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오빠의 그 따위 일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정일범은 그녀를 한참 매섭게 노려보다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갔다.‘동생이라면서 이 오빠는 안중에도 없어.”정일범이 다녀가자 이윤미는 화가 났다.소파에 몇 분간 앉아 있다가 일어난 이윤미는 사무실을 서성이었다.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마신 후에야 화가 사그라지고 마음이 안정됐다.“이런 개자식!”이윤미는 정일범을 욕했다.“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랑 형수님이 이혼하지 않는다면 나는 형수님을 두 번 다시 안 볼 거야.”이런 것도 남편이라고 곁에 둘 필요가 있을까?이은화는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하나같이 나빴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아마도 이은화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조윤은 이윤미를 찾아오지 않았다.친정에 돌아간 조윤은 정일범과 이혼할 것이라고 말했다.친정 부모 앞에서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조윤은 정일범이 저지른 일들을 샅샅이 폭로했다.정일범이 이윤정과 외도한 사실을 안 조윤의 친정 부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특히 정일범이 이윤정을 위하여 그들의 딸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조윤의 친정 부모님은 참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조윤이 이혼하는 것을 찬성했다.비록 조윤의 친정은 이씨 가문보다 못하지만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잘못은 그들의 딸이 아닌 정일범이 했기 때문이다.정일범은 외도를 자주 했기에 누구였어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그 아빠에 그 아들이라고!정군호가 바람둥이라서 그가 낳은 아들도 착한 X 한 명 없었다.친정 식구들의 든든한 지지를 받은 조윤은 이 씨 대저택으로 돌아와 이은화를 찾아갔다.이은화는 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그 사람이랑 관련된 모든 물건을 가지고 가려고 했다. 분명 그가 보면 기억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이로써 그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했다.물건이 많지 않았기에 간단히 정리를 마친 이은화는 서재에서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기분이 언짢으면 그녀는 글씨 쓰는 연습을 하곤 했다. 자신이
한참을 침묵하던 이 가주가 말했다.“들여보내.”이은화의 허락을 받은 조윤은 문을 열고 서재로 들어갔다.마음이 차갑게 식은 조윤은 정일범과 이혼을 결심한 후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옷차림이 소박해졌고 예전처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아무리 아름답게 꾸며 입어도 정일범은 여전히 바람을 피웠다.그런 남편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을까?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서재에 들어간 조윤은 이은화의 뒤로 다가가 글씨 연습을 하는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잠시 바라보던 조윤은 이은화에게 말했다.“어머님이 쓰신 글씨가 아주 엉망이에요, 기분이 나쁘시면 억지로 글씨 연습을 하지 마세요. 누구든 기분 나쁠 때가 있어요.”이은화는 마지막 글자를 쓴 후 붓을 내려놓았다. 자신이 쓴 글씨를 감상하고 지금 기분이 나빠 쓴 글씨가 평소와 다르게 이쁘지 않다고 인정했다.이은화는 그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몸을 돌려 서재에 있는 소파로 다가가서 앉았다.조윤도 뒤따라와서 앉았다.“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이은화는 차분하게 물었다.“저와 일범 씨의 일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머니, 저 일범 씨랑 이혼할 거예요. 저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고 견딜 수도 없어요, 지금 저는 일범 씨를 보면 윤정 씨를 도와 저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던 장면만 떠올라요.”“일범 씨는 저한테 이미 오래전부터 감정이 사라졌어요.”“제가 지금까지 이혼하지 않고 버텨왔던 건 아이들 때문이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참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한참을 침묵하던 이은화는 조윤에게 물었다.“일범이도 이혼을 동의하는 거야?”“동의하지 않아요, 제가 쓸데없는 난동을 일으킨다면서요. 어머니, 저 지금 일범 씨만 보면 구역질이 나와요.”“만약 원만하게 이혼할 수 없다면 저는 이혼 소송을 할 거예요. 어머님이 일범 씨를 설득해서 저랑 좋게 좋게 갈라서라고 하세요. 일범 씨가 저와 이혼하면 결혼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나이가 어리고 이쁜 여자를 만날 수 있어요
이은화의 결혼생활은 엉망이었다. 그녀는 강력한 수단으로 정군호에게 고추를 자르라고 강요했다. 앞으로 그가 바람을 피울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그러나 부부의 연이 끊겼다.이은화는 정군호가 마음속으로 그녀를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정군호도 이은화를 배신했기에 그녀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그녀는 나이가 들어 이혼을 고려하지 않고 정군호를 방어하기만 하면 된다.자신의 구역에서 그녀는 충분히 정군호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수십 년이 지났어도 정군호는 그녀의 감시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이제 중년인 아들 부부는 감정이 깨져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처럼 살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엄마는 곧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아마 열흘이나 보름 정도 지나야 돌아올 거야.엄마가 돌아오면 그때 일범이와 한번 얘기 나눠볼게. 엄마 없는 동안 너희들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지금 이혼도 숙려기간이 있기에 너희들도 숙려기간이라 생각해. 그리고 신혼집으로 이사해도 돼. 그러면 매일 일범의 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없으니까.”“엄마는 첫눈에 네가 마음에 들어 너랑 일범이를 맞선보게 했어. 너희들이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어...엄마가 너를 망쳤어.”조윤은 이은화가 정일범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이은화가 이혼은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대하리라 생각했다.조윤은 이은화에게 말했다.“어머니 잘못 아니에요. 일범 씨의 마음을 붙잡아 두지 못한 제 잘못이에요. 저도 애초에 일범 씨가 이씨 가문 큰 도련님이라서 결혼한 거 아니고 일범 씨를 사랑해서 한 거예요.”그 당시 사랑 때문에 이씨 가문에 시집왔다.이씨 가문의 아들들은 가업을 이어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윤은 정일범에게 시집왔다.그녀는 정일범이 권력을 탈취하려고 할 때도 그를 도왔다.조윤이 보기에는 정일범이 이윤정과 이윤미보다 못난 것이 없었다.원래 그들 부부는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엄마가 돌아오면 이혼하라고 일범이를 설득할게. 너희들이 싸우게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엄마가 없는 동안 너희들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조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은화의 말에 동의했다.그녀는 일어서며 말했다.“어머니, 저 그럼 이만 나가볼게요.”이은화는 가볍게 대답했다.조윤이 나간 후 이은화는 정일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일범이 전화를 받자 이은화는 그에게 물었다.“일범아, 너 지금 어디야?”“저 회사에 있어요. 왜 그러세요, 어머니?”정일범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는 이은화의 전화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특히 그가 잘못을 저지르면 이은화는 전화로 그를 막말로 꾸짖곤 했기 때문이다.“방금 윤이가 돌아왔어, 엄마랑 많은 얘기를 나눴어.”정일범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윤이가 돌아왔어요? 돌아오면 됐어요.”“윤이는 너랑 이혼하겠다고 말했어. 이번에 윤이가 너 때문에 마음을 크게 다쳤어.내가 보기에 윤이는 너랑 이혼하기로 마음먹었어. 윤이는 모든 것을 차분하게 대하며 더는 흥분하지도 화내지도 않고 너랑 싸우지도 않는 것을 보면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진짜 떠날 때 되면 조용해지는 법이야.”정일범이 말했다.“...엄마, 저 이혼하기 싫어요.”“이혼하기 싫다면서 윤이한테 왜 그런 짓을 했어?”정일범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엄마, 저...”“엄마가 곧 먼 여행을 떠나. 엄마 없는 동안 윤이에게 잘 사과해서 마음을 돌려봐.돌릴 수 있으면 좋은 거고, 돌리지 못한다고 해서 싸우지 마. 좋게 좋게 갈라서.”“아이들 체면도 좀 세워줘야지. 이혼할 때도 윤이에게 줘야 할 것은 다 줘, 어쨌든 수십 년 동안 너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너의 아이를 낳고 키워줬잖아. 잘못한 사람은 너기에 윤이를 부당하게 대하지 마.”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정일범은 조심스럽게 이은화에게 물었다.“엄마는 나랑 윤이가 이혼하는 걸 찬성하는 거예요?”“엄마는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윤이가 이미 떠나려고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같아서 하는
그녀는 그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그녀가 그렇게 큰 노력과 희생을 했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밖에 유흥 세계에 빠진 너는 이혼하면 자유의 몸이 될 거야. 밖에서 여자 친구를 얼마 사귀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혼하면 정관수술부터 해, 아니면 네가 다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내 손녀 손자에게 불리하니까.”“계모가 있으면 계부가 있는 법이야. 내가 아직 살아있을 때 내 손녀와 손자의 이익을 지켜줘야 해.”정일범이 말했다.“...나 엄마 아들이예요. 게다가 내가 재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엄마의 손주가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편파적일 수 있어요?”“그리고 아이들이 이제는 열몇 살인데, 내가 재혼해서 아이를 낳을 때면 아이들은 성년이 됐는데 계모가 괴롭힐 수 있겠어요?”이은화는 정일범의 설명을 듣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엄마의 조건은 바로 이거야. 네가 이혼하고 재혼한다면 반드시 정관수술읗 해야 해.나는 손자 손녀가 많기에 더 이상 인원을 늘리지 않아도 돼.”“다만 윤미가 딸을 낳는다면 나는 받아들일 거야. 너희들은 자녀가 있으니 더 낳을 필요 없어.”“너의 자녀가 지금 10대라고 하여도 계모가 매일 너의 귀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너는 계부가 될 것이야. 그러면 너는 재산을 나중에 낳은 아이들에게 줄 수도 있으니 내 손자 손녀에게 공평하지 못해.”“본처가 낳은 자녀들의 합법적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혼하면 바로 가서 정관 수술해, 정관수술을 하기 싫다면 재혼하지도 말고, 더 이상 아이도 낳지 마. 만약 밖에서 만나는 여자가 임신이라도 한다면 네가 데리고 낙태를 시키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 낙태시킬 것이야.”수십 년을 횡포했던 그녀는 아들이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내가 너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 싫다면 우리 모자의 인연을 끊으면 돼. 이씨 가문에서 받은 모든 것을 돌려주고 가문을 떠나. 나는 네가 돌려준 재산을 너의 자녀들에게 나눠줄 거야.”“그렇게 넌 열여덟 살짜리와 결혼하든 스무 살짜리와 결혼하든
이은화가 결정한 일이라면 아들인 정일범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는 이은화에게 말했다.“엄마, 저희 형제가 아빠를 잘 돌볼게요. 하지만 아빠와 엄마가 별거하시면 엄마의 마음이 답답할 때 엄마 옆에 함께 있을 사람이 없어요.”이은화는 냉담하게 말했다.“그건 내일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 너희들은 아빠에게 효도 하고 잘 돌보기나 해.”말을 마친 이은화는 전화를 끊었다....원림성 A시.38층에 달하는 고층 빌딩 최상층에 있는 대표 사무실에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키가 크고 여성 정장을 입은 여인이 창가에 서서 창밖에 약간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점심을 잘 못 먹은 탓에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음식이 맛없어서가 아니라 그녀는 요리사 한 명이 만드는 음식이 싫증이 나서 입맛을 바꾸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새로운 요리사를 찾지 못했다. 그녀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요리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A시에서 그녀는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사람들은 그녀가 둬 입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만 있다면 5성급 호텔 요리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그녀가 한 끼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든다면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선우씨 가문에 고용되어 그녀의 전문 요리사가 된다면 급여와 대우가 매우 좋다.사람들은 요리사가 한 달 동안 그녀에게 요리를 해주면 A시의 좋은 지역에서 전액으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그녀가 요리사에게 주는 월급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최근에 선우씨 가문은 또다시 요리사를 모집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자는 몇 명뿐이었다. 그들은 면접 보러 와서 집사의 관문을 지나 몇 가지 유명 요리를 만들어 그녀에게 맛보게 한 후로 더 이상 소식이 없었다.그녀는 다 맛이 없었다.“똑똑.”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선우민아 가 말도 하기 전 문밖에 사람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언니.”들어온 사람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선우민아의 사촌
“언니가 점심을 많이 먹지 않아서 배고플 것 같아서 갓 만든 디저트를 가져왔어요.오늘 지원한 요리사가 만든 디저트예요, 우리 모두 시식해 봤는데 이 요리사의 요리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선우민아는 몸을 돌려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선우정아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요즘 그들이 한 음식이 싫증 나서 점심에 입맛이 없어 적게 먹었더니 지금 배고파.”선우민아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책상에 기대어 동생이 들고 온 정교한 종이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 속에는 작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디저트였다. 어떤 것은 꽃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것은 과일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것은 동물처럼 생겼다.“아주 정교하고 모양이 다양하게 만들었네. 맛있어? 오늘 지원한 요리사가 만든 거야?”선우정아가 말했다.“네, 맞아요. 외지에서 온 젊고 나이가 서른도 안 된 요리사예요. 언니가 이 요리사를 채용하지 않으면 제가 채용할 거예요. 그자는 아이돌처럼 잘 생겼어요.”“하지만 아이돌보다 더 남자다워 보여요. 아직 그자는 요리 솜씨를 다 발휘하지 않았어요, 다만 디저트만 했을 뿐이죠. 그자는 언니가 시간 될 때 집에 돌아오면 언니에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보게 해주겠다고 말했어요.”선우씨 가문은 요리사를 찾는 것이 힘들었다. 면접을 보고 솜씨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직접 만나서 요리사가 한 요리를 먹어보고 얘기를 나누며 인품이 괜찮다고 확신이 들어야 찾을 수 있었다.그래서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가 되려면 요리 솜씨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품도 좋아야 했다.지원자가 생각난 선우정아는 웃으면서 말했다.“우리가 잘생긴 남자를 못 본 건 아니지만 오늘 면접 보러 온 남자는 진짜 멋있어요.그자를 보고만 있어도 배불러요.”선우정아의 말을 들은 선우민아는 웃으면서 말했다.“춘심이 발동해서 시집가고 싶은가 봐. 첫눈에 반했다면 언니가 그자의 인품과 집안형편을 알아보고 너랑 적성이 맞다면 고민해 볼게.”“됐어요. 저는 단지 순순히 그자의 멋진 모습을 좋아할 뿐 남편으로
선우정아는 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가 디저트를 뱉을까 봐 정말 두려웠는데 그렇지 않아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언니가 디저트를 뱉게 된다면 면접을 보러 온 젊은 요리사들에겐 전혀 기회가 없을 것이다.선우민아는 포크로 디저트 한 조각을 더 잘라 입에 넣었다.“언니, 맛있죠?”선우정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언니인 선우민아가 대답했다.“모양이 정교하고 맛도 좋은데 약간 퍽퍽하네.”선우정아는 즉시 언니한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면서 웃으며 말했다. “좀 퍽퍽하긴 하네요. 그 사람 디저트 만드는데 솜씨가 없는 것 같지만 언니가 먹을 수 있다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네요.”“내가 대충 물어봤는데 그사람은 어릴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 일을 도우면서 요리를 따라 배웠다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 서른 살밖에 안 됐지만 요리 방면에서는 십여 년을 깊이 연구했다고 했어요.”“요리사 집안이야?”선우민아는 두 번째 디저트를 계속해서 먹고 있었다. 아마 그녀가 지금 정말 배가 고팠던 것인지 아니면 이 디저트의 맛이 정말 괜찮아서 계속 먹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조금 있다가 또 회의를 해야 되는데 그 시간이 길기에 디저트로 배를 채우지 않아 회의 도중에 배에서 계속 소리가 난다면 아주 창피할 것이다.“저는 요리사 집안인지 묻지 않았지만 그 사람 할머니가 그들에게 스스로 밥을 짓고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대요. 또 할머니는 입이 특히 까다롭기에 잘하지 못하면 혼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본인도 요리를 정말 좋아해서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많은 셰프들에게 배운 적도 있다고 말했어요.” “십여 년이나 배웠어? 어쩐지 내가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제가 보기에는 나이가 좀 더 들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지금 몇 살이야?”“언니랑 비슷해요.”“그렇게 젊다고?”그녀는 상대방이 비록 서른 살이 못 되더라도 20대 후반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과 나이가 비슷할 줄은 생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