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알겠어요. 감사해요, 대표님. 그럼 저희 먼저 가볼게요.”하예진은 노동명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그래, 조심해서 가. 우빈아, 안녕.”우빈이도 노동명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동명 아저씨, 다음에 또 만나요.”하예진은 스쿠터에 아들을 태우고 떠났다.노동명은 멀어지는 두 모자의 뒷모습을 한참 서서 바라보다가 더는 보이지 않자 비로소 차에 올라 회사로 돌아갔다.그의 차가 떠나자, 뒤에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BMW 차도 따라서 움직였다.“은경아, 우리 조금 더 빨리 운전해서 아까 그 여자가 누군지 보자꾸나.”노동명에게 들킬까 봐 차를 뒤쪽 멀지 않은 곳에 주차하였는데, 그래서인지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윤미라는 예전에 하예진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뚱뚱했고, 몸매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으니 십여 킬로를 감량해서 살이 많이 빠진 그녀를 알아 못 본 것도 당연하다.성씨 가문의 연회에서도 그녀를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그냥 몇 번 쳐다보았을 뿐 마음에 두지 않았기에 별 인상이 없었다.손은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번개처럼 노동명의 차 뒤를 쫓았고 곧이어 그의 차를 빠르게 추월했다.노동명은 웬 차가 쏜살같이 자신의 차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힐끗 쳐다보았는데 어머니의 차였다. 머리를 거치지 않아도 어머니는 손은경과 함께 있을 게 뻔하니 쫓아가 인사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혹시라도 손은경과 얽힐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비즈니스 업계에 몸담은 그녀는 남자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당당하고 대범했다. 몇 분 후, 손은경의 차는 손쉽게 하예진의 스쿠터를 따라잡았다.차가 옆을 지나갈 때, 윤미라는 일부러 차창을 내리고 보았는데, 하예진은 헬멧을 쓰고 있어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어린이 의자에 앉아 있는 우빈이의 모습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곧 다시 차창을 내린 윤미라의 안색이 안 좋았다.“이모, 아는 사람인가요?”어린아이를 태우고 있는 걸 본 손은경이 궁금해서
같은 상류 계층으로서 서로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다.윤미라는 이혼녀인 하예진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손은경도 하예정 때문에 그녀의 친언니인 하예진에게 조금 인상이 있을 뿐이었다.“그래, 하예진은 작년에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했어. 남편이 가정폭력을 하였다나... 매일 집에서 아이만 보며 수입도 없는데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더치페이하자고 제안했다지 뭐야. 이건 이미 결혼생활이 싫증 났다는 것과 다름없잖아, 그런데도 눈치 못 챘다가 나중에야 남편이 바람을 피운 걸 알아챈 것 같아. 듣자니 남편이 하예진과는 더치페이하며 아주 인색하게 굴었지만, 내연녀에겐 사치품만 선물하였대.”“아, 그래요?”“여자는 말이야,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특히 시집간 여자는 더욱 그래. 자기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편이 아껴주길 바랄 수 있겠어? 결혼한 후에도 스스로 수입이 있어야 집안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남편이 번 돈은 아껴줄 필요 없어, 너무 아끼면 결국 다른 사람이 그 돈 쓰게 될 거야. 1년 내내 새 옷 한 벌, 스킨케어 제품 하나 사기 아까워해 봤자, 남편이 돈을 아낀다고 소중하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꾸미지 않는다고, 데리고 나가기 부끄럽다고 생각할걸?”윤미라는 하예진이 이혼하게 된 건 결혼 후 자신을 가꾸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은경이 넌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 동명이는 그런 남자가 아니니까. 이제 우리 동명이랑 결혼한 후에도 출근하고 싶다면 계속 출근하면 돼. 네가 무엇을 하고 싶든 간에 그건 네 자유이니 우린 모두 지지할 따름이야.”손은경은 손씨 그룹에서도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윤미라는 그녀가 결혼 후 가정주부가 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미리 좋은 말을 하여 그녀를 안심시켰다.“전 아직 결혼까진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동명 오빠가 자꾸 저를 피하는데 결혼까지 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모 말에는 동감해요. 그런데 하예진이란 여자 말이에요,
윤미라는 자기 아들이 하예진과 사적으로 자주 접촉하는지 궁금했다.근황을 알아보라고 분부하는 것을 들은 손은경은 궁금해서 물었다.“이모, 설마 동명 오빠가 하예진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우리 동명의 안목이 그리 나쁘진 않아. 이혼녀인 데다 뚱뚱한 하예진에게 설마 관심이 있으려나? 하지만 조심해야 해, 하예진이 우리 동명한테 매달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니? 음, 이모는 은경이와 같은 여자애가 우리 집 며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설사 하예진이 이혼한 적이 없다고 해도 윤미라의 눈에 들 리 없었다.“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는 그쪽으론 생각 못 했어요. 그냥 동명 오빠가 이혼녀를 좋아할 리가 없고, 이모도 동의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만 하고서 하예진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거든요.”“은경아, 우리 동명이는 줄곧 솔로였어, 여자한테 대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우리 애가 이 방면엔 조금 무딘 것 같아. 하지만 누군가가 마음을 사로잡기라도 하면, 아마도 평생 따뜻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하예진을 가볍게 보지 마. 전씨 가문 사모님의 친언니일 뿐만 아니라, 우리 동명이와 전태윤은 친한 친구이기도 해. 걔네들 자주 만나고 하니까 함께 지낼 기회도 많을 것이고, 하예진이 어떤 야망을 품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 자기 동생처럼 재벌가 사모님이 될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네...”“그러니 네가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하예진인 거야.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이모도 네가 충분히 그애를 상대할 수 있을 거로 믿어.”표정이 훨씬 진지해진 손은경은 더는 하예진을 얕잡아볼 생각이 없었다. 미라 이모의 말대로 동명 오빠가 이혼녀를 마음에 들어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혼녀가 동명 오빠에게 매달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잘 알겠어요.”그녀는 노동명을 정복할 자신이 있었다.비록 노동명이 아직은 그녀를 피해 다니고 있다지만, 나중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 얼마나 살뜰하게 대해줄지 모른다.“우리 노씨 그룹에 다시 돌아가
고향집에 관한 일을 해결한 하예정은 기분 좋게 서점으로 돌아갔다.그런데 뜻밖에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김진우를 보게 될 줄이야.그는 휴가를 이틀 내고 주말까지 이어 나흘의 시간이 있어서 부모님을 보러 관성에 왔는데, 현재 하예정이 가게에 없다는 것을 알고서 일부러 이 시간에 사촌 언니를 만나러 왔다.심효진도 하예정이 언제 돌아올지 몰랐다. 김진우도 그저 잠시 얘기를 하다가 다시 떠날 준비를 하였는데, 마침 가게로 돌아온 하예정과 딱 마주쳤다.“예정 누나.”그는 예전처럼 웃으며 자연스레 그녀를 불렀다.“진우?”하예정은 김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너 언제 돌아온 거야? 참 오랜만이야. 많이 성숙해진 모습인데?”“오늘 막 돌아왔어요. 엄마가 좀 편찮으셔서... 그리고 회사 일도 당분간 그렇게 바쁘지 않고 해서 이틀 휴가 내고 온 거예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예정 누나는 점점 예뻐지고 있네요.”원래 외모가 아름다운 하예정은 남편의 사랑를 받자 더 눈부시게 변했다.다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가 전태윤의 여자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비록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그녀에 대해 단념한 지도 오래 됐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니 전태윤에 대한 질투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너희 어머니께선 어때? 괜찮으신 거야?”그녀는 심미란이 편찮다는 말을 들고 걱정이 되는듯 물었다.“효진이가 아무말도 안해줬어...”그러자 심효진이 대신 설명했다.“별일 아니고 그저 감기에 걸리셨어. 아프면 연약해지기 쉬워지잖아, 그래서 진우에게 전화하셨나 봐. 진우도 걱정이 돼서 급하게 휴가를 내고 돌아와 고모와 함께 병원에 갔지 뭐. 아까 친구를 만나러 나왔다가 이곳을 지나게 되어 들른 거래.”심효진은 김진우가 찾아온 일이 가게 주위에 있는 경호원에 의해 전태윤에게 알려지면 아직도 하예정을 단념하지 않았나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게 될까봐 대신 자세히 설명했다. 김진우가 오늘 가게에 찾아온 건 심효진을 보러온 거지 하예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그는
심효진이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네가 진우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건 나도 알아. 단지 네가 죄책감을 느낄까 봐 걱정돼서... 하지만 진우 지금 이대로도 좋은 것 같아. 가문의 후계자로서 고생도 좀 해보고, 좌절도 겪어 봐야 한층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응, 네 고모도 진우 잘되라고 한 일인데 내가 뭐 죄책감을 느낄 게 있어? ”하예정은 카운터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나 태윤 씨에게 문자 보내야겠어. 또 오해할라.”그에게 먼저 말하는 편이 그가 경호원으로부터 알게 되는 것보다 나을 테니.질투쟁이의 성격으로 만약 경호원을 통해 그녀가 김진우와 다시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화를 낼지 모른다.심효진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포도 한 접시를 들고 나와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우리 둘이 포도를 좋아한다고 진우가 사 온 거야. 그 일 어떻게 됐어? 네 아빠 말이야, 할아버지의 친자식 맞아?”“어, 맞아. DNA 검사 결과 혈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 내가 결과보고서를 내놓자, 더 이상 소란 피우지 않고 얌전해지더라. 그리고 그 일도 이미 협상을 통해 해결했고.”하예정은 포도를 한알 집어 입에 넣었다.한껏 기분이 좋아 보이는 하예정의 얼굴을 보며 심효진도 따라 웃었다.“해결했으면 됐어, 앞으로 그 인간들과 말다툼할 필요도 없겠다.”“응, 내일 돌아가서 계약 재체결하려고. 그 집 언니의 명의로 바뀌면 돈을 줄 생각이야.”“고향 친척들이 차지하는 몫을 너희가 돈으로 사기로 한 거야?”“맞아. 우리가 돈을 내고 남은 몫을 사던지, 그 사람들이 돈을 내고 우리 몫을 사든지 해야잖아. 근데, 그쪽이 우리 몫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데 지금 손에 돈이 넉넉하지 않은 것 같더라. 그래서 그냥 우리가 사기로 했어.”“잘됐네.”“손자들을 가득 둬봤자야, 아무도 돈을 내려고 하지 않는 걸. 그랬더니 영감이 화를 내며 우리에게 돈을 내서 자기들 몫을 사라고 하더라. 우리가 낸 돈으로 노후를 보내겠다며. 그리고
심효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난 참 이해가 안 돼. 효도하는 자식은 미워하고, 불효자식만 편해하는 부모들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그러자 하예정이 잠자코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러니 효도하는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편애하는 자식들에 의해 상처를 받게 되잖아. 어떤 형제자매들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완전히 인연 끊고 사는데, 그게 다 부모의 편심 때문이 아니겠어?”“네 말이 맞아. 다행히 우리 집은 사이가 좋아,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누굴 편애하시지 않고 다 똑같이 대해주셨어. 그리고 삼촌들과 큰아버지들은 모두 좋은 분이야, 그래서 우리 집은 사촌들과도 많이 오가고 있어.”하예정은 부러울 따름이었다.띠리링!심효진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소정남의 전화인 줄 알고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오늘 하루 종일 연락이 없길래, 내가 벌써 지루해진 줄 알았지 뭐야.”그러자 하예정이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소정남 씨는 널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어. 너에 대한 사랑의 유통기한은 아마도 평생일걸. 다들 끼리끼리 논다잖아. 우리 집 태윤 씨는 감정에 충실한 타입이야. 그러니 태윤 씨의 절친으로서 소정남 씨도 분명 감정에 한결같은 사람일테니 넌 마음 편히 가지면 돼. 소정남 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솔로로 지낸 것도 다 너를 만나서 평생 사랑하며 살기를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돼.”“어머, 정남 씨가 아니라 동생 전화인데?”“아... 소정남 씨가 아니었어?”그녀는 소정남이 심효진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전화한 줄 알았다.김진우를 만난 후 그녀는 바로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여태 답장을 받지 못했다. 이미 이 때문에 삐졌는지도 모른다.이번에 김진우와 다시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으로써,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설마 이 일로 질투하는 것은 아니겠지?’그녀에게 답장도 하지 않은 것은 보아 아마도 바쁘게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전씨 그룹의 대표로서, 일분일초가 아까운 사람이니까.“서준아,
심서준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누나, 핸드폰 예정 누나한테 줘. 누나한테 몇 마디 할 얘기가 있어.”심효진이 투덜거렸다.“난 네 친누나야. 게다가 우리 집안일인데 나한테는 말도 안 하고 예정이한테 말하는 게 어디 있어? 이 자식, 네가 날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잠시 투덜거렸지만, 심효진은 이내 하예정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서준이 이 나쁜 녀석이 뭔가 숨기고 있어. 신비스럽게 굴면서 말이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너랑 얘기하고 싶다네.”하예정은 웃으며 휴대전화를 건네받고는 심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무슨 일이야? 누나한테 말해 봐, 효진 누나한테 비밀로 해줄게.”사실 심효진은 이미 심서준이 말만 하면 바로 엿들을 수 있게 옆에 붙어서 준비하고 있었다.심효진은 동생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 자기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했다. 좋은 일이 생긴 것이라고는 했지만 도대체 어떤 좋은 일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예정 누나, 우리 누나 옆에서 엿들을 준비하고 있죠? 밖에 나가요. 누나를 옆에 있게 하지 말고요. 예정 누나 혼자 있을 때 다시 말해줄게요.”심서준은 자신의 누나를 너무나도 잘 안다.하예정은 심효진을 바라보았다.“이런, 이 녀석 천리안이라도 생겼나.”심효진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하예정이 웃으며 일어나 서점을 나섰다.심효진은 하예정이 안 이상 무조건 그녀에게 말해줄 것으로 생각하며 따라나서지는 않았다.심서준이 하예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몇 분 후, 하예정은 돌아와서는 빙그레 웃으며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했다.“효진아, 가게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봐. 여긴 다른 사람들이 남아서 도와주면 되니까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래? 예정아, 그 녀석이 뭐라고 했어? 말 좀 해 봐.”심효진은 호기심에 마음이 간지러워 났지만, 동생도, 절친마저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돌아가 보면 알게 될 거야. 지금 알려주면 재미가 떨어져서 안 돼. 어쨌든 좋은 일이야, 빨리 돌아
“효진이가 돌아왔어.”누군가 심효진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외치자, 심효진네 집 앞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즉시 양쪽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주었다.집 문 앞에 둘러선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 사람이었고 근처의 세입자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그녀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모두가 비켜준 후에야, 심효진은 사람들이 무엇을 구경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집 문 앞에는 커다란 꽃바다가 펼쳐져 있었다.하루 종일 그녀에게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은 소정남이 장미 꽃다발을 손에 들고 꽃바다 옆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누나, 빨리 와.”스쿠터에서 내리기 바쁘게 심효진은 심서준에게 이끌려 꽃바다 앞에 섰다. 그곳에는 소정남이 수천 송이의 장미꽃으로 새긴 몇 글자가 있었다.「효진 씨, 나랑 결혼해 줄래요?」소정남의 깜짝 프러포즈였다.좀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꽃으로 글자를 새기면 멋지고도 낭만적이라고 생각한 소정남이 오늘 사람들 앞에서 심효진에게 프러포즈하기로 했다.심효진은 평소에 주로 서점이 아니면 집에 있었다.학교 앞에 있는 가게에서 프러포즈하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결국 심효진네 집 앞을 꽃바다로 만들어 프러포즈하기로 했다. 심씨네 가족들에게 자기의 성의를 보여줄 겸해서 말이다.사실 소씨네와 심씨네 양가 모두 두 사람이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소정남의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심씨네 집을 방문했고, 두 집 어르신도 진작부터 허물없이 친해져 소정남이 프러포즈하기를 기다려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누나, 예쁘지? 매형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이 글자를 새겼는지 알아? 오늘 관성의 모든 장미꽃을 다 사버리는 통에 많은 꽃가게에서 급하게 꽃을 들여와야 했어.”새빨간 장미꽃바다에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여졌고 심장이 쿵쾅댔다. 장미꽃으로 새긴 글자들을 바라보는 심효진의 마음도 따뜻해졌다.소정남의 프러포즈 방식이 비록 좀 촌스럽긴 하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그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자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