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전이진의 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형...”“꺼져.”그렇게 전태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전이진은 투덜거렸다.“자기가 잘살고 있으니까 동생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야 뭐야.”그때, 박 집사가 꽃 한 다발을 안고 들어왔다. 이것은 전이진이 오자마자 정원에 가서 잘라 오라고 그에게 분부한 꽃다발이었다.“둘째 도련님, 큰 도련님께 한마디 들으셨죠? 시간 좀 보고 오시지 그랬어요. 지금 시간에 깨어있는 건 닭밖에 없을 겁니다.”매일 울음소리로 사람들을 깨워야 하므로 닭들은 일찍이 잠에서 깬다.“여기 도련님 분부대로 꽃다발 가져왔습니다.”박 집사는 그 꽃다발을 전이진에게 건네주었다.곧이어 꽃다발을 받아안은 전이진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집사님, 제 기억에 정원에 핀 꽃들은 아주 찬란하고 예뻤는데, 이 꽃들은 꽃송이가 왜 이렇게 작죠? 예쁘지도 않고요.”그러자 박 집사가 말했다.“사모님이 꽃송이가 크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셔서 그것들은 도련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꽃송이가 작은 것들만 고른 거예요. 사모님이 안 좋아하시는 건 도련님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우리 별장에 있는 꽃이 많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아서 형수님한테 도움도 청할 겸 특별히 형네 별장에 있는 걸 잘라 달라고 한건데... 비록 형수님이 도와주겠다고 승낙하긴 했지만, 급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 말이지. 빨리 나를 도와 가서 좋은 말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게다가 나 형한테 미움까지 샀잖아.’전이진은 박 집사가 잘라준 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꽃집이 없었는지라 결국 이 꽃다발을 안고 가야만 했다.하지만 큰형수님에 대해서 그는 일단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큰형수님을 더 이상 귀찮게 할 배짱이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계속 성가시게 군다면 전태윤이 경호원에게 명령을 내려 시체 들어 올리듯 전이진을 밖에 내던질 수 있다.‘그건 너무 창피
엄마에게 아침 주러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주우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옆에 있던 전태윤은 그 두 사람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여보, 여보 지금 매일 아이들 깨우고 학교 보내는 부모님 같아.”그러자 하예정은 왜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았냐 말하려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지만, 어느새 전태윤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요? 벌써 정장도 다 입고?”“아, 사랑에 빠진 얼간이가 시끄럽게 전화를 거는 바람에 깼어.”하예정은 그가 전이진을 말하는 것임을 눈치채고 얼른 물었다.“이렇게 이른 아침에 도련님이 전화를 걸었다고요? 무선 전파 타고 기어가서 때리지 그랬어요?”“꼴에 그래도 내 동생이니까 때리지는 않았어. 이런 작은 일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애초에 나를 비웃고 내 웃음거리를 즐기긴... 자기한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할머니인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야.”“아참, 요 며칠 할머니 못 봬서 그런지 많이 보고 싶네요.”전태윤은 주우빈을 안고 하예정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틀림없이 또 여기저기서 손자며느리를 고르셨을 거야. 한가한 걸 참지 못하는 분이시거든. 만약 한가해지시면 우리 모두 긴장 잔뜩 해야 할 걸? 우리를 엄청 괴롭히실 테니까... 할머니가 느끼시는 즐거움은 모두 우리의 고통으로 이뤄낸 거야.”“감히 할머니 앞에서 그런 말 할 수 있어요?”“...그럴 리가. 말하면 진짜 고통스러워질 거야.”“겁쟁이네요.”하예정이 피식 웃었다.“할머니 앞에서 겁쟁이라고 인정하는 건 전혀 창피하지 않아.”인제 보니 전태윤은 할머니에게 적잖이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았다. 혼나는 것보다 겁쟁이가 되는 것을 원할 정도니 말이다.“할머니도 무책임하셔. 둘째랑 셋째한테 사진 한 장씩 던져주고 나 몰라라 하시잖아. 이진이가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서 하루가 멀다고 우리한테 달려와 귀찮게 하는 것 좀 봐. 내가 경험이 많아 보이나? 그렇다 해도 우리 둘을 걔들이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전태윤은 동생이
핸드폰을 탁자에 올려놓고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말했다.“할머니가 점점 뻔뻔해지시네.”본래 그는 “늙을수록 더욱 교활해지나 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할머니의 귀에 들어가 자신이 혼날까 봐 결국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할머니는 그저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만 할 뿐, 아들을 낳는 것까지는 책임지지 않으세요.”하예정도 피식 조롱하며 한마디 했다.할머니는 손자를 도와 손주며느리를 고르는 일만 할 뿐이지 어떻게 손자의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게다가 집에는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한 손자가 여러 명이나 더 있지 않은가.할머니가 이렇게 손주며느리를 고르신다는 것을 알고, 넷째부터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손주들은 요즘 벌벌 떨며 다들 긴장하고 있다.매일 할머니가 어떤 아내감을 골라줄까 추측하며 말이다.그래서 그들은 달콤한 말로 최근 매일 할머니를 달래 즐거워하게 만들고 있었다. 급히 결혼시키지 않게, 자신을 몇 년 더 혼자 있게 내버려두도록 말이다.아무튼 계속 혼자 있고 싶어 손주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할머니를 구슬렸다.아침을 먹은 후, 하예정은 쉬지도 못한 채 바로 언니에게 아침을 가져다주어야 했다.주우빈은 수업하러 가야 했고 강일구는 이미 그녀를 데려다줄 준비를 마쳤다.“이모, 오늘은 수업하기 싫어요. 엄마 보러 가고 싶어요.”녀석은 며칠 동안 수업을 받더니 다시 농땡이를 치려 했다.이윽고 하예정의 손에 이끌려 집에서 나선 주우빈은 강일구가 있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이모를 꼭 감싸안았다.그러자 하예정이 몸을 웅크린 채 조카에게 말했다.“우빈아, 무슨 일을 할 때든지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 안 돼. 꼭 끝까지 해내야지. 우빈이 무술 잘 배워서 엄마랑 이모 잘 보호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우빈이가 끝까지 버티지 않으면 무술을 배울 수 없고 엄마를 보호할 수도 없어. 우빈아,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결정한 뒤로는 꼭 진지하게 하고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돼.”주우빈은 그 작은 입을 앙다물더니
주우빈이 수업을 들으러 간 후에야 하예정은 전태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봄이 와 길거리에 꽃잎이 흩날리자, 그녀는 가는 길에 전태윤에게 차를 세우라 했다. 가게로 들어가 꽃 한 다발을 사기 위해서 말이다.하지만 여운초는 가게에 없었다.“사장님 혹시 배달하러 가셨나요?”하예정이 직원에게 물었다.“사장님은 아침 일찍 물건 사러 가셨어요. 대략 10시쯤에나 돌아올 겁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무슨 중요한 일로 저희 사장님을 찾아오셨어요? 사장님 돌아오면 사모님께 전화하라고 할까요?”“네, 운초 씨 돌아오면 나한테 전화 좀 해달라고 말해줘요.”직원은 하예정의 요구에 응한 뒤 그녀를 가게 밖으로 배웅했다.꽃다발을 안고 차에 오른 하예정은 차 문을 닫으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운초 씨 가게에 없어요. 아침 일찍 물건 들이러 가서 10시쯤에 돌아온대요. 태윤 씨가 이진 도련님한테 말해줄래요? 저 10시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요. 효진이가 있어야 내가 올 수 있어요.”“상관하지 마. 이진이도 알아서 하겠지. 이틀 동안이나 휴가를 줬는데도 자기 일 하나 잘 처리하지 못하니... 일 처리 능력이 심히 의심되는군.”“제가 잘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따지자면 제가 이진 도련님 형수인 게 잘못이죠.”전태윤에게 친동생이 여덟 명이나 있다는 것이 떠오르자 하예정은 이렇게 생각했다.‘만약 한 명씩 다 나한테 와서 도움을 청한다면 결혼컨설팅 회사를 차려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어휴, 내가 형수인 탓이지, 뭐.’전태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차를 몰아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곧이어 부부는 병원에서 노동명과 마주쳤다.그는 한 손에 꽃다발을, 한 손에 보온도시락을 들고 있어 딱 봐도 하예진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하예정 부부는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노동명은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전태윤이 하예정에게 말했다.“동명이 정말 요령이 튼 것 같아. 저 거친 남자가 처형한테 밥까지 나르고 있으니
노동명은 하예정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불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역시 전태윤의 마누라답군. 이 부부는 일을 보는 거나 말하는 거나 거의 똑같이 행동하네.’“예정 씨, 저는 예진 씨가 재혼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노동명이 매우 진지하게 말하자 하예정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다른 이유를 떠나 노동명이라는 사람을 봤을 때 하예정 역시 그가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으니 말이다.세 사람은 함께 입원실 건물로 들어갔고 얼마 안 지나 하예진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또 이른 아침부터 병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주형인을 보았다.이번에는 김은희와 주서인 없이 주형인 혼자 왔고 그 역시 손에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 있었다.이것은 부모님이 주형인에게 이렇게 하라고 요구한 것이었다.주형인을 보자 하예정은 다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 할아버지가 저 사람을 막지 않았다고?’그래도 이번에는 김은희와 주서인이 오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었다.주형인은 하나의 모순체와 같아 비교적 쉽게 쫓아낼 수 있었다.“어이, 거기 주씨. 또 우리 예진 누나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얼른 꺼져!”하지철이 하예정 등 사람들을 지나쳐 먼저 주형인의 곁으로 달려갔다.그러고는 한 손으로 주형인의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을 빼앗아 땅에 던져놓았고 발을 들어 잔인하게 밟기 시작했다.뒤이어 나머지 보온도시락마저 빼앗으려 하자 주형인이 절대 안 뺏기겠다는 듯 고집스레 안았고 하지철은 어떻게든 빼앗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전씨 가문 경호원들은 바로 옆에서 이 “연극”을 보고 있었다.“지철아.”어느새 다가온 하예정이 자신의 사촌 동생을 불렀다.“예정 누나, 왔구나. 이 자식 너무 괘씸해. 제 부모님을 이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막고 혼자 빠져나왔어. 내가 차를 몰고 끝까지 쫓아오기는 했지만 결국 못 따라잡았고... 아니나 다를까 또 여기로 예진 누나 방해하러 온 거 있지?”하지철은 이렇게 말하며 주형인의 집중력이 흐려진 틈을 타 마침내 보온도시락을
전태윤이 경호원에게 눈짓하자 경호원이 바로 전태윤의 뜻을 알아차렸다. 노동명이 마지막으로 병실로 들어섰다. 주형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꽃다발과 보온병을 들고 있는 노동명을 발견했다. ‘저건 분명 하예진을 꼬시려는 거잖아.’주형인의 마음이 순간 질투로 씁쓸해졌다. “예진아, 예진아...”주형인이 겨우 두 번 불렀을 뿐인데 하지철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하지철은 젊은 데다 깡패들과 잠깐 어울리고 다녔었기에 행동이 굉장히 거칠었다. 게다가 주형인에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으니 사무실에 앉아있기만 하는 주형인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이제 갓 열여덟 살이 된 청년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주형인은 하지철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멀리 끌려가서야 하지철이 그를 놓아주었다. “날 숨 막혀 줄게 할 셈이야?”주형인이 하지철에게 욕설을 지껄였다. “이게 위아래도 없이. 엄연히 말하면 넌 날 형부라고 불러야 해.”“쳇. 형부? 우리 형부가 될 자격이 있기는 해? 양심도 없지. 우리 누나와 이혼한 지도 6개월이 넘었고 다른 사람과 재혼한 지도 몇 개월이 지났어. 그러고도 나더러 형부라고 부르라고? 퉤.”혈기 왕성한 하지철은 주형인의 한마디에 몇 번이나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다 하지철은 정말로 침을 튀겼다. 얼굴에 침을 맞은 주형인은 비위가 상해 토하고 싶어졌다. 그는 얼른 종이를 꺼내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았다. “이 하씨 놈들아, 너희들 평소엔 분명 하예진 자매에게 신경도 쓰지 않더니 요즘은 무슨 신세라도 진 거야? 너희들 셋은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러는 거야.”하지철이 콧방귀 뀌며 말했다. “내가 예진 누나를 돕지 당신들을 돕겠어? 아무리 신경 쓰지 않아도 결국은 가족이야. 당신은 남이고. 우리끼리 아무리 피 터지게 싸워도 결국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주형인 씨, 경고하는데 또 우리 예진 누나에게 찝쩍거렸다간 내 손으로 죽여버릴 줄 알아. 내가 당신 택시 운전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거야.”주형인은 하지철에게 몇 마디 욕을 내
하예정은 병실을 나서는 노동명을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태연하기만 한 전태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태윤은 이미 노동명이 어떤 반응일지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전태윤은 노동명을 배웅했다. “예정아, 가게도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언니, 내가 같이 있어줄게.”“이제 같이 안 있어도 돼. 이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괜찮아. 의사가 고집부리지만 않으면 난 지금이라도 퇴원하고 싶어.”하예진은 하루 토스트가 마음에 걸렸다. “의사 말 들어.”하예정이 말했다. “며칠 더 입원하고 퇴원해. 어차피 퇴원해 봐야 언니는 지금 당장 다시 가게로 출근할 수도 없어. 집에서 푹 쉬어야 한다고.”“이미 병원에 두 주일이 되도록 누워만 있었어. 퇴원하고도 누워있으면 몸이 무너져 내릴 거야. 퇴원하면 내가 직접 안 하고 그냥 가게를 지키기만 할게. 결제나 하고. 그러면 되지? 걱정하지 마. 내 몸이야. 나도 내 몸 아껴.”하예정이 보온병 뚜껑을 열어 그릇에 국을 떴다. “언니, 동명 씨가 가져온 거, 마실 거야?”“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겠어. 대표님이 멀리까지 가시면 숙희 아주머니 드시라고 가져다드려. 매일 여기서 나 보살피느라 힘드실 텐데.”노동명은 꽃과 보온병을 놓고 바로 가버렸다. 아마 하예진이 자기가 가져온 보신탕을 거절할까 봐 그런 것 같았다. 사실 노동명이 빨리 자리를 뜨지 않았다면 하예진은 노동명에게 보온병을 가져가라고 했을 것이다. 노동명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하예진은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보신탕을 마시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많이 마실 수도 없었다. 하예진은 평소 다른 사람이 가져온 보신탕도 숙희 아주머니에게 나눠주었었다. 그렇지 않으면 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없이 살아봤었던 하예진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걸 볼 수 없었다. 숙희 아주머니에게 주면 몸보신도 할 수 있으니 그녀를 더욱 잘 보살필 수 있었다. “제부더러 대표님께 내가 보신탕을 많이 먹을 수는
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말했다. “이진 씨는 휴가고 정남 씨는 회사로 안 갈 수도 있잖아요.”전태윤이 웃으며 대답했다. “비서에게 회의 미루라고 하면 돼. 가자, 데려다줄게. 당신 차는 우진이 더러 직접 가게에 두라고 하면 돼.”하예정은 전태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저녁에 데리러 갈게. 밤에 술자리가 있는데 당신이 함께 가줬으면 해.”“그래요.”하예정이 쿨하게 대답했다. 전태윤은 하예정을 서점에 데려다준 후 바로 회사로 돌아가 바쁜 일과를 시작했다. 심효진이 오늘은 가게로 출근했다. 하예정이 장난스럽게 심효진에게 말했다. “집에서 결혼식 준비 안 해? 너희 집 그분은 마음이 급하신 것 같던데, 난 네가 오늘도 안 오는 줄 알았어.”“내가 할 일도 별로 없고, 집에만 있기엔 갑갑해서 나왔어.”얼굴이 환해진 심효진을 보며 하예정은 그녀가 정말 많이 예뻐졌다고 생각했다. 하예정은 손을 뻗어 심효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칭찬했다. “부드러운 것 좀 봐. 네 피부가 점점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 역시 사랑받는 여자는 예뻐진다니까. 내가 남자였어도 널 좋아했을 거야.”심효진도 하예정의 얼굴을 꼬집었다. “네 피부도 부드럽잖아. 너희 집 태윤 씨가 사준 화장품이 효과가 좋은가 봐.”하예정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태윤 씨가 사준 건 소현 언니가 준 것과 비슷한 브랜드야. 태윤 씨가 주기적으로 제일 좋은 미용사를 고용해 줘서 집에서 관리받고 있어.”물질적으론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뭐든 제일 좋은 것만 해줬다. 단 한 번도 그녀를 푸대접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초고속 결혼을 했을 때도 말이다. “태윤 씨는 점점 더 다정해지는 것 같아. 진보가 너무 빨라.”“할머니께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랬어.”전씨 할머니 얘기가 나오자 심효진이 말했다. “할머님 뵌 지도 오래된 것 같아. 괜히 할머님 보고 싶네.”“우리 진이 할머니 보고 싶었어? 할머니 왔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전씨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
우빈은 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서너 살밖에 안 되는데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을 안았다.우빈은 뚱뚱하지 않다.녀석은 정말 졸렸는지 하예정에게 안긴 지 2분도 안 되어 금세 잠이 들었다.30분 후, 차 두 대가 전씨 그룹으로 들어섰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그를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저녁에 퇴근할 때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는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앞당겨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심효진은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상대방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면 부부 감정을 두텁게 해준다고 말한 적 있다.소설을 많이 본 성소현은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능력이 하예정보다 더 대단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서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사모님, 제가 우빈을 안아드릴게요.”경호원은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안아오려고 했다.그러나 하예정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제가 안으면 돼요. 1층에서 기다리세요. 만약 볼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일을 보셔도 돼요. 태윤 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그녀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경호원은 공손히 대답했다.“다른 개인적인 일은 없습니다. 큰 사모님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원들과 함께 회사 안으로 건물로 들어섰다.들어가는 길에 하예정을 본 직원들은 전부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1층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하예정과 우빈을 싣고 곧장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빈은 너무 정신없이 놀고 피곤한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다. 아마 깨우지 않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잘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전태윤의 비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모연정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용정은 가끔 혼자 놀 때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고 인기척을 듣지 못할 때 용정을 찾아가 보면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녀석이 제 립스틱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니까요.”성소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아이가 바로 우빈이였다.성소현은 우빈이가 항상 철이 들고 귀엽고 총명하다고만 느꼈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사로 보였다.성소현의 친조카처럼 막 태어났을 때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그녀는 친조카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찍어준다며 매일 조카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두었다.다만 눈물이 좀 많을 뿐이다.배가 고프면 울고 응가 해도 울었다. 말을 못 한 탓으로 아기는 입만 벌리면 울었다.모연정과 하예정은 잠시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지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쌍둥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모연정은 일어나서 아들을 안으러 갔다.딸은 이미 예준성에게 안겨 있었다.예준성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는데 예준하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형,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연이 안아줄게.”예준성은 캐리어를 예준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캐리어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차에 실어줘. 이따가 우리를 서원 리조트로 데려다줘.”그들의 개인 비행기는 서원 리조트에 주차되었다.예준하의 별장에는 예준하 부부의 개인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큰 공간이 없다.예준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지연이를 안고 싶은데 자꾸 캐리어만 끌게 하다니. 곧 돌아갈 거면서 지연이를 안지도 못하게 해.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중얼중얼하던 예준하는 결국 예준성을 도와 캐리어를 끌어갔다.예준성은 딸을 안고 하예정 자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연정이 예지호를 안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아, 가자. 용정은?”“밖에서 우빈이와 놀고 있어요. 나가서 불러오면 돼
하예정은 갑자기 점쟁이가 자신과 전태윤의 결혼을 지지하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아들딸을 낳을 거라는 말을 떠올렸다.만약 하예정이 딸을 낳으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만약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처럼 딸을 낳아도 잘 키울 수 없다면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을지언정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서원 리조트의 풍수에 문제가 있는 건가!그러나 점쟁이는 리조트의 풍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점쟁이는 서원 리조트의 풍수 구조가 사업과 자식들이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정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하예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유심히 본 성소현이 걱정스레 물었다.“내가 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낳은 딸이 세상을 뜨는 일을 언급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뱃속의 이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우빈이가 말했듯이 네 배 속의 아기는 남자 아기일 거야. 게다가 네가 딸을 낳았다고 해도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임신 중에 그렇게 많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분명 건강하게 자랄 거야. 태윤 씨 조상들의 일은 옛날얘기잖아. 청나라 말기 때 의학 기술이 얼마나 뒤처졌는데,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시기잖아.”고대 궁안의 생활도 아주 좋았지만 죽은 아기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말을 마친 성소현은 일부러 하예정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너도 태윤 씨에게 딸을 낳을 만큼 그렇게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걸. 너희들은 아들을 낳을 운명인 거지. 안 좋은 일은 생각하지 마. 너 놀란 것 좀 봐. 잘 들어. 내가 아기에게 준비한 선물들은 전부 남자아이 물건들이니까 꼭 아들을 낳아야 해.”하예정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켰다.아직 딸을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게다가 점쟁이는 하예정이 아들딸을 낳을 운명이라고 했기에 그녀가 딸을 낳는다고 해도 반드시 건강하게 키워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혹은 둘째를 가
하예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정을 예준하 곁으로 먼저 보냈다. 예준성 부부는 관성에 온 뒤로 줄곧 예준하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준하의 집에 도착하여 용정을 모연정 부부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의 긴장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했다.“아줌마, 저 여기서 좀 더 놀 수 있을까요?”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빈은 아쉬워하며 용정과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다.“용정이가 이번에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랑 놀 수 있거든요.”하예정은 모연정을 쳐다보았고 모연정이 말을 건넸다.“저희도 짐을 정리해야 해서 30분 정도 있다가 집으로 갈 거예요. 두 아이를 30분만 더 놀게 해요. 용정도 우빈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계속 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신나게 놀면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워져요.”“그러게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꾸 놀 생각만 하고 유치원은 가기 싫어질 거예요. 용정과 비교되지 않았다면 우빈은 아마 그의 사촌 이모처럼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야 했을걸요.”성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꺼린 사실이 언급되자 모연정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예준성 부부를 배웅하러 왔는데 하예정이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하예정을 가볍게 때렸다.“예정아, 너 정말 못된 것만 배운 거 아니야? 누가 어릴 때 유치원에 가고 싶었겠어?”하예정은 히죽히죽 웃었다.“저는 아마 가기 싫어한 적 없을걸요.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우리 언니도 말 한 적 없는걸요.”하예정은 유치원에 간 기억이 없지만, 하예진이 5살 연상이라 하예정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 경험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우빈아, 얼른 놀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 우리 모 아줌마를 배웅해 드려야 해. 그리고 이모부 회사로 가서 이모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늘 실컷 놀고 내일부터 유치원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