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영은 미래의 처남을 노려보며 꾸지람했다.“어쩐지 고빈 씨와 제가 이토록 대화가 잘 통하더라니, 우리 둘 다 같은 사람이었네요. 파렴치하고 뻔뻔하잖아요.”고빈은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었다.전호영은 고빈을 그대로 두고 떠나버렸다.고씨 그룹이 앞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누가 관리할지는 고씨 가문의 일이다. 전호영은 지금 고씨 가문의 사위가 아니지만, 설령 고씨 가문의 사위가 되더라도 이런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다.전호영은 다른 사람들이 그가 고씨 가문의 돈 때문에 장가왔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사실 전호영은 고씨 가문의 재산에 일도 관심 없는 사람이다. 고씨 가문은 강성에서 재력 순위가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재벌가이지만 전씨 그룹보다는 여전히 차이가 났다.고현이 일을 마치자마자 전호영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현이 씨, 일 끝났죠? 가요, 밥 먹으러 가요.”전호영은 성큼성큼 다가와 웃으며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처리했던 서류들을 가지런히 쌓아둔 후 인터폰을 눌러 비서에게 들어오라고 알렸다. 비서는 곧 그 서류들을 가져갔고 고현은 그제야 일어나서 의자에서 일어났다.전호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고현이 바로 거절했다.“회사에서 제 손을 잡지 마세요.”“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귀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손 잡는 게 뭐 어때서요?”전호영은 투덜댔지만, 고현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걸어갔다.10분 후.차 여러 대가 고씨 그룹을 떠났다.공항에서 돌아온 이은화는 전호영 일행보다 몇 분 일찍 하루 호텔에 도착했다.이은화는 차에서 몇 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내렸다.“대표님.”경호원들은 이은화 뒤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은화가 왜 목적지를 바꾸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이은화는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두 사람은 나를 따라 들어가고 다른
그러자 이은화가 대답했다.“실례합니다만, 정군호 씨 계신가요?”“누구야? 누가 날 찾아왔어?”정군호는 금방 목욕하고 마침 욕실에서 나왔다.그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오면서 물었다.입구에 서 있는 아내를 본 정군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자신이 눈이 어두워진 줄 알고 서둘러 자신의 눈을 닦고 다시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은화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자기야, 자기를 찾고 있는데?”그 강윤지는 몸을 돌려 정군호의 물음에 대답했다.사실 강윤지는 마음속으로 정군호의 아내임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그러나 강윤지는 상관없었다.강윤지는 얼마나 많은 아내가 그녀를 찾아와 난리를 피웠는지 모른다. 그녀는 상류사회의 남자를 찾지 않는 한 그녀의 배후에 있는 우두머리 남자 친구에게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강윤지의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가 너무 많아 아마도 그녀의 존재조차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녀의 용돈을 끊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 우두머리의 여자 친구라는 명분을 걸고 다닐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속여 자신이 그 우두머리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 중 하나라고 속이면 아무도 그녀를 심하게 괴롭히지 않았다.“여... 여보, 언제 돌아왔어?”정군호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더듬거리며 이은화에게 물었다.그의 수건을 들고 있는 손은 저도 모르게 떨고 있었다.‘며칠 더 지나야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나? 왜 지금 여기에 나타났지?’정군호는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에게 딱 걸렸다.이은화의 성격을 알고 있는 정군호는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다가 정군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이더니 강윤지를 가리키며 거짓말하기 시작했다.“여보, 이 여자가 날 꼬셨어. 날 꼬셨단 말이야.”“어이! 영감탱이! 당신이 날 좋아한다면서 나에게 매일 귀한 선물을 주면서 밥도 사주고 온갖 비위를 맞춰주며 용돈도 줬잖아. 뻔뻔하게 날 쫓아다니다가 내가 이제 놀아주니까 뭐? 내가 당신 꼬드겼다고? 난 잘
이은화는 정군호에게 뺨을 연달아 때렸다. 정군호의 얼굴은 금세 시퍼렇게 멍들고 코가 퉁퉁 부어올랐으며 그의 입가뿐만 아니라 코에서도 피가 철철 흘렀다.그는 감히 반격하지 못하고 아내의 노여움을 견뎌내고 있었다.이은화가 동작을 멈추자 정군호는 이은화의 손을 잡고 안쓰러운 얼굴로 물었다.“여보, 손 많이 아파요? 힘들어요? 제가 불어드릴게요.”이은화는 정군호를 발로 걷어차면서 그는 땅에 넘어지고 말았다.“두 사람 얼른 데려가.”이은화는 두 명의 경호원에게 두 사람을 데려가 계속해서 벌하라고 차갑게 지시했다.이은화는 감히 그녀를 배반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경호원들 즉시 방으로 들어가 강윤지를 끌고 이은화를 따라갔다.정군호는 경호원들이 끌 필요 없이 스스로 땅에서 일어나 순순히 이은화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사정했다.정군호는 그가 강윤지에게 속아 넘어갔다면서, 절대로 그가 먼저 강윤지를 꼬드긴 것이 아니라면서, 호텔에서 많이 소비한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이은화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전히 앞으로 걸어갔고 그와 동시에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자식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들이라고 지시했다.정군호가 감히 그녀를 배신한 것은 그의 손에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돈이 있어야 그렇게 젊고 파렴치한 천한 여자를 속일 수 있었다.겉으로는 정군호의 매달 용돈은 적지 않았지만, 이은화는 줄곧 남편의 용돈을 10만 원 이상 준 적이 없었다. 지금 정군호가 하루 호텔과 같은 고급 호텔에 가서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이은화의 자식들이 정군호에게 도움을 준 덕일 것이다.이은화는 어떤 효자가 정군호를 이렇게 효도하는지 알고 싶었다.이은화가 집사에게 아들딸들을 집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한 말을 듣던 정군호는 얼굴빛이 다시 어둡게 변했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이은화가 미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감히 겉으로 악담을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했다.두 명의 경호원에게 끌려가던 강윤지는 처음에는 얌전하게 경호원들에게 끌려가다가 1층으로 내려가자 기회를 엿보
강윤지가 경호원에게 잡히자 이은화는 강윤지를 힘껏 때리기 시작했고 강윤지의 얼굴은 퉁퉁 부어 조금 전의 아름다웠던 미모는 온데간데없어졌다.“여보.”정군호는 이은화가 사람을 때려죽일까 봐, 한동안 자신과 바람을 피운 강윤지가 걱정되어 이은화의 손을 잡아끌었다.그러자 이은화는 화를 정군호에게 풀기 시작했다.이은화는 바로 몸을 돌려 정군호의 뺨을 때렸다.구경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이은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을 붙잡고 폭행했다.이때 그 광경을 구경하던 전호영이 나섰다.“이 대표님.”전호영은 굵고 낮은 목소리로 이은화를 불렀다.남편에게 주먹질하고 걷어차던 이은화는 그제야 동작을 멈추었다.이은화는 고개를 돌려 자기를 부르는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사람이 전호영임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남편을 때리다가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면서 인사했다.“호영 씨군요.”“네, 제가 조금 전에 돌아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는 저희 하루 호텔이에요. 제 구역에서 사람을 죽이면 안 되시잖아요. 저의 하루 호텔의 명성에 영향을 끼치면 저희도 곤란해요.”이은화는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그녀는 바람피우는 남편과 강윤지를 때릴 때는 정말 가차 없이 때렸다.사람들은 정군호를 몰랐지만, 조금 전에 강윤지가 싸우면서 정군호가 이은화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폭로했기에 지금 구경꾼들은 모두 정군호가 이씨 가문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정군호가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이고 바람을 피우다가 이은화한테 딱 잡혔다. 그리고 이은화에게 호텔 입구에서,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한바탕 맞았기에 그의 체면도 완전히 구겨졌다.전호영은 정군호가 이은화를 무척 미워할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했다.이은화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는 전호영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전 대표님.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여기가 하루 호텔이라는 것조차도 잊어버렸어요. 지금 바로 사람을 데리고 떠나겠어요. 하루 호텔을 더럽히면 안 되죠.”얼굴이 시퍼렇고 코가 퉁퉁 부은 채로 낭패한 모습을
정군호가 이은화에게 끌려간 후, 심하게 얻어맞은 강윤지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강윤지가 남의 가정을 망친 내연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녀가 남에게 맞았다고 동정하지 않았다.강윤지는 힘겹게 일어나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그 늙은 정군호가 이씨 가문의 가주 남편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정군호와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강윤지는 예전처럼 우두머리를 내세워 자신을 보호했었는데 이번에 아무런 소용도 없을 줄은 몰랐다. 결국, 그녀는 이은화에 의해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맞고 말았다.전호영은 고현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전호영이 고현에게 물었다.“볼거리 재미있었죠?”그들은 단지 이은화보다 몇 분 늦게 호텔에 도착했다.이은화가 호텔 룸에 들어가서 정군호와 강윤지를 잡았을 때 전호영은 고현을 데리고 현장에 가지 않고 일 층 휴게실 소파에 잠시 앉아 있었다.강윤지가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이 볼거리는 아마 볼 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정말 재미있었어요.”고현이 대답했다.“은밀하게 처리했죠? 이 대표님한테 들키면 안 돼요. 이 대표님 곁에 특별비서가 있어요. 이씨 가문의 가주 옆에 배정되는 특별비서인데 그들은 가주한테 가장 충실하고 능력도 엄청나게 뛰어나거든요. 이 대표님의 많은 일은 아마 그 특별비서가 도와서 기획하고 안배하는 경우가 많아요.”전호영이 말을 이었다.“이 일은 저 혼자 추진한 것은 아니에요. 윤미 씨가 뒤에서 이 일을 꾸몄어요. 정군호 씨 내연녀도 윤미 씨가 선택해 정군호와 우연히 마주치게 하여 서로한테 깊이 빠져들게 한 거예요.”“물론 이 대표님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할 거예요. 이 일은 우연처럼 꾸며졌기에 누가 뒤에서 조종하는 것을 전혀 알아챌 수 없을 거예요. 저는 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대표님이 윤미 씨가 꾸민 일이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무척
그러면 전호영도 곤란해질 것이다.한편, 이윤미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이은화가 강성으로 돌아온 사실을 이윤미는 방윤림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은화가 공항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하루 호텔로 직행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묻지 않아도 이은화가 직접 간통하는 것을 잡으러 갔을 것이다.정군호의 최근에 벌인 일에 대해 이윤미는 겉으로는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 뻔히 알고 있었다.전호영의 말대로 정군호가 바람을 핀 일은 주로 이윤미가 꾸민 일이었고 전호영이 뒤에서 조금 부추겼을 뿐이다.이 시각, 집으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은 이윤미는 어머니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했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윤미의 오빠들은 조마조마했다.이은화가 갑자기 그들에게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고 통보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이은화가 왜 일찍 돌아왔는지는 더더욱 몰랐다. 강성에 며칠 더 있어야 돌아온다고 했는데...이윤미가 집에 도착했을 때 이윤정과 그녀의 세 명의 형수들도 모두 집에 도착했다.정일범 형제는 이윤정의 뒤에 숨어있었다.남매 네 명이 집에서 만났을 때 정일범은 이윤미를 꾸지람했다.“윤미야, 넌 엄마가 일찍 온 것도 몰랐어? 우리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이씨 가문의 후계자 소식이 너무 느린 거 아니야?”이윤미가 말을 이었다.“큰 오빠는 엄마랑 사이가 더 가까운데도 엄마가 일찍 오신 것을 몰랐잖아. 집에 있을 때도 난 항상 엄마한테 혼나기만 했는데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오빠들이 날 협조해 주지도 않고 날 지지해 주지도 않으면서. 오빠들은 내가 소식이 느린 게 기쁘지 않아?”이윤미는 정일범 일행을 뒤로 한 채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정일범은 남동생들에게 말했다.“저 시골뜨기는 내가 몇 마디 좀 했다고 나한테 대드는 것 좀 봐. 능력도 없고 소식도 느린 주제에 우리를 탓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그러게. 촌 X은 촌 X일 뿐이야. 아무리 예쁜 옷을 입어도 개변할 수 없는 사실이지.”이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 정일군은 정일범의 말에 맞
정군호의 모습을 본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은화는 소파 위에 앉아 키보드 위에 무릎 꿇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정군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서 있었다.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이은화가 가장 아끼는 이윤정도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일범은 그의 아내 조윤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아빠가 왜 저러고 계셔? 누구한테 얻어 맞기라도 한 거야?”조윤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어머님께 맞으셨어요. 지금 키보드 위에 무릎 꿇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아버님께서 바람을 피우셨는데 엄마한테 딱 걸렸거든요. 그래서 그 내연녀도 어머님께 엄청나게 맞으셨대요.”그 말을 들은 정일범의 안색은 바로 변했다.정일범은 자신이 바람을 피운 일을 떠올렸다.이은화 부부는 아들들이 바람을 피운 일에 관해 보는 둥 마는 둥 했다.하지만 이은화에게는 정군호가 바람피우는 일이 크나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에게까지 연루될 수 있었다. 특히 정일범 형제들도 바람을 피운 상황에서 말이다.정일범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윤의 곁에 묵묵히 서 있었다.“엄마.”이윤미가 집안의 쥐죽은 듯한 정적을 깨뜨렸다.그녀는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코가 퉁퉁 부어올라 평소 멋진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정군호를 보고 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이은화를 보더니 바로 물었다.“엄마, 무슨 일이에요? 아빠는 왜 또 그렇게 계세요? 누가 우리 아버지를 이 정도로 때렸어요? 아빠, 누구랑 싸우셨어요?”이씨 가문의 사모님들은 모두 정군호를 비웃는 표정으로 보고 있더니 곁에 서 있는 그녀들 남편의 허리를 쥐어뜯었다. 정일범 형제는 아프지만,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해 애써 참고 있었다.“윤미야, 아빠가 잘못했어. 나도 내가 잘못한 것도 알고 있어. 나 대신 엄마한테 사정 좀 해줘. 내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정군호는 이윤미에게 자신을 위해 좋은 말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이윤미
이윤미는 충격적이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정군호를 바라보았다.정군호는 이윤미의 이런 표정에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부모들은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식들 앞에서 그들의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진실들을 감추려 한다.그러나 이은화는 아들딸과 며느리들 모두 자신이 바람피우는 것을 보게 했다.정군호는 아들딸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게 될 것이다.손주가 집에 없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손주 앞에서도 얼굴을 들 수 없었을 것이다.“엄마.”이윤미는 재빨리 이은화 옆에 앉으며 그녀를 위로했다.“엄마, 아빠가 잠깐 정신이 없었나 봐요... 혹시 덫에 걸렸거나 밖에 있는 여자들의 계략에 걸려든 것일 수도 있잖아요.”“바로 그 천한 X이 나를 모함한 거야. 윤미야, 빨리 날 도와서 엄마한테 사정 좀 해줘. 난 정말 억울해.”정군호는 딸의 말을 듣더니 바로 맞장구를 쳤다.모든 잘못을 강윤지에게 돌리려고 했다.이은화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또다시 담배를 피우려 하자 이윤미가 바로 막았다.“엄마,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시면 몸에 안 좋아요. 엄마가 화가 많이 나신 것도 속상하신 것도 제가 알아요. 그런데 아빠가 엄마를 배신했다고 해서 엄마의 몸을 벌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만 피우세요. 건강에 해로워요.”이은화는 친딸 이윤미를 바라보면서 역시 친딸만이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나머지 자식들은...이은화가 다른 아들딸들을 둘러보았는데 다들 켕기는 점이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엄마, 아빠가 다른 사람의 계략에 빠진 거 아니에요? 엄마와 아빠가 수십 년 동안 결혼하여 우리 오빠들과 저를 낳으셨잖아요. 사이가 얼마나 좋으셨어요. 아빠가 엄마한테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우리 다 알아요. 제가 여기로 돌아온 지 2,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빠와 엄마 사이가 좋은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니까요. 아빠는 분명 다른 사람의 계략에 빠지신 것이지 절대로 엄마를 배신하신 건 아닐 거에요.”이은화가 남편을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