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이는 노동명을 부축해주고 싶었지만, 힘이 약한 어린애로서 휠체어는 그나마 밀어줄 수 있어도 노동명을 부축해서 걷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이모와 이모부가 옆에서 손 놓고 보기만 하는 것을 본 우빈이는 노동명이 소파에 앉자마자 박수를 보내면서 칭찬을 해줬다.“아저씨, 짱 멋있어요. 아저씨도 이제는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아저씨 정말 최고예요!”유치원 선생님이 잘한 사람은 칭찬해줘야 하고 잘못한 사람은 비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아저씨가 잘했으니 당연히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세 어른은 우빈이의 느닷없는 거동에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동명아, 식기 전에 얼른 밥부터 먹고 얘기 좀 해.”전태윤이 말했다.“맞아요, 아저씨. 밥부터 먹어야 해요. 제가 할머니와 약속했어요. 아저씨를 잘 달래서 문도 열고 밥도 먹게 하겠다고요. 아저씨가 밥을 먹지 않으면 제가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될 거잖아요.”우빈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노동명의 곁에 다가와서 나란히 앉았다.노동명의 울적한 마음은 삽시에 훈훈해졌다. 그는 우빈이의 작은 몸체를 덥석 껴안고 양쪽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하고 나서 말했다.“아저씨가 널 이뻐한 보람이 있구나.”“아저씨, 먹어요, 어서요.”노동명이 온종일 방에 갇혀서 문도 안 열고 밥도 안 먹고 물도 한 모금 안 마셨기에 그를 관심하는 사람들을 걱정케 했다.노동명은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동시에 우빈이 보고 먹겠냐고 물었더니 꼬맹이는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아저씨, 우빈이 배 좀 보세요. 제가 이모네 집에서 너무 배불리 먹어서 배 뚱뚱이가 되었어요. 진짜 배불러서 못 먹겠으니 아저씨 혼자 먹어요.”노동명이 꼬맹이의 배를 보니 확실히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하여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더 먹으면 배 터질라.”“알아요, 전 배 터지게 안 먹어요. 이모부가 나와 이모가 지나치게 배불리 못 먹게 단속해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탈 난다고요. 이모는 이모부가 있는 자리에서는 마음껏 못 먹으니 이모부가
“그냥 해본 말이라고? 내가 너와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고 아니고. 언제든 과식하면 안 돼. 예전에는 우리가 부부 아니어서 내가 상관하지 못했지만 지금 넌 내 아내야. 나랑 백발이 되어서까지 살아야 한단 말이야. 이제 네가 건강하게 지내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야겠어.”전태윤이 하예정의 건강을 관리해 준다고 해도 병들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전태윤은 그녀를 위해 노력하려고 했다.건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병이 들기 쉬웠다.역시나 건강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하예정은 아무 소리 없이 전태윤의 잔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노동명은 식사를 다 한 뒤로 밥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우빈은 노동명에게 자상하게 휴지를 건네주었다.노동명은 우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우빈이 녀석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했다.“우빈아, 네 엄마... 출장 가기 전에 내 얘기 한 적 있어?”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는 저랑 이모부에게 아저씨를 잘 지켜보라고 부탁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아저씨가 길을 못 걷는 것을 싫어한 적이 없고 아저씨가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하예진의 이 말은 전태윤 부부에게 한 말인데 우빈이가 곁에서 듣고 있었다 하여 녀석은 지금 노동명에게 한 글자도 틀림없이 그대로 노동명에게 읊어주었다.“넌 네 엄마를 공항까지 바래다주었어?”그러자 우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우리 엄마와 이모는 저를 공항까지 가지 못하게 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아저씨들이랑 같이 차 타고 가셨거든요.”우빈은 늘 하예정을 따라다녔다. 하예진이 먼 길을 떠날 때마다 우빈을 데려가지 않는 일에 대해 우빈은 늘 섭섭했다.하예진은 중요한 일 보러 가야 했기에 우빈이를 데리고 가기가 불편하여 녀석을 하예정에게 맡겼다.하예정은 우빈과 겨울방학이 되면 우빈을 데리고 눈 구경을 하고 눈싸움도 하며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모연정 집으로 놀러 가 용정과 놀게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하예진의 노력
“동명 오빠, 우리 언니가 오빠를 많이 걱정하세요. 집을 나서기 전까지도 저와 태윤 씨에게 자주 오빠 보러 오라고 거듭 당부했어요. 저도 오빠가 무슨 생각인지 잘 알지만, 자꾸 외곬으로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자신감을 잃게 될 거에요.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겠어요?”“동명 오빠가 우리 언니를 돕고 싶어 하는 것도 저는 다 이해해요. 그런데 오빠가 빨리 나아져야 앞으로 우리 언니와 함께 많은 일을 겪어나갈 수 있는걸요. 오빠는 우리 언니랑 함께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 언니는 늘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요!”노동명은 전태윤 부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고마워요. 사실 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만, 너무 속상해서... 날 위해서, 우리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재활 치료를 열심히 할거에요. 언젠가 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예진이한테 약속했거든요. 무슨 일이 있든지 예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모든 곤란을 막아주고 예진이와 손을 맞잡고 함께 앞날을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요. 걱정 끼쳐서 너무 죄송하네요.”노동명은 자책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교통사고가 난 후로 제가 엄청 예민해졌거든요. 예진 씨와 태윤이는 이런 일을 당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제가 오랫동안 꾸준히 재활했지만, 다리는 여전히 힘을 쓸 수 없고 일반적인 사람처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힘이 빠지거든요.”우빈은 노동명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아저씨, 다 잘 될 거예요. 아저씨 다리가 좋아지면 저를 안고 높이 들어주셔야 해요.”노동명은 우빈을 번쩍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좋아. 아저씨 다리가 나아지면 우리 우빈을 높이 들고 빙글빙글 돌게 해줄게.”“그럼 빨리 나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커서 무거워지면 아저씨가 저를 들 수 없어요.”“알았어.”“우리 약속해요. 약속을 어기면 안 돼요.”노동명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녀석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이때
“우빈아, 할머니랑 잠깐 놀러 가지 않을래? 아저씨가 이모랑 얘기 좀 하시겠대.”철이 든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윤미라는 눈물을 닦으며 전태윤 부부에게 말을 건넸다.“태윤아, 예정 씨, 고마워요.”하예정은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전태윤이 말했다.“아주머니, 저희가 동명을 설득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동명이가 모레부터 평소와 같이 출근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내일 일요일인지 휴일인지 윤미라는 기억이 잘 안 났다.윤미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건넸다.“너한테 너무 폐만 끼치는구나.”“괜찮아요. 저와 동명은 좋은 친구잖아요. 이 일은 동명의 일이자 제 일이죠.”윤미라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했다.다행히 아들 노동명의 곁에는 전태윤과 소정남 같은 좋은 친구들이 있어 주었다.노동명이 사고가 났을 때 전태윤과 같은 좋은 친구들의 관심과 도움덕분으로 노동명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우빈아, 가자, 할머니랑 같이 놀러 내려가자. 뭐 하고 싶어? 나랑 같이 가자.”윤미라는 우빈의 작은 손을 잡고 방을 나서면서 물었다.“할머니, 집에 연 있어요?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 날리러 가고 싶어요.”윤미라는 웃으며 대답했다.“우리 같이 찾아보자. 오빠랑 언니가 어렸을 때 연을 가지고 놀았으니까 그들의 장난감 방에서 찾을 수 있을 거야. 할머니가 우리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방에 가서 찾아볼까?”“네, 그런데 오빠 언니가 화내지 않을까요? 우리가 오빠와 언니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그들의 물건을 가지러 가잖아요.”윤미라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말을 이었다.“그럼 할머니가 사람을 시켜 물어보라고 할게. 오빠와 언니가 동의하면 우리 연 가지러 가자.”우빈은 교육을 잘 받은 아이였다.어쩐지 아들 노동명이 그렇게 좋아하더라니!노동명은 처음에 하예진에게 마음이 없었다.노동명이 하예진을 처음 알았을 때 하예진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우빈을 좋아했을 뿐이다.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예진과 만남이 잦아지게 되면서 노동명도
윤미라가 우빈을 데리고 간 뒤 노동명은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진이가 떠나기 전에 정말 예정 씨한테 저를 보러 오라고 부탁했어요? 예진이 기분은 어때 보였어요? 제가 너무 민감하고 감정적이어서 예진이에게 영향을 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예정 씨도 제가 생떼 부리는 것 같죠? 제가 서른일곱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어린애처럼...”노동명은 자신이 억지를 부리는 것만 같아 자책했다.“오빠, 우리 언니는 정말 오빠를 걱정하고 계세요. 단지 시간이 너무 급해서 오빠 보러 가지 못한 것뿐이에요. 언니가 떠나기 전에 저한테 오빠를 찾아와서 반드시 설득하라고 신신당부했어요. 우빈이가 얼마나 착한 아이예요. 우빈이 말도 못 믿으세요?”“오빠, 오빠가 속상해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어요. 이번에 오빠가 정말 억지를 부리고 계신 거 맞아요. 보세요. 오빠는 지금 종일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시잖아요. 우리 언니가 출장 가면서 얼마나 오빠를 걱정하시고 계시는지 아세요? 아주머니도 걱정하고 계실뿐더러 오빠도 기분이 안 좋잖아요. 곁에 있는 우리도 얼마나 오빠를 걱정하고 있어요...”노동명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전태윤도 노동명을 꾸지람했다.“동명아, 내가 어떻게 널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난번부터 넌 이미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잖아. 만약 처형이 널 싫어한다면 아마 너에게 관심도 주지 않을걸. 사실 우리 처형은 요즘 점점 훌륭해지고 있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처형은 지금 아무 남자도 만나지 않잖아. 처형이 너의 여자 친구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너희 두 사람이 지금 연인처럼 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처형이 지금 너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거든. 넌 네가 처형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처형은 오히려 자신이 너와 어울리지 못할까 봐, 네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고 해도 너와의 차이를 따라잡을 수 없을까 봐 걱정하고 있어. 너희 두 사람 지금 서로 사랑
“그래, 나 혼자 내려갈 테니 부축해 주지 않아도 돼.”노동명의 마음은 이미 폭설에서 맑은 날로 바뀌었다.카멜레온과도 같았다.그는 소파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 한 걸음 걸어가 휠체어 위에 앉았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알았어. 너 혼자 해.”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태윤은 휠체어의 방향을 바꾸어 주었고 그제야 노동명이 휠체어를 조종하게 헸다.세 사람은 함께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했다.“너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나와 예정은 계단으로 내려갈 거야.”노동명이 대답했다.“그래. 난 당분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할 것 같아.”노동명의 다리가 회복되어 걸을 수 있게 되면 그의 집 엘리베이터도 휴식할 수 있을 것이다.노동명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전태윤은 하예정을 끌고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동명이는 우리 처형을 너무 의식해서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오빠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언니는 사실 마음속으로 오빠를 이미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동명 오빠가 지금 자신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있거든요. 동명 오빠는 자신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언니와 함께하려고 하세요.”“늦어도 내년 말에는 형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휴, 내 절친이 내 형부로 되다니! 차마 형부라고 부르지 못할 것 같아.”하예정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소현이도 누나라고 부르면서 왜 동명 오빠한테는 그렇게 부르지 못하세요?”전태윤이 대답했다.“그건 다르지. 내가 누나라고 부르지 않으면 소현 누나는 늘 네 앞에서 내 흉을 보는데, 난 정말 어쩔 수 없었어. 그런데 동명이는 내가 형부라고 부르지 않아도 날 괴롭히지 못할걸. 우리 부부의 감정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전태윤이 하예정을 위해 누나라고 불렀을 때, 성소현은 무척 놀랐고 그 모습을 본 하예정도 그 장면이 너무 웃기기만 했다.“동명 오빠는 이 정도 일로 태윤 씨와 따지지 않을 거예요.”노동명의 성격은 외향적이었다.그러나 요즘은 교통사고로 인해 불구
강성 공항.전호영은 일찍 공항에 도착해 하예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큰형 전태윤이 맡긴 임무인데 전호영이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전태윤이 전호영에게 부탁하지 않았어도 하예진이 온 것을 알게 되면 공항으로 마중 나왔을 것이다. 하예진은 전호영 형수님일 뿐만 아니라 우빈의 엄마이기도 했다.그들은 모두 전씨 가문의 친척이었다.전호영은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았다.바깥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졌고 어두움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뒤에야 하예진이 강성에 도착했다.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한 뒤 하예진은 휴대전화의 비행 모드를 끄고 하예정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예정아, 나 강성에 도착했어. 금방 공항에 착륙했거든. 좀 이따가 하루 호텔에 도착하면 내가 다시 전화할게.”하예진은 강성의 하루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다.지난번에 이경혜를 따라왔을 때도 호텔에서 묵었다.이번에 강성에 왔을 때 이경혜는 하예진에게 집을 고르라고 말했다.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이경혜가 사주겠다고 하면서 좋은 집을 고르라고 했다.강성에 오래 묵을 예정이기 때문에 자꾸 호텔에 묵으면 불편한 점이 많다면서 말이다.관성에 있는 하예진의 집도 전태윤이 최저가로 하예진에게 판 것이다.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하예진이 고집부리는 바람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돈을 조금 받았다.그래도 하예진의 개인 적금은 거의 다 털렸다.강성에서 집을 사려면 하예진의 능력으로는 아직 사지 못할 것이다. 그 때문에 하예진은 이경혜가 나중에 집을 사주게 되면 부동산 소유증에 이경혜의 이름을 쓰려고 했다.앞으로 하예진과 이경혜가 강성에 자주 와야 했기에 강성에 집이 있는 것이 훨씬 편했다.사실 이번에 이경혜도 오려고 했지만 데, 유청하가 산후조리 중이라서 하예진이 먼저 강성으로 오게 되었다.이경혜도 하예진 자매와 성소현에게 하예진을 배양해 이씨 가문을 이어받게 하려는 계획을 알려주었다.하여 현재 하예진의 어깨에 짊어진 짐이 가장 무거웠다.하예정은 곧 회답했다.[알았어. 호텔에 도착하면 밥부터
전호영은 하예진의 캐리어를 끌고 가면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누나, 제가 우리 호텔에 좋은 룸을 남겨두었어요. 요리도 주문했으니, 우리가 호텔에 도착하면 곧 식사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먼저 호텔에 가서 식사해요.”그가 여의 팰리스에 사놓은 집은 아직 실내장식이 끝나지 않아 하예진을 그의 집으로 초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예진도 전호영의 개인 별장에 들어가서 지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하여 하루 호텔에 하예진 일행을 묵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호영 씨, 제가 신세를 많이 지게 되네요.”“신세라니요. 다 한 가족인데. 앞으로 강성에서 누나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도울 거예요. 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제가 사람을 찾아서라도 누나를 도와드리게 할게요.”하예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는 시장을 조사하러 왔는걸요. 호영 씨의 조언과 의견을 물어보고 싶네요.”“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누나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어제든지 저한테 말씀해주세요.”전호영이 하예진 일행을 데리고 공항을 나서는 모습을 파파라치들이 몰래카메라로 찍어두었다.연예 기자에게는 이런 장면도 뉴스로 쓸 수 있었다.전호영은 줄곧 고현에게 매달려 있었기에 고현도 동성애자로 뒤바뀌는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호영이 지금 젊은 여성과 함께 웃으며 걸어갔고 심지어 자상하게도 그 여자의 캐리어도 끌어주었다. 그 여자가 얼굴도 예쁘고 기품도 좋은 것으로 보면 어느 가문의 딸일 수도 있다.그 연예 기자는 전호영의 신분을 알아보고 몰래 그 장면을 찍은 후 전호영 일행을 미행하여 하예진의 얼굴을 가까이서 몰래 찍으려 했지만, 전호영이 눈치챌까 봐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전호영이 틀림없다는 사실만 확인해도 재미있는 뉴스로 될 것이다.절대 틀릴 리가 없다.강성에서 전호영은 많은 젊은 여성들의 공동의 적수이기도 했고 고현과 자주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은 전호영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전호영이 하예진을 태우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
수십 년이 지난 탓으로 법률조차도 이은화의 사형을 선고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윤미는 적어도 그녀가 큰이모의 후손에게 주인 자리를 돌려줄 수 있었다.그녀는 이씨 가문을 떠나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 생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이런 원한과 복수에 관한 일을 멀리하고 싶었고 그녀의 소소한 삶을 더 좋아했다.이은화가 옛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이윤미는 이은화가 그 해에 정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믿었다.단지 가주 자리의 권력을 탐내는 것뿐만이 아닌 사랑 때문에 벌인 짓일 수도 있다.이은화는 지금 70세이고 정군호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아들딸도 네 명이나 낳았다.하지만 이은화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능력이 뛰어난 남자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은숙의 특별 비서일 것이다.“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 행동으로 제가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게요.”하예진은 한참 동안 이윤미를 바라보며 웃었다.“윤미 씨의 진지한 얼굴은 정말 멋있고 아름다워요. 당신 엄마가 보신다면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지만요. 이씨 가문의 상황은 어때요? 윤미 씨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다가 이 대표님께 붙잡혔다고 들었는데. 요 며칠 동안 윤미 씨 아버지는 모습조차 내놓지 않는다면서요.”하예진은 이은화와 정군호의 일을 알고 있었다.강성에서 이 불륜 사건은 빅뉴스였다.평소에 정군호랑 같이 다니던 늙은 남자들은 대부분 정군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이은화가 정군호를 너무 엄하게 관리하여 그에게 자유로울 틈도 주지 않고 용돈도 적게 준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사이좋은 부부 사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일에 얽매이게 되면 감정이 깨지기도 한다.여자들은 대부분 이은화의 편을 들었다. 이은화가 남편을 관리하는 것이 좀 엄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군호가 만약 이은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 이은화에게 이혼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정군호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우리 엄마가 예진 씨가 오신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는데. 조심하세요. 아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제가 모르는 일은 할 수 없지만요.”하예진은 웃음을 거두며 한참 동안 이윤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윤미 씨, 우리 만난 적 있잖아요. 저도 윤미 씨가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대표님 결국 윤미 씨와 피가 섞인 모녀지간인데, 저는 윤미 씨가 이 대표님과 맞서지 못한다고 생각해요.”이윤미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글쎄요. 우리 두 사람은 모녀 맞아요. 저를 저의 어머니와 같은 편에 서지 말라고 하면 제가 분명 스트레스도 받고 또 엄청나게 큰 용기도 필요하겠죠. 예진 씨가 저를 경계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예진 씨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마음이 너무 독하세요. 해본 말이 아니에요. 예진 씨가 여전히 저를 경계하면 저도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게 되면 저를 찾아오셔도 돼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까.”“사실 저와 엄마는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엄마의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또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스무 살이 넘었거든요. 윤정이가 아직 이씨 가문에 남겨졌고 여전히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제가 저의 엄마와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다고 해도 우리 두 사람이 친 모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아요.”“만약 당신들이 없다면 제 생각에는 제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짊어지고 리더가 되어 우리 가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을 거예요.”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규정을 수정하고 싶었다.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비록 대가가 좀 클 수도 있지만, 이씨 가문을 더 멀리,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정하고 싶었다.이윤미는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은 제 다른 전화번호에요. 아는 사람이 적으니 무슨
“그럼 안전에 유의하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저에게 전화하세요.”방윤림이 이윤미에게 당부했다.이윤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항상 방 비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암살을 당하더라도 이윤미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을 갖추었다.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하고 일찍이 양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죽었을 것이다.방윤림과의 통화를 마친 이윤미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하예진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하예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누군가의 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창문을 조금 눌렀고 이윤미가 하예진의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선글라스를 먼저 벗은 이윤미는 얼굴의 가죽을 벗어 던져 본모습을 드러냈고 차에서 내려 하예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하예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어떻게 저인 것을 알았어요? 두렵지 않아요?”“지금 이 시각에, 또 이렇게 외진 곳에 주변에 주택도 없는데 겁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 밤에 이런 곳으로 오지 못할걸요. 그리고 저기에 묘지도 있는데 이런 곳에 예진 씨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윤미가 온 후에야 약속 장소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하예진도 한참 후에야 차를 세울 곳을 찾아 이윤미가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그녀들이 주차한 곳은 방윤림이 그녀들에게 준 주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묘지에서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어요. 만약 제가 알았더라면 아마 혼자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귀신이 무서워서요.”이윤미도 웃었다.“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사람이 더 무섭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예진 씨 분장 기술도 꽤 좋네요. 제가 제 부하들을 하루 호텔 입구에 보내 예진 씨를 기다리게 했거든요. 여기로 오시는 길에 예진 씨를 몰래 보호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진 씨가 나오는 것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곧 하예진은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왔다.하예진은 방윤림이 그녀에게 준 그 주소대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몰았다.노동명이 전화했다.하예진은 차의 속도를 늦춘 다음 노동명의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저 지금 나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해요. 지금 운전 중이니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알았어. 운전 조심하고.”“네.”하예진은 하예정과 달리 천천히 차를 몰았다.다행히 하예정이 시내에 살고 있어서 차를 빨리 몰지 못했다. 만약 차가 적은 외진 곳으로 가게 되면 하예정은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처럼 매우 빨리 몰 것이다. 전태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지, 그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 하예정이 운전대조차 잡지 못하게 할 것이다.차를 몰고 있는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동명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하예진이 변장하고 남몰래 혼자 차를 몰고 이윤미를 만나러 간 것을 알면 노동명은 아마도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있어서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방윤림이 준 그 주소는 가까운 곳이 아닌 꽤 외진 곳에 있었기에 내비게이션에는 차로 한 시간 이상 가야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하예진이 차를 몰고 호텔을 나서자 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물었다.“예진 씨 나오는 거 봤어요?”방윤림이 대답했다.“제가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쪽지를 보냈으니 바로 떠날 겁니다. 하예진 씨가 방금 관성에서 왔기 때문에 낯선 곳이고 차량도 없으니 택시를 탈 것 같습니다. 아가씨도 출발하시면 됩니다. 하예진 씨가 곧 약속 장소로 갈 겁니다.”방윤림은 하예진을 만난 적 있었는데 하예진이 대담하고 세심하다고 추측했다. 하예진이 강성으로 온 목적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방윤림은 하예진이 이씨 가문 때문에 강성으로 왔으니, 이윤미가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만나러 갈 것으로 생각했다.“사람을 시켜 예진 씨를 은밀히 보호하라고 하세요.
고현은 전호영을 흘겨보았다.전호영은 코를 만지며 웃었다.“현이 씨가 만든 요리가 당연히 맛있죠.”“그럼 저는 뻔뻔스럽게 얻어먹으러 갈게요.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서 쉴게요.”하예진은 눈치껏 두 사람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하예진은 그녀가 묵고 있는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자마자 노동명의 메시지에 답장하려고 했다.그러나 답장하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하예진은 일어나 문을 열러 갔다.“호텔 종업원입니다.”종업원은 그녀가 문을 열자 웃으며 말했다.“실례지만 하예진 씨 맞습니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편지 한 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종업원은 하예진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하예진은 봉투를 받아들고 종업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방에 돌아온 그녀는 호기심에 봉투를 뜯었고 그 안에는 작은 편지 한 장만 들어있었다.편지의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강성의 어느 주소가 들어있었다.주소 밑에는 말 한마디만 남겨져 있었다.[예정 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혼자 오세요. 제가 예정 씨 안전을 보장해 드릴게요.]오른쪽 아래 끝에 “방”이라는 글자가 쓰였다.‘방? 방씨? 이름은 뭐지?’하예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방”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방”이라는 글자가 이름은 아닐 것으로 추측했고 아마도 성씨가 “방”씨 일 것으로 짐작했다.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이윤미 주변에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하예진이 하루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날 이윤미가 방윤림을 보내 그녀에게 선물을 전해주도록 했다.하예진은 아마도 이윤미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되었다.시간을 보던 하예진은 망설임 없이 캐리어에서 단독으로 포장된 검은색 마스크와 선글라스, 눈에 띄지 않는 낡은 옷 그리고 가발을 꺼냈다.그녀는 변장하고 나서 휴대전화와 편지를 들고 조용히 룸을 나섰다.다행히 그녀가
하루 호텔.맨 위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하예진과 고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전호영은 두 여자에게 물과 과일을 가져다주러 갔다.“언니, 우리 집에 묵는 건 어때요? 저 혼자 살아요. 집도 크고 방도 많아서 저랑 같이 살면 편하실 거예요”고현은 하예진을 그녀의 개인 별장에 초대했다.하예진은 그녀를 보며 웃었다.“제가 고 대표님 집에 가면 강성의 연예 기자들은 고 대표님이 호영 씨와의 감정이 깨졌다고 보도할걸요. 호영 씨가 헛수고했다면서, 고 대표님은 여전히 여자를 좋아하는 거라면서 기사를 낼 거에요.”고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 차림으로 다녔기에 하예진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보도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하예진은 강성에 막 왔기 때문에 사업도 일으키지 못한 채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면 그녀에게도 좋은 점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현을 사모하는 여자가 너무 많기에 그녀들이 전호영을 이길 수는 없지만, 하예진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적어도 그녀들은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대표님과 호영 씨 감정도 이제 점점 안정되고 있는데 저는 적절한 시기에 고 대표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솔직하게 말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항상 두 사람이 동성애자라고 오해하잖아요. 사실도 아닌데.”고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외부 사람들에게 해명할 필요 없어요. 언젠가 호영 씨와 결혼하게 된다면 제가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면 사람들도 진실을 알게 될 거에요.”하예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람들이 고 대표님이 여자 분장을 하고 나온 줄로 알 거예요. 고 대표님이 여자 행세를 한다고 여전히 오해하실 거예요. 저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결혼이나 이혼을 권유하지는 않거든요. 저도 과거에 결혼생활 때문에 소란을 피우다가 이혼을 당했거든요.”“형인 씨가 저를 폭행했을 때 저는 부엌에 있는 칼을 들고 거리에서 쫓아다녔기도 했고 그 사람을 때려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이은화가 말을 이었다.“난 정말 먹고 싶지 않아. 너라도 얼른 밥 먹으러 가. 엄마는 좀 더 앉았다가 돌아갈 거야. 내가 약속할게. 이 정도 일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거야. 엄마도 이틀 지나면 기분이 금세 좋아질 거야. 내일 나도 네가 알고 있는 엄마로 돌아올게. 약속할게. 늙은 영감탱이 때문에 죽느니 마느니 하면서 난리 피우지 않을 거야. 말이 나온 이상 너한테 좀 물어보자. 예정이가 오면 어떻게 임할 생각이야?”“제 원칙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대처할 거에요.”이은화는 멈칫하더니 칭찬했다.“역시 내 친딸이야! 엄마가 관성에 있을 때 경혜를 만났는데 나한테 원한을 품고 있더라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경혜는 마음속으로 날 진범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나에게 민감하게 말을 하더라고. 경혜가 나보고 예진이한테도 기회를 주어 배양하라고 제안하더군. 예진이와 너를 평등하게 경쟁시켜 예진이가 지면 네가 이씨 가문을 이어받아도 아무런 의견이 없다고 했어. 그런데 예진이가 이기면 우리 모든 사람은 권세 중심에서 손을 떼라고 말하는 거야.”이경혜가 이렇게 명확하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은 비슷했다.이은화는 딸 이윤미에게 말했다.“윤미야, 우리 집을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잖니? 그래서 엄마가 승낙하지 않았어. 예진이가 이번에 강성에 온 목적도 너무 단순하지 않을 거야. 잘 감시해. 예진이가 우리 가문의 친척들과 너무 많이 접촉하게 해서는 안 돼. 강성에서 사업을 펼쳐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할 거야. 예진의 사업의 앞길을 막아 돈을 벌지 못하게 하면 강성에서 버티지 못할 거야.”“강성은 우리 구역이야. 예진의 배후에 큰 세력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여기는 우리 이씨 가문의 구역이니까. 만약 감쪽같이... 그러면 더 좋고.”이은화는 자신의 목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이윤미에게 하예진을 처리하라는 의미였다.“하지만 흔적을 남기면 안 돼. 만약 정말 그렇게 한다면 증거는 반드시 깨끗이 지워야 하거든. 예진의 뒤에 있는 몇몇 세력은 우리가 건
“엄마, 우리 이모의 특별 비서는 아직도 살아 계세요?”이윤미는 화제를 돌렸다.이은화가 가문의 규정을 바꾸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네 이모가 사고를 당한 뒤로 이은숙의 비서도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생사는 누구도 몰라.”이은화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에 오른 후, 사람들을 보내 그 특별 비서를 찾도록 했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다. 마치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은화는 여전히 그 특별 비서를 찾아다녔다.그 당시 사고에 관한 일을 그 비서도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그의 손에도 증거가 있을 것 같았다.그를 찾지 않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으면 폭탄을 남겨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나 이은화의 살인 증거를 내놓을지 누가 알겠는가!비록 어렸을 때 이은화의 짝사랑 상대일지라도, 이은화는 그녀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그 비서를 찾으면 반드시 그를 죽이고 입을 닫게 하려고 했다.수십 년 동안 그 비서의 소식도, 두 조카의 소식도 없었다. 이은화는 자신의 외조카가 죽거나 영원히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그녀는 평안하고 순조롭게 이씨 가문을 그녀의 딸에게 넘겨줄 수 있었으니까.하느님은 여전히 이은화에게 잠재적인 위험을 남겨 주셨다.두 조카 중 비록 한 명이 죽었지만, 죽은 조카가 두 딸을 이 세상에 남겨두었다.살아 있는 조카딸 이경혜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들과 딸을 낳고 권세도 있어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작은 조카 이경희의 두 딸 하예진과 하예정도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였다.그녀들의 배후에는 여러 가문의 큰 세력이 서 있었고 그녀들을 건드리는 것은 그 가문들을 적수로 삼는 거나 다름없었다.요즘 이씨 가문의 실력은 예전만 못하기에 이은화는 그 세력들과 감히 맞서지 못했다.“나는 네 이모 가족의 죽음은 그 비서가 꾸민 음모라고 의심하고 있어. 그 비서는 네 이모를 좋아하지만 네 이모가 이모부와 결혼해서 마음속으로 원한이 맺혔을 거로 생각해. 사람들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