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준 거야. 예쁘지? 정말 너무 예쁜 것 같아.”하예정은 꽃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꽃다발을 부둥켜안으며 냄새를 맡았다.“향긋해!”김진우는 그 모습이 너무 신경 쓰였다.“매형이 주신 거구나. 오늘 무슨 날이야? 전에는 누나한테 꽃 선물하는 거 거의 본 적 없는데.”김진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속에 야유가 가득 차 있었다.하예정은 고개 들고 그에게 대답했다.“부부 사이에 꼭 무슨 날이어야만 꽃 선물 해? 내가 좋다면 남편은 매일 꽃을 보낼 거야. 전에는 내가 돈 아까워서 말렸어. 꽃 한 송이도 그다지 싼 가격은 아니잖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꽃 선물할 바엔 맛있는 음식으로 사 오라고 했거든. 그래서 줄곧 안 준 거야.”김진우가 말했다.“그랬구나...”“진우야, 효진이 찾으러 온 거 아니야? 전화 한 번 해봐. 이젠 돌아올 때도 됐어.”“아니, 그냥 지나가다가 한번 들렀어. 누나, 나 그럼 이만 회사 갈게.”“그래.”하예정은 대답을 마친 후 다시 전태윤이 준 꽃다발을 감상했다.김진우는 그녀가 온통 꽃다발에 신경이 쏠리자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지난번 하예정에게 비즈니스 파티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가 거절당한 이후로 하예정은 김진우에게 쌀쌀맞게 대했다. 본인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그에게 거듭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하지만 하예정과 그녀의 남편은 초고속 결혼이 아니었던가?심효진이 말하길 하예정은 하예진을 안심시키기 위해 초고속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두 사람은 6개월 기간의 계약서까지 썼고 계약이 끝나면 곧 이혼한다고 했다.설마 하예정이 초고속 결혼한 남편을 사랑하게 된 걸까?김진우는 멍하니 넋을 놓았다.“진우야, 네가 여긴 웬일이야? 출근 안 해?”심효진이 우빈이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그와 마주쳤다. 사촌 남동생의 넋 나간 모습에 심효진은 금세 알아챘다.“누나.”김진우는 누나의 부름에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실망한 표정을 숨
“정말 별 뜻 없을까? 두 사람 잘해봐. 타이밍 놓치지 말고. 이번엔 제대로 된 결혼식을 치러야 하지 않겠어? 나 엄청 기대하고 있어.”심효진이 장난치듯 말했다.“너 너무 멀리 갔다.”“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하하. 예정아, 나 진우랑 커피 마시러 가기로 했어. 너 뭐 마실래? 이따가 포장해올게.”하예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그럼 밀크티 한 잔 부탁할게.”“알았어.”심효진이 흔쾌히 대답했다.“가게 보고 있어. 나 커피 마시러 간다.”“그래, 가봐.”어차피 요즘 서점도 한가하여 평소 이 시간에 그녀는 카운터에 엎드려 낮잠을 자거나 공예품을 만들기가 일쑤였다.심효진이 서점을 나갔고 김진우가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심효진은 웃음기를 싹 거두고 밖으로 나왔다.“가자.”그녀는 곧게 김진우의 차에 올라탔다.김진우는 사촌 누나의 정색한 얼굴에 가슴이 움찔거렸다.그 시각, 전씨 그룹.전태윤이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에서 나올 때 조 비서가 편지 한 통을 건넸다.“대표님, 소 이사님께서 이 편지를 친히 대표님께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합니다.”이 회사에서 대표님이 결혼한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데 행운스럽게도 조 비서가 그중 한 명이었다.전태윤은 편지를 받고 아무 말 없이 그의 대표 사무실로 걸어갔다.그는 검은색 회전의자에 앉아 편지봉투를 열고 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익명의 편지였고 내용도 매우 간단했다. 성소현이 그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하예정이 그녀의 배후에서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라고 했다.전태윤은 곧바로 소정남에게 전화했다.가십거리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소정남은 상사가 전화 오기만을 기다렸다.“이 편지 누가 썼어?”소정남은 하예정과 관련된 일이라면 누가 편지를 썼는지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예정 씨 오빠잖아.”“장모님은 우리 와이프 말고 딸 한 명 더 낳으셨지, 언제 아들 한 명 더 낳았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소정남이 싱글벙글 웃었다.“명의상 하씨 집안
전태윤은 하씨 가문의 추악한 인간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할 작정이었다.소정남이 웃으며 말했다.“단번에 목을 확 졸라매면 너무 재미없잖아.”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이런 인간들을 상대할 땐 조급할 거 없어. 천천히 궁지로 몰아넣어야 해. 본인들이 가졌던 모든 걸 하나둘씩 잃게 하는 거야. 아등바등 지키고 싶지만 눈 뜨고 잃어가는 느낌이야말로 가장 잔인하지.”소정남도 이번에 조금 느슨해진 걸 인정했다.그는 단숨에 하씨 집안 인간쓰레기들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걱정 마, 태윤아. 최종 결과는 분명 만족할 테니까. 하지문 씨는 이미 회사에서 해고됐어. 그 당시 실검이 워낙 핫해서 하지문 씨 직장 평판도 나빠졌을 거야. 다시 취직하긴 힘들 것 같아.”하지문이 완전히 직업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자 전태윤의 안색이 그제야 조금 밝아졌다.“이번 일은 성소현 씨한테도 고마워해야 해. 성소현 씨가 본인 오빠를 시켜서 하지문 씨를 해고했대. 성소현 씨는 예진 씨한테 참 잘해줘. 안 그래?”전태윤이 코웃음 쳤다.하예정이 세상 물정 모르고 갖은 방법으로 성소현이 전태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 그녀도 하예정을 잘해줄 수밖에 없다.하예정은 정작 성소현이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전태윤이란 걸 알고 있을까?여기까지 생각한 전태윤은 문득 말문이 막혔다.성소현이 만약 그가 하예정의 남편이란 걸 알면서도 여전히 하예정에게 잘해주고 그녀를 지켜준다면 그땐 전태윤도 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성소현은 진심으로 하예정을 친구로 여긴다고 믿을 것이다.전태윤은 또다시 금반지를 꺼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꼈다.하예정의 가게로 갔을 때 그는 금반지를 뺐다.“아 참, 하지문 씨가 우리 전씨 그룹에 들어오고 싶어서 인사팀에 연락했대. 본인이 아란 전자회사에서 수년간 근무했고 밑바닥부터 갈고 닦아 임원 층까지 올라온 덕에 업무 경력도 풍부할뿐더러 성씨 그룹의 일부 동향도 알고 있대.”하지문은 자신이 전씨 그룹을 위해 성씨 그룹과 맞서 싸우겠다고 말할
커피숍.심효진은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았다.김진우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뭐 마실래, 진우야?”“아무거나. 누나 뭐 마실래? 난 누나랑 같은 거로 할게.”심효진이 종업원에게 말했다.“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누나, 아메리카노 맛없어.”심효진이 힐긋 노려보자 김진우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아메리카노 좋지.”두 사람이 주문한 커피가 올라온 후 심효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진우야, 너 예정이 좋아하지?”김진우가 흠칫 놀라더니 심효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누나...”“솔직하게 대답해!”심효진이 명령 조로 쏘아붙였다.이에 김진우의 두 볼이 점점 더 빨개졌다.그는 속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누나, 그게 말이야... 맞아. 나 예정 누나 좋아해.”“언제부터였어?”김진우가 나지막이 대답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14살쯤 사랑에 눈뜨기 시작했을 때였을 수도 있고, 17, 18살 때였을 수도 있어.”심효진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그렇게나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단 말이야?”‘녀석, 꽤 오래 숨겼네.’심효진과 하예정은 아예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줄곧 김진우를 동생으로만 여겼다. 김진우는 그들보다 세 살 어렸으니까.김진우의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진우야, 그 마음 접는 게 좋을 거야. 예정이는 널 좋아할 리 없어. 줄곧 너를 동생으로만 여겨왔어. 전에는 솔로라서 괜찮았지만 이젠 결혼까지 했어...”“누나, 예정 누나랑 남편분 계약 결혼이라고 하지 않았어? 6개월 뒤에 이혼하기로 했잖아.”심효진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 두 사람 무슨 이유로 결혼했든 예정이는 이젠 유부녀야, 누군가의 아내라고. 너 허튼 생각 하지 마. 내연남이라도 될 셈이야 뭐야?”김진우는 썩 달갑지 않았다.“내가 먼저 예정이 누나 알았어.”“사랑은 선착순이 아니야. 지난번에 예정이가 너 밥 사줄 때,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예정이 앞에 있어서 걔가 너한테 딱 한 번 집어줬잖아. 예정이 남편이 그걸 보고 오해해서 두 사람
“네 누나니까 이렇게 불러내서 말하는 거잖아. 설사 예정이가 널 좋아한다고 해도 너희 두 사람 내가 허락 못 해.”“왜?”“네 가족 때문이지. 고모가 어떤 사람인지 나 누구보다 잘 알아. 네가 예정이 좋아하는 거 너희 엄마가 알면 계속 친절하게 예정이를 대할 것 같아? 갖은 수단으로 너희 두 사람 갈라놓을 거야. 예정이한테 더 한 짓도 꾸밀 수 있어. 고모는 상류층에서 20여 년간 지내면서 일찌감치 안하무인 격이 되었어. 넌 고모의 유일한 아들이라 고모의 희망이자 김씨 집안에서 내정된 후계자야. 너한테 기대가 엄청 클 거라고, 틀림없이 재벌 가문과 정략결혼을 맺어줄 거야. 예정이도 엄청 훌륭하지. 하지만 출신이 가장 큰 약점이야. 고모는 날 봐서 예정이를 조카처럼 예뻐하셔. 일단 네가 연루되는 날엔 누구보다 매정하게 변할 거야. 예정인 절대 고모가 바라는 신붓감이 아니야.”심효진의 말은 예리한 칼날처럼 김진우의 정곡을 찔렀다.“진우야, 네가 예정이를 좋아하는 건 걔한테 아무런 도움이 못 돼. 재앙만 안겨줄 뿐이야. 난 너의 사촌 누나야, 네가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걸 못 보겠어. 예정이도 내 단짝이야. 소중한 친구가 내 가족에게 상처받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네가 내려놔. 예정이는 너랑 안 어울려. 널 사랑할 리도 없고. 두 사람 알고 지낸 지 십몇 년째야. 걔는 나랑 함께 네가 커가는 걸 지켜봤단 말이야. 널 동생으로만 생각해. 누나가 어떻게 동생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겠어? 너 마음 안 접으면 이대로 가다가 결국 상처받는 건 너 자신뿐이야.”김진우의 낯빛이 더욱 창백해졌다.그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하예정을 무척 사랑하고 엄마도 그녀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을 뿐 더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예정이는 예진 언니 집에서 나오기 위해 결혼을 서둘렀어. 예진 언니가 줄곧 예정이를 걱정했거든. 그래서 예정이도 언니를 안심시키느라고 전태윤 씨랑 초고속 결혼을 한 거야. 예진 언니는 아마 두 사람이 정말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줄로 알 거
심효진은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물었다.“너 그럼 예정이랑 태윤 씨 갈라놓을 작정이야? 김진우, 누나는 너 얕보고 싶지 않아!”김진우는 괴로운 얼굴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그는 좀처럼 이 감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다만 하예정에게 상처 주는 일도 차마 할 수 없었다.심효진은 사촌 동생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진우야, 누난 이미 충분히 얘기한 것 같아. 일단 마음 좀 가라앉히고 누나 가게에 가지 않도록 잘 단속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져.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야.”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커피는 내가 살게. 이젠 가게로 돌아가야 해. 너도 얼른 회사 가. 지금 한창 배우는 단계라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지. 너희 김씨 집안에 너만 있는 게 아니야. 방심하다가 네 몫까지 다 뺏기는 수가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심효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김진우는 자리에 앉은 채로 멍하니 넋을 놓아버렸다.애초에 하예정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고백할 용기가 없어 딴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겨버렸다. 심효진이 가게로 돌아오자 우빈이가 잠에서 깼다.하예정은 공예품을 만들고 있었고 우빈은 옆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효진은 묵묵히 친구를 바라봤다.예정은 얼굴도 예쁘장한 데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진우가 좋아할 만했네.’“효진아,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나한테 푹 빠진 거야?”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남자면 무조건 널 좋아했을 거야. 예정이 너 엄청 매력적인 거 모르지?”“매력은 무슨, 결혼 전엔 제대로 된 남자친구도 못 사귀어봤어.”“그건 네가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잖아.”심효진이 의자를 빼내고 카운터 앞에 앉았다.“요즘 온라인 스토어 장사 잘 되나 봐. 매일 한가할 때마다 공예품 만드는 걸 보니.”“태윤 씨랑 태윤 씨 남동생이 홍보해줬거든. 회사 직원이 많다 보니 주문량도 엄청 많더라고. 그리고 소현 씨도 홍보해줬어. 그쪽 업계에는 전부 돈
하예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적응 안 돼요, 태윤 씨. 나한테 할 얘기 있죠?”전태윤이 대답했다.“오늘 저녁 약속 취소됐어. 우리 함께 쇼핑할래?”처음 꽃 선물을 할 땐 어쩔 바를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먼저 나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전태윤은 저녁에 아내와 함께 쇼핑하기로 했다.하예정은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나 이따가 우빈이 데리고 언니 퇴근 마중 가야 해요. 괜찮다면 우리 함께 가서 밥 먹고 쇼핑할래요?”“너희 언니 야근해?”“아까 문자 왔는데 출근 첫날은 야근 안 한대요. 5시 30분에 퇴근이래요.”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그래, 좀 있다가 데리러 갈게. 우리 함께 너희 언니 회사로 가. 내가 밥 사줄게.”“좋아요.”“그래, 그럼 이만 끊을게.”“네.”전태윤은 바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는 하예정이 달콤한 말을 하길 기다렸다.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하예정이 물었다.“태윤 씨, 더 할 얘기 있어요?”“아니, 없어. 그럼 진짜 끊을게.”하예정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자 옆에서 심효진이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웃었다. 하예정은 그녀의 이마를 살짝 내리치며 물었다.“왜 웃어?”“예정아, 너 태윤 씨랑 제법 가까워졌는데? 태윤 씨도 너한테 무척 마음 쓰는 것 같아. 두 사람 잘해봐. 결혼식도 올려야지.”혼인신고는 했으나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정식으로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일부 사람들만 두 사람이 부부 사이란 걸 알고 있다.“차차 해나가야지 뭐.”하예정은 일부러 전태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만 전태윤이 적극적으로 나서도 그녀는 회피하지 않았다.그녀가 먼저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전태윤이 진심을 몰라주고 결국 그녀만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였다.전태윤이 먼저 다가오고 하예정도 피하지 않으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사랑의 결실을 맺을 것이다.“이모.”혼자 놀다 지친 우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
전태윤은 아내와 저녁에 함께 쇼핑하자고 얘기한 이후로 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밖에서 노크하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소정남도 그가 기분이 좋다는 걸 바로 알아챌 지경이었다.소정남은 문을 열고 혼자 들어온 게 아니라 예준하와 함께 들어왔다.예준하의 경호원들은 사무실 밖에서 대기했다.“대표님, 예 대표님 오셨습니다.”전태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빙 돌아서 앞으로 나갔다.“어서 와요, 예 대표님.”두 사람은 악수를 마친 후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좀 전에 조 비서가 그에게 예준하가 올 거라고 보고하긴 했지만 소정남과 함께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아마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싶었다.소정남은 예준하에게 물 한 컵 따라주었다.예준하가 물을 마신 후 전태윤이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우리의 협력에 무슨 차질이라도 있는 건가요?”예준하와 같은 고급 파트너는 예약할 필요 없이 언제든지 전태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예준하는 줄곧 소정남과 연락이 잦았는데 이번엔 바로 그의 사무실에 찾아왔기에 전태윤은 두 회사의 협력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됐다.예준하가 웃으며 대답했다.“전 대표님, 협력엔 아무 이상 없어요. 아주 잘 진행되고 있죠. 이번에 저희 형님과 형수님의 청첩장을 대표님께 전해드리려고 이렇게 찾아뵈었어요.”전태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예 대표께서 결혼식을 올린다고요? 만성 남씨 가문의 일은 다 해결됐나요?”“금방 끝났어요. 저희 형수님이 만성에서 돌아와 선우 대표님의 결혼식에 참석했어요. 두 사람의 결혼 날짜는 진작 정했어요. 저희 형수님의 친정 오빠 결혼식을 마치면 형수님도 결혼식을 올릴 거예요. 그러니 이 청첩장도 이젠 드릴 때가 되었죠.”예준하는 말하면서 큰형이 부탁한 청첩장을 꺼냈다. 다른 협력 업체라면 예준성은 택배 형식으로 협력 파트너에게 청첩장을 보낼 테지만 예준하가 마침 A시에서 관성으로 왔고 관성의 지사는 그가 전부 책임지고 있으며 대부분 시간을 관성에서
“엄마, 저는 밖에서 낳은 딸이 없어요. 만약 밖에서 낳은 딸이 있다면 그 딸을 이씨 가문에서 인정하나요?”“네가 낳은 친자식이라면 당연히 인정하지. 네가 임신하고 아기를 낳을 때 가족 모두가 동행한다면, 그 아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사람들도 인정할 거야.”이윤미가 대답했다.“그러면 제가 왜 시집을 가야죠? 시집가지 않으면 그 쓰레기들이 재산을 가져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이은화는 말문이 막혔다.이은화는 정신이 나갔는지 갑자기 딸의 이상한 질문에 대답까지 해주었다.정군호의 배신 때문인지, 기분이 나쁜 탓인지 모른다.이윤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완벽한 대책을 세워도 빈틈이 생길 것 같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딸이 아빠를 두지 않으면 좋잖아요. 제가 결혼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부부로 되지 못하니 당연히 부부의 공동 재산이 될 리가 없을 테고 그 남자도 재산을 분할 받고 싶어도 못 받을 거고요.”이은화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이윤미를 설득했다.“윤미야, 내가 아무 말도 안 한 거로 생각해. 엄마는 네가 외롭지 않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제가 딸을 낳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 텐데 어떻게 외롭다니요? 가주 자리에 앉으면 스트레스가 심하고 일이 바빠서 매일 발이 땅에 닿지 못할 정도로 바쁠 텐데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요. 그런데 또 딸을 낳아 가주 자리를 물려주려면 예진 리조트의 넷째 사모님을 따라 배우면 되잖아요.”“이윤정은 어떻게 됐어?”이윤미의 생각에 놀란 이은화는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사상은 여전히 비교적 보수적이었다.“우리 별장 앞에서 밤새 울부짖었어요. 오늘 아침에 윤정이가 형수님 몇 분한테 괴롭힘을 당했는데 또 괴롭힐까 봐 도망쳤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우리 오빠들이 윤정에게 준 돈과 카드도 전부 형수님들이 빼앗아 갔어요. 엄마가 옷 외에 다른 물건은 전부 가져갈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형수님들도 엄마의 말씀을
이윤미는 더는 정군호를 쳐다보지 않고 이은화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이윤미는 보온 도시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도시락 뚜껑을 열어주면서 말했다.“만두 두 개도 포장해 가져왔어요.”이은화는 앉아서 이윤미가 가져온 흰죽과 반찬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너니까 나에게 진짜로 흰죽과 반찬을 가져오는구나.”정일범 형제와 이윤정이라면 흰죽과 반찬들이 이은화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은화의 요구대로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엄마,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이윤미는 양부모 집에서 자라면서 학대받았을 때 흰죽 한 그릇도 먹지 못했다.어렸을 때, 흰 죽 한 그릇도 그녀에게 사치였다.삶의 고달픔을 일찍 알아버린 이윤미는 커서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도 함부로 쓰지 않고 여전히 절약하며 살았다.이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으로 지갑이 두꺼워졌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았다.이은화는 묵묵히 죽을 먹으며 수십 년 전 그날 새벽의 이은숙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이은화는 자신의 맏언니와 여동생을 죽이고 가주 자리에 앉았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엄마, 아버지께서...”이윤미가 조용히 물었다.그녀는 정군호가 얻어맞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고 아마 이은화에게 칼에 찔렸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어젯밤 정군호가 병원으로 이송된 후 이은화는 자식들이 자신에게 정군호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윤미 또한 정말로 묻지 않았다.어쨌든 이은화는 정군호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이은화의 수단으로 분석해 보면 그녀는 정군호를 단번에 죽이지 않고 천천히 괴롭힐 것이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죽지는 않아. 단지 내시가 되었을 뿐이야. 감염되지 않고 상처가 다 나으면 퇴원할 수 있대. 네 아버지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은 없을 거야. 앞으로 미녀를 보게 되면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을걸.”이윤미는 잠시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몰랐다.“윤미야.”이윤미는 이은화를 바라보았다.이은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엄마
정군호는 잠깐 고통과 절망한 표정으로 이은화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그는 정말 아팠다.정군호가 이은화를 보지 않아도 이은화는 화를 내지 않았다.그리고 일어나 다시 창가로 걸어가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이은화의 생각은 이미 멀리 떠났다.만약 그 사람이 이은화와 함께 있었더라면, 그녀를 돕고 그녀와 결혼했다면, 그녀의 인생은 분명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영원히 이은숙에게 충성했다.이은숙이 시집가서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이은화와 함께하지 않고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이미 몇십 년이 흘러 이은화가 70세의 노인으로 되었는데, 그 사람은 아마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은화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다.따르릉...이은화의 핸드폰이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이윤미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이은화는 잠시 휴대전화를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엄마.”이윤미는 전화기 너머로 말을 건넸다.“엄마, 괜찮으세요?”그녀는 아버지의 부상이 어떤지 직접 묻지 않고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었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미 최악인데 뭐가 괜찮겠어? 너희도 어른이 되고 나도 할머니로 되었는데 네 아빠가 내연녀가 있다고 해도 난 이제 여의치 않아.”앞으로 정군호는 다시는 여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엄마, 오늘 밥 안 드셨을 텐데 드실 것 좀 갖다 드릴까요?”“필요 없어.”이은화는 거절하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그래, 너무 많이 가져오지는 말고. 흰죽에 반찬 조금만 갖다 줘.”이윤미가 대답했다.“엄마가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드실 텐데 그렇게 간단하게 드시면 쉽게 배고파요. 쉽게 체력도 떨어져서 안 돼요.”이은화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을 건넸다.“네 큰이모가 세상을 떠나신 날 아침, 큰이모가 이렇게 드셨거든. 산해진미를 많이 먹었다면서 가끔 흰죽에 반찬을 곁들이면 특별한 맛이 난다고 하셨어.”“알았어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이윤미는 더는 아무
“괜찮아요. 누나는 일 보러 나갔어요. 우리 예진 누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면 안 돼요. 누나는 이미 온갖 피바람을 겪은 사람이거든요. 15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사람 잡아먹을 정도의 친척들을 상대하면서 열 살짜리 여동생을 잘 가르치면서 살아오셨어요. 삶의 고초를 겪은 사람의 의지는 엄청나게 강한 법이죠.”전호영은 이경혜가 왜 하예진을 선택하고 강성으로 보내 이윤미와 경쟁하게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놀라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네요.”전호영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제 퇴근해도 될까요? 참, 현이 씨에게 선물을 준비했어요.”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케이스를 받아 열어 보지도 않고 일어나서 그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을 열어 서랍 안에 넣었다.“열어 보지 않을래요?”“볼 필요 없어요. 호영 씨가 준 물건은 모두 최고이기 때문에 제가 한가할 때 천천히 열어보면서 호영 씨의 사랑을 느껴볼게요.”전호영은 고현을 보면서 오늘의 그녀가 좀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고현은 전호영의 감정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전호영의 이 고된 사랑의 길에서 드디어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전호영은 너무 뿌듯했다.병원.어느 고급 병실에서 이은화가 창가에 서서 창밖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정군호였다. 정군호는 얼굴이 창백해 보였고 표정도 고통스러웠다.그는 눈을 감고 있다가 가끔 눈을 뜨고 그러다가 창가에 서 있는 이은화를 보더니 또 재빨리 눈을 감았다.아무도 정군호를 방문하러 오지 않았다.그가 칼을 휘둘러 그런 일을 저지른 소식을 이은화가 억눌러 소문이 퍼지지 않게 했다.그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이은화는 정군호가 아들딸 앞에서 그의 유일한 존엄을 잃지는 않도록 했다.시간이 한참 흘러 이은화가 돌아앉아 자는 척하는 정군호를 보며 말을 건넸다.“당신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알아.”그녀는 정군호가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진통제
고진호도 고현이 여자였기 때문에 며느리가 아닌 사위가 필요했고 따라서 재벌가 딸들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막 빠져나오자마자 고현이 고객을 배웅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뒤에는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몇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고객의 비서일 것이다.전호영과 고객들은 서로를 잘 몰랐다.고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호영은 말없이 한쪽으로 비켜섰다.고현은 직접 고객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남 비서가 전호영을 쳐다보자 전호영은 눈빛으로 고현을 따라가라고 신호를 보냈다.전호영은 이미 고현의 사무실에 대해 매우 익숙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비서가 그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었다.고현의 사무실과 휴게실에 관해 전호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고현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전호영은 스스로 고현의 사무실로 갔고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사무실에 들어선 전호영은 먼저 커피 한 잔을 타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고현이 돌아왔다.“어젯밤 일은 어떻게 됐어요?”고현은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예진 누나를 대신해서 죽은 경호원 가족들이 와서 뒷일을 처리했어요. 이씨 가문도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고 보험회사에서도 가족들에게 보상해 줄 거예요. 이씨 가문의 모든 경호원은 거액 보험에 가입했거든요. 저도 이따가 예진 누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오후에 그 경호원의 가족들을 보러 가자고 해야겠어요. 그 경호원은 비록 이씨 가문의 희생 품이지만 그래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걸요.”현재, 그 차 사고는 잠시 의외 사고로 단정 지어졌다.이씨 가문의 음모라는 증거가 없어서 이씨 가문은 충분한 연기를 해야 만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죽은 그 이씨 가문의 경호원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이은화의 마음이 그토록 모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에 처음 초대한 당일에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하예진이 경계
다행히도 이 모든 악몽은 이미 끝났다.하예진은 이미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일으켰다.“호영 씨, 이만 가볼게요. 저도 나가서 일해야 하거든요. 회사를 설립하는 일을 아직 다 마치지 못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회사가 강성에 있어야 다른 회사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동명 형이 오시는 길일 텐데 더 기다리지 않으려고요?”전호영은 장난치고 싶었다.하예진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야 도착할 거에요. 동명 씨가 먼저 오면 저 대신 먼저 대접해 주세요. 호영 씨와 동명 씨가 더 친하잖아요.”“저도 좀 이따가 고씨 그룹에 갈 거예요.”“알겠어요. 그럼, 제가 빨리 돌아오죠. 미래의 아내가 더 중요한 법이죠. 호영 씨 둘째 형도 혼인신고 했다면서요. 호영 씨가 설을 쇠러 갈 때면 운초 씨는 아마 임신했을걸요. 힘내셔야겠는데요.”전호영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누나, 저도 필사적으로 힘을 내는 중이거든요. 우리 현이 씨는 둘째 형수님보다 따르기가 훨씬 어렵거든요.”여운초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하얀 꽃처럼 부드럽고 연약해 보였다.여운초가 여씨 그룹을 단단히 장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전호영도 여운초가 계략과 수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끈질긴 열정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요.”하예진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전호영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의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하예진은 마침 이경혜의 전화를 받았다.이경혜와 하예진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하예진이 떠난 지 30분 만에 전호영은 일을 끝내고 호텔을 떠나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호영은 이씨 가문의 뒷일을 고현에게도 알려주려고 했다.이번에 전호영은 꽃도, 보석도 사지 않았다. 고현은 비록 여자이지만,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성격도 남성적이라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에게 손목시계를 하나 사줬다.고씨 그룹의 사람들은
“이 대표님께서도 크게 노하셨을 거예요. 정군호 씨는 잘 모르지만, 이윤정 씨는 그날 밤 쫓겨났어요. 한밤중에 정군호 씨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실려 갔다고 들었는데, 이 대표님은 아무도 병원에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정군호 씨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대요.”전호영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하예진은 아직 다 마시지 못한 물잔을 들고 두 모금 더 마시더니 다시 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전호영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어나갈 때까지 기다렸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사람을 보내 병원에 가서 알아보게 했어요.”“이모할아버지의 부상 상황은 어떻게 되셨대요? 이모할머니가 벌인 일이래요?”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이 대표님께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정군호 씨가 스스로 그 부위를 자른 거래요.”전호영은 정군호가 벌인 일이 이은화의 핍박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는 절대로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이은화가 아마도 정군호에게 두 가지 길을 준 것 같았다.정군호 배후의 정씨 집안은 여전히 이씨 가문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했기에 정군호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면 정군호는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없기에 칼을 휘둘러 스스로 그런 짓을 해야만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하예진이가 깜빡이며 의아했다. 그녀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전호영도 정군호의 부상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고 그냥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정군호 씨는 죽지 않았어요. 정군호 씨의 부상은 알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이 대표님께서 엄밀하게 숨기고 있거든요. 남자들에게는 특히 데릴사위인 정군호 씨에게는 존엄 없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요.”하예진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데릴사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재벌 가문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 아닌가요?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죠.”전호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잠시 후, 전호영이 말했다.“누나, 우리 동명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과거의 일은 지나
하예진이 위험에 처해 사고가 일어나야만 경호원들이 주동적으로 노동명에게 보고했다.“괜찮으면 됐어. 그럼 됐어. 너무 놀랐잖아. 예진아, 내가 이따가 강성으로 갈 건데 아마 오후 2시 전에 도착할 것 같아.”하예진이 대답했다.“전 괜찮아요.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요.”노동명이 외출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하예진은 늘 그를 걱정했다.“내 두 눈으로 네가 멀쩡한 모습을 보고야 말겠어. 네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해야 내가 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저는 정말 괜찮아요. 경호원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우린 다 괜찮아요. 동명 씨가 외출하기 불편하실 텐데 너무 멀리 오면 안 돼요.”노동명은 기어코 가겠다고 고집했다.“네가 보고 싶어서 그래. 너무너무 보고 싶어. 네가 괜찮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하예진은 반박하지 못했다.“그럼 조심히 오세요. 만약 몸이 불편하면 고집하지 마시고. 동명 씨, 우리는 각자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아시겠죠?”노동명은 부드러운 어조로 나지막이 대답했다.“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몸이 불편하면 외출하지도 않아.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오후에 봐.”“네, 오후에 봐요.”하예진은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노동명이 하예진에게 주고 있는 것은 전남편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어쩌면, 노동명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주형인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적 있었겠지만, 나중에 복잡한 일들이 많이 끼는 바람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하예진이 지금 묵고 있는 호텔은 강성에 있는 전씨 가문의 사업 중 하나이며 전호영이 맡은 부분이다.하예진은 쉽게 전호영을 만날 수 있었다.그녀는 잠을 더 자려고 해도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약을 몇 알 먹은 하예진은 이내 두통이 사라지게 되었고 휴대전화를 들고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더니 전호영의 사무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