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현은 벤치에 앉은 후 말했다.“그럼 됐어. 나 요즘 커플이나 부부가 내 앞에서 알콩달콩하는 걸 보면 배가 아프단 말이야. 예진이와 효진이를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워.”“부러워할 것 없어. 너도 앞으로 그렇게 행복할 거니까.”“앞으로의 일을 누가 알겠어? 만약 결혼해서 행복하지 않으면 난 절대 참지 않을 거야. 내 미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아예 이혼하고 친정에 돌아가 살려고. 어쨌든 오빠들은 날 평생 먹여 살리겠다고 했거든.”좋은 친청은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 있다.성소현은 본인이 아주 훌륭한 친정 식구를 두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그럴 일 없어. 네 시댁 식구들은 분명 너한테 잘 대해줄 거야.”예준하는 자기 집 어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시집온 며느리에게 눈치를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내 얘기는 그만하고, 너 대체 누구를 좋아하는 거야? 관성 사람이지? 네가 이곳에 집을 산 것도 그 여자를 위해서지?”예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인정했다. “맞어. 나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자주 보며 얘기라도 많이 하고 싶어서 여기에다 집을 산 거야. 이 별장의 리모델링 방안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논의해서 짠 거고.”“...준하야, 너 지금 그게 나라는 거야?”예준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성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소현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이 별장을 산 이유는 너희 집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야. 이렇게 우리가 이웃이 되면, 나도 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잖아. 만약 우리 둘이 사귀게 된다면 이 별장에 살면서 넌 아무때든 친정에 가볼수 있어.”“...”비록 의외였지만, 너무 놀랍지는 않았다.아까 식사할 때 전씨네 할머니가 귀띔을 해주셨고, 처음 들었을 땐 꽤 놀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예준하는 비록 여태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였었다.그가 직접 고백하지 않았기에 성소현도 감히 그의 마음을 추측하지 못했다. 자신이
“준하야, 나 한번 생각해 보고.”성소현은 거절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저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그래 알았어. 천천히 생각해 봐. 급하지 않으니까. 당장은 내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고 해도 괜찮아. 네가 날 받아줄 날을 기다릴 테니까.”성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냥 좀 갑작스러워서 그래.”“미안. 갑자기 이런 말 해서.”예준하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가 성소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고백을 미루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러다 마침 성소현이 묻자 바로 고백했다.사랑하는 성소현에게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알리고 싶었다.어떤 사람들은 감정에 아주 무뎌 주동적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죽어도 눈치채지 못한다.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잠시 앉아 있다가 성소현이 먼저 일어섰다.“이제 그만 돌아갈까?”“그래, 그러자.”산책하러 나갈 때, 두 사람은 웃고 떠들었지만 돌아갈 때 두 사람은 별로 말하지 않았다. 주요하게는 성소현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성씨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준하는 인사를 하고 아직 인테리어 중인 옆 별장으로 돌아갔다.그리고 5분도 안 되어 성소현이 스포츠카를 몰고 집을 나서 곧장 관성 중학교로 향했다.두 친구를 찾아간 것이다.성소현이 서점에 도착했을 때, 가게에는 심효진의 모습만 보였고 하예정은 어데 갔는지 없었다.“예정이는 어데 갔나요?”성소현이 가게에 들어서며 심효진에게 물었다.“꽃필무렵에 갔는데 곧 돌아올 거예요. 예정이를 찾아온 거예요? ”심효진은 배즙을 짜며 말을 이었다. “배즙 짜고 있는데 한잔할래요? 짜는 김에 같이 짜면 돼요.”“그럼 한 잔 줘요. 올 때마다 밍밍한 물이어서 맛없었거든요.”“물이야 원래 아무 맛도 없죠. 맹물이 싫다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요, 설탕이라도 좀 넣어드리게요. 단맛이 나고 좋잖아요. 여기는 서점이라 책 말고는 문구밖에 없거든요.”성소현은
심효진의 말에 성소현은 웃음이 나왔다.“하하, 효진 씨 입에서나 이런 말을 듣죠, 다른 사람들이 날 뭐라 하는지 알아요? 야만인 아가씨래요. 재벌 집 사모님들도 결코 날 며느릿감으로 고려하지 않는대요. 아무래도 나와 같은 며느리는 억누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성소현은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데다 강한 친정 식구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따라서 웬만한 부잣집 사람들은 정말 그녀를 며느릿감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비슷한 레벨의 가문 도련님들은 이미 결혼을 하였거나 그녀보다 어리다.성소현은 자신보다 어린 남자는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그건 다 안목이 없어서예요. 소현 언니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문을 믿었기 때문이죠. 나와 예정이는 언니를 처음 봤을 때, 진실하고 솔직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심효진은 다시 주방에 가서 주스를 짜며 말했다.“소현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이건 우리가 언니랑 친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성소현도 주방에 따라 들어와 심효진이 주스를 짜는 것을 지켜보았다.“누가 고백했는지 말해봐요. 혹시 예씨 가문의 다섯째 도련님인가요?”심효진이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예준하가 성소현에 대한 마음을 성소현 본인 외에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그에 심효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준하 씨가 소현 언니한테 너무 잘해줘서요. 언니랑 만날 기회를 더 만들고자 거금을 들여 언니 집 옆의 별장을 샀잖아요, 예씨 집안 도련님이 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요. 관성에는 좋은 별장이 많은데, 하필이면 중고 집을 사겠어요? 다 그 목적이 있어서죠.”“...그러니까 준하가 그 별장을 샀을 때부터 그 마음을 짐작한 거였네요. 나는 그때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단지 그 별장은 우리 집에서도 사고 싶어 하는 건데, 다른 사람이 사들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리모델링 시안에 대해서도 나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것도 별생각 없이 의견을 말해줬거든요.”“그거야 소현 언니랑 가까운 데서 살려고 바로 옆집을
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효진 씨가 네가 곧 돌아올 거라고 배 주스를 한 잔 준비해 줘야겠다고 하자마자 네가 들어왔어. 우리 둘이 몰래 네 험담을 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효진이가 내 발소리를 들은 게 분명해요.”심효진은 주스를 그녀들에게 건넸다.하예정은 주스를 들고 카운터 쪽으로 가서 내려놓고는 평소에 심효진과 밥을 먹을 때 쓰던 작은 테이블을 옮겨와 세워놓았다.세 사람은 각자 주스를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예정아, 꽃필무렵에 운초 씨를 찾아간 거야?”성소현은 물었다. “어땠어? 운초 씨도 참 대단해,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계부와 친어머니를 고소할 수 있다니.”“꽃다발을 사서 태윤 씨에게 보냈는데 운초 씨는 못 봤어요. 하루 종일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 점원이 운초 씨가 돌아오면 전화할 거라고 하던데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네요. 전화번호까지 바꿨고요.”하예정은 주스를 한 모금 마신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큰형수 노릇 하기 어렵네요.”그녀가 여운초를 찾아간 것은 전이진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였다.전이진은 자신이 실수한 것 때문에 대신 한번 가봐달라고 부탁했다. 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지 뭐. 할머니가 여운초 씨를 아내감으로 선택한걸. 그나저나 구애하는 건 이진 씨의 일인데 왜 네가 갔어?”“이진 도련님이 운초 씨에게 진실을 말한 후부터 온초 씨가 계속 피해 다녀서 나에게 도움을 청한 거예요. 그저 몇 마디 설득하면 될 거로 생각하고 승낙했죠.”하예정은 또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운초 씨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카톡으로 연락할 수도 없고, 전화번호가 바뀌어 찾을 수도 없어요. 언니는 오늘 어쩌다가 여기에 올 시간이 생겼어요?”성소현은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하예정은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성소현이 얼굴을 붉히다니.“무슨 일 있어요? 얼굴이 빨개요.”하예정은 곧 성소현에게 다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예요?
성소현이 하루라도 시집가지 않으면 하예정은 자신이 그녀의 행복을 빼앗은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성소현이 그렇게 좋아한 전태윤에게 시집간 사람은 하예정이었으니.그래서 하예정은 성소현이 빨리 자신의 짝을 찾기를 바랐다. 그녀가 행복한 모습을 보아야 하예정의 마음도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을 테니까.비록 성소현은 한 번도 하예정을 탓한 적이 없었고 하예정이 전태윤을 빼앗아 간 것으로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그래서 성소현도 이건 둘 사이에 인연이 없는 것일 뿐, 하예정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었다.전태윤은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고, 하예정이 아니라도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했다.다른 사람이 아닌 하예정이 전태윤의 아내가 된 것이 다행이었다.오히려 도도하고 차갑던 전태윤이 하예정과 결혼한 후로부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처형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며 즐거울 따름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예정아.”성소현은 하예정의 손을 잡았다.“나한테 미안하다는 생각 마. 넌 나한테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그녀는 하예정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나 꼭 행복할 거야. 난 결혼에 관해서는 절대 소홀하지 않아. 꼭 좋은 남자에게 시집갈 거야. 그러니 걱정 마.”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성소현은 주스를 마시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저녁 무렵, 그녀는 떠났다.같은 시각, 전씨 그룹.퇴근 시간이 되자 전태윤은 큰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을 나섰다.이건 아내가 오후에 보내온 꽃다발이었다.비록 남자로서 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선물한 거라면 풀 한 포기라도 보배처럼 여겼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려 할 때 마침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소정남을 만났다.소정남을 보고 전태윤은 일부러 꽃다발을 꼭 끌어안았다. 그가 빼앗을까 봐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러 주의를 끌려고 한 것이다.“예정 씨가 보낸 거지? 참 이쁘네.”전태윤은 도도함을 유지하며 말했다.“맞아, 예정이
소정남이 말했다. 그는 전태윤이 계속 꽃다발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도록 화제를 바꾸었다.“...저녁에 약속 있는 거 잊지는 않았지?”친구가 자랑하는 모습이 마치 꽃다발을 처음 받아보는 듯싶었다.“지금 와이프 마중 갈 거야. 오늘 밤 나랑 함께 가기로 했거든.”소정남은 가볍게 응했다.“한 주만 더 근무하면 난 휴가야.”소정남과 심효진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다.“결혼식 날까지 보름이나 남지 않았어?”소정남은 친구와 함께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그는 결혼식 전날까지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보름이라고는 하지만 다시 말하면 두 주일밖에 안 되잖아. 미리 휴가 내면 안 돼?”이에 전태윤은 따로 할 말이 없었다.“전 대표님, 소 이사님.”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 나가자 모두 그들을 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같이 갈까?”전태윤은 자신의 차 앞에서 소정남을 향해 눈짓하며 한마디 물었다.“좋아. 나도 마침 내 와이프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 밥을 먹을 생각이야. 결혼 후 함께 살 집도 구경시켜 줄 겸.” 소정남은 결혼 후 부모님과 함께 살 계획이 아니었다.심효진과 둘만의 생활을 즐길 생각이었다.다행히 부모님도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그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만 있다면 부모님은 다른 어떤 일도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너 피크 별장을 신혼집으로 하려고?”두 사람은 함께 전태윤의 롤스로이스에 올라탔다. 소정남이 몰고 온 포르쉐는 전태윤의 경호원 한 명에게 부탁해 운전하게 했다.“응. 피크 별장은 네 집에서도 멀지 않잖아. 효진이와 예정 씨는 친한 친구니까 피크 별장에서 살면 둘이 만나기도 편리할 거야.”소정남은 집을 살 때면 언제든지 전태윤을 따라 샀다.전태윤이 어디에 집을 사면 그도 따라서 한 채를 사곤 했다. 가까이에서 살면 밥을 얻어먹기도 편리하니까.“난 네가 다른 집을 신혼집으로 정하면 너랑 같은 곳에 사 놓은 집을 리모델링해서 신혼집으로 삼을 생각이었어. 네가 피크 별장에서 살겠다고 하니 잘됐네. 나 그 집에서 거의 10년이나 살
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누구인지 보지도 않고 먼저 소정남에게 말했다.“예정이한테서 온 전화가 틀림없어.”소정남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나도 지금 아주 행복하거든. 내 결혼식은 네 앞에 있으니까 내 앞에서 자랑해도 나한테 자극 줄 수 없어.”전태윤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자랑한 거 아닌데? 부부간의 일상일 뿐이야.”그가 하예정을 데리러 가거나 하예정이 그를 데리러 오는 건 그들 부부의 일상이 되었다.휴대폰을 꺼낸 전태윤은 ‘예준하'라고 뜨는 것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하예정의 전화인 줄 알았는데, 예준하였다.눈치가 빠른 소정남은 전화 온 사람이 예준하인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전태윤이 노려보자 아예 얼굴을 돌리고 계속 웃었다.전태윤은 결국 예준하의 전화를 받았다.“전 대표님.”전태윤은 나지막이 그에 응했다.상대방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예준하가 웃으며 사과했다.“제가 이 시간에 전화를 드려 식사를 방해했죠? 정말 죄송합니다.”“아직 식사 전이어서 괜찮아요.”전태윤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응하고 있다.“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죠?”분명 공적인 일은 아니다.공적인 일이라면 먼저 비서에게 연락했을 것이다.전태윤의 개인 번호로 직접 연락했다는 것은 사적인 일이란 뜻이다.사적인 일이라면 아마도 성소현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그저 오늘 저녁에 따로 약속이 없어 한가하던 참이라 식사를 청하고 싶어서요. 아직 식사하지 않으셨다니 이따가 좀 뵐 수 있을까요?”전태윤은 조용히 말했다. “공교롭게도 오늘 제가 다른 식사 약속이 있어서요. 다음에는 미리 말씀 주시면 시간 비워놓을게요.”예준하는 아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참 공교롭군요. 그럼 언제쯤 시간 되실까요? 함께 식사 자리를 한번 가지고 싶은데...”“준하 씨는 요즘 A 시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다음 주에 와이프를 데리고 A 시로 여행을 갈 예정인데, 그때 기회가 있다면 시간 잡아 같이 식사하는 건 어떨까요?”예준하는
“우리 전씨 일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랑 네가 없어도 회사가 영향받을 일 없어. 게다가 나도 그저 며칠만 외출하는 것뿐이야. 전씨 그룹은 성숙한 대기업이고 나름대로 성숙한 관리 모드가 있어 너와 내가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거야.”이때까지 다스려온 중상층 관리자들이 회사를 잘 지킬 것이다.소정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웃었다.“날 계속 회사에 남겨 일을 시킬 생각만 아니면 돼.”전태윤은 웃음이 나왔다.“왜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널 그 정도로 부려 먹었다고 그래?”“그래, 그래. 넌 절대 날 부려 먹은 적 없어, 모두 내가 자원해서 한 거야.”“...”소정남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널 위해 일하기 잘한 것 같아. 넌 행복을 얻은 후에도 날 잊지 않고 효진 씨랑 선을 이어줬잖아. 역시 우리는 좋은 친구야.”“넌 입도 참 꿀 바른 것처럼 말은 잘해. 어쩐지 효진 씨가 네 말에 홀딱 넘어가 빨리도 네 프러포즈를 받아줬다고 하더라니.”“빠르지도 않아. 나도 효진 씨랑 반년 동안 사귀어서야 결혼했잖아. 난 당장이라도 아내와 아이를 품에 안고 싶은걸.”소정남은 혼인신고를 하고도 아직 결혼생활을 누려보지 못했다.심효진은 계속 심씨 집에서 살고 있다. 소정남은 매일 같이 있기를 원했지만 처가에서 묵을 담은 없었다. 다행히 결혼식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결혼식 후에는 어찌해도 좋았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다 금세 관성 중학교에 도착했다.수업이 끝난 지도 한참 되었지만 교문 앞에는 여전히 많은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부모가 아이들을 데리러 온 것이라 차도, 사람도 많았다.전태윤의 차량 행렬은 묵묵히 다른 차들을 피해 가장 외진 곳에 차를 세웠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서이다.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 분부했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차에서 기다려. 따라올 필요 없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따라오면 너무 눈에 띄어.”둘은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
우빈은 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서너 살밖에 안 되는데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을 안았다.우빈은 뚱뚱하지 않다.녀석은 정말 졸렸는지 하예정에게 안긴 지 2분도 안 되어 금세 잠이 들었다.30분 후, 차 두 대가 전씨 그룹으로 들어섰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그를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저녁에 퇴근할 때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는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앞당겨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심효진은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상대방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면 부부 감정을 두텁게 해준다고 말한 적 있다.소설을 많이 본 성소현은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능력이 하예정보다 더 대단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서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사모님, 제가 우빈을 안아드릴게요.”경호원은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안아오려고 했다.그러나 하예정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제가 안으면 돼요. 1층에서 기다리세요. 만약 볼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일을 보셔도 돼요. 태윤 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그녀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경호원은 공손히 대답했다.“다른 개인적인 일은 없습니다. 큰 사모님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원들과 함께 회사 안으로 건물로 들어섰다.들어가는 길에 하예정을 본 직원들은 전부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1층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하예정과 우빈을 싣고 곧장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빈은 너무 정신없이 놀고 피곤한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다. 아마 깨우지 않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잘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전태윤의 비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모연정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용정은 가끔 혼자 놀 때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고 인기척을 듣지 못할 때 용정을 찾아가 보면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녀석이 제 립스틱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니까요.”성소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아이가 바로 우빈이였다.성소현은 우빈이가 항상 철이 들고 귀엽고 총명하다고만 느꼈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사로 보였다.성소현의 친조카처럼 막 태어났을 때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그녀는 친조카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찍어준다며 매일 조카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두었다.다만 눈물이 좀 많을 뿐이다.배가 고프면 울고 응가 해도 울었다. 말을 못 한 탓으로 아기는 입만 벌리면 울었다.모연정과 하예정은 잠시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지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쌍둥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모연정은 일어나서 아들을 안으러 갔다.딸은 이미 예준성에게 안겨 있었다.예준성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는데 예준하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형,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연이 안아줄게.”예준성은 캐리어를 예준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캐리어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차에 실어줘. 이따가 우리를 서원 리조트로 데려다줘.”그들의 개인 비행기는 서원 리조트에 주차되었다.예준하의 별장에는 예준하 부부의 개인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큰 공간이 없다.예준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지연이를 안고 싶은데 자꾸 캐리어만 끌게 하다니. 곧 돌아갈 거면서 지연이를 안지도 못하게 해.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중얼중얼하던 예준하는 결국 예준성을 도와 캐리어를 끌어갔다.예준성은 딸을 안고 하예정 자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연정이 예지호를 안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아, 가자. 용정은?”“밖에서 우빈이와 놀고 있어요. 나가서 불러오면 돼
하예정은 갑자기 점쟁이가 자신과 전태윤의 결혼을 지지하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아들딸을 낳을 거라는 말을 떠올렸다.만약 하예정이 딸을 낳으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만약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처럼 딸을 낳아도 잘 키울 수 없다면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을지언정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서원 리조트의 풍수에 문제가 있는 건가!그러나 점쟁이는 리조트의 풍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점쟁이는 서원 리조트의 풍수 구조가 사업과 자식들이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정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하예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유심히 본 성소현이 걱정스레 물었다.“내가 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낳은 딸이 세상을 뜨는 일을 언급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뱃속의 이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우빈이가 말했듯이 네 배 속의 아기는 남자 아기일 거야. 게다가 네가 딸을 낳았다고 해도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임신 중에 그렇게 많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분명 건강하게 자랄 거야. 태윤 씨 조상들의 일은 옛날얘기잖아. 청나라 말기 때 의학 기술이 얼마나 뒤처졌는데,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시기잖아.”고대 궁안의 생활도 아주 좋았지만 죽은 아기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말을 마친 성소현은 일부러 하예정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너도 태윤 씨에게 딸을 낳을 만큼 그렇게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걸. 너희들은 아들을 낳을 운명인 거지. 안 좋은 일은 생각하지 마. 너 놀란 것 좀 봐. 잘 들어. 내가 아기에게 준비한 선물들은 전부 남자아이 물건들이니까 꼭 아들을 낳아야 해.”하예정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켰다.아직 딸을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게다가 점쟁이는 하예정이 아들딸을 낳을 운명이라고 했기에 그녀가 딸을 낳는다고 해도 반드시 건강하게 키워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혹은 둘째를 가
하예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정을 예준하 곁으로 먼저 보냈다. 예준성 부부는 관성에 온 뒤로 줄곧 예준하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준하의 집에 도착하여 용정을 모연정 부부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의 긴장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했다.“아줌마, 저 여기서 좀 더 놀 수 있을까요?”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빈은 아쉬워하며 용정과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다.“용정이가 이번에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랑 놀 수 있거든요.”하예정은 모연정을 쳐다보았고 모연정이 말을 건넸다.“저희도 짐을 정리해야 해서 30분 정도 있다가 집으로 갈 거예요. 두 아이를 30분만 더 놀게 해요. 용정도 우빈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계속 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신나게 놀면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워져요.”“그러게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꾸 놀 생각만 하고 유치원은 가기 싫어질 거예요. 용정과 비교되지 않았다면 우빈은 아마 그의 사촌 이모처럼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야 했을걸요.”성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꺼린 사실이 언급되자 모연정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예준성 부부를 배웅하러 왔는데 하예정이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하예정을 가볍게 때렸다.“예정아, 너 정말 못된 것만 배운 거 아니야? 누가 어릴 때 유치원에 가고 싶었겠어?”하예정은 히죽히죽 웃었다.“저는 아마 가기 싫어한 적 없을걸요.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우리 언니도 말 한 적 없는걸요.”하예정은 유치원에 간 기억이 없지만, 하예진이 5살 연상이라 하예정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 경험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우빈아, 얼른 놀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 우리 모 아줌마를 배웅해 드려야 해. 그리고 이모부 회사로 가서 이모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늘 실컷 놀고 내일부터 유치원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