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대금을 받고 자금이 넉넉해지면, 가격을 좀 더 올려서 남의 별장을 사면 되잖아.”‘남이 살던 아파트를 사서 인훈이 신혼집으로 하자고? 그게 말이 돼?’박나영은 입술을 벌렸지만, 소진후가 이렇게 말한 이상 결국 포기했다. 게다가 지금 회사 사정이 확실히 좋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레이크 다이아의 별장 때문에 박나영은 매일 밤 잠을 설쳤다.사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했고, 포기하기엔 또 달갑지 않았다.[레이크 다이아 별장이라고? 확실해?]박나영은 전화 너머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주덕순은 웃으며 생각했다. ‘거 봐, 누구나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잖아. 가장 못 사는 도련님네가 별장을 샀다니.’“제가 그 구매 계약서를 직접 봤다니깐요! 가짜일 리가 없어요. 게다가 동서도 스스로 인정했고요. 정은이가 효도하고 싶다고 별장을 사줬다나. 아이고, 우리 시율이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요? 이렇게 보면 정은이 그 계집애는 인훈보다 더 나은 것 같네요!”‘인훈이는 비록 회사를 차렸지만, 부모님에게 별장을 사준다는 말을 한 적이 아예 없었잖아?’박나영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정은이야 줄곧 효심이 있는 아이였지. 그러나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났을까?]“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형님, 지금 젊은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절대로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요.”박나영은 더 이상 별장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언제 시간 나면 얼른 와서 물건 가져가.]“내일 갈게요. 시율이 아빠더러 퇴근하는 길에 들르라고 할게요.”[그래.]통화가 끝나자, 주덕순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소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당신은 왜 이 일을 온 세상에 떠벌리려는 거야? 진헌이네가 별장을 샀는데 어쩜 당신이 더 흥분한 거지?”이것은 주덕순 답지가 않았다.“내가 언제 떠벌렸다는 거예요? 다 같은 가족들끼리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정은이네가 별장을 산 것은 아주 큰 경사라고요!”“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소진호는 자신의
소수정은 슬리퍼로 갈아신은 다음, 고개를 들어 거실을 둘러보았다. 구석에는 포장된 여러 개의 박스가 조용히 소파 옆에 놓여 있었다.“오빠, 올케 언니, 지금 대청소를 하고 있는 거예요?”이미숙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그냥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옷을 치우고 있을 뿐이야.”“그럼 다 치운 거예요?” 소수정의 눈빛은 그 박스 위에 떨어졌다.“어, 거의 다.”“이사할 계획인가요?”“맞아.”“어디로요?”소진헌과 이미숙은 눈을 마주쳤는데, 이런 일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숨겨도 평생 숨길 수 없었으니 조만간 식구들 모두 알 것이다.소진헌이 대답했다.“근처에 새로 개발된 건물인데, 레이크 다이아라고 너도 알 거야.”“아파트를 사신 거예요?”“아니.” 소진헌은 고개를 저었다. “별장을 샀어.”소수정은 마치 금방 이 소식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움을 선보였다.“오빠, 레이크 다이아의 별장은 가장 싼 것도 8천만 원 정도 할 텐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걱정 어린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법을 어기는 일을 한 건 아니죠? 그건 절대로 안 돼요.”“내가 그럴 엄두가 어디 있겠어?” 소진헌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럼 이 돈은...”“우리 정...”“아빠!” 이때 정은이 갑자기 베란다에서 들어오더니 소진헌을 불렀다.“아빠도 참. 고모가 갑자기 찾아오셨는데, 무슨 일 있는지부터 물어보셔야지 혼잣말만 하시다니.”“그러네, 수정아, 웬일로 찾아온 거야?”평일에 찾아오지 않은 사람이 느닷없이 왔으니 틀림없이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어...’소수정은 멍해졌다. 그녀는 정은이 이때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또 자신이 말문이 막힐 줄은 더욱 몰랐다.“오, 오늘 이 근처에 접대가 있어서 잠깐 들렀어요.”“그렇군요. 고모 이제 금방 은행 책임자로 승진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엄청 바쁘실 줄 알았어요.”소수정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바쁜 와중에 짬을 낸 거야... 참, 정은
소수정은 간곡하게 충고를 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주 간단해. 우리 여자는 말이야,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부딪쳐도 절대로 삐뚤게 살 순 없어. 착실하고 침착하게 살아야지,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면 안 돼. 요행심리는 더욱 가지면 안 되고!”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확실히 그렇죠.”“너도 찬성하는 거야, 응?” 소수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은이 아직 이성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럼요.”“그래, 그럼 나도 이제 마음이 놓이네.”소수정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한 한 빨리 계약 취소해 버려. 수수료가 조금 들겠지만, 그래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어?”정은은 여전히 영문을 몰랐다.“왜? 아쉬워?” 소수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방금 내 말을 아예 듣지 않았던 거야?’정은은 그제야 그녀의 목적을 알아차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우선 저도 고모께서 방금 하신 말씀에 동의해요. 여자는 확실히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죠. 하지만...”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저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저는 지금 고모께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시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절대로 따지지 않을 거예요.”‘이제 나도 말을 아주 분명하게 말한 셈이겠지? 아이큐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그리고 그 별장은 제가 제 부모님을 위해 산 거예요. 계약도 이미 체결했기 때문에 취소는 불가능해요. 앞으로 인생 경험을 공유하실 때, 선을 좀 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건의하실 순 있지만, 굳이 저에게 명령을 내리실 필요가 있을까요?”방금 ‘계약을 취소해’라는 말 한마디는 이미 정은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렸다.듣기 좋게 말하면 조언을 하는 거지만, 듣기 싫게 말하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이었다.정은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그녀의 예상대로 소수정은 씩씩거리며 떠났다.“부끄러운 줄도 모르다니! 어른한테 감히 말대꾸를 해?!”소진헌은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정은아,
채소, 닭, 생선까지 기른다면, 류춘미네 식구들이 먹기에 충분했다!“어머, 이사 가는 거야?” 류춘미는 정원에 서서 팔을 안고 웃으며 물었다.소진헌은 그녀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고, 낑낑거리며 땅을 팠다. 이미숙은 방안에서 류춘미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내딛던 발을 바로 거두었다.‘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사람이야.’류춘미는 입을 삐죽거렸다.“득의양양하긴? 결국 나한테 쫓겨난 셈이잖아...”...“류 씨, 장 보러 가는 거야?”류춘미는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평소에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만났다.“그래, 계란 좀 샀어. 이 시간에 가면 오전보다 값이 절반 싸다니깐!” 류춘미는 의기양양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건 뻥이 아니었는데, 이 동네에서 그녀보다 더 ‘알뜰’한 사람은 없었다.“그럼 다음에 나도 이 시간에 사러 가야지. 참, 그거 들었어? 네 옆집에 살던 그 소 선생님이 이사 갔다며?”류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어느 동네의 집을 세냈는지. 그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보다 더 편리하겠어?”‘흥! 반 백 살이 된 사람이 이런 일로 이사를 가다니. 그래, 이사 가길 잘했지. 그럼 나도 두 달마다 선반에 올라가서 그 귀찮은 꽃들을 자를 필요가 없잖아.’상대방은 목소리를 낮추었다.“전에 너와 다퉜다고 이사 간 건 아니겠지?”류춘미는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그건 나도 모르지. 만약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소 선생도 참 소심한 사람이야!”“그래도 네가 대단하긴 해. 헤헤, 앞으로 그들의 정원에다 채소를 심으면 딱인데...”“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류춘미는 흥분해하며 말했다.“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이떄 다른 한 이웃이 황급히 지나갔다.“빨리 떡 받으러 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늦게 가면 없을지도 몰라...”류춘미가 물었다.“웬 떡이래?”“소 선생님이 떡을 돌리고 있잖아. 두 사람 이웃이니 벌써 받았겠군. 나도 빨리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떡이 다 떨어질지도...
소진헌이 말했다.“그럼 저 먼저 집사람과 상의 좀...”[상의?] 진말숙은 기분이 언짢았다.[뭘 상의한다는 거야? 넌 남자이고,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이렇게 간단한 일을 아내에게 물어봐야 결정할 수 있는 거야?]“어머니, 제가 아무리 집안의 주인이라고 해도 집사람에게 미리 말을 해야죠. 이건 기본적인 존중이잖아요...”[정말 못났구나! 그래 상의해 봐. 정은이 엄마가 동의하면 그만이지만,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나와 네 아버지는 내일 꼭 갈 테니까!]말이 끝나자 진말숙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왜 그래요? 누구 전화예요?” 이미숙은 정원으로 들어서자 남편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우리 어머니.”“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마침 이사한 걸 축하한다면서, 내일 정월 대보름에 우리 집에 오실 거래...”“그래요.” 이미숙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큰 형님네와 작은 형님에 그리고 아가씨까지 모두 불러요.”...이튿날 아침, 이미숙은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오후 4시가 되자, 다른 식구들도 모두 도착했다.주덕순은 들어간 이후 좌우를 두리번거렸는데, 보면 볼수록 점점 질투를 했다.비록 소진헌네가 고급 별장을 샀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여전히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그래서 말이 가장 많고 또 잘난 척하길 가장 좋아하는 주덕순은 들어온 후 보기 드물게 침묵을 지켰다.소진호가 팔로 그녀를 툭툭 치자, 주덕순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도련님, 동서, 정말 축하해.”소시율도 오늘 이곳에 따라왔다. 그녀는 이미숙을 바라보며 물었다.“작은 어머니, 저 집 좀 구경해도 될까요?”“그럼.”시율은 거실에서 두 바퀴 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소진우는 너무 바빠서 오늘 오지 않았지만 박나영이 대신 왔다. 그녀는 심지어 돈을 가득 넣은 봉투를 이미숙에게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예쁜 별장이야. 이사 온 걸 축하해.”이미숙은 거절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받을
주덕순은 감탄했다. 비록 악의가 없는 것처럼 들렸지만, 그 말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박나영은 뭔가를 떠올리며 물었다.“난 아직 정은이 네가 J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데, 일반 직장인은 아니겠지? 일반인이라면 수천만 원을 벌기가 쉽지 않을 텐데.”정은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미숙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신이 대신 입을 열었다.“형님들도 참, 우리 정은이는 대학을 졸업한 후 비록 계속 대학원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집에 박혀 놀지도 않았어요. 중간에 일자리를 바꿔 가며 돈을 조금 모은 것뿐이죠.”소수정은 차갑게 웃었다.“정말 스스로 돈을 벌어서 모은 거면 좋겠지만, 정은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봐 두렵네요.”이미숙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아가씨, 우리 정은이를 관심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정은이도 이제 성인이 됐으니 자신의 계획이 있겠지. 우리는 부모로서 그냥 응원해줄 거야.”주덕순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계획? 동서 말을 들으니 정은이에게 이미 다른 계획이 있는 거야? J시에 돌아가서 일자리를 찾는 거?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찾을 계획인가? 내년에 돌아올 때 또 수천만 원 들고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주덕순은 일부러 ‘목표’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었는데, 정은을 야유하는 게 분명했다이미숙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입을 열려고 했다. 이때 마침 정은의 핸드폰이 울렸다.“엄마, 저 전화 좀 받을게요...”“응, 그래.” 이미숙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참자, 참자.’“응, 수민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조수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필기시험 성적 나왔어. 너 빨리 점수 확인해 봐.]정은은 시간을 계산해 봤는데, 성적 발표하는 날이 확실히 오늘이었다!‘너무 바빠서 잊어버렸어...’“그래, 지금 바로 알아볼게.” 전화를 끊은 후, 정은은 바로 위층으로 뛰어갔다.침실로 돌아온 그녀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정은은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재빨리 수험표와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엔터키를 누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즉시 2층으로 달려갔다. 소리를 따라 정은의 침실에 도착하니, 눈 앞에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시율은 땅바닥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가방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모두들 뛰어들어 들어오자, 그녀는 즉시 울부짖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시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아줌마와 다름없었다.“시율아, 왜 그래? 엄마한테 말해.” 주덕순은 달려가서 시율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자, 우리 먼저 일어나자...”“싫어요! 오늘 소정은이 저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저 절대로 안 일어날 거예요!”정은은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너 바닥에 실컷 앉아 있어. 누워도 난 상관이 없으니까.”“너--”주덕순은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갑자기 웬 사과야?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엄마! 소정은이 절 때렸단 말이에요.”“뭐?” 주덕순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넌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니?”“둘째 큰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침실에 돌아오자마자 드레스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거든요. 저는 도둑이 든 줄 알고... 하지만 저도 궁금해요. 왜 시율이가 제 방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 또 물건을 뒤지는 소리가 났는지.”말하면서 정은은 바닥에 떨어진 두 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주덕순은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그랬구나... 시율이는 아마 궁금해서 네 물건을 뒤졌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다니, 그건 네 잘못이지!”“저도 그게 시율인 줄 몰랐어요. 도둑이 들어온 줄 알고 망설이지 않고 손을 쓴 건데. 정상인이라면 왜 남의 집에 와서 옷장을 뒤지겠어요, 안 그래요 둘째 큰어머니?”주덕순은 시율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시율은 마음이 찔려서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오해였구나. 잘 풀렸으면 됐어. 그럼 이제 우리도 내려가서 식사할 준비해야죠?”이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핸드폰이 바로 소진헌의 옆에 있었기에 정은이 말했다.“아빠, 이리 주세요.”“어.”
‘소정은은 자신이 정말 예전의 그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대학을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공부를 하고 싶어? 꿈이나 깨! 이따가 점수가 나오면 엄청 창피하겠지!’박나영도 맞장구를 쳤다.“시율이가 이렇게 말하니까 나도 좀 궁금해지네.”소수정은 입술을 구부리며 웃었다.“그래, 다들 그렇게 궁금해하니 얼른 확인해 봐, 정은아. 우리 모두 보자.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점수가 높든 낮든, 합격하든 하지 못하든 다 괜찮아.”이미숙은 정은을 보며 바로 거절하려고 했다.그러나 정은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좋아요.”사람들은 컴퓨터 앞으로 둘러섰다. 정은은 방금 이미 수험표 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했기에 지금 엔터키만 가볍게 두드리면 점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아빠가 대신 눌러주세요.”“내가?”“네, 그때 수능 점수도 아빠가 확인해주셨잖아요?”“그래.” 소진헌은 손을 비비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엔터키를 눌렀다.로드 중이라는 표시가 나오자, 사람들 모두 숨을 죽였다.1초, 2초...“나왔어! 나왔어!”[총점수: 412]주덕순은 멍해진 시율을 떠밀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만점이 얼마인데? 400여 점도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은데...”시율은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다.“왜 말을 안 하는 거야?”박나영은 재빨리 놀라운 감정을 조절하며 가볍게 웃었다.“동서, 만점은 500점이야. 정은이의 성적은 아마 3위권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수석일 가능성도 있어.”주덕순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그제야 눈을 크게 떴다.“그럼 정은이는 서비대 대학원에 합격한 거예요?!”소수정은 무뚝뚝하게 말했다.“엄밀히 말하면 대학원 시험은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나뉘죠. 필기시험 성적만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주덕순은 가볍게 한숨을 돌렸다.‘그래, 정은이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합격할 수 있겠어. 3위권으로 들어가긴 개뿔...’박나영은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그러나 필기시험 성적도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일단
재석은 멈칫했다.진욱은 호들갑을 떨었다.“내가 맞혔구나! 이야, 조 교수, 너한테도 이런 날이 있다니!”“정은이 때문이지?”재석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쯧쯧, 나한테 거짓말 하지 마. 조 교수는 남을 속일 수 있어도, 평소 늘 함께 지낸 날 속일 수 없잖아?”“꺼져, 누가 너와 함께 지냈단 거야?”“헤헤, 넌 당연히 나와 함께 하고 싶지 않겠지, 왜냐하면 넌 정은이를 좋아하니까.”재석은 눈빛이 싸늘해졌다.“이런 농담 함부로 하지 마. 난 남자라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정은이는 달라. 여자아이는 항상 이런 일에서 더 손해를 보니까. 정은이 아직 학생이니 너 이상한 소리하고 다니지 마.”“이것 좀 봐, 지금 정은이를 이렇게 보호하고 있는데도 발뺌하고 있다니?” 진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안심해, 나도 이 정도는 잘 알고 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다 안다고. 내가 어떻게 정은이를 해칠 수 있겠어?”재석은 한숨을 돌렸다.“알면 됐어.”“이제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지?”“그런 거 없어.”“정은이 요즘 널 무시한 거야? 너 설마 정은이를 화나게 했니?”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오늘 아침에도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했으니, 삐진 것 같지 않았다.“그럼... 갑자기 너와 거리를 둔 거야?”“그것도 아니야...”재석은 고개를 저었다.“사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어.”“아! 알았다! 너랑 갈등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래서 네가 이렇게 우울하고, 슬프고, 의심하고...”“닥쳐.”“네네!” 진욱은 손가락을 튕겼다.“바로 이 반응이야! 내가 또 알아맞혔군!”“그리고 그 사람은 분명히 남자일 거야! 심지어 모든 면이 아주 훌륭한 남자. 그래서 네가 위기감을 느끼게 된 거지!”재석은 할 말을 잃었다.“조 교수.” 진욱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너도 이제 정신 좀 차려. 정은이를 좋아한다면 대담하게 고백을 해
휴일이 또다시 찾아오자, 현빈은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정은을 데리러 왔다.오늘은 이원에 가는 날이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지금 정은이 쉴 때 와서 자신들과 함께 있어주기를 바랐다.이번에는 미리 약속을 잡았기에, 일어나자마자 두 노인은 현빈에게 얼른 출발하라고 재촉했다.정은도 당연히 기뻤다. 두 노인은 친절하고 자상했으며, 그녀를 아주 다정하게 대했으니, 정은은 또 어떻게 두 사람의 호의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알람이 울리자마자 얼른 일어나서 세수를 했다.또 설탕이 적고 먹기에 편한 간식을 만들어 두 노인에게 가져다주려 했다.8시, 현빈은 제시간에 위층으로 올라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서 슬리퍼를 갈아신은 후,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정은은 의혹을 느꼈다.“먹을 거 있어?”“네.”저번에는 샌드위치, 이번에는 표고버섯과 고기로 만든 만두였다.현빈이 물었다.“네가 직접 만든 거야?”“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왜요? 맛 없어요?”“아니... 너무 맛있어서.”정은은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칭찬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나갈 때, 현빈은 자연스럽게 물건을 들어줬다.문을 연 순간, 정은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얼른 입을 열었다.“잠깐만 기다려요.”현빈은 제자리에 서서 정은이 베란다로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화분을 안으로 옮긴 뒤 또 베란다 문을 꼭 닫고 나서야 안심하고 떠났다.“자, 갑시다.”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때, 재석이 맞은편에서 나왔는데, 세 사람은 서로 인사를 했다.“선배님, 좋은 아침이에요!”현빈은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매번 우리 두 집이 동시에 문을 여는 거죠? 너무 공교롭지 않아요?”‘우리 두 집?’재석은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그는 정은의 표정을 살펴보았는데, 현빈이 아침 일찍 그녀의 집에 나타난 것을 이미 받아들인 것 같았다.‘예전에 정은이는 분명히 심현빈을
“그래요? 그런데 왜 음료수와 같은 맛이죠? 새콤달콤하고 심지어 복숭아향까지 나잖아요.” 경혜의 볼은 이미 홍조를 띠고 있었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이런 게 싫어요?”도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경혜도 개의치 않고 자신에게 한 잔 더 따랐다.환경이 바뀐 데다가 또 음악이 분위기를 더해주었는지, 남자는 많이 편해졌고, 기분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그래서 경혜가 입을 열자, 도겸도 그녀를 무시하지 않았다.드디어 ‘모노드라마’가 아니었다.바로 이때, 떠들썩한 음악소리는 더욱 커졌고, 불빛도 현란해졌다. 댄스풀에 있던 남녀는 음악리듬에 따라 춤을 추며 마음껏 몸을 흔들었다.경혜는 눈앞이 밝아지더니 이런 분위기에 젖어 뜻밖에도 주동적으로 도겸의 손을 잡았다.“우리도 춤추러 가요. 네?!”그녀는 취한 듯 표정이 약간 망연했지만,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지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도겸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도겸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여 경혜에 의해 댄스풀로 끌려갔다.경혜는 춤을 출 줄 몰라 그저 음악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서투른 춤사위에 도겸은 좀 우습다고 느꼈다.“왜 웃어요?” 경혜는 우울해졌다.남자의 웃음은 더욱 환해졌다.그녀는 화가 났다.“안 되겠어요, 나 혼자 이렇게 웃길 순 없으니까 도겸 씨도 같이 춰요!”알코올의 자극을 받은 경혜는 대담하게 도겸의 손을 잡고 마음대로 흔들었다.남자가 반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며 경계는 점차 대담하게 도겸의 손을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도겸은 비록 나른해서 흥이 나지 않았지만, 경혜를 막지 않았다.경혜는 처음에는 좀 불안했지만, 나중에는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칠 때까지 음악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든 것 같았다.불빛이 희미하며 음악이 떠들썩했다.어느새 경혜와 도겸의 몸이 맞닿았고, 남자의 몸에서 은은한 술 향기가 전해왔다. 그 사이, 경혜는 더 취한 것 같았다.고개를 들자 경혜의 심장은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도겸의 눈
“그럼 마음대로 시킬게요!”“음.”“사장님, 이거랑 이거...”경혜는 많은 음식을 주문했는데, 딱 봐도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나만 믿어요, 여긴 정말 맛있으니까요. 고급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여자는 극구 추천을 하면서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도겸은 가끔 응답했지만, 태도가 미적지근했다.그을리고 타는 바비큐 냄새에 목이 간지러웠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그를 불편하게 했다. 올라온 바비큐는 한 번만 봐도 입맛을 전부 잃을 정도였다.‘전에 정은이랑 처음 연애할 때도 포장마차에 와서 자주 먹었는데... 사람이 틀리니 입맛도 없는 것 같아.’경혜는 고기 하나 들고 웃으며 도겸에게 건네주었다.“이것 좀 먹어봐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예요.”도겸은 받지 않았다.그녀는 잠시 멈칫했다.“이런 거 못 먹는 거예요? 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네요.”경혜는 얼른 꼬치구이를 내려놓더니 다급하고 궁색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장소를 바꿀까요? 도겸 씨가 정해요.”“아니야, 나 요즘 위장병이 도져서 입맛이 없어, 너 먹어.”“그렇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많이 시켰다니...”도겸은 이미 인내심을 잃었다.“남은 건 그냥 버려.”결국 경혜는 몇 개밖에 먹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계산을 마친 뒤, 사장이 와서 테이블을 치웠는데, 이 상황을 보고 혀를 찼다.“요즘 젊은이들도 참, 먹을 수 없으면 이렇게 많이 주문하지 말든가. 돈이 있다고 음식을 함부로 낭비하다니... 쯧쯧...”도겸은 차로 경혜를 학교로 데려다 주었는데, 도중에 표정이 담담하고 말도 많지 않았다.가끔 경혜가 무엇을 물었을 때만 겨우 대답을 했다.후에 경혜 자신도 침묵했다.주동적으로 화제를 이끄는 사람이 없자, 차 안의 분위기가 다소 어색했다.도겸은 앞을 바라보며 전혀 아무렇지 않는 것 같았다.경혜는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바깥의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잠시 멍을 때렸다.한 술집을 지나자, 경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시
“도겸 씨, 왜 그래요?” 경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도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질문과 답답함을 억눌렀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동안 연기를 해왔으니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면, 정은은 또 도겸을 피할 것이고, 이렇게 가끔 만나서 인사를 건네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경혜는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정은의 말을 들은 후부터, 남자는 정신이 반쯤 나갔다는 것을.정은은 고개를 돌려 민지와 서준을 보았다.“시간도 늦었으니 우리 이제 돌아갈까?”“네!” 민지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곧 9시가 다 되어 가네요. 빨리 가요. 너무 추워요...”말하면서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었다.그녀는 사실 도겸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겨울, 영하의 온도에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멋을 부릴 수 있다니.‘사람을 기다린다고 해도 그냥 차에 들어가서 기다리면 되잖아? 굳이 차에 기대서 멋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안 추워? 쯧쯧... 이런 재벌 집 도련님들은 도대체 매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우리 먼저 갈게. 넌 네 남자친구와 천천히 데이트해. 안녕.”민지는 도겸의 정곡을 쿡쿡 찔렀다.정은이 택시에 탄 것을 지켜보다가 차가 사라질 때에야 도겸은 시선을 거두었고, 동시에 경혜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도 거두었다.경혜는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비록 마음속은 이미 씁쓸할 정도로 괴로웠지만, 여전히 웃음을 유지했다.아파도 웃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경혜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처음에 두 사람의 거래가 바로 도겸이 돈을 내고 경혜가 여자친구인 척 연기하는 것이었다.그러니 그녀는 도겸 앞에서 질투하는 감정을 조금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경혜는 도겸이 정은을 속인 것처럼 도겸을 속여야 했다.정말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이었다.정은이 떠나자, 도겸도 계속 여기에 남을 필요가 없었다.그는 차를 타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특별히 화
민지가 대답했다.“잘 아는 편도 아니야. 하지만 재운이는 사람이 꽤 착하잖아. 지난번에 식물 기지에서도 남들이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나서서 우릴 도와주었고. 난 다 기억하고 있다고!”“기억력이 좋아서 좋겠다.”“뭐?”“넌 남을 칭찬할 때, 항상 ‘좋은 사람’이란 말을 쓰더라? 그게 무슨 칭찬이지?”“아니... 너 뭐 잘못 먹었어?”맞은편의 도겸은 차 옆에 기대어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마치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경혜도 그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곧 나왔다.종종걸음으로 달려왔기에, 경혜의 볼이 빨갰고 숨이 가빴다.도겸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통통해 보이는 패딩을 입지 않고, 몸매가 돋보이는 코트로 갈아입었다.뿐만 아니라, 경혜는 평소에 머리를 묶지 않았는데, 오늘은 머리를 걷어 올려 똥머리로 묶은 뒤, 진주 머리핀을 장식했다. 시원시원하고 대범해 보이며, 귀엽고 깜찍했다.“오래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나올 때 스카프를 잊어버려서 다시 기숙사에 돌아갔거든요.”도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 아무런 정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것 같았다.눈길도 자꾸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경혜는 주위를 힐끗 훑어보더니, 정은을 본 순간에야 깨달았다.그렇지 않으면 도겸은 늦은 밤에 그녀에게 전화를 할 리가 없었다.‘그곳도 학교 앞에서 만나자니?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올 리가. 허... 지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시작하지.’경혜는 주먹을 꽉 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다가 곧 다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정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공교롭게 여기서 만나네, 정은아.”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여기에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경혜는 멈칫하더니 마치 그제야 서준과 민지를 본 것 같았다.“너희들도 있었구나, 정말 반가워.”민지가 말했다.“이렇게 말하니 마치 우리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잖아? 나와 서준이는 바로 정은 언니 옆에 서 있는데, 그런데도 보이지 않은 거야?”“미안해, 정말,
민지는 세입자들에게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쟁과 갈등에도 익숙해졌다.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서준이 말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절대적으로 심플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또 다른 요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처럼, 세계는 전체이고, 개체 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거지...”민지는 머리가 아팠다.“넌 생물 대신 철학을 연구해야 했어.”“네 닭다리나 먹어!”“흥, 원래 먹으려 했어! 그리고, 이건 네가 허락한 거야!”‘아싸, 이제 실컷 먹을 수 있겠어.’서준은 말문이 막혔다....다 먹고 정은은 계산을 했다.세 사람은 직접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산책을 하며 소화했다.“우리 같은 방향에 살아서 다행이야. 그리 멀지도 않고. 조금 있다가 학교 앞에서 택시 잡고 돌아갈까? 어차피 너도 가는 길이니 우릴 태워다 줄 수 있잖아! 헤헤!”“너 돈 많잖아? 왜 택시비가 아까운 거야?”전에 수억 원짜리 차를 선물로 준다고 한 사람이, 지금은 몇 천원 안 되는 택시비를 절약하려 했다.“돈 많으면 왜? 내 돈도 다 돈이야! 우리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돈을 벌 줄 알고 돈을 절약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 절약할 수 있으면 절약하고, 쓸 수 있지만 낭비해서는 안 돼!”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거봐, 정은 언니도 실험실을 짓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썼지만, 혼자 아파트에서 살고 있잖아. 이게 뭔 줄 알아?”정은과 서준은 동시에 민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가슴을 펴며 말했다.“돈을 알뜰히 쓰는 거야. 전부 써야 할 곳에 썼으니까!”“그래, 내가 잘못했어. 오늘 정말 좋은 가르침을 받았네.”“흥! 쮼, 넌 아직 너무 어려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내가 어리다고?”이때 서준은 갑자기 멈추었다.민지도 웃음을 거두었다.“왜 그래?” 정은은 두 사람이 주시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참지 못
그 닭다리를 다 먹은 뒤, 민지는 만족스럽게 트림을 했다.“아! 너무 행복해! 흑흑... 난 소원이 이것밖에 없어.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으면 되니까. 물론 미식가로 되면 더 좋고.”민지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그녀는 학술을 좋아하는 동시에 미식도 좋아했다. 이 두 사물을 결합하면 바로 민지가 가장하고 싶은 일이었다.“정은 언니는요?” 민지는 갑자기 정은을 쳐다보았다.“언니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갑자기 이상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자 정은은 멍해졌다.생각하다 천천히 대답했다.“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내 꿈이야.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면...'정은은 잠시 멈추었다.“오 교수님과 같은 연구학자.”“그런데...”민지는 갈등을 드러냈다.“교수님은 확실히 위대하시지만 때로는 난 교수님이 너무 외롭다고 생각해요.”오미선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과학 연구에 바쳤다.이런 추구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혼자 병원에 외롭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민지는 가슴이 아팠다.“예전에 난 교수님께 물어본 적이 있어. 이 선택을 후회하시냐고. 교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아니?”민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얼른 말해요, 언니!”서준도 정색을 했다.“사람의 일생은 원만하기 어려우며, 항상 우왕좌왕한다고 말씀하셨어. 그것은 우리의 정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만약 제한된 정력을 끝없는 과학 연구에 투입할 수 있다면, 교수님에게 있어서 이건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이기도 하지.”비록 개인의 행복을 잃었지만, 오미선은 전심전력으로 연구에 몰두했다.“그런데... 이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 아닌가요?” 민지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정은은 감탄했다.“아마도.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또한 선택도 다르잖아. 자신의 생각을 따라 확고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삶을 살 수 있어.”“그럼 정은 언니는 결혼할 거예요?”정은은 민지가
민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일 2킬로미터 더 달려야 한다는 말을 뒤로 했다.그리고 정은을 안고 애완동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사랑해요, 정은 언니, 내가 그 가게의 닭볶음탕을 먹고 싶어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또 어떻게 알았어요?”정은은 민지가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두더니 웃으며 말했다.“네가 전에 한 번 말했잖아, 그래도 기억해뒀지. 그리고 나도 그 닭볶음탕이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네.”“날 믿어요, 절대로 언니를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그 가게는 맛이 아주 좋아요!”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먹방들의 타고난 능력일 것이다. 민지가 추천한 것이라면, 대부분 엄청 맛있는 음식이었다.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아주 정통적인 닭볶음탕을 만들었다.또 J시 사람의 입맛을 결합하여 간단하게 개량했기에 엄청 고소하고 맛있었다.닭고기가 부드러우며 매콤한 향기까지 곁들이니, 생각만 해도 민지는 이미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요 며칠, 조깅의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서준은 민지의 식단을 엄격히 통제했다. 매일 그 싱겁고 무미건조한 음식들만 먹으니 민지는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비록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몰래 간식을 훔쳐 먹었지만, 간식이 어떻게 맛있는 요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정은 언니, 완전 사랑해요.”마침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민지는 감동에 눈물을 글썽였다.“야, 내가 언제 널 학대했어?”“그럼 조깅 취소해.”“그래, 그럼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 내년 건강검진 보고서에 ‘지방간’이라는 결과가 또 나올 테니까.”‘됐어,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을 말자. 난 그래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서준은 민지의 다이어트를 돕기 위해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그녀를 불렀다.사실 민지는 가끔 서준의 얼어붙은 볼과 코를 보고, 또 아직 이불 속에 틀어박혀 쿨쿨 자는 자신을 생각하면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건 죽을 죄야! 한겨울에 누가 더 자고 싶지 않겠어?’‘우리 아빠도 서준처럼 매일 일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