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은 슬리퍼로 갈아신은 다음, 고개를 들어 거실을 둘러보았다. 구석에는 포장된 여러 개의 박스가 조용히 소파 옆에 놓여 있었다.“오빠, 올케 언니, 지금 대청소를 하고 있는 거예요?”이미숙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그냥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옷을 치우고 있을 뿐이야.”“그럼 다 치운 거예요?” 소수정의 눈빛은 그 박스 위에 떨어졌다.“어, 거의 다.”“이사할 계획인가요?”“맞아.”“어디로요?”소진헌과 이미숙은 눈을 마주쳤는데, 이런 일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숨겨도 평생 숨길 수 없었으니 조만간 식구들 모두 알 것이다.소진헌이 대답했다.“근처에 새로 개발된 건물인데, 레이크 다이아라고 너도 알 거야.”“아파트를 사신 거예요?”“아니.” 소진헌은 고개를 저었다. “별장을 샀어.”소수정은 마치 금방 이 소식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움을 선보였다.“오빠, 레이크 다이아의 별장은 가장 싼 것도 8천만 원 정도 할 텐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걱정 어린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법을 어기는 일을 한 건 아니죠? 그건 절대로 안 돼요.”“내가 그럴 엄두가 어디 있겠어?” 소진헌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럼 이 돈은...”“우리 정...”“아빠!” 이때 정은이 갑자기 베란다에서 들어오더니 소진헌을 불렀다.“아빠도 참. 고모가 갑자기 찾아오셨는데, 무슨 일 있는지부터 물어보셔야지 혼잣말만 하시다니.”“그러네, 수정아, 웬일로 찾아온 거야?”평일에 찾아오지 않은 사람이 느닷없이 왔으니 틀림없이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어...’소수정은 멍해졌다. 그녀는 정은이 이때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또 자신이 말문이 막힐 줄은 더욱 몰랐다.“오, 오늘 이 근처에 접대가 있어서 잠깐 들렀어요.”“그렇군요. 고모 이제 금방 은행 책임자로 승진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엄청 바쁘실 줄 알았어요.”소수정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바쁜 와중에 짬을 낸 거야... 참, 정은
소수정은 간곡하게 충고를 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주 간단해. 우리 여자는 말이야,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부딪쳐도 절대로 삐뚤게 살 순 없어. 착실하고 침착하게 살아야지,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면 안 돼. 요행심리는 더욱 가지면 안 되고!”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확실히 그렇죠.”“너도 찬성하는 거야, 응?” 소수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은이 아직 이성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럼요.”“그래, 그럼 나도 이제 마음이 놓이네.”소수정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한 한 빨리 계약 취소해 버려. 수수료가 조금 들겠지만, 그래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어?”정은은 여전히 영문을 몰랐다.“왜? 아쉬워?” 소수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방금 내 말을 아예 듣지 않았던 거야?’정은은 그제야 그녀의 목적을 알아차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우선 저도 고모께서 방금 하신 말씀에 동의해요. 여자는 확실히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죠. 하지만...”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저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저는 지금 고모께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시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절대로 따지지 않을 거예요.”‘이제 나도 말을 아주 분명하게 말한 셈이겠지? 아이큐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그리고 그 별장은 제가 제 부모님을 위해 산 거예요. 계약도 이미 체결했기 때문에 취소는 불가능해요. 앞으로 인생 경험을 공유하실 때, 선을 좀 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건의하실 순 있지만, 굳이 저에게 명령을 내리실 필요가 있을까요?”방금 ‘계약을 취소해’라는 말 한마디는 이미 정은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렸다.듣기 좋게 말하면 조언을 하는 거지만, 듣기 싫게 말하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이었다.정은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그녀의 예상대로 소수정은 씩씩거리며 떠났다.“부끄러운 줄도 모르다니! 어른한테 감히 말대꾸를 해?!”소진헌은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정은아,
채소, 닭, 생선까지 기른다면, 류춘미네 식구들이 먹기에 충분했다!“어머, 이사 가는 거야?” 류춘미는 정원에 서서 팔을 안고 웃으며 물었다.소진헌은 그녀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고, 낑낑거리며 땅을 팠다. 이미숙은 방안에서 류춘미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내딛던 발을 바로 거두었다.‘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사람이야.’류춘미는 입을 삐죽거렸다.“득의양양하긴? 결국 나한테 쫓겨난 셈이잖아...”...“류 씨, 장 보러 가는 거야?”류춘미는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평소에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만났다.“그래, 계란 좀 샀어. 이 시간에 가면 오전보다 값이 절반 싸다니깐!” 류춘미는 의기양양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건 뻥이 아니었는데, 이 동네에서 그녀보다 더 ‘알뜰’한 사람은 없었다.“그럼 다음에 나도 이 시간에 사러 가야지. 참, 그거 들었어? 네 옆집에 살던 그 소 선생님이 이사 갔다며?”류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어느 동네의 집을 세냈는지. 그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보다 더 편리하겠어?”‘흥! 반 백 살이 된 사람이 이런 일로 이사를 가다니. 그래, 이사 가길 잘했지. 그럼 나도 두 달마다 선반에 올라가서 그 귀찮은 꽃들을 자를 필요가 없잖아.’상대방은 목소리를 낮추었다.“전에 너와 다퉜다고 이사 간 건 아니겠지?”류춘미는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그건 나도 모르지. 만약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소 선생도 참 소심한 사람이야!”“그래도 네가 대단하긴 해. 헤헤, 앞으로 그들의 정원에다 채소를 심으면 딱인데...”“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류춘미는 흥분해하며 말했다.“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이떄 다른 한 이웃이 황급히 지나갔다.“빨리 떡 받으러 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늦게 가면 없을지도 몰라...”류춘미가 물었다.“웬 떡이래?”“소 선생님이 떡을 돌리고 있잖아. 두 사람 이웃이니 벌써 받았겠군. 나도 빨리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떡이 다 떨어질지도...
소진헌이 말했다.“그럼 저 먼저 집사람과 상의 좀...”[상의?] 진말숙은 기분이 언짢았다.[뭘 상의한다는 거야? 넌 남자이고,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이렇게 간단한 일을 아내에게 물어봐야 결정할 수 있는 거야?]“어머니, 제가 아무리 집안의 주인이라고 해도 집사람에게 미리 말을 해야죠. 이건 기본적인 존중이잖아요...”[정말 못났구나! 그래 상의해 봐. 정은이 엄마가 동의하면 그만이지만,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나와 네 아버지는 내일 꼭 갈 테니까!]말이 끝나자 진말숙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왜 그래요? 누구 전화예요?” 이미숙은 정원으로 들어서자 남편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우리 어머니.”“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마침 이사한 걸 축하한다면서, 내일 정월 대보름에 우리 집에 오실 거래...”“그래요.” 이미숙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큰 형님네와 작은 형님에 그리고 아가씨까지 모두 불러요.”...이튿날 아침, 이미숙은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오후 4시가 되자, 다른 식구들도 모두 도착했다.주덕순은 들어간 이후 좌우를 두리번거렸는데, 보면 볼수록 점점 질투를 했다.비록 소진헌네가 고급 별장을 샀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여전히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그래서 말이 가장 많고 또 잘난 척하길 가장 좋아하는 주덕순은 들어온 후 보기 드물게 침묵을 지켰다.소진호가 팔로 그녀를 툭툭 치자, 주덕순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도련님, 동서, 정말 축하해.”소시율도 오늘 이곳에 따라왔다. 그녀는 이미숙을 바라보며 물었다.“작은 어머니, 저 집 좀 구경해도 될까요?”“그럼.”시율은 거실에서 두 바퀴 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소진우는 너무 바빠서 오늘 오지 않았지만 박나영이 대신 왔다. 그녀는 심지어 돈을 가득 넣은 봉투를 이미숙에게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예쁜 별장이야. 이사 온 걸 축하해.”이미숙은 거절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받을
주덕순은 감탄했다. 비록 악의가 없는 것처럼 들렸지만, 그 말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박나영은 뭔가를 떠올리며 물었다.“난 아직 정은이 네가 J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데, 일반 직장인은 아니겠지? 일반인이라면 수천만 원을 벌기가 쉽지 않을 텐데.”정은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미숙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신이 대신 입을 열었다.“형님들도 참, 우리 정은이는 대학을 졸업한 후 비록 계속 대학원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집에 박혀 놀지도 않았어요. 중간에 일자리를 바꿔 가며 돈을 조금 모은 것뿐이죠.”소수정은 차갑게 웃었다.“정말 스스로 돈을 벌어서 모은 거면 좋겠지만, 정은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봐 두렵네요.”이미숙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아가씨, 우리 정은이를 관심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정은이도 이제 성인이 됐으니 자신의 계획이 있겠지. 우리는 부모로서 그냥 응원해줄 거야.”주덕순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계획? 동서 말을 들으니 정은이에게 이미 다른 계획이 있는 거야? J시에 돌아가서 일자리를 찾는 거?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찾을 계획인가? 내년에 돌아올 때 또 수천만 원 들고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주덕순은 일부러 ‘목표’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었는데, 정은을 야유하는 게 분명했다이미숙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입을 열려고 했다. 이때 마침 정은의 핸드폰이 울렸다.“엄마, 저 전화 좀 받을게요...”“응, 그래.” 이미숙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참자, 참자.’“응, 수민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조수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필기시험 성적 나왔어. 너 빨리 점수 확인해 봐.]정은은 시간을 계산해 봤는데, 성적 발표하는 날이 확실히 오늘이었다!‘너무 바빠서 잊어버렸어...’“그래, 지금 바로 알아볼게.” 전화를 끊은 후, 정은은 바로 위층으로 뛰어갔다.침실로 돌아온 그녀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정은은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재빨리 수험표와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엔터키를 누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즉시 2층으로 달려갔다. 소리를 따라 정은의 침실에 도착하니, 눈 앞에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시율은 땅바닥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가방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모두들 뛰어들어 들어오자, 그녀는 즉시 울부짖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시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아줌마와 다름없었다.“시율아, 왜 그래? 엄마한테 말해.” 주덕순은 달려가서 시율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자, 우리 먼저 일어나자...”“싫어요! 오늘 소정은이 저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저 절대로 안 일어날 거예요!”정은은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너 바닥에 실컷 앉아 있어. 누워도 난 상관이 없으니까.”“너--”주덕순은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갑자기 웬 사과야?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엄마! 소정은이 절 때렸단 말이에요.”“뭐?” 주덕순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넌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니?”“둘째 큰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침실에 돌아오자마자 드레스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거든요. 저는 도둑이 든 줄 알고... 하지만 저도 궁금해요. 왜 시율이가 제 방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 또 물건을 뒤지는 소리가 났는지.”말하면서 정은은 바닥에 떨어진 두 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주덕순은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그랬구나... 시율이는 아마 궁금해서 네 물건을 뒤졌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다니, 그건 네 잘못이지!”“저도 그게 시율인 줄 몰랐어요. 도둑이 들어온 줄 알고 망설이지 않고 손을 쓴 건데. 정상인이라면 왜 남의 집에 와서 옷장을 뒤지겠어요, 안 그래요 둘째 큰어머니?”주덕순은 시율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시율은 마음이 찔려서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오해였구나. 잘 풀렸으면 됐어. 그럼 이제 우리도 내려가서 식사할 준비해야죠?”이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핸드폰이 바로 소진헌의 옆에 있었기에 정은이 말했다.“아빠, 이리 주세요.”“어.”
‘소정은은 자신이 정말 예전의 그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대학을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공부를 하고 싶어? 꿈이나 깨! 이따가 점수가 나오면 엄청 창피하겠지!’박나영도 맞장구를 쳤다.“시율이가 이렇게 말하니까 나도 좀 궁금해지네.”소수정은 입술을 구부리며 웃었다.“그래, 다들 그렇게 궁금해하니 얼른 확인해 봐, 정은아. 우리 모두 보자.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점수가 높든 낮든, 합격하든 하지 못하든 다 괜찮아.”이미숙은 정은을 보며 바로 거절하려고 했다.그러나 정은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좋아요.”사람들은 컴퓨터 앞으로 둘러섰다. 정은은 방금 이미 수험표 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했기에 지금 엔터키만 가볍게 두드리면 점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아빠가 대신 눌러주세요.”“내가?”“네, 그때 수능 점수도 아빠가 확인해주셨잖아요?”“그래.” 소진헌은 손을 비비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엔터키를 눌렀다.로드 중이라는 표시가 나오자, 사람들 모두 숨을 죽였다.1초, 2초...“나왔어! 나왔어!”[총점수: 412]주덕순은 멍해진 시율을 떠밀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만점이 얼마인데? 400여 점도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은데...”시율은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다.“왜 말을 안 하는 거야?”박나영은 재빨리 놀라운 감정을 조절하며 가볍게 웃었다.“동서, 만점은 500점이야. 정은이의 성적은 아마 3위권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수석일 가능성도 있어.”주덕순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그제야 눈을 크게 떴다.“그럼 정은이는 서비대 대학원에 합격한 거예요?!”소수정은 무뚝뚝하게 말했다.“엄밀히 말하면 대학원 시험은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나뉘죠. 필기시험 성적만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주덕순은 가볍게 한숨을 돌렸다.‘그래, 정은이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합격할 수 있겠어. 3위권으로 들어가긴 개뿔...’박나영은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그러나 필기시험 성적도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일단
정은은 이미숙의 생일을 놓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생일 하루를 앞두고 제시간에 도착했다.이미숙은 책을 꼭 안으며 물었다.“내가 줄곧 이 원문책을 찾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니?”“그동안 줄곧 입에 달고 다니셨으니, 제가 모르는 게 더 말이 안 될 텐데요.”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흥, 그러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거야? 그래도 고마워, 우리 딸. 이 선물 너무 마음에 들어.”이미숙은 웃으며 다정하게 정은을 안았다. 그리고 물처럼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전에 줄곧 긴 머리를 하고 다녔잖아, 왜 이렇게 짧게 잘랐니?”정은은 이미숙에게 기대었다.“짧게 잘라서 보기 싫어요?”“아니. 우리 딸은 어떤 헤어 스타일을 해도 다 예뻐!” 이미숙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정은은 담담하게 웃으며 이미숙을 더욱 세게 안았다.“필기시험을 통과했으니 곧 면접시험을 봐야겠지?” 이미숙이 말했다.“이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정은은 멈칫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숙은 다정하게 웃었다.“나도 이 작은 도시가 널 가둘 수 없단 것을 진작에 알았지. 이제 너도 다 컸으니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잖아. 가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정은은 속눈썹을 가볍게 떨며 입을 열었다.“이번에 절대로 두 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주방에 있던 소진헌은 주걱을 들고 나왔다. 모녀가 서로에게 기댄 채 귓속말을 하는 것을 보며 그는 입을 열었다.“무슨 기밀이라도 얘기하는 거야? 빨리 손 씻고 밥 먹자!”“네!”이튿날, 정은은 J시로 돌아가는 고속열차에 올라탔다.두 주일 넘게 집을 비웠기에 집안은 쌀쌀했고 먼지까지 쌓였다.짐을 내려놓은 다음, 정은은 가장 먼저 어항 속의 물고기를 살펴보았다. 두 마리의 금붕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서 사료를 조금 주었다.그런 다음, 정은은 또 베란다의 화분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
“도겸 씨, 왜 그래요?” 경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도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질문과 답답함을 억눌렀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동안 연기를 해왔으니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면, 정은은 또 도겸을 피할 것이고, 이렇게 가끔 만나서 인사를 건네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경혜는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정은의 말을 들은 후부터, 남자는 정신이 반쯤 나갔다는 것을.정은은 고개를 돌려 민지와 서준을 보았다.“시간도 늦었으니 우리 이제 돌아갈까?”“네!” 민지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곧 9시가 다 되어 가네요. 빨리 가요. 너무 추워요...”말하면서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었다.그녀는 사실 도겸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겨울, 영하의 온도에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멋을 부릴 수 있다니.‘사람을 기다린다고 해도 그냥 차에 들어가서 기다리면 되잖아? 굳이 차에 기대서 멋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안 추워? 쯧쯧... 이런 재벌 집 도련님들은 도대체 매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우리 먼저 갈게. 넌 네 남자친구와 천천히 데이트해. 안녕.”민지는 도겸의 정곡을 쿡쿡 찔렀다.정은이 택시에 탄 것을 지켜보다가 차가 사라질 때에야 도겸은 시선을 거두었고, 동시에 경혜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도 거두었다.경혜는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비록 마음속은 이미 씁쓸할 정도로 괴로웠지만, 여전히 웃음을 유지했다.아파도 웃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경혜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처음에 두 사람의 거래가 바로 도겸이 돈을 내고 경혜가 여자친구인 척 연기하는 것이었다.그러니 그녀는 도겸 앞에서 질투하는 감정을 조금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경혜는 도겸이 정은을 속인 것처럼 도겸을 속여야 했다.정말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이었다.정은이 떠나자, 도겸도 계속 여기에 남을 필요가 없었다.그는 차를 타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특별히 화
민지가 대답했다.“잘 아는 편도 아니야. 하지만 재운이는 사람이 꽤 착하잖아. 지난번에 식물 기지에서도 남들이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나서서 우릴 도와주었고. 난 다 기억하고 있다고!”“기억력이 좋아서 좋겠다.”“뭐?”“넌 남을 칭찬할 때, 항상 ‘좋은 사람’이란 말을 쓰더라? 그게 무슨 칭찬이지?”“아니... 너 뭐 잘못 먹었어?”맞은편의 도겸은 차 옆에 기대어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마치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경혜도 그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곧 나왔다.종종걸음으로 달려왔기에, 경혜의 볼이 빨갰고 숨이 가빴다.도겸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통통해 보이는 패딩을 입지 않고, 몸매가 돋보이는 코트로 갈아입었다.뿐만 아니라, 경혜는 평소에 머리를 묶지 않았는데, 오늘은 머리를 걷어 올려 똥머리로 묶은 뒤, 진주 머리핀을 장식했다. 시원시원하고 대범해 보이며, 귀엽고 깜찍했다.“오래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나올 때 스카프를 잊어버려서 다시 기숙사에 돌아갔거든요.”도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 아무런 정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것 같았다.눈길도 자꾸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경혜는 주위를 힐끗 훑어보더니, 정은을 본 순간에야 깨달았다.그렇지 않으면 도겸은 늦은 밤에 그녀에게 전화를 할 리가 없었다.‘그곳도 학교 앞에서 만나자니?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올 리가. 허... 지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시작하지.’경혜는 주먹을 꽉 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다가 곧 다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정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공교롭게 여기서 만나네, 정은아.”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여기에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경혜는 멈칫하더니 마치 그제야 서준과 민지를 본 것 같았다.“너희들도 있었구나, 정말 반가워.”민지가 말했다.“이렇게 말하니 마치 우리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잖아? 나와 서준이는 바로 정은 언니 옆에 서 있는데, 그런데도 보이지 않은 거야?”“미안해, 정말,
민지는 세입자들에게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쟁과 갈등에도 익숙해졌다.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서준이 말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절대적으로 심플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또 다른 요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처럼, 세계는 전체이고, 개체 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거지...”민지는 머리가 아팠다.“넌 생물 대신 철학을 연구해야 했어.”“네 닭다리나 먹어!”“흥, 원래 먹으려 했어! 그리고, 이건 네가 허락한 거야!”‘아싸, 이제 실컷 먹을 수 있겠어.’서준은 말문이 막혔다....다 먹고 정은은 계산을 했다.세 사람은 직접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산책을 하며 소화했다.“우리 같은 방향에 살아서 다행이야. 그리 멀지도 않고. 조금 있다가 학교 앞에서 택시 잡고 돌아갈까? 어차피 너도 가는 길이니 우릴 태워다 줄 수 있잖아! 헤헤!”“너 돈 많잖아? 왜 택시비가 아까운 거야?”전에 수억 원짜리 차를 선물로 준다고 한 사람이, 지금은 몇 천원 안 되는 택시비를 절약하려 했다.“돈 많으면 왜? 내 돈도 다 돈이야! 우리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돈을 벌 줄 알고 돈을 절약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 절약할 수 있으면 절약하고, 쓸 수 있지만 낭비해서는 안 돼!”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거봐, 정은 언니도 실험실을 짓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썼지만, 혼자 아파트에서 살고 있잖아. 이게 뭔 줄 알아?”정은과 서준은 동시에 민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가슴을 펴며 말했다.“돈을 알뜰히 쓰는 거야. 전부 써야 할 곳에 썼으니까!”“그래, 내가 잘못했어. 오늘 정말 좋은 가르침을 받았네.”“흥! 쮼, 넌 아직 너무 어려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내가 어리다고?”이때 서준은 갑자기 멈추었다.민지도 웃음을 거두었다.“왜 그래?” 정은은 두 사람이 주시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참지 못
그 닭다리를 다 먹은 뒤, 민지는 만족스럽게 트림을 했다.“아! 너무 행복해! 흑흑... 난 소원이 이것밖에 없어.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으면 되니까. 물론 미식가로 되면 더 좋고.”민지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그녀는 학술을 좋아하는 동시에 미식도 좋아했다. 이 두 사물을 결합하면 바로 민지가 가장하고 싶은 일이었다.“정은 언니는요?” 민지는 갑자기 정은을 쳐다보았다.“언니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갑자기 이상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자 정은은 멍해졌다.생각하다 천천히 대답했다.“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내 꿈이야.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면...'정은은 잠시 멈추었다.“오 교수님과 같은 연구학자.”“그런데...”민지는 갈등을 드러냈다.“교수님은 확실히 위대하시지만 때로는 난 교수님이 너무 외롭다고 생각해요.”오미선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과학 연구에 바쳤다.이런 추구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혼자 병원에 외롭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민지는 가슴이 아팠다.“예전에 난 교수님께 물어본 적이 있어. 이 선택을 후회하시냐고. 교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아니?”민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얼른 말해요, 언니!”서준도 정색을 했다.“사람의 일생은 원만하기 어려우며, 항상 우왕좌왕한다고 말씀하셨어. 그것은 우리의 정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만약 제한된 정력을 끝없는 과학 연구에 투입할 수 있다면, 교수님에게 있어서 이건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이기도 하지.”비록 개인의 행복을 잃었지만, 오미선은 전심전력으로 연구에 몰두했다.“그런데... 이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 아닌가요?” 민지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정은은 감탄했다.“아마도.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또한 선택도 다르잖아. 자신의 생각을 따라 확고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삶을 살 수 있어.”“그럼 정은 언니는 결혼할 거예요?”정은은 민지가
민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일 2킬로미터 더 달려야 한다는 말을 뒤로 했다.그리고 정은을 안고 애완동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사랑해요, 정은 언니, 내가 그 가게의 닭볶음탕을 먹고 싶어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또 어떻게 알았어요?”정은은 민지가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두더니 웃으며 말했다.“네가 전에 한 번 말했잖아, 그래도 기억해뒀지. 그리고 나도 그 닭볶음탕이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네.”“날 믿어요, 절대로 언니를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그 가게는 맛이 아주 좋아요!”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먹방들의 타고난 능력일 것이다. 민지가 추천한 것이라면, 대부분 엄청 맛있는 음식이었다.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아주 정통적인 닭볶음탕을 만들었다.또 J시 사람의 입맛을 결합하여 간단하게 개량했기에 엄청 고소하고 맛있었다.닭고기가 부드러우며 매콤한 향기까지 곁들이니, 생각만 해도 민지는 이미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요 며칠, 조깅의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서준은 민지의 식단을 엄격히 통제했다. 매일 그 싱겁고 무미건조한 음식들만 먹으니 민지는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비록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몰래 간식을 훔쳐 먹었지만, 간식이 어떻게 맛있는 요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정은 언니, 완전 사랑해요.”마침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민지는 감동에 눈물을 글썽였다.“야, 내가 언제 널 학대했어?”“그럼 조깅 취소해.”“그래, 그럼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 내년 건강검진 보고서에 ‘지방간’이라는 결과가 또 나올 테니까.”‘됐어,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을 말자. 난 그래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서준은 민지의 다이어트를 돕기 위해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그녀를 불렀다.사실 민지는 가끔 서준의 얼어붙은 볼과 코를 보고, 또 아직 이불 속에 틀어박혀 쿨쿨 자는 자신을 생각하면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건 죽을 죄야! 한겨울에 누가 더 자고 싶지 않겠어?’‘우리 아빠도 서준처럼 매일 일찍
민지가 대답했다.“여행 이미 마쳤어요!”“벌써?”“여긴 그리 크지 않으니,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며칠 걸릴 리가 없잖아요?”정은의 의혹스러운 눈빛은 서준에게 향했다.만약 그녀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때 서준은 2박 3일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그 기간에 몇 번 더 보완되었고, 코스도 더 많아졌다.그러니 하루 만에 끝내는 건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았다.정은이 입을 열어 물어보려고 할 때, 서준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콜록... 맞아요, 하루 만에 끝냈지만 즐거우면 됐죠.”“정은 언니, 이번에 서준이 가방이 나보다 더 큰 거 있죠!”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말하지도 않고, 놀 때도 꺼내 쓰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큰 가방을 메고 산을 올라갔는데, 엄청 대단하죠!”‘칭찬인 건가... 그건 좀...’정은은 이상한 눈빛으로 서준을 보더니, 마치 그의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맞힌 것 같다.2박 3일 동안 여행할 준비를 한 이상, 갈아입을 옷, 생활용품 따위를 챙겨야 하지 않을까?아마 민지는 원래 이것이 2박 3일 여행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에헴, 누나!”정은은 크게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오직 민지 만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정은 언니, 바쁜 일이 끝난 후, 하루 동안 쉬는 느낌은 정말 너무 좋아요! 그냥 점심까지 자고 나서 여러 코스를 돌아다니니...”‘그래서 2박 3일은 그렇다 쳐도, 온전한 하루조차 여행하지 못한 거야?’“서준이 줄곧 재촉했는데, 귀찮아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야 그냥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편한 대로 행동해야지, 누가 꼭 몇 시에 외출해야 한다고 규정했죠?”“늦잠을 잔 후에 다크서클이 바로 없어졌어요. 전에 밤을 새울 때 눈까지 작아졌는데.”서준이 말했다.“그래? 네 눈은 항상 그렇지 않았어?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민지는 허리를 짚으며 눈을 부릅떴다.“임서준, 너 나한테 얻어맞고 싶은
수민은 차여 넘어진 의자를 향해 턱을 들었다.동건은 재빨리 알아차리고 즉시 의자를 들고 제자리에 놓았다.“이제 나랑 좀 더 있을 수 있지? 헤헤...”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동건은 이미 수민의 가녀린 허리를 껴안고 침대 위로 가져갔다.5분 후.“수민아...”“너 뭐 하는 거야? 잠깐 누워있겠다며? 왜 내 단추를 풀어?”“쉿, 말하지 말고 우리 한 판 더 하자.”수민은 말문이 막혔다.새벽 3시,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건은 그녀가 이곳에 밤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차 좀 빌려줘.” 수민은 거울을 보고 체크하다가 목에 담담한 키스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 흔적 좀 남기지 말고 조심해.”동건은 침대에 기대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왜? 다른 남자가 볼까 두려워?”“또 말을 이따위로 할 거야?”동건은 긴장을 하며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아니... 내가 너무 매료되어서 이런 흔적 남기는 것도 정상이잖아. 내 등 좀 봐...”말하면서 그는 돌아섰다.“다 네가 손톱으로 파낸 흔적이야, 그런데 내가 언제 뭐라고 했어?”수민은 말문이 막혔다.그러나 등에 긁힌 자국이 가득하고, 심지어 껍질이 벗겨진 것을 보니 확실히 무서웠다.“에헴!” 수민은 가볍게 기침을 했지만 지지 않으려 했다.“그 뭐야... 넌 흔적이 다 등에 있으니 옷만 입으면 누가 알겠어? 이건 목이잖아. 내일 색깔이 더 깊어질 텐데. 어떻게 동료를 만나라는 거야?”“헤헤... 그럼 만나지 말고 휴가를 내. 우리 둘이 별장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자!”“허, 네 말에 속을 것 같아? 꿈이나 깨!”동건은 마음이 찔렸다.“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런 뜻이 아니라고.”“그건 너 자신이 더 잘 알갰지. 차 키 가져와.”동건은 침대 머리맡에서 BMW의 키를 꺼내 던졌다.수민은 힐끗 보더니 다시 던져주었다.“난 마이바흐를 원해.”“까다롭긴!”“내일 저녁에 퇴근하면 이리 와.” 남자는 이 기
“수민아, 정말 보고 싶었어!”말을 마치자마자 동건은 뜨거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수민도 능숙하게 응답했다.사실 그녀도 동건이 꽤 그리웠다.동건의 손은 수민의 옷자락으로 파고들며 점점 대담해졌다.그러나 수민은 그의 손을 꽉 잡았다.“응?” 동건이 물었다.“여기서 하고 싶지 않아, 집에 가서 하자.”그 한마디에 동건은 억지로 욕구를 참으며 가속페달을 쭉 밟았고, 엔진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원래 20분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지만, 10분 만에 동건의 집앞에 도착했다.문이 닫히자마자 두 사람은 시선이 마주치더니 곧바로 뜨거운 입맞춤이 이어졌다.그렇게 침실에 들어갔고, 옷이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한 시간 후, 정은은 나른한 눈빛을 띠며 욕실로 향했다.동건은 침대에 기대어 단단한 가슴을 드러냈다.“어딜 가?”“샤워.”“씻지 말고 좀 더 누워 있어.”“땀 냄새 나서 싫어.”동건은 다정하게 속삭였다.“안 나. 네 땀은 엄청 향기로워.”“내 땀이 아니라 네 땀이잖아.”“아...”샤워를 마친 수민은 원래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동건은 점점 이상하다고 느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설마 지금 가려고?”“응.”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수민은 내일 출근해야 했기에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동건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수민은 고개를 돌리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동건은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자고 바로 가다니, 내 집이 호텔이야? 내가 무슨 제비냐고?”수민은 부드럽게 설명했다.“난 그런 뜻이 아니야...”“아니긴 개뿔! 나를 심심풀이로 쓰는 거잖아?!”말을 마치자, 화를 못 참은 동건은 침대 끝에 있는 벤치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수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래도 설명을 하려 했는데... 이 남자는 정말 어이가 없군.’“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지?”“나는...”“네가 자신을 제비라 생각한다면
남자는 이 상황을 보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동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민아, 이분은...?”분명히 수민이 직접 소개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동건도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궁금했다.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이미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눈빛 속에 심지어 작은 기대가 어렴풋이 비쳤다.“아, 이분은 고씨 가문의 큰아들, 고동건이야.” 수민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대답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남자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그런데, 이분은 수민과 무슨 사이지?” 남자가 다시 물었다.이번에 동건은 수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말했다. “남자친구예요.”말을 마치며 동건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난 수민의 남자친구라고요.”동료는 수민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젓길 바라는 눈길을 보냈다.이에 동건은 화가 나더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고, 수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자신의 강한 소유욕을 과시했다.수민도 뭐라 하지 않았고, 부드럽게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남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수민은 즉시 똑바로 서더니, 자신의 어깨에 놓은 동건의 손을 털어냈다. “이제 됐어. 그 사람 이미 떠났잖아.”동건은 손을 호호 불며 아픈 표정을 지었다. “아야! 좀 살살 해!”수민은 대꾸했다. “싫어.”“너 정말... 전화해도 안 내려오고, 전화도 안 받고. 대단하네.”“누가 그렇게 전화를 했는지 궁금했는데, 너였구나.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야?”동건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제시간에 내려왔으면 내가 전화를 그렇게 했겠어?”“제시간? 내가 너랑 약속했던가?” 수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동건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가 오늘 야근 안 한다고 했잖아!”“그렇게 말했지만, 데리러 오라고 한 적은 없어.”수민은 야근을 하지 않아도, 바로 퇴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있었고, 동건이 데리러 올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