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오늘 퇴원하신다고 해서 꽃다발을 주려고 가져왔죠. 다들 저와 같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죠. 물건은 다 챙겼어요?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 없으면 제가 언니를 도와 꽃다발을 안아 줄게요.”하예정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유청하가 퇴원하는 날은 그야말로 성대했다.전태윤 부부는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품에 꽃다발을 안고 걸었다. 두 사람은 걷다가도 서로를 마주 보면서 달콤함과 행복함을 만끽했다.그들은 입원 병동에서 나와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주차장은 진찰실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전태윤 일행은 자연스럽게 진찰실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전태윤 부부는 여운별과 마주쳤다.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전태윤 부부는 여운별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운별이 감옥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기 때문에 하예정은 여운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그런데 전태윤 부부가 지나갈 때 여운별은 하예정의 말소리를 듣고 갑자기 멈추어 고개를 돌리며 하예정을 바라보았다.원수끼리 만나면 눈에 핏발이 선다고 여운별은 바로 달려들어 단칼에 하예정을 찔러 죽이고 싶어 했다.그녀는 발을 몇 걸음 옮겼다가 또다시 멈추었다.그대로 돌진하면 안 되었다.여운별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칼은 물론 몸에 펜도 없었다. 게다가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법이다. 여운별은 자유를 잃은 적 있기에 지금 밖에서 마음대로 다니는 자유를 무척 소중히 여겼다.복수를 위해 다시 미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여운별은 하예정의 뒷모습을 한사코 주시했다. 하예정은 전태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올랐고 곧 전태윤이 차에 올라탄 뒤로 그들의 차는 멀리 떠나갔다.“하예정!”여운별은 이를 갈며 말을 내뱉었다.“언젠가 내가 널 무너뜨리고 말 거야!”그녀는 하예정이 떠난 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따라서 그녀의 등 뒤에 난 상처도 더 아파 났다.여운별은 아침에 여씨 가문으로 달려갔다가 여천우가 돈을 가지러 위층으로 올라간 틈을
전이진은 흉악한 표정으로 여운별을 향해 꺼지라고 소리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모든 물건을 그녀를 향해 뿌렸다.겁에 질린 여운별의 얼굴은 바로 창백해졌고 본능적으로 일어나 빨리 도망쳤다.여운별이 그렇게 빨리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이진이 던진 접시에 등을 몇 번이나 맞았다.무척 아팠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뛰쳐나와 멀리 도망친 후에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감히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차를 몰고 셋집으로 돌아갔다.원래는 아무 약이나 바르고 견뎌내려 했지만, 등이 너무 아프다고 느낀 여운별은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달려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병원에서 줄을 서면서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야 여운별은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전태윤 부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비록 전태윤 부부는 경호원 팀을 데리고 오지 않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하예정의 목소리를 들은 여운별은 그 목소리가 곧 하예정의 목소리임을 눈치챘다. 여운별은 하예정의 목소리가 이가 갈릴 정도로 듣기 싫었고 또 기억에 남았다.“하예정! 여운초! 기다려! 내가 받은 고통을 모두 두 배로 돌려줄 거니까!”여운별은 하예정이 임신했다고 들었다.전씨 가문은 대외적으로 임신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릴 때 하예정이 감히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더니 사람들은 하예정이 임신했음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여운별은 하예정이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여운별은 질투로 인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감옥에서 나온 여운별은 두 고모에게서 하예정이 결혼 후 오랫동안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모두가 하예정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뒷말까지 했다.하지만 지금 하예정이 임신했다. 하예정은 어렵게 품은 아이가 정말 소중할 것이다. 이때 그녀를 유산시키게 한다면 정말 속이 다 시원할 것이다.그리고 여운초가 아이를 평생 낳지 못하게 한다면 전이진이 여운초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과
청소부 아줌마는 종이쪽지를 여운별이 탄 차 안에 던진 뒤 가버렸다. 원래는 여운별에게 누군가가 병원 부근의 빵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여운별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그것도 아주 험한 욕설이었기에 빗자루로 차 안에 있는 여운별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전해주라고 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여운별은 청소부 아줌마가 차 안으로 쓰레기를 던진 거로 생각하고 종이쪽지를 주워들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문득 쪽지에 글이 쓰여 있음을 발견했다.[빵집에서 만납시다. 정현숙]그제야 여운별은 방금 청소부 아줌마는 종이쪽지를 전해주려고 차 문을 두드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그녀는 차에서 내려 청소부 아줌마를 쫓아가 묻고 싶었지만, 상대방은 이미 멀리 가버렸다. 게다가 방금 그녀는 그 사람한테 악담까지 퍼부었는데 따라잡았다고 한들, 그 사람은 여운별을 상대하기조차 싫어할 것이었다.여운별은 하는 수 없이 차를 운전하여 병원을 떠났다.그녀는 정현숙이 청소부 아줌마를 시켜서 쪽지를 전하라고 했으니 분명히 이 부근에 있을 테니, 자기가 부근에 있는 빵집을 훑어보면 정현숙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복수를 위해, 그리고 또 자금위기의 곤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여운별은 반드시 정현숙을 찾아내야만 했다.그래도 총기가 좀 있는 편인 여운별은 병원 부근에 있는 한 빵집에서 빵을 사 들고 나오는 정현숙을 발견했다.여운별이 차에서 내리자, 정현숙은 그녀를 스쳐 지나가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금 감시당하고 있으니 꼬리를 떼고 난 뒤 다시 연락할게요.”그리고는 차에 올라 기사더러 운전하라고 분부했다.여운별은 감히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빵집에 들어가서 아무렇게나 빵을 둬가지 샀다.이쪽에 있는 전태윤은 문자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접수했다.문자와 사진을 확인한 뒤, 그는 핸드폰을 하예정에게 넘겨주었다. 핸드폰을 받아서 내용을 읽은 그녀는 전태윤을 바라보았다.전태윤은 아무
정현숙의 목적은 하예정을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기 때문에 하예정이 살아있는 한, 전씨 가문이 곧 두 자매의 뒷심이 되어 성씨 가문과 손을 잡고 이씨 가문과 맞설 것이었다.정현숙은 자매를 죽여 가족을 희생시켜서야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에 올라 몇십 년을 보내왔다. 근데 지금에 와서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큰언니의 후대에 물려준다는 것은 도저히 안 될 일이었다.애초에 그녀는 친자매도 죽일 수 있었다지금 조카, 조카손녀를 죽인다는 것은 그녀에 대해 말하면 개미를 비벼 죽이는 것과 다름없이 아무런 고통, 잠시의 주저함도 없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장기적으로 관성에 눌려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녀가 관성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계속 그녀를 물고 놓지 않았다.그리고 그녀는 관성에서 아무런 힘도 없으므로 뭘 좀 하려고 해도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자기가 강성에 있는 소굴로 돌아가서 천천히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자기한테 충성을 다하는 경호원을 관성에 남겨서 여운별을 사람을 죽이는 비수로 만들게 하여 적당한 시기를 찾아서 하예정한테 칼을 박을 타산이었다.“사모님, 알겠습니다. 제가 꼭 사모님의 분부대로 움직이겠습니다.”정현숙은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어서 경호원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이건 여운별의 연락처야. 네 핸드폰에 잘 저장해둬. 하지만 그 여자한테 연락할 때는 네 전화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전태윤한테 들킬 수 있으니깐.”“밖에 있는 공중전화로 그 여자와 연락하면 되겠네.”“알겠습니다.”경호원에게 지시를 마친 정현숙은 한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야 말했다.“딴 일은 없으니 나가 봐.”경호원은 묵례한 후 공손히 물러갔다.정현숙은 혼자 방에서 조용하게 앉았다가 떠났다.그녀는 관성 호텔에 돌아가서 체크아웃 절차를 마친 뒤, 여러 명의 경호원의 호송하에 캐리어를 끌고 호텔 문을 나섰다.진작 불러온 차량이 호텔 정문에서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몇 분 뒤, 정현숙을
이에 하예정은 웃으면서 성소현을 놀려줬다.“애가 그렇게 이쁘면 언니와 형부도 얼른 하나 낳아요.”성소현은 조카의 볼에 뽀뽀하고 나서 말했다.“나와 준하 씨는 결혼 후 서둘러서 애부터 낳을 예정이야. 애를 낳는 인생의 큰 임무를 완성한 뒤, 우리는 사업에 전념할 거야.”“난 또 두 사람이 결혼 첫 2년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 할 줄 알았는데요.”유청하가 말했다.“나도 처음에는 결혼한 첫 2년 동안은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와 준하 씨도 이젠 어리지 않잖아요. 내년에 결혼해서 이내 서둘러서 애를 만든다고 해도 낳고 나면 제 나이가 서른이에요.”성소현은 하예정보다 한 살 위였다.“나도 옛날에는 애를 싫어했어요. 하지만 우빈이를 본 그 시각부터 애를 좋아하게 됐어요. 지금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내 조카 같은 아기는 얼마나 키우기 쉬운데요. 배불리 먹고는 자고, 자고 일어나면 먹고. 별로 울지도 않아요. 새언니, 이렇게 키우기 쉬운 아기는 몇을 더 낳아도 아무 문제도 없을걸요. 우리 집에서는 얼마든지 키울 수 있어요.”하예정이 웃으면서 말했다.“새언니는 아직 산후조리 기간도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둘째, 셋째를 가지라는 말을 해요? 이 말을 큰오빠가 들으면 또 언니를 한바탕 욕할 것이 뻔해요.”임신 기간에 입덧을 심하게 하는 유청하를 보는 성기현은 가슴이 아파서 애를 지우라고 권했었다.두 사람도 애 하나만 갖기로 약속했었다.그 말에 성소현은 얼른 고개를 방문 입구 쪽으로 돌려 큰오빠가 있나 없나 확인한 뒤 웃으면서 말했다.“나도 그냥 신이 난 김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에요. 새언니는 가슴에 두지 말고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그녀도 심한 입덧으로 무척 고생한 유청하를 가슴 아파했다.“하나만 낳으면 돼요. 둘째 오빠가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난 조카와 조카딸이 다 있게 되네요.”“입덧으로 고생할 때는 딱 하나만 낳겠다고 다짐했는데, 다 낳고 나서 귀여운 아기를 보니 먹는 것만 기억
결혼 휴가가 끝나려면 아직 며칠 더 남았다.“언니, 무슨 일 있어?”“오늘 나와 동명 씨는 다 바빠서 우빈이 데리러 갈 시간이 없어. 너와 제부 씨가 어린이집에 가서 우빈이를 좀 데리고 나와서 주형인한테 데려다줄래? 주형인이 우빈이를 만나고 싶다고 해.”주형인은 앞으로 다시는 하예진 앞에 나지 않거니와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그는 말한 대로 했다.주형인이 애를 만나고 싶다고 할 때마다 하예진은 우빈이를 태워서 옛날에 그녀와 주형인이 함께 살던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가서 마중 나온 우빈이 할머니에게 맡긴 후 직접 돌아오곤 했다. 우빈이가 집에 돌아오려고 하면 주씨 집안 식구가 우빈이를 하루 레스토랑까지 데려다줬다.“알았어. 이따가 나와 태윤 씨가 우빈이 데리러 갈게. 우빈이가 그 집에 남아서 밥 먹어?” “우빈이한테 물어봐, 애가 거기에 남아서 밥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러라고 해. 마침 내일이 토요일이니 거기에서 잠자고 오라고 해도 돼. 너와 제부 씨는 거기에서 기다릴 필요 없어.”“알았어, 언니는 걱정하지 말고 볼일 봐. 내가 우빈이 데리러 갈 테니.”하예정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하예정은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하예진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언니는 지금 엄청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예진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어?”성소현은 걱정돼서 물었다.“언니가 너무 바빠서 우빈이 데리러 갈 시간이 없다고 나와 태윤 씨더러 어린이집에 가서 우빈이 데려오라고 하네요. 주씨 식구가 우빈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애를 데리고 와서 주씨 저택까지 데려다주라고 해요. 내일이 토요일이니 애가 거기에 남아서 자고 싶으면 자도 된다고 해요.”성소현이 미심쩍은 어투로 물었다.“주씨 집안 식구들 정말 조용해졌어?”“네, 조용해요. 주형인이 말한 대로 하네요. 우빈이를 만나는 걸 빼고는 그 집 사람들은 더는 언니를 귀찮게 하지 않았어요. 그 집 사람들이 진작 이렇게 나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정현숙이 얼마 전에 관성을 떠났어.”전태윤은 운전하면서 말했다.“하지만 그 사람이 데리고 온 경호원 중 한 사람이 바뀐 거 같아.”“한 사람 바뀌었다고요? 내 기억 속에 그 사람은 여러 명의 경호원을 달고 온 거 같은데요.”“맞아, 그 사람이 여러 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왔는데, 강성에 돌아갈 때는 경호원의 인수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중 한 사람은 낯선 얼굴이었어. 한 사람을 잘랐든지, 아니면 관성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일부러 남겼을 수도 있어.”전태윤이 사람을 붙여서 정현숙을 감시하니 정현숙도 당연히 사람을 남겨서 그들을 감시할 것이었다.하예정은 남편의 옆얼굴을 지켜보았다.전태윤도 그녀를 흘끔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앞을 보면서 운전했다. 아내를 태운 차를 운전할 시에 그는 한눈도 감히 팔지 못했다.“여보, 자기 눈썰미는 진짜 장난이 아니네요.”하예정이 계속해서 남편을 칭찬했다.“당신이 정현숙을 몇 번 봤다고, 그 여자가 달고 다니는 경호원의 얼굴까지 다 기억해요?”그녀는 정현숙의 얼굴과 달고 다니는 경호원이 몇 명인가만 기억했을 뿐, 그 경호원들의 얼굴이 어떻게 생긴 것까지는 정말 기억하지 못했다.“난 그냥 기억력이 뛰어날 뿐이야.”“나도 기억력이 좋아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당신 임신했잖아. 다들 임신 한번 하면 뒤 3년은 머리가 둔해진다고 하지 않았어? 당신 지금 기억력이 무조건 나보다 못해.”“나는 하나도 둔하지 않거든요. 그럼 우리 앞으로 정현숙을 계속 감시해도 되나요? 그 사람이 진짜 경호원을 바꾸기까지 하면서 관성에 남겨뒀다는 것은 이미 무슨 기미를 알아채고 우리가 무슨 단서라도 찾아낼까 봐 두려워하는 거 같은데요.”“우리 외할머니도 십중팔구 그 사람이 해쳤어요. 그 자리에 오르려고 친형제마저 깡그리 해쳤어요.”하예정은 자신과 언니가 십여 년 동안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데 언니에 대한 감정이 엄마에 대한 감정과 같을 정도로 깊었기에 자신더러 언니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강성.비행기가 땅에 무사히 착륙했다.이은화는 휴대전화를 꺼내 비행 모드를 껐다.곧이어 이은화의 휴대전화에 낯선 메시지가 도착했다.[당신 남편이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침대에서는 꽤 대단하더군요. 당신은 군호 씨를 더 만족시킬 수 있기나 하겠어요?]그 메시지를 본 이은화의 얼굴은 새까맣게 변했다.이은화는 그 나이에 진작 잠자리에 관한 일을 중히 여기지 않았다.이은화는 바빠서 매일 돌아오면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남편과 그런 일에 대해 논의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이은화는 정군호와 스킨십하지 않은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정군호가 나이가 들었지만, 마음이 늙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용돈이 적지만, 집에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방 아주머니와 한마디만 하면 이내 먹을 수 있었다.하여 보양식을 그렇게 많이 먹은 덕에 신체가 매우 좋았다.젊었을 적 정군호가 바람을 피우려고 했을 때 그는 이은화에게 호되게 혼난 뒤로 겉으로만 얌전한 척했다. 적어도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군호의 몸은 정말 바람을 피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은 이은화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은화는그녀가 관성에 간 지 보름밖에 안 됐는데 정군호의 정신과 몸이 모두 바람을 피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은화는 그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집사가 전화를 받았다.이은화가 물었다.“군호 씨는 집에 안 계셔?”“안 계세요. 왜 어르신께 직접 전화해보지 않으셨어요?”이은화가 관성에 가서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가한 뒤로 보름이란 시간이 지났다.정군호는 이은화가 떠난 지 세 번째 날부터 저녁마다 늦게 들어왔고 매일 외출하기 전에 더욱 젊고 멋지게 꾸미곤 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집사는 이런 것들을 유심히 보더니 정군호에게 말을 빙빙 돌리며 이은화에게 절대로 미안한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정군호는 친구들과 모임만 할
여운초는 여천우의 몫을 탐내지 않았다.여운초가 쥐고 있는 것은 여씨 가문의 대동맥이다.“우리 어머니도 나에게 말했어. 신경 쓰지 마. 그 여자가 너를 욕하면 입을 틀어막고 쫓아내.”전이진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 그는 여천우를 제외한 여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 전부 증오했다.그가 사랑하는 아내의 친척들은 하예정 고향의 “일품” 친척들과 한판 붙어도 될 만큼 형편없는 사람들이다.하예정 고향의 친척들이 하예정에게 화해를 하고 싶어도 이제 기회가 없다. 그녀는 진작부터 그 친척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매달 받아온 집세 돈만 하 영감에게 생활비로 주었다.아주 가끔은 소비 돈을 조금 주겠지만 말이다.하 영감과 화해한 것도 어쩌면 하예정이 그녀의 아버지께 효도를 다 한 것일 수도 있다.그러나 여운초는 그녀의 친척들과 화해할 수 없다.여운초는 웃으며 여의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운별은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이야. 자기 엄마를 찾아가 돈을 요구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두 고모가 운별이를 부추겨서 한 짓일 거야. 돈을 가지게 되면 별문제 없겠지만 돈을 못 가지게 되면 또 내 명성을 손상할 게 뻔해. 명성이 좋든 나쁘든 뭐가 상관있겠어? 내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텐데.”여운초는 수많은 괴롭힘을 당했고 몇 번이고 죽을뻔했기에 진작 명성의 좋고 나쁨에 여의치 않았다.전이진은 여운초와 결혼할 때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전이진이 그녀의 과거를 싫어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었다. 만약 전이진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운초도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대표님들에게 전화를 몇 통 걸었어. 사촌 오빠들은 내일부터 출근할 필요도 없이 쉴 수 있어서 좋을걸. 그리고 두 고모의 청소부 일도 취소했어. 앞으로 나가서 쓰레기통이나 뚜지면서 살아야 할 거야.”여운초는 두 고모가 청소부로 일하는 외 나가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돈을 벌어 삶에 보태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전이진도 말을 이었다.“나도 전화할게.
전이진은 차 문을 열고 여운초를 부축해 태웠다.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지만 먼 거리를 또렷하게 보지는 못했기에 전이진은 여전히 그녀를 세심하게 배려하며 돌보고 있었다.그녀가 외출할 때는 항상 경호원들이 동행했으며 전이진이 여운초 곁에 있을 때만 경호원들이 잠시 쉴 수 있었다.이전의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전이진은 여전히 아찔했다.그때 큰형수님이 그녀를 우연히 발견해 구해주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 사건 이후 전이진은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며 그들의 사업을 모두 망하게 만들었다.그들은 파산했고 빚을 지게 되어 고급 차와 주택을 팔아 빚을 갚아야 했다.현재 두 집안은 셋방에서 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고 한때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던 그들에게 이는 엄청난 추락이었다.여운초는 남편에게 말했다.“맞아. 아버님과 어머님은 정말 잘해주셔. 집안 모든 분들이 나를 특별히 아껴주시는 것 같아. 작은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어머니, 큰어머니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야. 그분들 덕분에 가족의 온기와 부모님의 사랑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었어.”전씨 가문의 따뜻한 배려는 여운초가 과거에 겪었던 차가운 가정과는 완전히 달랐다.친부모 중에서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 준 사람은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뿐이었다.친어머니는 여운초에게 모성애를 주기는커녕 여운별과 여천우만을 자식으로 여기고 여운초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더구나 친어머니는 딸을 해치려는 끔찍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그 결과 여운초는 목숨을 건졌지만 여전히 매일 약을 복용하며 눈과 몸을 치료해야 했다.세상에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불임으로 만들려 할까? 하지만 여운초의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전이진은 몸을 숙여 그녀의 안전벨트를 채워주며 얼굴에 입 맞추고 웃었다.“당신은 우리가 평생 아껴줄 공주님이니까.”전이진의 가족들 역시 여운초의 과거를 알게 된 후 그녀를 몹시 안타까워
여운초는 지금이라도 전화 한 통이면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사람들을 관성에서 일자리도 찾지 못하게 하고 쫓아낼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여운별 역시 그들에게 부추김을 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깨닫고 자립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여운별 같은 사람은 사회의 혹독한 경험을 통해서만 성숙해질 수 있고 옳고 그름을 깨달을 수 있었다.물론, 여운초는 동생이 변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여운별의 가치관은 어머니의 과잉보호 아래 잘못 형성되었고 이를 고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동생이 얌전히만 있다면 여운초는 그녀를 완전히 내치려 하지 않았다.다만, 여운별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킨다면 여운초도 더 이상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다.원래 두 사람 사이에는 자매애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그저 남동생 여천우가 둘째 누나인 여운별에게 의리를 지키는 편이라 여운초가 동생을 어느 정도 봐주고 있었을 뿐이었다.하지만 여운별이 자신의 인내심을 끝내 소진한다면 그때는 여천우가 그녀를 위해 좋은 소리를 한다 해도 더 이상 봐줄 수는 없을 것이다.명해은이 단호히 말했다.“그럼 그렇게 해. 혹시라도 엄마가 나서야 한다면 언제든 말해. 우리는 이미 한 가족이잖니. 내 며느리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누가 감히 내 며느리를 괴롭히면, 내가 그들에게 후회라는 단어가 뭔지 똑똑히 알려줄 것이야.”여운초는 시어머니의 말에 감동했다.“어머님 같은 좋은 시어머니가 있는데 누가 감히 저를 괴롭히겠어요? 다들 저한테 아첨하느라 바쁠 텐데요.”명해은은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다른 사람들의 아첨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그냥 우리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그러면서 화제를 바꾸며 명해은이 말했다.“운초야, 오늘 일 마치고 빨리 들어오려무나. 내가 주방에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더 준비하라고 할게.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네, 그렇게 할게요.”명해은은 따뜻한 말투로 덧붙였다.“그럼 일 봐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그리고 전화를 끊었다.여운초
명해은이 말했다.“돈을 주지 않았어. 사돈아가씨가 일부러 와서 소란을 피우며 네 명성을 망치려는 걸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내가 밖으로 나가서 만났어.”“한 번 돈을 주면 이제 돈이 없을 때마다 와서 또 달라고 할 게 뻔하잖니. 그래서 돈을 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어.”명해은은 그런 일에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네 동생이 너를 욕하는 말이 너무 심해서 두어 마디 듣고는 사람을 시켜 그녀의 입을 막고 끌어내 버렸어. 다시는 별장 입구에서 떠들지 못하게 말이야.”“그래도 네 동생이니 너희 관계가 어떻든 간에, 사돈아가씨가 집까지 와서 돈을 요구한 건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야.”“운초야, 난 단지 네게 알려주려는 거지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니 마음에 두지 마라. 그 모녀가 예전에 너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내가 개를 풀어 그녀를 물게 하지 않은 것도 체면을 봐준 거야.”명해은은 며느리가 자신이 화가 난 걸로 오해할까 봐 급히 설명했다.그녀는 여운별이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며 자기 며느리의 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운별이 별장 입구까지 와서 돈을 요구하고 여운초를 욕한 데에 화가 났지만 며느리가 이 일을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전한 것이다.여운초는 부드럽게 대답했다.“어머님, 알아요. 저도 어머님을 탓하지 않아요. 그리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게요. 동생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죠.”“동생에게 돈을 주지 않은 건 정말 잘하신 거예요. 한 번 돈을 주면 걔는 우리를 착취하려 들 거예요. 성인이 돼서 손발이 멀쩡한 데 돈이 필요하면 자기가 벌어야죠. 다음에 또 찾아오면,어머님이 기르시는 강아지를 풀어서 그녀를 겁주시면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여운초는 동생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여운별이 찾아올 때마다 여운초는 집사에게 맹견을 풀게 했고 그러면 여운별은 토끼처럼 빠르게 도망쳤다.여운별은 어머니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 독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겉으로는 부드럽고 온화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인한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의 겉모습은 온화하고 사람을 속일 만큼 평온해 보였지만 속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운초야, 퇴근했어? 바쁘지는 않니? 힘들지 않아?”“오후에 꽃집에서 새로 들어온 꽃가지 손질을 했어요. 바쁘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았어요.”여운초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머님, 혹시 또 몸에 좋은 음식 하시고 저를 부르신 거 아니에요?”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과거에 겪었던 고생을 안타까워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그녀의 건강을 챙겨주곤 했다.그리고 매번 며느리를 볼 때마다 친정이 며느리에게 얼마나 냉정하고 잔인했는지에 대해 분개하곤 했다.“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식이라도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낳은 자식인데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대할 수 있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이야.”명해은은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내게도 딸이 있었다면 금지옥엽으로 아끼고 사랑했을 텐데.”하지만 여씨 가문은 좋은 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오히려 학대와 냉대 끝에 여운초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다행히 정겨울 의사의 도움으로 그녀의 시력이 회복될 수 있었다.만약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빛을 완전히 잃었다면 정말 아쉬웠을 것이다.“엄마가 맛있는 거 해놨어. 너랑 이진이가 시간이 있으면 집에 와서 먹고 가렴. 오늘 밤 자고 내일 아침에 시내로 돌아가도 괜찮잖니.”명해은은 웃으며 말했다.“온다면 엄마가 너 좋아하는 요리를 더 준비하라고 부엌에 얘기할게.”“좋아요.”여운초는 시어머니가 직접 전화를 한 만큼 그녀의 체면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부부가 한번 들르면 될 일이었다.시내에서 별장까지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라 다음 날 아침에 아침 식사를 하고 돌아가도 충분했다.전이진은 회사에서 자유롭게 일했기에 오전에 출근하지 않아도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여운초는 더 말할 필요 없었다.현
“예정 씨, 정말 부러워요. 결혼하신 지 오래되어도 아주버님과 여전히 사이가 너무 좋아 보이네요.”현재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눈앞의 물건을 조금씩 볼 수 있게 되었고 하예정을 위해 장미 꽃다발을 직접 고르고 포장해 주고 있었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도련님 부부도 사이가 좋잖아요. 우리를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그리고 덧붙였다.“나는 태윤 씨랑 결혼한 지 오래된 것 같지 않아요. 마치 방금 혼인신고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여운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니죠. 아직 몇십 년이 된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두 분은 몇십 년이 지나도 첫사랑처럼 변하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포장을 마친 꽃다발을 하예정에게 건넸고 하예정은 꽃값을 결제했다.여운초는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예정은 꽃다발이 전태윤에게 줄 선물이라며 돈을 받지 않으면 마치 여운초가 선물한 것처럼 느껴질 거라고 말했다.결국 여운초는 할 수 없이 돈을 받았다.“운초 씨, 나 이제 회사에 가야 해요. 주말에 도련님이랑 같이 집에 와서 식사하세요. 내가 맛있는 걸 해줄게요.”하예정은 꽃다발을 안고 가게를 나서며 여운초를 주말 식사에 초대했다.여운초는 그녀의 배를 힐끗 보며 웃었다.“어떻게 형님을 주방에 들여보내겠어요? 기름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지 않아요?”하예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혀 그런 거 없어요. 오히려 기름 냄새가 좋은걸요. 이상하죠? 아마도 배 속에 있는 이 작은 녀석도 먹는 걸 좋아하나 봐요.”그녀는 문을 나서며 덧붙였다.“임신 중에는 입맛도 달라질 수 있대요.”여운초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아직 그걸 체험하지 못해서 엄마가 되는 기분이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사실 여운초는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단기간에 임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매일 약을 복용하며 치료 중이었다.하예정은 잠시 멈춰 서서 손을 내밀어 여운초의 손을 잡았다.“정겨울 선생님도 2~3년 후엔 임신할 수 있
여운별의 두 눈이 반짝였다.새로운 얼굴과 신분으로 하예정에게 접근하려는 동안 항상 불안했고 정체가 드러날까 걱정스러웠다.다시 자신의 신분으로 돌아가 여운초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일부러 모습을 드러낼 생각에 웃음이 지어졌다.그래야 사람들이 그녀가 여전히 관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날 테니까.“큰고모, 그 방법 괜찮네요. 지금 바로 서원 리조트에 가서 사돈어른들한테 생활비 좀 받아 와야겠어요.”여미란은 그녀를 재촉하며 말했다.“그럼 빨리 갔다 와라. 돈을 많이 받아와서 나랑 네 작은고모도 좀 도와줘. 우린 지금 정말 가난해 죽을 지경이야. 그리고 사돈어른께 일자리 하나 마련해달라고도 해봐. 사돈어른이 너한테 일자리 하나 만들어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하지만 여운별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손을 벌리면 누군가가 다 해주고 돈이 넘쳐나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용 사장은 그녀에게 몇억의 용돈을 보내줬지만 그녀는 명품을 사는 핑계로 경호원을 통해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용 사장은 돈이 많았고,보통 그녀의 요구를 들어줬다.여운별은 용 사장의 진짜 정체를 몰랐지만 그가 돈을 잘 쓰고 용씨 가문이 매우 부유하다는 이야기를 경호원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그녀는 이미 그의 첩이었기에 오로지 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여운별의 표정을 보고 여미란은 그녀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자 한마디 거들었다.“네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사돈어른께 네 사촌 형제들을 전씨 가문 자회사에 넣어달라고 해봐. 사촌들이 좋은 직장을 얻고 안정된 수입을 가지면 너를 도울 수 있을 거 아니니.”여운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큰고모,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사돈어른이 그렇게 쉽게 설득될 것 같나요? 저한테 돈을 조금이라도 주면 다행이죠.”“사촌들 일자리까지 마련해 달라니, 물론 그분은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죠. 하지만 그분이 우리 말을 들어줄 가능성은 없어요.”비록 여운별
여미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과 싸우는 건 괜찮지만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지는 말아야 해. 네가 또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나왔을 때는 여씨 가문의 재산이 전부 그 애들 손에 넘어갈 거야. 그땐 네가 아무리 싸워도 소용없어.”여운초는 친척들에게 호감이 없었고 고모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반면 여천우는 고모들이 가장 아끼는 조카였다.여천우만이 친정을 지탱할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친정이 강해질수록 고모들은 시댁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하지만 여천우는 여운초와 한마음이었다.현재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몰락해 가진 돈이 없었다.두 집안은 여운별이 여운초와 싸워 재산의 일부를 가져오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녀를 통해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여운별은 나이가 어려 패기가 넘쳤고 부모의 지나친 사랑 속에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그녀는 속이기 쉬운 사람이었다.그러나 한편으로 여미란은 여운별이 또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그녀가 감옥에 다시 들어가면 두 집안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큰고모, 이 쓰레기들 빨리 치워요. 너무 냄새나요.”여운별이 쓰레기를 가리키며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지금 바로 전화해서 수거하러 오라고 할게.”여미란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폐품 수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종이 상자와 빈 병을 늘 같은 사람에게 팔았기에 연락처를 저장해 두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후, 여미란이 웃으며 물었다.“운별아, 네 손에 여유가 좀 있니? 큰고모는 아직 월급을 못 받아서 식구들 반찬 살 돈도 없네. 혹시 좀 도와줄 수 있어?”여운별은 대꾸했다.“여천우 그 녀석이 한 달에 겨우 100만 원만 주겠다고 했어요. 부모님은 200만 원을 주라고 했는데도요. 저도 돈이 부족해서 큰고모를 도울 수 없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지갑을 열어 현금을 꺼내 큰고모에게 건넸다.“지금은 이것밖에 없어요. 부족하면 알아서 해결하세요. 저도 아직 일을 못
여운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두 시간 후.자신의 원래 신분으로 돌아간 여운별은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 겨우 그녀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니, 정확히는 안쪽에서 누군가가 문을 연 것이었다.여운별의 첫 반응은 도둑이 들었다는 생각이었다.‘젠장, 나 같은 가난뱅이 집에 도둑이 들다니.’그러나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이 그녀의 큰고모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소리쳤다.“큰고모, 어떻게 제 집 열쇠를 가지고 계셨어요?”여운별은 자신이 고모들에게 집 열쇠를 준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여미란은 놀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운별아, 깜짝 놀랐잖니. 소리도 안 내고. 네가 집을 새로 빌렸을 때 나한테 청소 좀 해달라고 열쇠를 준 적 있잖아. 그때 돌려주는 걸 깜빡했단다.”여미란이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너 요즘 어디 갔었니?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오더라. 우리 집은 사람도 많고 비좁아서 여기에 와서 지내려 했어. 안 그랬으면 네가 집에 없었다는 걸 몰랐을 거야.”그녀는 태연히 문을 열어 여운별을 집 안으로 들이며 마치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행동했다.여운별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온 집안을 훑어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집안 곳곳에 종이 상자, 빈 병, 고철이 쌓여 있었다. 불쾌한 표정으로 여운별이 말했다.“큰고모, 이게 다 뭐예요? 왜 제 집에 이런 쓰레기를 쌓아두신 거죠? 이거 당장 치우세요! 제가 며칠 집에 없었다고 해서 이 집이 고모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여긴 제가 월세를 내고 있는 제 집이에요.”여미란은 여운별의 불만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운별아,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단다. 네 부모님이 재산을 전부 천우한테 넘긴다고 하니 네가 다시 네 몫을 찾기는 힘들 것 같고, 너도 힘들게 사는데 큰고모를 무슨 수로 도와주겠니? 그런데 나도 먹고 살아야 하잖니.”여미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우리 집은 식구도 많고 먹고 마시는 데 돈이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