녀와 정말 잘 어울렸다.전신거울 앞에 선 강서원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안목이 정말 좋네요. 코디라도 배운 적이 있는 건가요?”이미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하지만 코디 잡지를 즐겨 보곤 했죠.”“보기만 하면 되나요?”“스스로 코디도 할 수 있죠...”두
소씨 가문의 남자는 저마다 잘생겼는데, 소진헌은 키가 크고 훤칠했으며 중년이 되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몇 벌의 양복을 입어보자 모두 아주 어울렸다.소진헌은 이미숙에게 물었다.“여보, 어느 게 괜찮을 것 같아?”정은도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이미숙은 잠시 생각했다.“다 괜찮은데.”“그럼 어느 걸 골라야 하지?”이미숙이 말했다.“고를 필요 없어요. 다 사면 되죠.”“그건 안 돼, 이게 얼마나 비싼데? 난 이 한 벌이면 충분해. 집에 옷이 아직 많잖아.”이미숙은 이미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네주었다.“이 세 벌 다 포장해줘요. 고마워요.”“네, 알겠습니다!”점원은 웃으며 카드를 가져갔다.소진헌은 수줍은 소녀처럼 이미숙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여보, 이건 너무 비싸잖아. 한 벌에 몇 백만 원이라니...”“괜찮아요, 내가 당신에게 사주는 거예요.” 이미숙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어제 배당금을 받았는데, 수억이 넘어요.”소진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그, 그렇게 많아?”“그럼요.”“여보, 정말 너무 대단해!”이미숙은 얼굴이 붉어졌다.“콜록!” 정은은 큰 소리로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곁에 있는데, 두 분은 좀 자제하시면 안 되는 건가?’소진헌의 옷을 사는데 시간이 들지 않았지만, 이미숙은 아니었다. 2층 여성복 구역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어떤 옷들은 심지어 딱 봐도 아니었기에 입어 볼 의욕이 전혀 없었다.정은은 갑자기 한 프랑스의 브랜드를 떠올렸다. 이름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아, 매장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매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멀리 떨어진 모퉁이에 있었다.그래도 옷은 예뻤는데, 이미숙은 발을 디디자마자 눈이 밝아졌다.정은이 골라줄 필요 없이 이미숙은 이미 자신의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먼저 치마 두 벌을 입어 보았는데, 오렌지색과 파란색이었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모두 피부톤과 잘 어울렸다.치맛자락의 무늬는 레이스에 자수를 더한 것으로, 고전적이고 우아한 운치를 띠고
경혜는 도겸의 뒷모습을 주시했다.그녀는 오늘에야 남자의 차가 포르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옷은 아르마니, 시계는 파텍필립이었다.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케이크를 보니 경계는 눈빛이 절로 깊어졌다.다른 한편, 정은이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는 이미숙을 데리고 쇼핑을 하러 갔기 때문이다.그녀는 전공 수업의 교수님에게 미리 설명을 했다. 다행히 오늘은 새로운 내용을 배우지 않고 주로 지난주 팀 과제를 보고하고 총결하는 것이었는데, 민지와 서준이 보고하면 됐기에 정은도 부담 없이 휴가를 낼 수 있었다.내일이 바로 사인회였고, 요 몇 년 동안 이미숙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참석한 적이 없었다.이미숙은 이리저리 골랐지만, 옷장에 있는 옷이 사인회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못 입는 건 아니지만 뭐가 좀 부족했다.소진헌은 진심으로 칭찬을 했다.“우리 여보는 무엇을 입어도 다 예뻐, 정말이야!”그러나 이미숙은 평소처럼 소진헌의 농담에 웃지 않았다.정은은 재빨리 알아차렸다.“엄마, 우리 새 옷 사러 가요! J시에 큰 백화점이 얼마나 많은데, 틀림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옷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이미숙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그래!”소진헌은 어수룩하게 머리를 긁적였다.‘왜 내 칭찬이 쓸모가 없는 거지?’...SSG 백화점에서.세 식구는 관광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 고급 브랜드가 가득 모인 사치품 매장이 점차 작아지는 것을 보며, 이미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 백화점 정말 크네!”의상은 2층과 3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층수를 미처 누르지 못해서 그들은 4층으로 올라갔다.이미숙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책장 포스터에 이끌려 세 사람은 아예 이 층에서 내리기로 했다.위에는 ‘SSG RENDEZ-VOUS’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서점처럼 보이지만 일반 서점과 달랐는데, 서점과 카페 및 레스토랑이 하나로 된 곳이었다.문에 들어서면 카페라서 공기 중에 진한 원두 향기가 풍겼다.뒤에는 음식이 있었다.가운데는
“그래,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말하면서 민지는 서준의 팔짱을 끼고 기뻐하며 학교 밖으로 돌진했다.서준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손을 빼려고 했다.민지는 바로 그를 잡아당겼다.“야, 쑥스러워하지 마. 우린 절친이잖아!”민지는 말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팔을 못 빼겠네! 이 여잔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두 사람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케이크를 들고 스포츠카에서 내려오는 도겸을 보았다. “어머!”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사람은 왜 매번 차를 교문 앞에 세우는 건지 모르겠네. 심각한 교통 체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서준은 잠시 침묵했다.“아마도 이런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어디가 멋있다는 거야? 포르쉐에서 내려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그럴 수도?”민지는 서준을 바라보았다.“너도 이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은 국산 자동차를 선호해서.”민지가 말했다.“나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삼촌 할아버지는 모두 렉서스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거든.”“그럼 왜 자꾸 포르쉐를 운전하는 거지?”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도겸을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들고 있는 케이크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서준은 그녀가 침을 삼키는 동작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도겸은 몇 번이나 찾아오면서 정은이 늘 민지와 서준과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 횟수가 많아지자, 그도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도겸은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정은이는? 오늘 왜 너희들과 같이 있는 않는 거야?”민지는 사실대로 말했다.“정은 언니 오늘 학교에 안 나왔어요.”“왜?”“휴가를 냈거든요.”“왜 갑자기 휴가를 낸 거야?”“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도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묻고 싶었다.그러나 민지는 이미 서준의 팔을 잡으며 밀크티 가게로 향했다.“저희는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도겸은 허탕을 쳤다. 양복 차림을 한 사람이 미니언즈 포장의 케이
“선배님, 다 됐어요?”정은이 입을 열고서야 재석은 정신을 차렸다.“응, 다 됐어.”“고마워요.”재석은 또 정은의 허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게 분명해!’...도겸은 해가 지고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그도 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예 잠이 오지 않았다.머리는 지칠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했다.두 사람이 달콤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자신이 찌질하게 굴던 장면도 있었다.날이 밝자, 도겸은 그제야 추억의 늪에서 벗어났다.아침 8시, 직장인들은 저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전을 하며 달북동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평소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였지만, 오늘 꼬박 한 시간이나 걸렸다.“안녕하세요, 망고 케이크 하나 주세요.”점원은 멈칫했다.“통째로 된 케이크를 원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한 조각을 원하시는 거예요?”“통째로 된 거요.”“손님, 정말 운이 좋네요. 지금 금방 하나 만들었는데 곧 자르려고 했거든요. 몇 분만 늦으셨다면 아마도 1시간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도겸은 가볍게 응답했다.점원은 포장을 하면서 물었다.“이렇게 일찍 케이크를 사러 오셨다니,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내 여자... 전 여자친구가 좋아해서요.”이 말 한마디에 젊은 점원은 바로 예전에 본 로맨스 소설을 떠올렸다.‘누가 진정한 주인공인지 모르겠네.’도겸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케이크를 받은 다음 바로 차에 올라탔다.점원은 카운터 앞에 서서 유리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이야, 스포츠카라니... 더 소설 주인공 같잖아.’...오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하민지와 임서준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다.강의동을 나오자마자 민지는 참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목이 좀 마른데.”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이미 그의 침묵에 익숙해진
도겸의 심장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소진헌이 재석을 대할 때의 열정과 자신을 대할 때의 냉담함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도겸은 계속 서 있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을 닫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는데, 재석이 정은의 집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도겸은 거절당한 선물 더미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왕순자는 이미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이곳은 다시 정은이 금방 떠났을 때의 쓸쓸하고 적막한 곳으로 변했다.도겸은 위층으로 올라간 다음 안방으로 들어갔다.화장대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고, 그 위에는 아직 다 쓰지 않은 스킨케어 제품이 놓여 있었지만, 그들의 주인은 이미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정은이 날 버린 것처럼.’도겸은 아래의 서랍을 열었다. 전에 이 안에는 수표 한 장과 토지 증여 계약서, 그리고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몇 개의 다이아몬드는 사수자리의 모양을 이루었다.이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팔찌였다. 정은의 22번째 생일이 되던 해에 도겸은 특별히 유명한 디자이너인 존 스미스를 청하여 그녀를 위해 디자인했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비춘 별이라는 뜻이었다.정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기 위해 도겸은 고의로 그녀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톡까지 차단했다.정은의 생일날인 새벽 12시, 도겸은 이 팔찌를 들고 서비대학교 문 앞에 나타나 그녀에게 가장 큰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주었다.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비록 정은이 팔찌를 받았고, 두 사람도 오해를 풀고 다시 화해했지만 도겸은 그녀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그 후 그도 정은이 이 팔찌를 몇 번 찬 것을 보았다.그러나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은이 이 팔찌를 낄 때마다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곤 했다.후에 정은은 아예 팔찌를 서랍에 잠그며 다시는 끼지 않았다.“도겸아, 난 너와 다투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매번 다툴 때마다 난 우리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아. 나와 너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고
“이 물건들 그냥 가져가. 우리는 친척도 친구도 아니니, 이 물건들이 비싸든 안 비싸든 우리는 받을 이유가 없어. 그리고 너와 정은이는 이미 헤어졌어. 지금은 낯선 사람과 마찬가지이니, 우리는 네 선물을 받을 이유가 더욱 없지 않겠어?”도겸과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났을 때, 이미숙은 소진헌과 레스토랑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도겸은 빈손으로 와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먼저 말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때 이미숙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 남자는 우리 정은이와 어울리지 않아.’그러나 정은은 그때 도겸에게 푹 빠졌다. 도겸이 핑계를 대고 떠난 뒤, 그녀는 열심히 그의 편을 들어주며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이미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마음이 아팠다.굽실거리는 딸이 안타까웠고, 남자의 존중을 받지 못해서 더욱 안쓰러웠다.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든, 적어도 도겸은 그들을 하나도 존중하지 않았다.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님조차 존중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그 여자를 존중하겠는가?이미숙은 어머니로서 기쁨을 안고 찾아왔지만, 다시 근심과 걱정을 안고 돌아갔다.물론, 그녀도 또한 이러한 도리를 정은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심지어 좀 더 강경하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으니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미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녀는 정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끝을 보지 않는다면, 정은은 앞으로 후회할 것이고, 줄곧 이 일이 마음에 걸려 평생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다.아이가 성인이 된 이상, 부모로서 그들도 이제 손을 놓아줘야 했다. 정은이 스스로 인생을 겪도록.그러나 이미숙은 정은이 이대로 공부를 포기할 줄은 몰랐다.그 대가는 너무 컸다.“다행히 모든 일이 지나갔고, 정은이도 이제 새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어. 만약 마음속으로 여전히 우리 정은이에게 미안하다면, 더 이상 찾아와서 방해하지 마.”이미숙은 다른 사람과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투는 것을 더욱 좋아하지
도겸은 바로 확인을 한 다음, 전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대리를 불렀다.“이것들 모두 종료해.”“네?” 대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회사가 현재 가장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중 몇 개는 곧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갑자기 종료를 하다니?“내가 한 말에 무슨 이의라도 있는 거야?”“아, 아닙니다.”“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거야?”“그것도 아닙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대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대표님, 저 이해가 좀...”“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20여개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지 모두 큰 문제였다.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었다.그는 사무실의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휘영청 밝고 등불은 희미했다.“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현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도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네가 얼마나 좋은 여자를 놓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도겸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별장에 돌아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볼 때 절정에 달했다.‘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현빈은 이미 정은이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했어...’이른 아침, 금빛 햇살이 대지에 쏟아졌다.정은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는데, 소진헌과 이미숙을 깨우지 않고 혼자 먹고 조용히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그녀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그렇게 소진헌과 이미숙이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정은은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