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헌이 말했다.“그럼 저 먼저 집사람과 상의 좀...”[상의?] 진말숙은 기분이 언짢았다.[뭘 상의한다는 거야? 넌 남자이고,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이렇게 간단한 일을 아내에게 물어봐야 결정할 수 있는 거야?]“어머니, 제가 아무리 집안의 주인이라고 해도 집사람에게 미리 말을 해야죠. 이건 기본적인 존중이잖아요...”[정말 못났구나! 그래 상의해 봐. 정은이 엄마가 동의하면 그만이지만,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나와 네 아버지는 내일 꼭 갈 테니까!]말이 끝나자 진말숙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왜 그래요? 누구 전화예요?” 이미숙은 정원으로 들어서자 남편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우리 어머니.”“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마침 이사한 걸 축하한다면서, 내일 정월 대보름에 우리 집에 오실 거래...”“그래요.” 이미숙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큰 형님네와 작은 형님에 그리고 아가씨까지 모두 불러요.”...이튿날 아침, 이미숙은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오후 4시가 되자, 다른 식구들도 모두 도착했다.주덕순은 들어간 이후 좌우를 두리번거렸는데, 보면 볼수록 점점 질투를 했다.비록 소진헌네가 고급 별장을 샀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여전히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그래서 말이 가장 많고 또 잘난 척하길 가장 좋아하는 주덕순은 들어온 후 보기 드물게 침묵을 지켰다.소진호가 팔로 그녀를 툭툭 치자, 주덕순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도련님, 동서, 정말 축하해.”소시율도 오늘 이곳에 따라왔다. 그녀는 이미숙을 바라보며 물었다.“작은 어머니, 저 집 좀 구경해도 될까요?”“그럼.”시율은 거실에서 두 바퀴 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소진우는 너무 바빠서 오늘 오지 않았지만 박나영이 대신 왔다. 그녀는 심지어 돈을 가득 넣은 봉투를 이미숙에게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예쁜 별장이야. 이사 온 걸 축하해.”이미숙은 거절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받을
주덕순은 감탄했다. 비록 악의가 없는 것처럼 들렸지만, 그 말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박나영은 뭔가를 떠올리며 물었다.“난 아직 정은이 네가 J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데, 일반 직장인은 아니겠지? 일반인이라면 수천만 원을 벌기가 쉽지 않을 텐데.”정은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미숙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신이 대신 입을 열었다.“형님들도 참, 우리 정은이는 대학을 졸업한 후 비록 계속 대학원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집에 박혀 놀지도 않았어요. 중간에 일자리를 바꿔 가며 돈을 조금 모은 것뿐이죠.”소수정은 차갑게 웃었다.“정말 스스로 돈을 벌어서 모은 거면 좋겠지만, 정은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봐 두렵네요.”이미숙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아가씨, 우리 정은이를 관심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정은이도 이제 성인이 됐으니 자신의 계획이 있겠지. 우리는 부모로서 그냥 응원해줄 거야.”주덕순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계획? 동서 말을 들으니 정은이에게 이미 다른 계획이 있는 거야? J시에 돌아가서 일자리를 찾는 거?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찾을 계획인가? 내년에 돌아올 때 또 수천만 원 들고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주덕순은 일부러 ‘목표’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었는데, 정은을 야유하는 게 분명했다이미숙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입을 열려고 했다. 이때 마침 정은의 핸드폰이 울렸다.“엄마, 저 전화 좀 받을게요...”“응, 그래.” 이미숙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참자, 참자.’“응, 수민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조수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필기시험 성적 나왔어. 너 빨리 점수 확인해 봐.]정은은 시간을 계산해 봤는데, 성적 발표하는 날이 확실히 오늘이었다!‘너무 바빠서 잊어버렸어...’“그래, 지금 바로 알아볼게.” 전화를 끊은 후, 정은은 바로 위층으로 뛰어갔다.침실로 돌아온 그녀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정은은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재빨리 수험표와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엔터키를 누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즉시 2층으로 달려갔다. 소리를 따라 정은의 침실에 도착하니, 눈 앞에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시율은 땅바닥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가방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모두들 뛰어들어 들어오자, 그녀는 즉시 울부짖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시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아줌마와 다름없었다.“시율아, 왜 그래? 엄마한테 말해.” 주덕순은 달려가서 시율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자, 우리 먼저 일어나자...”“싫어요! 오늘 소정은이 저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저 절대로 안 일어날 거예요!”정은은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너 바닥에 실컷 앉아 있어. 누워도 난 상관이 없으니까.”“너--”주덕순은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갑자기 웬 사과야?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엄마! 소정은이 절 때렸단 말이에요.”“뭐?” 주덕순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넌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니?”“둘째 큰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침실에 돌아오자마자 드레스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거든요. 저는 도둑이 든 줄 알고... 하지만 저도 궁금해요. 왜 시율이가 제 방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 또 물건을 뒤지는 소리가 났는지.”말하면서 정은은 바닥에 떨어진 두 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주덕순은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그랬구나... 시율이는 아마 궁금해서 네 물건을 뒤졌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다니, 그건 네 잘못이지!”“저도 그게 시율인 줄 몰랐어요. 도둑이 들어온 줄 알고 망설이지 않고 손을 쓴 건데. 정상인이라면 왜 남의 집에 와서 옷장을 뒤지겠어요, 안 그래요 둘째 큰어머니?”주덕순은 시율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시율은 마음이 찔려서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오해였구나. 잘 풀렸으면 됐어. 그럼 이제 우리도 내려가서 식사할 준비해야죠?”이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핸드폰이 바로 소진헌의 옆에 있었기에 정은이 말했다.“아빠, 이리 주세요.”“어.”
‘소정은은 자신이 정말 예전의 그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대학을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공부를 하고 싶어? 꿈이나 깨! 이따가 점수가 나오면 엄청 창피하겠지!’박나영도 맞장구를 쳤다.“시율이가 이렇게 말하니까 나도 좀 궁금해지네.”소수정은 입술을 구부리며 웃었다.“그래, 다들 그렇게 궁금해하니 얼른 확인해 봐, 정은아. 우리 모두 보자.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점수가 높든 낮든, 합격하든 하지 못하든 다 괜찮아.”이미숙은 정은을 보며 바로 거절하려고 했다.그러나 정은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좋아요.”사람들은 컴퓨터 앞으로 둘러섰다. 정은은 방금 이미 수험표 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했기에 지금 엔터키만 가볍게 두드리면 점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아빠가 대신 눌러주세요.”“내가?”“네, 그때 수능 점수도 아빠가 확인해주셨잖아요?”“그래.” 소진헌은 손을 비비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엔터키를 눌렀다.로드 중이라는 표시가 나오자, 사람들 모두 숨을 죽였다.1초, 2초...“나왔어! 나왔어!”[총점수: 412]주덕순은 멍해진 시율을 떠밀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만점이 얼마인데? 400여 점도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은데...”시율은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다.“왜 말을 안 하는 거야?”박나영은 재빨리 놀라운 감정을 조절하며 가볍게 웃었다.“동서, 만점은 500점이야. 정은이의 성적은 아마 3위권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수석일 가능성도 있어.”주덕순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그제야 눈을 크게 떴다.“그럼 정은이는 서비대 대학원에 합격한 거예요?!”소수정은 무뚝뚝하게 말했다.“엄밀히 말하면 대학원 시험은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나뉘죠. 필기시험 성적만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주덕순은 가볍게 한숨을 돌렸다.‘그래, 정은이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합격할 수 있겠어. 3위권으로 들어가긴 개뿔...’박나영은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그러나 필기시험 성적도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일단
정은은 이미숙의 생일을 놓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생일 하루를 앞두고 제시간에 도착했다.이미숙은 책을 꼭 안으며 물었다.“내가 줄곧 이 원문책을 찾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니?”“그동안 줄곧 입에 달고 다니셨으니, 제가 모르는 게 더 말이 안 될 텐데요.”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흥, 그러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거야? 그래도 고마워, 우리 딸. 이 선물 너무 마음에 들어.”이미숙은 웃으며 다정하게 정은을 안았다. 그리고 물처럼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전에 줄곧 긴 머리를 하고 다녔잖아, 왜 이렇게 짧게 잘랐니?”정은은 이미숙에게 기대었다.“짧게 잘라서 보기 싫어요?”“아니. 우리 딸은 어떤 헤어 스타일을 해도 다 예뻐!” 이미숙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정은은 담담하게 웃으며 이미숙을 더욱 세게 안았다.“필기시험을 통과했으니 곧 면접시험을 봐야겠지?” 이미숙이 말했다.“이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정은은 멈칫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숙은 다정하게 웃었다.“나도 이 작은 도시가 널 가둘 수 없단 것을 진작에 알았지. 이제 너도 다 컸으니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잖아. 가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정은은 속눈썹을 가볍게 떨며 입을 열었다.“이번에 절대로 두 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주방에 있던 소진헌은 주걱을 들고 나왔다. 모녀가 서로에게 기댄 채 귓속말을 하는 것을 보며 그는 입을 열었다.“무슨 기밀이라도 얘기하는 거야? 빨리 손 씻고 밥 먹자!”“네!”이튿날, 정은은 J시로 돌아가는 고속열차에 올라탔다.두 주일 넘게 집을 비웠기에 집안은 쌀쌀했고 먼지까지 쌓였다.짐을 내려놓은 다음, 정은은 가장 먼저 어항 속의 물고기를 살펴보았다. 두 마리의 금붕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서 사료를 조금 주었다.그런 다음, 정은은 또 베란다의 화분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
정은 자신조차도 지금 아무런 자신이 없었다.재석의 새까만 눈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너도 그게 ‘만약’이라고 했잖아. 난 네가 통과할 수 있다고 믿어.”정은은 활짝 웃었다.“그럼 나도 선배님만 믿을게요.”...서비대학교 면접시험은 3월 초로 정해졌다.정은은 특별히 정장 한 벌에 굽이 낮은 검은색 구두를 선택했다. 단정한 차림새는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절대로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외출하기 전, 정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오렌지색과 녹색이 섞인 스카프를 꺼내 묶었다.평범하고 답답했던 정장은 순식간에 살아났다.어젯밤에 비가 내렸기에 지면은 축축했고, 바람도 촉촉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세상은 마치 비닐봉지라도 덮어씌운 것 같았다.정은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대기실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탄식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잔뜩 긴장했다. 그녀는 그래도 평온한 편이었다.“저기, 넌 긴장하지도 않은 거야?” 뒷좌석의 젊은 여자아이가 정은의 어깨를 두드리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아니. 그리 긴장되지가 않아.”그녀는 벼락치기를 싫어했기에 오늘을 위해 엄청 많은 준비를 했다.지금 정은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단지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의 흥분을 느낄 뿐이었다.“45번, 소정은 학생.”“네.”정은은 일어나서 옷의 주름을 편 뒤, 교실로 들어갔다.문에 들어서자, 정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일렬로 단정하게 앉아 있는 면접관 중에 뜻밖에도 재석이 있었던 것이다!남자는 오늘 회색 양복에 금테 안경을 쓰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이는 평소의 재석보다 좀 더 엄숙해 보였으며 더욱 인정사정 없어 보였다.그러나 다음 순간, 재석은 고개를 들더니 부드러운 눈빛은 정은의 얼굴을 스쳤다.정은은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혔다.이제 본격적으로 면접시험이 시작되었다.면접관은 우선 몇 가지 전문적인 질문을 던졌고, 정은은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나름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었다.나머지 몇 명의 면접관은 정은이 유창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많은 준비를
“에헴! 그렇긴 하지만 또 그게 아니에요.”“quasi-crystals가 또 뭐죠?”“준결정체라고 하는데, 준결정 체내의 원자 배열 조합이 반복 주기성 대칭에 따라 배열되지 않고, 원자 배열 방식이 결정체와 비결정체 사이에 있는 결정 구조예요. 그리고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다니엘 셰시트먼이라고, 2011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여받았어요.”“아, 그렇군요... 잠깐만요! 무슨 노벨상을 수여받았다고요?”“화학상이요.”“그런데 오늘은 생물학과 면접시험이 아닌가요?”‘왜 갑자기 물리와 화학에 대해 묻는 거지?’“소 교수님이 방금 말했잖아요. 자신의 질문은 생물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쉿! 사실 이 문제는 대학생에게 있어서 너무 어렵긴 하죠.”“앞의 몇 가지 질문에 아주 잘 대답했는데. 다만 운이 좀 나빴네요. 소 교수님이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할 줄이야...”“어려운가?” 재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물론 대답을 포기할 수 있어.”정은은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화이트보드와 기호펜 있나요?”‘이 문제의 중점은 data support, 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거야! 동시에 다른 학과의 능력을 고찰하는 거지.’“응.” 재석은 손을 들어 화이트보드를 준비하라고 했다.곧 화이트보드가 들어왔고, 그들은 펜을 정은에게 건네주었다.정은은 몸을 돌려 화학식을 적었다. 그리고 이 화학식을 접점으로 준결정의 원자 구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그중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리, 즉 20면체 원리와 황금 중치 원리가 있었다.이 두 가지 원리를 통해 가장 간단한 준결정 구조를 얻을 수 있으며, 이 모델은 Al-Mn 준결정의 고해상도의 모든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었다.이상은 화학 분야에 관한 지식이었다.곧이어 정은은 또 분형 기하학, 패턴 서열, 연관 측정, 연관 차원 등 몇 가지 측면에서 준결정체에 대한 공식을 추론했다. 그중 패턴 서열은 각각 2 단계, 3 단계, k단계에서 세분화되었다.이상은 수학 영역에 속했다.영어와 숫자가 빽빽
정은은 꽉 쥔 주먹에 힘을 풀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다음 자리를 떠났다.다른 한 면접관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며 농담을 했다.“재석아, 넌 이 학생에게 너무 엄격한 거 아니야? 방금 그 문제는 대학원 3학년의 학생이라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을걸.”재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훌륭할수록 난 그 학생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더욱 궁금해지거든.”‘정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잠재력이 있어.’...시험장에서 나오자, 정은은 수민의 톡을 받았다.일주일 전, 두 사람은 면접시험이 끝나면 함께 축하하기로 약속했는데, 수민은 이미 그녀들이 자주 가는 프랑스 레스토랑을 예약했다.정은은 차를 부를 준비를 했다.이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은 언니? 정말 언니였구나.”강서정도 오늘 면접시험을 보러 왔다. 하지만 그녀의 시험은 오후에 시작되었다.그녀는 긴장할까 봐 미리 와서 환경을 익히려고 했는데, 정은을 만날 줄은 몰랐다.“이곳엔...” 서정은 정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정은은 평온하게 대답했다. “면접시험 보러 왔어.”“필기시험을 통과한 거예요?!” 서정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목청을 높였다.“음.”“몇 점인데요?”“412점”“언니가 바로 우리 전공 필기시험 1등이었어요?!”정은은 의아해했다.“그래? 난 그런 일에 관심이 없어서...”“허, 시치미를 떼긴요? 재밌어요?” 서정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그녀는 392점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는데, 정은이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정은은 무척 억울했다. 그녀는 확실히 순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면접시험에 관한 문자를 받고, 또 시험 시간을 확인한 다음, 그녀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았다.보통 학교 홈페이지의 합격 명단은 필기시험 성적에 따라 순위를 매겼지만, 정은은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었다.“못 믿겠으면 됐어.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정은도 설명하기 귀찮았다. 서정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그녀에게 있어서 조금도
정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험실 시정은 사실이고 진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래서 따질 필요가 없었다.그녀가 다시 앉자, 마침 강서정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서정은 참지 못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소정은, 너도 이렇게 당하는 날이 있다니.”“인생에는 항상 기복이 있는 법이지. 사람이라면 다 운이 나쁠 때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러나 너희들도 조심해, 앞으로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뻔뻔하긴!”정은은 앞을 쳐다보며 얼굴에 노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서정은 정은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엄청 화가 났다.“넌 송 교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젊었을 때의 오 교수님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 교수님은 이미 늙으셔서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넌 그런 교수님의 학생이 되었으니, 세력도 없고 그저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당초에 내가 너와 그렇게 싸우며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네가 이겼고, 내가 졌잖아. 그러나 지금 일이 또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한 번 이겼다고 해서 평생 이긴 것은 아니야. 졌다고 해서 앞으로 줄곧 지는 것도 아니고. 너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서정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대학원 시험에서 일등을 하면 또 뭐가 어때서? 면접 시험을 잘 봤다고 또 뭐가 달라지는데? 스스로 돈을 내서 CPTR을 샀지만, 결국 실험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으로 전락했잖아?’“소정은, 넌 우리 오빠와 헤어진 후에 어째서 상황이 점점 더 나빠졌니? 대학원에 붙으면 아주 잘난 거라 생각했던 거야? 우리 오빠가 널 안중에 둘 줄 알았어? 우리 엄마가 너라는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냐고? 꿈이나 깨!”정은은 웃으며 눈가에 웃음기가 가득했고, 엄청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네 말의 뜻인 즉... 내가 대학원 시험에서 확실히 성공을 거둔 거잖아. 네 오빠는 확실히 내 성적에 놀랐고, 네 어머니도 나란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 맞지?”“너..
12월 말, J시는 겨울에 들어선 후 두 번째 눈을 맞이했다.이번 눈은 첫눈보다 더 많이 내렸고, 이틀 연속 내렸기에 J시 전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이른 아침, 정은은 미안함을 안고 재석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 정은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재석은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가슴이 조여졌다.“무슨 일이야?!”“그런 거 아니에요!” 시간이 확실히 이르고 너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정은은 더욱 미안해지더니 또 좀 부끄러워했다.“나 때문에 깬 거죠?”“아니야, 원래 일어날 시간이거든.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지난번에 그 눈놀이 도구 말인데요... 아직 있어요?”재석은 멍해졌다.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눈은 확실히 그쳤다.“이렇게 일찍 내려가서 눈놀이를 할 거야?” 재석은 생각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정은은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네! 일찍 내려가야 밟힌 흔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깨끗하잖아요.”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꼭 어린아이 같아.”“눈놀이에 어른과 아이가 있나요? 놀고 싶으면 노는 거죠.”“잠깐만 기다려.”말이 끝나자 재석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안에는 전에 둔 오리, 공룡, 곰돌이 그리고 삽 등이 있었다.“고마워요 선배님! 나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정은은 통을 받고 몸을 돌려 재빨리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10분 뒤, 단정하게 차려입은 재석이 아래층에 나타났다.정은은 한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하얀 패딩, 크고 빨간 모자, 주위의 눈과 하얗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오직 그 빨간색만 선명하고 눈부셨다.“선배님! 이리 와요.”정은이 재석을 향해 웃었다.재석은 손을 흔들었다.“너희들끼리 놀아.”정은은 가볍게 흥얼거리며 몸을 돌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파헤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무언가를 세게 던졌다.손바닥만 한 눈덩이가 재석을 향해 날
인훈은 말을 하지 못했다.정은이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이제 손 놓아도 돼요.”현빈은 웃으며 마치 그제야 알아차린 듯,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섬세하고 얇은 어깨는 패딩을 사이에 두고도 여전히 뼈를 만질 수 있었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도 현빈의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현빈은 온몸이 오그라들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정은은 몸을 돌려 현빈에게서 유연하게 벗어났다.현빈은 반응이 빨랐는데, 정은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긴 팔을 뻗어 다시 그녀를 잡아당겼다.한 사람은 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갔다.하나는 도망가고 다른 하나는 쫓아갔다.정은은 화가 났다.“심현빈 씨! 작작 좀 하면 안 돼요?!”남자는 눈가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좋아, 드디어 날 심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네.”...두 사람이 밀당을 하는 사이, 재석은 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고, 손에 종이주머니를 들고 있었다.불빛 때문인지, 그의 반쪽 얼굴이 그늘 속에 숨어 있어서 지금 표정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다.“선배님?” 정은은 바로 재석을 발견했다.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걸음을 들어 다가오더니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에 시선이 떨어졌다.인훈은 자신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것이 아니었다.현빈은 코트에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목도리를 하지 않았다.“조 교수님!” 인훈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여기서 만났다니, 정말 공교롭네요!”“공교롭긴요. 일부러 찾아온 거예요.”“네?”재석은 주머니에 든 목도리를 꺼내 앞으로 다가갔고,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를 벗긴 다음 현빈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정은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방금 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네 두 친구를 만났는데, 너에게 목도리를 돌려주려고 했던 거야. 나도 마침 오는 길이라 대신 너한테 주겠다고 했어. 두 사람 야식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거든.”“고마워요, 선배님! 또 귀찮게 했네요.”정은은 목도리 안으로 움츠러
가로등 아래에서, 정은 그들은 걸으면서 계속 말을 했다.찬바람이 쌩쌩 불자, 내쉬는 숨결은 순식간에 안개가 되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정은아, 밀크티 마실래? 오빠가 쏠게.”인훈은 흰 이빨을 드러냈다.정은이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남자가 그녀 앞에 와서 멈추었다.세 사람의 의혹을 맞이하며 그 사람은 마술사처럼 뒤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꺼내 정은에 건네주었다.“안, 안녕! 난 이 학교 대학원 3학년의 학생이야. 그, 그동안 널 주목해 왔어... 이 꽃은 너에게 줄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그, 그리고, 우리 서로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을까? 널 처음 봤을 때 난 너에게 첫눈에 반했거든. 매우 갑작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나 자신도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어. 나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학교 밖에서 이런 일에 부딪쳤다니.정은은 가게에서 나올 때, 오늘 마침내 ‘우연히’ 도겸과 경혜를 만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뜻밖에도 남의 고백을 받았다니.인훈은 반응하여 가장 먼저 현빈의 표정을 살폈다.‘이야, 완전 열받은 표정이네. 어쩔 수 없지, 우리 정은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하잖아? 밥을 먹으러 나오다가 고백까지 받다니. 헤헤...’정은은 앞에 있는 꽃을 보며 한순간 침묵했다.“꽃은 정말 예뻐요...”남자는 바로 웃으며 눈에서 빛이 났다.“그럼 받...”“하지만 난 받을 수 없어요, 미안해요.”“왜, 왜?”“우선, 나는 그쪽을 모르고, 우리도 친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나에게 꽃을 주다니, 난 그 꽃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자격 같은 거 필요 없어.”남자는 다급히 설명하려 했다.“이거 그냥 너에게 주는 거야.”“그럼 더 받으면 안 되죠. 장미는 사랑을 대표하고, 오늘 내가 이 꽃을 받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누구나 다 알잖아요. 미안해요.”“이게 아니라, 내가 너에게 꽃을 선물한 것
“다 심 대표님의 그 두 공사팀 덕분이야...”원래 그들은 기초 토목 건설을 책임졌지만, 인훈은 곧 자신이 상대방의 실력을 얕잡아 봤다는 것을 발견했다.기초 토목 건설을 제외하고, 이 사람들은 인테리어, 자재 감식까지 훌륭했다.그래서 토지 건설이 완료된 후, 인훈은 당분간 공사팀을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이어서 공사팀으로 하여금 내부 인테리어와 스마트 배치 제어까지 완성하게 했다.“심 대표님, 무슨 문제 없죠?”정은은 이 말을 듣고 인훈과 함께 현빈을 바라보았다.현빈은 정은의 눈빛을 마주하며 살짝 웃었다.“당연히 없죠.”정은이 입을 열기만 하면, 현빈은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올 수 있었다.“고마워요, 심 대표님!”“현빈 오빠라 불러.”‘또 시작이네.’인훈이 말했다.“헤헤... 현빈 형 고마워요.”현빈은 깜짝 놀랐다.다 먹자, 인훈은 계산하려고 했다.현빈은 이미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사장님, 계산이요.”“심 대표님, 식사 끝나셨어요? 오늘 꽃등심 맛은 어때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정은을 보았다.“맛 어때?”사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정은은 사실대로 말했다.“맛있어요.”“그럼 됐어요! 최근 이 요리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저희 예전의 간판 메뉴보다 더 잘 팔리고 있어요. 장사도 많이 좋아졌고요. 말하자면 심 대표님의 소중한 제안 덕분이기도 하죠.”현빈은 돈을 지불하고 핸드폰을 거뒀다.“정은이 덕분이죠.”사장님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애매한 눈빛으로 정은과 현빈을 바라보았다.“그럼요! 다 고맙죠!”문을 나서자, 찬바람은 옷 안으로 파고들어갔다.정은은 재빨리 패딩 지퍼를 당겼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다음 순간, 현빈은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그녀의 목에 둘렀다.정은은 멈칫하더니 얼른 벗으려 했다.“아니에요, 지퍼를 높게 당기면 바람을 막을 수 있어요...”그러나 현빈은 듣지 않았다.“그냥 두르고 있어.”...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민지와 서준은 실험실에서 떠
정은은 오미선을 위로한 다음 또 직접 그녀의 몸을 닦아주었다. 마지막에는 링거를 다 맞아야 퇴원할 수 있다고 신신당부했다.떠나기 전에 정은은 또 박애영을 한쪽으로 불렀다.“전 이미 교수님과 얘기를 마쳤으니, 내일 요양원에서 차를 보낼 거예요. 밖에 있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박애영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그래도 정은이 너밖에 없구나! 나도 말렸지만 효과가 없었어. 네가 나서니 바로 해결됐잖아. 안심해, 교수님을 잘 돌볼 테니까!”“그럼 수고 많으세요.”“수고는 무슨...”정은이 간 후, 박애영은 문을 밀고 병실로 들어갔다.오미선은 그녀의 뒤를 쳐다보았다.“정은이 갔어?”“네, 갔어요. 가기 전에 특별히 저에게 교수님 잘 챙겨드리라고 했어요. 정은이도 정말 정성을 다했어요.”오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은이는 참 좋은 아이지. 다 내가 쓸모없어서 그래. 늙어서 아이들을 위해 자원을 쟁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송지혜의 괴롭힘을 받게 하다니.”“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정은은 교수님을 탓한 적이 없어요. 하물며 정은이도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니잖아요.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한 이상, 틀림없이 계획이 있을 거예요.”“정은이는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지...”박애영은 흠칫 놀랐다.“핸드폰 줘. 전화 한 통 좀 할게.”...시간은 쏜살같이 지나며 어느덧 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시간이 되었다.세 사람은 여전히 학교 밖의 그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빈은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미리 음식을 시켰다.인훈과 정은은 하나는 공사장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실험실에서 왔으며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오빠!”“어, 정은아, 넌 왜 목도리도 안 하고 나왔어? 안 추워?”“목도리를 실험실에 두고 왔어. 괜찮아. 지퍼를 당기면 얼굴을 다 가릴 수 있거든.”식당에 들어간 두 사람은 단번에 현빈을 보았다.양복 차림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꼿꼿했고, 어깨가 넓어서
“그래서 어제 아침에 도대체 누구의 전화를 받으셨어요? 화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니.”“흥!”정은도 서두르지 않았다.“제가 한 번 맞춰볼게요... 학장님은 아닐 텐데. 줄곧 이런 사소한 일들을 상관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럼 백 부총장님? 그런데 최근 스폰서의 고소로 방금 처벌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꼬리를 숨기셔야 할 텐데...”여기까지 말하자 정은은 잠시 멈추더니 눈알을 굴렸다.“이 두 사람을 모두 배제한다면, 생명과학대학에서 교수님을 이렇게 도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송지혜 교수님일 뿐이겠죠?”이 이름을 듣자마자 오미선은 눈을 부릅떴다.“그 사람 언급하지 마!”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심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그 교수님밖에 없는 것 같네요.”“심심해? 만약 송지혜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속고 있겠지! 나한테 어떻게 실험실이 소방대 시정 요구를 받았다는 이렇게 큰 일을 속일 수가 있니?!”“속이지 않으면요? 교수님께서 먼 M국에서 날아와 학원 측, 심지어 학교 측을 찾아가서 따지는 것을 지켜보라고요? 그러다 결국 저희의 실험실이 확실히 소방 규정에 맞지 않아 시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실 거예요. 이 시정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빠르면 2, 3개월, 느리면 1년 정도 걸릴 거고요.”“이쪽도 똑같이 처벌하고, 저쪽은 교수님이 이유 없이 세미나를 결석하고, 자의로 팀을 떠난 일로 학교 측의 문책을 받으시라는 거예요?”“이번 일로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겠어요? 당연히 송지혜 교수님 아니겠어요?”오미선은 화가 나서 되려 웃음이 나왔다.“그럼 나란 교수님은 조금도 쓸모가 없겠구나?”정은은 경탄하며 천천히 말했다.“그거 알고 계세요? 이번 소방검사는 시에서 조직한 것이었어요. 만약 일반적인 교내 검사일 뿐이라면, 저도 두말없이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사람을 찾아 평정하게 하라고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요. 시 소방대가 주도하고 학교 측은 협조만 하면 됐거든요.”오
“왜? 왜 날 이렇게 보는 건데?”“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선배님이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요.”‘진짜 엄청 좋은 사람이야.’“가자, 이렇게 서 있으면 안 추워?” 재석이 웃었다.정은은 손을 비비며 대답했다.“좀 춥네요.”...또 토요일이 찾아왔다.정은은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또 두유를 마셨다.재석이 외출할 시간에 맞춰, 정은은 샌드위치와 두유를 봉지에 담아서 그에게 건네주었다.“아침밥이야?”“네!”“마침 안 먹었는데. 고마워.”재석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고, 정은도 가려고 했지만 먼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싶었다.바닥을 다 닦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정은아! 나 애영 아주머니야! 얼른 병원에 와서 오 교수님 좀 보러 와...]병실에서.정은은 황급히 문을 밀고 들어왔다.“교수님?!”오미선은 병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고, 박애영은 옆에서 초조하게 머리채를 붙잡고 있었다.정은을 보고서야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정은아, 왜 이제야 왔어!”“아주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교수님이랑 같이 요양하러 갔잖아요?”매년 서비대학교는 외지에 나가 요양하는 정원이 있었는데, 교직원 복지라고 할 수 있었다.대선배인 오미선은 이미 명단에 있었지만, 예년처럼 그녀는 스스로 포기했다.올해도 정은이 말렸던 것이다. 학교에 아무 일도 없고, 자신이 민지와 서준을 데리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게다가 시일내에 아무런 중요한 세미나도 없었기에 오미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했다.“그래, 어제 출발했어야 했는데, 아침에 교수님이 전화를 받으신 거야. 누가 전화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어차피 전화를 받고 나서 교수님이 쓰러지셨는데, 난 재빨리 병원으로 데려다준 거야.”“의사 선생님은 뭐래요?”“너무 흥분해서 그런 거래. 이틀 동안 입원해서 관찰을 받아야 하는데, 오늘 아침, 교수님이 퇴원하시겠다고 난리를 부리신 거야. 난 교수님에게 남은 두 링거를 다 맞고
기사는 차를 몰고 온 다음, 길가에 천천히 멈추었다.“사모님.”강서원은 차에 올라탄 다음, 실망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집으로 가요.”차가 떠나는 순간, 재석과 정은은 쇼핑백을 들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그들은 마침 어깨를 스쳤다.재석이 말했다.“그냥 다 줘.”말하면서 그는 정은에게서 쇼핑백을 받았다.정은도 거절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좀 무거웠다.두 사람이 골목 어귀로 걸어가자, 재석이 갑자기 물었다.“요즘 이웃 대학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거야?”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실험실은 설비가 완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넓어요. 마 교수님도 엄청 친절하시고, 그 선배님들도 아주 다정해요. 소모품을 수령할 때, 꼭 우리를 도와 기록해 줬거든요.”그러나 이 소모품들도 다 정은이 견적서에 따라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원래 실험실을 무료로 빌려 쓰는 것 자체가 쑥스러웠으니, 또 어떻게 공짜로 남의 소모품을 쓰겠는가?재석은 멈칫하더니 계속 물었다.“무슨 문제 없어?”정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한동안 밀렸던 진도도 점점 따라잡고 있었다. 전공 과목에서도 정은은 크게 어려움 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지난번 수행평가에서 ‘A+’를 받지 못하고 ‘A’에 그친 것이 아쉬웠지만, 그것은 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어 반 전체가 만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머릿속에서 최근의 큰일을 모두 한 번 생각한 다음, 정은은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는 갑자기 무엇을 떠올렸다.“지금 망설이고 있잖아. 학교 식당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정은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오늘 오전에 참석한 회의에서 마 교수님을 만났거든.”정은은 마음이 다급해지더니 이어서 미안함을 드러냈다.“미안해요, 뜻밖에도 마 교수님께서 그 소란을 듣게 되실 줄이야. 선배님에게 다 말한 거예요?”말을 마치자, 정은은 고개를 푹 숙였다.부끄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