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대표는 급히 전태윤의 말을 끊고는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했다.“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이미 마쳤고 저는 기꺼이 협력할 것입니다. 저도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라 딴말하지 않을 테니 전 대표님도 포기하지 않으시길 바라요. 차연이가 한 일은 제가 돌아가서 엄중히 처리할 것입니다. 우리 두 회사가 협력하는 동안 다시는 전 대표님의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주시하고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도록, 전 대표님에게 다시는 매달리지 않도록 주의할게요.”그는 딸을 100%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애지중지하며 키운 딸은 여태 훌륭하게 자라줬고 그들 부부가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이니 유부남을 좋아해서 여생을 망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전태윤도 침착하게 말했다.“저는 도 대표님을 믿습니다. 프로젝트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테니, 도 대표님은 말하신 대로 따님 단속을 잘해주셨으면 합니다. 따님도 아주 훌륭한 사람이니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그러니 더 이상 나 같은 유부남에게 매달리지 말라고.’도씨 그룹과의 협력은 이 프로젝트뿐이다.앞으로 다시는 협력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이번 프로젝트도 하예정의 만류로 마지못해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으니까.전태윤은 이번 프로젝트를 더 이상 직접 팔로우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앞으로 도 대표와의 접촉 기회를 줄이고 싶었다.“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도 대표는 그의 요구에 연거푸 응했다.이런 일이 생긴 이상 계속 앉아 있기도 언짢았다.그는 전태윤에게 사과를 전했다.“전 대표님,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또 하예정에게도 사과했다.“사모님, 오해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 딸은 전 대표님과 정말 딱 한 번 만났을 뿐입니다. 전 대표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없고요, 다만 예의상 악수를 했을 뿐입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전 대표님, 전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도 대표는 일어나서 작별
하예정은 남편에게 잡힌 손을 다급하게 빼냈다전태윤이 불만스러워하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그를 상기시켰다.“호영이하고 우빈이 둘 다 여기 있잖아요.”전태윤은 동생과 조카를 바라보았다.전호영은 주우빈에게 음식을 집어 주고 있었다. 어린 녀석이 자기 젓가락으로 그릇에 담겨 있는 반찬을 집으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어른들의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우빈아 집을 수 있어? 아니면 삼촌이 먹여줄까?”전호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옆에 있는 꼬마에게 물었고 맞은편에 있는 형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는 자기가 커플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전태윤은 전호영이 자기 부부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싫었겠지만 전호영도 형인 전태윤이 자꾸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꼴 보기가 싫었다.“삼촌 제가 할게요.”우빈이는 전호영이 먹여주겠다고 하는 걸 거절했다.하예정은 국 한 그릇을 떠 우빈이의 앞에 놓아주었다.“우빈아, 국도 먹어.”“고맙습니다, 이모.”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먹고 싶은 건 삼촌한테 집어달라고 해”그런 다음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여보는? 아직 배 안 불렀죠?”그녀는 세 사람이 비즈니스 얘기를 하느라 별로 먹지 않은 식탁 위의 요리들을 바라보았다.“아직, 우리 국만 조금 먹었어.”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고 하예정도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세 사람과 우빈이는 즐겁게 식사하며 배를 채운 뒤 전태윤은 호텔에 남에 휴식도 하지 않고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우빈이도 열이 내렸으니 하예정도 우빈이를 데리고 전태윤과 함께 회사로 향했다.한편 도 대표는 본인의 별장으로 돌아와 문에 들어서자마자 도우미에게 물었다.“차연이는요?”도우미가 대답했다.“지금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계십니다”도 대표는 꽃다발과 새 옷을 소파 위에 올려놓은 뒤 실내 수영장으로 향했다.도차연은 마치 물고기처럼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 수영장 끝으로 헤엄쳐왔다.“아빠 일찍 돌아오셨네
도 대표는 딸에게 타월을 건넨 후 몇 마디 남기고서는 뒤 돌아 자리를 떠났다.도차연은 손을 뻗어 타월을 받아 들고서는 뒤 돌아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예측했다.어쩌면 전태윤은 그녀가 자기를 유혹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에 협력을 취소했을 수도 있었다.도씨 그룹의 프로젝트는 두 회사에 큰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윈윈인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수많은 회사에서 그들과 손잡고 싶어 했다. 전태윤도 사업가인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이런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까?도차연은 수영장에서 나와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바꿔 입은 뒤 거실로 향했다.거실에 도착하니 아빠가 분노를 억누른 채 소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발견했다.아빠의 앞에는 꽃다발과 쇼핑백들이 놓여 있었다.“아빠, 누구한테서 선물 받은 거예요? 아빠한테 온 거예요? 아니면 나한테?”도차연은 걸아가면서 물었다.“누가 아빠한테 선물한 거면 난 엄마한테 말할 거예요.”그녀는 아빠의 옆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회사를 물려 받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엄마를 도와 아빠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지는 않는지 감시했다.그녀의 엄마는 아빠가 아들을 갖고 싶어 밖에서 다른 여자와 아들을 낳을까 봐 걱정했다. 엄마는 이미 나이가 많으니 더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고 엄마는 딸인 도차연밖에 낳지 못한 걸 아빠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아빠의 건강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엄마는 아빠가 오랫동안 꾸준히 건강을 잘 관리했다고 했다. 엄마가 둘째를 낳지 못하는 건 나이가 많아서이기 때문에 아빠가 젊은 여자와 함께 아들을 낳지는 않을까 하는 말을 자주 했었다.그녀의 엄마는 평생 자식이라고는 도차연 하나였다. 그것도 딸이었기에 남편이 다른 사람들의 꼬드김에 의해 밖에서 아들을 낳아 도씨 그룹을 물려주기 위해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히 그녀는 자기 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밖에서 바람을 피워 아들을 낳는 것을 막았다.“너 이 꽃다발에 대해 몰라? 이 옷들은 기억 안 나니?”도 대표는
“전 대표의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말하지 마라. 두 사람 이제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됐어. 두 사람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서 당분간 아이를 갖지 않는 건 아주 정상적인 상황이야.”“넌 네가 어떻게 태어난 줄 알아? 아빠가 수많은 의사를 만나지 않고 셀 수 없이 많은 약을 먹지 않았다면 네가 태어났을 것 같아? 차연아 너 그냥 입 다물고 있어. 사람은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어. 나와 네 엄마가 아이를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도차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전태윤은 너한테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 전태윤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너한테는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 그렇게 쉽게 꼬실 수 있는 남자라도 네 차례는 오지도 않았을 거야. 애초에 성씨 가문의 딸이 전태윤에게 푹 빠졌었어. 성씨 가문의 딸도 너보다 못하지 않아.”도차연은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성소현도 나보다 별로예요. 고집스럽고 무지막지한 여자라고 관성에서도 유명해요. 집안이 나와 비슷할 뿐이지 다른 건 다 나보다 별로라고요.”도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한숨을 쉬고 또 쉬며 자기 딸이 친 자식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잠시 후 그는 힘없이 앉아 오랫동안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빠가 이 프로젝트는 협력하자고 고집했다. 전 대표를 후회하게 해서는 안 돼. 우리는 전 대표가 화나지 않도록 전씨 그룹에 이익을 양보해야 해. 하지만 이게 우리 도씨 그룹과 전씨 그룹의 처음이자 마지막 협력일 거다.”“두 그룹이 협력하는 동안 넌 날 따라서 전씨 그룹에 드나들 생각은 하지도 마. 나도 오늘부터 전 대표의 앞에 널 나타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왔어. 다시는 전 대표한테 찝쩍대지도 말고 귀찮게 하지도 마.”“차연아 아빠가 듣기 안 좋은 말부터 하는 거다. 두 그룹이 협력하는 동안 네가 아빠 말을 듣지 않고 몰래 전 대표를 귀찮게 하면 아빠는 도씨 그룹의 지분을 네 사촌 형제들에게 줄 거야. 걔들도 우리 도씨 가문의 핏줄이다
도차연은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끝내야 하는 걸까?그녀는 너무 아쉬웠다.왜 하예정은 전태윤처럼 잘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걸까?전씨 그룹, 대표 사무실휴식실에서 하예정은 자는 조카에게 담요를 덮어준 뒤 남편에게 물었다.“도 대표님이 가셔서 잘 처리할 수 있을까요? 하나뿐인 딸인데 아마 도차연 씨를 많이 사랑하실 거예요.”전태윤은 바로 우빈이를 지나쳐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바치고서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예정아 너 질투해?”그녀는 질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혼인 신고를 하고 지금까지 그녀는 한 번도 질투를 하지 않았다.전태윤도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도 소정남의 입에서 정말 많은 여자들이 그를 좋아했지만 고백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었다. 공개적으로 그를 쫓아다닌 것은 오직 성소현뿐이었고 또한 성소현은 아주 깔끔한 성격이었다.성소현은 전태윤이 하예정과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안 뒤에는 그에 대한 자기의 마음을 바로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렸다.그래서 하예정도 질투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단지 성소현에게 미안했을 뿐이다. 하예정은 자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성소현 마음에 있는 사람을 뺏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다행히 지금 성소현에게는 예준하가 있었고 하예정도 마음속의 미안한 감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하지만 전태윤은 자주 질투했고 또 하예정이 질투하는 것을 자주 보고 싶어 했다.“질투까지는 아니고 내 남편을 다른 여자가 탐낸다는 게 조금 불쾌해서요.”하예정은 그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았다. 그러고는 아주 카리스마 있게 말했다.“전태윤, 당신은 내 것이야.”전태윤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그래. 난 영원히 네 것이야. 오직 너만의 것.”그녀의 말속에 질투는 별로 없었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불쾌하게 생각했고 아주 조금 질투를 하기도 했다.이 건 그에
전태윤은 하예정의 얼굴에 뽀뽀하고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걱정하지 마. 당신 남편인 난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 하루 종일 우빈이 돌보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선 좀 쉬어.”하예정은 전태윤이 오후에 많이 바쁘다는 것을 알기에 잠깐 쉬는 동안만 그와 함께 있었다.사랑하는 아내가 옆에 있으니 전태윤은 그녀가 다른 남자의 꿈을 꾼다고 해도 기분이 아주 좋았고 업무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상대적으로 조용한 대표 사무실에 비해 부대표의 사무실에서는 전이진이 셋째를 챙기고 있었다.전호영은 큰 형을 따라 사교활동에 참가한 뒤 회사 본사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본사에 오지 않아 아무도 전씨 가문의 셋째인 그를 기억해 주지 않을까 봐서였다.“호영아, 너 여기서 지금 1시간 동안 앉아 있었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바로 말해. 형제 사이에. 바로 못 할 말이 뭐 있어?”전이진은 시계를 자꾸 쳐다보다가 자기 맞은편에 앉은 사촌 동생이 1시간 넘도록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얼마 전 봄이 되어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전화를 해서 꽃다발을 주문했다. 그는 특별히 여운초를 지목해서 자기에게 배달해 달라고 했다. 그러고서는 점원에게 그가 오늘 점심 입맛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해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말까지 했다.그는 점원이 그 말을 여운초에게 전할 것이라고 믿었다.그는 여운초가 자기에게 꽃다발과 먹을 것을 가져다주길 바랐다.그 소녀는 분명히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 형수님의 말로는 그가 A시로 떠난 뒤로 여운초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묻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럼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지만 그가 돌아와 그녀를 찾아가니 그녀는 바쁘다며 그를 피했다. 그를 마주쳐도 별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고집 센 계집애.때때로 전이진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서는 거칠게 그녀의 작은 입술에 벌을 주고 싶었다.전호영은 전이진의 사무실에 1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 있었고 전이진은 셋째 동생이 여운초와 자기 사이에 껴있는 것이 싫었다.“별거 아니
전호영이 말했다.“그래 성취감은 있겠지. 근데 내가 감정을 잡을 수가 없잖아.”“그럼 넌 그냥 고현을 아름다운 미녀라고 상상해.”“고현은 원래부터 대단한 미인이었어.”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됐네. 대단한 미녀에 가문도 우리 가문과 어울리고 너한테 아주 넘치는 사람이네. 서둘러. 그러다 다른 남자가 고현이 사실은 미인이라는 걸 발견하면 너보다 먼저 채갈 수도 있어. 그러고 나서 후회하지 마라.”“할머니의 안목을 믿어. 할머니가 모두 우리를 위해서 고른 상대야.”“내가 할머니를 믿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들 잘하고 있는데 처음에 꽃과 선물도 주고. 근데 난 뭘 선물해? 고현은 지금 남자처럼 하고 있는데. 내가 꽃을 주면 바로 다음 날에 신문에 날 거야.”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충격적인 기사로 인해 관성과 강성 전체가 흔들릴 것이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소리에 전이진은 자기의 약혼녀가 왔다고 예측했다.여운초는 자기가 전이진의 약혼녀라는 것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전이진은 온 동네에 그녀가 자기의 약혼녀라고 소문내고 다녔다. 전이진은 여운초를 위해 김씨와 최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했다. 이제 관성의 사람들도 그와 여운초의 일을 알고 있었다.단지 여운초 혼자서 인정을 하지 않을 뿐이다.“분명 제 둘째 형수님이 오셨을 거다.”전이진은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지나 손수 여운초에게 문을 열어주었다.전호영는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즐거워하는 전이진의 모습을 부러워하며 바라보았다.사랑이 정말 사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걸까?사랑에 빠져본 적 없는 전호영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못했다.전이진이 사무실의 문을 열자 역사니 여운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꽃다발을 한 손에 들고서는 다른 한 손에는 쇼핑백과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운초야, 왔어? 빨리 들어와.”전이진은 부드럽게 몸을 비키며 여운초가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
“운초야 내 동생 전호영이야. 우리 형제 중에 셋째.”전이진은 약혼녀가 전호영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목소리를 들어도 전호영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다고 생각해 먼저 설명해 줬다.여운초는 다시 한번 전호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셋째 도련님 안녕하세요.”“운초 씨 저도 그냥 호영 씨라고 불러주세요.”전이진은 전호영에게 그녀를 둘째 형수라고 말했다.여운초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꽃다발과 사 온 디저트를 전이진의 앞에 건네며 말했다.“이진 씨, 이건 주문한 꽃다발이야. 내가 갖고 왔어. 그리고 점심을 배부르게 못 먹었다고 해서 디저트 좀 사 왔는데 커피랑 먹어 봐.”전호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둘째 형이 정말 밥을 잘 못 먹은 걸까 아니면 그냥 핑계를 댄 걸까?맞다.전호영은 드디어 고현에게 접근할 핑계가 떠올랐다. 이유가 없다면 이유를 만들고 기회가 없다면 기호를 만들면 된다.전이진은 물건을 받아 들고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여운초에게 말했다.“꽃다발 갖고 오나라 힘들었을 텐데 나하고 같이 디저트 먹자. 다 먹으면 내가 데려다줄게.”“괜찮아, 난 배 안 고파. 밖에 동호 오빠가 기다라고 있어.”여운초가 말하지 않았다면 괜찮았겠지만 한동호가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전이진이 그녀를 한동호와 함께 보낼 리가 없었다.전이진이 말했다.“한 대표님도 한 번 오시기 힘들 거야. 관성에서 이틀 동안 쉬려고 온 걸 텐데 자꾸 귀찮게 하지 마. 넌 내가 있잖아. 내가 데려다줄게.”여운초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동호 오빠 나하고 일 얘기 하러 왔어. 바쁠 텐데 나 먼저 갈게.”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다가 잊지 않고 진호영에게 인사를 건넸다.“내가 아래층까지 데려다줄게.”전이진은 그녀를 따라 걸었다.“형 나도 마침 가려던 참인데. 아니면 내가 운초 씨 아래층까지 모셔다드릴까?”전호영이 말했지만 전이진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전이진은 여전히 여운초의 뒤를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
사실 전호영은 차를 세울 때 고현이 평소에 자주 타는 그 마이바흐 차를 보았다.“집 안에 있어. 들어가 봐.”진미리는 물건을 들여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전호영의 손에 물건을 전호영 손에 쥐여주었다.“난 꽃에 물을 좀 주고 들어갈게. 날도 어두워질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봐.”전호영은 자주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왔고 진작에 고씨 가문을 그의 두 번째 집으로 생각했다.전호영은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한 여자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그 여자는 고현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만약 고현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쓴다면 저렇게 예쁠 것이다.고현은 원래 긴 가발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전호영이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재빨리 가발을 쓰고 앉아 있었다.전호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그녀는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은 적 있었다.당시 고현은 그날이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고현은 지금 또 치마를 입고 있다.그녀는 전호영을 위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늘 그녀의 원칙을 깨뜨렸다.아니, 눈앞의 여자가 바로 그의 고현이었다.전호영은 씩 웃었다.그는 다가가더니 먼저 손에 들고 있던 가방들을 내려놓고 꽃다발을 고현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신님,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릴게요.”고현의 시선은 꽃다발에 가려져 더는 휴대전화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전호영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는데, 호영 씨 표정을 보니 놀라지 않은 것 같네요.”“현이 씨가 저를 위해 치마를 한 번 갈아입었을 때 제가 재빨리 현이 씨 도도한 모습을 기억해 버렸죠.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꽃다발을 받기를 기다렸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나가려고요? ”고현은 지금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착용
잠시 후, 진미리가 말했다.“됐어. 나도 상관 안 할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몇 년 더 살고 싶어.”“엄마, 저는 효녀거든요.”진미리가 입을 열었다.“난 네가 불효녀라고 말 한 적 없어. 네가 여자 신분을 회복하는 일에 엄마가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야. 더 관여하면 내가 열 받아서 죽을 것 같아. 내가 몇 년을 더 살아서 네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 것을 보려면 너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가 여자로 살든 남자로 살든 네가 개의치 않는데 나도 더는 상관하지 않을래. 내가 진작에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어.”말을 마친 진미리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엄마, 어디 가세요?”“엄마 바람 좀 쐬면서 기분 전환 좀 할게. 네 아빠한테 잔소리 좀 해야겠어.”고진호는 밖에서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그러자 고현이 말을 건넸다.“그럼 나가서 아빠에게 몇 마디 잔소리하고 오세요. 잔소리하시고 나면 그래도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실걸요.”진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꽃에 물을 주던 고진호는 진미리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현이가 연습 잘하고 있어요?”“휴, 말도 마세요. 지금에야 와서 가르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 오후 몇 시간 만에 20년이 넘는 습관을 고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고진호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그럴 줄 알았어요. 됐어요. 내버려 둬요. 현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현이가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든 상관없잖아요.”갑자기 고현이 여자라는 일이 드러나게 되면 아마 강성 전체가 뒤흔들릴지도 모른다.전화 폭격을 당할 장면을 미리 생각한 고진호도 미리 전원을 끄려고 계획했다.“현이가 드레스는 입고 싶지만, 하이힐 대신 구두를 신겠대요. 휴... 진작 알았다면 애당초 현이가 소란 피울 때 반대했야 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러 멀쩡한 딸이 아들로 변하게 되다니...”“현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게 놔둬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현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고진호는 고현이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하고 계세요. 저랑 함께 연회에 가요.”고현이 말을 이었다.“그럼 집에서 기다릴게요.”“좀 이따가 봐요.”그는 고현이 왜 반나절 휴가를 냈는지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전호영은 먼저 서둘러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간 다음 다시 얘기하려고 했다.전호영과의 통화를 마친 고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미리를 보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전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척했다.“메시지 보내는 척 하지 마.”진미리는 일어나서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고현의 휴대전화를 가져다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엄마, 저는 핸드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회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찾아야 하거든요.”고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방패막이로 삼고 싶어 했다.“회사 일 전부 고빈에게 맡겼잖아. 고빈이가 처리하게 놔둬. 빈이가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빈이는 너보다 어리지 않아. 너보다 겨우 10분 정도 어릴 뿐이야. 게다가 남자로서 빈이는 당연히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해. 남존여비라고 당연히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지.”고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그 생각은 너무 보수적이에요.”“남들에게는 보수적인 사상일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딸이 가볍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진미리는 고현 옆에 앉았다.고현은 진미리와 논쟁하려 하지 않고 바로 머리를 수그렸다.“네네, 우리 엄마는 가장 예뻐요. 우리 엄마가 하신 모든 말은 다 정확해요.”진미리는 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엄마, 또 왜요? 오후 내내 저를 노려보신 횟수가 지난 20여 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요.”진미리는 딸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꾸지람했다.“똑바로 앉아! 사나이처럼 앉지 마. 넌 지금 우리 가문의 딸이야. 고씨 가문의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리고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지 마. 어느 집 딸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는 것을 봤어?”고현은 투덜댔다.“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