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사람 중에 아직도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다. 딸은 시집가면 그만이기에 딸에게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아들과 손자에게만 물려주려 했다.하여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사돈의 팔촌까지 그 집 재산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힘들게 쌓아온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어 그렇게 아들을 낳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둘째 사촌 오빠라면 하지문?”이경혜는 하지문에 대해 인상이 조금 있었다. 그녀 회사의 계열사에서 임원 자리까지 올라 연봉이 2억이 훨씬 넘었다.그녀에게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그녀의 조카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 여동생의 부동산까지 빼앗으려 하다니! 이러니 하지문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나중에 큰아들에게 하지문을 억압하여 빈털터리로 만들어버리라고 해야겠다.“네, 맞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문 오빠를 가장 예뻐해요. 손주 중에서 제일 잘났다면서 우리 부모님이 남긴 부동산을 물려주려고 제멋대로 우리 집안 대를 이어받게 했어요. 구정이 지난 후에 언니랑 나랑 가서 부모님이 남긴 집을 되찾으려고요. 팔아버릴지언정 절대 그 사람들한테 주지 않을 거예요.”어쩌면 또 한바탕 소송할지도 모른다. 이제 곧 구정이고 언니도 금방 이혼한 상황이라 하예정은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부모님이 남겨주신 건물은 90년대 초에 지어진 것이라 사실 별로 값어치는 없었지만 땅이 비쌌다. 땅의 규모만 해도 수백 평은 되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다른 사람과 땅을 조금씩 바꿔 모으다가 수백 평까지 모으게 되었다.어릴 적 어머니는 두 자매가 커서 능력이 되면 땅을 똑같게 나눠주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두 자매가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게 집도 지어주겠다고 했었다.“인간이 어찌 그럴 수 있어. 내 여동생의 재산을 딸이 아니라 조카가 물려받는다고? 예정아, 걱정하지 마. 이모가 네 부모님의 부동산을 반드시 되찾아줄게. 아 참, 집문서는 있어?”“토지 사용증이 있는데 그건 언니한테 있어요. 하도 언니가 똑똑해서 쫓겨날 때 토지 사용증을 몰래 훔쳤거든요.”그
“너희 둘이 어디 가서 괴롭힘이나 당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걸 이모도 알아. 이모는 지금 여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거야.”하예정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온 오후 얘기를 나눴다.저녁 5시, 이경혜가 하예정과 함께 하예진을 데리러 노씨 그룹에 가겠다고 하자 하예정은 어쩔 수 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녀는 주우빈과 이경혜 일행을 차에 태우고 호기롭게 노씨 그룹으로 향했다.심효진과 숙희 아주머니는 동행하지 않았다.한창 가던 중에 하예정은 갑자기 전씨 할머니가 떠올랐다. 온 오후 할머니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예정은 재빨리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전씨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하예정이 물었다.“할머니, 온 오후 어디 갔었어요?”“그냥 여기저기 구경 다녔어. 퇴근했어? 그럼 나도 차 타고 집에 갈게.”사실 할머니는 줄곧 정씨 아저씨네 가게에 숨어서 나오질 못했다. 혹시라도 이경혜에게 들키면 큰일이니까.“할머니,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혈연관계가 있대요. 이모가 저녁에 이모 집에 가서 밥을 먹자고 해서 지금 우빈이 데리고 언니를 데리러 가는 길이에요. 할머니랑 숙희 아주머니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세요.”“정말이야? 이모 찾은 거 축하해, 예정아.”할머니가 먼저 하예정에게 축하를 건넸다.“이진이한테 퇴근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면 되니까 나랑 숙희 걱정은 안 해도 돼. 이모 집에 오래 있다가 와. 이모가 수십 년 만에 너희들을 힘들게 찾았잖아. 이모네 집에서 자고 와도 돼. 자고 오겠으면 할머니한테 미리 알려만 줘.”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네, 이모네 집에서 자게 되면 할머니한테 연락할게요.”통화를 마친 하예정이 중얼거렸다.“온 오후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또 나가 돌아다니셨구나.”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애가 되는 것 같다.그 시각 하예진은 여동생이 보낸 문자를 받고 이경혜가 이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동생과 이경혜가 함께 데리러 온다는 소리에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그녀는 재빨리 맡은 바
하예진은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상대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녀의 진상 시누이 주서인이었다.김은희는 딸과 함께 노씨 그룹으로 찾아왔다. 점심시간에 하예진은 회사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 후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오후에 계속 일한 바람에 회사를 나간 적이 없었다.두 모녀는 하는 수 없이 회사 문 앞에서 그녀가 나오길 온 오후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으로 이미 분노가 극에 달했다.회사에서 나온 하예진을 본 순간 주서인은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많든 적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 바람에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렸고 어떤 이는 가던 길까지 멈추고 구경했다.하예진이 비록 재무팀의 사원이긴 하지만 노 대표가 직접 채용한 사람이라 회사 내에서 꽤 이름이 있었다.재무 총괄 담당자마저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불안해했다. 하예진이 예전에 재무 총괄 담당자 경력이 있다는 소리에 상사로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노 대표가 직접 채용한 직원이라 더더욱 경계했고 눈엣가시로 여겼다. 대놓고 하예진을 내쫓을 수 없어 몰래 손을 쓰기도 했다. 재무팀 사람에게서 듣기로 하예진의 상사가 그녀를 내쫓으려고 함정을 파놓은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다행히 전에 일한 경험이 있어 상사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고 피했다.“여긴 왜 왔어요?”하예진은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전 시어머니와 전 시누이가 가지 못하게 그녀 앞을 막아섰다.“왜 왔냐고?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 거 아니야. 감히 내 동생 집을 다 망가뜨려? 당장 물어내! 인테리어 비용 물어내지 않으면 소송할 거야!”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주서인은 구경꾼들이 점점 늘어나자 일부러 더 소리를 높여 하예진이 했었던 일을 얘기했다.“이 여자 당신들 회사 다니는 하예진이라고 해요. 나의 전 동서인데 얼마나 모진 사람인지 몰라요. 결혼 후에 일전 한 푼도 벌지 못했으면서 이혼할 때 내 동생한테 2억 원
누군가 참지 못하고 주서인에게 반박했다.“그러니까 말이에요. 자기도 여자면서 예진 씨를 뭐라 하네요. 예진 씨, 아주 잘했어요. 우린 예진 씨 편이에요!”“저런 진상 시누이가 있으면 남편이 바람피우지 않아도 이혼해야죠. 저런 진상이랑은 멀리할수록 좋아요.”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을 나무라자 주서인은 너무도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게 다 하예진 때문에 창피를 당한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홧김에 스쿠터를 잡고 있는 하예진을 세게 밀었다. 가뜩이나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잡고 있기도 힘든데 주서인이 확 민 바람에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돈 물어내. 네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 돈을 받고 입을 싹 다물었어. 할아버지 빚도 손녀인 네가 갚아. 당장 엄마한테 돌려줘.”주서인은 하예진을 바닥에 넘어뜨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가방으로 하예진을 냅다 내리치면서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하예진은 스쿠터를 버리고 일어서더니 주서인의 가방을 거칠게 빼앗은 후 미친 듯이 주서인을 가격했다.그동안 그녀는 주서인에 대한 원한이 쌓인 게 많았다. 원래는 이혼한 후 역겨운 주씨 가문 사람들을 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 했지만 주서인은 트집을 잡으며 물고 늘어졌다. 사납게 몰아붙이면 다 되는 줄 아나?지난번에 하예진과 주서인이 한바탕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서인이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지금 두 사람이 또 싸운다면 김은희는 당연히 딸을 도울 것이다. 두 모녀가 힘을 합쳐 하예진을 괴롭히고 있었다.“신고해요, 신고!”누군가가 소리쳤다.“경비원, 얼른 가서 말리지 않고 뭐 해요. 저 두 여자가 우리 회사까지 와서 난리를 치잖아요.”어떤 이가 경비원에게 말리라고 하자 경비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주씨 가문 두 모녀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눈에 뵈는 게 없이 말리는 경호원들을 물고 뜯고 차버렸다. 경호원이 하예진을 잡아당긴 틈에 주서인이 발길질을 했다.그 바람에 하예진과 경호원이 바닥에 넘어졌는데 하예진이 경비원을 깔고 넘어졌다. 경비원이 거친 숨을 몰
노동명이 잔뜩 굳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주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예진에게 달려들려 하자 노동명이 그녀를 확 밀쳤다. 주서인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야 겨우 중심을 잡았다.정신 차린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훤칠한 한 남자가 잔뜩 굳은 얼굴로 하예진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남자 얼굴의 칼자국이 어찌나 무섭게 생겼는지 조금만 더 쳐다봤다간 자다가 악몽이라도 꿀 것만 같았다.겁이 덜컥 난 주서인은 더는 하예진에게 달려들지 못했다.김은희는 재빨리 딸의 옆으로 달려갔다. 두 모녀의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물론 하예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싸움을 말린 몇몇 경호원과 여직원들도 너덜너덜해졌다. 여자 셋이 싸우는데 아무리 뜯어말려도 말릴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당신은 누구야?”주서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노동명에게 물었다.“난 이 회사 대표야. 당신들은 누군데 감히 내 회사에서 내 직원을 괴롭히는 거야?”노동명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예진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고 옷은 먼지투성이였는데 조금 전 주서인과 바닥에서 뒹굴다가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손등과 목, 얼굴에도 긁힌 상처가 생겼고 심한 데는 피까지 살짝 나고 있었다.“신고해.”노동명이 동행한 비서에게 분부했다.“이미 신고했습니다, 대표님.”이 회사의 대표라는 소리에 주씨 가문 두 모녀는 살짝 움찔했지만 주서인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강경하게 말했다.“당신이 이 회사 대표야? 잘됐네, 그럼 당신이 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 봐. 하예진의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한테서 1200만 원을 뜯어갔는데 돌려주지 않으려 해. 그러니 하예진한테서 받아내야지, 안 그래? 예진이가 내 동생이랑 이혼하면서 재산을 나눠 가진 건 그렇다 쳐도 내 동생이 결혼 전에 산 집의 인테리어는 왜 부숴?”그러자 노동명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예진이 할아버지가 당신들 돈을 뜯어 갔으면 신고하면 그만이지, 그게 예진이랑 무슨 상관이야? 예진이랑 가족들 상황이 어떤지 실시간 검색어에도
두 모녀가 도망치려던 그때 경찰이 도착했다.“저 사람들 잡아!”노동명의 분부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 두 모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대표님이 신고하셨습니까? 무슨 일인데요? 엄청 시끌벅적했었던 모양이네요.”파출소 경찰들도 노동명을 알고 있었다.하긴, 노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이 전에 껌 좀 씹어봤었지.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사업에 뛰어들면서 고작 몇 년 사이에 노씨 그룹을 관성의 대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고 몸값이 수조 원까지 높아졌다. 하여 이 일대에 노동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관성의 상업계에 노동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저 사람들이 회사 앞에서 우리 직원을 이 꼴로 만들어버렸어요.”노동명은 경찰에게 하예진의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잡아당겼다. 그녀의 모습에 경찰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여자들끼리 싸웠는데 저렇게 됐다고?’그들은 너덜너덜해진 하예진과 주씨 가문 모녀를 번갈아 보았다. 김은희의 상태는 그나마 양호했다. 나이가 있어 밀쳐버린 것 외에는 별로 손을 대지 않았고 주서인만 냅다 내리쳤다. 그 바람에 주서인의 꼴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경찰은 결과가 어떻든지 옳고 그름만 따졌다.“경찰관님, 이건 우리 집안일이에요. 이 여자는 저의 동서인데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갈등이 좀 있어서요.”주서인이 황급히 해명했다. 만에 하나 구속이라도 되어 회사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요즘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만두기에는 아까운 일자리였다.“저는 얘 시어머니예요. 정말 집안일 때문에 잠깐 싸웠을 뿐이에요. 경찰관님, 제발 믿어주세요.”지금 이 순간 김은희도 겁에 질린 건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경찰에 잡혀갈까 너무도 두려웠다.구정을 보내려고 도시로 왔는데 결국 경찰서에서 설을 보냈다는 소식이 고향에 전해지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전 이미 이혼해서 이 사람들
하예정은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오자마자 하예진을 불렀다.“언니.”주우빈도 엄마를 불렀다.주서인 모녀와 언니의 초라한 모습을 본 순간 하예정은 단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챘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그녀는 주우빈을 언니에게 맡기고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그들을 쥐어 패버릴 기세로 다가갔다.“예정아.”그때 이경혜가 언니를 대신해 화풀이하려는 하예정을 말렸다.“예정아, 경찰관님한테 맡겨.”이미 신고한 마당에 경찰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때리는 건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못했다.“아저씨, 사모님.”성문철네 부부를 본 노동명은 의아했지만 그래도 다가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부부도 노동명의 인사에 답했다.이경혜가 그에게 물었다.“노 대표, 이게 다 무슨 일이야?”노동명이 대답했다.“사모님, 경찰서에 가서 제대로 들어보시죠.”그러고는 경찰에게 말했다.“경찰관님, 우리 회사 직원은 피해자입니다. 남편이랑 이혼했는데도 전 시댁 식구들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 걸 보면 이혼 전에는 얼마나 괴롭혔겠어요. 어쩌면 가정 폭력을 당했을지도 몰라요. 경찰관님들께서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해주셨으면 좋겠어요.”노동명이 합의할 의사가 없자 경찰은 그들 모두 경찰서로 데려갔다. 노동명과 이경혜 가족도 당연히 따라나섰다.언니를 차에 태우고 경찰서로 가던 길에 자초지종을 듣게 된 하예정이 불같이 화를 냈다.“그 집안사람들은 정말 인간쓰레기만도 못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아주 그냥 쥐어 패버렸을 텐데. 언니, 그 사람들이랑 합의하지 말고 그냥 구치소에 처넣어버려.”하예진이 아들을 끌어안고 이를 꽉 깨물었다.“절대 합의 안 해.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껏 괴롭혀야지! 할아버지가 뜯어간 돈을 왜 나한테서 받아내려고 그래.”하예정이 말했다.“언니 그 시어머니가 바보 멍청이였지. 할아버지한테 찾아갈 생각을 다 하다니. 그리고 할아버지도 참 대단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있어? 언니가 결국 주형인이랑 이혼하니까 돈을 준 게 아까워서 할아버지한
이경혜가 싸늘하게 말했다.“내 조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선 사과 한마디면 다야? 우린 당신들 사과 안 받아.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껏 해야지.”그러고는 경찰에게 말했다.“경찰관님, 우린 합의할 생각 없으니까 절차대로 처리해주세요. 하지만 배상금은 받아낼 겁니다.”주씨 가문 모녀는 구치소에 들어가고 벌금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하예진의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보상금까지 물어내야 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하예진을 폭행하고 욕한 것도 모자라 명성까지 더럽혔으니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물어내야 하는 건 당연했다.하예진이 이경혜의 조카라는 소리에 노동명도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이경혜를 쳐다보았다. 김은희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경혜에게 물었다.“예진이 이모라고요? 예진이한테 언제 당신 같은 이모가 있었는데요?”하예진의 삼촌은 친조카가 아니라고 15년 전에 두 자매와 연을 끊었다.하예진이 주형인과 결혼할 때 친정 식구라곤 여동생인 하예정밖에 없었고 하씨 가문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하씨 가문에서 예물 6천만 원을 요구했었는데 하예진이 중간에서 그들에게 예물을 주지 말라고 말렸었다. 그 후로 하예진은 친정 식구들과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주씨 가문 모녀는 하예진에게 여동생 말고 기댈 친정이 없다는 걸 알고 지금까지 그렇게 업신여겼던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부잣집 사모님이 갑자기 나타나 하예진의 이모라고 한다. 김은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 사모님이 진짜로 하예진의 친정 식구인지 확인하려 했다.‘뭐지? 예전에 예진이한테서 들은 적이 없는데? 예진이 삼촌 집은 분명 빈털터리였어.’이경혜는 김은희를 째려보더니 하예진의 손을 잡고는 그녀의 얼굴에 생긴 상처를 보듬어주며 마음 아파했다.“예진아, 나랑 예정이 유전자 검사 결과 나왔어. 우리 혈연관계가 있었어. 너희 둘은 내 여동생 경희의 딸이고 난 너희들 이모야. 내 조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미안하다면 다야?”주씨 가문 모녀를 째려보는 이경혜의 눈빛이 사납기 그지없었다.“이따가 병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