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의 품에 답삭 안긴 신세희는 반쯤 내지르려던 비명을 뚝 멈췄다. 부소경은 한쪽 팔로 그녀를 꽉 안으며 그녀의 시야를 자신의 품으로 가렸다. 신세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에 없던 안정감이 느껴졌다.이윽고 그녀의 청각조차도 부소경의 큰 손에 의해 차단되었다. 신세희는 먹먹하지만 꼭 마치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서너 번쯤 들은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부소경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얼마 후 부소경은 그녀의 귀를 막았던 손을 떼며 엄선우에게 말했다."출발해."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했다.신세희는 서서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 바로 앉았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부소경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백미러를 흘끔 쳐다보니 방금 차가 멈췄던 곳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방금 들었던 먹먹하고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는 사실 총성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부소경에게 향했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차 안에서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머릿속에 방금 그 사람을 처리했던 때가 떠올랐다. 한쪽 팔로 그녀를 감싸고 눈과 귀를 막아주던 부소경, 그는 그녀가 두려워할까 봐 이런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졌다.부소경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지만 그녀는 통 입맛이 없었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놀라지 않은 것 아니었다. 그도 더는 묻지 않은 채 먹는 둥 마는 둥 듯하더니 곧 그녀를 데리고 쇼핑했다.대학 다니던 시절에 이런 백화점에 와본 경험은 있었지만, 물건을 산 적은 없었다. 이런 옷들을 살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저 둘러보다 보면 눈이 즐거웠을 뿐이었다.부소경이 그녀를 데려간 곳은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의 의류 매장이었다. 안목이 뛰어났기에 고르는 스타일은 모두 신세희에게 잘 어울렸다.매장 직원도 당연히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부소경에게 다가가 아부하기
옆에 있던 허영도 잔뜩 일그러진 험악한 표정으로 남편의 어깨를 때렸다."당신, 어제저녁에 저년이랑 얘기를 나눴다면서?"임지강은 음울한 표정으로 원수를 바라보듯 신세희를 노려봤다. 당장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그랬었지. 그런데 저 썩을 년이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거야. 부소경이 저를 감싸주니까 점점 더 기고만장해지는 게지!""그 여자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 저년은 우리 앞에 무릎 꿇고 빌어야 할 거야!"이를 악물며 악을 쓰던 허영은 임지강에게 다시 한번 소식을 물었다."그렇게 많은 돈을 팔면서 탐정을 고용하더니, 찾는다던 그 여자는 대체 어떻게 됐어?"임지강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허영과 임서아는 그 한숨 소리를 들으며 별로 가망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두 모녀가 잔뜩 화를 내며 원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임지강도 죄책감과 분노를 느꼈다."그 여자를 찾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야. 얼마를 들여서든 꼭 찾아낼 거라고. 그렇지만 그 여자를 찾기 전에도 우린 다른 수를 써서 목숨을 부지해야 해. 게다가 우리 서아는 꼭 부소경과 결혼해서 운성 최고 권력자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반드시!"임서아가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아빠...""우리 딸, 아빠가 다른 방도를 마련해볼게!"임지강은 독기 서린 눈으로 신세희를 노려봤다.멀리 떨어진 여성 의류 코너에서 피팅하던 신세희는 불현듯 오한이 일었다."왜 그래?"부소경이 물었다."옷이 너무 얇아서요. 곧 겨울이라 이렇게 입으면 추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 옷은 안 어울릴 것 같아요."신세희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매장 입구에 놓인 한 아름의 쇼핑백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이미 스무 벌은 된 것 같아요. 더는 안 살래요. 더 사면 낭비예요."어렸을 때부터 신세희는 이렇게 사치를 부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꺼번에 많은 명품 옷들을 사게 되니 너무 낭비한 것 같다는 수치심이 몰려왔다."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안 사도 돼."부소경이
신세희의 눈이 기대로 반짝거렸다. 그건 디자인에 특화된 최신 사양의 노트북이었다. 얇고 가벼우며 예쁘기까지 한 걸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그러나 노트북은 카메라보다 더 사치였다. 그녀는 적어도 반년, 혹은 일 년, 심지어 이 년 동안 노트북을 살 계획이 없었다."마, 마음에 들어요."늘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던 신세희지만, 지금은 도저히 침착할 수 없었다. 말을 하며 침을 꼴깍 삼키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신세희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한 듯 웃었다."내가 너무 바보 같았죠?""......"그는 한 번도 이런 모습의 신세희를 본 적 없었다. 바보 같고, 풋풋하고 웃을 때는 순진한 아기 같기도 한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이십 대 소녀다웠다.부소경은 별다른 대답 없이 노트북을 신세희 쪽으로 밀어주며 몸을 일으켰다."가져."신세희는 가운만 입고 있는 그를 보며 그가 목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아마 일부러 여기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을 것이다.늘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차분했던 머리카락은 차가운 그의 인상을 더 부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스러운 상태로 부드럽게 그의 이마에 흘러내린 채 눈썹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를 반쯤 덮고 있으니 예전처럼 딱딱하지 않았다.문득 다섯 시간 전, 한쪽 팔로 자신을 감싸며 눈과 귀를 막아주던 손길이 떠올랐다. 다른 한 손을 창밖으로 뻗으며 차가운 무기로 사람을 죽였던 그 순간까지...그러나 지금 이 시각, 그녀는 그가 무섭지 않았다.재빨리 고개를 숙인 신세희가 옅게 미소 지었다.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당신 지금 조금 것 같아요."말을 마친 신세희는 노트북을 안은 채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홀로 남은 부소경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커... 뭐?'부소경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상대가 신속하게 전화를 받았다."도련님, 세희 아가씨께서는 이미 올라가셨습니다.""커여운이 뭔데?"그가 물었다."예
다음 날 아침, 신세희는 일찍 집을 나섰다. 그녀의 모습을 본 부소경은 잠시 넋을 놓았다.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고개를 든 그녀가 말했다."노트북 마음에 무척 들어요. 속도도 빠르고 소프트웨어도 디자인에 특화된 거라 정말 좋네요. 고마워요. 당신이 사준 그 옷들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난 당신과 결혼했을 거고, 아주머니를 어머님이라 불렀을 거고, 끝까지 곁에 있어 드렸을 거예요. 오늘부터 당신은 계약서대로 이행하지 않아도 돼요. 고마워요. 저는 이만 출근하러 가볼게요. 참, 바쁘면 아침에는 어머님을 뵈러 오지 않아도 돼요. 제가 잘 보살펴 드릴 수 있으니까. 갈게요."말을 쏟아낸 그녀가 몸을 돌려 도망갔다."......"차갑고 어쩐지 조금은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조숙하고 생각도 많은 사람이라 여겼었는데... 이렇게 조금만 잘해줘도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그러나 신세희가 말하지 않아도 부소경은 오늘 어머니를 뵈러 갈 수 없었다. 그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어젯밤, 처리했던 그 몇몇이 대체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건지 알아내지 못했었다. 하여 부소경은 부하들에게 아침이 밝아오기 전까지 반드시 알아내고 후환도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지금은 하룻밤이 지났고 후환도 없애버렸지만, 그와 맞서려던 사람들의 배후에 있는 회사와 재무를 넘겨받아야 했다. 하여 그는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해 재무팀, 행정팀과 함께 미팅에 참여해야 했다.재무팀과 행정팀이 모두 도착하자 임원이 부소경에게 상황을 보고했다."대표님, 이들 중 한 회사의 인사팀 책임자가 말하길, 그들 대표가 임 씨 기업의 임 사장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어느 임 사장?"부소경은 임 사장이 누구인지 잠시 떠오르지 않았다."그분이요..."잠시 머뭇거리던 임원이 말을 이었다."겉으로는 둘째 어르신 편에 선 것처럼 보였으나, 대표님께서 마지막에 판을 뒤집으셨을 때, 사실은
임서아의 울음소리가 더 서러워졌다."오빠, 앞으로 다신 오빠를 찾아가지 않을게요. 제발 아이는 살려주세요. 아이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게요. 저와 아이가 절대 오빠를 찾는 일은 없을 테니까... 제발 낳게 해주세요. 네?""지금 어디야?"부소경이 다급하게 물었다.부소경이 다시 회의를 재개하길 기다리던 임원들이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선우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 모든 사람에게 알렸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죠."임원들은 모두 눈치 있게 물러섰다.엄선우가 부소경에서 말했다."도련님, 무슨 일입니까?"부소경은 엄선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수화기 너머 겁에 질린 임서아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아니에요, 오빠. 오, 오지 말아요."옆에 있던 임지강이 전화를 뺏었다."넷째 도련님, 저희는 지금 청화병원에 와 있습니다. 부디 사람 좀 보내주십시오. 저를 도와 서아를 묶어서라도 수술실에 들여보내 주시지요, 도련님..."전화가 뚝 끊겼다.부소경이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서며 엄선우에게 명령했다."당장 차 대기시켜. 청화병원으로 간다.""알겠습니다."가는 길 내내 엄선우는 신호 위반을 감행했다. 그들이 청화병원에 도착하기까지 겨우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부소경과 엄선우는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산부인과 로비로 달려갔다. 바닥에 앉아 기둥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 임서아와 그런 그녀를 끌고 가려고 하는 임지강이 보였다.그들의 곁에서 허영이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임지강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당신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 서아의 아이라고. 당신과 내 손주란 말이야! 왜 이렇게 지우지 못해서 안달이야? 서아가 넷째 도련님을 찾아가지 않으면 될 거 아니야! 우리가 멀리 도망가면 되는 일이잖아!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흑흑흑..."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아이고, 아버지 말이 맞지.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덜컥 임신부터 하다니. 애 아빠네 집안에서도 싫다잖아.""여자아이가 왜 저렇
"정, 정말이에요?"임서아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부소경을 바라보았다."정말이야.""그렇지만 오빠는 날 좋아하지 않잖아요. 오빠는 신세희를 좋아하고 있잖아요. 오빠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배 속의 아이로 오빠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저 차마 아이를 지우지 못해서 그랬어요. 오빠를 따라가지 않고, 저는 멀리 떠날 거예요."임서아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너와 결혼하겠다고 했잖아. 넌 내 유일한 아내가 될 거야. 네 배 속의 아이도 부 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테고."말을 마친 부소경이 임서아를 안고 검사실로 걸음을 옮겼다."......"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흥건했다. 그러나 부소경의 품에 기댄 임서아는 자신의 완벽한 승리를 직감했다.그들의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과 임지강이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산부인과에서 검사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임서아는 임신이 확실했다. 임신한 지 10주가 지났으니 마침 부소경과 그녀가 하룻밤을 보냈던 시기와 맞물렸다.의사는 또 부소경에게 태아는 아주 건강하지만, 모체가 약하니 잘 쉬어야 하며 화를 내거나 슬퍼하면 안 된다고 했다.엄마가 슬퍼하면 아이의 성장에도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의사의 당부를 들은 부소경은 다시 임서아를 안고 진찰실을 나섰다. 그는 그녀를 내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부소경의 품에 안긴 임서아는 형용할 수 없는 달콤한 감각을 맛보았다. 취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지며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부소경은 병원 밖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임서아를 내려주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심연 같은 그 눈동자를 마주한 임지강와 허영은 그의 의중을 도무지 알아낼 수 없었다."서아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앞으로 저와 함께 지낼 거고, 서아를 특별히 보살펴 줄 사람도 부 씨 저택에서 차출할 겁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서아와 결혼하겠습니다. 아이는 제 아이이니 당연히 낳을 거고요. 아무도 내 아이를 지우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겁
"알겠습니다."짧게 대답한 부소경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차갑고 고요한 눈동자로 임서아를 쳐다보았다. 조금 마음을 추스른 그가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내 아이를 임신한 사람을 어떻게 다른 곳에서 지내라 하겠어.""싫어요."임서아가 고집을 부렸다."싫어요, 오빠. 우린 아직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았으니 난 아직 오빠의 아내가 아니에요. 아이의 엄마가 됐으니 아이에게 모범을 보여야죠. 오빠를 귀찮게 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고, 강해지는 법 말이에요. 그러니 오빠와 결혼하기 전엔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의 아이는 제가 꼭 잘 보살필게요. 약속해요."그녀가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투에 부소경은 어쩐지 그녀가 꼭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에게서 강인한 의지가 느껴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부소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그렇게 해."그가 임지강과 허영을 돌아보며 말했다."서아를 잘 보살펴 주십시오. 한 달 뒤 반드시 서아와 결혼할 겁니다. 서아는 부 씨 집안의 유일한 안주인이 될 거고 배 속의 아이는 우리 F그룹의 후계자가 될 겁니다."잔뜩 벅차오른 임지강이 고분고분한 태도로 말했다."도련님, 도련님께서, 도련님께서 서아를 마다하지만 않는다면, 저희 부부는 반드시 딸아이를 잘 돌볼 겁니다. 우리의 손자가 아닙니까. 저희라고 지우고 싶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서아가 도련님께 피해를 줄까 봐...""당신, 그만해."허영이 임지강을 말렸다. 임지강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도련님께선 일 보시지요. 우린 서아를 데리고 돌아가겠습니다.""일이 해결되면 곧 보러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부소경이 자리를 떠났다.옆에서 보좌하던 엄선우는 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부소경을 따라 차에 올랐다. 꽤 오랜 시간 달렸음에도 부소경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엄선우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도련님은 사실 임서아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집안 모임이 끝난 지가 언젠데... 그래, 마음은 정했고? 어느 집안 아가씨가 마음에 들더냐?"부태성이 경직된 얼굴로 물었다.그의 손자는 서른두 살이었다. 만약 순리대로라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어야 했다.평소처럼 무뚝뚝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부소경을 보며 부태승은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부소경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기에 당장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그저 노파심으로 거듭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우리 부 씨 가문에 어울릴 만한 집안도 얼마 없다. 서 씨 가문의 아가씨는 어떠하냐? 의찬이와 자주 어울리던 서시언의 스물두 살 여동생 말이다. 그리고 서울의 곽 씨 집안의 아이도 괜찮더구나. 그러나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아가씨는 다른 서 씨 집안의 아가씨였어."부태성이 말을 늘어놓았지만 부소경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록 침묵을 유지했지만 싫다는 내색 또한 보이지 않았기에 부태성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서 씨 집안 맏이 서경수 부인의 외손녀 말이다. 민정연이라고 했던가? 민 씨 집안은 비록 남성에서 한참 순위에 못 미치는 몰락한 가문이지만 민정연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서 씨 집안 어르신 곁에서 자랐으니, 비록 성은 민 씨지만 서 씨 집안의 손녀라고도 할 수 있지. 남자들만 그득한 서 씨 집안의 유일한 여자아이라고 하니 그 집안 어르신이 민정연을 애지중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네가 민정연과 결혼만 한다면, 남성과 서울에서 명망이 드높은 서 씨 집안 어르신께서 꼭 우리 F그룹에 도움을 줄...""할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아가씨들과 결혼하지 않겠습니다."부소경이 그의 말을 잘랐다."......"잔뜩 말을 늘어놓았건만, 모두 헛된 짓이었다."네 놈!"성질이 잔뜩 난 부태성이 탁자를 치다가 아예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쿵쿵 찍기 시작했다."아주 기고만장하구나! 가문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내가 널 못 때릴 줄 아느냐? 내가 서 씨 집안의 아이를 선택한 게 누구 때문인데? 응? 비록 서 씨 집안의 사업 규모가 우리 부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