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주덕순은 판매원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했다.“내일 사인하면 안 될까? 내일 꼭 사러 올게!”판매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그래요, 그럼 내일 다시 오세요. 하지만 그 전에 다른 손님이 계약을 한다면 저도 방법이 없어요.”주덕순은 이를 악물었다.“그럼 내가 전화 좀 할게, 응?”“그래요.”주덕순은 VIP 룸에서 나와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전화를 걸기 전, 그녀는 특별히 고개를 돌려 이미숙과 정은을 살펴보았다. 그녀들이 절대로 들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주덕순은 번호를 눌렀다.“여보세요? 아버지, 저예요. 전에 새 집을 사려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 오늘 레이크 다이아에 왔는데... 맞아요, 바로 요즘 가장 잘 팔리는 그 건물이에요! 제가 시율이 아빠랑 다 봤는데, 환경이 너무 좋아요... 맞아요,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럼 오늘 오셔서 바로 계약을 하시지 그래요? 그래야 저희도 마음이 놓이죠...”주덕순은 돈이 없었기에 다른 계획을 하고 있었다.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집은 나름 괜찮았지만, 레이크 다이아와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마침 주덕순의 부모님이 집을 바꾸려 했기에, 그녀는 먼저 자신의 부모님이 이 건물을 사게끔 설득했다. ‘앞으로 두 분에게 떼를 좀 쓰면, 우리가 지금 지내는 집과 바꿔주실 거야. 어차피 그 집도 방이 3개라서 엄청 넓은 데다가, 자식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으니, 돌아가시면 이 집도 다 내 거잖아? 내가 미리 들어가서 사는 것뿐이이라고. 집 명의는 일단 두 분의 이름으로 쓰자. 전액으로 다 지불한 후에 다시 내 명의로 바꾸면 돼. 그때 가서 직접 증여 절차를 밟으면 세금도 절약할 수 있어.’“그럼 제가 판매원에게 말할게요. 두 분 지금 얼른 택시 타고 오세요. 맞아요. 인성 고등학교 근처에 있어요...”다른 한편, 주덕순이 이 집을 살지 말지, 또 누가 들어가서 지내고, 집은 누구의 명의로 되는지에 대해, 정은과 이미숙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들은 심지어 주덕순이 쇼를 하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니 주덕순은 질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소씨 가문 세 형제들 중, 첫째는 회사를 차려 사장님이 됐기에 돈이 확실히 많았다. 그래서 그들과 같은 일반 가정과는 아예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그 다음은 주덕순네였는데, 소진호는 비록 소진우보다 돈이 없었지만, 소진헌과 비하면 훨씬 부자였다. 주덕순 부모님 덕에 기업 대리로 일하고 있었으니, 평소에 한가할 뿐만 아니라 연봉도 수천만 원 넘었다.게다가 주덕순도 전기 시설의 관리직이었고, 지금은 소시율까지 공무원으로 들어갔으니, 그나마 풍족한 가정이었다.‘제일 잘 못 사는 게 작은 도련님네지. 연성대 나왔다고 잘난척은? 결국 고향에 돌아와서 교사가 되었잖아. 그것도 과외비 하나 못 버는 정직한 교사. 이미숙은 더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고. 듣기 좋게 말하면 작가, 사실은 그저 백수일 뿐이잖아. 그동안 무슨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저작을 썼는데? 얼마나 많은 책을 출판했는지, 또 저작권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데? 사인회도 한 번 열지 못한 사람이 작가라고? 집에 앉아서 빈둥빈둥 놀기만 했으면서!’원래 주덕순은 소진헌 앞에서 자랑하길 좋아했는데, 지금 가장 가난한 소진헌네가 갑자기 별장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니?! 그것도 L시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별장에서.주덕순의 부모님은 그동안 저축한 돈을 몽땅 내놓아도 결국 가장 작은 아파트 하나밖에 살 수 없었다.‘셋째가 무슨 돈이 있다고?’“여보, 요즘 도련님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도련님은 당신 친동생이잖아요?!”“우리는 평소에 얘기도 잘 하지 않았어. 게다가 당신도 그들과 적게 어울리라고 하지 않았어?”주덕순은 확실히 소진헌네와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같이 다니길 좋아하겠는가? 그녀는 심지어 이미숙이 돈을 빌려 달라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건데?”“도련님이 말도 없이 갑자기 별장을 하나 샀는데
소수정은 바로 중점을 알아차렸다.[정은이가 그 별장을 샀다고요?]“그래, 정말 대단한 아이야! 우리 시율보다는 훨씬 낫지. 시율이도 지금 공무원이 되어서 매달 정해진 월급만 받을 수밖에 없잖아...”[정은이에게 무슨 돈이 있는 거죠?]주덕순은 입술을 가리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요즘 젊은 아가씨들은 능력이 엄청 대단하다니깐. 명품 옷에 비싼 가방을 다 하고 다니고. 혼자 살 돈이 없지만, 남자들이 막 선물로 주고 그러잖아...”소수정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아이고, 내 입 좀 봐.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그래, 그럼 아가씨도 얼른 일 봐. 먼저 끊을게.”주덕순은 소수정이 낚인 것을 보며 바로 전화를 끊었다.소수정은 핸드폰을 꽉 쥐더니 생각에 잠겼다.주덕순은 소수정과 전화를 다한 다음, 또 박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저예요, 시율이 엄마...”[전화하길 잘 했네. 전에 회사 손님이 집에 와서 세배를 했는데, 술과 담배 그리고 특산물 좀 가져오셨어. 이미 두 몫으로 나누었으니까, 시간 있으면 정은이 엄마랑 같이 와서 가져가.]전에 박나영은 설날에 받은 물건을 주덕순에게 조금 나누어주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소진헌네에게 나누어주었다.주덕순은 마음이 씁쓸해지더니 또다시 질투를 하기 시작했다.“올해는 정은이네도 있는 거예요?”[전에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 동서에게만 주었는데, 올해는 많이 남아서.]‘아무리 많아도 난 다 받을 수 있는데.’“형님께서 늘 저희를 이렇게 생각하시다니, 정말 너무 고마워요. 그러나 정은이네는 아마도 그 물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예요.”[왜?]박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이제 레이크 다이아에 별장까지 샀으니 무슨 좋은 담배와 좋은 술을 사지 못하겠어요?”“레이크 다이아의 별장을 샀다고?” 박나영도 당연히 이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들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서 집을 본 적도 있었다. 아들이 결혼할 나이에 들어서자, 엄마인 그녀도 신혼집을 마련해야 했다.소인
“그래도 괜찮아. 대금을 받고 자금이 넉넉해지면, 가격을 좀 더 올려서 남의 별장을 사면 되잖아.”‘남이 살던 아파트를 사서 인훈이 신혼집으로 하자고? 그게 말이 돼?’박나영은 입술을 벌렸지만, 소진후가 이렇게 말한 이상 결국 포기했다. 게다가 지금 회사 사정이 확실히 좋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레이크 다이아의 별장 때문에 박나영은 매일 밤 잠을 설쳤다.사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했고, 포기하기엔 또 달갑지 않았다.[레이크 다이아 별장이라고? 확실해?]박나영은 전화 너머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주덕순은 웃으며 생각했다. ‘거 봐, 누구나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잖아. 가장 못 사는 도련님네가 별장을 샀다니.’“제가 그 구매 계약서를 직접 봤다니깐요! 가짜일 리가 없어요. 게다가 동서도 스스로 인정했고요. 정은이가 효도하고 싶다고 별장을 사줬다나. 아이고, 우리 시율이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요? 이렇게 보면 정은이 그 계집애는 인훈보다 더 나은 것 같네요!”‘인훈이는 비록 회사를 차렸지만, 부모님에게 별장을 사준다는 말을 한 적이 아예 없었잖아?’박나영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정은이야 줄곧 효심이 있는 아이였지. 그러나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났을까?]“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형님, 지금 젊은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절대로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요.”박나영은 더 이상 별장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언제 시간 나면 얼른 와서 물건 가져가.]“내일 갈게요. 시율이 아빠더러 퇴근하는 길에 들르라고 할게요.”[그래.]통화가 끝나자, 주덕순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소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당신은 왜 이 일을 온 세상에 떠벌리려는 거야? 진헌이네가 별장을 샀는데 어쩜 당신이 더 흥분한 거지?”이것은 주덕순 답지가 않았다.“내가 언제 떠벌렸다는 거예요? 다 같은 가족들끼리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정은이네가 별장을 산 것은 아주 큰 경사라고요!”“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소진호는 자신의
소수정은 슬리퍼로 갈아신은 다음, 고개를 들어 거실을 둘러보았다. 구석에는 포장된 여러 개의 박스가 조용히 소파 옆에 놓여 있었다.“오빠, 올케 언니, 지금 대청소를 하고 있는 거예요?”이미숙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그냥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옷을 치우고 있을 뿐이야.”“그럼 다 치운 거예요?” 소수정의 눈빛은 그 박스 위에 떨어졌다.“어, 거의 다.”“이사할 계획인가요?”“맞아.”“어디로요?”소진헌과 이미숙은 눈을 마주쳤는데, 이런 일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숨겨도 평생 숨길 수 없었으니 조만간 식구들 모두 알 것이다.소진헌이 대답했다.“근처에 새로 개발된 건물인데, 레이크 다이아라고 너도 알 거야.”“아파트를 사신 거예요?”“아니.” 소진헌은 고개를 저었다. “별장을 샀어.”소수정은 마치 금방 이 소식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움을 선보였다.“오빠, 레이크 다이아의 별장은 가장 싼 것도 8천만 원 정도 할 텐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걱정 어린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법을 어기는 일을 한 건 아니죠? 그건 절대로 안 돼요.”“내가 그럴 엄두가 어디 있겠어?” 소진헌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럼 이 돈은...”“우리 정...”“아빠!” 이때 정은이 갑자기 베란다에서 들어오더니 소진헌을 불렀다.“아빠도 참. 고모가 갑자기 찾아오셨는데, 무슨 일 있는지부터 물어보셔야지 혼잣말만 하시다니.”“그러네, 수정아, 웬일로 찾아온 거야?”평일에 찾아오지 않은 사람이 느닷없이 왔으니 틀림없이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어...’소수정은 멍해졌다. 그녀는 정은이 이때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또 자신이 말문이 막힐 줄은 더욱 몰랐다.“오, 오늘 이 근처에 접대가 있어서 잠깐 들렀어요.”“그렇군요. 고모 이제 금방 은행 책임자로 승진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엄청 바쁘실 줄 알았어요.”소수정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바쁜 와중에 짬을 낸 거야... 참, 정은
소수정은 간곡하게 충고를 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주 간단해. 우리 여자는 말이야,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부딪쳐도 절대로 삐뚤게 살 순 없어. 착실하고 침착하게 살아야지,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면 안 돼. 요행심리는 더욱 가지면 안 되고!”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확실히 그렇죠.”“너도 찬성하는 거야, 응?” 소수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은이 아직 이성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럼요.”“그래, 그럼 나도 이제 마음이 놓이네.”소수정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한 한 빨리 계약 취소해 버려. 수수료가 조금 들겠지만, 그래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어?”정은은 여전히 영문을 몰랐다.“왜? 아쉬워?” 소수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방금 내 말을 아예 듣지 않았던 거야?’정은은 그제야 그녀의 목적을 알아차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우선 저도 고모께서 방금 하신 말씀에 동의해요. 여자는 확실히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죠. 하지만...”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저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저는 지금 고모께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시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절대로 따지지 않을 거예요.”‘이제 나도 말을 아주 분명하게 말한 셈이겠지? 아이큐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그리고 그 별장은 제가 제 부모님을 위해 산 거예요. 계약도 이미 체결했기 때문에 취소는 불가능해요. 앞으로 인생 경험을 공유하실 때, 선을 좀 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건의하실 순 있지만, 굳이 저에게 명령을 내리실 필요가 있을까요?”방금 ‘계약을 취소해’라는 말 한마디는 이미 정은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렸다.듣기 좋게 말하면 조언을 하는 거지만, 듣기 싫게 말하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이었다.정은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그녀의 예상대로 소수정은 씩씩거리며 떠났다.“부끄러운 줄도 모르다니! 어른한테 감히 말대꾸를 해?!”소진헌은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정은아,
채소, 닭, 생선까지 기른다면, 류춘미네 식구들이 먹기에 충분했다!“어머, 이사 가는 거야?” 류춘미는 정원에 서서 팔을 안고 웃으며 물었다.소진헌은 그녀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고, 낑낑거리며 땅을 팠다. 이미숙은 방안에서 류춘미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내딛던 발을 바로 거두었다.‘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사람이야.’류춘미는 입을 삐죽거렸다.“득의양양하긴? 결국 나한테 쫓겨난 셈이잖아...”...“류 씨, 장 보러 가는 거야?”류춘미는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평소에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만났다.“그래, 계란 좀 샀어. 이 시간에 가면 오전보다 값이 절반 싸다니깐!” 류춘미는 의기양양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건 뻥이 아니었는데, 이 동네에서 그녀보다 더 ‘알뜰’한 사람은 없었다.“그럼 다음에 나도 이 시간에 사러 가야지. 참, 그거 들었어? 네 옆집에 살던 그 소 선생님이 이사 갔다며?”류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어느 동네의 집을 세냈는지. 그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보다 더 편리하겠어?”‘흥! 반 백 살이 된 사람이 이런 일로 이사를 가다니. 그래, 이사 가길 잘했지. 그럼 나도 두 달마다 선반에 올라가서 그 귀찮은 꽃들을 자를 필요가 없잖아.’상대방은 목소리를 낮추었다.“전에 너와 다퉜다고 이사 간 건 아니겠지?”류춘미는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그건 나도 모르지. 만약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소 선생도 참 소심한 사람이야!”“그래도 네가 대단하긴 해. 헤헤, 앞으로 그들의 정원에다 채소를 심으면 딱인데...”“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류춘미는 흥분해하며 말했다.“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이떄 다른 한 이웃이 황급히 지나갔다.“빨리 떡 받으러 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늦게 가면 없을지도 몰라...”류춘미가 물었다.“웬 떡이래?”“소 선생님이 떡을 돌리고 있잖아. 두 사람 이웃이니 벌써 받았겠군. 나도 빨리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떡이 다 떨어질지도...
소진헌이 말했다.“그럼 저 먼저 집사람과 상의 좀...”[상의?] 진말숙은 기분이 언짢았다.[뭘 상의한다는 거야? 넌 남자이고,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이렇게 간단한 일을 아내에게 물어봐야 결정할 수 있는 거야?]“어머니, 제가 아무리 집안의 주인이라고 해도 집사람에게 미리 말을 해야죠. 이건 기본적인 존중이잖아요...”[정말 못났구나! 그래 상의해 봐. 정은이 엄마가 동의하면 그만이지만,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나와 네 아버지는 내일 꼭 갈 테니까!]말이 끝나자 진말숙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왜 그래요? 누구 전화예요?” 이미숙은 정원으로 들어서자 남편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우리 어머니.”“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마침 이사한 걸 축하한다면서, 내일 정월 대보름에 우리 집에 오실 거래...”“그래요.” 이미숙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큰 형님네와 작은 형님에 그리고 아가씨까지 모두 불러요.”...이튿날 아침, 이미숙은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오후 4시가 되자, 다른 식구들도 모두 도착했다.주덕순은 들어간 이후 좌우를 두리번거렸는데, 보면 볼수록 점점 질투를 했다.비록 소진헌네가 고급 별장을 샀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여전히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그래서 말이 가장 많고 또 잘난 척하길 가장 좋아하는 주덕순은 들어온 후 보기 드물게 침묵을 지켰다.소진호가 팔로 그녀를 툭툭 치자, 주덕순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도련님, 동서, 정말 축하해.”소시율도 오늘 이곳에 따라왔다. 그녀는 이미숙을 바라보며 물었다.“작은 어머니, 저 집 좀 구경해도 될까요?”“그럼.”시율은 거실에서 두 바퀴 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소진우는 너무 바빠서 오늘 오지 않았지만 박나영이 대신 왔다. 그녀는 심지어 돈을 가득 넣은 봉투를 이미숙에게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예쁜 별장이야. 이사 온 걸 축하해.”이미숙은 거절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받을
정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험실 시정은 사실이고 진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래서 따질 필요가 없었다.그녀가 다시 앉자, 마침 강서정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서정은 참지 못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소정은, 너도 이렇게 당하는 날이 있다니.”“인생에는 항상 기복이 있는 법이지. 사람이라면 다 운이 나쁠 때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러나 너희들도 조심해, 앞으로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뻔뻔하긴!”정은은 앞을 쳐다보며 얼굴에 노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서정은 정은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엄청 화가 났다.“넌 송 교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젊었을 때의 오 교수님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 교수님은 이미 늙으셔서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넌 그런 교수님의 학생이 되었으니, 세력도 없고 그저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당초에 내가 너와 그렇게 싸우며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네가 이겼고, 내가 졌잖아. 그러나 지금 일이 또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한 번 이겼다고 해서 평생 이긴 것은 아니야. 졌다고 해서 앞으로 줄곧 지는 것도 아니고. 너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서정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대학원 시험에서 일등을 하면 또 뭐가 어때서? 면접 시험을 잘 봤다고 또 뭐가 달라지는데? 스스로 돈을 내서 CPTR을 샀지만, 결국 실험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으로 전락했잖아?’“소정은, 넌 우리 오빠와 헤어진 후에 어째서 상황이 점점 더 나빠졌니? 대학원에 붙으면 아주 잘난 거라 생각했던 거야? 우리 오빠가 널 안중에 둘 줄 알았어? 우리 엄마가 너라는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냐고? 꿈이나 깨!”정은은 웃으며 눈가에 웃음기가 가득했고, 엄청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네 말의 뜻인 즉... 내가 대학원 시험에서 확실히 성공을 거둔 거잖아. 네 오빠는 확실히 내 성적에 놀랐고, 네 어머니도 나란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 맞지?”“너..
12월 말, J시는 겨울에 들어선 후 두 번째 눈을 맞이했다.이번 눈은 첫눈보다 더 많이 내렸고, 이틀 연속 내렸기에 J시 전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이른 아침, 정은은 미안함을 안고 재석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 정은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재석은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가슴이 조여졌다.“무슨 일이야?!”“그런 거 아니에요!” 시간이 확실히 이르고 너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정은은 더욱 미안해지더니 또 좀 부끄러워했다.“나 때문에 깬 거죠?”“아니야, 원래 일어날 시간이거든.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지난번에 그 눈놀이 도구 말인데요... 아직 있어요?”재석은 멍해졌다.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눈은 확실히 그쳤다.“이렇게 일찍 내려가서 눈놀이를 할 거야?” 재석은 생각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정은은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네! 일찍 내려가야 밟힌 흔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깨끗하잖아요.”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꼭 어린아이 같아.”“눈놀이에 어른과 아이가 있나요? 놀고 싶으면 노는 거죠.”“잠깐만 기다려.”말이 끝나자 재석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안에는 전에 둔 오리, 공룡, 곰돌이 그리고 삽 등이 있었다.“고마워요 선배님! 나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정은은 통을 받고 몸을 돌려 재빨리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10분 뒤, 단정하게 차려입은 재석이 아래층에 나타났다.정은은 한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하얀 패딩, 크고 빨간 모자, 주위의 눈과 하얗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오직 그 빨간색만 선명하고 눈부셨다.“선배님! 이리 와요.”정은이 재석을 향해 웃었다.재석은 손을 흔들었다.“너희들끼리 놀아.”정은은 가볍게 흥얼거리며 몸을 돌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파헤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무언가를 세게 던졌다.손바닥만 한 눈덩이가 재석을 향해 날
인훈은 말을 하지 못했다.정은이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이제 손 놓아도 돼요.”현빈은 웃으며 마치 그제야 알아차린 듯,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섬세하고 얇은 어깨는 패딩을 사이에 두고도 여전히 뼈를 만질 수 있었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도 현빈의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현빈은 온몸이 오그라들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정은은 몸을 돌려 현빈에게서 유연하게 벗어났다.현빈은 반응이 빨랐는데, 정은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긴 팔을 뻗어 다시 그녀를 잡아당겼다.한 사람은 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갔다.하나는 도망가고 다른 하나는 쫓아갔다.정은은 화가 났다.“심현빈 씨! 작작 좀 하면 안 돼요?!”남자는 눈가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좋아, 드디어 날 심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네.”...두 사람이 밀당을 하는 사이, 재석은 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고, 손에 종이주머니를 들고 있었다.불빛 때문인지, 그의 반쪽 얼굴이 그늘 속에 숨어 있어서 지금 표정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다.“선배님?” 정은은 바로 재석을 발견했다.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걸음을 들어 다가오더니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에 시선이 떨어졌다.인훈은 자신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것이 아니었다.현빈은 코트에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목도리를 하지 않았다.“조 교수님!” 인훈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여기서 만났다니, 정말 공교롭네요!”“공교롭긴요. 일부러 찾아온 거예요.”“네?”재석은 주머니에 든 목도리를 꺼내 앞으로 다가갔고,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를 벗긴 다음 현빈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정은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방금 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네 두 친구를 만났는데, 너에게 목도리를 돌려주려고 했던 거야. 나도 마침 오는 길이라 대신 너한테 주겠다고 했어. 두 사람 야식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거든.”“고마워요, 선배님! 또 귀찮게 했네요.”정은은 목도리 안으로 움츠러
가로등 아래에서, 정은 그들은 걸으면서 계속 말을 했다.찬바람이 쌩쌩 불자, 내쉬는 숨결은 순식간에 안개가 되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정은아, 밀크티 마실래? 오빠가 쏠게.”인훈은 흰 이빨을 드러냈다.정은이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남자가 그녀 앞에 와서 멈추었다.세 사람의 의혹을 맞이하며 그 사람은 마술사처럼 뒤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꺼내 정은에 건네주었다.“안, 안녕! 난 이 학교 대학원 3학년의 학생이야. 그, 그동안 널 주목해 왔어... 이 꽃은 너에게 줄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그, 그리고, 우리 서로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을까? 널 처음 봤을 때 난 너에게 첫눈에 반했거든. 매우 갑작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나 자신도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어. 나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학교 밖에서 이런 일에 부딪쳤다니.정은은 가게에서 나올 때, 오늘 마침내 ‘우연히’ 도겸과 경혜를 만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뜻밖에도 남의 고백을 받았다니.인훈은 반응하여 가장 먼저 현빈의 표정을 살폈다.‘이야, 완전 열받은 표정이네. 어쩔 수 없지, 우리 정은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하잖아? 밥을 먹으러 나오다가 고백까지 받다니. 헤헤...’정은은 앞에 있는 꽃을 보며 한순간 침묵했다.“꽃은 정말 예뻐요...”남자는 바로 웃으며 눈에서 빛이 났다.“그럼 받...”“하지만 난 받을 수 없어요, 미안해요.”“왜, 왜?”“우선, 나는 그쪽을 모르고, 우리도 친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나에게 꽃을 주다니, 난 그 꽃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자격 같은 거 필요 없어.”남자는 다급히 설명하려 했다.“이거 그냥 너에게 주는 거야.”“그럼 더 받으면 안 되죠. 장미는 사랑을 대표하고, 오늘 내가 이 꽃을 받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누구나 다 알잖아요. 미안해요.”“이게 아니라, 내가 너에게 꽃을 선물한 것
“다 심 대표님의 그 두 공사팀 덕분이야...”원래 그들은 기초 토목 건설을 책임졌지만, 인훈은 곧 자신이 상대방의 실력을 얕잡아 봤다는 것을 발견했다.기초 토목 건설을 제외하고, 이 사람들은 인테리어, 자재 감식까지 훌륭했다.그래서 토지 건설이 완료된 후, 인훈은 당분간 공사팀을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이어서 공사팀으로 하여금 내부 인테리어와 스마트 배치 제어까지 완성하게 했다.“심 대표님, 무슨 문제 없죠?”정은은 이 말을 듣고 인훈과 함께 현빈을 바라보았다.현빈은 정은의 눈빛을 마주하며 살짝 웃었다.“당연히 없죠.”정은이 입을 열기만 하면, 현빈은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올 수 있었다.“고마워요, 심 대표님!”“현빈 오빠라 불러.”‘또 시작이네.’인훈이 말했다.“헤헤... 현빈 형 고마워요.”현빈은 깜짝 놀랐다.다 먹자, 인훈은 계산하려고 했다.현빈은 이미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사장님, 계산이요.”“심 대표님, 식사 끝나셨어요? 오늘 꽃등심 맛은 어때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정은을 보았다.“맛 어때?”사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정은은 사실대로 말했다.“맛있어요.”“그럼 됐어요! 최근 이 요리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저희 예전의 간판 메뉴보다 더 잘 팔리고 있어요. 장사도 많이 좋아졌고요. 말하자면 심 대표님의 소중한 제안 덕분이기도 하죠.”현빈은 돈을 지불하고 핸드폰을 거뒀다.“정은이 덕분이죠.”사장님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애매한 눈빛으로 정은과 현빈을 바라보았다.“그럼요! 다 고맙죠!”문을 나서자, 찬바람은 옷 안으로 파고들어갔다.정은은 재빨리 패딩 지퍼를 당겼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다음 순간, 현빈은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그녀의 목에 둘렀다.정은은 멈칫하더니 얼른 벗으려 했다.“아니에요, 지퍼를 높게 당기면 바람을 막을 수 있어요...”그러나 현빈은 듣지 않았다.“그냥 두르고 있어.”...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민지와 서준은 실험실에서 떠
정은은 오미선을 위로한 다음 또 직접 그녀의 몸을 닦아주었다. 마지막에는 링거를 다 맞아야 퇴원할 수 있다고 신신당부했다.떠나기 전에 정은은 또 박애영을 한쪽으로 불렀다.“전 이미 교수님과 얘기를 마쳤으니, 내일 요양원에서 차를 보낼 거예요. 밖에 있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박애영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그래도 정은이 너밖에 없구나! 나도 말렸지만 효과가 없었어. 네가 나서니 바로 해결됐잖아. 안심해, 교수님을 잘 돌볼 테니까!”“그럼 수고 많으세요.”“수고는 무슨...”정은이 간 후, 박애영은 문을 밀고 병실로 들어갔다.오미선은 그녀의 뒤를 쳐다보았다.“정은이 갔어?”“네, 갔어요. 가기 전에 특별히 저에게 교수님 잘 챙겨드리라고 했어요. 정은이도 정말 정성을 다했어요.”오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은이는 참 좋은 아이지. 다 내가 쓸모없어서 그래. 늙어서 아이들을 위해 자원을 쟁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송지혜의 괴롭힘을 받게 하다니.”“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정은은 교수님을 탓한 적이 없어요. 하물며 정은이도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니잖아요.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한 이상, 틀림없이 계획이 있을 거예요.”“정은이는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지...”박애영은 흠칫 놀랐다.“핸드폰 줘. 전화 한 통 좀 할게.”...시간은 쏜살같이 지나며 어느덧 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시간이 되었다.세 사람은 여전히 학교 밖의 그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빈은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미리 음식을 시켰다.인훈과 정은은 하나는 공사장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실험실에서 왔으며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오빠!”“어, 정은아, 넌 왜 목도리도 안 하고 나왔어? 안 추워?”“목도리를 실험실에 두고 왔어. 괜찮아. 지퍼를 당기면 얼굴을 다 가릴 수 있거든.”식당에 들어간 두 사람은 단번에 현빈을 보았다.양복 차림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꼿꼿했고, 어깨가 넓어서
“그래서 어제 아침에 도대체 누구의 전화를 받으셨어요? 화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니.”“흥!”정은도 서두르지 않았다.“제가 한 번 맞춰볼게요... 학장님은 아닐 텐데. 줄곧 이런 사소한 일들을 상관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럼 백 부총장님? 그런데 최근 스폰서의 고소로 방금 처벌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꼬리를 숨기셔야 할 텐데...”여기까지 말하자 정은은 잠시 멈추더니 눈알을 굴렸다.“이 두 사람을 모두 배제한다면, 생명과학대학에서 교수님을 이렇게 도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송지혜 교수님일 뿐이겠죠?”이 이름을 듣자마자 오미선은 눈을 부릅떴다.“그 사람 언급하지 마!”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심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그 교수님밖에 없는 것 같네요.”“심심해? 만약 송지혜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속고 있겠지! 나한테 어떻게 실험실이 소방대 시정 요구를 받았다는 이렇게 큰 일을 속일 수가 있니?!”“속이지 않으면요? 교수님께서 먼 M국에서 날아와 학원 측, 심지어 학교 측을 찾아가서 따지는 것을 지켜보라고요? 그러다 결국 저희의 실험실이 확실히 소방 규정에 맞지 않아 시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실 거예요. 이 시정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빠르면 2, 3개월, 느리면 1년 정도 걸릴 거고요.”“이쪽도 똑같이 처벌하고, 저쪽은 교수님이 이유 없이 세미나를 결석하고, 자의로 팀을 떠난 일로 학교 측의 문책을 받으시라는 거예요?”“이번 일로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겠어요? 당연히 송지혜 교수님 아니겠어요?”오미선은 화가 나서 되려 웃음이 나왔다.“그럼 나란 교수님은 조금도 쓸모가 없겠구나?”정은은 경탄하며 천천히 말했다.“그거 알고 계세요? 이번 소방검사는 시에서 조직한 것이었어요. 만약 일반적인 교내 검사일 뿐이라면, 저도 두말없이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사람을 찾아 평정하게 하라고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요. 시 소방대가 주도하고 학교 측은 협조만 하면 됐거든요.”오
“왜? 왜 날 이렇게 보는 건데?”“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선배님이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요.”‘진짜 엄청 좋은 사람이야.’“가자, 이렇게 서 있으면 안 추워?” 재석이 웃었다.정은은 손을 비비며 대답했다.“좀 춥네요.”...또 토요일이 찾아왔다.정은은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또 두유를 마셨다.재석이 외출할 시간에 맞춰, 정은은 샌드위치와 두유를 봉지에 담아서 그에게 건네주었다.“아침밥이야?”“네!”“마침 안 먹었는데. 고마워.”재석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고, 정은도 가려고 했지만 먼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싶었다.바닥을 다 닦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정은아! 나 애영 아주머니야! 얼른 병원에 와서 오 교수님 좀 보러 와...]병실에서.정은은 황급히 문을 밀고 들어왔다.“교수님?!”오미선은 병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고, 박애영은 옆에서 초조하게 머리채를 붙잡고 있었다.정은을 보고서야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정은아, 왜 이제야 왔어!”“아주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교수님이랑 같이 요양하러 갔잖아요?”매년 서비대학교는 외지에 나가 요양하는 정원이 있었는데, 교직원 복지라고 할 수 있었다.대선배인 오미선은 이미 명단에 있었지만, 예년처럼 그녀는 스스로 포기했다.올해도 정은이 말렸던 것이다. 학교에 아무 일도 없고, 자신이 민지와 서준을 데리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게다가 시일내에 아무런 중요한 세미나도 없었기에 오미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했다.“그래, 어제 출발했어야 했는데, 아침에 교수님이 전화를 받으신 거야. 누가 전화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어차피 전화를 받고 나서 교수님이 쓰러지셨는데, 난 재빨리 병원으로 데려다준 거야.”“의사 선생님은 뭐래요?”“너무 흥분해서 그런 거래. 이틀 동안 입원해서 관찰을 받아야 하는데, 오늘 아침, 교수님이 퇴원하시겠다고 난리를 부리신 거야. 난 교수님에게 남은 두 링거를 다 맞고
기사는 차를 몰고 온 다음, 길가에 천천히 멈추었다.“사모님.”강서원은 차에 올라탄 다음, 실망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집으로 가요.”차가 떠나는 순간, 재석과 정은은 쇼핑백을 들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그들은 마침 어깨를 스쳤다.재석이 말했다.“그냥 다 줘.”말하면서 그는 정은에게서 쇼핑백을 받았다.정은도 거절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좀 무거웠다.두 사람이 골목 어귀로 걸어가자, 재석이 갑자기 물었다.“요즘 이웃 대학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거야?”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실험실은 설비가 완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넓어요. 마 교수님도 엄청 친절하시고, 그 선배님들도 아주 다정해요. 소모품을 수령할 때, 꼭 우리를 도와 기록해 줬거든요.”그러나 이 소모품들도 다 정은이 견적서에 따라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원래 실험실을 무료로 빌려 쓰는 것 자체가 쑥스러웠으니, 또 어떻게 공짜로 남의 소모품을 쓰겠는가?재석은 멈칫하더니 계속 물었다.“무슨 문제 없어?”정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한동안 밀렸던 진도도 점점 따라잡고 있었다. 전공 과목에서도 정은은 크게 어려움 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지난번 수행평가에서 ‘A+’를 받지 못하고 ‘A’에 그친 것이 아쉬웠지만, 그것은 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어 반 전체가 만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머릿속에서 최근의 큰일을 모두 한 번 생각한 다음, 정은은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는 갑자기 무엇을 떠올렸다.“지금 망설이고 있잖아. 학교 식당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정은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오늘 오전에 참석한 회의에서 마 교수님을 만났거든.”정은은 마음이 다급해지더니 이어서 미안함을 드러냈다.“미안해요, 뜻밖에도 마 교수님께서 그 소란을 듣게 되실 줄이야. 선배님에게 다 말한 거예요?”말을 마치자, 정은은 고개를 푹 숙였다.부끄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