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그의 어깨에서 일어나 오지랖 넓은 표정으로 물었다.“역술인은 뭐래요? 소지훈 씨 치료 가능하대요? 아니면 그냥 거짓말하는 거래요?”“소지훈 씨 아버님이 조사한 바로 지훈 씨는 거짓말한 게 아니래. 그런 거짓말을 할 엄두가 없대. 소지훈 씨가 아무리 대단해도 아직 세대주는 아버님이라 완전히 방임한 건 아니라서 지훈 씨도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거든.”“그럼 진짜 감정이 없는 병에 걸린 거예요?”전태윤은 머리를 끄덕였다.전태윤은 소지훈에 관한 뒷이야기를 할머니께 매달려 물어봤었다.“그럼... 역술인은 뭐래요?”소지훈처럼 훌륭한 남자가 감정이 없는 병에 걸렸으니 실로 아쉬울 따름이다.이런 병에 걸린 사람들은 진짜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독신의 삶을 끝내고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안 그러면 소지훈은 그저 남자의 너울을 쓴 내시에 불과할 것이다.모든 면에서 정상인데 유독 여자한테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역술인은 소지훈 씨가 인연이 닿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했어. 다만 그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한대.”“소지훈 씨랑 동명 씨가 나이대가 비슷하죠?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럼 40이 다 돼서야 결혼하고 애 낳는 거 아니에요?”“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필요는 없을걸. 아마 1, 2년 안으로 나타날 거야. 동명이가 지훈 씨보다 나이가 좀 더 많아. 난 왠지 지훈 씨가 동명이보다 일찍 결혼할 것 같은데.”그의 처형은 노동명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다.게다가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 마음을 얻기가 더 힘들다.심지어 둘 사이에 윤미라가 가로막고 있다.하예정은 언니와 노동명의 일을 떠올리더니 아무 말도 못 했다.“여보, 그 역술인 정말 그렇게 대단해요?”“아무 실력 없이 어찌 감히 할머니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이겠어?”하예정이 가볍게 웃었다.“헛소리는 무슨, 저번에 만났을 때 당신 그분한테 엄청 깍듯하던데요?”전태윤은 그녀의 볼에 입맞춤하며 눈웃음을 지었다.“그건 역술인이 우리
하예정의 현재 급선무는 시댁의 모든 산업을 파악하는 것이다.나중에 이 집안을 책임질 큰 사모님으로서 미리 준비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다른 데로 주의력을 분산하면 임신에 관한 일로 더는 전전긍긍하지 않을 것이다.전태윤은 또다시 그녀를 포옹하며 잠긴 목소리로 몇 마디 속삭였다.하예정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더니 그의 다리를 꼬집었다.전태윤은 맞장구를 쳐주며 큰소리로 외쳤다.“여보, 지금 남편을 암살하는 거야?”“됐네요. 힘도 안 줬는데 뭘 그렇게 오버해요?”전태윤은 박장대소했다.그 시각 성씨 일가.이경혜가 집사와 낯선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이제 막 외출하려던 성소현은 이 광경을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소파에 내던지고 냅다 앞으로 달려가며 초조하게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엄마가 방금 나가서 바람 좀 쐬겠다고 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이경혜는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앉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부주의로 넘어지는 바람에 발을 삐끗했어. 다행히 장연준 씨가 제때 발견해서 날 집으로 데려왔어.”성소현은 엄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더러워진 엄마의 옷을 훑어보았다. 이는 영락없이 넘어진 흔적이었다. 게다가 발목이 삐끗하여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그녀는 집사에게 얼른 가서 연고를 가져오라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낯선 남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마워요 장연준 씨.”서른 초반의 장연준은 꽤 잘생긴 외모를 지녔다. 성소현은 그가 눈에 익었지만 두 사람은 진짜 서로 초면이었다. 별장 구역에서 발목을 접질린 엄마를 구해줬다면 장연준도 이 별장 구역에 지낼 것이다.성소현은 우연히라도 그를 마주친 적이 없지만 왜 이렇게 눈에 익은지 모를 일이었다.장연준이 대답했다.“괜찮습니다. 누가 마주쳤어도 다 마찬가지로 아주머니를 집까지 모셔다드렸을 겁니다.”“소현아, 장연준 씨는 태윤의 사촌 동생이야. 태윤이랑 동갑이고.”이경혜가 한마디 보탰다.알고 보니 장연준은 장소민의 친정 쪽 조카였다.장씨 일가는 재벌 가문이지만 매
성소현은 그를 배웅하면서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이에 장연준이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도와야 할 일을 도운 것뿐입니다. 우리 두 집안은 친척이나 다름없으니 소현 씨도 너무 이러실 필요 없어요.”별장 입구에서 장연준은 걸음을 멈추고 성소현을 바라보더니 정장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제 명함이에요.”성소현은 명함을 받아 들고 자세히 들여다봤다.이름 장연준, 현재 장안 그룹 부대표직을 맡고 있으며 대표님은 그의 친형이다.성소현은 장연준의 명함을 챙기고 그에게 말했다.“저희 엄마를 집까지 바래다줘서 너무 고마워요 연준 씨. 나중에 시간 되실 때 꼭 한 번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장연준이 웃으며 답했다.“네, 소현 씨.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성소현은 그를 차까지 바래다준 후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고하고 차가 멀어져갈 때까지 제자리에 서서 지켜봤다.이때 옆 별장에서 나오던 예준하가 마침 이 광경을 지켜봤다.휴가 동안 그는 예진 리조트에 돌아가지 않았다. 가족들에겐 새로 산 별장을 리모델링하는데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일꾼들이 실수를 범할 수 있다면서 공휴일 3일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사실 이 휴가를 빌어 성소현에게 대시하며 제대로 데이트할 생각이었다.그녀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도, 허락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이에 예준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걸 짐작했다.또한 그녀와 한동안 함께 지내면서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예진 리조트는 그의 집이기에 돌아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돌아갈 수 있다.만약 성소현을 데리고 함께 돌아간다면 가족들이 더 기뻐할 것이다.예준하는 성소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직은 큰형에게만 알렸다. 예준성은 동생이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걸 매우 찬성하며 일부러 관성의 사업을 확장하여 동생을 관성에 오래 머무르게 했다. 그렇게 되면 미래의 아내가 될 성소현에게 대시할 기회가 더 많아질 테니까.예준하는 별장 입구에 서서 장연준의 차가 떠나가는 것도
성소현이 대답했다.“그런 것 같아. 근데 난 왜 한 번도 본 적 없지? 그 집 사람들은 너무 겸손하고 조용히 지낸다니까.”예준하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실은 그도 장씨 일가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장씨 일가는 관성에 사업을 늘여놓은 게 아니라서 예진 그룹과도 별다른 협력이 없고 온 가족이 너무 겸손하고 조용하게 지내다 보니 예준하는 당연히 그 집안에 관심을 가질 일이 없다.하지만 지금부터는 장연준이라는 사람을 눈여겨봐야 한다.그는 왠지 모르게 장연준이 라이벌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성소현은 예준하가 이미 경계심을 품고 장연준이 라이벌이 되지 못하게 방어하고 있다는 걸 아예 몰랐다.그녀가 물었다.“3일 공휴일 동안 집에 안 갔네?”예준하가 답했다.“고작 3일이라 다녀오기 귀찮아서 안 갔어. 여기 인테리어도 지켜봐야 하고.”그는 그윽한 눈길로 성소현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될 수 있다면 너랑 함께 가고 싶어.”성소현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두 사람은 아직 연인 사이를 확정한 것도 아닌데 부모님을 뵙는 건 너무 이른 일이다.“나 먼저 들어가서 우리 엄마 연고 발라줘야 해.”“그래.”예준하는 이번에 의외로 뻔뻔스럽게 그녀와 함께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그는 별장 입구에 서서 성소현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다가 천천히 제집으로 돌아갔다.몇 분 후.예준하는 홀로 차를 몰고 나갔다.30분 남짓 지난 후 그는 곧장 돌아왔다.차를 아예 성씨 일가의 별장 입구에 세우고 경적을 울렸다.곧이어 성씨 일가의 도우미가 나와서 그를 보더니 별장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예준하는 차를 몰고 별장으로 들어갔다.그는 주차한 후 방금 사 온 영양제를 가득 들고 도우미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예비 장모님이 발목을 접질렸다는데 빈손으로 보러 와서는 안 되지. 이래서 아까 뻔뻔스럽게 성소현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거였다. 영양제쯤은 챙겨와야 하는 법이다.이경혜는 발목에 연고를 다 바르고 아
다만 유청하도 시어머니가 시누이를 멀리 시집보내는 걸 속상해하시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예준하가 아무리 우수해도 결국 A시 사람이다. A시와 관성은 거리가 너무 멀어 비행기를 타도 두세 시간이 걸린다.만약 예씨 일가가 관성에 거주하고 있고 예준하도 성소현을 좋아한다면 성씨 일가는 이 혼사를 만장일치로 찬성할 것이다. 장연준과 같은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 리도 없다.성기현은 아내의 손을 문지르며 어떤 일은 알고만 있으면 된다고, 절대 입밖에 내뱉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일단 묵묵히 경과를 지켜보는 게 상책이다.성기현은 동생 성소현을 제일 아낀다. 그도 예준하가 참 괜찮은 남자란 걸 알고 있지만 여동생을 멀리 시집보내고 싶지 않다. 만약 동생이 관성에서 다른 선택권이 생긴다면 성기현은 절대 예준하에게 제 동생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예준하의 압력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서로 마음이 통해도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구나.한편 성소현은 아예 생각을 못 했다. 장연준이 엄마를 집까지 모셔 왔으니 온 가족이 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줄로 여겼다.엄마의 말을 들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엄마, 장연준 씨가 엄마를 도와줬고 집까지 바래다줬으니 우리도 무척 고마워하고 있어요. 제가 이미 얘기했어요. 나중에 연준 씨가 시간 되실 때 꼭 밥 한 끼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고요. 엄마를 도와줬으니 식사라도 대접해야죠 제가.”이경혜가 말했다.“그래, 당연하지. 그때 가서 우리 집으로 식사 초대해. 그렇게 해야 우리 성의를 더 잘 보여주지 않겠어? 나도 한 번 더 정중하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고. 그런 무기력함이 얼마 만인지 몰라. 수십 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무기력함이었어. 그 당시 정말 속수 무책해지더라고.”“다행히 마침 장연준 씨를 만났지 뭐야. 딴사람들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거만하게 스쳐 지나갔을 텐데 장연준 씨는 바로 차를 세우고 안에서 내려와 내게 괜찮냐며 물으면서 관심해 주더라. 날 집까지 바래다줬고.”이경혜는
예준하는 이경혜의 태도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내를 얻으려면 이 정도쯤의 뻔뻔함은 필수니까.그는 여전히 관심 조로 이경혜에게 물었다.“다치신 데 연고는 발랐어요? 저도 약국 가서 발목 접질렸을 때 바르는 약들로 이렇게 사 와봤어요.”그의 말을 들은 성소현이 봉투를 열자 안에 정말 약국 종이봉투가 있었다. 펼쳐보니 낙상 치료와 접질렸을 때 바르는 연고가 가득 들어있었다.“준하야, 우리 집에도 평소에 자주 쓰는 약들을 항상 쟁여두고 있어. 엄마도 이미 약을 다 발랐고.”성소현은 말은 이렇게 해도 예준하가 엄마를 위해 약까지 챙겨오니 나름 마음이 따뜻해졌다.예준하가 그녀의 가족을 중시한다는 것은 그녀를 중시한다는 것과 다름없다.이성에게 소중히 다뤄지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전에 전태윤을 짝사랑할 땐 자신을 중시하기는커녕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약을 발랐으면 됐어요. 만약 바르는 약이 아무 효과도 없으면 꼭 병원 가서 뼈를 다쳤는지 CT 사진을 찍어봐야 해요.”이경혜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살짝 접질린 것뿐이니 휴식을 취하고 매일 제때 약을 바르면 돼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준하 씨.”예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성소현이 자리에 앉은 후 나란히 그녀 옆에 앉았다.이를 지켜본 이경혜는 그야말로 속에서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준하 씨네 별장은 한창 인테리어 할 때라 매우 바쁘시죠? 난 괜찮으니 이만 볼일 보러 가세요. 일부러 보러 와줘서 감사해요. 영양제까지 이렇게 많이 사 오시고, 우리 집에 차고 넘치는 게 영양제인데 아무튼 고마워요 준하 씨, 마음만은 잘 받을게요. 기현아, 준하 씨 배웅해 드려.”예준하가 성소현의 옆에 나란히 앉자 이경혜는 곧바로 축객령을 내렸다.예준하는 줄곧 친절한 미소만 지었다. 이경혜는 그의 강인한 멘탈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아무리 재벌가의 귀한 아들이라고 하지만 올 때마다 이경혜의 쌀쌀맞은 표정을 마주해야 하고 그녀의 눈치도 살
예준하의 큰형 예준성은 애초에 형수님과 혼인신고를 마친 후 형수님이 큰형의 진짜 신분을 알고 이혼을 요구했고 장모님도 줄곧 이혼을 부추겼지만 큰형은 전혀 자존심에 타격을 입지 않았고 실제 행동으로 형수님께 진심을 보여주었다.또한 장모님이 걱정하시는 모든 것들을 해소해 주었고 오늘날 형수님과 이토록 애틋하게 보내고 있다.예준하는 이경혜의 날카로운 눈빛을 처음 마주하는 것도 아니다. 이경혜는 그의 본심을 알아챈 이후로 웃는 얼굴로 대한 적이 없다.그래도 평상시에는 성소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각별히 주의하시더니 지금은 아예 대놓고 째려보고 있다. 예준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아주머니가 이젠 나랑 소현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작정하셨구나.’성소현을 아내로 들이는 길은 험난한 여정이었다.예준하는 우아한 제스처로 온수를 한 모금 마시고 아주머니에 대한 관심과 걱정도 끊이지 않았다.그는 온수 한 잔을 30분 동안 마셨다.그리고 빈 잔을 내려놓으며 이경혜에게 말했다.“아주머니, 제가 귀찮게 굴었죠. 저는 이만 집안 인테리어를 보러 가야겠어요.”성소현은 엄마가 갑자기 싸늘한 태도로 예준하를 대해서 그가 속상해할까 봐 덜컥 걱정되어 배웅해주려고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엄마, 나 준하 배웅하고 올게.”이경혜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결국 말을 아끼고 굳은 표정으로 딸아이가 예준하를 배웅하는 걸 지켜봤다.예준하가 사 들고 온 영양제와 바르는 연고는 그가 집 밖을 나선 후 아들 부부에게 명령했다.“기현아, 청하야, 예준하가 갖고 온 물건들 싹 다 버려. 보기만 해도 열불 나니까.”유청하가 대답했다.“어머님, 준하 씨는 좋은 마음으로 사 온 거잖아요. 소현 씨랑 친구 사이이고 또 우리랑도 새로운 이웃으로 지내서 어머님이 발을 다친 소식을 듣고 이웃으로서 약을 챙겨온 건데 버리는 건 좀 지나친 것 같아요.”성기현도 한마디 보탰다.“소현이랑 준하 씨가 꽤 친해 보이던데요. 아까 준하 씨 편도 들고. 엄마가 이 물건들 버리라고 했다가 소현이가 보기라도 하
이경혜가 대답했다.“말할 거면 빨리해. 두 사람 더 깊이 빠져들기 전에 하란 말이야. 특히 네 동생은 아직도 전태윤만 떠올리면 마음 한편에 불편해하고 있어. 내가 모를 줄 알아?”전태윤이 그녀의 조카사위가 돼버렸으니 그녀도 더는 뭐라 말하지 못할 뿐이다.전태윤도 굳이 딱한 일이 아니면 성씨 일가에 안 온다. 그가 이리로 오는 이유는 전부 하예정 때문이다.성기현이 말했다.“엄마, 소현이 인제 전태윤 완전히 단념했어요. 걔 태윤이 대할 때 되게 태연했다고요.”그는 곧장 말을 이었다.“엄마 발목 다친 거 진짜 의외 맞아요? 장연준 씨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장연준 씨랑 소현이를 이어주려고요? 그분 전태윤 사촌 동생이에요. 아무리 장씨 일가가 겸손하고 조용하게 지낸다고 해도 전 씨네랑 장 씨네가 혼인을 맺은 건 누구도 커버하지 못할 팩트라고요.”이경혜는 목이 확 메어 문 쪽을 바라보며 소현이가 들어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관성 전체에 우리 가문과 조건이 비슷한 집안은 얼마 안 돼. 장연준이 비록 태윤의 사촌 동생이지만 두 사람 동갑이고 연준이가 태윤이보다 생일이 고작 몇 개월 늦을 뿐이야. 연준이는 성격도 진중하고 한없이 다정해.”“그 아이는 예준하랑 같은 과야. 소현이가 준하랑 잘 지내니 나중에 연준이랑도 분명 잘 지낼 거야. 걔랑 태윤이는 딱히 뭐라 단정 지을 것도 없어. 태윤이는 단 한 번도 소현이를 좋아한 적도 없고 맹세 따위는 더 없으니까.”“연준이도 이 점은 아주 잘 알 거야. 연준이가 소현이를 좋아하게 되고 두 사람이 함께할 수만 있다면 엄마는 너무 만족할 것 같아. 아무튼 소현이랑 준하가 함께하는 걸 막을 수만 있으면 돼.”이경혜는 또 한 번 문 쪽을 바라보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내가 또 한 번 쭉 둘러볼 거거든. 관성의 젊은 남자들 중에 우리 소현이랑 어울릴만한 남자가 있다면 몇 집 선택해서 소현이한테 대시하게 할 거야. 연기라도 좋아. 쟤가 예준하 만나는 걸 막을 수만 있으면 돼. 설사 나중에 소현
“엄마, 사실 나도 좀 망설여져요.”고현의 말을 들은 진미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망설일 필요 없어. 너 원래 여자이고 원래 치마 입어도 되는 신분이야. 네가 20년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니 진작 여자 옷을 입었어야 했어. 호영이도 네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함께 참석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때 가서 다들 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너희 둘이 게이라고 수군대지도 않을 테고.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그토록 훌륭한데 호영 때문에 삐뚤어진다는 말을 했거든. 네가 정상인데 호영 때문에 게이로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사실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여자 신분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참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진미리 부부도 사실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말들은 고진호 부부가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뿐이지만 친척과 친구들이 와서 설득할 때면 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진미리는 결국 고현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딸이 행복하면 그뿐이라면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그 친척들은 몇 년 지나면 고현이 후회할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진미리가 고현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고빈도 따라서 게이로 될 것이고 따라서 손주를 안고 싶어 해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이는 진미리를 화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엄마가 좀 이따가 드레스 몇 벌 골라줄게. 네 취향대로 골라봐. 액세서리는 새것으로 살래? 엄마가 몇 벌 골라줄까? 하이힐도 몇 켤게 사줄게. 다 신어 봐.”고현이 대답했다.“엄마가 결정해 주시면 돼요. 제가 내일 오후에 쉬니 집으로 돌아가서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 볼게요. 하이힐을 신어 본 경험이 없으니 걷는 연습도 해야겠어요. 아니면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니까요.”진미리가 웃으며 대답했다.“하긴, 걷는 연습을 좀 해야겠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도
전호영은 눈치채지 못했다. 고현도 일부러 그에게 명백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내일 저녁에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강성 전체 사람들도 분명 충격받을 것이다.고현은 이미 전호영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변이 없다면 2년 안에 전호영에게 시집갈 것이다.그녀는 전호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는 그가 동성애라자라는 누명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호영은 게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남자였다.고현이 모든 사람을 속인 것이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정정당당하게 여자로 되고 싶어 했다.그 또한 기뻐할 것이다.고현의 형상이 너무 남자다웠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여성 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라는 점을 고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전호영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여자로 분장한 적 있다.당시 고씨 그룹 직원들은 여자 분장을 한 전호영이 매우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의 자매인 줄 알았지만 전씨 가문에는 딸이 없고 전호영에게도 자매가 없었다는 것을 반응한 사람들은 그제야 전호영이 분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날 그 사실은 고씨 그룹에서 아주 큰 가십거리로 소문이 자자했다.전호영과 통화를 마친 고현은 진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진미리가 전화를 받았지만 고현은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현아, 왜 그래?”고현이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진미리는 놀라워하며 고현에게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고현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엄마, 시간 있어요? ”“있지. 난 언제나 시간 있지. 왜? 내가 뭐 도울 거라도 있어? 말해봐. 내가 다 해줄게.”고현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분명 큰일일 것이다.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낸 진미리는 관심 있게 물었다.“생리 왔어? 배 아파?”고현은 때때로 생리통을 앓곤 한다.진미리는 한동안 몰래 고현에게 한약을 지어주면서 그녀를 돌보았다.“아니요. 엄마. 저 내일 저녁 연회
“호영 씨.”고현이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휴대폰 너머에 있던 전호영도 덩달아 신이 나서 웃었다.“현이 씨, 뭐 좋은 일이 있나요? 제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웃음기가 묻어나네요. 현이 씨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고현이 전호영에게 감정이 있다고는 하나 성격이 워낙 무뚝뚝하다 보니 전호영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차가웠다.“제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어요?”“그럴 리가요. 당연히 현이 씨가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면 좋죠. 그렇지만 현이 씨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보니 하루 종일 웃지도 않잖아요. 시시덕거리는 고빈을 볼 때마다 테이프로 그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고씨 그룹을 위해 매일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고빈은 틈만 나면 여자들을 만나느라 바빴다.그렇다고 해서 고빈이 결혼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현이 웃으며 말했다.“얼른 가서 그 입 틀어막지 않고 뭐 해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부럽기는 해요.”자신이 맏이기 때문에 동생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녀의 머릿속에 꽉 박혀있었다.줄곧 남장하고 있었지만, 여자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나타난 후부터 고현은 점차 동생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물론 동생에게 말했던 것처럼 고씨 그룹이 언젠가는 동생의 손에 넘어갈 것을 생각하고 가끔 동생에게 일을 맡기곤 했었지만.평생을 이렇게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기대하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전호영이 딱 그런 존재였다.“나중 가면 현이 씨 동생이 현이 씨를 부러워할 것이니 동생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현이 씨가 회사 일을 조금씩 그에게 맡긴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저처럼 호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이윤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에게 말했다.“먼저 회사에 가 있어요. 요즘 가주가 시간 없다고 하니 제가 집안일 처리하러 집에 가야겠어요.”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이씨 가문에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그녀의 비서 외에 회사 사람들은 다 모르고 있었다.이윤미만 회사에 나오고 가주와 그녀의 오빠들은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회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이 대표가 비록 능력이 부족한 이 부대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해도 어찌 됐든 자기 친딸이니 무슨 일을 저지른다 해도 이 대표가 뒷수습을 다 할 것으로 회사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이윤미가 이 대표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온갖 망발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헐뜯기에 바빴다.그렇지만 이윤미는 가만있지 않았다.중요한 직위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녀는 직접 해고하여 이씨 그룹에서 쫓아냈다.그리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강등시키거나 급여를 깎았다.게다가 해고된 사람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에 올린 탓에 그들은 복지와 소득 면에서 이씨 그룹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작은 회사만 전전해야 했다.조금의 손해를 볼지언정 이윤미는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이씨 그룹에서 쫓겨난 직원들을 보며 다른 직원들은 공포감을 느꼈다.모두가 부를 추구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다.누가 대표직에 오르든지 간에 모두 이씨 가문의 출신일 것이니 승급을 못 할 바에는 이씨 가문의 암투에 직원들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대우는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그렇게 한다면 해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사에게 더 주목받을 수도 있었다.“알았어요.”택시비를 보상해 주겠다며 말한 뒤 이윤미는 비서를 택시에 앉혀 보내고 자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