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한 후 여운초는 전이진의 가슴에 기대었고, 잠시 후에야 그의 품을 떠났다.여운초는 손을 들어 전이진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말을 건넸다.“여운별이 앞으로 절대 못 건드리게 할게! 내 남자를 절대로 다른 여자가 건드리게 해서는 안 돼!”“여보,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해.”전이진의 화는 이미 대부분 풀렸다.여운별은 전이진의 등 뒤에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전이진이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여운별을 밀쳐낸 것뿐이었다.“앞으로 절대로 내 앞에 나타나게 하지 마. 아니면 내가 볼 때마다 걷어차 버릴 거야. 난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지만 나에게 감히 손을 대는 변태한테는 무조건 반격할 거야. 정신없이 혼내 줄 거라고!”여운초가 전이진에게 약속했다.“앞으로 운별이가 다시는 이진 씨 앞에 나타나게 하지 않을 거야. 감히 다시 온다면 내가 이진 씨 대신 때려서 쫓아낼 거야. 좋은 것은 배우지 않고 이렇게 뻔뻔스러운 것만 배우다니.”여운초는 전이진의 얼굴을 만지면서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남편도 너무 멋있고 훌륭해서 그래. 마치 자석처럼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많은 여자가 이진 씨를 꼬드기려 한다니까. 많은 사람이 내가 시각장애인이라고, 집에서도 사랑받지 못한 여자라고, 이진 씨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야. 나중에 내가 여씨 그룹을 도맡아 한다 해도 사람들은 또 이진 씨와 동호 오빠 덕이라고 생각할 테고.”여운초는 전이진과 함께 하기로 했을 때부터 이런 헛소문들을 마주할 줄 알고 있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생활환경이 좋지 않았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았다. 전이진이 여운초를 싫어하지 않으면 되었다.전이진은 매서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누가 감히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가서 혀를 잘라 사냥개에게 먹일 거야! 우리 두 사람이 어울리는지 아닌지 그 사람들이 알 바 아니잖아. 나는 반드시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여 사람들이 부러워하게 하고 질투하게 할 거야. 여보, 나도 당신을
식사 후, 전이진은 미리 준비한 과일을 꺼내 여천우 앞에 놓으며 그에게 말했다.“가지고 나가서 누나와 함께 먹어.”여천우는 알았다고 대답했다.2분 후.여운초가 소파에 앉자 여천우는 여운초의 맞은편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자기 집에서 왜 그러고 있어? 얼른 앉아.”여운초는 한숨을 쉬며 여천우를 꾸지람했다.“난 그냥 서 있으면 돼. 나도 운별 누나가 그런 일을 저지를지 정말 몰랐어. 너무 미안해. 나 좀 욕이라도 해줘.”여운초에게 혼나지 않은 여천우는 마음이 괴롭기만 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를 한바탕 꾸짖어야만 좀 편하게 지낼 것 같았다.“욕하긴 뭘 욕해? 너도 말했잖아, 몰랐다고. 나도 여운별이 이진 씨에게 그런 짓 할 줄 몰랐어. 너도 자책하지 마. 운별이가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바보라고 해야 할지... 천우 너의 친누나잖아. 너에게 운별이를 대문 밖으로 내쫓으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이진 씨에게 내가 잘 말해 놓을게. 네가 이번에 휴가를 내고 뭘 하러 왔는지만 잘 기억해 둬.”“여운별의 은행 카드를 내가 정지시켰어. 운별이가 새벽부터 결판내려고 찾아왔지? 네 형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들어오지는 못했을 거고. 네가 운별이를 혼자 밖에 있게 하고 혼자 방에 들어간 거야? 돈 주려고?”여운별의 은행 카드는 정지되었기에 여운별은 돈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비록 그녀가 금고에서 현금들을 가져갔지만, 여운별의 씀씀이로 놓고 보면 아마 며칠도 안 되어 다 써버렸을 것이다.그리고 여운별은 여천우가 돌아온 걸 보고 여천우한테서 돈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여천우는 여운초와 친했지만, 여운별은 그래도 그의 친누나였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운별 누나가 밖에서 셋집에 살고 있고 직장도 없고 모든 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어. 누나가 카드를 정지시켰다면서 쓸 돈이 없다고 나보고 돈을 좀 달라고 그러더라고.”여천우는 그제야 바지 주머니에서 20만 원 남짓한 돈을 꺼내 보였다. 아마도 여운별에 미처 주지 못했을 것이다.“내가
여천우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약속했다.“앞으로 형부가 있는 한 운별 누나를 들여보내지 않을게. 여기는 운초 누나 집이기 때문에 운별 누나도 적게 와야 하니까. 누나, 나랑 같이 감옥으로 면회 갈 거야?”“응.”여천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여운초가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30분 후.여운초 남매는 차 한 대를 타고 대문을 나섰고 그 뒤에는 경호원 차 한 대가 따라다녔다.전이진은 별장 대문에 서서 남매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 뒤에야 그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전이진은 여운초 남매를 따라 감옥으로 가지 않았다.원래는 함께 갈 계획이었는데 여운별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추미자 부부를 보러 갈 마음이 사라졌다.어차피 그 악독한 부부의 마음속에는 전이진을 사위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전씨 그룹.낯선 여자가 전씨 그룹 대문에서 서성거렸다. 그녀는 몇 번이나 들어가려고 하다가 멈추어 서곤 했다.당직 경비원은 오랫동안 그녀를 주시하며 도둑을 보듯 그 여자를 경계했다.전이진이 회사 앞으로 다가가자 그 여자는 용기를 내어 갑자기 전이진의 차를 가로막았다.당직 경비원은 반나절이나 경계하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전이진 대표의 차를 막으러 가는 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 경비실에서 급히 뛰쳐나와 그 여자를 쫓아내려고 했다.그러나 전이진은 차창을 내리눌러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전이진은 그 여자가 낯설었고 왜 자신의 차를 가로막는지 의아했다.다행히도 여운초가 전이진과 함께 하지 않았다. 아니면 여운초가 전이진이 밖에서 여자들과 어울려 다닌다며 오해했을 것이다.“무슨 일이시죠?“전이진이 조용히 물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여기에서 출근하는 사람에 관해 물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차를 가로막았어요.”“말씀하세요.”그 여자는 경비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하필 전씨 그룹의 부대표의 차를 막아서 물어보려 했다.혹시 전이진이 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자 전씨 그룹의 부대표님인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혹시 전이혁
그 여자는 분명히 전이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전이진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여기가 전씨 그룹이 맞아요. 그리고 꽤 많은 전씨 가문의 사람들도 여기에서 일하죠. 그런데 전씨 그룹 밑에 여러 계열사가 있어 모든 전씨 가문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일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계열사에서 근무하기도 해요. 그리고 성씨가 전씨라고 해서 다 전씨 그룹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어떤 전씨 가문의 사람들은 능력이 없거나 전씨 그룹 계열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른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다.“그렇군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네요. 죄송해요.”그 여자는 전이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씨 성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전씨 그룹에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법은 없다고 말이다.전이혁이 정말 여기서 일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또 어디로 가서 전이혁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나쁜 자식! 걸리기만 해봐! 작살 내버릴 거야!’곧 그 여자는 전씨 그룹을 떠났다.경비원은 서둘러 회사 문을 열고 전이진이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전이진은 차를 주차한 뒤, 차에서 내려 휴대전화를 꺼내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서 전이혁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전이혁이 전화를 받자 전이진이 바로 물었다.“이혁아, 혹시 또 무슨 나쁜 짓을 하고 다닌 거 아니야?”“형, 내가 지금 회의 중이라 무슨 일이 있으면 10분 후에 다시 얘기하자.”전이혁은 회의 중이었다.전이혁도 그의 큰형처럼 회의할 때 다들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 놓으라고, 회의 중에 전화를 받지 못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전이진도 회의 중에 전화를 받으면 기껏해야 몇 마디만 회답하고는 재빨리 끊었다.“알겠어. 10분 후에 다시 전화할게.”전이진은 전화를 끊으며 회사로 걸어 들어갔다.그때 소정남이 회사 안에서 나오면서 두 사람이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딱 마주쳤다.소정남의 뒤에는 여러 명의 고위층 인사들이 따라 나왔고 관성 호텔에 가서 사업에 관한 얘기를 하려 했다.그
“이혁아, 그 여자에게 미안한 짓이라도 한 거 아니야? 왜 널 찾으려고 해?”전이혁이 물었다.“그 여자 성씨를 알아?”“안 알려주더라고. 남의 물건을 훔쳤어? 아니면 그 여자를 건드린 거야? 내가 널 언급했을 때 그 여자가 이를 갈고 있던데. 널 찾아 결판내려는 것 같던데”전이혁이 말을 이었다.“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우리 집에 부족한 게 없는데 내가 왜 남의 물건을 탐내겠어?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물건들을 훔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내가 왜 남을 건드리겠어? 혹시 사람 잘 못 알아본 거 아니야? 난 젊고 예쁜 여자들이 주위 몇 명밖에 없어. 평소에 아줌마들과 많이 접촉하고 있거든.”전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과 사업할 수 있는 여장부들은 대부분 40대 아줌마들이었다.전이진이 물었다.“할머니가 정해주신 아내는 아니고?”전이혁은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지 재빨리 부인했다.“아니야. 절대 아니거든. 내가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할머니께서 내게 정해주신 아내분은 재벌가 딸이야. 그런데 내가 자주 꿈꾸는 그 여자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와 다른 분이란 말이지.”“난 앞으로 우리 전씨 가문에서 첫 번째로 이혼하는 남자가 될까 봐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겠어. 할머니를 찾아가 아내를 바꿔 달라고 했는데 할머니께서는 거절하시면서 나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더군.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어? 어차피 1년 후에도 집에 가서 설을 못 쇨 각오는 하고 있어. 그런데 할머니도 아마 입으로만 말씀하시는 것 같긴 해. 내가 설날에 집에 없으면 할머니도 마음이 약해져서 날 집으로 오라고 하실걸.”전이혁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할머니는 나이가 드셔서 자손들이 많은 장면을 보기 좋아하시거든. 손자 한 명만 보이지 않아도 밥도 잘 드시지 못하실 거야.”전이진은 빙그레 웃었다.“호영이처럼 반년이나 끌다가 나중에 움직이려고? 봐봐, 호영이와 고현 씨는 아직도 연인관계가 아니잖아. 고현 씨는 아직도 호영이를 위해 여자 신분을 밝히려
전이혁은 단지 꿈속에서 그에게 치근덕거리는 여자를 현실 속에서 만나 그녀를 화나게 했을 뿐이다. 사실 전이혁도 상대방의 이름도 몰랐다.오히려 상대방이 전이혁의 이름을 알고 관성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고 전씨 그룹으로 찾아갈 줄은 더더욱 몰랐다.도둑이 제 발 저리다더니...전이혁은 자신이 한 일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전이진에게 속아서 진실을 말해버릴까 봐 마음이 켕겼다.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입원 병동으로 들어갔다. 하예정의 손에는 꽃다발이 쥐여있었고 전태윤의 손에도 크고 작은 가방들로 가득했다. 전태윤 부부는 경호원들을 거느리지 않고 조용히 들어갔다.두 사람은 일부러 누구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검은색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부인과 입원 부로 올라갔고 하예정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을 건넸다.“여보, 너무 빨리 가지 마. 가까운 거리인데 왜 그렇게 빨리 가?”“청하 언니가 오늘 퇴원한단 말이에요.”전태윤은 낮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퇴원하시면 이모 댁에 가서 아기를 볼 수도 있잖아.”하예정은 아기를 무척 좋아했다.워낙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임신한 뒤로도 모성애가 더 넘쳐나는지 아기들을 더 많이 귀여워했다.“저는 볼 수 있죠. 그런데 태윤 씨는 아기가 한 달 되어서야 볼 수 있는걸요. 저는 매일 보러 갈 수 있어요.”하예정은 걸음을 늦추어 고개를 돌려 전태윤에게 웃으며 말했다.“그 아기는 성 대표님 아들이지 내 아들이 아니잖아. 나는 한 달 동안 볼 수 없어도 상관없어. 만약 내 아들이라면 매일 보고 싶을 테지만. 예정이 네가 내년에 산후조리할 때 내가 40일 동안 휴가를 내서 집에서 널 돌볼 거야. 그리고 우리 아기도 매일 자라는 모습을 볼 거야.”하예정이 입을 열었다.“태윤 씨가 산후조리 할 필요도 없는데 그렇게 긴 휴가를 쓸 필요 없어요. 집안에 가족들이 많아서 그런 장기 휴가를 내서 우리 모자를 돌볼 필요까지 없다고요.”“난
“언니가 오늘 퇴원하신다고 해서 꽃다발을 주려고 가져왔죠. 다들 저와 같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죠. 물건은 다 챙겼어요?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 없으면 제가 언니를 도와 꽃다발을 안아 줄게요.”하예정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유청하가 퇴원하는 날은 그야말로 성대했다.전태윤 부부는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품에 꽃다발을 안고 걸었다. 두 사람은 걷다가도 서로를 마주 보면서 달콤함과 행복함을 만끽했다.그들은 입원 병동에서 나와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주차장은 진찰실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전태윤 일행은 자연스럽게 진찰실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전태윤 부부는 여운별과 마주쳤다.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전태윤 부부는 여운별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운별이 감옥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기 때문에 하예정은 여운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그런데 전태윤 부부가 지나갈 때 여운별은 하예정의 말소리를 듣고 갑자기 멈추어 고개를 돌리며 하예정을 바라보았다.원수끼리 만나면 눈에 핏발이 선다고 여운별은 바로 달려들어 단칼에 하예정을 찔러 죽이고 싶어 했다.그녀는 발을 몇 걸음 옮겼다가 또다시 멈추었다.그대로 돌진하면 안 되었다.여운별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칼은 물론 몸에 펜도 없었다. 게다가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법이다. 여운별은 자유를 잃은 적 있기에 지금 밖에서 마음대로 다니는 자유를 무척 소중히 여겼다.복수를 위해 다시 미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여운별은 하예정의 뒷모습을 한사코 주시했다. 하예정은 전태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올랐고 곧 전태윤이 차에 올라탄 뒤로 그들의 차는 멀리 떠나갔다.“하예정!”여운별은 이를 갈며 말을 내뱉었다.“언젠가 내가 널 무너뜨리고 말 거야!”그녀는 하예정이 떠난 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따라서 그녀의 등 뒤에 난 상처도 더 아파 났다.여운별은 아침에 여씨 가문으로 달려갔다가 여천우가 돈을 가지러 위층으로 올라간 틈을
전이진은 흉악한 표정으로 여운별을 향해 꺼지라고 소리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모든 물건을 그녀를 향해 뿌렸다.겁에 질린 여운별의 얼굴은 바로 창백해졌고 본능적으로 일어나 빨리 도망쳤다.여운별이 그렇게 빨리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이진이 던진 접시에 등을 몇 번이나 맞았다.무척 아팠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뛰쳐나와 멀리 도망친 후에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감히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차를 몰고 셋집으로 돌아갔다.원래는 아무 약이나 바르고 견뎌내려 했지만, 등이 너무 아프다고 느낀 여운별은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달려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병원에서 줄을 서면서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야 여운별은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전태윤 부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비록 전태윤 부부는 경호원 팀을 데리고 오지 않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하예정의 목소리를 들은 여운별은 그 목소리가 곧 하예정의 목소리임을 눈치챘다. 여운별은 하예정의 목소리가 이가 갈릴 정도로 듣기 싫었고 또 기억에 남았다.“하예정! 여운초! 기다려! 내가 받은 고통을 모두 두 배로 돌려줄 거니까!”여운별은 하예정이 임신했다고 들었다.전씨 가문은 대외적으로 임신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릴 때 하예정이 감히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더니 사람들은 하예정이 임신했음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여운별은 하예정이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여운별은 질투로 인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감옥에서 나온 여운별은 두 고모에게서 하예정이 결혼 후 오랫동안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모두가 하예정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뒷말까지 했다.하지만 지금 하예정이 임신했다. 하예정은 어렵게 품은 아이가 정말 소중할 것이다. 이때 그녀를 유산시키게 한다면 정말 속이 다 시원할 것이다.그리고 여운초가 아이를 평생 낳지 못하게 한다면 전이진이 여운초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과
“할머니, 어디 가시려고요?”소정남은 전씨 할머니가 나가려는 것을 보면서 묻고 있었다.전씨 할머니가 대답하셨다.“너무 오래 나가 놀았는데 산기슭에 있는 옛 친구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카드놀이도 해야지.”전씨 할머니는 귀부인티를 내지 않고 산기슭에 있는 노동자들의 부모님들과 잘 어울려 다니셨다.그 할머니들도 전씨 할머니와 이런저런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이야기들 나누렴. 난 나가야겠어. 좀 이따가 밥 먹을 때 날 부를 필요 없어. 사람을 시켜 산기슭에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해. 옛친구들과 함께 먹게. 어묵 같은 거 있으면 더 좋고.”“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 음식은 적게 드세요.”전씨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알았어. 안 먹을게.”“제가 할머니께 드시지 말라고 하면 할머니께서는 저를 욕하시더니 왜 예정이가 드시지 말라고 하면 바로 수긍하세요?”전태윤이 일부러 투덜거렸다.그는 전씨 할머니가 손자며느리가 생겼다고 손자를 안중에 두지도 않으신다고 불평했다.전씨 할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떠나셨다.할머니는 하예정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듯했다.그러나 손자는 너무 많아서 그다지 소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떠들썩한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저녁 6시가 넘으니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은 여운초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전이진은 리조트 입구까지 배웅하며 끊임없이 명해은에게 당부했다.“엄마, 우리 운초 씨를 잘 돌봐주세요. 남들이 괴롭힘당하게 하지 말고요.”“알았어. 누가 감히 우리 며느리를 건드리면 내가 가장 먼저 그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명해은은 전이진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있었다.전이진은 또다시 들이밀었다.“아니면 제가 따라갈래요.”“네 아버지랑 다 집에 있는데 네가 따라가서 뭐 하게?”명해은은 운전 기사에게 차를 몰아라고 지시했고 창문을 눌러 아들에게 고개를 내밀어 말을 건넸다.“날도 어두워지고
전창빈은 할머니께 말씀드렸다.“할머니께서 조금 전에 저 보고 할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집에 방금 돌아오셨는데 물도 아직 한 모금 마시지 않으시고 바로 내려가셔서 카드놀이도 이야기도 나누시겠다고 하시다니.”하예정도 말했다.“할머니, 그 할머니들도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께서도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그 할머니들의 돈을 전부 따버리면 안 돼요.”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돈 내기하는 거 아니야. 카드놀이에서 지는 사람의 얼굴에 낙서하면서 노는 거지. 누가 얼굴에 가장 많이 그려지는지 지켜보면서 노는 거야.”현장의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노인네의 세계를 그들은 아직 잘 모른다.어르신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재치다.곧, 소정남과 심효진 부부, 그리고 소정남 부모님도 함께 들어왔다.집안이 더 시끌벅적해졌다.전씨 할머니는 소정남의 아버지 소균혁을 보더니 물었다.“셋째야, 당신 집 맏이가 사돈집에 갔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안 왔어?”소정남의 아버지는 형제 중 셋째였다.전씨 할머니는 예전부터 줄곧 소균혁을 셋째라고 불렀다.“설전에야 돌아온다고 하셨어요.”소지훈은 정윤하에게 고백했고 정윤하도 소지훈에게도 약간의 관심이 가진 듯 했다.소지훈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정윤하는 수차례의 고민 끝에 결국 소지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며칠 만에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소균성 부부는 연성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듯했다.하마터면 홀아비가 될 뻔한 아들이 드디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생겼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소균성 부부의 마음에 걸려 있던 큰 돌도 마침내 땅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하여 너무 기뻐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비록 관성이 매우 춥고 가끔 눈이 온다고 해도 소균성 부부는 따뜻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차라리 정씨 가문에 틀어박혀 불을 쬐고 싶어 했다.세 식구가 정씨 가문 사람들이 정윤하와 소
“여보, 오늘 밤은 내가 선물한 보석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가.”“보석 반지만 이진 씨가 선물한 걸 착용하면 되잖아.”전이진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그럼. 이것만은 우리 엄마에게 양보할게.”여운초는 웃긴다는 듯 그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참, 당신과 형수님께서 용씨 사모님도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한다고 하던데.”전이진은 문득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목소리와 몸매가 여운별과 닮은 그 젊은 사모님을 언급하자 여운초의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졌다.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마침 잘 지켜볼 수 있게 됐네.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지켜보면 허점을 잡히기 마련이야.”“내가 시간 날 때 사람 시켜서 알아봤거든. 근데 그 사모님이 정말로 용씨 사모님이더라고. 남편이 정말로 용씨였어.”“응.”여운초는 용씨 사모님이 여운별이라고 의심은 하고 있지만, 증거는 없었다.만약 용씨 사모님과 여운별이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음모일 것이다. 만약 음모라면 배후에는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 모든 상황을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여운초는 10년 동안 어둠 속에서 살면서 인간성을 꿰뚫어 보게 되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지금 여운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다.그녀의 친어머니마저도 그녀가 죽기를 원했기에 그녀는 정말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나와 여운별은 20년 동안 자매로 지내면서 많은 일이 있었거든. 남들이 모르는 여운별의 사소한 습관들도 난 전부 잘 알고 있어. 아마 여운별 본인도 모를 수도 있어. 내가 몇 번만 더 만나고 접촉해 보면 분명 허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용씨 사모님도 우리 앞에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만약 정말로 여운별이 가장한 거라면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생활 습관은 고칠 수 없을 거야.”전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동일 인물이 옳든 아니든 용씨 사모님의 실체를 알기 전에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해.”“나도 알아. 아주버님과 형수님이 곧 돌아오실 거야.
그랬다. 전태윤도 하예정과 딸을 낳고 싶었다.특히 그가 매일 예지연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때마다 늘 딸이 갖고 싶었다.예준성의 그 보배 딸은 점점 더 귀여워지고 있었다. 옥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에 눈도 어찌나 동그란지 여기저기 눈동자를 굴려서 볼 때면 앞으로 분명 똑똑한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예준성도 매일 SNS에 그의 보물단지 예지연의 사진을 몇 번이고 올린다.물론, 매일 예씨 가문의 대표 SNS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예준성은 소중한 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아까워했다. 심지어 A시 사람들은 예씨 가문의 손자 세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다.예지연이 너무 어려서 어른들의 보호를 잘 받고 있었기에 언론에 아이의 정면 거의 찍히지 못했다.전태윤도 예준성의 SNS를 볼 수 있는 것도 하예정과 모연정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 때문이지, 그와 예준성의 친분으로는 볼 수 없었다.그는 예준성이 전씨 가문이 딸을 낳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의 소중한 딸을 자랑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때때로 예준성이 영상을 보내면 전태윤은 예준성이 보낸 영상을 반복해서 보곤 한다. 심지어 영상 속으로 들어가 예지연을 집으로 데려가 그의 딸로 삼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고 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들은 할머니 일행이 돌아오면 모두 서원 리조트로 출발하려고 했다.어젯밤에 리조트로 돌아온 전이진 부부는 지금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다.여운초가 연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고 전이 진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가끔 여운초가 남편에게 물었다.“이진 씨, 이 드레스를 입으면 어때?”“좋은데. 당신은 어떤 옷을 입어도 너무 예쁘고 너무 어울려.”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일어나서 여운초의 등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여보,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우리 엄마와 함께 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야.”“처음으로 당신 아내의 신분으로 어머님을 따라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