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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Penulis: 십일
수민은 입을 삐죽거렸다.

“정말 뻔뻔한 사람들이네. 방금 넌 나를 막지 말았어야 했어.”

수민은 방금 힘을 얼마 쓰지 않았기에, 정말 싸운다면, 서영숙은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정은은 연희가 떠날 때의 안색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자, 됐어, 화내지 마. 그럴 가치가 없잖아.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면 몸만 상해.”

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다음에 또 이렇게 나온다면, 난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정은은 얌전하니까 이런 일은 내가 나서면 돼.’

“알았어.”

정은이 웃었다.

“너 오늘 많이 놀랐지? 내가 한턱 낼게. 뭐 먹고 싶어?”

수민은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이 말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자, 내가 널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게.”

“응? 이 말은 내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누가 말해도 똑같아. 내 마음만 알면 돼.”

...

차 안에서.

서영숙은 검사 보고서를 들고 있었다. 연희 뱃속의 아이가 무척 건강하다는 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연희는 서영숙의 표정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서영숙과 만났던 것이다.

도겸과 함께 할 때, 그는 자신의 가정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연희는 그가 재벌 집 도련님이고, 아래에 여동생이 하나 있다는 것밖에 몰랐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한 다음, 연희는 갖은 방법을 생각해가며 그와 연락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예외 없이 줄곧 캄캄 무소식이었다.

도겸이 이토록 단호하게 헤어지려 하자, 연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수소문한 끝에 서영숙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냈고, 연희는 얼른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임신한 일을 말했다.

현재 서영숙은 연희와 그녀 뱃속의 아이에 대해 나름 만족한 모양이었다.

오기 전에 미래의 시어머니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연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달콤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님, 처음 뵙는 것이니 제가 선물을 조금 준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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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준 다음, 서영숙은 또 그녀에게 배를 조심하라고 당부한 후에야 기사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분부했다.”“네, 사모님.”서영숙은 뒷줄에 앉아 그 못생긴 스카프를 보며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려, 그녀는 아예 그것을 좌석 아래로 던진 다음 재빨리 손을 뗐다. 마치 손에 무슨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것 같았다.연희를 떠올리면 서영숙은 한숨을 금치 못했다.‘생김새도 보통, 행동거지도 대범하지 못해. 청순하다고 말하는 것도 다 억지로 칭찬하는 것일 뿐이야. 정말 가난한 티가 난다니깐.’서영숙은 다시 한번 그 스카프를 바라보았다.장밋빛의 스카프는 촌스러웠고, 아무리 고급스럽게 포장을 해도 그 수준 떨어지는 기운을 감출 수 없었다.‘일반 가정 출신은 정말 안목이 없다니까.’‘전에 소정은이 준 선물은 그래도 스카프에 주얼리, 가방 등이 있었지. 모든 게 정교할 뿐만 아니라 나와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딱 봐도 열심히 고른 게 분명해...’여기까지 생각하자 서영숙은 마음속으로 퉤퉤 했다.‘그 재수 없는 여자를 왜 생각하는 거야?!’...“사모님, 도착했습니다.”서영숙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강서정이 내려왔다. 그녀의 손에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가 있는 것을 보고, 서정은 그게 무슨 비싼 물건인 줄 알았다.그러나 그것이 뜻밖에도 장밋빛 스카프일 줄이야. 문제는 그 스카프는 바느질이 울퉁불퉁하여 예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촌스럽기까지 했다.“엄마, 이게 어디서 난 물건이에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딴 촌스러운 물건을 산 거예요? 설마 이걸 쓰고 다니시려는 건 아니죠?”서정은 검지와 중지로 그들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 그 스카프를 들었다.솔직히 그녀는 이렇게 못생긴 목도리는 정말 처음이었다.‘정말 구역질이 나네, 이 색깔이 뭐야? 집안의 개가 봐도 깜짝 놀랄걸.’서영숙은 씩씩거리며 말했다.“네 오빠의 여자친구가 준 거다. 자신이 더 정성스럽게 만든 선물이 더 성의가 있다나. 내가 보기에 그냥 나한테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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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선은 방금 소식을 얻었는데, 올해 70%의 대학원 연구 비용이 모두 송지혜의 팀으로 분배되었고, 그녀는 나머지밖에 얻을 수 없었다.잡다한 비용을 제외하면, 지배할 수 있는 부분은 오직 20%도 안 됐다.요 몇 년 실험에 줄곧 새로운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논문이 없으면 학술 성과가 없는 것과 같았다.그렇게 오미선 팀의 비용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녀도 몸이 안 좋은 데다가, 학생들 중 이 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오미선은 길게 탄식을 했다.바로 그때, 맞은편에 사는 송지혜가 웃으며 다가왔다.“오 교수님, 지금 방금 실험실에서 돌아오는 길인가요? 실험팀이 최근에 새로운 발견을 했다면서요? 정말이에요?”오미선은 말을 하지 않았다.“아, 그럼 가짜겠네요. 오 교수님은 매일 실험실로 달려갔으니, 참 부지런해 보이던데, 어째서 성과가 없는 거죠? 올해 오 교수님의 팀에게 남겨준 비용이 또 줄어들었다면서요? 아이고, 나도 전에 이런 돈 없는 고생을 해봤는데. 그때는 오 교수님이 너무 부러웠죠. 뭐 세상일을 모르는 법이죠. 지금 그 운은 마침 나에게 돌아왔으니까요!”여기까지 말하자, 송지혜는 가볍게 웃었다.“하지만 오 교수님이 고생을 좀 해야겠어요.”오미선은 턱을 살짝 치켜들더니 숄을 꽉 잡았다.“10년 전의 실험 비용은 현재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전 생명과학원의 산출은 현재의 두 배예요. 자원의 많고 적음은 최종 학술 산출과 필연적인 연관이 없지만...”오미선은 말머리를 돌렸다.“어떤 사람들은 교수님으로서 나쁜 영향을 끼쳤기에, 대학원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였지만 대등하지 않은 학술성과를 거뒀던 거죠.”송지혜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발뺌하긴요. 계속 이렇게 가다 오 교수님의 실험팀이 앞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조차 문제가 될 텐데! 더군다나 요 몇 년 오 교수님의 학생들 중 아주 휼륭한 학생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으로서 당신은 나보다 더 잘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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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 정은 언니 원래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 으앙, 괜히 비교돼!’“무슨 생각 그렇게 골똘히 해?”정은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사람이야, 쇳덩이는 아니란 뜻이지. 급하지도 않은 일정인데 밤새우는 게 뭐 그렇게 재밌겠어.” “맞아요! 근데 언니는...”“너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야.”민지는 안도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조금’이... 얼마나 조금인데요?”“음...”정은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두 시간.”민지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하... 내가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었네.’ 바로 그때, 건너편 검사용 실험실 문이 열리며 서준이 샘플 봉투와 리포트를 들고나왔다.“서, 서준아... 언제 일어났어...?”민지는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서준은 솔직하게 답했다.“6시. 왜?”민지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나만 8시까지 잤네. 이럴 거면 알람은 왜 맞췄냐고... 으악...!!!’그렇게 오전 내내, 민지는 그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르게, 집중력도 세 배로 끌어 올렸다.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민지는 실험대에서 털썩 내려와 길게 숨을 내쉬었다.같이 집중 근무에 들어간 팀원이 많으니, 정은은 미리 모두의 하루 세 끼 도시락을 예약해 두었다. 밥 짓고 반찬 할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가 가득한 냉장고를 털어 요리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민지는 반찬을 한 입 먹고는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스러운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헐, 이거 SAMES 거다... 가격 꽤 나가는데...”남진일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와, 밥 진짜 맛있다. 이거 쌀도 좀 다르지 않아? 완전 길고 쫀쫀한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일은 밥을 세 그릇이나 비웠다. 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실험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민지.‘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 쉴 땐 좀 쉬라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6화

    장마가 시작되자, 날씨는 마치 기분이라도 있는 듯 변덕을 부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살 좋던 하늘은 오늘 아침부터 부슬비로 젖어 있었다.재석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귀가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옷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기에, 그대로 샤워실로 향했다.뜨거운 물로 몸을 데운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휑한 침대를 바라보며 손을 멈췄다.며칠 전, 침구를 몽땅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새로운 걸 깔지 않은 채로 며칠 밤을 그냥 잤다.그는 말없이 장롱에서 깨끗한 시트를 꺼내어, 이불까지 정돈했다.‘그날 정은이가 그랬지... 아버님이 장조림이랑 김치까지 챙겨주셨다고. 가지러 오라고 했었는데...’그때, 재석은 머리를 말렸고, 내복을 갈아입은 후 맞은편 정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정은아, 안에 있어?”“정은아...?”대답은 없었다.재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평소 같으면 실험실에서 돌아왔을 시간인데...’그 후로 두 시간. 재석은 몸은 집 안에 있었지만, 신경은 늘 현관 쪽에 쏠려 있었다.작은 인기척만 나도 바로 고개를 들어 도어락을 확인하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현관문 앞에 섰다.하지만 그 누구도, 정은은 아니었다.새벽 1시. 정은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오늘도 실험실에서 자려나...’재석은 조용히 불을 끄고 침실로 향했다.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뭐랄까... 괜히 허전하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단순한 우연이겠거니,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실험실로 출근했다.그날 저녁. 재석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야간 러닝을 나섰다.8시부터 10시까지. 아파트 단지 아래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그 사이, 정은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재석은 또다시 시간을 더 보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리는 동안, 몇몇 이웃들과 마주쳤다.“조 교수님, 오늘도 러닝하세요?”“운동을 정말 꾸준히 하시네요. 올해에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5화

    정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재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선배님, 아빠가 장조림을 잔뜩 가져왔어요. 선배님 것도 있는데, 언제 집에 계세요? 가져다드릴게요.]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반찬 봉투, 가지런히 담긴 장조림, 그리고 열무김치 세 통.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근데 요즘은 계속 실험실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휴... 병원 간 건 아니구나.’정은은 마음을 놓고는, 바로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공기 샘플 분석 결과 나왔어요.]그리고 곧바로 분석 리포트 파일도 함께 전송했다. 하지만 이번엔 곧장 답장이 오지 않았다.정은은 씻고 오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10분 전 도착한 메시지.정은은 손에 수건을 쥔 채 그대로 메시지를 열었다.[경찰 측 보고서랑 거의 일치해. 환각이나 각성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어.]‘그래... 그래서 미제 처리된 거구나.’M시 경찰은 결국 사건을 입건하지 않았다. 재석이 수아를 바로 해고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린 건, 바로 이 수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정식 수사가 들어갔다면, 이수아가 마주할 건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겠지.’정은은 머리를 닦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정은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전화를 받았다.“그 약, 기존에 유통되던 제품이 아닌 것 같아요. 성분이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기에서도 검출이 안 될 정도라면...”“제작한 사람도, 유통한 사람도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인맥이나 자금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선배님, 조심하셔야 해요.”[응. 알겠어.]말이 끝난 후, 찰나의 정적. 전화 속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렸다.“선배님...”정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요즘... 아예 집에 안 들어가세요?”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짧게 대답했다.[응...]‘그냥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4화

    5월 말, 이미숙은 원작 소설 영화 제작 발표회 참석차 J시에 왔다. 주말 일정이라 남편 소진헌도 함께였고, 겸사겸사 정은에게 나눠 줄 장조림 한가득과 직접 담근 김치 여섯 통도 챙겨왔다.“완전 유기농! 방부제 제로! 아, 조 교수 것도 좀 나눠줘. 혼자 다 먹지 말고.”말을 끝내기 무섭게, 소진헌은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바빴고, 떠날 땐 미련도 없었다.이번 일정은 주최 측에서 식사며 숙소까지 전부 제공했는데, 행사 장소가 이춘재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던 탓에 소진헌 부부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래도 짬을 내어, 오후 한나절을 이춘재, 봉수진 부부와 보내며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 한 끼는 함께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딸이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사위는... 뭐, 그냥 딸을 따라다니느라 바쁜 걸로 치부하고 이해해 줬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두 노인도 L시로 내려갈 텐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당에 굳이 소진헌 부부를 집에 머물라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정은은 아버지의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밑에 놓인 장조림 봉투를 내려다봤다.‘이걸 내가 다 먹을 순 없지.’정은은 장조림 반 정도를 덜어, 다른 봉투에 담았고, 김치도 세 통 넣었다. ‘재석 선배님 오면 같이 주자.’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녀가 이미 논문 세 편을 다 읽을 때까지도 맞은편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은은 혹시나 놓쳤나 싶어 직접 문 앞으로 가서 노크했다.“선배님, 집에 계세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또 실험실에서 밤샘 중이겠지.’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요즘 정은도 실험실에서 자는 날이 부쩍 늘었고, 남진일은 아예 실험실을 제 집처럼 쓰고 있었다.민지는 심지어 진지하게 조언까지 했다.“진일 선배, 옷장 두 개 더 넣고, 정은 언니가 냄비랑 밥그릇만 좀 들고 오면 그냥 자기 집 완성인 거 알죠?”‘진짜 그렇게 될까 봐 무서울 정도라니까.’며칠 지나지 않아, 진일은 정말로 중고 옷장을 하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3화

    [진짜 안 따라 나오는 거야? 손태민, 너 나한테 진심이긴 해? 마음 있긴 해?!]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제야 태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어디야?”[정문 앞 카페. 시간 줄게, 5분 안에 와.]“그래.”태민은 짧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태민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통화한 지 15분이 지나 있었다.수아는 두 팔을 꼬며 차갑게 말했다.“뭐야, 이게? 5분이랬잖아. 내가 기다리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알잖아.” “미안...태민은 고개를 숙였다. 눈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사과했다.그런 태민의 모습에 수아는 괜히 짜증이 났다. ‘조재석이랑 비교하면... 능력도, 집안도, 얼굴도, 도대체 뭐 하나 나은 게 없어.’하지만 그녀는 아직 태민이 필요했다. 그 생각에 억지로 화를 눌러가며, 입꼬리를 올려 웃는 척했다.“너... 교수님한테 한 번만 말해줄 수 있어? 이번 해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좀 부탁해 줘.” 그 말에, 태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예전엔 본 적 없는 눈빛으로 수아를 바라봤다.‘저 눈빛은... 뭐야...?’수아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딱 2초 만에 시선을 피했다.“도와줄 거야, 말 거야? 싫으면 됐어. 그냥 안 해도 돼.”예전 같았으면, 수아가 이렇게 말만 해도 태민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엔... 침묵이 조금 길었다.“그래...”드디어 태민이 대답했다. 수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곧이어 태민이 덧붙인 말이 그녀를 멈칫하게 했다.“근데, 조건이 있어.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조 교수님이 너를 그렇게까지 내친 이유...”“그건... 지금 꼭 해야 하는 말이 아니잖아...”“나는 꼭 들어야겠어.”수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상하게 낯선 태민의 태도에 그녀는 자신이 제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손태민, 지금 뭐 하는 거야? 날 협박하는 거야?”“진짜 날 사랑하긴 해? 그 정도 일도 못 해줘?”그 비난과 몰아붙임 속에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2화

    수아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곧장 재석 앞까지 걸어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눈은 흔들림 없이 그를 향해 있었다.“조 교수님, 왜 절 해고하신 거예요?” “일주일 병가 낸 게 문제였어요? 아니면 프로젝트에서 뭐 잘못된 거라도 있었나요?”재석은 조용히 수아를 응시하다가, 문득 작게 웃었다.“이수아 선생님, 경찰이 못 밝혀낸다고 해서,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봐요? 자세히 얘기해줘요? 모두 들을 수 있게?”그 말에, 수아 마음속 마지막 희망 하나가 차갑게 꺼져버렸다.‘알고 있었어...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야.’‘그럼에도 지금까지 아무 말 안 하다가, 오늘...’그녀는 마치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처럼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속에 쌓여 있던 분노는 어디로 갔는지, 기운 빠진 사람처럼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미진은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말하려다 말았다. 하지만 재석의 깊고 차가운 눈빛이 자신을 스치자, 그제야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아...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구나.’ 순간,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곱씹던 미진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추측 하나가 떠올랐다.그리고 미진의 시선은, 동정에서 충격으로 바뀌었다.진욱은 이미 눈치챘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오직 태민만이 아직 그 정답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수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수아야...”“꺼져! 건들지 마!!”수아는 그대로 태민의 손을 뿌리치고, 실험실을 박차고 나갔다. 허둥지둥, 마치 도망치듯.‘왜... 왜 조미진랑 전진욱이... 그런 눈으로 날 본 거야...?’ ‘설마... 그 사람들도... 눈치챈 건가?’모든 사람에게서 밀려난 채, 홀로 남겨진 태민은 허공을 향한 두 손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왜, 다들 나만 빼고 알고 있는 거야...’재석은 말없이 돌아서며 실험대로 향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1화

    결국, 실험실에서 재석이 누군가를 내보내는 데는 한마디면 충분했다.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 누군가가 이런 방식으로 떠나게 될 줄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미진은 잠시 멍해졌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갑자기‘계약 종료’라는 통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수아가 병가 중이긴 한데... 설마 그 병이 심각해진 건가?’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수아 상태가 안 좋아진 건가요?”하지만 그렇다 해도 ‘계약 종료’는 너무 가혹했다. 재석은 단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사람을 냉정하게 잘라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진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혹시 자세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재석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수아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태민이 인계할 거야. 오늘 중으로 인수인계 마무리해.” 이름이 불리는 순간, 태민은 마치 누가 뒤통수를 내리친 듯 멍해졌다. ‘뭐...? 내가?’그는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귀도 막힌 것처럼 주위 소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온 신경이 ‘수아가 잘렸다’는 그 사실에 꽂혀 있었다.그때, 옆에 앉아 있던 미진이 책상 아래로 태민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태민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고, 멍하니 재석을 바라봤다. “교수님, 왜죠?”재석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또 그 눈빛이었다. 무표정하면서도 단호하고, 어떤 설명도 허락하지 않는.그리고 결국, 재석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회의실엔 놀람과 당혹, 멍한 표정들이 뒤섞인 채로 몇 초간 정적만 흘렀다.오전 내내 실험실 분위기는 무겁기 짝이 없었다. 태민은 여러 번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수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만약 모른다면...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지...?’재석은 끝내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태민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저런 결정을 내릴 정도라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0화

    그날 아침, 별다른 것 없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잠에서 깨자마자, 태민은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했다. 혹시 수아에게서 연락이 와 있진 않을까...부재중 전화, 메시지 알림은 있었지만... 전부 다른 사람이었다.‘오늘도 아니야.’실망감이 스르르 밀려왔다. 태민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씻고, 옷을 챙겨 입고,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막 실험실에 도착하자, 태민이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떴다.수아에서 온 전화였다.“수아야?! 드디어... 너 왜 그동안 연락 안 했어? 나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나...”[손태민, 진짜 왜 이렇게 집착하냐?!]단 한 마디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태민의 정신이 멍해졌다.[계속 전화하고, 계속 메시지 보내는 게 그렇게 재밌어? 내가 안 받고, 안 보는 거면 알아서 눈치껏 그만해야지! 왜 자꾸 연락하는데? 얼마나 더 해야 만족할 건데? 진짜 짜증 나!]“수아야...”태민은 당황해 목소리가 떨렸다.“나는 그냥... 네가 너무 연락이 없으니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걱정돼서 그랬어...”[걱정?]전화기 너머로, 조소 섞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내가 뭘 어쨌다고 걱정을 해? 너 진짜... 왜 그렇게 남 일에 다 끼어들고 싶어 하는 거야? 다 간섭하고, 다 챙기고.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태민은 눈앞이 흐려졌다.‘난 그냥 좋아하니까... 그게 다였는데.’“난 그냥, 너한테 잘해주고 싶었어...”[됐어, 잘하고 못하고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제발, 더 이상 전화도 하지 말고, 메시지도 보내지 마. 지금은... 그냥 혼자 있고 싶어.]뚝-태민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태민아? 앞 좀 보고 다녀!”실험실 입구. 미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태민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쓰레기통을 걷어찰 뻔했다.“아, 죄송해요...”그는 황급히 쓰레기통을 세워놓고 어색하게 웃었다.“자, 가자.”미진이 그를 불렀다.“어디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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