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남의 말에 심효진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이 사람, 너무 조급한 거 아니야?’“그럼 약혼식부터 올리고, 혼인신고를 한 후에 결혼식을 올리는 거로 해요.”소정남은 심효진의 뜻을 매우 존중했고 그녀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이에 심씨 가족들을 매우 만족스러웠다.소정남의 신분에 맞춰 그와 심효진의 약혼식은 관성 상류사회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여 떠들썩하게 치를 것이다.그는 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자신이 심효진에게 프러포즈했고 그녀도 이미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알렸다. 시간 되면 이리로 와서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혼사에 대해 상의해 달라고 부탁했다.아들의 말을 들은 최민주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의 일이 아무리 바빠도 네 혼사만큼 중요하지는 않아. 알았어, 너희 아빠랑 큰아버지들까지 불러 후한 선물을 준비해서 사돈집으로 갈게.”“고마워요, 엄마.”“고맙긴 뭐가 고마워, 엄마도 기뻐. 정남아, 엄마가 몇 마디 당부할 게 있어. 앞으로 효진이를 잘 대해줘야 한다, 괴롭히면 안 돼. 엄마는 네가 아들이라고 무작정 돕는 사람이 아니니. 효진의 말이 맞는다면 넌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 설사 맞지 않대도 양보해야 하는 거야. 며느리를 얻기 쉽지 않아.”그녀의 아들은 눈이 너무 높은지라, 모처럼 심효진을 위해 솔로 생활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미래의 며느리를 매우 중시했다. 게다가 전에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집안 대대로 내려온 보물을 심효진에게 주었고 그녀를 맏며느리로 인정했다.“엄마, 알겠어요.”소정남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런 인생의 큰일에 있어서 그는 결코 장난을 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심사숙고하며 자기 마음속의 진실한 생각을 따랐다.“그래, 엄마는 우리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 네가 효진에게 잘해줄 거라고 믿어. 이 정도로만 말할게. 먼저 너희 큰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대신 후한 선물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려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사돈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소정남은 그의 나이 또래에서 처음으로 결
심효진은 말했다.“이제 소지훈 씨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거든 꼭 나한테 알려줘요. 어떤 여자가 소지훈 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거든요.”소정남은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볼에 뽀뽀한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효진 씨도 우리 소씨 가문 사람이에요. 우리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분명 우리가 제일 먼저 알게 될 거예요.”심효진은 그를 가볍게 밀어냈다.“어르신들 계시잖아요.”‘뽀뽀까지 하고...’그녀가 아무리 대담해도 어른들 앞에서 그에게 뽀뽀하기는 부끄러웠다.“우리가 친밀하게 보일수록 어르신들이 더 좋아해요.”심효진은 재빨리 윗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한창 약혼 날짜를 의논하고 있었고 전혀 두 사람을 관심하지 않았다.“나가서 산책이나 할까요?”심효진이 제안하자 소정남은 기다렸다는 듯 이내 응낙했다.“엄마, 저 정남 씨랑 산책하러 갈게요.”심효진은 엄마에게 한마디 하고는 소정남을 끌고 집에서 나왔다.문 앞의 꽃바다는 여전했고 밤이 되니 불빛이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그건 소정남이 꽃 위에 여러 컬러의 라이트들을 배치해 놓아 밤이 되면 반짝반짝 빛났다.심씨네 집 앞 가로등들도 켜져 있었다. 온갖 종류의 외제 차가 주차된 것을 보고, 심효진은 곁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나는 우리 집안과 비슷한 남자를 찾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며 자면서도 돈을 벌 생각은 한 적이 있지만 정남 씨와 함께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나도 상가를 비롯한 부동산이 꽤 있어요. 돈은 은행에 넣어두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모두 투자하는 편이에요. 그러니 효진 씨는 앞으로도 여전히 임대하며 살 수 있어요. 내 명의로 된 그 집들과 상가들을 임대한 후 전부 효진 씨에게 맡길게요. 받은 임대료는 효진 씨가 쓰고 싶으면 쓰고, 쓰고 싶지 않으면 땅을 사서 임대해주고 계속 돈을 벌어도 좋고요.”“지금은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면 가격이 너무 높아요. 정책이 갓 바뀌었을 때는 아주 저렴한 값에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임대료가 올라가는
하예정은 참지 못하고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정말 아직도 질투한다고?”하예정은 다시 전화를 걸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녀는 휴대폰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잠시 침묵에 잠긴 후 뜨개질 도구를 꺼냈다. 할 일이 없을 때는 다시 뜨개질을 시작하게 된다.2분도 안 지나 한 꽃다발이 불쑥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하예정이 고개를 들자, 전태윤의 그윽한 눈과 마주쳤다.“당신... 왜 자꾸 전화를 안 받아요?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을 안 하고.”공예품을 짜는 것을 멈추고 하예정은 그 꽃다발을 받아 들고는 그에게 한마디 불평했다.전태윤은 계속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거의 다 왔으니, 전화 받을 필요가 없었어. 낮에는 일찍 퇴근하기 위해 일이 바빴거든.”그녀가 한 그루의 파키라를 다 짠 것을 보고 그는 그 공예품을 집어 들고 감상했다.“사람을 시키지 않았어? 더 이상 혼자 힘들게 하지 마. 손 좀 주의하고.”전태윤은 그 파키라를 다시 놓고는 전에 다친 손을 잡아 쥐었다. 상처는 이미 나았지만,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속상한 표정으로 그 흉터를 어루만졌다.전에 그녀가 손을 다친 것은 전태윤 때문이다.“이 꽃다발 참 신선하네요.”그녀는 그가 자책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손을 빼내며 화제를 돌렸다.“관성의 꽃집에 있는 장미꽃을 정남 씨가 다 사 간 거 아니었어요?”소정남이 심효진에게 프러포즈할 때 쓴 꽃이 너무나도 많아 그녀는 꽃집에 장미꽃이 남아있지 않을 거로 추측했다.“내가 이제야 온 이유가 바로 이 꽃다발 때문이야.”하예정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혹시 당신 집에 가서 꽃을 잘라 온 건 아니죠?”전태윤은 귀여운 듯 그녀의 코를 살짝 어루만지고는 그녀의 붉은 입술을 꼬집으며 말했다.“잘못한 말을 바로잡아줄게. 내 집도 당신 집이니까 우리 집이라고 말해야지. 심효진 씨에게 닭과 오리 한 트럭 사달라고 한 거 기억하지? 리조트 근처 과수원에서 키우고 있었는데 그 닭과 오리가 알을 많이 낳아서
하예정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그녀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일어서더니 돌아서서 그와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진우는 편찮으신 어머님을 보러 온 것뿐이에요. 이틀 휴가를 내서 주말까지 모두 나흘이나 휴식하니 어머니를 보러 온 거에요. 서점에 온 것도 그저 지나가는 김에 사촌 누나인 효진이를 보러온 거예요, 나 보고 온 게 아니라. 효진이도 진우가 여기 오기 전에 일부러 전화 와서 내가 가게에 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왔다고 하더군요. 내가 가게로 돌아와 진우와 마주쳤을 때는 이미 떠나려던 참이었어요. 같이 있은 시간이 5분도 안 되는 걸요. 경호원들도 밖에서 보고 있는데 정말 뭐가 있었으면 당신 집 경호원들이 가만히 있겠어요?”하예정은 다소 어이없다는 듯 그의 얼굴을 꼬집었다.“당신도 참, 질투가 너무 심해요. 예전에 내가 말했듯이, 나와 진우는 그저 남매일 뿐, 남녀간의 감정은 전혀 없어요.”전태윤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얼굴에 갖다댔다. 그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김진우와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것이 신경 쓰인단 말이야. 둘이 알고 지낸 시간이 나보다 더 오랜 데다 김진우는 당신을 깊이 사랑했었잖아.”“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내가 진우를 10여 년이나 더 알고 지냈는데요. 당신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요?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이랑만 알고 지내도 좋아요.”이 남자는 지금 그녀가 김진우를 먼저 알게 된 사실까지도 꺼내서 얘기하고 있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간을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까. 만약 그런 능력이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그와 하예정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로 되게 하여 같이 자라게 했을지도 모른다.그가 여전히 매우 신경 쓰인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하예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여보, 진우는 이미 다 내려놓은 걸요. 비록 나랑 진우는 알고 지낸 지 십여 년이 되지만, 당신은 이제 나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
전태윤이 물었다.“우리 언니한테 닭과 오리를 가져다주려면 지금 가요.”너무 늦게 가면 쉬는 데 방해할까 봐 걱정됐다.하예정은 서점의 문을 닫고 전태윤의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차는 경호원이 몰고 가기로 했다.차에서 그녀는 전태윤에게 물었다.“동물원 사건은 결론이 났어요? 정말 여씨 가문의 짓이 아니에요?”전태윤은 잠자코 있다가 대답했다.“적어도 여 대표가 한 짓은 아니야.”“그럼 여 대표가 아니라 여 사모님이?”그는 여씨 사모님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소정남이 조사 중이야. 아직 증거는 없지만 우리 모두 여씨 사모님을 의심하고 있어."전태윤은 처음엔 그를 노리고 온 줄로 알았다.하지만 자세히 조사해 보니 그가 아니라 하예정이 타깃이었다.하예정은 여씨 모녀와만 원한을 맺었었다. 그 때문에 자연히 여씨 사모님을 의심하게 되었다.“여 대표 부부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꽤 많은 것 같아. 그들 부부는 신중한 데다 일 처리에 무척 조심스러워서 무슨 일을 하든 꼬투리를 남기지 않아. 소지훈마저도 그 부부에게 관심이 많아졌어.”조사가 어려울수록 소지훈은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데, 일정한 정도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 직접 나설 것이다.“그때 가서 여운초와 힘을 합쳐 잘 조사하기만 하면 그들 부부의 약점을 잡을 수 있을 거야.”하예정은 여운초의 담담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듯한 성미를 떠올리며 걱정스럽게 말했다.“운초 씨는 눈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협조해요? 그리로 여씨 사모님은 아무래도 친어머니잖아요.”여운초와 여씨 사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녀가 친어머니인 건 사실이다.전태윤은 잠시 침묵에 잠기다 입을 열었다.“일단 이진이랑 여운초 씨 상황을 지켜보고. 이진이는 일단 신의의 유능한 제자에게 부탁해 여운초 씨 눈을 치료해 주려 해.”“신의요?”하예정은 이런 호칭을 들을 때면 뭔가 미스테리한 느낌이 났다.그녀는 전태윤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여태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많은 사람과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역시, 그녀의
전태윤은 팔을 뻗어 그녀를 꼭 끌어안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말했다.“나중에 내가 급한 업무를 다 처리하거든 며칠 시간 빼내서 함께 A시로 가자. 예씨 가문 예준성 부부랑 한번 만나. 예준성 씨는 어머님 성을 따라 예 씨야.”그는 또 하예정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여보도 소설 속 여주인공이야. 남들이 여보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알아?”하예정은 그를 가볍게 밀쳤다. 매번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며 뜨거운 입김을 불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간질거려 당장이라도 확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전태윤 부부는 계란과 닭, 오리를 하예진에게 보낸 후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왔다.집에 와보니 숙희 아주머니가 와 계셨다.아주머니는 전태윤이 애초에 하예정에게 준 반려견도 데려왔다. 반려동물들은 줄곧 아주머니가 돌보고 있어 발렌시아 아파트로 함께 돌아왔다.문을 열자 봄이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하예정은 봄이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서 한참 넋 놓고 있다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태윤에게 물었다.“봄이 왜 이렇게 살쪘어요?”전태윤은 반려동물을 싫어하는데 하예정을 너무 사랑한 탓에 집에 몇 마리 키우고 있다. 하예정이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하니 그는 봄이와 고양이 두 마리를 곧장 선물해줬다.하예정이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자 봄이는 신나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전태윤은 개털이 몸에 묻을까 봐 얼른 저 멀리 피했다.“숙희 아주머니가 얘네들 너무 잘 돌보셔서 개자식이 점점 더 살찐 거지. 고양이 두 마리도 살찐 것 좀 봐. 저렇게 세 마리가 한데 있으니 꼭 새끼돼지 같아.”하예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쏘아붙였다.“봄이라고 불러요. 개자식이 뭐예요, 우리 봄이 욕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입을 삐죽거렸다.“그래, 알았어. 개자식 아니고 봄이지.”숙희 아주머니가 웃으며 부부에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이 물건들 냉장고에 넣어두시면 돼요.”전태윤은 엄마가 챙겨주신 닭을 아주머니께 건넸다.비닐봉지를 받은 아주머니가 그에게 물었
“손자들만 해치는 할머니야.”하예정이 할머니를 옹호해 나섰다.“할머니가 당신 뭘 해쳤는데요? 할머니가 하신 모든 일은 다 당신들 잘 되라고 그런 거예요. 말해봐요, 할머니가 대체 태윤 씨를 어떻게 해쳤냐고요?”그녀는 전태윤을 밀치려 했고 이에 전태윤이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예정아, 너 방금 뚱땡이 봄이 만진 손도 안 씻었는데 얼른 가서 씻어. 개털 묻은 손으로 날 밀치지 말고. 나 이런 개털들 딱 질색이야.”“...”숙희 아주머니가 웃으며 답했다.“예정 씨, 얼른 가서 손 씻으세요. 제가 야식 준비했으니까 손 씻고 바로 와서 드세요.”야식 먹으란 말에 하예정은 더이상 남편과 개털 문제로 따져 묻지 않고 손 씻으러 화장실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녀는 손 씻으며 아주머니께 물었다.“야식 뭐 했는데요?”“아무튼 다 사모님 좋아하시는 거로 만들었어요.”숙희 아주머니는 봄이더러 얼른 개집에 들어가 자라고 눈치를 줬다.똑똑한 봄이는 전태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고 감히 집안에서 뛰어다니지 않은 채 얌전히 개집으로 들어가 엎드려 있었다.전태윤은 야식을 먹지 않고 TV를 보려 했는데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아 방에 들어가서 샤워를 마치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부부가 집에 돌아온 뒤 일상이 곧 이러했다.그렇게 어두운 밤이 흘러갔다.오늘은 하예진 자매가 고향 마을에 돌아가 하 영감 일행과 다시 계약서를 체결하는 날이라 하루 토스트는 문을 닫았다.엄마의 끈질긴 다그침에도 꿋꿋이 전태윤의 집에 들러붙어 있는 노동명은 하루 토스트로 가서 아침을 먹으려고 늦잠을 자다가 허겁지겁 일어나 세안을 마치고 운전해 나갔다.결국 가게 문 앞에 도착해서야 문이 닫힌 걸 발견했는데 누군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그 사람은 노동명도 아주 눈에 익은 바로 서현주였다.하예진을 찾아온 듯싶었는데 아마도 그녀한테서 소식을 캐내고 싶은 모양이다.이름 모를 여자가 서현주에게 내린 미션이었으니.상대는 전태윤과 성기현이 대체 어디까지 조사했는지 알고 싶었다.요
노동명은 서현주를 내쫓은 후 굳게 닫힌 가게 문을 보면서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예진아, 오늘 왜 가게 문 안 열어?”노동명이 살짝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예정이랑 함께 고향 마을에 일 보러 내려왔어요. 부모님 집 문제도 해결했겠다, 오늘 하루 휴식하느라고요. 왜요?”노동명이 알겠다며 대답한 후 질문을 이어갔다.“부모님 집 문제가 해결됐다고? 더이상 소송 안 걸어도 돼?”그는 하예진을 도와 소송문제도 해결해주려 했다.“협상으로 해결했어요. 대표님, 저 일 봐야 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그래.”노동명은 전화를 끊었다.하예진이 고향 마을의 일을 다 해결했는데 노동명은 아무런 소식도 못 들었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으니까.하긴, 말해줄 이유도 없잖아!노동명이 뭐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하예진이 사사건건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생각을 마친 노동명은 왠지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했다.하루 토스트가 문을 안 여니 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허기진 배를 안고 회의하러 회사로 가야만 했다.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은경이 하루 토스트 문 앞에 나타났다.물론 가게 문을 안 열었으니 손은경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하루 토스트가 하예진 가게라는 것도 몰랐다.그녀는 단지 노동명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보내주려고 왔을 뿐이다.저 멀리서 노동명의 차가 이 가게 앞에 세워진 걸 보고 손은경도 차를 세우고는 그의 행동을 빤히 쳐다봤다.그가 서현주를 놀라게 하고 줄행랑치게 한 것도 똑똑히 지켜보았고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윤미라에게 보여주며 그 여자가 대체 누군지 여쭐 생각이었다.서현주가 허겁지겁 떠나긴 했지만 노동명과 꽤 길게 대화를 나눈 터라 두 사람은 지인임이 분명했다. 손은경은 원래 마음만 먹으면 노동명을 바로 낚아챌 거라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윤미라의 조언을 들은 후에도 자신감을 잃진 않았지만 노동명의 곁에 나타난 어떠한 여자도 경계를 늦출 순 없었다.그와 아는 사이이고 대화도 나누는 여자라면 철저하게 뒷조사하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