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은 매일 하예진의 셋방에 찾아간다. 그래서 전태윤은 노동명이 점심때쯤에 깨어나 처형을 찾아가면 처형이 이사를 간 것을 알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전태윤의 귀에 들려온 건 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어디서 교통사고를 당한 거야? 동명이 다른 차와 부딪친 거야 아니면 다른 차가 동명의 차를 들이받은 거야? 부상은 어느 정도인데?”전태윤은 소정남의 전화를 받았을 때 마침 관성 중학교로 가던 길이었다. 와이프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려던 참이었다.심효진은 오늘 서점에 올 수 없었다. 어제 오후 내내 가게를 지킨 것을 알고 소정남은 그녀를 마음 아파했다. 사실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지만 와이프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가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심효진을 외출하지 못하게 했다.소씨 일가에서 이미 보배처럼 받들리고 있는 심효진은 얌전히 집에 있어야 했다. 가끔 친구들과 채팅을 하며 임신한 후로부터 제한을 엄청 받고 있다고 불평했다. 앞으로의 몇 개월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해 났다.“리스 팰리스 부근에서 대형 화물차를 추돌했는데, 부상이 심하대. 특히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잘못하면 다리를 영영 못 쓸 수도 있대.”소정남이 소지훈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을 때 휴대폰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땅에 떨구었다. 자신의 친구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여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고 동시에 전태윤에게 알렸다.“동명이 지금 어느 병원에 있어? 바로 갈게.”소정남은 그에게 말해주었다.어딘지 듣자마자 전태윤은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관성 중학교 말고 종합병원에 가요, 빨리요.”“도련님, 유턴하려면 앞쪽 신호등까지 가야 해요.”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교통 규칙은 준수해야 했다.십여 분 후, 전태윤이 병원에 도착했다.노동명은 아직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그의 부모님, 형수, 그리고 노씨 일가의 사람들은 모두 응급실 입구 앞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와이프에게 사실을 알려주었다.“여보, 나 못 돌아가니까 음식 배달되면 혼자 먹어. 나... 지금 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어.”이 말을 듣고 하예정은 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며 다급하게 물었다.“교통사고를 당했다고요? 당신이랑 같이 있었을 때 사고가 난 거예요? 둘이 또 술 마시러 갔어요? 음주 운전 한 거예요?”전태윤은 급히 해석했다.“그건 아니야. 오늘은 술을 안 마셨어. 어제는 술을 마셨지만 운전하지 않았는걸.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아직 몰라. 정남이가 알려줘서야 병원에 오게 된 거야. 동명은 아직 응급처치 중이래.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는데,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대.”전채윤은 괴로운 듯 말끝을 흐렸다.“저도 이제 일이 거의 끝나요. 금방 가게 문을 닫고 병원에 갈게요.”그는 아내가 오겠다는 것을 막지 않고 대신 당부했다.“운전 천천히 하고.”“경호원더러 운전하라고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동명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하늘이 도우실 거예요. 절대 별일 없을 거예요.”하예정은 남편을 이렇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전태윤은 그에 응했다.“그래, 꼭 괜찮을 거야!”그는 노동명이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여보, 뭐라도 좀 먹고 와.”친구를 걱정하면서도 전태윤은 아내에게 밥을 먹고 오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 온 후부터 밥 먹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배가 고파도 상관없었지만 하예정만은 굶게 놔둘 수 없었다.“알겠어요. 병원에 몇 사람 와있어요? 음식 포장해 갈게요.”“괜찮아. 당신 혼자 먹으면 돼. 사람을 시켜서 음식을 사 오게 할 테니까. ”전태윤의 안배를 듣고 하예정도 안심되었다.통화를 마친 그녀는 가장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고 서둘러 가게 앞에 있는 진열대를 가게 안으로 옮겼다.경호원은 그녀가 가게 문을 닫으려는 것을 발견하고 들어와서 도와주었다.몇 분 후 하예정은 경호원이 모는 차에 올라타 관성 종합병원으로 갔다.가는 길에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
“응, 데리고 가려고.”지금 당장 우빈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을 수도 없으니 아예 데리고 병원에 가는 편이 나았다.하예진은 얼른 전화를 끊고는 아들을 안고 가면서 말했다.“우빈아, 지금 동명 아저씨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엄마랑 함께 병원에 가봐야 해.”“동명 아저씨가요? 아저씨는 지금 어때요? 많이 다쳤어요?”우빈은 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듣고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며 작은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전에 하예진이 사고를 당했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다소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었다. 꼬마는 지금 많은 피가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였다.“동명 아저씨는 괜찮을 거야.”하예진은 아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우빈은 엄마의 목을 꼭 껴안았다.꼬마는 동명 아저씨가 별일 없기를 바랐다. 엄마처럼 피를 많이 흘리지 않기를 바랐다.병원에는 응급실 밖을 지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하예정 자매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전태윤이 경호원에게 부탁한 음식이 도착해 사람들에게 먼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있었다. 윤미라는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누가 어떻게 권해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젓가락을 들기만 하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도시락에 뚝뚝 떨어졌고 목구멍이 무언가에 막힌 듯해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도시락을 내려놓았다.“아직 안 나왔어요?”하예정이 전태윤의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구조 시간이 길수록 부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뜻하기에 언제든지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전태윤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별일 없을 거예요.”하예정은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속으로 노동명이 무사하기를 빌었다.윤미라는 하예진을 보자 복잡한 마음이 들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그녀는 홀연히 하예진의 손을 꽉 잡았다.하예진은 잠시 의아해 났지만 곧 위로했다.“사모님, 동명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절대 별일 없을 거예요.
윤미라가 휘청하자 두 며느리가 얼른 부축해 주었다.“어머니.”두 며느리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녀를 불렀다.“생명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좋은 시작이에요. 차차 회복될 거예요.”윤미라는 후회하며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다 내 탓이야, 내가 동명을 해친 거야. 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동명인 거야... 차라리 내가 당한 거였으면 좋겠어.”아들이 불구라도 된다면... 윤미라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엄마, 동명이 괜찮을 거예요. 의사 선생님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고요.”노씨 집안 큰 도련님도 어머니를 위로했다.노진규는 어두운 얼굴로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했다.“너희 어머니 부축해서 돌아가 쉬도록 해, 동명이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싫어요! 나 안 가요! 동명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그리고 우리 아들을 돌볼 거라고요.”윤미라는 병원에서 떠나는 것을 거부했다.아들의 수술은 끝났지만, 사람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에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아들이 이런 변을 당한 것은 모두 자신이 엄마로서 너무 과격하게 몰아붙인 탓이라는 죄책감에 떠날 수 없었다.윤미라가 자책하는 말이 사람들의 귀에 들렸다. 전태윤과 다른 사람들은 교통사고가 도대체 어떻게 발생했는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노씨 일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참기로 했다.노동명이 의사와 간호사에게 밀려 병실로 옮겨진 뒤에야 전태윤과 소정남은 노진규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침대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윤미라를 바라보던 노진규는 한숨을 내쉰 후 작은 목소리로 전태윤과 소정남에게 말했다.“밖으로 나가 얘기하자꾸나.”돌아선 후 하예진이 아들을 안고 하예정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부탁하는 말투로 하예진에게 말했다.“예진 씨, 동명이가 깨어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그는 아들이 깨어나 하예진을 보게 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예진은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럴게요.”노진규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소정남은 아내가 임신한 것을 고려하여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다.“어떻게 된 거예요? 사모님은 왜 자신이 동명을 해쳤다고 하시는 거예요?”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소정남도 노진규을 바라보며 자초지종을 말하기를 기다렸다.“어휴, 우리 잘못이야. 동명이 어제 술에 취해서 너희들이 집에 데려다준 후 미라가 동명에게 전화했었는데 받지 않아서 집사에게 전화를 해서야 술에 취한 것을 알았어. 그래서 오늘 아침, 무조건 동명을 보러 가겠다고 해서 내가 같이 갔댔어. 동명이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깨어났는데, 우리가 온 것을 보고 몇 마디도 채 하지 않고 또다시 미라랑 싸우기 시작했어. 그러다 그 녀석 더 이상 지 어머니와 싸우기 싫은지 집에서 떠났어.”노진규은 당시 일을 회상하며 아들이 교통사고가 날 것을 알았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아내를 붙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자신이 아버지로서 아내를 말리지 못했기 때문에 와이프와 막내아들의 갈등이 점점 심해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미라는 또 하예진을 찾으러 가는 거냐고 물으면서 동명이가 나가겠다는 것을 막으려 했는데 동명이는 그냥 무시하고 차를 몰고 가버리더라고. 그 때문에 미라가 화가 나서 무작정 차를 몰고 동명의 뒤를 쫓아가게 됐어. 나도 따라가서 아들이랑 싸우지 말라고 달래봤어. 동명이는 이미 서른여섯 살이 되었으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우리는 부모로서 더 이상 그 아이를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야. 너희도 알다시피 동명이는 원래 독립성이 강한 아이야. 가문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 우리가 동명이를 반대할수록 더욱 우리와 맞설 게 뻔했거든.”“...” “하지만 화가 난 미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동명이는 우리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을 보고 차의 속도를 계속해서 올려 끊임없이 다른 차를 추월했는데 차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대형 화물차와 추돌하고 만 거야. 당시 앞에는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었고, 대형 화물차는 속도를 줄여 정차하고 있었거든. 우리가 쫓지만 않았더라면 동명이도
그들은 노동명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지지하고 있었지만 하예진은 정말 재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고 노동명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윤미라가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포기하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설사 하예진이 노동명의 구애에 동의한다고 해도 시어머니가 반대하는 한 행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한쪽은 가장 친한 친구이고, 다른 한쪽은 처형이라 전태윤도 중간에서 꽤 난처했다. 친구에게 포기하라고 설득하면 친구로서 지지해 주지도 않는다고 할 것 같았고 처형에게 친구의 마음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다면 마치 처형을 자기 손으로 불구덩이에 빠뜨리는 것 같았다.전태윤은 두 사람 사이의 문제는 예전의 자신과 하예정 사이의 감정 문제보다도 더 까다롭다고 느꼈다.노동명이 하예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사고를 당했을 때였고, 지금은 그녀도 이미 회복되었지만 전후의 시간을 합해도 2,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노동명이 하예진에게 구애한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그녀를 감동하게 하기도 전에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되었다.그와 하예진의 미래에 대해 전태윤과 소정남은 여전이 낙관적이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거로 느꼈다.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으니 그의 성격상 하예진을 멀리할지도 모른다.어쩌면 두 사람은 아쉬움만 남게 될 인연일 수도 있다.“우리는 예진 씨가 동명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단지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걸. 그래서 한사코 동명이를 가로막았던 거야. 문제는 동명에게 있어.”하예진을 찾아서는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노동명을 사랑하지 않았고 여태까지 노동명이 일방적으로 하예진에게 구애하고 있었다.노진규는 또 한숨을 쉬었다.작은아들은 훌륭하지만 얼굴의 칼자국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그를 조폭 같다고 생각하며 감히 왕래하려 하지 못하고 있다.이따금 왕래를 시도하는 여자가 있어도 노동명의 신분과 재산에 눈독을 들인 것이었다
하예진은 아들을 품에서 내려놓았다.꼬마는 침대로 다가가 노동명에게 말했다.“동명 아저씨,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 엄마처럼 다 나을 거예요.”노동명은 그저 창백한 얼굴로 미소만 지을 뿐 말을 하지 않았다.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진찰한 후 의사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많은 사람이 병실을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회복했으니 휴식이 필요하기에 모두 먼저 돌아가서 쉬라고 했다.많은 사람이 병실에 몰려 있으면 오히려 환자에게 영향을 미친다.결국 노동명의 부모만 남아서 그를 지켰고, 다른 사람들은 한두 마디 당부의 말을 하고는 하나둘씩 병원을 떠났다.밤은 깊어졌고, 다들 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한 일로 인해 마음이 유난히 무거웠다.하예진은 동생의 끈질긴 요구 하에 아들을 데리고 동생을 따라 피크 별장으로 갔다.가는 길 내내 하예정은 묵묵히 언니의 손을 잡았고 자매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다.다음날, 노씨 그룹 대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관성에 퍼졌다.연예 기사가 무슨 수를 써서 알아낸 건지, 아니면 노동명이 하예진을 구애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게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윤미라 부부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보도된 뉴스는 뭔가 안 좋게 추측하는 듯한 의미가 보였다.노동명이 부모님과 갈등이 생겨 폭주를 해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게다가 노동명이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노씨 일가에서 노동명이 전씨 일가 큰 도련님의 처형을 추구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 뉴스는 당시 전태윤이 결혼했을 때처럼 인기가 높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관성의 인기 검색어에 올라 자연히 하예정의 눈에 들어왔다.하예진은 이 뉴스를 보지 못했다.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도우려고 했지만 동생의 집에는 도우미가 있었기에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했다.그녀는 날이 밝을 때까지 마당에서 몇 바퀴 돌다가 강일구가 아들을 수업에 보내주는 것을 보고는 동생이 일어나기도 전에 집사에
어제처럼 침대 앞에서 지키던 윤미라는 하예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 조용히 말했다.“예진 씨, 오셨군요.”“동명 씨 보러 왔어요.”하예진도 노동명이 깰까 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꽃다발을 윤미라에게 건네주었다. 윤미라는 꽃다발을 받아 이제 동명이가 깨어나거든 바로 볼 수 있도록 침대 옆에 놓았다. 꽃다발을 본 아들의 기분이 좋아져 적극적으로 재활치료에 임했으면하는 바람이었다.윤미라가 꽃다발을 놓자마자 노동명이 깨어났다.그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앞에 서 있는 하예진을 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침묵하다가 다음 순간 극도로 차갑게 변했다. 내뱉는 말도 차갑기 그지없었다.“당장 쫓아내요. 저 사람 보고 싶지 않아요.”침대 앞에 서 있던 세 사람은 모두 멍해졌다.윤미라는 아들과 하예진을 번갈아 보며 아들이 여기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의심했다.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말해주었다.“동명아, 예진 씨야. 예진 씨가 널 보러 왔어.”노동명은 하예진을 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누군지 잘 알아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예진이 아니었다면 교통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아요.”“동명아!”윤미라는 낮은 목소리로 소리치며 자책하며 말했다.“이건 다 엄마 잘못이야, 내 잘못이라고. 예진 씨랑 상관없는 일이야. 어떻게 예진 씨에게 잘못을 다 뒤집어쓰게 하는 거야?”“예진이 때문에 엄마가 나를 저지하려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거예요. 다 예진이 때문이라고요!”노동명은 매우 흥분한 모습으로 큰 소리로 외쳤다.“엄마, 다시는 예진이를 내 병실에 들어오게 하지 마요. 보고 싶지 않아요! 내보내요, 빨리 내보내요. 예진이가 안 가면 내가 나갈 거예요.”그는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였다가 상처가 다시 찢어질 수도 있었다.“동명아, 이러지 마.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이러지 마.”윤미라는 울면서 아들을 누르며 발버둥 치지 못하게 했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
하예진이 물었다.“예정이에게 없고 저한테 있는 게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동명 씨가 재활을 꾸준히 하시고 제가 관성에 없을 때 자신을 돌보고 시간이 나면 우빈을 돌봐 주세요. 우빈이도 동명 씨를 보러 자주 갈 거예요. 녀석이 지금 자기 아빠보다 동명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노동명은 의기양양하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우빈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그래. 우빈이 친아빠는 늘 우빈이 앞에서 내 험담만 하거든. 우빈이는 똑똑하니까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잘 알고 있어. 우빈이 친아빠가 내 험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친아빠를 더 싫어할걸.”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았다.주형인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자 하예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때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뭘 봐요? 내가 아직도 그 남자를 신경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단지 우빈이 아빠일 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죠? 그 사람을 언급하면 제 기분이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제가 어떻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직도 사랑했다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이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주형인도 약속한 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더는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관성은 우빈 뿐이었다.그러나 주형인은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지켜보지 못했다.그는 또 노동명이 친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나은 계부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했다.우빈이 아직 노동명을 두려워할 때,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우빈은 노동명을 대신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오늘날 우빈과 노동명의 사이가 매우 좋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주형인 부자가 만날 때마다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이 폐인으로 되었기에 하예진과 함께 한다면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노동명의 험담했다.또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돌아오면 요리들이 올라오게끔 미리 준비해 놓았다.그들은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후 고현은 곧 자리를 떠나 고성 호텔로 박 대표를 만나러 갔다.다행히도 하루 호텔과 고성 호텔은 가까웠다. 두 호텔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볼 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해 주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처 거리를 거닐며 강성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노동명이 뒤에 있는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일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거에요. 만약 이번 일조차 직면할 수 없다면 제가 강성에 있을 필요도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 계속 저의 레스토랑을 돌보는 게 나을걸요.”그렇게 하면 이경혜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다행이네.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선물로 사줄게.”하예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제가 사면 돼요. 선물할 필요 없어요.”“난 지금 네 남자 친구거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남자라고.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준 적 없는데. 사실 우리 집 객실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러 선물로 가득 차 있거든. 전부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들이야. 어떤 것은 너에게 선물했지만 네가 받지 않은 물건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너에게 미처 선물하지 못한 것도 들어있어. 네가 받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방에 넣어두었거든. 앞으로 우리가 한 가족으로 되면 그 물건들은 어차피 너의 것으로 될 테니까. 네가 가지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돈이 낭비되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너도 우리 가정의 돈이 낭비되는 게 싫지?”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과거에 그녀는 노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혼하고 싶지 않고 돈만 벌고, 사업을 일으켜 우빈을 잘 키워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두 사람을 1층으로 안내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에서 고현에게 뽀뽀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그는 고씨 그룹에서 고현에게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어쨌든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님이니까.전호영이 차를 몰고 고현과 함께 고씨 그룹을 떠났고 고현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식사를 마치고 나면 고현은 또 박 대표와 약속이 있었다.전호영은 그들이 하루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진과 노동명은 아직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예진 일행은 약 30분 뒤에야 호텔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어두운 얼굴로 노동명을 호텔로 밀고 들어갔다. 노동명은 계속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못 듣는 체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예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명도 더는 위로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위층으로 올라가 전호영이 안배해 준 식사하는 룸에 도착해서야 하예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동명이 형.”전호영은 하예진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하예진을 도우려고 했다.“호영 씨, 동명 씨가 혼자 몇 걸음 걸을 수 있어요.”하예진은 전호영의 도움 없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식탁 앞에 세웠고 노동명은 스스로 일어나 두 걸음 걷다가 다시 탁자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고현도 일어섰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하예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괜찮아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 일은 다 처리했어요?”모두 자리에 앉은 후 고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며 관심 있게 하예진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요.”하예진이 대답했다.“잘됐네요. 노 대표님, 내일 돌아가시려고요?”고현은 나지막이 물었다.노동명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예진이 보러 온 것뿐이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
전호영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니에요. 제가 고현 씨에게 꽃다발을 반년 넘게 보냈지만, 당신은 돈을 낭비한다면서 표정 한 번 변하지 않더니만 갑자기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니 놀라서 그러죠. 고현 씨가 제 꽃다발을 좋아한다고 하니 저도 기분이 너무 좋네요.”고현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책상을 에돌아 꽃다발을 꽃병에 꽂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보면서 말했다.“너무 예쁘네요. 이 꽃병에 마침 꽉 찼네요.”“그럼요. 저의 마음이니까요.”고현은 다시 돌아서서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출근하기 전에도 책상 위가 깨끗해야 했고 퇴근할 때도 책상 위가 정연해야 했다.“가요. 밥 먹으러 가요. 예진 언니랑 노 대표님께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돼요.”전호영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말했다.“제가 왔을 때 동명 형에게 전화했는데 예진 누나랑 지금 돌아오는 길이래요. 조금 먼 거리에 있어서 저희보다 조금 늦게 호텔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지금은 퇴근 시간대라 길이 막히기 쉽거든요.”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고현은 남 비서에게 지시했다.“박 대표님께 미팅이 한 시간 늦어진다고 전해주세요.”“알겠습니다.”비서는 고현이 박 대표와의 미팅을 취소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박 대표와 미리 말을 해 놓았다.전호영은 고현에게 물었다.“저녁에도 또 일 보려고요?”고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전호영은 곧 그녀의 눈빛의 뜻을 알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저도 사실 매우 바쁘거든요. 매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놀부가 아니라고요.”전호영에게는 미래의 아내에게 구애하는 일도 큰일이었다.그는 매일 고현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정말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호영 씨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한가한 사람이에요. 전씨 할머니도 호영 씨보다 더 바쁘실걸요.”전호영은 걸어가면서 말을 이었다.“그건 그래요. 저는 우리 할머니에 비하면 덜 바쁘죠. 우리 어
저녁 무렵, 전호영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마이바흐를 몰고 제때 고씨 그룹에 들어섰다.고씨 그룹 건물 입구에서 차를 멈추었다.그는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양복 차림의 전호영은 언제나 그랬듯 늘 멋졌다.“전 대표님.”그는 꽃다발을 안고 걸어 들어갔고 모두 그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부를 물었다.전호영이 지나가자 그 직원들은 웃음을 거두어들였다.전호영은 고씨 그룹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의 신분이 높지 않았다면 그 직원들은 가짜 웃음조차 그에게 주기 싫었을 것이다.‘휴, 현이 씨가 여전히 여성 신분을 폭로하기 싫은 거로 보면 아무래도 내 노력이 너무 부족했나 싶다...’전호영은 계속 동성애자라는 누명을 쓰며 강성의 젊은 여성들의 증오와 미움을 견뎌야 했다.그러나 전호영은 곧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그는 고현을 따르기로 한 그날부터 단단히 마음 먹었다.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는 아내를 쫓아다닐 거라고 다짐했다.이렇게 하면 사실 좋은 점도 있다. 바로 고현이 원래 여자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진정한 연적이 없다는 점이다.그리고 여자 연적들에 대해서도 두려울 게 뭐가 있는가!고현의 여자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그 여자들의 마음은 아마 단번에 무너질 것이다.전호영은 그렇게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전호영은 남 비서의 도움으로 문을 열고는 그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살금살금 들어갔다.“나가세요! 노크 다시 하고 들어와요!”고현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전호영은 멈칫했다.고현의 청력이 정말 대단했다.“현이 씨...”고현은 고개를 들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전호영은 즉시 항복했다.“네네네, 나가겠나이다. 노크하고 다시 들어오겠나이다.”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지만, 고현은 문 여는 소리를 듣더니 다시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했다.전호영은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나갔다.남 비서는 그가 들어가자마자 다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무
“그래, 일 봐. 엄마가 지금 네 아빠 불러서 함께 드레스랑 하이힐을 사러 갈게.”진미리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귓가에서 휴대전화를 떼자마자 진미리가 소리쳤다.“여보! 여보!”고진호가 밖에서 대답했다.“왜 그래?”고진호가 곧 밖에서 뛰어 들어왔다.“무슨 일이에요? 너무 큰 소리로 외쳐서 허둥지둥 달려왔는데.”“가요. 당장 옷 갈아입고 나가서 치마 좀 사요. 제가 직접 우리 딸을 위해 드레스를 골라줘야겠어요. 드디어 예쁜 치마를 사서 우리 딸을 예쁘게 꾸밀 수 있게 됐어요.”고진호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 현이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너무 좋은 일이네요. 그럼, 사람 시켜 패션 디자인 사진을 가져오게 해요. 문 나설 필요 없이 사진만 고르면 되잖아요. 우리 현이가 입을 건데 당연히 가장 좋은 옷을 주문해서 제작해야죠.”“그러기엔 너무 늦었어요. 내일 저녁에 입을 드레스라서 시간이 안 돼요. 저한테도 드레스가 많지만, 중년 드레스라서 젊은이가 입기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 백화점에 가서 먼저 현물을 사고 나중에 천천히 주문 제작해요.”고진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우리 현이가 치마를 입고 싶어 하다니... 호영이에게 미리 웨딩드레스를 맞추라고 알려줘야 겠어요. 그럼 곧 결혼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도 큰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겠네요.”그리고 나서 고진호 부부는 집중적으로 매일 시시덕거리고 껄렁껄렁한 고빈을 혼내줄 수 있을 것이다.서른이 다 되어가는 고빈 주위에는 예쁜 미인들이 많지만 여자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장녀 고현이 있기 때문에 진미리 부부는 잠시 고현의 인생 대사에 몰두하고 있었다.고현의 일이 곧 결실을 보게 되면 이번에는 고빈의 차례로 될 것이다.두 아이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시각에 태어났다.“내일 저녁 현이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는 일은 당분간 호영에게 알리지 마세요. 제 생각에는 현이도 갑자기 치마를 입고 여성 신분을 모두에게 알리려는 것을 호영이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진미리는
“엄마, 사실 나도 좀 망설여져요.”고현의 말을 들은 진미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망설일 필요 없어. 너 원래 여자이고 원래 치마 입어도 되는 신분이야. 네가 20년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니 진작 여자 옷을 입었어야 했어. 호영이도 네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함께 참석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때 가서 다들 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너희 둘이 게이라고 수군대지도 않을 테고.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그토록 훌륭한데 호영 때문에 삐뚤어진다는 말을 했거든. 네가 정상인데 호영 때문에 게이로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사실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여자 신분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참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진미리 부부도 사실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말들은 고진호 부부가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뿐이지만 친척과 친구들이 와서 설득할 때면 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진미리는 결국 고현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딸이 행복하면 그뿐이라면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그 친척들은 몇 년 지나면 고현이 후회할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진미리가 고현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고빈도 따라서 게이로 될 것이고 따라서 손주를 안고 싶어 해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이는 진미리를 화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엄마가 좀 이따가 드레스 몇 벌 골라줄게. 네 취향대로 골라봐. 액세서리는 새것으로 살래? 엄마가 몇 벌 골라줄까? 하이힐도 몇 켤게 사줄게. 다 신어 봐.”고현이 대답했다.“엄마가 결정해 주시면 돼요. 제가 내일 오후에 쉬니 집으로 돌아가서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 볼게요. 하이힐을 신어 본 경험이 없으니 걷는 연습도 해야겠어요. 아니면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니까요.”진미리가 웃으며 대답했다.“하긴, 걷는 연습을 좀 해야겠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