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별은 여천우에게 모든 일을 일러바쳤다.“내가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아니, 여긴 우리 집이야. 천우야, 그 장님이 나와 우리 부모님 재산을 모두 차지했어. 내가 감옥에서 나온 후로도 그 장님이 전씨 가문의 세력을 믿고 나를 내쫓으며 집으로 오지 못하게 했어. 집 안에 있는 하인들도 거의 다 바뀌었는데 그 장님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들만 남겨진 거 있지.”“내가 왜 이 새벽에 여기로 와서 소리 지르겠어? 그 장님이 내 전화도 안 받고 답장도 안 하니까 그러지. 어젯밤부터 화가 나서 지금까지 겨우 참았어. 날이 겨우 밝았는데 내가 반드시 여기로 와서 결판을 내야지. 운초가 아직 안 일어났어?”여운별은 여천우가 대문을 열어주어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더니 갑자기 멈추어 섰다.여천우가 대답했다.“아직 안 일어났어. 형부가 일어나서 안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고. 근데 왜 자꾸 입만 열면 장님이라고 욕해? 우리 누나잖아.”“네가 여운초를 누나라고 부르지만, 그 장님은 우리 가문의 재산을 차지하려 한단 말이야.”여운별은 전이진이 안에서 아침밥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더니 감히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여운별은 기세등등하게 달려왔지만, 전이진의 이름을 듣자, 문득 겁이 났다. 자신이 전이진을 꼬드겨 여운초 곁에서 전이진을 빼앗으려던 생각도 까맣게 잊은채 말이다.“천우야, 우리 저기 정자에 가서 앉아 있자. 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래. 그 장님은 팔자가 좋기도 하지. 무슨 수로 전이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 전이진은 운초에게 매우 친절하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냉담하게 대하거든.”“난 저 두 사람이 좀 무서워. 천우야, 우리는 친남매잖아. 이럴 때일수록 우리 남매가 힘을 합쳐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을 지켜야 해. 절대로 운초가 차지하게 해서는 안 돼.”여운별은 동생을 끌고 멀지 않은 작은 정자 아래로 가서 앉았다.“천우야, 내가 급하게 와서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어. 들어가서 과자랑 과일 좀 가져다줘. 나도 좀 먹자. 너 돈 있어?
여운별이 말했다.“돈 많이 가져다줘. 난 지금 돈이 별로 없어서 밥도 못 사 먹어.”여천우가 말을 이었다.“취직할 수 있잖아. 누나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이든 찾아서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거 아니야. 굶어 죽은 사람은 모두 게으름뱅이야.”여운별은 굳은 얼굴로 톡 쏘아붙였다.“내가 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난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야! 내가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예전에 우리 부모님은 내가 귀한 팔자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나를 일 하게 하지 않으셨어. 운초가 내 카드를 정지시키지 않았더라면 내가 돈이 부족했을 것 같아? 내가 너한테도 혼나야 해?”여천우의 안색은 더 안 좋아졌다.“내가 혼내는 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예전과 다르다고 말하는 거잖아. 이제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어야 해. 누나가 만약 능력이 있다면 운초 누나가 운별 누나의 은행 카드를 정지시킨다 해도 운별 누나가 두려워할 것 없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운별 누나가 능력이 없어서 운초 누나가 은행 카드를 정지시니까 모든 일에 문제가 생긴 거잖아.”“됐다, 됐어! 빨리 돈이나 가져 와. 네가 그 장님 편드는 거 알아. 너희 두 사람이 친남매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 둬. 우리 두 사람이야말로 친남매잖아. 운초가 너에게 대체 무슨 약을 먹였는지 그렇게 운초를 믿는지 참...”“지금 운초가 우리의 재산을 차지해서 우리를 더 이상 살 수 없게 하려고 한단 말이야. 넌 왜 아직도 바보처럼 운초 편을 들고 있어? 운초가 너의 은행 카드를 정지시키지 않아서 너에게 잘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잘 들어, 그건 다 널 달래기 위한 행동일 뿐이야! 나중에 운초가 우리 집 재산을 가져가면 널 반드시 발로 차버릴 거야. 그때 가서 울지나 마!”여운별은 그녀와 여천우가 같은 뱃속에서 나온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여천우가 왜 여운별의 편이 아니라 여운초의 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여천우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운초 누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자꾸 이렇게
지금 회사는 여운초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여천우의 모든 소비는 여운초가 이내 알 수 있었다.갑자기 큰돈을 송금하면 여운초가 반드시 그에게 묻게 될 것이다. 만약 여천우가 여운별에 큰돈을 송금한 것을 알게 된다면 여운초가 말은 하지 않아도 그에게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게다가, 여운별에게 너무 많은 돈을 주면 그녀가 낭비할 게 뻔했고 취직도 하지 않고 그저 여천우의 피를 빨기만 할 것이다.이번에 여천우가 특별히 휴가를 내고 돌아온 목적이 바로 감옥에 면회하러 가서 부모님을 설득해 추미자 부부 명의의 모든 재산을 그의 명의로 옮기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여천우가 여운별의 생활비를 통제하고 그녀가 재산을 탕진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그렇게 생각한 여천우는 현금 20만 원을 여운별에게 주기로 했다.여천우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돈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다음 방을 나섰다.여천우는 몇 걸음도 못 가서 멀찍이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운초를 보았다.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여천우는 여운초를 보고 깜짝 놀랐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바지 주머니를 만졌고 또 재빨리 손을 놓았다.그 동작은 무언가를 숨기려는 동작 같았다.“좋은 아침이에요. 누나.”여천우는 억지로 침착한 척 걸어가면서 웃으며 여운초와 인사를 나누었다.여운초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조깅하고 왔어?”“응, 더 안 자고 일어나려고? 형부가 아까 누나가 피곤하다고 좀 더 자라고 하던데.”여운초가 말을 이었다.“좀 더 자려다가 잠이 안 와서 아예 일어났어. 씻었어? 아침 먹으러 내려가려는데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고. 무슨 요리를 하고 있는지 맛있는 냄새가 나.”여운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여천우는 멈칫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두 사람이 계단에서 내려가고 있는데 여운별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이때 전이진이 분노하면서 소리쳤다.“꺼져!”여운초 남매는 본능적으로 멈추어 섰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여운별이 비틀거리며 부엌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목격했다.부엌에서 물건들이 여운별을 향해
전이진은 아무 말 없이 웃옷을 벗어 화를 억누르며 부엌 쓰레기통에 던지려고 했다.“이진 씨.”여운초는 쓰레기통에 넣으려던 윗도리를 낚아채며 걱정스레 물었다.“말해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여운별이 뭘 어쨌는데? 말해봐. 내가 대신 혼내줄게. 혹시 이진 씨한테 꼬리 쳤어?”전이진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여운별이 갑자기 살금살금 걸어 들어오더니 뒤에서 나를 껴안고 내 몸을 마구 만지고 있었어... 나는 너인 줄 알고 고개를 돌렸는데 여운별이 보이니까 나도 모르게 폭발했거든. 그리고 여운별을 밀어내며 발로 걷어찼고 또 물건들을 잡히는 대로 여운별을 향해 마구 던졌어.”여운초는 여운별이 감히 자신의 남자를 끌어안으며 만질 줄은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전이진도 여운별이 이렇게까지 대담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여운초인 줄 알았지만 여운별인 것을 확인하더니 전이진이 그대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여보, 여운별이 이 옷 만졌어. 버려! 난 싫어! 운초 씨 말고 다른 여자들이 날 만지면 절대 안 돼. 내 옷을 만져도 안 돼. 그 옷을 버려줘.”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에서 그 옷을 빼앗아 다시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했다.“내가 밖에 버려줄게. 여기에 버리면 이진 씨가 들락날락하면서 그 옷을 보면 여운별이 했던 역겨운 짓들이 생각날 거야.”여운초는 그 옷을 가지고 몸을 돌려 나갔다.집을 나선 여운초는 정말로 그 옷을 밖에 있는 큰 쓰레기통에 버렸다.별장 정문 쪽으로 걸어오는 여천우를 보더니 여운초는 멈춰 서서 여천우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그리고 물었다.“여운별은? 꺼졌어?”“운별 누나가 도망치듯 도망갔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 형부가 갑자기 화를 낸 이유가 뭐야? 난 형부가 운별 누나를 향해 그릇들과 접시들을 던지는 것만 봤어. 운별 누나의 등은 아마 맞혀서 부었을걸.”여천우는 여운별이 전이진을 꼬시려는 것을 전혀 몰랐다.“빌어먹을! 늦게만 달려갔어도 이진 씨가 여운별을 때려죽였을 텐데. 좋은 것을 배우지 못할망정 이런 뻔뻔한 짓은 엄마에게
어떻게 감히 남몰래 형부를 꼬실 수 있단 말인가!전인진은 겉으로는 온화하고 점잖은 것 같지만,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이 진정으로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은 없었다.그들은 모두 강한 사람들이었다.다만 전이진이 여운초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녀의 동생까지 잘해주게 된 것이다.하지만 전이진은 여운별에게 절대로 마음 약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전이진이 여운별을 혼내지 않은 것은 여운초가 전이진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 탓일 것이다. 여운초는 그녀의 집안일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다.만약 전이진이 끼어들었다면 여운별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오늘처럼 여씨 가문의 별장으로 와서 난리 치지도 못했을 것이다.지금 잘살고 있는 여운초를 보면서 여운별은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날 것이다.여천우가 고개를 들고 어렵게 여운초에게 사과하려고 했을 때 여운초는 이미 그의 앞에서 사라졌고 진작에 집 안으로 들어갔다.여천우는 자기 생각에 푹 빠져들어 여운초가 자리를 뜬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제자리에서 발을 떼지도 못했다. 심지어 두 다리가 돌처럼 무겁다고 느껴졌다.여천우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가 순간 마음이 약해져 일어난 일이었다.전이진이 화를 내면 여운초도 분명 여천우에게 실망할 것이고 여운별도 아무런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심지어 여운별은 전이진이 던진 그릇들에 의해 등이 맞혀 다쳤다.여운초는 동생에게 실망할 시간도 없이 먼저 전이진을 위로해야 했다.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전이진은 이미 주방을 떠났고 준비된 아침밥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바닥의 그릇 파편들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여운초는 집 안 청소를 담당하는 하인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와서 현장을 치우라고 했다.전화하고 난 여운초는 그제야 위층으로 올라갔다.방문이 닫혀 있었지만, 다행히 전이진이 잠그지 않아 여운초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욕실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전이진이 욕실에서 목욕하고 있었다.여운초는 들어가지 않고 욕실 입구 벽에
키스한 후 여운초는 전이진의 가슴에 기대었고, 잠시 후에야 그의 품을 떠났다.여운초는 손을 들어 전이진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말을 건넸다.“여운별이 앞으로 절대 못 건드리게 할게! 내 남자를 절대로 다른 여자가 건드리게 해서는 안 돼!”“여보,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해.”전이진의 화는 이미 대부분 풀렸다.여운별은 전이진의 등 뒤에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전이진이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여운별을 밀쳐낸 것뿐이었다.“앞으로 절대로 내 앞에 나타나게 하지 마. 아니면 내가 볼 때마다 걷어차 버릴 거야. 난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지만 나에게 감히 손을 대는 변태한테는 무조건 반격할 거야. 정신없이 혼내 줄 거라고!”여운초가 전이진에게 약속했다.“앞으로 운별이가 다시는 이진 씨 앞에 나타나게 하지 않을 거야. 감히 다시 온다면 내가 이진 씨 대신 때려서 쫓아낼 거야. 좋은 것은 배우지 않고 이렇게 뻔뻔스러운 것만 배우다니.”여운초는 전이진의 얼굴을 만지면서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남편도 너무 멋있고 훌륭해서 그래. 마치 자석처럼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많은 여자가 이진 씨를 꼬드기려 한다니까. 많은 사람이 내가 시각장애인이라고, 집에서도 사랑받지 못한 여자라고, 이진 씨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야. 나중에 내가 여씨 그룹을 도맡아 한다 해도 사람들은 또 이진 씨와 동호 오빠 덕이라고 생각할 테고.”여운초는 전이진과 함께 하기로 했을 때부터 이런 헛소문들을 마주할 줄 알고 있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생활환경이 좋지 않았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았다. 전이진이 여운초를 싫어하지 않으면 되었다.전이진은 매서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누가 감히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가서 혀를 잘라 사냥개에게 먹일 거야! 우리 두 사람이 어울리는지 아닌지 그 사람들이 알 바 아니잖아. 나는 반드시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여 사람들이 부러워하게 하고 질투하게 할 거야. 여보, 나도 당신을
식사 후, 전이진은 미리 준비한 과일을 꺼내 여천우 앞에 놓으며 그에게 말했다.“가지고 나가서 누나와 함께 먹어.”여천우는 알았다고 대답했다.2분 후.여운초가 소파에 앉자 여천우는 여운초의 맞은편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자기 집에서 왜 그러고 있어? 얼른 앉아.”여운초는 한숨을 쉬며 여천우를 꾸지람했다.“난 그냥 서 있으면 돼. 나도 운별 누나가 그런 일을 저지를지 정말 몰랐어. 너무 미안해. 나 좀 욕이라도 해줘.”여운초에게 혼나지 않은 여천우는 마음이 괴롭기만 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를 한바탕 꾸짖어야만 좀 편하게 지낼 것 같았다.“욕하긴 뭘 욕해? 너도 말했잖아, 몰랐다고. 나도 여운별이 이진 씨에게 그런 짓 할 줄 몰랐어. 너도 자책하지 마. 운별이가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바보라고 해야 할지... 천우 너의 친누나잖아. 너에게 운별이를 대문 밖으로 내쫓으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이진 씨에게 내가 잘 말해 놓을게. 네가 이번에 휴가를 내고 뭘 하러 왔는지만 잘 기억해 둬.”“여운별의 은행 카드를 내가 정지시켰어. 운별이가 새벽부터 결판내려고 찾아왔지? 네 형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들어오지는 못했을 거고. 네가 운별이를 혼자 밖에 있게 하고 혼자 방에 들어간 거야? 돈 주려고?”여운별의 은행 카드는 정지되었기에 여운별은 돈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비록 그녀가 금고에서 현금들을 가져갔지만, 여운별의 씀씀이로 놓고 보면 아마 며칠도 안 되어 다 써버렸을 것이다.그리고 여운별은 여천우가 돌아온 걸 보고 여천우한테서 돈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여천우는 여운초와 친했지만, 여운별은 그래도 그의 친누나였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운별 누나가 밖에서 셋집에 살고 있고 직장도 없고 모든 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어. 누나가 카드를 정지시켰다면서 쓸 돈이 없다고 나보고 돈을 좀 달라고 그러더라고.”여천우는 그제야 바지 주머니에서 20만 원 남짓한 돈을 꺼내 보였다. 아마도 여운별에 미처 주지 못했을 것이다.“내가
여천우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약속했다.“앞으로 형부가 있는 한 운별 누나를 들여보내지 않을게. 여기는 운초 누나 집이기 때문에 운별 누나도 적게 와야 하니까. 누나, 나랑 같이 감옥으로 면회 갈 거야?”“응.”여천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여운초가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30분 후.여운초 남매는 차 한 대를 타고 대문을 나섰고 그 뒤에는 경호원 차 한 대가 따라다녔다.전이진은 별장 대문에 서서 남매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 뒤에야 그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전이진은 여운초 남매를 따라 감옥으로 가지 않았다.원래는 함께 갈 계획이었는데 여운별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추미자 부부를 보러 갈 마음이 사라졌다.어차피 그 악독한 부부의 마음속에는 전이진을 사위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전씨 그룹.낯선 여자가 전씨 그룹 대문에서 서성거렸다. 그녀는 몇 번이나 들어가려고 하다가 멈추어 서곤 했다.당직 경비원은 오랫동안 그녀를 주시하며 도둑을 보듯 그 여자를 경계했다.전이진이 회사 앞으로 다가가자 그 여자는 용기를 내어 갑자기 전이진의 차를 가로막았다.당직 경비원은 반나절이나 경계하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전이진 대표의 차를 막으러 가는 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 경비실에서 급히 뛰쳐나와 그 여자를 쫓아내려고 했다.그러나 전이진은 차창을 내리눌러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전이진은 그 여자가 낯설었고 왜 자신의 차를 가로막는지 의아했다.다행히도 여운초가 전이진과 함께 하지 않았다. 아니면 여운초가 전이진이 밖에서 여자들과 어울려 다닌다며 오해했을 것이다.“무슨 일이시죠?“전이진이 조용히 물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여기에서 출근하는 사람에 관해 물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차를 가로막았어요.”“말씀하세요.”그 여자는 경비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하필 전씨 그룹의 부대표의 차를 막아서 물어보려 했다.혹시 전이진이 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자 전씨 그룹의 부대표님인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혹시 전이혁
“예정 씨, 정말 부러워요. 결혼하신 지 오래되어도 아주버님과 여전히 사이가 너무 좋아 보이네요.”현재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눈앞의 물건을 조금씩 볼 수 있게 되었고 하예정을 위해 장미 꽃다발을 직접 고르고 포장해 주고 있었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도련님 부부도 사이가 좋잖아요. 우리를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그리고 덧붙였다.“나는 태윤 씨랑 결혼한 지 오래된 것 같지 않아요. 마치 방금 혼인신고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여운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니죠. 아직 몇십 년이 된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두 분은 몇십 년이 지나도 첫사랑처럼 변하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포장을 마친 꽃다발을 하예정에게 건넸고 하예정은 꽃값을 결제했다.여운초는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예정은 꽃다발이 전태윤에게 줄 선물이라며 돈을 받지 않으면 마치 여운초가 선물한 것처럼 느껴질 거라고 말했다.결국 여운초는 할 수 없이 돈을 받았다.“운초 씨, 나 이제 회사에 가야 해요. 주말에 도련님이랑 같이 집에 와서 식사하세요. 내가 맛있는 걸 해줄게요.”하예정은 꽃다발을 안고 가게를 나서며 여운초를 주말 식사에 초대했다.여운초는 그녀의 배를 힐끗 보며 웃었다.“어떻게 형님을 주방에 들여보내겠어요? 기름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지 않아요?”하예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혀 그런 거 없어요. 오히려 기름 냄새가 좋은걸요. 이상하죠? 아마도 배 속에 있는 이 작은 녀석도 먹는 걸 좋아하나 봐요.”그녀는 문을 나서며 덧붙였다.“임신 중에는 입맛도 달라질 수 있대요.”여운초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아직 그걸 체험하지 못해서 엄마가 되는 기분이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사실 여운초는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단기간에 임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매일 약을 복용하며 치료 중이었다.하예정은 잠시 멈춰 서서 손을 내밀어 여운초의 손을 잡았다.“정겨울 선생님도 2~3년 후엔 임신할 수 있
여운별의 두 눈이 반짝였다.새로운 얼굴과 신분으로 하예정에게 접근하려는 동안 항상 불안했고 정체가 드러날까 걱정스러웠다.다시 자신의 신분으로 돌아가 여운초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일부러 모습을 드러낼 생각에 웃음이 지어졌다.그래야 사람들이 그녀가 여전히 관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날 테니까.“큰고모, 그 방법 괜찮네요. 지금 바로 서원 리조트에 가서 사돈어른들한테 생활비 좀 받아 와야겠어요.”여미란은 그녀를 재촉하며 말했다.“그럼 빨리 갔다 와라. 돈을 많이 받아와서 나랑 네 작은고모도 좀 도와줘. 우린 지금 정말 가난해 죽을 지경이야. 그리고 사돈어른께 일자리 하나 마련해달라고도 해봐. 사돈어른이 너한테 일자리 하나 만들어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하지만 여운별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손을 벌리면 누군가가 다 해주고 돈이 넘쳐나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용 사장은 그녀에게 몇억의 용돈을 보내줬지만 그녀는 명품을 사는 핑계로 경호원을 통해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용 사장은 돈이 많았고,보통 그녀의 요구를 들어줬다.여운별은 용 사장의 진짜 정체를 몰랐지만 그가 돈을 잘 쓰고 용씨 가문이 매우 부유하다는 이야기를 경호원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그녀는 이미 그의 첩이었기에 오로지 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여운별의 표정을 보고 여미란은 그녀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자 한마디 거들었다.“네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사돈어른께 네 사촌 형제들을 전씨 가문 자회사에 넣어달라고 해봐. 사촌들이 좋은 직장을 얻고 안정된 수입을 가지면 너를 도울 수 있을 거 아니니.”여운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큰고모,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사돈어른이 그렇게 쉽게 설득될 것 같나요? 저한테 돈을 조금이라도 주면 다행이죠.”“사촌들 일자리까지 마련해 달라니, 물론 그분은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죠. 하지만 그분이 우리 말을 들어줄 가능성은 없어요.”비록 여운별
여미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과 싸우는 건 괜찮지만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지는 말아야 해. 네가 또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나왔을 때는 여씨 가문의 재산이 전부 그 애들 손에 넘어갈 거야. 그땐 네가 아무리 싸워도 소용없어.”여운초는 친척들에게 호감이 없었고 고모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반면 여천우는 고모들이 가장 아끼는 조카였다.여천우만이 친정을 지탱할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친정이 강해질수록 고모들은 시댁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하지만 여천우는 여운초와 한마음이었다.현재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몰락해 가진 돈이 없었다.두 집안은 여운별이 여운초와 싸워 재산의 일부를 가져오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녀를 통해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여운별은 나이가 어려 패기가 넘쳤고 부모의 지나친 사랑 속에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그녀는 속이기 쉬운 사람이었다.그러나 한편으로 여미란은 여운별이 또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그녀가 감옥에 다시 들어가면 두 집안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큰고모, 이 쓰레기들 빨리 치워요. 너무 냄새나요.”여운별이 쓰레기를 가리키며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지금 바로 전화해서 수거하러 오라고 할게.”여미란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폐품 수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종이 상자와 빈 병을 늘 같은 사람에게 팔았기에 연락처를 저장해 두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후, 여미란이 웃으며 물었다.“운별아, 네 손에 여유가 좀 있니? 큰고모는 아직 월급을 못 받아서 식구들 반찬 살 돈도 없네. 혹시 좀 도와줄 수 있어?”여운별은 대꾸했다.“여천우 그 녀석이 한 달에 겨우 100만 원만 주겠다고 했어요. 부모님은 200만 원을 주라고 했는데도요. 저도 돈이 부족해서 큰고모를 도울 수 없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지갑을 열어 현금을 꺼내 큰고모에게 건넸다.“지금은 이것밖에 없어요. 부족하면 알아서 해결하세요. 저도 아직 일을 못
여운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두 시간 후.자신의 원래 신분으로 돌아간 여운별은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 겨우 그녀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니, 정확히는 안쪽에서 누군가가 문을 연 것이었다.여운별의 첫 반응은 도둑이 들었다는 생각이었다.‘젠장, 나 같은 가난뱅이 집에 도둑이 들다니.’그러나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이 그녀의 큰고모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소리쳤다.“큰고모, 어떻게 제 집 열쇠를 가지고 계셨어요?”여운별은 자신이 고모들에게 집 열쇠를 준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여미란은 놀란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운별아, 깜짝 놀랐잖니. 소리도 안 내고. 네가 집을 새로 빌렸을 때 나한테 청소 좀 해달라고 열쇠를 준 적 있잖아. 그때 돌려주는 걸 깜빡했단다.”여미란이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너 요즘 어디 갔었니?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오더라. 우리 집은 사람도 많고 비좁아서 여기에 와서 지내려 했어. 안 그랬으면 네가 집에 없었다는 걸 몰랐을 거야.”그녀는 태연히 문을 열어 여운별을 집 안으로 들이며 마치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행동했다.여운별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온 집안을 훑어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집안 곳곳에 종이 상자, 빈 병, 고철이 쌓여 있었다. 불쾌한 표정으로 여운별이 말했다.“큰고모, 이게 다 뭐예요? 왜 제 집에 이런 쓰레기를 쌓아두신 거죠? 이거 당장 치우세요! 제가 며칠 집에 없었다고 해서 이 집이 고모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여긴 제가 월세를 내고 있는 제 집이에요.”여미란은 여운별의 불만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운별아,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단다. 네 부모님이 재산을 전부 천우한테 넘긴다고 하니 네가 다시 네 몫을 찾기는 힘들 것 같고, 너도 힘들게 사는데 큰고모를 무슨 수로 도와주겠니? 그런데 나도 먹고 살아야 하잖니.”여미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우리 집은 식구도 많고 먹고 마시는 데 돈이 너
전태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같이 가줄까?”“아니요, 혼자 갈게요. 당신 일이 더 중요해요.”하예정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태윤도 굳이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성씨 가문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안심했다.호텔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하예정은 뜻밖에도 다시 여운별과 마주쳤다.여운별은 원래 별장으로 돌아가 식사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인피 가면을 벗고 집에 돌아가 원래 신분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는 도중 그녀는 마음을 바꿔 경호원들에게 관성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전태윤 부부가 자주 드나드는 호텔에서 한 번 담력을 키워보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혹시라도 그 다정한 부부와 마주치더라도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으면 자신감과 담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별은 생각했다.두 명의 경호원들은 별다른 말 없이 그녀의 요청에 응했다.그리하여 전태윤 부부가 관성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정은 또다시 변장한 여운별을 마주하게 되었다.“태윤 씨, 바로 저 젊은 여자분이에요. 저분이 서점에 왔었어요. 아무리 봐도 정말 낯익어요. 당신도 아는 사람인지 한번 봐줄래요?”하예정은 전태윤의 팔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전태윤은 여운별 쪽을 흘낏 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잘 모르겠어. 젊은 여자든 유부녀든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전태윤은 젊은 사모님들조차도 항상 멀리하며 거리를 유지했다. 남의 남편들과 비교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예정은 무언가 말하려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운별은 이미 호텔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하예정과 전태윤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부부는 VIP 통로를 통해 이동했으므로 여운별이 그들을 볼 기회는 더욱 없었다.식사 후, 부부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 2시가 되자 전태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하예정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그는 아내를 깨우고 싶지 않아 두 명의 경호원을 남겨두었다. 그녀가
전태윤은 큰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덮으며 말했다.“얼굴만 비추고 대략 30분 정도 머물렀다가 바로 자리를 뜨자. 당신은 술 마시지 말고 그 여자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좋은 건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는 거야.”“그럼 태윤 씨 말대로 30분만 머물러요. 하지만 당신 옆에 딱 붙어 있을 필요는 없어요. 내가 있는 곳엔 사람들이 알아서 몇 미터씩 떨어지니까요.”모두가 그녀가 전태윤이 애지중지하는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겨우 임신에 성공한 그녀의 아이는 매우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실수로 넘어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들이 연루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예정은 이 상황이 과도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관성 상류층 사람들은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며 아기를 낳고 나서야 모임에 나오라고 권했다.전태윤이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그 사람들이 현명한 거야.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나아.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데 간접흡연을 많이 하면 좋을 게 없잖아.”하예정이 임신한 후, 전태윤은 그녀를 사교 모임에 데려가지 않았다. 간접흡연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서였다.“그럼 그냥 안 갈게요. 아기를 낳고 나서 당신이랑 모임에 나가죠 뭐. 사실 그 여자가 누군지 저랑은 아무 관계도 없잖아요. 낯익다고 느끼긴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만난 적이 있어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 거겠죠.”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직도 서로 모르는 걸 보면 전에도 잘 안 맞았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친구가 되었겠지.”하예정은 많은 귀부인들과 잘 맞지 않았고 그들과는 가볍게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다. 그녀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그들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사실 전태윤도 아내가 사교 모임에 가지 않는 것을 더 바랐다. 만약 그녀가 참석하면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동안 옆에서 지켜야 했다. 그러
“그놈이 후회할 날이 올 거야! 분명 내가 친누나인데 이복누나인 여운초를 믿다니!”여운별은 속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한편, 하예정은 방금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젊은 주부가 정교한 인피 가면을 쓴 여운별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사실 하예정은 여운별과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했다. 변장한 여운별의 체형이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하예정의 친한 지인 범위에는 여운별이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익숙하고도 차분한 발소리가 들리자 하예정은 서점 밖으로 나갔다.“태윤 씨!”하예정은 환한 미소를 띠며 남편을 향해 걸어갔다. 전태윤은 눈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여보, 보고 싶었어.”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예정이 작게 말했다.“다들 보고 있잖아요. 매일 보는데 뭐가 그렇게 보고 싶다고 그래요.”전태윤과 함께 온 경호원 한 명이 봉투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봉투 안에는 포장된 음식이 들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서점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건넸다.전태윤이 직접 아내를 데리러 왔기 때문에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서점에 남아 가게를 봐주기로 했고 음식을 준비한 것도 직원들이 서점에서 식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전태윤은 아내의 손을 잡고 차로 향하며 물었다.“피곤하지 않아?”“안 피곤해요. 저 그렇게 약하고 여리지 않아요.”하예정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답게 단호히 말했다.전태윤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었다.“그럼, 우리 아내가 얼마나 강하고 대단한데.”“말만 번지르르하네요.”전태윤은 그녀를 차에 태웠다. 하예정이 올라타자 그도 따라 탔고 문을 닫은 뒤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는 아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벌로 뽀뽀 한 번 해줘야겠네.”하예정이 그를 살짝 밀어내며 작게 말했다.“사람들이 웃어요.”“아참. 방금 당신 오기 10분 전
용태호는 여운별에게 약속했다.만약 예씨 가문 사모님의 양자가 자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임이 확인되어 그 아이를 데려오게 되면 여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여운별에게 넘기겠다고 했다.뿐만 아니라 전씨 가문의 큰 며느리도 여운별에게 맡기겠으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용태호는 자신이 뱉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이 끝난 후 여운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지만 그녀는 용태호가 자신을 위해 전씨 가문과 소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것이라고 허황한 꿈을 꾸고 있었다.경호원들 또한 용태호의 진짜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운별을 감시하고 돕는 역할만 맡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그녀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 그들한테는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운별은 용 사장을 위해 일할 동기를 잃을 게 뻔했다.여운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알겠어요. 하지만 왜 저한테 이렇게 냉정하고 무정하게 대하는 거죠? 사람들 앞에서는 저를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할 거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에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마치 관리인처럼 그녀를 철저히 통제했다. 그들은 싸움에도 능했고 여운별은 그들과의 대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한 번은 그녀가 용태호에게 그들에 대해 고자질했지만 용태호는 그녀에게 경호원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고만 조언했다.“그들은 무식하고 자비를 모르는 자들이야. 손에 피를 묻혀본 경험도 많지.”이 말에 겁이 난 여운별은 다시는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경호원 중 한 명이 냉정하게 말했다.“오늘 당신은 새로운 얼굴로 하예정 씨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운별의 신분으로 돌아가 언니를 다시 한번 도발하세요. 그들이 여운별의 소식을 놓치면 곧바로 사장님의 부인 신분을 의심할 겁니다.”여운별이 실종된 상태에서 낯선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 갑작스레 나타난다면 두 사람을 연결 지으려는 의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여운별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
전태윤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자 여운별은 급히 좌석에 몸을 낮추어 바깥에서 그녀를 볼 수 없도록 했다.사실 전태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지만 여운별은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볼까,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들통날까 걱정했다.하예정이 그녀를 감옥에 보낸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방심해 하예정의 무술 실력을 몰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하예정 뒤에 전태윤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여운별 역시 용 사장을 등에 업었지만 전태윤의 전용 차량을 보기만 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숨고 싶어 했다.전태윤의 차량이 지나가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고개를 돌려 의자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여운별을 발견했다. 바깥에서 보면 마치 뒷좌석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지금 뭐 하는 겁니까?”경호원이 불만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여운별은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몰래 살폈다. 전태윤의 차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안도하며 자세를 바로 세우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급히 몸을 숨기느라 옷이 약간 구겨졌는데 모두 명품 옷이라 그녀는 저절로 조심스럽게 다뤘다.“방금 지나간 차들, 누구 차인지 아세요? 그 롤스로이스는 전태윤이 자주 사용하는 차량이에요. 뒤따라온 차량들은 그의 경호팀 차량이고요. 그의 경호팀은 항상 그를 따라다녀요.”여운별은 긴장한 얼굴로 설명했다.전태윤이 경호팀을 대동하는 이유는 과거 그의 열렬한 팬들이 과도하게 따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결혼 후에도 그는 경호팀을 유지했는데 이는 젊은 여성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아내의 오해를 사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특히 과거 도차연 사건은 전태윤과 하예정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전태윤과 도 대표가 사업을 논의하면서 도차연에게 접근할 기회를 줬고 하예정의 자리를 넘보고 있던 도차연은 전태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자를 찾아 애정 행각이 담긴 사진을 찍어 하예정에게 보냈다.경호원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자신의 얼굴을 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