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는 멈췄다가 다시 울렸으며 잠시 후에 또 멈췄다.노동명은 안에서 줄곧 아무런 응답도 주지 않았다. 문은 더더욱 열어주지 않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그와 동시에 우빈이의 애티 나는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아저씨, 안에 있어요? 아저씨는 지금 자는 거예요? 아니면 일어난 거예요? 저한테 문 좀 열어줄래요? 우빈이는 쟁반이 너무 무거워서 팔이 다 시큰해요. 아저씨가 나와서 좀 도와주세요.”“아저씨, 엄마가 출장 갔는데 절 안 데리고 갔어요. 저더러 이모와 이모부랑 같이 집에 있으라고 했어요. 엄마가 절 데려가 주지 않아서 속상해서 울고 싶어요. 아저씨가 우빈이를 좀 안아주면 안 돼요? 아저씨 다리 위에 앉아서 울고 싶어요.”말을 마친 우빈이는 진짜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예정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녀석이 언제 연기를 배웠대? 정말 연기를 신통하게 잘하네.’노동명은 우빈이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2분도 채 안 지나서 또 우빈이의 통곡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는 우빈이가 진짜 우는 거로 여기고 얼른 움직이기 시작했다.침대 위에 누워있던 노동명은 일어나서 휠체어를 타려고 했지만 지금 휠체어는 침실 밖에 넘어져 있었다.아까 외곬으로 생각하다가 욱하고 치미는 홧김에 휠체어를 밀어서 뒤집어 버리고 말았다.침대에서 휠체어까지의 거리는 불과 4m밖에 되지 않았다.이만큼한 거리는 정상인에 대해 말하면 몇 발자국 내지 열 몇 발자국 밖에 되지 않지만, 노동명에 대해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몇 발자국 걷고는 멈춰서 휴식하다가 또 몇 발자국을 걷다가 또 다시 멈추고 휴식해야만 했다.이러다 나니 걸린 시간이 좀 길어졌다.그는 우빈이를 무척 아꼈다. 우빈이가 우는 것이 너무 안타까왔다.더욱이나 우빈이가 큰 소리로 통곡을 하니 시간이 길어지면 우빈이의 목이 쉬게 될 까봐 걱정 되었다.그는 현재 상태로는 하예진과 함께 강성에 가서 그녀를 도와
그와 동시에 하예정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동명 오빠.”하예정이 노동명을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했다.이어서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전태윤은 노동명의 손에서 쟁반을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친구를 핀잔했다.“마흔 살이 다 돼가는 사람이 어쩜 아직도 어린애 같아? 게다가 어린애의 지원까지 받아가면서 널 달래야 해. 동명아, 넌 창피하지도 않아? 너 대신 내가 다 창피해.”노동명이 시무룩해서 대꾸했다.“내가 창피하다고 생각하면 오지나 말 거지. 내가 와달라고 빌었어?”전태윤은 고개를 돌려 노동명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잔소리는 듣기 싫은가 보네. 나는 그래도 네가 내 친구고 또 앞으로 내 동서가 될 사람이니깐 신경을 쓰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괜히 밥 먹고 할 짓 없어서 이러고 있겠어?”그는 쟁반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노동명을 보면서 말했다.“안 오고 뭐 해? 어서 와서 밥이나 먹어.”하지만 노동명은 시쁘둥해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그러자 노동명의 다리 위에 앉아 있던 우빈이가 애티 나는 얼굴을 위로 쳐들고 머루알 같은 까만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제가 할머니와 약속했어요. 제가 꼭 아저씨를 밥을 먹게 할 수 있다고 말했거든요. 아저씨가 밥을 먹지 않으면 할머니는 저를 허풍을 떠는 나쁜 애로 생각할 거예요.”노동명은 머리를 숙여 이마를 우빈이의 이마에 맞대고 힘을 주어 우빈이를 껴안았다.“아저씨가 우리 우빈이 말을 듣고 우빈이를 허풍쟁이로 만들지 않을 거야. 우리 우빈이는 참으로 기특한 애야. 착하고 똑똑하며 철까지 들었어. 아저씨는 우리 우빈이가 제일 좋아.”우빈이의 잘생긴 얼굴에는 즐거워하는 표정이 어려 있었다.어린애니 역시 칭찬하는 말을 듣기 좋아했다.우빈이는 노동명의 다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등 뒤에 서서 말했다.“아저씨, 제가 아저씨를 밀어줄게요.”“아저씨 혼자로도 할 수 있어.” “엄마가 집을 떠나기 전에 나, 이모, 이모부에게 신신당부했어요. 아저씨를 꼭 잘 보살펴
우빈이는 노동명을 부축해주고 싶었지만, 힘이 약한 어린애로서 휠체어는 그나마 밀어줄 수 있어도 노동명을 부축해서 걷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이모와 이모부가 옆에서 손 놓고 보기만 하는 것을 본 우빈이는 노동명이 소파에 앉자마자 박수를 보내면서 칭찬을 해줬다.“아저씨, 짱 멋있어요. 아저씨도 이제는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아저씨 정말 최고예요!”유치원 선생님이 잘한 사람은 칭찬해줘야 하고 잘못한 사람은 비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아저씨가 잘했으니 당연히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세 어른은 우빈이의 느닷없는 거동에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동명아, 식기 전에 얼른 밥부터 먹고 얘기 좀 해.”전태윤이 말했다.“맞아요, 아저씨. 밥부터 먹어야 해요. 제가 할머니와 약속했어요. 아저씨를 잘 달래서 문도 열고 밥도 먹게 하겠다고요. 아저씨가 밥을 먹지 않으면 제가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될 거잖아요.”우빈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노동명의 곁에 다가와서 나란히 앉았다.노동명의 울적한 마음은 삽시에 훈훈해졌다. 그는 우빈이의 작은 몸체를 덥석 껴안고 양쪽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하고 나서 말했다.“아저씨가 널 이뻐한 보람이 있구나.”“아저씨, 먹어요, 어서요.”노동명이 온종일 방에 갇혀서 문도 안 열고 밥도 안 먹고 물도 한 모금 안 마셨기에 그를 관심하는 사람들을 걱정케 했다.노동명은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동시에 우빈이 보고 먹겠냐고 물었더니 꼬맹이는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아저씨, 우빈이 배 좀 보세요. 제가 이모네 집에서 너무 배불리 먹어서 배 뚱뚱이가 되었어요. 진짜 배불러서 못 먹겠으니 아저씨 혼자 먹어요.”노동명이 꼬맹이의 배를 보니 확실히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하여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더 먹으면 배 터질라.”“알아요, 전 배 터지게 안 먹어요. 이모부가 나와 이모가 지나치게 배불리 못 먹게 단속해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탈 난다고요. 이모는 이모부가 있는 자리에서는 마음껏 못 먹으니 이모부가
“그냥 해본 말이라고? 내가 너와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고 아니고. 언제든 과식하면 안 돼. 예전에는 우리가 부부 아니어서 내가 상관하지 못했지만 지금 넌 내 아내야. 나랑 백발이 되어서까지 살아야 한단 말이야. 이제 네가 건강하게 지내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야겠어.”전태윤이 하예정의 건강을 관리해 준다고 해도 병들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전태윤은 그녀를 위해 노력하려고 했다.건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병이 들기 쉬웠다.역시나 건강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하예정은 아무 소리 없이 전태윤의 잔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노동명은 식사를 다 한 뒤로 밥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우빈은 노동명에게 자상하게 휴지를 건네주었다.노동명은 우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우빈이 녀석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했다.“우빈아, 네 엄마... 출장 가기 전에 내 얘기 한 적 있어?”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는 저랑 이모부에게 아저씨를 잘 지켜보라고 부탁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아저씨가 길을 못 걷는 것을 싫어한 적이 없고 아저씨가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하예진의 이 말은 전태윤 부부에게 한 말인데 우빈이가 곁에서 듣고 있었다 하여 녀석은 지금 노동명에게 한 글자도 틀림없이 그대로 노동명에게 읊어주었다.“넌 네 엄마를 공항까지 바래다주었어?”그러자 우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우리 엄마와 이모는 저를 공항까지 가지 못하게 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아저씨들이랑 같이 차 타고 가셨거든요.”우빈은 늘 하예정을 따라다녔다. 하예진이 먼 길을 떠날 때마다 우빈을 데려가지 않는 일에 대해 우빈은 늘 섭섭했다.하예진은 중요한 일 보러 가야 했기에 우빈이를 데리고 가기가 불편하여 녀석을 하예정에게 맡겼다.하예정은 우빈과 겨울방학이 되면 우빈을 데리고 눈 구경을 하고 눈싸움도 하며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모연정 집으로 놀러 가 용정과 놀게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하예진의 노력
“동명 오빠, 우리 언니가 오빠를 많이 걱정하세요. 집을 나서기 전까지도 저와 태윤 씨에게 자주 오빠 보러 오라고 거듭 당부했어요. 저도 오빠가 무슨 생각인지 잘 알지만, 자꾸 외곬으로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자신감을 잃게 될 거에요.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겠어요?”“동명 오빠가 우리 언니를 돕고 싶어 하는 것도 저는 다 이해해요. 그런데 오빠가 빨리 나아져야 앞으로 우리 언니와 함께 많은 일을 겪어나갈 수 있는걸요. 오빠는 우리 언니랑 함께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 언니는 늘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요!”노동명은 전태윤 부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고마워요. 사실 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만, 너무 속상해서... 날 위해서, 우리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재활 치료를 열심히 할거에요. 언젠가 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예진이한테 약속했거든요. 무슨 일이 있든지 예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모든 곤란을 막아주고 예진이와 손을 맞잡고 함께 앞날을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요. 걱정 끼쳐서 너무 죄송하네요.”노동명은 자책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교통사고가 난 후로 제가 엄청 예민해졌거든요. 예진 씨와 태윤이는 이런 일을 당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제가 오랫동안 꾸준히 재활했지만, 다리는 여전히 힘을 쓸 수 없고 일반적인 사람처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힘이 빠지거든요.”우빈은 노동명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아저씨, 다 잘 될 거예요. 아저씨 다리가 좋아지면 저를 안고 높이 들어주셔야 해요.”노동명은 우빈을 번쩍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좋아. 아저씨 다리가 나아지면 우리 우빈을 높이 들고 빙글빙글 돌게 해줄게.”“그럼 빨리 나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커서 무거워지면 아저씨가 저를 들 수 없어요.”“알았어.”“우리 약속해요. 약속을 어기면 안 돼요.”노동명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녀석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이때
“우빈아, 할머니랑 잠깐 놀러 가지 않을래? 아저씨가 이모랑 얘기 좀 하시겠대.”철이 든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윤미라는 눈물을 닦으며 전태윤 부부에게 말을 건넸다.“태윤아, 예정 씨, 고마워요.”하예정은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전태윤이 말했다.“아주머니, 저희가 동명을 설득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동명이가 모레부터 평소와 같이 출근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내일 일요일인지 휴일인지 윤미라는 기억이 잘 안 났다.윤미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건넸다.“너한테 너무 폐만 끼치는구나.”“괜찮아요. 저와 동명은 좋은 친구잖아요. 이 일은 동명의 일이자 제 일이죠.”윤미라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했다.다행히 아들 노동명의 곁에는 전태윤과 소정남 같은 좋은 친구들이 있어 주었다.노동명이 사고가 났을 때 전태윤과 같은 좋은 친구들의 관심과 도움덕분으로 노동명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우빈아, 가자, 할머니랑 같이 놀러 내려가자. 뭐 하고 싶어? 나랑 같이 가자.”윤미라는 우빈의 작은 손을 잡고 방을 나서면서 물었다.“할머니, 집에 연 있어요?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 날리러 가고 싶어요.”윤미라는 웃으며 대답했다.“우리 같이 찾아보자. 오빠랑 언니가 어렸을 때 연을 가지고 놀았으니까 그들의 장난감 방에서 찾을 수 있을 거야. 할머니가 우리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방에 가서 찾아볼까?”“네, 그런데 오빠 언니가 화내지 않을까요? 우리가 오빠와 언니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그들의 물건을 가지러 가잖아요.”윤미라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말을 이었다.“그럼 할머니가 사람을 시켜 물어보라고 할게. 오빠와 언니가 동의하면 우리 연 가지러 가자.”우빈은 교육을 잘 받은 아이였다.어쩐지 아들 노동명이 그렇게 좋아하더라니!노동명은 처음에 하예진에게 마음이 없었다.노동명이 하예진을 처음 알았을 때 하예진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우빈을 좋아했을 뿐이다.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예진과 만남이 잦아지게 되면서 노동명도
윤미라가 우빈을 데리고 간 뒤 노동명은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진이가 떠나기 전에 정말 예정 씨한테 저를 보러 오라고 부탁했어요? 예진이 기분은 어때 보였어요? 제가 너무 민감하고 감정적이어서 예진이에게 영향을 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예정 씨도 제가 생떼 부리는 것 같죠? 제가 서른일곱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어린애처럼...”노동명은 자신이 억지를 부리는 것만 같아 자책했다.“오빠, 우리 언니는 정말 오빠를 걱정하고 계세요. 단지 시간이 너무 급해서 오빠 보러 가지 못한 것뿐이에요. 언니가 떠나기 전에 저한테 오빠를 찾아와서 반드시 설득하라고 신신당부했어요. 우빈이가 얼마나 착한 아이예요. 우빈이 말도 못 믿으세요?”“오빠, 오빠가 속상해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어요. 이번에 오빠가 정말 억지를 부리고 계신 거 맞아요. 보세요. 오빠는 지금 종일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시잖아요. 우리 언니가 출장 가면서 얼마나 오빠를 걱정하시고 계시는지 아세요? 아주머니도 걱정하고 계실뿐더러 오빠도 기분이 안 좋잖아요. 곁에 있는 우리도 얼마나 오빠를 걱정하고 있어요...”노동명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전태윤도 노동명을 꾸지람했다.“동명아, 내가 어떻게 널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난번부터 넌 이미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잖아. 만약 처형이 널 싫어한다면 아마 너에게 관심도 주지 않을걸. 사실 우리 처형은 요즘 점점 훌륭해지고 있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처형은 지금 아무 남자도 만나지 않잖아. 처형이 너의 여자 친구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너희 두 사람이 지금 연인처럼 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처형이 지금 너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거든. 넌 네가 처형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처형은 오히려 자신이 너와 어울리지 못할까 봐, 네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고 해도 너와의 차이를 따라잡을 수 없을까 봐 걱정하고 있어. 너희 두 사람 지금 서로 사랑
“그래, 나 혼자 내려갈 테니 부축해 주지 않아도 돼.”노동명의 마음은 이미 폭설에서 맑은 날로 바뀌었다.카멜레온과도 같았다.그는 소파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 한 걸음 걸어가 휠체어 위에 앉았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알았어. 너 혼자 해.”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태윤은 휠체어의 방향을 바꾸어 주었고 그제야 노동명이 휠체어를 조종하게 헸다.세 사람은 함께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했다.“너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나와 예정은 계단으로 내려갈 거야.”노동명이 대답했다.“그래. 난 당분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할 것 같아.”노동명의 다리가 회복되어 걸을 수 있게 되면 그의 집 엘리베이터도 휴식할 수 있을 것이다.노동명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전태윤은 하예정을 끌고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동명이는 우리 처형을 너무 의식해서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오빠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언니는 사실 마음속으로 오빠를 이미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동명 오빠가 지금 자신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있거든요. 동명 오빠는 자신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언니와 함께하려고 하세요.”“늦어도 내년 말에는 형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휴, 내 절친이 내 형부로 되다니! 차마 형부라고 부르지 못할 것 같아.”하예정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소현이도 누나라고 부르면서 왜 동명 오빠한테는 그렇게 부르지 못하세요?”전태윤이 대답했다.“그건 다르지. 내가 누나라고 부르지 않으면 소현 누나는 늘 네 앞에서 내 흉을 보는데, 난 정말 어쩔 수 없었어. 그런데 동명이는 내가 형부라고 부르지 않아도 날 괴롭히지 못할걸. 우리 부부의 감정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전태윤이 하예정을 위해 누나라고 불렀을 때, 성소현은 무척 놀랐고 그 모습을 본 하예정도 그 장면이 너무 웃기기만 했다.“동명 오빠는 이 정도 일로 태윤 씨와 따지지 않을 거예요.”노동명의 성격은 외향적이었다.그러나 요즘은 교통사고로 인해 불구
연예 기자는 가차 없이 여운별의 전화를 끊었다.여운별은 화가 나서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싶었지만, 여운초 때문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망가뜨릴 필요 없다고 생각하더니 다시 내려놓았다.기자들이 안 오면 그들의 손해일 뿐 나중에 후회할 때가 있을 것이다.여운별은 리조트 입구로 달려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여운초가 안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여운초와 함께 걸어오는 사람은 전이진이였다. 이 남자는 여운별이 진작부터 찜해놓은 사람이다.여태웅 부부가 사고가 나기 전에 추미자가 여운별과 전이진을 맺어주려고 계획한 적 있었다.결국! 전이진은 여운초의 남자로 되었다!여운별은 정말 부러웠고 또 질투 났다.특히 자신이 용태호에게 유린당해 어쩔 수 없이 그의 내연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여운별은 여운초에 대한 원망이 더더욱 깊어졌다.여운별은 또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여운초! 드디어 나왔구나. 네가 감히 나오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돈 줘! 지금 굶어 죽게 생겼어! 넌 우리 집 재산도 혼자 차지하고 천우를 부추겨 우리 부모님 재산도 천우 명의로 전이하게 했어. 천우를 통해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을 얻으려는 속셈 아니야?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천우 그 멍청한 자식!”여운별은 여천우까지 끌어들여 욕했다.여천우는 그의 부모님 재산을 정말로 여운초에게 주어 관리하도록 하고 싶었지만, 여운초가 거절했다.여운초는 단지 그녀의 몫만 챙기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것이 아니면 절대로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니까.여운초가 그녀의 몫을 챙겨가면 여천우 남매에게 남겨진 재산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앞에서 말했듯이 여씨 가문의 대동맥은 여전히 여운초의 손에 쥐어졌다.“밥 먹을 돈이 없었구나. 우리가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란 것을 고려해서라도 굶겨 죽일 수는 없지. 돈 좀 준비했어. 너 스스로 돈을 세어보아야 할 거야. 양씨 아저씨, 얼른 운별에게 돈 주고 꺼지게 해주세요.”여운별은 그제야 여운초 부부와 함께 나온 사람이 서원 리조트의 집사라는 것을 발견했다.집
여운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것이 고급 차라는 것을 그제야 똑똑히 보았다. 전씨 가문의 도련님이 돌아왔을 것으로 추측한 여운별은 신이 나서 재빨리 길 한가운데 서서 상대방을 멈추게 하려고 했다.전씨 가문의 도련님 중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태윤뿐이다.전태윤이 나타나면 종종 여러 대의 차가 뒤따르고 있는데 지금 산으로 올라오는 차는 한 대뿐이었다.분명 전태윤이 아닐 것이다.하여 여운별은 겁 없이 길 한가운데 서서 차를 막았다.차량은 여운별과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추어 섰다.여운초는 차창을 눌러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여운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다른 사람은 그녀의 차를 막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여운초! 드디어 돌아왔구나! 차에서 내려, 당장 돈 줘. 네가 우리 부모님이 재산을 횡령하여 날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도 못하고 카드도 정지시켰는데 날 굶겨 죽일 작정이야? 잘 들어! 돈 안 주면 나 여기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못해! 난 모든 사람에게 네가 얼마나 차갑고 악랄한 사람인지 알게 할 거야!”전씨 가문의 모든 어르신이 여운초의 차갑고 음흉한 성격을 알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였다.전씨 가문 사람은 전부 화목한 분위를 이루고 있는 대가족으로 냉혈하고 무정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여운별은 전씨 가문의 가족 앞에서 여운초의 무정한 면을 보여주려 했다!여운초는 고개를 숙여 차 안으로 들어갔고 차창을 올리고는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가자!”전이진은 다시 차를 움직였다.“여운초! 여운초! 배짱이 있으면 어서 덤벼! 정말 날 차로 치려고? 어디 한 번 덤벼봐!”여운별은 여운초가 자신을 감히 부딪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며 길 한복판에 서서 허리에 두 손을 걸치고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계속 앞으로 속도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을 보자 여운별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한편으로 뛰어가며 피했다.장주희와 이국주는 진작 의자를 치우고 길가에 서서 전이진의
이때 누군가가 다가왔다.리조트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들이다.그들은 두 명의 하인에게 의자 두 개를 가져다주면서 앉으라고 인사하면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주희 언니, 국주 언니! 둘째 사모님께서 두 분이 너무 고생이 많으시다고. 의자와 저녁 음식도 가져다드리라고 분부하셨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사람을 지키실 때 한 시간당 하루 월급으로 계산해 드린다고 하셨어요.”두 하인 장주희와 이국주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힘들지도 않은데. 고마워요.”두 사람은 산기슭의 꽃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매일 바쁘게 일한 덕으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여운별과 같은 가녀린 여자를 상대하기에는 거뜬했다.여운초가 이런 임무를 맡기자 그녀들은 너무 기뻤다. 이 일은 꽃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뿐만 아니라 시급도 그녀들의 월급보다 훨씬 높았다.한 시간에 하루치 월급이라니! 맞은편의 여운별이 될수록 열흘이나 보름 정도 버티고 있으면 올해 집으로 돌아가 설을 쇨 때 아마 돈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듯하다.게다가 여운초는 그녀들의 식사도 책임지고 보내주었다!여운별은 몇 번이나 토했는데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지금은 춥지도 덥지도 않지만 해가 지면 기온이 내려가 관성의 밤은 조금 으스스했다.이국주 일행은 여운별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 뻔뻔스럽게 여운초에게 돈을 요구하러 오다니, 돈을 요구하려면 적어도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장주희와 이국주에게 의자와 저녁 음식을 가져다준 두 하인은 여운별을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장주희에게 물었다.“저분은 아직 떠날 생각 없나 봐요?”장주희는 도시락 뚜껑을 열더니 매우 풍성한 음식을 보며 한탄했다. 그녀들은 평소에 직접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를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식단은 늘 평범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서원 리조트에서 식비를 주긴 하지만 그들은 늘 절약하면서 살기 때문에 리조트의 동료들처럼 풍성하게 먹지는 않았다.“아니요. 정말 고집이 세요. 꼭 우리 둘째 사모님한테서
비록 여운별은 지금 여천우가 준 생활비로 생활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 여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로 신분을 회복해서 돈을 써야 할 때가 있다.설마, 여운별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정말 일자리를 찾으려 하는 건가?여운별은 여미란과 여미정 가족이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직장까지 잃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여미란이 여운별에게 계략을 제안해준 바람에 온 가족은 다시 수입을 얻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쓰레기를 줍는 일까지 못 하게 될 줄 더욱 몰랐을 것이다.여미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남편과 아들, 그리고 여동생의 온 가족은 그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그리고 여미란이 울며 빌딩 꼭대기 층에서 뛰어내리려 하자 모두의 욕설이 멈췄다.여미란 자매의 두 가족은 오랜 상의 끝에 관성에 계속 머무르면 여전히 여운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관성을 떠나 외딴 작은 도시로 가서 살기로 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고, 외딴 작은 곳으로 이사해야만 전씨 가문의 세력 범위를 벗어날 수 있어 일자리를 다시 찾고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하여 그들은 여운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문자도 보내지 않고 부랴부랴 물건을 정리하고 셋집을 내놓고 그날 밤 관성을 떠났다.여운별은 또 한 번 이용당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전씨 가문의 두 하인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여운별이 여운초를 욕하기만 하면 두 중년 아줌마는 달려들어 그녀를 잡고 입에 양말을 쑤셔 넣었고 여운별은 미친 듯이 토했다.그녀는 이길 수도 없고 빨리 달릴 수도 없었으며 싸움에서 이기지도 못했다.두 아줌마의 전투력이 너무 강했다.여운별처럼 이렇게 건방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두 아줌마의 앞에서는 여전히 열세에 처했다.“돈을 주지 않으면 가지 않을 거야!”여운별이 큰소리로 외쳤다.어두운 밤이 되도록 그녀는 여전히 이기지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여운별은 그녀만의 끈기로
몇 분 후, 여천우가 답장했다.[누나, 운별 누나가 또 무슨 짓이라도 벌인 건 아니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몰라.]여천우도 여운별에게 무척 실망했다.아직도 형세를 읽을 줄 모르고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여운별이 예전에 여운초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여운초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여운초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여운별이 감옥에서 나왔다. 이제 여운초가 여운별에게 복수하려면 개미 한 마리 죽이듯 쉬운 일로 되었다.여운별이 패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 독립하여 자신만의 생활을 꾸려나갔을 것이다.여천우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만약 여운초였더라면 자립 자강하여 하늘이 무너져도 스스로 버텨내서 눈앞의 고난을 이겨나갔을 것이다.그러나 소심한 성격을 가진 여운별이라면 권세가 좀 생기게 되면 여운초에게 미친 듯이 복수했을 것이다. 만약 여운초 자매가 심하게 다투게 된다면 아마 누구에게도 좋은 점이 없을 것이다.여천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여운초였지만 그렇다고 같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여운별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좀 평범하게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대단해질 필요는 없고 일자리를 찾아 한 달 생활비를 좀 벌어서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그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여운별의 마음씨가 정말 너무 못됐다.여태웅 부부가 여운별을 망친 거나 다름없다.어릴 때부터 여천우는 여운초를 좋아해서 항상 그녀를 도와주곤 했다. 하여 추미자가 홧김에 그를 기숙사를 보내게 되었는데 기숙사에서 지낸 덕분으로 그는 인품 방면에서 그래도 제법 괜찮았다.여운별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 삐뚤게 자란다면 지금쯤 아마 여운별과 마찬가지로 자주 여운초를 괴롭혔을 것이다.그리고 여운초가 조금만 반격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네가 운별한테 준 돈과 집에서 가져간 현금을 전부 소진해 버리고 지금 우리 시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있어. 운별이가 자립할 수 있게 할 능력을 키
여운초는 여천우의 몫을 탐내지 않았다.여운초가 쥐고 있는 것은 여씨 가문의 대동맥이다.“우리 어머니도 나에게 말했어. 신경 쓰지 마. 그 여자가 너를 욕하면 입을 틀어막고 쫓아내.”전이진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 그는 여천우를 제외한 여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 전부 증오했다.그가 사랑하는 아내의 친척들은 하예정 고향의 “일품” 친척들과 한판 붙어도 될 만큼 형편없는 사람들이다.하예정 고향의 친척들이 하예정에게 화해를 하고 싶어도 이제 기회가 없다. 그녀는 진작부터 그 친척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매달 받아온 집세 돈만 하 영감에게 생활비로 주었다.아주 가끔은 소비 돈을 조금 주겠지만 말이다.하 영감과 화해한 것도 어쩌면 하예정이 그녀의 아버지께 효도를 다 한 것일 수도 있다.그러나 여운초는 그녀의 친척들과 화해할 수 없다.여운초는 웃으며 여의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운별은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이야. 자기 엄마를 찾아가 돈을 요구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두 고모가 운별이를 부추겨서 한 짓일 거야. 돈을 가지게 되면 별문제 없겠지만 돈을 못 가지게 되면 또 내 명성을 손상할 게 뻔해. 명성이 좋든 나쁘든 뭐가 상관있겠어? 내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텐데.”여운초는 수많은 괴롭힘을 당했고 몇 번이고 죽을뻔했기에 진작 명성의 좋고 나쁨에 여의치 않았다.전이진은 여운초와 결혼할 때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전이진이 그녀의 과거를 싫어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었다. 만약 전이진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운초도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대표님들에게 전화를 몇 통 걸었어. 사촌 오빠들은 내일부터 출근할 필요도 없이 쉴 수 있어서 좋을걸. 그리고 두 고모의 청소부 일도 취소했어. 앞으로 나가서 쓰레기통이나 뚜지면서 살아야 할 거야.”여운초는 두 고모가 청소부로 일하는 외 나가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돈을 벌어 삶에 보태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전이진도 말을 이었다.“나도 전화할게.
전이진은 차 문을 열고 여운초를 부축해 태웠다.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지만 먼 거리를 또렷하게 보지는 못했기에 전이진은 여전히 그녀를 세심하게 배려하며 돌보고 있었다.그녀가 외출할 때는 항상 경호원들이 동행했으며 전이진이 여운초 곁에 있을 때만 경호원들이 잠시 쉴 수 있었다.이전의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전이진은 여전히 아찔했다.그때 큰형수님이 그녀를 우연히 발견해 구해주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 사건 이후 전이진은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며 그들의 사업을 모두 망하게 만들었다.그들은 파산했고 빚을 지게 되어 고급 차와 주택을 팔아 빚을 갚아야 했다.현재 두 집안은 셋방에서 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고 한때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던 그들에게 이는 엄청난 추락이었다.여운초는 남편에게 말했다.“맞아. 아버님과 어머님은 정말 잘해주셔. 집안 모든 분들이 나를 특별히 아껴주시는 것 같아. 작은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어머니, 큰어머니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야. 그분들 덕분에 가족의 온기와 부모님의 사랑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었어.”전씨 가문의 따뜻한 배려는 여운초가 과거에 겪었던 차가운 가정과는 완전히 달랐다.친부모 중에서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 준 사람은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뿐이었다.친어머니는 여운초에게 모성애를 주기는커녕 여운별과 여천우만을 자식으로 여기고 여운초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더구나 친어머니는 딸을 해치려는 끔찍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그 결과 여운초는 목숨을 건졌지만 여전히 매일 약을 복용하며 눈과 몸을 치료해야 했다.세상에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불임으로 만들려 할까? 하지만 여운초의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전이진은 몸을 숙여 그녀의 안전벨트를 채워주며 얼굴에 입 맞추고 웃었다.“당신은 우리가 평생 아껴줄 공주님이니까.”전이진의 가족들 역시 여운초의 과거를 알게 된 후 그녀를 몹시 안타까워
여운초는 지금이라도 전화 한 통이면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사람들을 관성에서 일자리도 찾지 못하게 하고 쫓아낼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여운별 역시 그들에게 부추김을 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깨닫고 자립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여운별 같은 사람은 사회의 혹독한 경험을 통해서만 성숙해질 수 있고 옳고 그름을 깨달을 수 있었다.물론, 여운초는 동생이 변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여운별의 가치관은 어머니의 과잉보호 아래 잘못 형성되었고 이를 고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동생이 얌전히만 있다면 여운초는 그녀를 완전히 내치려 하지 않았다.다만, 여운별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킨다면 여운초도 더 이상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다.원래 두 사람 사이에는 자매애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그저 남동생 여천우가 둘째 누나인 여운별에게 의리를 지키는 편이라 여운초가 동생을 어느 정도 봐주고 있었을 뿐이었다.하지만 여운별이 자신의 인내심을 끝내 소진한다면 그때는 여천우가 그녀를 위해 좋은 소리를 한다 해도 더 이상 봐줄 수는 없을 것이다.명해은이 단호히 말했다.“그럼 그렇게 해. 혹시라도 엄마가 나서야 한다면 언제든 말해. 우리는 이미 한 가족이잖니. 내 며느리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누가 감히 내 며느리를 괴롭히면, 내가 그들에게 후회라는 단어가 뭔지 똑똑히 알려줄 것이야.”여운초는 시어머니의 말에 감동했다.“어머님 같은 좋은 시어머니가 있는데 누가 감히 저를 괴롭히겠어요? 다들 저한테 아첨하느라 바쁠 텐데요.”명해은은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다른 사람들의 아첨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그냥 우리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그러면서 화제를 바꾸며 명해은이 말했다.“운초야, 오늘 일 마치고 빨리 들어오려무나. 내가 주방에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더 준비하라고 할게.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네, 그렇게 할게요.”명해은은 따뜻한 말투로 덧붙였다.“그럼 일 봐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그리고 전화를 끊었다.여운초
명해은이 말했다.“돈을 주지 않았어. 사돈아가씨가 일부러 와서 소란을 피우며 네 명성을 망치려는 걸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내가 밖으로 나가서 만났어.”“한 번 돈을 주면 이제 돈이 없을 때마다 와서 또 달라고 할 게 뻔하잖니. 그래서 돈을 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어.”명해은은 그런 일에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네 동생이 너를 욕하는 말이 너무 심해서 두어 마디 듣고는 사람을 시켜 그녀의 입을 막고 끌어내 버렸어. 다시는 별장 입구에서 떠들지 못하게 말이야.”“그래도 네 동생이니 너희 관계가 어떻든 간에, 사돈아가씨가 집까지 와서 돈을 요구한 건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야.”“운초야, 난 단지 네게 알려주려는 거지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니 마음에 두지 마라. 그 모녀가 예전에 너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내가 개를 풀어 그녀를 물게 하지 않은 것도 체면을 봐준 거야.”명해은은 며느리가 자신이 화가 난 걸로 오해할까 봐 급히 설명했다.그녀는 여운별이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며 자기 며느리의 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운별이 별장 입구까지 와서 돈을 요구하고 여운초를 욕한 데에 화가 났지만 며느리가 이 일을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전한 것이다.여운초는 부드럽게 대답했다.“어머님, 알아요. 저도 어머님을 탓하지 않아요. 그리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게요. 동생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죠.”“동생에게 돈을 주지 않은 건 정말 잘하신 거예요. 한 번 돈을 주면 걔는 우리를 착취하려 들 거예요. 성인이 돼서 손발이 멀쩡한 데 돈이 필요하면 자기가 벌어야죠. 다음에 또 찾아오면,어머님이 기르시는 강아지를 풀어서 그녀를 겁주시면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여운초는 동생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여운별이 찾아올 때마다 여운초는 집사에게 맹견을 풀게 했고 그러면 여운별은 토끼처럼 빠르게 도망쳤다.여운별은 어머니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 독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