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와 현이가 한창 재밌게 뛰어놀고 있었다. 은표가 남아서 두 아이를 챙겼고 다른 이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윤도훈의 요구대로 송가네 할아버지가 은침을 보내왔다. 진철은 자리에 누운 뒤 스스로 가면을 벗었다.윤도훈을 ‘까발리기’ 전까지는 그래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그가 가면을 벗자 오랜만에 본 옛 친구의 모습에 송가네 할아버지는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늘 곁에 있던 지연마저도 가슴이 저렸다. 왜냐하면 진철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에 손녀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진철의 이목구비가 전부 비뚤어진 상태였다. 콧대가 왼쪽으로 휘어졌고 턱은 오른쪽으로 비뚤었으며 심지어 잇몸뼈까지 다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양 볼에는 보기만 해도 몸서리칠 정도의 둥근 흉터가 있었다. 옛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고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지연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고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입을 틀어막았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만약 할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가 잠자리를 원한다고 해도 그녀는 기꺼이 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윤도현 이 사기꾼이 할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다는 걸 절대 믿지 않았다.진철도 그를 믿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리에 누운 채 아니꼬운 말투로 말했다.“어때? 아직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지연도 한마디 거들었다.“지금 네가 사기꾼이라고 인정해도 늦지 않았어. 그런데 만약 할아버지한테 손을 댔는데도 아무 효과가 없다면 그 결과는 절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닐 거야. 그러니까 잘 생각해!”그동안 그녀는 윤도훈 같은 사람을 수도 없이 봤었다. 돈과 명예 또는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또는 다른 목적 때문에 접근한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할아버지를 고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심지어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당연히 고칠 수 있지! 영웅님이 지금 이 모습이 되신 건 얼굴 경락이 끊어지고 막혀서 그래. 그래서 이목구비가 삐
진철은 이 흉측한 얼굴이 자부심의 훈장이라면서 치료할 생각이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 말들이 절망에 빠진 그가 자신에게 건네는 위안뿐이라는 걸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왜 가면을 벗고 싶지 않고 햇빛을 다시 보고 싶지 않겠는가?지금까지 수도 없는 치료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완전히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윤도훈이 그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었다.평소 성격이 괴팍한 진철도 이 순간만큼은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말을 따랐다. 윤도훈이 움직이지 말라고 하자 입을 꾹 다물고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곧이어 윤도훈이 침을 하나 꽂을 때마다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진철 얼굴의 흉터가 옅어졌고 삐뚤어진 이목구비도 눈에 띄게 천천히 제자리를 잡아갔다.용의 기운이 윤도훈의 체내에 있을 때는 온화하지만 은침을 통해 진철의 몸속으로 들어간 후에는 조금 난폭하게 변해버렸다.“이... 이거 꿈 아니지?”지연이 두 눈을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와중에 방해될까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다.“이건 의술이 아니라 선술이잖아!”송가네 할아버지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시간이 1분 1초 지나갔다...윤도훈은 진철의 얼굴에 은침 20개를 놓은 후에야 드디어 멈췄다. 침을 맞는 사이 진철은 얼굴이 저리고 가려우며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힘든 세월을 견뎌낸 사람은 역시 달랐다. 아무리 괴로워도 꼼짝달싹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한 시간 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던 진철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은 그지만 이 순간만큼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하하... 하하... 이거 나야? 거울 속 사람이 정말 나란 말이야?”진철은 이미지와 위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었다.아직 이목구비가 완전히 제자리를 잡아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많이 나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피부도 반들반들해졌고 주름도 많이 적어졌다. 양 볼의 커다란 흉터도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옅어졌다.지금 이 순간
“지연아, 내기에서 졌으면 승복할 줄 알아야 해! 나랑 송가네 할아버지 물러갈 테니까 너희 둘이 알아서 해.”진철은 손녀를 그윽하게 바라보고는 다시 가면을 쓰고 나가버렸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녀를 파는 게 아니라 지연과 윤도훈이 내기를 한 건 사실이었다. 일언이 중천금인데 사람이라면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였다.“윤도훈 씨도 의외로 감정적인 사람이네? 하하...”송가네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고는 진철을 따라 나갔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송씨 가문에 나이도 적합하고 얼굴도 예쁜 여자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있으면 윤도훈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윤도훈 씨가 여색을 좋아한다고? 그럼 좋지!’한 사람을 만날 때 상대가 아무런 욕구도 없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골치 아픈 일이다.할아버지와 송가네 할아버지가 나가자 지연은 제자리에 선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더니 윤도훈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그를 노려보았다.“애도 있는 사람이 파렴치하기 짝이 없군!”그녀가 이를 꽉 깨물고 욕설을 내뱉었다.“남자는 죽을 때까지 마음은 소년이라는 말 몰라?”윤도훈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너...”지연은 시뻘게진 얼굴로 숨을 들이쉬고는 결단을 내렸다. 그러고는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처럼 두 눈을 꼭 감았다.“그래! 내기에서 졌으니 승복해야지. 개가 본다고 생각하지, 뭐!”그녀는 약속대로 옷을 벗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뜨거운 손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무슨 뜻이야? 대체 어디까지 나한테 모욕을 줄 건데?”지연이 잠깐 멈칫하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윤도훈이 피식 웃었다.“됐어, 사실 내가 이긴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를 완전히 고쳐드릴 수 있다고 내기를 걸었었는데 아직 완전히 고치진 못했잖아. 그러니 비긴 거나 마찬가지야.”“응?’지연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윤도훈을 빤히 보았다. 그런데 윤도훈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뀔 무렵 그의 이어진 말에 그녀는 하마터면 폭발할 뻔했다.“그리고 너의 무성한 체모를 볼 생각
그의 기억 속에 용혼소울링, 용황경 그리고 용안관철술 말고 다른 복잡한 것들이 더 있었는데 그중에는 여자에게 적합한 공법도 적지 않았다.“정말이야?”지연의 두 눈이 반짝였고 윤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한 번만 널 믿을게! 날 속였다간 죽여버릴 줄 알아! 전화번호 뭐야?”지연이 입술을 꽉 깨물고 사나운 척했다....윤도훈이 송씨 저택을 나설 땐 이미 밤 8시가 다 되었다.송가네 할아버지가 기어코 밥을 먹고 가라고 하는 바람에 식사를 마친 뒤에야 은표가 윤도훈과 율이를 집까지 데려다줬다.그런데 아쉬운 건 윤도훈이 송 씨 저택의 약 창고를 다 찾아봤지만 용수초는 보이지 않았다.다행히 현재 율이의 상태가 괜찮아 그리 급한 건 아니었다.또 이틀이 지났다!요 이틀 동안에는 율이의 입학 문제로 분주히 돌아쳤다. 송씨 가문에서 사람을 찾아 도와준 덕에 현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그날, 두 아이는 아주 재밌게 놀면서 하루를 보냈다. 유치원에 가면 다른 어린이들과도 함께 놀 수 있다는 생각에 율이는 요 이틀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입학 첫날 아침, 윤도훈은 율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부터 ‘부임’할 수 있다고 알렸다.이진희는 윤도훈에게 바로 회사로 나오면 된다고 했다. 윤도훈이 택시를 타고 회사 앞으로 왔는데 경비원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거기 서! 당신 누구야?”한 경비원이 윤도훈을 아래위로 훑으며 물었다.“이진희 대표님의 새 비서입니다.”윤도훈이 대답했다.“난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 대표님 옆에 이런 비서가 있었나? 신분증 있어? 없으면 당장 꺼져!”경비원의 태도는 무척이나 무례했다. 경비원의 말에 윤도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날 이진희는 윤도훈이 앞으로 자신의 운전기사 겸 비서라고 분명히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에게 증명 같은 건 주진 않았다.그가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어 경비원에게 얘기 잘해달라고 부탁하려던 그때 한 예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바로 이진희의 비서 양유나였다
양유나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윤도훈의 시선때문에 버럭 화를 냈고 그에 대한 경멸이 더욱 짙어졌다.쓸모없는 인간쓰레기가 자신을 자꾸만 쳐다보는 게 그녀는 너무도 싫었다.만약 상대가 젊은 남자거나 재벌 2세였더라면, 또는 늙은이라 할지라도 그냥 보게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추파를 던져도 윙크로 답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무능한 데릴사위가 그녀의 글래머한 가슴 쪽을 쳐다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옆에 있던 경비원도 그를 무시하긴 마찬가지였다.“뻔뻔한 것!”사실 경비원도 이 미녀 비서를 자주 흘끔거렸다. 양유나가 얼굴도 예쁜 데다가 옷까지 섹시하게 입어 저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그때 옆을 지나가던 직원들이 윤도훈을 손가락질하며 수군댔다.“무슨 일이에요?”“저 사람이 그러는데 자기가 대표님 남편이래요!”“대표님의 약혼남이 또 바뀌었어요?”“약혼남은 무슨, 그냥 키우는 개겠죠, 뭐! 하하...”“참 불쌍하네요. 명목상으로는 대표님의 약혼남이지만 대표님의 손가락도 터치하지 못하겠으니!”“저 여자에 굶주린 꼴 좀 봐봐요. 양 비서님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네요!”“쯧쯧...”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에 윤도훈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말로 자신에게 온갖 모욕을 준 양유나에게 되받아쳤다.“양 비서님, 내가 회사로 온 건 대표님이 불러서 온 거예요. 비서라는 사람이 대표님의 지시사항까지 안 듣는 겁니까? 내가 대표님한테 전화라도 해서 한마디 좀 할까요?”그의 말에 윤도훈을 보는 양유나의 눈빛에 경멸이 더욱 짙어졌다.“정말 못났네, 못났어. 사내자식이 일러바치기나 하고.”한참 실랑이 끝에 그녀는 결국 경비원에게 손을 흔들었다.“됐어요, 그냥 들여보내요! 여기서 창피하게 굴지 말고!”그러고는 요염한 걸음으로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윤도훈은 코웃음을 치고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양유나가 먼저 타고 윤도훈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미녀 비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윤도훈을 혐오스럽게 보고는 고개를 홱 돌
사태 파악을 마친 양유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도훈이 피식 웃으며 양유나를 옆으로 밀었다.“양 비서, 자리 좀 비켜줄래?”양유나는 끝까지 부정하며 문을 막아섰고 태도도 180도 확 바뀌었다.“윤도훈 씨, 정말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이 도청기는 제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억울해요, 저!”그녀는 몸으로 문을 막아서며 윤도훈을 못 나가게 했고 목소리도 살짝 울먹거렸다.“나한테 이런 얘기 해봤자 소용없어! 도청기가 네 것이든 아니든 대표님이 알아서 판단할 거야.”아무런 표정 없이 말하던 윤도훈은 또다시 양유나를 밀어내려 했다. 양유나는 윤도훈에게 애걸복걸 매달리더니 털썩하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윤도훈 씨, 제발 대표님한테는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무슨 요구든 다 들어줄게요!”미녀 비서는 윤도훈의 손을 덥석 잡더니 자신의 옷깃 속으로 집어넣었다. 윤도훈에게 매혹적인 윙크를 몇 번 날리면서 끊임없이 그를 유혹했다.윤도훈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고는 손을 확 뿌리쳤다.“꺼져! 너희 대표님이 내 와이프야. 이미 산해진미를 맛봤는데 다시 구정물 마시는 사람 봤어?”그 말에 양유나의 두 눈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구정물? 내가 그 정도야? 그리고 넌 뭐가 잘났길래 대표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말해? 대표님이 너 같은 자식이 터치하게 놔둘 것 같아?’단지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할 뿐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질 못했다.“윤도훈 씨, 아니 도훈 오빠, 제발요! 제발 대표님한테는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이 도청기는 정말 제 것이 아니에요!”눈물을 뚝뚝 떨구며 애원하는 양유나의 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했다. 윤도훈은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며 한참 후에 물었다.“그럼 너 말고 네 옷에 가까이 접근할 만한 사람이 또 누가 있어?”양유나가 도청기를 처음 봤을 때 표정을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배신자는 따로 있었다!양유나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구명진, 명진 오빠요! 대표님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이에요. 명진 오빠
“무슨 일이야?”윤도훈을 본 구명진의 두 눈에 경멸이 스쳐 지나갔고 무뚝뚝하게 물었다.“내 와이프한테 볼 일 있어서 왔어요.”윤도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명진이 실소를 터뜨렸다.“이 자식아, 널 윤도훈 씨라고 불렀던 건 대표님의 체면을 봐서지. 진짜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아까 대표님을 뭐라고? 네 와이프? 자기 신분이 뭔지 구분이 안 가?”“내가 당신 대표님이랑 혼인신고했으니 당연히 내 와이프죠! 비켜요, 들어가게.”윤도훈이 호통쳤지만 구명진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대표님 지금 일하는 중이셔서 누구도 방해해선 안 돼!”“그래요? 그럼 들어가서 알려줄래요? 내가 일이 있어서 왔다고.”윤도훈이 굳은 안색으로 말했다.“내가 말했지. 대표님 지금 일하는 중이라 방해받으면 안 된다고!”구명진의 말투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잔뜩 섞여 있었다. 바로 그때 양유나는 복도 끝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망설이다가 결국 침묵을 택했다.하지만 윤도훈과 구명진의 실랑이는 많은 직원의 시선을 끌었다.“무슨 일이에요?”“대표님의 약혼남이 대표님 만나러 왔는데 명진 씨가 막았나 봐요!”“맨날 할 일도 없으면서 대표님을 방해하러 오고, 참!”“하하, 참 철이 없네요!”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에 대한 구명진의 경멸이 더욱 짙어졌다.“윤도훈 씨, 일이 있어서 대표님 만나러 왔다고요? 그럼 무슨 일인지 얘기해 볼래요? 정말 급한 일이면 들여보낼게요!”그는 윤도훈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또 대표님한테 돈 달라거나 딸의 병원비를 물어달라는 거겠지.’“여기서 얘기하기에는 좀 불편해요!”윤도훈이 말했다.“왜요? 무슨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예요? 설마 또 돈 달라고 온 건 아니죠?”구명진이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복도에서 구경하던 직원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더니 여자 등골이나 빼먹는 남자를 보듯 윤도훈을 보았다.“무슨 일이에요?”바로 그때 대표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이진희가 안에서 걸어 나오더니 미
윤도훈의 말이 나오자 떠들썩 해지기 시작한 현장.“뭐라고? 나더러 이 대표한테서 떠나라고?”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구명진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그래!”고개를 끄덕이는 윤도훈.이진희는 눈에 의심스러운 빛이 스쳤고, 입을 벌리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윤도훈을 꾸짖으려고 했지만, 입에 담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이 남자의 몇 번 경이롭고 놀라운 행동을 생각하며, 이진희는 윤도훈이 또 무슨 짓을 할지 궁금했다.그녀는 이 남자가 헛되이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때, 구명진이 웃으며 윤도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 그저 데릴 사위 뿐인데, 정말로 자기가 뭐라도 되었다고 생각해?이대표님 옆에서 사라지라고? 당신은 나를 해고할 권리가 있어?후궁 주제에 황제 노릇을 하려 하네?"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졌다."후궁? 하하, 명진 형님은 참 재밋네!""이 녀석은 이 대표님의 세 번째 약혼자 아닌가요? 그럼 그냥 후궁이잖아요?""너무 웃겨......"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꼭두각시? 틀렸어!"윤도훈은 차가운 미소를 짓고 주변을 둘러보며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 이 대표님의 남편이야."말을 끝낸 후 그는 고개를 돌리며 이진희에게 물었다. "진희야, 나를 믿지?"이진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윤도훈이 정말로 자신의 남자임을 믿게 만들려고 했다.그러므로 직원들 앞에서도 연기를 해야 했다.이 장면을 보고 윤도훈이 이 대표님의 남편이라고 말하자 경멸을 드러내던 사람들은 갑자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 꼭두각시가 감히 이 대표님의 이름을 부르다니?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대표님이 정말로 그걸 받아들였어?금시에 얼굴이 검으락 푸르락 해진 구명진.왠지 마음에 불안감이 들었다.순간,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미소 지으며 몸을 움츠리고, "여보, 오른발 좀 들어주시겠어?"라고 물었다.이진희는 눈썹을 살짝 찡그
윤도훈은 한참 동안 공격을 받았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는 상대의 공격을 무시한 채, 홀로 이 어둠의 영역의 비밀을 연구하고 있었다.그러나 상대가 이진희를 겨냥하기 시작하자, 윤도훈, 이 아내 바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원래는 조금 더 연구하면 어떤 현문 기술로도 이 어둠의 영역을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연구할 인내심조차 사라졌다. 윤도훈은 결심했다. 직접적으로 힘으로 이 법을 깨뜨리기로 말이다.“깨져라!”윤도훈이 거대한 소리로 외치며, 오른발로 땅을 세차게 내리찍었다.대지맥동-콰르릉-엄청난 충격파가 윤도훈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땅은 거미줄 같은 균열로 가득 차올랐다. 밖에서 보면, 주변의 건물들이 마치 강도 9 이상의 지진을 겪는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건물들이 대규모로 무너지기 시작했다.성의 대강당 내부에서는, 돌조각들이 날아다니며 미친 듯이 요동쳤다. 무시무시한 에너지의 파동이 사방으로 넘쳐흘렀다.퍽-퍽-퍽-윤도훈과 이진희를 묶고 있던 어둠의 영역은 대지맥동의 에너지에 의해 즉시 산산조각났다.한편, 어둠의 영역을 펼쳤던 오거스는 이 진법이 깨진 반작용과 대지맥동의 진동으로 인해 공중으로 튕겨 나가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또한, 오거스 옆에 있던 로이도 대지맥동의 충격에 의해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겨져 즉사했다.나머지 세 명의 히드 조직 신적 경지를 초월한 강자들 역시 대지맥동의 힘으로 공중으로 튕겨 올라가면서 피를 토했다.콰르릉-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무시무시한 진동이 사라지자, 성의 대강당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하늘이 훤히 보이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그 폐허 한가운데, 윤도훈과 이진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당당히 서 있었다.“죽어!”윤도훈은 차갑게 말하더니 포탄처럼 남아 있는 세 명의 신적 경지를 초월한 강자들을 향해 날아갔다.“아악!”그 순간, 세 명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들은 윤도훈의 급습에 상처를 회복할 틈도 없이 급히 일어나 즉
히드 조직의 한 신적 경지를 초월한 강자가 윤도훈의 주먹에 무기가 부서지고 한쪽 팔이 망가지자, 오거스를 포함한 다섯 사람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하지만 그들은 윤도훈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의 영역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었다. 윤도훈이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전에 공격했던 자는 검은 안개 속으로 물러난 뒤,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오른팔이 회복되었다. 히드 조직의 강자들은 육체의 강도와 회복 능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슈우우-오거스의 분노 섞인 명령이 떨어지자, 또 하나의 공격이 갑자기 윤도훈을 향해 날아왔다. 검은 안개를 뚫고 예고 없이 날아든 이 공격은 방어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공격을 가한 자는 이전보다 더욱 신중해졌다.윤도훈과 근접전을 벌이는 대신 원거리에서 붉은 발톱 그림자를 날렸다. 그 공격은 곧바로 윤도훈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그러나 윤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날려 공격을 산산조각냈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붉은색의 붉은 발톱 그림자이 반대 방향에서 날아와 그의 등을 강타했다.퍽-이 공격은 일반적으로 세속의 고수급 강자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지만, 윤도훈의 몸에 닿자마자 작은 소리만 남긴 채 사라졌다.윤도훈의 방어를 전혀 뚫지 못한 것이다.“젠장, 내 공격이 저 놈의 방어를 뚫지 못하다니!”이때, 매혹적이고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충격과 믿기지 않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듯했다.“계속 공격해! 우리는 어둠 속에 있고, 저 놈은 빛 속에 있어! 오늘 어떻게든 윤도훈을 죽여야 해!”오거스는 공격을 멈추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며, 더욱 강한 살기를 드러냈다. 그들에게 윤도훈과 같은 강력한 적을 제거하지 못하면 히드 조직에 있어 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사실 그들은 자신들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이번에 윤도훈이 F국에 온 것은 히드 조직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는 히
타닥타닥타닥...그때,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어둠 속 희미한 촛불 사이로 오거스가 걸어나왔다. 그는 반쪽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키가 훤칠했고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오거스의 뒤에는 로이가 따라오고 있었다.이진희는 이 모습을 보며 실눈을 뜬 채, 로이를 주시하며 물었다.“로이, 이게 무슨 뜻인가요?”그러나 로이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이 하이오스 그룹의 이사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에 아무런 발언권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그 순간, 어딘가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놀랍군! 정말로 놀라운 일이에요!”“윤도훈 씨, 오늘은 당신의 아내만 잡으려고 했는데, 뜻밖에 당신까지 올 줄은 몰랐네요! 정말 예상 밖의 놀라움이지 않나요?”말하는 이는 반쪽 가면을 쓴 남자, 오거스였다. 그는 히드 조직의 배후 수장 중 한 명이었다. 박수를 치며 이어 말했다.“당신은 누구죠?”윤도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오거스가 대뜸 그의 이름을 부르며 공격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대방의 행동에 윤도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외국인과는 거의 교류한 적이 없었는데.’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히드 조직의 사람인가요?”윤도훈은 지금껏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심지어 이전에 공장을 운영할 때도 외국인과 교류한 적이 없었다.다만, 유일하게 얽혔고, 심지어 원수로 여길 만한 존재는 영도국과 히드 조직뿐이었다.“보아하니, 꽤나 똑똑한가 보군요. 하지만 우리 히드 조직을 건드린 건, 절대 똑똑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죠. 오늘은 당신 피로, 우리 조직의 죽은 동료들을 기릴 거예요. 게다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팠으니, 히드 조직이 그 호의를 저버릴 리 없죠!”오거스의 목소리는 차갑고, 그의 태도와 행동은 여전히 우아했다. 하지만 그 우아함 속에는 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자기 무덤을 스스로 팠다고요? 참, 웃기는군. 이제보니 염하어 실력이 많이 좋아졌네요
성문이 열리자 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밤하늘 아래 이곳은 마치 거대한 괴물이 웅크리고 앉아, 검은 구멍 같은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윤도훈과 이진희는 얼굴을 굳히며 옆에 있던 안내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러나 그 안내원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심지어 윤도훈의 예리한 감각으로도 그의 움직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안내원이 어둠과 하나가 되어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았다.윤도훈과 이진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이제야 분명해졌다.로이가 초대했다는 이 비즈니스 교류회는 사실상위험한 함정이었고, 게다가 이곳은 윤도훈조차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여보, 조심해. 내 뒤에 붙어있어!”윤도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그런데 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할까요?”이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 경계를 띄운 채 주변을 주시했다. 이윽고 그녀는 검은 주머니에서 초혼번을 꺼내 들었다.이진희의 육체적 강함은 이미 윤도훈과 같은 만상 경지에 이르렀다. 이전에 극심한 충격으로 인해 머릿속에서 마치 전생 같은 기억이 떠오르며, 그녀는 새로운 능력을 터득하기 시작했다.그렇게 이진희는 이제 자신의 혼백체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다른 영혼의 에너지를 흡수해 자신의 영혼을 강화하고 이를 육체적 힘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영혼을 흡수할 수는 없었다. 지난번 흡수한 윤연홍의 영혼은 그녀에게 부작용을 남겼기 때문이다.윤연홍의 기억 일부가 이진희의 기억에 강제로 삽입되었고, 그의 부정적인 감정과 아픈 경험까지 그녀가 고스란히 겪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경험은 이진희에게 매우 큰 고통이었으며, 이는 다 단 한 사람의 기억 때문이었다. 만약 무분별하게 영혼을 흡수했다면, 이진희의 정신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붕괴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진희는 순수한 영혼 에너지만을 선택적으로 흡수해야 하며, 자아가 없는 잔여 영혼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신비한 암흑 조직 중 하나로 꼽히는 히드 조직은 반드시 복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과거 영도국의 의뢰를 받아 하데스와 블랙 단테라는 두 명의 강자를 파견하여 영도국의 두 명의 대사급 강자와 함께 심은길이라는 영도국 인질을 가로채려 했다.그러나 네 명의 대사급 강자 모두 윤도훈의 손에 의해 전멸했다.그래서 복수를 위해, 그들은 더욱 강력한 신적 경지급 강자인 루시퍼와 총의 여왕을 파견하여 블랙 단테의 복수를 꾀했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끝났다. 그들은 염하 강주 수도권에서 전멸당했고, 당시의 성주인 현씨 가문 역시 함께 멸망했다.총의 여왕이 준비한 폭탄조차 윤도훈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같은 인물에게 네 명의 강자를 잃은 히드 조직은 내부에서 극도의 분노를 일으켰다.하지만 그들은 윤도훈의 실력을 재평가한 뒤,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그들은 그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윤도훈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수집되었다.그렇게 로이는 겉으로는 히아오스그룹의 이사 겸 주주로 보였지만, 사실 히드 조직의 일원이다. 로이가 이진희를 도운 이유도 그가 말한 대로 대단히 명예로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진희를 속여 신뢰를 얻고 자신의 저택으로 유인해 그녀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였다.이진희를 통제하고 그녀를 인질로 잡으면, 윤도훈이 구하러 오지 않을 리 없었다.또한, 현재 히드 조직이 염하로 파견할 수 있는 최고 강자는 신적 경지급 강자였다.하지만 히드 조직의 배후에는 더욱 강력하고 공포스러운 세력이 존재했으며, 신적 경지를 초월한 강자들은 염하 영토에 쉽게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윤도훈을 F국으로 유인한다면, 히드 조직의 진정한 강자들이 마음껏 그를 공격할 수 있었다.“기억해,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해. 절대 실패해서는 안 돼!”가면을 쓴 남자는 시가를 피우며 차갑게 말했다.“오거스 대인, 안심하십시오!”로이는 섬뜩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윤도훈이 이번에 F국으로 올 때 윤도훈의
로이가 떠난 뒤, 이원이 이진희에게 작게 속삭였다.“누나, 저 로이 씨라는 사람이 누나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예요? 누나, 절대로 매형을 배신하면 안 돼요!”이원은 이진희가 절세미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외국인의 미적 기준이 염하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이진희가 그들 눈에 보기 드문 대미인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온갖 상상을 하며 혼자 생각에 빠졌다.한편, 이 말을 들은 이진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원을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로이 씨는 우리를 많이 도와준 분이야. 그런 초대를 어떻게 거절하겠어!”“그건 그렇네요.”이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그 순간, 세 사람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원이 윤도훈 이야기를 꺼내자, 이진희는 가벼운 콧소리를 내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매형이라니! 믿을 수 없는 윤도훈 말인가.”“누나,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매형이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일부러 누나 전화를 안 받는 게 아니잖아요!”이원은 이제 윤도훈의 충실한 신도가 되어, 무슨 말만 하면 무조건 그를 옹호했다.이천수도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혹시 율이가 무슨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이 말을 들은 이진희는 순간적으로 윤도훈에 대한 원망이 모두 사라지고, 걱정으로 바뀌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낯선 번호였지만, 발신지 정보는 염하 도운시였다.이진희는 이 전화가 무언가 예감이 드는 듯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여보, 나야!]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윤도훈이었다. 그는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장모님이 사고를 당했다면서? 지금 상태는 어때? 그리고 너는 괜찮아?]그날 낮에 일어난 사건은 목격자가 많았고, 당국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일부 상류층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져 있었다.윤도훈이 황급히 제황원으로 돌아오자, 같은 단지에 사는 한 사장이 그를 알아보고, 낮에 들
로이가 이진희 앞에서 보인 존경과 예의를 본 모든 사람들은 순간 얼어붙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원래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이천수와 이원도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알렉스 자작은 로이에게 내민 손을 그대로 공중에 멈추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어붙었다.라니야 부장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하며, 그녀의 눈빛 속에는 당혹감이 스쳤다. 라니야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히아오스그룹의 이사인 로이가 이진희에게 이토록 존경심을 표하며, 그녀를 그린 제약회사의 사장으로 칭하며 말하는 것을 말이다. 또한, 로이의 말투에는 극도의 존중과 칭찬이 담겨 있었다. 이로 인해 라니야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알렉스 자작과 몽스트 가문의 사람들 역시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반면 이진희 본인은 놀라움 속에서도 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서지현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녀는 극도로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었고, 마음속 한편으로는 윤도훈에게도 약간의 원망이 있었다. 서지현이 위급한 이 순간에 윤도훈과 연락조차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 로이가 하트라이트 캡슐 덕분에 자신에게 이토록 예의를 갖춘다는 말을 듣고, 이진희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먼 곳에 있는 그 바보 같은 남자가 또 한 번 간접적으로 자신을 도와주었단 말인가?’그 순간, 로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이진희는 차가운 시선을 라니야를 향해 던졌다.“로이 씨,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앨리스가 나서서 이진희 대신 사건의 전말을 로이에게 설명했다. 이윽고 설명을 들은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찰싹-사건의 전말을 들은 로이는 망설임 없이 라니야의 뺨을 때렸다.“이 멍청한 것아! 너는 지금 우리 히아오스그룹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어! 누가 너에게 고객을 이렇게 모욕하고 무시할 권리를 줬지? 이진희 사장님께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당장 회사를 떠나게 될 거야!”로이의 말이 끝나자, 라니야는 뺨을 감싸고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
“뭐라고 했어요?”이진희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날카로운 빛을 내뿜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이천수와 이원 역시 분노로 가득 찼다.비록 알렉스와 라니야가 한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들의 태도와 말투를 보니 절대 좋은 말은 아니란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오? 이 염하 여자가 우리 멋진 F어를 알아들을 줄이야?”알렉스 자작은 잠시 멈칫하더니,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로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너희들이 우리와 명단을 두고 다툴 자격이나 있냐고. 설령 너희들이 먼저 왔다고 해도, 여기 리알프스 시에서는 우리 몽스트 가문을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어.”“순순히 기다리든가, 아니면 꺼져. 그렇지 않으면 라니야 부장님이 나서지 않아도, 내 경호원들이 너희를 개처럼 쫓아낼 거야!”후-그 말이 끝나자, 이진희의 절세의 미모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그녀의 여린 몸에서 나오는 차디찬 기운과 살기 어린 분위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주먹을 꽉 쥔 이진희는 분노와 살인의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라니야에게 물었다.“내게 하는 비하와 모욕은 상관없어요. 하지만 묻겠습니다. 다음으로 인체 냉동을 받을 사람이 누구죠?”“알렉스 자작님의 아버지, 존귀한 도툴스 경입니다. 왜요?”라니야는 옆에 서 있는 무장한 보안 요원들을 보며,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하하하, 들었어? 내 아버지야! 네 어머니라고? 내 손에 죽고싶어 안달난 건가? 그럴 시간에 차라리 네 어머니를 끌고 가서 염하에서 무덤 자리나 찾아보는 게 어때?”알렉스 자작이 비웃으며 말했다.몽스트 가문은 F국의 유서 깊은 가문으로, 리알프스 시에서는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알렉스는 이진희 같은 염하 사람들을 상대로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죽고 싶어?” 이진희는 이를 악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순간, 홀 한쪽에 원래 닫혀 있던 금속문이 열렸다. 이윽고 몇 명의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나왔다. 선두에 선 중년 남자는 지적이고 학문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라니야의 태도 차별을 본 이진희 일행은 물론이고, 앨리스마저도 마음속 깊이 분노와 불만이 치밀어 올랐다. 특히 그녀가 다음 순서가 알렉스 자작의 아버지라고 말했을 때, 그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그 순간, 알렉스 자작이 다시 물었다.“다음 순서요? 다음 순서가 언제입니까? 제 아버지에게는 5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그러자 라니야가 냉정하게 답했다.“자작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순서는 항상 하나씩 진행되는 겁니다. 오늘 냉동 작업을 담당하는 톰 박사는 지금 다른 환자를 대상으로 냉동 수술을 진행 중입니다. 최대 30분 정도면 끝날 겁니다.”“그리고 수술이 끝나면 바로 자작님의 아버님 차례입니다. 냉동 수술 자체는 3시간이면 완료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으신가요?”이 말을 듣고 알렉스 자작은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라니야 부장님.”알렉스와 함께 온 사람들 역시 연신 감사를 표했다.“라니야 부장님, 당신은 우리 몽스트 가문의 천사입니다.”“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결제하고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알렉스 자작의 아버지는 폐암에 걸려 여러 치료를 받아왔지만, 오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병원에서 위급 통보를 받았다.남은 시간은 고작 5~6시간.그러나 라니야가 30분 안에 수술이 시작될 수 있고, 3시간이면 완료된다고 말하자, 알렉스 자작과 몽스트 가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이진희, 이천수, 그리고 이원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만약 냉동 작업이 여러 환자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라니야의 태도 차별에 불만은 있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상황은 하나씩 진행해야 하는 구조였다.게다가, 알렉스 자작의 아버지는 자신들보다 나중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제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라니야가 알렉스 자작에게 다음 순서라고 확언해 버린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이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