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아, 그 여자에게 미안한 짓이라도 한 거 아니야? 왜 널 찾으려고 해?”전이혁이 물었다.“그 여자 성씨를 알아?”“안 알려주더라고. 남의 물건을 훔쳤어? 아니면 그 여자를 건드린 거야? 내가 널 언급했을 때 그 여자가 이를 갈고 있던데. 널 찾아 결판내려는 것 같던데”전이혁이 말을 이었다.“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우리 집에 부족한 게 없는데 내가 왜 남의 물건을 탐내겠어?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물건들을 훔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내가 왜 남을 건드리겠어? 혹시 사람 잘 못 알아본 거 아니야? 난 젊고 예쁜 여자들이 주위 몇 명밖에 없어. 평소에 아줌마들과 많이 접촉하고 있거든.”전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과 사업할 수 있는 여장부들은 대부분 40대 아줌마들이었다.전이진이 물었다.“할머니가 정해주신 아내는 아니고?”전이혁은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지 재빨리 부인했다.“아니야. 절대 아니거든. 내가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할머니께서 내게 정해주신 아내분은 재벌가 딸이야. 그런데 내가 자주 꿈꾸는 그 여자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와 다른 분이란 말이지.”“난 앞으로 우리 전씨 가문에서 첫 번째로 이혼하는 남자가 될까 봐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겠어. 할머니를 찾아가 아내를 바꿔 달라고 했는데 할머니께서는 거절하시면서 나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더군.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어? 어차피 1년 후에도 집에 가서 설을 못 쇨 각오는 하고 있어. 그런데 할머니도 아마 입으로만 말씀하시는 것 같긴 해. 내가 설날에 집에 없으면 할머니도 마음이 약해져서 날 집으로 오라고 하실걸.”전이혁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할머니는 나이가 드셔서 자손들이 많은 장면을 보기 좋아하시거든. 손자 한 명만 보이지 않아도 밥도 잘 드시지 못하실 거야.”전이진은 빙그레 웃었다.“호영이처럼 반년이나 끌다가 나중에 움직이려고? 봐봐, 호영이와 고현 씨는 아직도 연인관계가 아니잖아. 고현 씨는 아직도 호영이를 위해 여자 신분을 밝히려
전이혁은 단지 꿈속에서 그에게 치근덕거리는 여자를 현실 속에서 만나 그녀를 화나게 했을 뿐이다. 사실 전이혁도 상대방의 이름도 몰랐다.오히려 상대방이 전이혁의 이름을 알고 관성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고 전씨 그룹으로 찾아갈 줄은 더더욱 몰랐다.도둑이 제 발 저리다더니...전이혁은 자신이 한 일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전이진에게 속아서 진실을 말해버릴까 봐 마음이 켕겼다.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입원 병동으로 들어갔다. 하예정의 손에는 꽃다발이 쥐여있었고 전태윤의 손에도 크고 작은 가방들로 가득했다. 전태윤 부부는 경호원들을 거느리지 않고 조용히 들어갔다.두 사람은 일부러 누구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검은색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부인과 입원 부로 올라갔고 하예정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을 건넸다.“여보, 너무 빨리 가지 마. 가까운 거리인데 왜 그렇게 빨리 가?”“청하 언니가 오늘 퇴원한단 말이에요.”전태윤은 낮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퇴원하시면 이모 댁에 가서 아기를 볼 수도 있잖아.”하예정은 아기를 무척 좋아했다.워낙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임신한 뒤로도 모성애가 더 넘쳐나는지 아기들을 더 많이 귀여워했다.“저는 볼 수 있죠. 그런데 태윤 씨는 아기가 한 달 되어서야 볼 수 있는걸요. 저는 매일 보러 갈 수 있어요.”하예정은 걸음을 늦추어 고개를 돌려 전태윤에게 웃으며 말했다.“그 아기는 성 대표님 아들이지 내 아들이 아니잖아. 나는 한 달 동안 볼 수 없어도 상관없어. 만약 내 아들이라면 매일 보고 싶을 테지만. 예정이 네가 내년에 산후조리할 때 내가 40일 동안 휴가를 내서 집에서 널 돌볼 거야. 그리고 우리 아기도 매일 자라는 모습을 볼 거야.”하예정이 입을 열었다.“태윤 씨가 산후조리 할 필요도 없는데 그렇게 긴 휴가를 쓸 필요 없어요. 집안에 가족들이 많아서 그런 장기 휴가를 내서 우리 모자를 돌볼 필요까지 없다고요.”“난
“언니가 오늘 퇴원하신다고 해서 꽃다발을 주려고 가져왔죠. 다들 저와 같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죠. 물건은 다 챙겼어요?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 없으면 제가 언니를 도와 꽃다발을 안아 줄게요.”하예정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유청하가 퇴원하는 날은 그야말로 성대했다.전태윤 부부는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품에 꽃다발을 안고 걸었다. 두 사람은 걷다가도 서로를 마주 보면서 달콤함과 행복함을 만끽했다.그들은 입원 병동에서 나와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주차장은 진찰실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전태윤 일행은 자연스럽게 진찰실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전태윤 부부는 여운별과 마주쳤다.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전태윤 부부는 여운별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운별이 감옥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기 때문에 하예정은 여운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그런데 전태윤 부부가 지나갈 때 여운별은 하예정의 말소리를 듣고 갑자기 멈추어 고개를 돌리며 하예정을 바라보았다.원수끼리 만나면 눈에 핏발이 선다고 여운별은 바로 달려들어 단칼에 하예정을 찔러 죽이고 싶어 했다.그녀는 발을 몇 걸음 옮겼다가 또다시 멈추었다.그대로 돌진하면 안 되었다.여운별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칼은 물론 몸에 펜도 없었다. 게다가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법이다. 여운별은 자유를 잃은 적 있기에 지금 밖에서 마음대로 다니는 자유를 무척 소중히 여겼다.복수를 위해 다시 미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여운별은 하예정의 뒷모습을 한사코 주시했다. 하예정은 전태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올랐고 곧 전태윤이 차에 올라탄 뒤로 그들의 차는 멀리 떠나갔다.“하예정!”여운별은 이를 갈며 말을 내뱉었다.“언젠가 내가 널 무너뜨리고 말 거야!”그녀는 하예정이 떠난 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따라서 그녀의 등 뒤에 난 상처도 더 아파 났다.여운별은 아침에 여씨 가문으로 달려갔다가 여천우가 돈을 가지러 위층으로 올라간 틈을
전이진은 흉악한 표정으로 여운별을 향해 꺼지라고 소리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모든 물건을 그녀를 향해 뿌렸다.겁에 질린 여운별의 얼굴은 바로 창백해졌고 본능적으로 일어나 빨리 도망쳤다.여운별이 그렇게 빨리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이진이 던진 접시에 등을 몇 번이나 맞았다.무척 아팠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뛰쳐나와 멀리 도망친 후에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감히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차를 몰고 셋집으로 돌아갔다.원래는 아무 약이나 바르고 견뎌내려 했지만, 등이 너무 아프다고 느낀 여운별은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달려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병원에서 줄을 서면서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야 여운별은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전태윤 부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비록 전태윤 부부는 경호원 팀을 데리고 오지 않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하예정의 목소리를 들은 여운별은 그 목소리가 곧 하예정의 목소리임을 눈치챘다. 여운별은 하예정의 목소리가 이가 갈릴 정도로 듣기 싫었고 또 기억에 남았다.“하예정! 여운초! 기다려! 내가 받은 고통을 모두 두 배로 돌려줄 거니까!”여운별은 하예정이 임신했다고 들었다.전씨 가문은 대외적으로 임신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릴 때 하예정이 감히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더니 사람들은 하예정이 임신했음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여운별은 하예정이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여운별은 질투로 인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감옥에서 나온 여운별은 두 고모에게서 하예정이 결혼 후 오랫동안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모두가 하예정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뒷말까지 했다.하지만 지금 하예정이 임신했다. 하예정은 어렵게 품은 아이가 정말 소중할 것이다. 이때 그녀를 유산시키게 한다면 정말 속이 다 시원할 것이다.그리고 여운초가 아이를 평생 낳지 못하게 한다면 전이진이 여운초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과
청소부 아줌마는 종이쪽지를 여운별이 탄 차 안에 던진 뒤 가버렸다. 원래는 여운별에게 누군가가 병원 부근의 빵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여운별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그것도 아주 험한 욕설이었기에 빗자루로 차 안에 있는 여운별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전해주라고 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여운별은 청소부 아줌마가 차 안으로 쓰레기를 던진 거로 생각하고 종이쪽지를 주워들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문득 쪽지에 글이 쓰여 있음을 발견했다.[빵집에서 만납시다. 정현숙]그제야 여운별은 방금 청소부 아줌마는 종이쪽지를 전해주려고 차 문을 두드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그녀는 차에서 내려 청소부 아줌마를 쫓아가 묻고 싶었지만, 상대방은 이미 멀리 가버렸다. 게다가 방금 그녀는 그 사람한테 악담까지 퍼부었는데 따라잡았다고 한들, 그 사람은 여운별을 상대하기조차 싫어할 것이었다.여운별은 하는 수 없이 차를 운전하여 병원을 떠났다.그녀는 정현숙이 청소부 아줌마를 시켜서 쪽지를 전하라고 했으니 분명히 이 부근에 있을 테니, 자기가 부근에 있는 빵집을 훑어보면 정현숙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복수를 위해, 그리고 또 자금위기의 곤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여운별은 반드시 정현숙을 찾아내야만 했다.그래도 총기가 좀 있는 편인 여운별은 병원 부근에 있는 한 빵집에서 빵을 사 들고 나오는 정현숙을 발견했다.여운별이 차에서 내리자, 정현숙은 그녀를 스쳐 지나가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금 감시당하고 있으니 꼬리를 떼고 난 뒤 다시 연락할게요.”그리고는 차에 올라 기사더러 운전하라고 분부했다.여운별은 감히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빵집에 들어가서 아무렇게나 빵을 둬가지 샀다.이쪽에 있는 전태윤은 문자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접수했다.문자와 사진을 확인한 뒤, 그는 핸드폰을 하예정에게 넘겨주었다. 핸드폰을 받아서 내용을 읽은 그녀는 전태윤을 바라보았다.전태윤은 아무
정현숙의 목적은 하예정을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기 때문에 하예정이 살아있는 한, 전씨 가문이 곧 두 자매의 뒷심이 되어 성씨 가문과 손을 잡고 이씨 가문과 맞설 것이었다.정현숙은 자매를 죽여 가족을 희생시켜서야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에 올라 몇십 년을 보내왔다. 근데 지금에 와서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큰언니의 후대에 물려준다는 것은 도저히 안 될 일이었다.애초에 그녀는 친자매도 죽일 수 있었다지금 조카, 조카손녀를 죽인다는 것은 그녀에 대해 말하면 개미를 비벼 죽이는 것과 다름없이 아무런 고통, 잠시의 주저함도 없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장기적으로 관성에 눌려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녀가 관성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계속 그녀를 물고 놓지 않았다.그리고 그녀는 관성에서 아무런 힘도 없으므로 뭘 좀 하려고 해도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자기가 강성에 있는 소굴로 돌아가서 천천히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자기한테 충성을 다하는 경호원을 관성에 남겨서 여운별을 사람을 죽이는 비수로 만들게 하여 적당한 시기를 찾아서 하예정한테 칼을 박을 타산이었다.“사모님, 알겠습니다. 제가 꼭 사모님의 분부대로 움직이겠습니다.”정현숙은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어서 경호원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이건 여운별의 연락처야. 네 핸드폰에 잘 저장해둬. 하지만 그 여자한테 연락할 때는 네 전화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전태윤한테 들킬 수 있으니깐.”“밖에 있는 공중전화로 그 여자와 연락하면 되겠네.”“알겠습니다.”경호원에게 지시를 마친 정현숙은 한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야 말했다.“딴 일은 없으니 나가 봐.”경호원은 묵례한 후 공손히 물러갔다.정현숙은 혼자 방에서 조용하게 앉았다가 떠났다.그녀는 관성 호텔에 돌아가서 체크아웃 절차를 마친 뒤, 여러 명의 경호원의 호송하에 캐리어를 끌고 호텔 문을 나섰다.진작 불러온 차량이 호텔 정문에서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몇 분 뒤, 정현숙을
이에 하예정은 웃으면서 성소현을 놀려줬다.“애가 그렇게 이쁘면 언니와 형부도 얼른 하나 낳아요.”성소현은 조카의 볼에 뽀뽀하고 나서 말했다.“나와 준하 씨는 결혼 후 서둘러서 애부터 낳을 예정이야. 애를 낳는 인생의 큰 임무를 완성한 뒤, 우리는 사업에 전념할 거야.”“난 또 두 사람이 결혼 첫 2년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 할 줄 알았는데요.”유청하가 말했다.“나도 처음에는 결혼한 첫 2년 동안은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와 준하 씨도 이젠 어리지 않잖아요. 내년에 결혼해서 이내 서둘러서 애를 만든다고 해도 낳고 나면 제 나이가 서른이에요.”성소현은 하예정보다 한 살 위였다.“나도 옛날에는 애를 싫어했어요. 하지만 우빈이를 본 그 시각부터 애를 좋아하게 됐어요. 지금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내 조카 같은 아기는 얼마나 키우기 쉬운데요. 배불리 먹고는 자고, 자고 일어나면 먹고. 별로 울지도 않아요. 새언니, 이렇게 키우기 쉬운 아기는 몇을 더 낳아도 아무 문제도 없을걸요. 우리 집에서는 얼마든지 키울 수 있어요.”하예정이 웃으면서 말했다.“새언니는 아직 산후조리 기간도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둘째, 셋째를 가지라는 말을 해요? 이 말을 큰오빠가 들으면 또 언니를 한바탕 욕할 것이 뻔해요.”임신 기간에 입덧을 심하게 하는 유청하를 보는 성기현은 가슴이 아파서 애를 지우라고 권했었다.두 사람도 애 하나만 갖기로 약속했었다.그 말에 성소현은 얼른 고개를 방문 입구 쪽으로 돌려 큰오빠가 있나 없나 확인한 뒤 웃으면서 말했다.“나도 그냥 신이 난 김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에요. 새언니는 가슴에 두지 말고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그녀도 심한 입덧으로 무척 고생한 유청하를 가슴 아파했다.“하나만 낳으면 돼요. 둘째 오빠가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난 조카와 조카딸이 다 있게 되네요.”“입덧으로 고생할 때는 딱 하나만 낳겠다고 다짐했는데, 다 낳고 나서 귀여운 아기를 보니 먹는 것만 기억
결혼 휴가가 끝나려면 아직 며칠 더 남았다.“언니, 무슨 일 있어?”“오늘 나와 동명 씨는 다 바빠서 우빈이 데리러 갈 시간이 없어. 너와 제부 씨가 어린이집에 가서 우빈이를 좀 데리고 나와서 주형인한테 데려다줄래? 주형인이 우빈이를 만나고 싶다고 해.”주형인은 앞으로 다시는 하예진 앞에 나지 않거니와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그는 말한 대로 했다.주형인이 애를 만나고 싶다고 할 때마다 하예진은 우빈이를 태워서 옛날에 그녀와 주형인이 함께 살던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가서 마중 나온 우빈이 할머니에게 맡긴 후 직접 돌아오곤 했다. 우빈이가 집에 돌아오려고 하면 주씨 집안 식구가 우빈이를 하루 레스토랑까지 데려다줬다.“알았어. 이따가 나와 태윤 씨가 우빈이 데리러 갈게. 우빈이가 그 집에 남아서 밥 먹어?” “우빈이한테 물어봐, 애가 거기에 남아서 밥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러라고 해. 마침 내일이 토요일이니 거기에서 잠자고 오라고 해도 돼. 너와 제부 씨는 거기에서 기다릴 필요 없어.”“알았어, 언니는 걱정하지 말고 볼일 봐. 내가 우빈이 데리러 갈 테니.”하예정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하예정은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하예진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언니는 지금 엄청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예진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어?”성소현은 걱정돼서 물었다.“언니가 너무 바빠서 우빈이 데리러 갈 시간이 없다고 나와 태윤 씨더러 어린이집에 가서 우빈이 데려오라고 하네요. 주씨 식구가 우빈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애를 데리고 와서 주씨 저택까지 데려다주라고 해요. 내일이 토요일이니 애가 거기에 남아서 자고 싶으면 자도 된다고 해요.”성소현이 미심쩍은 어투로 물었다.“주씨 집안 식구들 정말 조용해졌어?”“네, 조용해요. 주형인이 말한 대로 하네요. 우빈이를 만나는 걸 빼고는 그 집 사람들은 더는 언니를 귀찮게 하지 않았어요. 그 집 사람들이 진작 이렇게 나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이날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돌아오는 날은 일요일이었다.휴식날인데 우빈이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우빈이는 일어난 후 곧장 하예정이 자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다. 전태윤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었다.“이모부, 이모 일어났어요? 들어가서 이모랑 같이 놀래요.”전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꼬맹이와 화내지 말자고 스스로 가슴을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평소에 어린이집 가야 하는 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더니 쉬는 날만 되면 아주 일찍 일어나더라.”우빈이가 입을 뾰족이 내밀면서 말했다.“이모부, 나는 한 번 깨어나면 더는 못 자요. 나랑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심심해요. 이모 찾아와서 노는 수밖에 없어요.”현재 우빈이는 시 중심에 자리 잡은 전태윤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 서원 리조트에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놀아 주는 어린이들이 있었기에 이모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우빈이를 부쩍 들어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이모는 아직도 자고 있어. 이모부가 우빈이랑 같이 놀아 줄게. 뭐 놀까?”“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좋지 않을까?”우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싫어요. 혼자 놀면 재미가 없어요. 이모부는 장난감도 안 놀 거잖아요.”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모부랑 같이 아침 조깅하러 나갈까? 이모부가 가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얌전하게 기다려야 해?”그는 우빈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내려놓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신신당부했다.“침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깨우면 안 돼. 알았지? 이모부가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우빈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전태윤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서 먼저 운동복 바지부터 바꿔 입고 우빈이가 그사이에 침실에 들어가서 하예정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웃옷을 입으면서 밖으로 나왔다.우빈이가 조용하게 제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야 전태윤은 안도의
윤미라는 아들 노동명이 무서웠다.“알았어. 꾸준히 재활 치료할 거야. 네가 돌아올 때면 내가 2~3m나 걸을 수 있을지도 몰라. 참, 언제 돌아올 거야?”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답했다.“설까지 있을 계획에요. 설날이 되면 제가 돌아갈게요.”“그렇게 오래 있겠다고? 우빈이는 어쩌려고?”“예정이가 돌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우빈이 보러 가주세요. 시간이 없으면 제부한테 부탁해서 우빈이를 저한테 데려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고요.”하예진은 점점 더 바빠질 것이다.당분간 아들 우빈과 함께할 시간이 적을 것이다.“우빈이가 태어날 때부터 예정이가 곁에서 보살펴서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설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요.”“사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노동명이 한 마디 내뱉었다.우빈이는 핑계일 뿐, 사실 노동명이 그녀가 그리웠다.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리면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이 무척 보고싶을 것으로 예상했다.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우빈은 어려서부터 녀석을 키워준 하예정이 있어서 하예진이 곁에 없다고 해도 바로 적응할 수 있지만 노동명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요즘 그는 매일 하예진을 보는 것에 익숙했다.“예진아,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혼자 널 보러 가도 돼? 걱정하지 마. 우리 집에 개인 비행기가 있어서 내가 그 비행기를 타고 경호원들과 함께 가면 돼. 경호원들이 날 돌봐줄 거야. 네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고. 널 보러 갈 뿐이야. 너랑 밥 먹고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주말마다 널 보러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올게.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하예진은 마음이 따듯해졌다.“그럼 주말에 우빈이도 데리고 오세요.”“난 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빈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해?”하예진은 얼굴이 빨개졌고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동명 씨가 혼자 온 걸 알게 되면 우빈이가 삐질걸
“앞으로 더는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동명 씨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제가 돼지처럼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동명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처럼요.”노동명은 급히 끼어들었다.“넌 못생기지 않았어. 전혀! 예전에 통통할 때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거든. 복스러워 보였어.”“못생긴 거 맞아요. 저는 거울만 봐도 뚱뚱한 제가 너무 싫었어요.”바보 같은 짓은 한 번만 하면 충분했다. 하예진은 다시는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살을 빼기 전에 하예진은 살이 너무 많이 쪄서 지방간뿐만 아니라 요산 수치도 높았다.체중 감량 후 요산뿐만 아니라 지방간 수치도 모두 많이 좋아졌다.“하예진아, 우빈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옷도 사줬는데 나한테는 뭐 사준 거 없어?”노동명이 화제를 바꾸어 질투하기 시작했다.“동명 씨는 부족한 게 없잖아요. 우빈이는 아이라서 너무 빨리 커요. 해마다 새 옷을 사줘야 하지만 동명 씨는 이젠 다 큰 성인이라 작년의 옷을 올해에도 입을 수 있잖아요. 돌아가게 되면 강성의 특산 제품을 가져다드릴게요.”노동명은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빈이는 크면 남의 집 남편으로 되어 우빈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게 될걸. 결국,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 텐데 나를 더 관심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 옷 사줘. 네가 사준 옷이면 난 다 좋아.”하예진은 하예정에게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지난번 하예진은 재혼하고 싶지 않다며 노동명의 감정을 거절했다.그러나 지금, 하예진이 시집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나 다름없다. 모두의 눈에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보였다.노동명도 자연스레 하예진의 남편 역할을 하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여생을 함께하려고 한다.하예정이 끝까지 노동명에게 시집가지 않더라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남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선물을 너무 받고 싶었다. 가격을 따지
이윤미가 말을 꺼냈다.“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몰래 예진 씨를 따르라고 한 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라가서 예진 씨의 몸매를 익히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앞으로 예진 씨가 변장하더라도 그녀의 몸매에 대한 인상으로 분장한 예진 씨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예진 씨와 만날 때마다 예진 씨의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니까요.”“만약 그녀가 저를 만나러 오는 도중에 사고가 나면 하예정 일행은 아마 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예진 씨가 강성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몰래 그녀를 도와주세요. 그저 우리 엄마와 그 늙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도와주면 돼요.”이윤미가 말하는 늙은 남자는 정군호가 아닌 이은화의 특별 비서였다.방윤림은 예의 갖추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밤이 점점 깊어지는데 얼른 돌아가세요.”이윤미는 한숨을 쉬었다.“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집에는 따뜻함이 없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눈치 보면서...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방윤림은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랐다.주인의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일개 비서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이윤미는 곧 방윤림과 함께 떠났다.한 시간 후.하루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한 뒤 가발을 쓰고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이윤미가 선물한 인간 얼굴 가죽을 쓰기 아까웠다.그렇게 전업적인 도구는 가장 필요한 곳에 써야 낭비하지 않는다.하루 호텔은 전호영이 강성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 본점이다. 하예진이 분장한 이유는 전호영에게 폐를 끼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그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가죽을 쓸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묵고 있던 룸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에야 휴대전화를 꺼내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노동명이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주무세요?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
수십 년이 지난 탓으로 법률조차도 이은화의 사형을 선고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윤미는 적어도 그녀가 큰이모의 후손에게 주인 자리를 돌려줄 수 있었다.그녀는 이씨 가문을 떠나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 생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이런 원한과 복수에 관한 일을 멀리하고 싶었고 그녀의 소소한 삶을 더 좋아했다.이은화가 옛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이윤미는 이은화가 그 해에 정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믿었다.단지 가주 자리의 권력을 탐내는 것뿐만이 아닌 사랑 때문에 벌인 짓일 수도 있다.이은화는 지금 70세이고 정군호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아들딸도 네 명이나 낳았다.하지만 이은화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능력이 뛰어난 남자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은숙의 특별 비서일 것이다.“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 행동으로 제가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게요.”하예진은 한참 동안 이윤미를 바라보며 웃었다.“윤미 씨의 진지한 얼굴은 정말 멋있고 아름다워요. 당신 엄마가 보신다면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지만요. 이씨 가문의 상황은 어때요? 윤미 씨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다가 이 대표님께 붙잡혔다고 들었는데. 요 며칠 동안 윤미 씨 아버지는 모습조차 내놓지 않는다면서요.”하예진은 이은화와 정군호의 일을 알고 있었다.강성에서 이 불륜 사건은 빅뉴스였다.평소에 정군호랑 같이 다니던 늙은 남자들은 대부분 정군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이은화가 정군호를 너무 엄하게 관리하여 그에게 자유로울 틈도 주지 않고 용돈도 적게 준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사이좋은 부부 사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일에 얽매이게 되면 감정이 깨지기도 한다.여자들은 대부분 이은화의 편을 들었다. 이은화가 남편을 관리하는 것이 좀 엄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군호가 만약 이은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 이은화에게 이혼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정군호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우리 엄마가 예진 씨가 오신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는데. 조심하세요. 아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제가 모르는 일은 할 수 없지만요.”하예진은 웃음을 거두며 한참 동안 이윤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윤미 씨, 우리 만난 적 있잖아요. 저도 윤미 씨가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대표님 결국 윤미 씨와 피가 섞인 모녀지간인데, 저는 윤미 씨가 이 대표님과 맞서지 못한다고 생각해요.”이윤미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글쎄요. 우리 두 사람은 모녀 맞아요. 저를 저의 어머니와 같은 편에 서지 말라고 하면 제가 분명 스트레스도 받고 또 엄청나게 큰 용기도 필요하겠죠. 예진 씨가 저를 경계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예진 씨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마음이 너무 독하세요. 해본 말이 아니에요. 예진 씨가 여전히 저를 경계하면 저도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게 되면 저를 찾아오셔도 돼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까.”“사실 저와 엄마는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엄마의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또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스무 살이 넘었거든요. 윤정이가 아직 이씨 가문에 남겨졌고 여전히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제가 저의 엄마와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다고 해도 우리 두 사람이 친 모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아요.”“만약 당신들이 없다면 제 생각에는 제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짊어지고 리더가 되어 우리 가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을 거예요.”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규정을 수정하고 싶었다.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비록 대가가 좀 클 수도 있지만, 이씨 가문을 더 멀리,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정하고 싶었다.이윤미는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은 제 다른 전화번호에요. 아는 사람이 적으니 무슨
“그럼 안전에 유의하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저에게 전화하세요.”방윤림이 이윤미에게 당부했다.이윤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항상 방 비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암살을 당하더라도 이윤미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을 갖추었다.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하고 일찍이 양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죽었을 것이다.방윤림과의 통화를 마친 이윤미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하예진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하예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누군가의 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창문을 조금 눌렀고 이윤미가 하예진의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선글라스를 먼저 벗은 이윤미는 얼굴의 가죽을 벗어 던져 본모습을 드러냈고 차에서 내려 하예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하예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어떻게 저인 것을 알았어요? 두렵지 않아요?”“지금 이 시각에, 또 이렇게 외진 곳에 주변에 주택도 없는데 겁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 밤에 이런 곳으로 오지 못할걸요. 그리고 저기에 묘지도 있는데 이런 곳에 예진 씨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윤미가 온 후에야 약속 장소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하예진도 한참 후에야 차를 세울 곳을 찾아 이윤미가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그녀들이 주차한 곳은 방윤림이 그녀들에게 준 주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묘지에서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어요. 만약 제가 알았더라면 아마 혼자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귀신이 무서워서요.”이윤미도 웃었다.“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사람이 더 무섭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예진 씨 분장 기술도 꽤 좋네요. 제가 제 부하들을 하루 호텔 입구에 보내 예진 씨를 기다리게 했거든요. 여기로 오시는 길에 예진 씨를 몰래 보호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진 씨가 나오는 것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곧 하예진은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왔다.하예진은 방윤림이 그녀에게 준 그 주소대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몰았다.노동명이 전화했다.하예진은 차의 속도를 늦춘 다음 노동명의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저 지금 나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해요. 지금 운전 중이니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알았어. 운전 조심하고.”“네.”하예진은 하예정과 달리 천천히 차를 몰았다.다행히 하예정이 시내에 살고 있어서 차를 빨리 몰지 못했다. 만약 차가 적은 외진 곳으로 가게 되면 하예정은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처럼 매우 빨리 몰 것이다. 전태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지, 그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 하예정이 운전대조차 잡지 못하게 할 것이다.차를 몰고 있는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동명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하예진이 변장하고 남몰래 혼자 차를 몰고 이윤미를 만나러 간 것을 알면 노동명은 아마도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있어서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방윤림이 준 그 주소는 가까운 곳이 아닌 꽤 외진 곳에 있었기에 내비게이션에는 차로 한 시간 이상 가야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하예진이 차를 몰고 호텔을 나서자 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물었다.“예진 씨 나오는 거 봤어요?”방윤림이 대답했다.“제가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쪽지를 보냈으니 바로 떠날 겁니다. 하예진 씨가 방금 관성에서 왔기 때문에 낯선 곳이고 차량도 없으니 택시를 탈 것 같습니다. 아가씨도 출발하시면 됩니다. 하예진 씨가 곧 약속 장소로 갈 겁니다.”방윤림은 하예진을 만난 적 있었는데 하예진이 대담하고 세심하다고 추측했다. 하예진이 강성으로 온 목적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방윤림은 하예진이 이씨 가문 때문에 강성으로 왔으니, 이윤미가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만나러 갈 것으로 생각했다.“사람을 시켜 예진 씨를 은밀히 보호하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