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르신은 웃었다.“맞아. 우빈이가 너무 신나게 놀 때면 네 생각 퍽이나 하겠다.”전호영은 우빈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셋째 작은 아버지를 달래면 되잖아. 사실 내가 너무 괴로우면 어떡해.”우빈은 그 큰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엄마도 작은 이모도 말씀하셨어요. 거짓말 하지 않는 정직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요.”우빈이는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엄마와 작은이모가 가르친 말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하예정도 웃었다.“맞아, 맞아. 우리 우빈이는 성실한 아이야. 거짓말하지 않는 착한 아이지.”우빈은 하예정의 품속으로 들어갔다.하예정은 우빈이를 안아 자신의 허벅지에 앉혀놓고 전호영에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어떡해요? 우빈이 마음속 순위가 이렇게 뒤처져서. 아홉째 도련님도 호영 도련님보다 앞순위에 있는걸요. 우빈이는 지율 삼촌도 많이 찾고 있는데 셋째 작은 아버지는 입 밖에 꺼낸 적도 없어요.” 전호영은 우빈이와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빈이와 놀아줄 기회도 적었다.전지율은 우빈이와 함께 미친 듯이 놀아준 적 있었기 때문에 녀석은 지율 삼촌을 기억했다. 심지어 하예정에게 언제 지율 삼촌과 놀 수 있냐고 묻기까지 했었다.전호영은 차에 올라 운전하면서 말했다.“형수님, 앞으로 우빈이를 데리고 자주 관성 호텔로 놀러 와. 와서 밥 먹으면서 자주 놀다 보면 금방 친해져. 자주 놀러 와.”하예정은 웃음 지었다.“도련님은 아마 관성 호텔에 너무 오래 있지 않을 걸요.”전호영은 웃을 뿐 말을 잇지 않았다.할머니가 주신 시간은 1년이었고 지금은 이미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전호영이 더 힘을 쓰지 않는다면 그는 아마 이번 설에는 서원 리조트의 문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곧 세 사람은 공항으로 도착했고 비행기에 탑승했다.그제야 전호영은 공항에서 돌아왔다.전호영은 호텔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고 씨 그룹으로 차를 돌렸다.고 씨 그룹은 전 씨 그룹과 달리 주6일 출근이 아니라 매주 일요일만 휴식했다.전호
고현도 전호영과 악수를 하고는 자리에 앉으라고 손으로 표시했다.남자 비서가 책상으로 걸어가며 고현을 도와 그녀가 아직 다 마시지 못한 커피 한 잔을 고현 앞에 살포시 내려놓으며 말했다.“고 대표님, 이만 나가겠습니다.”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남자 비서가 사무실에서 나갔다.고현은 전호영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그 둘은 서로의 표정에서 뭔가를 탐구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보아냈다.“전 대표, 마음에 드는 집은 있어요?”고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현은 관심 있는 듯 물었지만 사실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다.전호영이 갑자기 회사에 찾아온 이유를 몰랐다. 두 사람은 아무런 친분도 없었고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여전히 사업상의 경쟁자이기도 했다.고현은 전호영이 찾아오게 된 의도를 알 수 없었다.그러나 직접 물어보지는 않고 화제를 돌릴 겸 집 문제에 관해 물은 것이다.두 사람이 두 눈 뜨고 끔뻑끔뻑하며 어색해하기보다는 나았다.“네. 맘에 드는 집을 찾았어요.”전호영은 시선을 피했고 고현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전호영은 비서가 따라준 물잔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 마셨고 잔을 내려놓으며 고현에게 인사했다.“제가 여의 저택의 집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고 대표의 도움 덕분이에요. 인사를 표할 겸 같이 식사하고 싶은데 시간 되세요?”“별 말씀을요. 제가 도와드린 것도 없는데요. 그리고 점심에 약속 있어요.”고현은 핑곗거리를 만들어 전호영의 식사 초대를 거절했다.전호영은 웃었다.“괜찮아요. 고 대표가 시간 날 때 제가 다시 밥 살게요. 고 대표가 저를 도와줬는데 이 보답은 꼭 해야죠. 저도 신세 지는 게 불편해요. 저에게 보답할 기회는 줘야죠. 제가 매일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고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내일 어때요? 우리 회사가 쉬는 날이라 저도 여유 좀 있어요.”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고현의 일정은 꽉 차 있었다. 전호영이 신세 갚을 시간을 짜내기 어려웠다.고현은 자신이 전호영을 도와줬다고 여기지 않
전호영은 눈을 반짝이고는 웃으며 물었다.“고 대표가 몇 번이나 갔다는 건 우리 하루 호텔이 나쁘지는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고현은 인정하는 말투로 대답했다.“전 대표가 하루 호텔을 운영하기 전에는 하루 호텔이 모든 면에서 고성 호텔보다 뒤떨어져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요식업을 운영한 뒤로 하루 호텔은 3개월 만에 고성 호텔과 같은 서열순위로 등극했어요. 수평이 같게 된 셈이죠.”“저는 고 씨 그룹의 실제 운영자이죠. 요식업은 제가 직접 책임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주인으로서 그룹 아래 모든 산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어요.”“일개의 고성 호텔보다 못한 호텔이 갑자기 우리를 쫓아왔으니 제가 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서로를 잘 알아야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었다.지금은 하루 호텔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지만 고성 호텔은 하루 호텔을 더 이상 초월할 수 없었다.고 씨 그룹의 요식업을 담당하는 대표이사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고성 호텔은 강성에서 수십 년을 운영해 온 오래된 브랜드였다. 하지만 전 씨 그룹이 투자 운영한 하루 호텔은 고성 호텔 성립시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게다가 지금은 강성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실력 있고, 가장 핫한 고성 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고현은 몰래 하루 호텔을 알아봤다. 하루 호텔도 특별히 다를 바가 없었다.가장 우수한 서비스에 음식은 물론, 실내 인테리어도 바꾼 후로 분위기 있고 고급스러운 환경을 갖추었다.고현은 하루 호텔이 강성에서의 지위를 인정했고 전호영의 능력을 인정한 거나 다름없었다.전호영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대표가 저번에 우리 하루 호텔에 들어가셨을 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들어가셨을 거예요. 내일 제가 댁으로 모시러 갈게요.”“이번에는 제가 하루 호텔로 초대해서 함께 당당하게 들어가요. 그리고 앞으로도 고 대표가 입맛을 바꾸고 싶으실 때도 자주 오세요. 제가 할인 가격으로 드릴게요.”“전 대표가 공짜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고현도
“고 대표가 구매한 액수보다 이백만 원 더 싸게 샀어요.”고현은 말이 없었다.‘이백만 원이라도 싸게 산 거면 저렴하게 산 거지 뭐.”“고 대표, 부탁 하나 더 해도 될까요?”전호영은 고현의 멋있는 얼굴을 멈출 수 없이 자꾸 보게 되었다.전호영은 마음속으로 만약 자신이 여자라면 아마 고현에게 빠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너무 매력적이었다.여성 옷에 긴 머리를 하고 화장한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말씀하세요. 전 대표의 말이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을 뿐 마음속으로는 전호영이 참 귀찮다고 생각했다.강성은 전씨 가문의 영역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전씨 그룹의 사업이 적지 않았다.전호영도 이곳에서 일을 많이 했고 인맥도 많았을 텐데 전호영을 도울 사람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별장은 이미 샀지만 실내 인테리어 하는 디자인회사가 필요해요. 혹시 고 대표에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씨 그룹도 부동산과 관련된 업무가 있을 테니 고 대표가 분명 저를 도울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고 대표에게는 쉬운 일이죠?”“그러죠. 사람을 시켜 준비해 드릴 테니 그때 가서 원하시는 실내 인테리어를 말씀해 주시면 돼요.”전호영은 또 고맙다며 한바탕 칭찬했다.그리고 또 말했다.“고 대표에게서 또 도움을 받다니, 또 신세를 지게 됐네요. 고작 식사 한 끼로는 이 은혜를 갚지 못하겠네요.”“강성이 해안 도시라서 생선도 너무 맛있어요. 날씨도 더운데 내일 저와 함께 바닷가에 가서 서핑도 하고 바다도 밟아보고 수영도 하면서 생선도 먹어보는 건 어때요?”같이 수영하면 고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별말씀을요. 제가 도와드린다기보다 저의 사업을 위해 손님을 끌어들이는 거나 다름없어요. 무료로 해드리는 것도 아닌걸요.”“저는 주말 휴식 시간에는 보통 집에서 늦잠을 자요. 밖에 잘 나가지 않아서 같이 못 갈 것 같아요.”고현은 변장을 잘하지만 바닷가에 가서 아무리 변장을 잘한들 옷 벗으면 들통날 게 뻔했다.고현이
고현은 곧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전호영에게 전화하려 했다.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고현도 나가서 기분 전환 겸 바람을 쐬어 본 지도 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누군가 자신과 함께 승마하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잠시 조용히 앉아있던 고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쌍둥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고빈이가 전화를 받자 고현은 말했다.“고빈아, 전 대표가 이번에 강성에 온 진짜 이유를 좀 알아봐 줘.”고빈은 본능적으로 되물었다.“전호영이 강성에 왜 왔겠어? 사업상으로 여기에 올 수도 있잖아. 정상 아니야?”“정상으로 보이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고현은 전호영이 고의로 자신에게 접근한다고 추측했다.“왜, 뭐가 이상해? 누나, 전호영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들 쌍둥이는 10분 차이 남매지만 고현은 마치 10년 연상인 듯 일을 더 잘했다.따라서 고빈도 누나의 말이라면 언제든 진지하게 들었다.고빈은 가끔 고현이가 형으로 태어나길 바랐다.그렇게 되면 고빈은 후계자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현도 여자로서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 시집을 멀리 가게 된다면 회사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결국 고빈이가 가업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나도 모르겠어. 전 대표가 이번에 강성으로 온 게 참 이상하게 느껴져. 그래서 조사해보라고 부탁한 거야.”“전 대표의 말로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결혼을 재촉받아 너무 힘들어서 여기로 피난 온 거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해.”고빈은 피식 웃었다.“누나, 전 대표의 말이 백 퍼센트 사실이야. 나도 들었어. 그 집안 어르신이 형제 몇 명을 주시하고 있대. 결혼하라고 어찌 잔소리인지. 전 씨 큰 도련님은 이미 결혼했고 얼마 전에 둘째 도련님도 약혼했거든.”“전 씨 셋째 도련님인 전호영이 결혼 재촉에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어. 전호영은 둘째보다 겨우 3개월 어리기 때문에 이렇게 결혼
“누나는 어쩜 남장도 이렇게 멋있을 수가 있어? 여자들이 누나를 보기만 하면 누나에게 반할 것 같아. 전호영 혹시 게이 아니야? 누나의 훌륭한 외모에 빠져서 누날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몰라.”고현은 표정이 삽시에 어두워졌다.“넌 먼저 전호영이 찾아온 이유나 좀 알아봐. 그리고 사생활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응, 지금 가서 알아볼게. 누나도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마. 단순히 우리 집이랑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찾아온 걸 수도 있잖아. 누나는 지금 우리 가족의 대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 그래서 누날 찾아온 걸 거야.”고현은 생각하더니 말했다.“우리 두 회사는 큰 모순이 없어. 그냥 라이벌 관계로 생긴 작은 모순뿐이야. 꼭 날 찾아올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아무튼 누나의 성별을 의심하는 건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마, 내가 바로 가서 알아볼게.”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면 누나는 고민할 게 뻔했다.고현은 응하고 동생과의 통화를 끝냈다. 쌍둥이 동생에게 일을 맡긴 이상 그녀도 잠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로 돌아와 앉아 계속하여 일에 몰두했다....관성, 노씨 일가.아내에게 버림받은 전태윤은 경호원을 거느리지 않은 채 홀로 롤스로이스를 몰고 노씨네 저택으로 들어섰다.노씨네 집사가 인기척을 듣고 나오다가 전태윤의 차량을 보고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태윤 도련님, 오셨습니까?”집사는 차 앞에서 기다리다가 전태윤이 차에서 내리자 인사를 건넸다.전태윤이 차에서 보양식 박스를 꺼내는 것을 보고 집사는 급히 그의 손에서 그 박스를 받아서 들었다.“동명이는 어때요?”전태윤은 걸으면서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노동명은 퇴원 후 노씨 일가의 고택으로 돌아갔다. 고택은 면적이 넓어 큰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큰 마당에서 산책하면 기분 전환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노동명을 언급하자 집사는 웃음을 거두고 한숨을 쉬었다.“동명 도련님은 퇴원 후 성격이 더 까
“동명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제가 가볼게요.”“넷째 도련님은 뒷마당에 혼자 계십니다. 우리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시는데... 혼자 조용히 있고 싶으니 모두 방해하러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그 말에 전태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집사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먼저 노진규 부부를 만나 인사를 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전태윤은 일어서며 말했다.“전 이만 동명이를 보러 가보겠습니다.”노진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가봐, 너희들은 가장 친한 친구이니 아마도 동명이도 너를 만나고 싶어 할 거야.”“태윤아, 네가 동명이에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해봐 봐. 퇴원하자마자 일어서려고 조급해하는데, 바로 당장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윤미라의 얼굴은 온통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렇게 성급하게 굴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지는 않을까 두려워...”“제가 동명이를 잘 설득해 볼게요. 뒷마당에 동명이를 보러 가보겠습니다.”안채를 나온 전태윤은 뒷마당으로 향했다.그는 자주 노씨 일가의 고택에 찾아온 경험이 있어 집안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안내할 필요가 없이 혼자 뒷마당으로 향했다.가까이 다가가자 혼자 잔디밭에서 걷는 연습을 하는 노동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다리 부상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일어날 때마다 지독한 통증을 견뎌야 했다. 노동명은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다리를 떨면서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발이 풀밭에 닿을 때마다, 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제자리에 한참을 서 있어야만 다른 한쪽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종종 겨우 두 걸음만 걸어도 풀밭에 벌렁 나자빠지기 일쑤였다.잔디 위에서 걷는 연습을 하기로 한 것도 넘어져도 크게 아프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넘어진 후 다시 일어서려면 정말 힘들었지만 노동명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버텼다.홀로 연습하는 노동명의 이마와 얼굴에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고, 이내 땀방울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졌다.또한 통
전태윤은 어쩔 수 없이 노동명을 서늘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는 휄체어를 밀며 말했다.“너 여기 계속 혼자 있다가 이제 해가 점점 더 강렬해지거든 더위를 먹을 거야.”“아까 내가 왔을 때만 해도 그늘이 져 있었어.”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가 점점 중천으로 떴다.“휠체어 뒤에 물과 휴지가 있어.”노동명의 말에 전태윤은 급히 휠체어 뒤에 달린 주머니에서 물 한 병을 꺼내어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또 휴지를 꺼내어 땀을 닦게 했다.“너 연습하는 건 좋은데 시간을 가려서 해. 아침과 저녁이 가장 적합한 것 같아. 그때는 해가 그렇게 맵지 않고 시원하잖아.”노씨 일가의 뒷마당에는 나무가 많아 녹음이 우거진 데가 많고 비교적 시원한 편이었다.“그리고 너 이렇게 혼자 있으면 안 돼.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도 몰라.”노동명은 땀을 닦고 물을 반병쯤 마신 후 말했다.“휴대폰 가지고 있어 괜찮아. 버티기 힘들거든 전화하면 돼. 그럼 날 집에 데려다줄 거야. 나 빨리 회복해서 스스로 일어나서 걷고 싶어, 다시 예진이 가까이 가고 싶어.”하예진을 생각하자 노동명은 또다시 마음이 급해졌다.주형인은 현재 ICU에 누워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하예진을 빼앗아 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하예진이 점점 더 우수해짐에 따라 그가 재활치료를 하는 동안 그녀에게 대시하는 다른 남자가 나타날까 봐 걱정됐다.하루라도 하예진을 데려오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었다.“동명아, 나도 네가 빨리 회복하여 평소와 같이 일어서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지만, 너무 조급해해서는 안 되는 거야. 의사 말 못 들었어?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잖아. 이렇게 조급해하다가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그리고 처형 쪽도 걱정할 필요 없어, 당분간 옆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날 리 없으니까. 처형은 지금 돈벌이하느라 바빠서 전혀 감정에 관한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거든. 게다가 처형은 자기가 재혼할 마음이 없다고 계속 강조하거든.”전태윤은 열심히 친구를 달랬다.하지만 노동
모두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소 대표님한테 매수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소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윤하에게 잘 어울려요.”코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도 우리 윤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주로 만나본 젊은 남자들이 우리 말고는 좋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사장님과 사모님도 얼마나 걱정하세요. 만약 소 대표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소 대표님과 윤하가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 윤하가 왠지 소 대표님께 남녀 간의 정이 없다고 느껴져요. 윤하가 우리를 대한 것처럼 똑같이 소 대표님을 대하는 것 같아요.”정혁주는 코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도장에는 여성 후배들도 많지만 유독 정윤하가 정혁주를 무척 걱정시켰다.정윤하는 습관적으로 남자들과 형제 사이로 지냈기에 그들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그들도 정윤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대방이 무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을 남자들은 정윤하의 “명성”을 듣더니 심지어 몰래 도장에 가서 정윤하를 지켜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막강한 실력을 보더니 정윤하를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결국 투항하게 되었고 다른 맞선남들과 마찬가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이로 하여 뒷부분의 맥락은 그대로 뚝 끊기게 되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너희도 사실 소 대표님의 재력에 넘어간 거야. 나조차도 좋게 느껴지는데 너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소 대표님의 재력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야. 우리도 자기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런데 소 대표님은 꽤 좋은 사람이긴 해. 우리 윤하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너희들도 장난치고 있는 걸 알기에 나도 너희들 탓하지 않아. 우리 전부 윤하를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내가 소 대표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그분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너희들의 말처럼 윤하 계집
“들어가요. 밖이 너무 추워요.”정윤하는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는 소지훈을 도장으로 가자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를 따라갔다.도장의 사람들은 정윤하가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두 사람이 썸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 꼬맹이들조차 정윤하가 안고 있는 그 꽃다발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정윤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코치님, 이 꽃다발이 정말 아름다워요.”“코치님, 바비큐 드실래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코치님, 지훈 아저씨가 선물한 꽃이죠? 왜 코치님께 꽃을 주세요?”정윤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많이 먹어. 다 먹어도 돼. 지훈 아저씨가 나에게 따로 준비해 줬거든. 너희 지훈 아저씨가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나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선물해줬어. 어때? 예쁘지? 나도 이 꽃다발이 너무 예뻐서 좋아.”학생들은 꽃다발이 예쁘다고 연신 칭찬했다.정윤하의 사제들은 헤벌쭉한 정윤하를 보고는 또 여우처럼 웃고 있는 소지훈을 보더니 결국 모두 정혁주를 일제히 쳐다보았다.정혁주는 정윤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평소에 앉던 테이블에 앞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보이차도 곁들여 마셨다.“선배님.”몇몇 코치들이 정혁주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었다.“소 대표님이 우리 윤하에게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정윤하의 표정을 보면 고백받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소 대표님이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의 꽃이 예쁜 것을 보고 윤하에게 선물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설픈 이유도 윤하가 믿다니, 참! 저렇게 멍청한 꼴을 보니 사람들에게 팔려가도 돈을 세어줄 기세인데.”“윤하가 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답고 털털해서 그래요. 소 대표님만큼 신중하지 못하잖아요. 소 대표님이 윤하에게 직접 고백하지 않는 한 윤하는 분명 별생각 하지 않을걸요.”“어휴, 윤하가 소개팅마다 실패하고 시집을 못 가는 데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정혁주는 아예 보이차 한 병씩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보이차를 나누어 주면서 소지훈은 학생들이 정윤하 앞에서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매번 큰돈을 퍼부었다.소지훈은 도장으로 올 때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맛 나는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또 각자의 몫도 전부 챙겨주었으며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사 올 때도 있었다.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도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정윤하의 말대로 그녀의 수입으로 전체 도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주면 몇 번이나 사줄 수 있겠는가!정혁주는 도장의 여러 코치 중에서 수입이 가장 높지만, 소지훈처럼 돈이 많지 않았다.역시 대기업 대표답다!정혁주가 보이차를 나누어 줄 때 밖에 서 있는 두 바보를 유의하여 보며 마음속으로 소지훈은 아마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연성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서 왔을 것이다.소지훈은 지금 출장 중이지만 저녁에 약속도 없이 도장으로 온 것을 보면 아마 출장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정씨 저택에 남아서 설을 쇠려고 하는 모양인데...정윤하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소지훈은 정윤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지훈은 기어코 그녀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외치며 다녔다.정혁주는 정윤하가 오지랖이 넓고 너무 빨리 움직여 소지훈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지훈의 실력으로 그날 밤 그 건달들 정도는 아주 쉽게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지훈의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정윤하는 소지훈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그리고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본 소지훈은 천 리 길을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정씨 가문은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성 전씨 가문의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몇 번만 뒤져봐도 관성 전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실 시간은 아직 이르다. 다만 겨울에는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빨리 어두워질 뿐이다.정윤하의 수업도 마침 끝났다.“지훈 아저씨 오셨어.”한 학생이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밖으로 나오지 마. 바람이 많이 불어.”소지훈은 웃으면서 소리쳤지만, 학생들은 모두 뛰쳐나갔다.소지훈은 이내 사 온 간식 몇 봉지를 큰 학생들에게 건네고 포장된 바비큐는 조금 작은 학생들에게 건네주어 도장 안으로 들여보냈다.정윤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면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소지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아저씨가 오시기 전에는 제가 도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이제 아저씨가 가장 인기가 많네요.”정혁주도 따라 나와 정윤하의 말을 이었다.“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소 대표님처럼 시원스럽게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다시 널 좋아하게 될걸.”“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월급이 쥐꼬리밖에 안 되는데 음식을 몇 번 정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회사의 대표잖아. 난 절대로 이 방면에서 아저씨와 다투지 않을 거야. 이런 일들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 음? 눈이 오는 것 같아.”정혁주도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눈이 오는 것 같긴 하네. 근데 뭐가 이상해?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올 텐데, 정상이잖아.”“형님, 얼른 오세요. 보이차 몇 상자 드릴게요. 바비큐를 사 왔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까 봐 몇 상자 사 왔어요.”소지훈은 보이차 상자를 들면서 정혁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정혁주는 차를 향해 다가갔고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소지훈이 그들 정씨 가문의 저택에 오래 머문 덕분으로 정씨 집안 가족들이 소지훈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게 되었다.소지훈은 냉혹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냉혹한 면을 정씨 가문의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적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그들도
소지훈은 잠시 일을 멈추고 비서를 올려다보았다.비서가 꽃다발을 안고 걸어왔다.“저기 탁자 위에 올려 주세요.”“알겠습니다.”비서는 꽃다발을 안고 돌아서서 소파로 가더니 그 꽃다발을 탁자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는 몸을 곧게 펴고 소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소 대표님, 또 분부하실 일이 있으십니까?”“당분간 없어요.”“그럼, 일 보러 나가겠습니다.”비서는 소지훈이 머리를 숙이고 서류를 처리하는 것을 보더니 사무실에서 나왂다.소지훈은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컴퓨터를 꺼버린 뒤 휴대전화와 자동차 키를 챙겼다. 그의 정윤하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새로 차 한 대를 뽑았다.그는 다가가서 장미 꽃다발을 집어 들고 잠시 바라보더니 그가 이전에 성소현에게 아무렇게나 샀던 꽃다발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꼈다.다음에 그는 직접 꽃을 사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꽃 한 다발만 샀는데 부족하지 않을까?”소지훈은 소정남이 평소에 심효진에게 꽃다발과 액세서리를 자주 선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하지만 지금 정윤하에게 보석을 선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고 또한 정윤하도 그런 선물을 받지 않을 것이다.소지훈은 별장과 차를 정윤하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정윤하가 받아줘야 말이지...“먼저 시험해 보지 뭐.”소지훈은 혼자 중얼거렸다.먼저 꽃다발을 선물하여 정윤하의 반응을 보고 그녀가 기뻐하면 천천히 다른 선물을 주려 했다.천천히 다가가야 한다.비록 소지훈과 그의 부모님은 모두 마음이 조급해 정윤하를 빨리 소씨 가문에 데려가고 싶어 하지만 마음이 급하면 아무 일도 성사시키지 못할 게 뻔하다.소지훈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을 나섰다.“소 대표님.”“퇴근할게요. 저녁때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전화하지 마세요.”소지훈과 정윤하가 친분을 쌓는 데 영향을 주지 말라는 의미였다.일이 아무리 중요한들 그의 결혼에 관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점이다.다른 사람들은 연인과 헤어져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소지훈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