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은 아들을 꼭 껴안았다.서현주는 우빈이가 하예진에게 안긴 채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해양관을 벗어나는 걸 보더니 계획이 실패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정한아, 정한아!”이때 주서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서현주가 정신 차리고 보니 덩치 큰 사내 한 명이 임정한을 안고 뛰어가는 중이었다.그녀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아이를 잘못 채가다니?“여보, 형인아, 얼른 저 사람 잡아요. 저 사람이 정한이를 안아갔단 말이에요!”주서인은 싸움 구경을 볼 겨를 없이 정한이를 안아간 남자를 뒤쫓으며 남편과 동생을 불렀다.주씨네 가족들도 정한이가 누군가에게 잡혀간 걸 발견하곤 미친 듯이 쫓아가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아이 뺏어가요! 누가 우리 아이 훔쳐 갔어요! 바로 저 덩치 큰 남자예요. 저 남자가 내 아들을 안아갔다고요!”안달이 난 주서인은 사색이 되었다.그녀는 인파를 헤쳐 나가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뿐이었다.장내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누군가가 아이를 뺏어갔다는 말을 듣더니 어린이와 함께 공연 보러 온 부모들은 재빨리 제 아이를 꼭 안고 해양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결국 장내가 더 혼잡해졌다.몇몇 착한 사람들은 주서인을 도와 아이를 구해오려고도 했다.그 남자는 임정한을 안고 미친 듯이 질주했고 누군가가 일부러 그에게 길을 내주며 더 빨리 해양관을 벗어나게 한 것만 같았다.“예진아, 예정 씨, 저 사람이 정한이를 뺏어갔어. 얼른 우리 정한이 구해줘.”주서인은 인파들 속에서 겨우 비집고 나와 하예진 자매를 보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지난날의 갈등이 얼마나 깊었던, 이런 일에 부딪힌 이상 하예정은 유괴범이 임정한을 훔쳐 가도록 가만둘 수 없었다.다만 그녀는 직접 임정한을 구하러 간 게 아니라 경호원들에게 그 남자를 쫓아가 임정한을 데려오라고 시켰다.두 경호원이 임정한을 채간 남자를 쫓으러 갔을 때 하예진은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품에 안긴 주우빈을 앗아가려고 하는 걸 느꼈다.그녀는 재빨
그녀가 만약 조금이라도 힘을 풀었다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아들을 빼앗겼을 것이다.성소현의 차에 탄 후에도 하예진은 감히 손을 내려놓지 못한 채 주우빈을 꼭 껴안고 사색이 되었다.하예정도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성소현은 큰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우리 집 모든 경호원들 지금 바로 관성야생동물원으로 오라고 해. 큰일 났어. 유괴범이 아이를 뺏어가는데 우빈이도 하마터면 뺏길 뻔했어. 얼른 이리로 우릴 데리러 와줘. 나 지금 운전할 엄두도 안 나. 가는 길에 또 누가 길을 막고 아이를 뺏어갈까 봐 두려워.”성소현은 처음 이런 혼잡하고 위험한 일에 부딪혔다.평소엔 거만하고 무서운 것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방금 주우빈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을 때 그녀는 식겁하여 다리에 힘이 풀렸다.만약 우빈이를 잃어버렸다면 그 당시 상황이 혼란스럽고 사람도 많아서 유괴범을 쫓아가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빈이는...여기까지 생각한 성소현은 사색이 되었고 손발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도저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 사고가 날까 봐 핸들을 잡지 못했다.“뭐? 우빈이는 괜찮아? 지금 바로 경호원 데리고 갈게.”성기현도 주우빈이 하마터면 유괴될 뻔했단 말을 듣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이따가 중요한 회의가 있는 것도 막론하고 사무실을 뛰쳐나와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동물원으로 총출동하라고 명령했다.한편 암암리에 하예정을 보호하던 두 명의 경호원은 진작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하예정도 마음을 가라앉힌 후 제일 먼저 남편에게 전화했다.성기현이 경호팀과 함께 동물원으로 향할 때 전태윤도 경호팀을 거느리고 동물원으로 출발했다.“우빈아.”하예정은 우빈의 등을 토닥이며 언니의 마음도 달랬다.“언니, 괜찮아. 응?”그녀는 방심하다가 하마터면 조카 우빈이를 위험에 처하게 할 뻔했다.“내가 힘이 세지 않았더라면 우빈이를 진작 빼앗겼을 거야. 그 사람도 엄청 세게 잡아당겼단 말이야.”하예진은 쉴 새 없이 되뇌었다.다이어트하느라 줄곧 운동하고 가게
동물원 입구에서 임정한을 구하러 갔던 두 명의 경호원이 막 아이를 안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사모님.”두 경호원은 엄마를 외치며 울고불고 난리인 임정한을 안고 하예정 앞에 다가오더니 바닥에 내려놓으며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사모님, 얼른 이 아이 가족들한테 전화해서 아이 좀 데려가라고 하세요. 오는 내내 울었어요. 시끄러워 죽겠어요.”“예정 숙모.”임정한은 놀라서 엉엉 울었다.이 아이는 전씨 일가의 경호원도 본 적이 없는데 처음엔 낯선 이가 덥석 채가서 부리나케 달리더니 나중에 또 낯선 이에게 구원받았다. 평상시에 아무리 장난기가 심한 아이라 해도 이제 고작 네 살짜리 어린이였으니 놀랄 만도 했다.하예정은 유일하게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를 본 임정한은 재빨리 달려가 다리를 부둥켜안으며 얼른 안아달라고 졸랐다.“괜찮아.”하예정은 임정한을 매우 싫어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이 다독여주었다.이어서 그녀는 주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정한이 구했어요. 지금 동물원 입구에 있으니까 얼른 애 데리러 나와요들.”주씨네 가족들은 임정한을 잃어버린 일로 대성통곡하였고 김은희는 한번 기절했다가 누군가가 인중을 눌러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딸을 부둥켜안은 채 목청이 째지게 울었다.주형인과 임수찬은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유괴범이 아이를 안고 어디로 도망쳤는지 도통 알아낼 수가 없었다.하예정의 전화를 받은 주형인은 기쁜 마음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재빨리 누나네 부부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전태윤과 성기현이 경호팀을 거느리고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주씨네 가족들도 부랴부랴 달려 나왔다.“정한아.”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을 되찾은 주서인은 미친 듯이 뛰쳐 가 아이를 와락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임수찬도 아들이 무사한 걸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김은희와 주서인은 임정한을 끌어안고 쉴 새 없이 울어댔다.한참 후에야 주서인은 털썩 무릎을 꿇고 하예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감격에 겨운 말투로 말했다.“예정 씨, 고마워요. 정한이
하예정이 대답했다.“언니가 꼭 안고 있었고 내가 또 그 사람 발로 걷어차서 우빈이 뺏어가는 걸 아예 포기하고 줄행랑쳤어요.”그녀는 고개 돌려 성소현의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우빈이는 지금 소현 언니 차에 있어요.”하예정과 전태윤의 대화를 들은 후에야 주씨네 가족들도 우빈이까지 하마터면 봉변당할 뻔했다는 걸 알아챘다.김은희는 또다시 울면서 손자 보러 가겠다고 했다.그제야 하예진은 우빈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우빈아, 우빈아.”김은희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고 손주 녀석이 정말 아무 일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울먹이며 말했다.“다행이야, 넌 괜찮으니 참 다행이야!”“할머니.”주우빈은 할머니께 대답하며 손을 들어 할머니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었다.김은희는 우빈이를 키운 적이 없지만 이 아이는 유일한 친손주라 이쁘지 않을 수가 없다. 미세한 아이의 행동에 김은희는 감격에 겨워 또다시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주씨네 가족도 이쪽으로 둘러싸였다.“엄마, 울지 마. 이젠 다 괜찮아졌어.”주형인이 엄마를 위로했다.김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물을 닦고 아들을 훅 밀쳤다.“이게 다 너희 둘 때문이야. 너희가 애들 데리고 동물원에 오자고만 안 했어도 이런 일 없을 거잖아. 우빈이가 예정 씨까지 불러왔으니 망정이지... 네가 우빈의 아빠가 아니고 정한의 외삼촌이 아니었다면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아이 뺏어가려고 일부러 동물원 데려온 줄로 알겠어!”김은희의 질책에 서현주가 삽시에 낯빛이 창백해졌다.김은희가 그녀를 힐긋 노려보자 그녀는 겨우 변명을 둘러댔다.“어머님, 저도 우빈이랑 친해지려고 그런 건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김은희는 눈빛으로 그녀를 재수 없는 년이라고 욕하는 것만 같았다.아들이 서현주와 결혼하고 나서부터 뭐 하나 되는 일이 없고 어쩌다가 우빈이를 데리고 봄나들이 나왔더니 하마터면 나쁜 놈들에게 아이까지 유괴당할 뻔했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에서 감히 아이를 뺏으려 하다니 거만함이 하늘을 찌를
하예정도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다만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의문점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네.”우빈이는 오늘 마음껏 놀지 못했다. 해양관에서 공연을 볼 때 한참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꽉 끌어안고 허겁지겁 도망쳤다.전씨 일가의 경호원들은 병사처럼 두 쪽으로 나뉘어 서서 롤스로이스 앞에 길을 터주었고 전태윤은 우빈이를 안은 채 하예정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하예진은 동생을 따라가지 않고 선뜻 경호원 차에 탔다.성소현은 오빠 차에 앉았고 그녀의 차는 경호원이 대신 몰고 갔다.곧이어 두 기업 총수는 경호팀의 호송하에 관성야생동물원을 떠났다.그들이 떠난 후에야 서현주는 한숨을 돌릴 겨를이 생겼다.다들 자신을 의심할까 봐 줄곧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가는 길에서 하예정이 남편에게 물었다.“태윤 씨, 오늘 일 너무 수상해요. 마치 일부러 꾸며진 거대한 음모 같아요. 먼저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아이를 낚아채 가는 계략인 것 같아요. 정한이는 그때 어른들에게 안겨 있지 않아 놈들이 잡아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 유괴범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우빈이는 줄곧 언니가 안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감히 뺏어가려 하다니, 내가 볼 때 놈들의 진짜 타깃은 우빈인 것 같아요.”“정한이를 데려간 건 작전을 살짝 바꾸어 목적에 도달하려는 속셈이에요. 내 옆엔 늘 두 명의 경호원이 함께 있어서 놈들이 쉽게 손댈 수 없었어요. 정한이를 채가면 내가 비록 말괄량이 같은 그 아이를 싫어해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겠죠. 내가 정한이 구하러 두 경호원을 보냈고 우리 신변을 보호하는 사람은 없었어요.”“물론 우리도 다 큰 어른이지만 연약한 세 여자라 놈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우린 반항할 힘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놈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장내가 어수선하다 보니 어떤 부모들은 본인 아이를 제때 안지 못해서 애들이 제멋대로 뛰어다녔어요. 놈들은 그 혼잡한 상황에서도 다른 아이들은 채가지 않았어요.”하예정은 생각이
전태윤이 아내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관성에서 모르는 자가 없다.하예정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여씨 사모님이 꾸민 일 아닐까요?”하예정은 여씨 사모님부터 생각났다.전태윤은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그건 아직 단정 짓기 어렵지만 그때 네가 여운별과 갈등을 빚은 이후로 소정남을 시켜서 여 대표 부부를 감시했는데 아무 이상 없었어. 예정아, 이번 일은 조사를 좀 해봐야 배후 세력이 널 겨냥하는 건지 아니면 나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전태윤은 우빈이를 옆에 내려놓고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껴안았다.“두려울 거 없어. 내가 있는 한 사람들은 네 털끝 하나 못 건드려.”하예정은 고개 들어 그를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만약 태윤 씨를 겨냥한 거라면... 꼭 조심해야 해요.”“나는 신분 때문에 누군가에게 감시받을 각오가 되어있어. 진작 적응된 일이니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전씨 일가의 자제들은 비즈니스 업계에 들어서기 전에 철통보호를 받아 외부에서 그들의 이름조차 몰랐다.경계해야 할 건 강도들이다.전태윤과 동생들 일행은 어려서부터 복싱, 주짓수 등 여러 가지 재주를 배웠는데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외출할 때 경호원들이 항상 따라다니긴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자아 보호 능력을 키웠다.하예정은 그의 품에 기댔다.“음모가 아니라 뜻밖의 사고였으면 좋겠어요.”뜻밖의 사고라면 그들이 운이 나빠서 유괴범에게 눈도장을 찍혔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음모라면, 배후 세력은 이번에 실패하고 추후에 성공할 때까지 수없이 계략을 피울 것이다.“오늘 사태가 너무 크게 번져서 음모라 해도 배후 세력은 단기간 안에 감히 더는 손을 쓰지 못할 거야.”주우빈은 이모와 이모부가 한쪽 옆에 내버려두자 손을 벌려 전태윤의 품에 안긴 하예정을 밀쳤다. 하예정이 어리둥절해서 바르게 앉자 우빈이는 재빨리 전태윤의 다리 위에 올라가 앉았다.아
“다들 만약 일반인이라면 무예를 배우든 말든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우빈이가 조금이라도 배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해.”전태윤은 조카 우빈이를 늘 좋게 보고 있다. 이 아이는 분명 될 놈이라 좀 더 크면 제대로 가르칠 작정이었다.지금은 단지 호신술 정도로만 가르칠 뿐이다.“하긴, 태윤 씨 말대로 해요. 고마워요, 여보.”전태윤은 우빈이를 문무를 두루 겸비한 인재로 배양하고 싶었다. 하예정은 조카 대신 뿌듯함을 느끼며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했다.전태윤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콧등을 살짝 어루만졌다.“평상시엔 태윤 씨, 태윤 씨 하더니 우빈이한테 전문가 선생님을 찾아준다니까 금세 여보라고 하네. 우빈이가 나보다 더 중요한 거야?”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똑같이 중요해요, 아니, 태윤 씨가 더 중요해요. 엄청 소중하죠.”그녀는 일부러 강조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전태윤도 장난치는 그녀의 말투를 잘 알고 있지만 사랑스러운 눈길로 또다시 그녀의 콧등을 어루만졌다.“난 우빈이는 질투 안 해.”“다행이네요. 세 살짜리 아이도 질투하면 앞으로 우리 애가 생기거든 종일 질투만 하다 말겠어요.”“내 아이는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도 바빠. 어떻게 아기를 질투하겠어.”전태윤은 아이가 생기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줄 것만 같았다.물론 생각은 생각일 뿐, 그때 가서 질투할지 말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하예정은 실소를 터트렸다.유난히 소유욕이 강한 전태윤이 아기를 질투하지 않을 리가 있을까?시내로 돌아온 후 전태윤은 하예진 자매를 발렌시아 아파트로 바래다주었다. 할머니는 어느새 이 일을 아시고 아파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할머니는 얼른 마중 나오며 하예정의 손을 잡은 우빈이를 덥석 안아 올렸다.“다행이야, 참 다행이지 그래...”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란 말만 반복했다.성기현 남매도 잇따라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왔다. 성기현과 전태윤은 줄곧 서로 등져있다가 이번 일
두 사람은 이제 막 쇼핑 다녀왔는지 손은경이 한 손으로 윤미라의 팔짱을 끼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몇 개 들고 있었다.“동명아, 어디 나가려고?”윤미라는 아들을 보자 자연스럽게 물었다.“네, 엄마. 왔어요 은경 씨?”노동명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후 엄마에게 말했다.“급한 일이 생겨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엄마랑 은경 씨랑 함께할 것 같지 못하니 사무실에서 기다리실래요 아니면 집에 돌아가실래요?”“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윤미라가 관심 조로 물었다.“있어요, 그런 일.”노동명이 아무리 데면데면한 성격이라 해도 엄마한테 수중의 업무를 뿌리치고 우빈이 보러 간다고 말할 리는 없었다.엄마가 괜히 그와 하예진을 오해하면 안 되니까.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하예진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노동명은 진짜 우빈이란 아이가 좋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안 믿었다. 그가 우빈이랑 먼저 친해져서 자연스럽게 새아빠 자리를 차지하는 거로 추측했다.“회사 일이야?”윤미라가 재차 물었다.노동명은 거짓말을 둘러댔다.“네, 엄마. 나 먼저 가요.”“그래, 볼일 봐.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어. 은경이가 너 입으라고 새 옷 몇 벌 샀어. 집에 와서 밥 먹을 때 사이즈가 맞는지 한번 입어 봐. 밥 먹으러 안 오면 내일부터 은경이더러 매일 너 도시락 싸주라고 할 거야.”윤미라는 제 아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지금은 손은경에게 아무 감정이 없어서 그녀가 매일 귀찮게 구는 걸 싫어하지만 이런 식으로 협박하면 무조건 밥 먹으러 집에 돌아올 것이다.“그리고 태윤이네 집에 너무 오래 있지 마. 걔네 한창 달콤한 신혼생활 보내는 중인데 네가 있으면 방해밖에 더 돼? 넌 집 없니? 지낼 곳이 없어? 왜 굳이 태윤이네 집으로 가? 오늘 밤에 당장 집으로 돌아와.”노동명이 말했다.“태윤이랑 예정 씨는 혼인 신고한 지도 반년이 됐어요. 뜨거운 신혼은 진작 지났다고요.”“부부 금실이 좋아서 매일 신혼이면 안 돼? 너 뭐 불만 있어?”“...”“집에 안 돌아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