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이 대답했다.“언니가 꼭 안고 있었고 내가 또 그 사람 발로 걷어차서 우빈이 뺏어가는 걸 아예 포기하고 줄행랑쳤어요.”그녀는 고개 돌려 성소현의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우빈이는 지금 소현 언니 차에 있어요.”하예정과 전태윤의 대화를 들은 후에야 주씨네 가족들도 우빈이까지 하마터면 봉변당할 뻔했다는 걸 알아챘다.김은희는 또다시 울면서 손자 보러 가겠다고 했다.그제야 하예진은 우빈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우빈아, 우빈아.”김은희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고 손주 녀석이 정말 아무 일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울먹이며 말했다.“다행이야, 넌 괜찮으니 참 다행이야!”“할머니.”주우빈은 할머니께 대답하며 손을 들어 할머니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었다.김은희는 우빈이를 키운 적이 없지만 이 아이는 유일한 친손주라 이쁘지 않을 수가 없다. 미세한 아이의 행동에 김은희는 감격에 겨워 또다시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주씨네 가족도 이쪽으로 둘러싸였다.“엄마, 울지 마. 이젠 다 괜찮아졌어.”주형인이 엄마를 위로했다.김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물을 닦고 아들을 훅 밀쳤다.“이게 다 너희 둘 때문이야. 너희가 애들 데리고 동물원에 오자고만 안 했어도 이런 일 없을 거잖아. 우빈이가 예정 씨까지 불러왔으니 망정이지... 네가 우빈의 아빠가 아니고 정한의 외삼촌이 아니었다면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아이 뺏어가려고 일부러 동물원 데려온 줄로 알겠어!”김은희의 질책에 서현주가 삽시에 낯빛이 창백해졌다.김은희가 그녀를 힐긋 노려보자 그녀는 겨우 변명을 둘러댔다.“어머님, 저도 우빈이랑 친해지려고 그런 건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김은희는 눈빛으로 그녀를 재수 없는 년이라고 욕하는 것만 같았다.아들이 서현주와 결혼하고 나서부터 뭐 하나 되는 일이 없고 어쩌다가 우빈이를 데리고 봄나들이 나왔더니 하마터면 나쁜 놈들에게 아이까지 유괴당할 뻔했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에서 감히 아이를 뺏으려 하다니 거만함이 하늘을 찌를
하예정도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다만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의문점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네.”우빈이는 오늘 마음껏 놀지 못했다. 해양관에서 공연을 볼 때 한참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꽉 끌어안고 허겁지겁 도망쳤다.전씨 일가의 경호원들은 병사처럼 두 쪽으로 나뉘어 서서 롤스로이스 앞에 길을 터주었고 전태윤은 우빈이를 안은 채 하예정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하예진은 동생을 따라가지 않고 선뜻 경호원 차에 탔다.성소현은 오빠 차에 앉았고 그녀의 차는 경호원이 대신 몰고 갔다.곧이어 두 기업 총수는 경호팀의 호송하에 관성야생동물원을 떠났다.그들이 떠난 후에야 서현주는 한숨을 돌릴 겨를이 생겼다.다들 자신을 의심할까 봐 줄곧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가는 길에서 하예정이 남편에게 물었다.“태윤 씨, 오늘 일 너무 수상해요. 마치 일부러 꾸며진 거대한 음모 같아요. 먼저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아이를 낚아채 가는 계략인 것 같아요. 정한이는 그때 어른들에게 안겨 있지 않아 놈들이 잡아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 유괴범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우빈이는 줄곧 언니가 안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감히 뺏어가려 하다니, 내가 볼 때 놈들의 진짜 타깃은 우빈인 것 같아요.”“정한이를 데려간 건 작전을 살짝 바꾸어 목적에 도달하려는 속셈이에요. 내 옆엔 늘 두 명의 경호원이 함께 있어서 놈들이 쉽게 손댈 수 없었어요. 정한이를 채가면 내가 비록 말괄량이 같은 그 아이를 싫어해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겠죠. 내가 정한이 구하러 두 경호원을 보냈고 우리 신변을 보호하는 사람은 없었어요.”“물론 우리도 다 큰 어른이지만 연약한 세 여자라 놈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우린 반항할 힘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놈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장내가 어수선하다 보니 어떤 부모들은 본인 아이를 제때 안지 못해서 애들이 제멋대로 뛰어다녔어요. 놈들은 그 혼잡한 상황에서도 다른 아이들은 채가지 않았어요.”하예정은 생각이
전태윤이 아내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관성에서 모르는 자가 없다.하예정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여씨 사모님이 꾸민 일 아닐까요?”하예정은 여씨 사모님부터 생각났다.전태윤은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그건 아직 단정 짓기 어렵지만 그때 네가 여운별과 갈등을 빚은 이후로 소정남을 시켜서 여 대표 부부를 감시했는데 아무 이상 없었어. 예정아, 이번 일은 조사를 좀 해봐야 배후 세력이 널 겨냥하는 건지 아니면 나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전태윤은 우빈이를 옆에 내려놓고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껴안았다.“두려울 거 없어. 내가 있는 한 사람들은 네 털끝 하나 못 건드려.”하예정은 고개 들어 그를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만약 태윤 씨를 겨냥한 거라면... 꼭 조심해야 해요.”“나는 신분 때문에 누군가에게 감시받을 각오가 되어있어. 진작 적응된 일이니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전씨 일가의 자제들은 비즈니스 업계에 들어서기 전에 철통보호를 받아 외부에서 그들의 이름조차 몰랐다.경계해야 할 건 강도들이다.전태윤과 동생들 일행은 어려서부터 복싱, 주짓수 등 여러 가지 재주를 배웠는데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외출할 때 경호원들이 항상 따라다니긴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자아 보호 능력을 키웠다.하예정은 그의 품에 기댔다.“음모가 아니라 뜻밖의 사고였으면 좋겠어요.”뜻밖의 사고라면 그들이 운이 나빠서 유괴범에게 눈도장을 찍혔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음모라면, 배후 세력은 이번에 실패하고 추후에 성공할 때까지 수없이 계략을 피울 것이다.“오늘 사태가 너무 크게 번져서 음모라 해도 배후 세력은 단기간 안에 감히 더는 손을 쓰지 못할 거야.”주우빈은 이모와 이모부가 한쪽 옆에 내버려두자 손을 벌려 전태윤의 품에 안긴 하예정을 밀쳤다. 하예정이 어리둥절해서 바르게 앉자 우빈이는 재빨리 전태윤의 다리 위에 올라가 앉았다.아
“다들 만약 일반인이라면 무예를 배우든 말든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우빈이가 조금이라도 배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해.”전태윤은 조카 우빈이를 늘 좋게 보고 있다. 이 아이는 분명 될 놈이라 좀 더 크면 제대로 가르칠 작정이었다.지금은 단지 호신술 정도로만 가르칠 뿐이다.“하긴, 태윤 씨 말대로 해요. 고마워요, 여보.”전태윤은 우빈이를 문무를 두루 겸비한 인재로 배양하고 싶었다. 하예정은 조카 대신 뿌듯함을 느끼며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했다.전태윤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콧등을 살짝 어루만졌다.“평상시엔 태윤 씨, 태윤 씨 하더니 우빈이한테 전문가 선생님을 찾아준다니까 금세 여보라고 하네. 우빈이가 나보다 더 중요한 거야?”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똑같이 중요해요, 아니, 태윤 씨가 더 중요해요. 엄청 소중하죠.”그녀는 일부러 강조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전태윤도 장난치는 그녀의 말투를 잘 알고 있지만 사랑스러운 눈길로 또다시 그녀의 콧등을 어루만졌다.“난 우빈이는 질투 안 해.”“다행이네요. 세 살짜리 아이도 질투하면 앞으로 우리 애가 생기거든 종일 질투만 하다 말겠어요.”“내 아이는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도 바빠. 어떻게 아기를 질투하겠어.”전태윤은 아이가 생기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줄 것만 같았다.물론 생각은 생각일 뿐, 그때 가서 질투할지 말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하예정은 실소를 터트렸다.유난히 소유욕이 강한 전태윤이 아기를 질투하지 않을 리가 있을까?시내로 돌아온 후 전태윤은 하예진 자매를 발렌시아 아파트로 바래다주었다. 할머니는 어느새 이 일을 아시고 아파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할머니는 얼른 마중 나오며 하예정의 손을 잡은 우빈이를 덥석 안아 올렸다.“다행이야, 참 다행이지 그래...”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란 말만 반복했다.성기현 남매도 잇따라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왔다. 성기현과 전태윤은 줄곧 서로 등져있다가 이번 일
두 사람은 이제 막 쇼핑 다녀왔는지 손은경이 한 손으로 윤미라의 팔짱을 끼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몇 개 들고 있었다.“동명아, 어디 나가려고?”윤미라는 아들을 보자 자연스럽게 물었다.“네, 엄마. 왔어요 은경 씨?”노동명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후 엄마에게 말했다.“급한 일이 생겨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엄마랑 은경 씨랑 함께할 것 같지 못하니 사무실에서 기다리실래요 아니면 집에 돌아가실래요?”“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윤미라가 관심 조로 물었다.“있어요, 그런 일.”노동명이 아무리 데면데면한 성격이라 해도 엄마한테 수중의 업무를 뿌리치고 우빈이 보러 간다고 말할 리는 없었다.엄마가 괜히 그와 하예진을 오해하면 안 되니까.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하예진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노동명은 진짜 우빈이란 아이가 좋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안 믿었다. 그가 우빈이랑 먼저 친해져서 자연스럽게 새아빠 자리를 차지하는 거로 추측했다.“회사 일이야?”윤미라가 재차 물었다.노동명은 거짓말을 둘러댔다.“네, 엄마. 나 먼저 가요.”“그래, 볼일 봐.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어. 은경이가 너 입으라고 새 옷 몇 벌 샀어. 집에 와서 밥 먹을 때 사이즈가 맞는지 한번 입어 봐. 밥 먹으러 안 오면 내일부터 은경이더러 매일 너 도시락 싸주라고 할 거야.”윤미라는 제 아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지금은 손은경에게 아무 감정이 없어서 그녀가 매일 귀찮게 구는 걸 싫어하지만 이런 식으로 협박하면 무조건 밥 먹으러 집에 돌아올 것이다.“그리고 태윤이네 집에 너무 오래 있지 마. 걔네 한창 달콤한 신혼생활 보내는 중인데 네가 있으면 방해밖에 더 돼? 넌 집 없니? 지낼 곳이 없어? 왜 굳이 태윤이네 집으로 가? 오늘 밤에 당장 집으로 돌아와.”노동명이 말했다.“태윤이랑 예정 씨는 혼인 신고한 지도 반년이 됐어요. 뜨거운 신혼은 진작 지났다고요.”“부부 금실이 좋아서 매일 신혼이면 안 돼? 너 뭐 불만 있어?”“...”“집에 안 돌아
“제가 요즘 결혼 준비도 해야 하고 곧 있으면 결혼 휴가라 대표님 곁에 사람이 비어있으면 안 되잖아요.”비서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대답했다.손은경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노동명은 자리를 떠난 후 엄마와 손은경이 비서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을 줄은 몰랐다. 다행히 그의 비서가 빈틈없이 차분하게 대답하여 윤미라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한편 동물원의 돌발상황도 두 사람과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우빈이가 발렌시아 아파트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노동명은 곧장 발렌시아 아파트로 향했다.집에 도착하니 전태윤과 성기현은 없었고 몇몇 여자들만 안에 있었다.성소현도 자리에 함께했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전화를 받자 노동명이 물었다.“예진아, 우빈이랑 아직도 예정 씨 집에 있어?”“네, 예정이가 밥 다 먹고 우릴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에요 대표님?”“오늘 일 전해 들었어.”노동명이 차분하고 온화하게 말했다.“뉴스까지 났더라고. 나도 뉴스 보고 알았어. 방금 태윤이한테 전화해서 우빈이 괜찮다는 걸 알았는데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아이 보려고 왔어. 나 지금 발렌시아 아파트 입구야. 마중 나올 수 있어?”하예진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뉴스까지 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듯싶었다. 그 당시 혼잡한 상황에서 아이까지 유괴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니 뉴스에 날 법도 했다.노동명이 우빈이라고 예측한 것도 아마 성기현과 전태윤 두 기업 총수가 동시에 나타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알았어요.”노동명이 우빈이가 걱정돼 친히 아이를 보러 왔다는데 하예진은 그를 문전박대할 리가 없었다.“몇 분만 기다리세요, 지금 바로 나갈게요.”전화를 끊은 후 그녀는 동생에게 말했다.“예정아, 너희 집 키랑 출입문 카드 좀 줘. 내가 나가서 노 대표님 모셔 와야겠어. 우빈이 보러 왔대.”하예정은 집 키와 출입문 카드를 언니에게 건넸다.하예진이 나간 후 성소현이 말했다.“예정아, 노 대표님 진짜 우빈이 많이 관심하
“에헴...”할머니가 마른기침하자 노동명은 곧바로 시선을 옮겼다.“동명아, 우빈이 나쁜 놈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너 때문에 놀라겠어. 어서 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것 좀 봐.”“아저씨, 나 좀 풀어줘요.”우빈이가 또다시 요구했다.녀석은 잔뜩 화나서 얼굴이 빨개졌다.아저씨의 힘이 워낙 세다 보니 아이는 도저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노동명은 황급히 그를 내려주곤 잇따라 쪼그리고 앉아 아이의 어깨를 꽉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우빈이 무사하면 됐어. 아무 일 없어서 참 다행이야.”우빈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노동명을 빤히 쳐다봤다.동명 아저씨는 사실 그에게 참 잘해준다.우빈이는 아저씨의 진심이 느껴졌다. 장난치며 그를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해 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우빈이는 작은 손을 들어 노동명의 얼굴에 난 칼자국을 가볍게 어루만지더니 무서운 듯 바로 손을 거두어들였다. 노동명이 아픈 내색이 없자 아이는 다시 작은 손을 꺼내 칼자국을 쓰다듬었다.“아저씨 아파요?”“이젠 안 아파.”그해 다쳤을 땐 엄청 고통스럽고 피로 얼굴을 물들여서 윤미라를 바닥에 주저앉게 했다. 아들이 극심한 상처로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에 휩싸였다.엄마인 윤미라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몸이 편찮은 그의 할머니는 상처 입은 그의 모습에 하마터면 숨넘어갈 뻔했다. 비록 그 후에 얼굴만 다친 거라고 알게 되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아 병세가 더 위독해지셨고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었다.노동명은 그제야 후회가 밀려와 모든 일을 접고 그 바닥에서 깨끗이 손 씻은 후 새출발 하기로 했다.칼자국은 줄곧 함께했다. 그건 노동명의 젊은 시절 패기이고 그의 반항으로 할머니를 일찍 여읜 죄의 대가이다.의사가 말하길 몸조리를 잘하고 건강을 신경 쓰면 할머니는 3년에서 5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했다...할머니는 죽기 직전까지 여전히 이 손자가 제일 걱정됐다.손자의 얼굴에 난 칼자국을 쓰다듬으며 뭐라 말
노동명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사건 경과를 물었다.“내가 볼 땐 놈들의 목표가 우빈이를 뺏어가는 거였어.”그의 직감은 하예정 부부와 일치했다.“예진아, 그놈들 얼굴 기억나? 한번 그려줄 수 있어? 내가 사람 시켜서 그 새끼들 찾아볼게.”노동명은 비록 그 바닥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어 손만 벌리면 선뜻 도와주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다들 검은색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얼굴은 못 봤고 덩치 큰 체구에 힘이 아주 셌어요. 보통 강도라기보단 오히려 경호원 같았어요.”전태윤이 외출할 때 경호팀을 거느리고 다녀서 하예진은 제부를 따라다니는 경호원들을 자주 봐왔었는데 하나같이 덩치 큰 체구에 포스가 차 넘쳤다. 동물원의 유괴범들은 왠지 경호원에 더 가까웠다.노동명은 눈빛이 짙어졌다. 그는 하예진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곤 더 자세한 내용도 물어봤다.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고 어마마마께서 또다시 재촉 전화를 걸어왔다.노동명은 발신자 표시를 힐긋 보고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동명아, 누구 전화길래 안 받아?”어르신이 한마디 했다.노동명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음식을 집어 먹으며 하예정의 요리 솜씨가 좋다고 칭찬했다.“태윤이는 먹을 복이 타고났네요.”“부럽지? 질투 나지? 너도 이후에 요리 잘하는 마누라 찾으면 먹을 복이 생겨.”할머니가 장난치듯 말했다.“전화 받으렴.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벨 소리가 너무 요란스러워서 다 늙은 이 할미는 귀가 아프구나.”“할머니, 저 밥 다 먹고 받을게요.”노동명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밥을 먹으며 가끔 공용젓가락으로 우빈에게도 음식을 집어줬다.“우빈이 오늘 놀랐지? 많이 먹고 진정 좀 해.”“나 안 놀랐어요.”우빈이가 정색하며 반박했다.“그래, 안 놀랐어. 우빈이는 꼬마 사나이라서 아주 용감하지. 무서울 게 전혀 없다고.”노동명의 칭찬에 아이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모부도 그를 꼬마 사나이라고 칭찬했었다.“예진아, 우빈이 호신술 가르쳐주는 건 어
“처음부터 네 것 아니었잖아. 20 년 넘게 남의 인생 훔치고 부유하게 살아온 넌 이제부터 짐승보다 못한 가난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금 당장 시골로 꺼져.”“감히 네가 우리 윤미를 촌년이라고 불러? 진짜 촌년은 너잖아! 아퉤!”모든 것을 잃게 된 이윤정에 대한 사모님들의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그들은 온갖 비꼬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윤정은 앉으면서 말했다.“절대 못 나가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거라고 엄마한테 다 설명할 거예요. 누가 나를 해치려고 했는지 알아내면 그 사람 가만히 안 둘 거예요! ”그녀가 갑자기 세 사모님을 노려보며 물었다.“날 해치려고 한 사람이 설마 당신들이에요?”이씨 집안 큰 사모님은 이윤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 같은 짝퉁이 내 손을 더럽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싸구려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갖춘 거니? 이년아, 잘 들어. 네가 아무리 변명해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어머님 머릿속에 새겨져서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넌 이제 끝났어.”이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몸을 돌려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다시 나왔다.그녀는 모든 사람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윤정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악!”이윤정은 비명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가뜩이나 날씨가 추운데 찬물까지 끼얹었으니, 이윤정은 너무 추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흠뻑 젖었고 심지어 바닥에 있는 옷들도 꽤 많이 젖어버렸다.“셋째 동서, 가서 물 한 바가지 더 가져와요. 저년이 덮을 수 있는 옷들을 싹 다 적셔버리고 얼어 죽게 내버려둬요. 언제까지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요.”큰 사모님은 셋째 사모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나도 같이 가요.”둘째 사모님도 뒤를 따랐다.곧 두 사모님은 각각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마찬가지였다.고현은 눈이 높아 그 누구도 좋아해 본 적 없었다.참, 남자를 좋아했었지!이제 고현과 전호영은 짝을 지어 다녔다.전호영이 있는 장소에서 종종 고현을 볼 수 있었다. 고현이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전호영도 따라서 나타났다.젊고 예쁜 아가씨들은 한 남자에게 졌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왜 이렇게 됐지?”이윤정이가 중얼중얼 혼잣말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이윤정은 여전히 이씨 가문의 둘째 딸이었다.그러나 오늘 그녀는 이미 이씨 가문의 쓰레기로 되었다.이은화는 이윤정을 내던졌다.이윤정도 그녀의 양부모님을 대할 면목이 없다.그녀가 친부에게 찾아가려고 해도 그녀의 친아버지는 아직 감옥에 계시고 친어머니는...이윤정은 그녀의 친가족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더니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이윤정의 친엄마 김현미가 이윤정을 매우 사랑하더라도 이윤정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김현미 부부가 이윤정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심지어 이윤정에게서 이득만 얻어내려고 할 뿐이다.하지만 김현미 부부에게 쫓겨나게 되면 이윤정은 또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지금 이윤정은 가진 게 하나도 없다.또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이윤정은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다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이 바로 그녀의 세 형수님이었다.이윤정은 희망 섞인 눈빛을 거두어들였다.예전 같았으면 조윤 일행이 그녀의 편 들었을 텐데, 지금은...“형수님.”이윤정은 조윤 일행을 향해 인사했다.“어머, 윤정이 아니야? 너야? 머리를 풀어헤치니 너무 초췌해 보여. 난 거지가 온 줄 알고 동서들이랑 널 내쫓으려고 했는데 너구나. 응? 날 형수님이라고 불렀어? 하지 마. 난 네 형수님이 아니야. 난 거지 시누이가 없어. 윤미가 내 친시누이거든. 너처럼 짝퉁 시누이는 자기 처지도 모르고...”이때 이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 김여희가 말을 이었다.“내 말이. 짝퉁은 여전히 짝퉁일
이윤미는 너그럽게 대답했다.“우리 엄마 앞에서 조심하세요. 엄마가 지금 여전히 화내고 계시거든요.”이윤미는 집 밖으로 나갔다.집사는 그녀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큰아가씨, 실례지만 어젯밤에 어르신과 둘째 아가씨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가주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둘째 아가씨를 내쫓으셨고 또 정 어르신께서도 병원에 실려 갔잖아요. 둘째 아가씨께서 어르신을 해친 거예요?”진숙녀는 예전의 집사가 아니지만,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이은화가 가주 자리에 오른 뒤 진숙녀가 이씨 가문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일했다. 그리고 정군호 부부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이윤정이 정군호를 다치게 했어도 진숙녀는 이은화가 이토록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아줌마, 저희 엄마가 아줌마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묻지 않으시는 게 나을 거에요 너무 많이 아시게 되면 다치실 거에요. 저도 아줌마를 위해서 하는 소리예요”집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얼른 아침 운동 하세요. 저는 이만 주방에 가서 아침 식사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볼게요. 아가씨가 아침에 건강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겠습니다.”진숙녀는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이윤미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서서 집안으로 돌아갔다.이윤미는 먼저 정원에서 몸을 풀고 두 바퀴를 뛰다가 별장 대문으로 향했다.대문이 아직 잠겨 있었지만 이윤미는 열쇠를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열쇠로 문을 열었다.문 여는 소리에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이윤정이 깨어나게 되었다.이윤정은 고개를 들어 별장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더니 재빨리시 일어나 앉았다. 피곤한지, 옷을 너무 많이 입은 탓인지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비틀거리다가 결국 땅에 넘어졌다.이윤정은 마침 이윤미의 발밑으로 엎어지게 되는 바람에 이윤미에게 큰절하게 된 셈이다.이윤미는 멈춰 서서 이윤정을 내려다보았다.이윤정은
이윤미가 입을 열었다.“형수님 혼자 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둘째 형수님이랑 셋째 형수님과 함께 봐야 재미있죠. 우리 엄마가 돌아오셔서 형수님들을 보시게 된다고 해도 엄마는 형수님들을 나무라지 않으실 거예요. 엄마가 홧김에 윤정이를 쫓아내서 이씨 성을 따르지 못한다고 하셔도 윤정이가 협조하지 않으면 그뿐이에요. 윤정이는 절대로 성씨를 바꾸지 않을걸요. 윤정이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엄청나게 싫어하거든요. 저번에 윤정이 친어머니가 윤정을 찾아왔는데 거지 취급하며 친어머니를 쫓아냈거든요.”지난번에 이윤정의 친어머니 김현미가 이윤정을 찾으러 왔는데 때 이윤정이 김현미에게 어떻게 대했었는지 이윤미는 잘 알고 있다.김현미가 이윤미를 그토록 못되게 굴더니, 이윤정의 미움을 사는 것도 김현미의 업보였다.“저는 저의 엄마가 화가 풀리게 되고 윤정이가 울고불고 사정하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걱정이에요.”조윤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이 정도로 배반했는데도 어머님께서 또 윤정이를 데려온다고요?”“제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이은화가 이윤정을 끔찍이 사랑하는 모습을 떠올린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가능성도 있어. 내가 네 둘째 형수님과 셋째 형수님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윤정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싶은지 물어볼게.”어젯밤에 그녀들은 감히 밖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이윤정이 조윤 일행에게 끌려가 저택 문 앞에 던져진 뒤로 그녀들은 더는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집안으로 바로 돌아갔다.이은화의 노여움이 이씨 집안 전체를 불태우려고 했으니, 그녀들은 얌전히 있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형수님, 그럼 저는 운동을 하러 나가볼게요.”“추운 날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다니, 난 네 끈기에 감복할 수밖에 없어. 난 아침 일찍 달리기를 못 하겠어. 내 배를 봐. 점점 더 커지고 있어.”조윤은 자신의 뱃살을 만지며 말했다.“형수님 몸매가 잘 유지되고 있는 편이에요. 중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여자가 살이 찌고 옆으로 퍼지는지 아세요? 형수님은 조금만 조절을 하
전태윤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우빈이 녀석은 놀음을 잘 탐내는 아이지. 평소 우빈이는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고 있었어. 우리가 함께 놀아준다고 해도 늘 외로워했지. 애들은 역시 또래 아이들과 놀아야 재미있게 놀 수 있나 봐.”그는 하혜정의 배를 만지며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이 꼬마는 내년에나 만날 수 있겠지? 이 꼬마가 우빈이만큼 크면 우빈은 아마도 이 꼬마랑 놀아주지도 않겠지?”“우빈이는 우리 아기를 예뻐할 거에요. 큰오빠처럼 잘 대해줄걸요.”“그럼. 얼른 자. 안 자면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라.”하혜정이 말을 이었다.“잘게요. 저는 이미 잠들었어요.”하혜정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전태윤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잠들어 있는데도 말하고 있네.”“잠꼬대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웃으며 하혜정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다시 그녀를 껴안고 꿈나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하룻밤을 푹 잤다.다음 날 아침, 강성 이씨 가문.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이윤미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살금살금 걸어갔다.어젯밤 일은 아주 늦게까지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정군호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이씨 가문의 저택은 조용해 졌다.이윤미는 정군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어젯밤 이은화가 이윤미와 정일범 형제를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위층에서 아버지의 비명이 들렸고 그 뒤로 구급차가 도착하여 구급대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떠났다. 병원에 따라간 사람은 이은화와 그녀의 경호원들뿐이었고 다른 사람은 병원에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정군호가 비명을 지른 이유를 묻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이윤미는 정군호가 살아계신 것만 알면 되었다. 이은화도 네 남매를 생각해서라도 정군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계단 입구로 가기도 전에 다른 방의 문 여는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발소리가 들려 앞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형수님 조
그런 두려움은 한 번 겪으면 그뿐이다. 전태윤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 제가 잠에서 깼어요. 잠이 안 오는데 한번 말해줘요.”하예진이 물었다.전태윤은 다가와 하혜정의 얼굴에 뽀뽀한 후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신의 귀를 더럽힐까 봐 걱정이야. 좋은 일은 아니야. 참,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 이씨 가문의 나쁜 일은 우리 가문의 좋은 일이나 다름없으니까.`”하예진이 흥미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전태윤은 그녀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이자 그녀는 바로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는 전태윤을 쳐다보면서 그다지 믿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호영이가 그 광경을 보고 너무 믿기지 않아 다시 눈을 비비고 확인했다고 하더라고.”하혜정은 피식 웃었다.“너무 어이없네요. 사실이라니... 이모할머니 남편 성이 정 씨죠? 윤정 씨는 그들의 수양딸로서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친딸처럼 키워졌다고 해요. 부녀지간의 감정도 아주 두터울 텐데 제 그런 짓을 벌일 리가 없는데. 누군가 뒤에서 음모를 꾸민 거 아니에요? 이 시 가문의 주인들마다 특별 비서 한명씩 배정들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실력이 대단해요?”전태윤이 말을 이었다.“그 두 사람은 의심하지 않아도 돼. 배후에서 이 모든 것을 꾸민 사람은 이씨 집안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일 리가 없어. 아마도 이씨 가문 사람들중 윤정 씨와 정군호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싶거나 죽지 않더라도 그들을 괴롭히고 싶은 사람일 거야.”“음모를 꾸민 사람은 이 대표님의 성격도 잘 아는 사람일 거야. 이 대표님께서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 정군호 씨와 윤정 씨가 무고하다고 해도 이 대표님은 두 사람에게 벌을 줄 거야.”하혜정은 이윤미를 떠올리며 물었다.“이윤미 씨 아닐까요?”“윤미 씨라고 생각해?”곰곰이 생각해보던 하혜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닐 것 같아요. 윤정 씨 몸에는 이모할머니의 지독한 피가 흐르고 있고 또 성장 환경도 열악한 편이라
“여보, 물 마셔.”전태윤은 하예진을 따라 침대 앞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 한 잔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두 모금만 마시고는 더는 마시지 않았다.“목 좀 축이면 돼요. 자꾸 화장실 가는데 힘들어 너무 많이 마시기 싫어요. 방금 누구한테서 전화 왔어요?”전태윤은 담담하게 거짓말을 했다.“정남이가 한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해 날 괴롭히려고 전화 왔어. 그래서 내가 욕했어. 분명 나한테 복수하려는 속셈일걸. 내가 예전에 종종 한밤중에 정남에게 전화했거든.”하혜정은 그를 바라보았다.“여보, 당신이 전화를 받은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어요. 단지 너무 졸려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태윤 씨가 통화한 내용은 제가 듣지 못했지만 분명 정남 씨한테서 걸려온 전화는 아니었어요. 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저한테 거짓말하신 것을 알아요. 그 전화는 호영 도련님께서 걸려온 전화죠?”하혜정을 걱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하예진뿐이었다.전태윤은 하혜정을 껴안으며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바보 된다고 하던데, 우리 부인은 여전히 똑똑하네.”“호영 도련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우리 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에요?”“처형은 괜찮아. 단지 이씨 가문에 일이 생긴 것뿐이야. 처형이 오늘 저녁에 이씨 가문에 가서 밥을 먹다가 이씨 가문에 큰 볼거리가 생겼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처형은 서둘러 이씨 가문의 저택을 떠났고 지금은 호텔에서 쉬고 있대. 걱정하지 마.”“호영이와 고현 씨가 강성에 있어서 처형은 안전할 거야. 그리고 나와 노동명 그리고 당신 이모의 경호원들도 전부 처형을 따라다니고 있는걸. 처형은 요즘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서 자신의 편에 서 있게 하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강성에서 사업 제국을 세우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하예진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은 물론 전씨 그룹과 노 씨 그룹 그리고 성씨 그룹이었다.사실 하예진은 모습을 드러내고 일하는 사람일 뿐 진짜 주인은 관성의 3대 가문이다.이경혜는 조카딸 하예진을 도와 이윤미와
“예진 누나의 경호원들도 고현 씨 경호원 차에 올라탔거든. 경호원들 전부 술을 마셨다는 핑계로 차를 몰지 못한다고 이씨 가문의 집사님에게 청탁했거든. 그래서 그 집사님도 누나의 요구대로 이씨 가문의 경호원을 안배해 주어 누나의 차를 몰고 우리 뒤를 따르게 한 거지.”“그 사건은 사고처럼 보였지만 우리는 사고라고 믿지 않거든. 경호원들의 차 안의 블랙박스를 보면 그 화물차가 빠른 속도로 우리 경호원들의 차 두 대를 추월한 뒤 바로 예진 누나가 이씨 가문으로 타고 갔던 차를 쫓고 있었어. 옆 도로에 차가 없어서 일반적으로 차를 추월하려면 도로를 변경하여 앞으로 몰고 나가면 되는데 직접 누나가 탔어야 할 차를 들이박은 거야.”“화물차가 속도가 빠르고 추돌하는 힘이 너무 세서 누나가 전에 탔던 그 차는 맞은편의 도로로 튕겨 나가게 되면서 뒤집히게 된 거야. 그리고 곧이어 차에 불이 붙은 바람에 차 안의 사람을 구해낼 시간조차 없었어.”불에 타 죽은 이씨 가문의 그 경호원은 정말 비참하게 죽었다.“오늘 밤 이씨 가문에서도 엄청난 볼거리가 생겼어. 그 볼거리는 아마 이 대표님이 꾸민 짓은 아닐 거야. 누가 뒤에서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재미있어. 이씨 가문의 상황은 아마도 곧 변하게 될 것 같아. 예진 누나가 이 시점에 강성으로 오다니, 참 잘된 것 같아.”전호영은 정군호와 이윤정의 일을 전태윤에게 알려 주었다.“형은 아마 모를걸.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전부 멍하니 쳐다만 봤다니까. 나도 믿기지 않아서 내 눈을 몇 번이고 비벼서 다시 확인했어.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이 대표님 남편과 윤정 씨인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두 사람은 정말 우리 젊은이들보다 더 격렬하더라고.”“어쩐지 이 대표님이 관성에 있는 틈을 타 정군호 씨가 바람을 피우더라니.”“아무튼, 이씨 가문은 지금 난리 났어.”전태윤은 나지막이 동생에게 신신당부했다.“이씨 가문에 큰 사건이 생겼기 때문에 너희들도 조심해야 해. 그 여자가 전임 이 가주도 해친 것으로 보면 무슨 짓이든
정군호가 어떻게 선택했는지 멀리 있는 관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한밤중에 전태윤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벨 소리에 잠을 깨고 재빨리 핸드폰을 가져갔다.전태윤은 휴대폰 화면에 뜬 번호도 확인하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침실을 나갔다.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여보세요?”“형, 나야.”“호영아, 늦은 시간까지 왜 아직도 안 잤어?”전호영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것을 깨달은 전태윤은 급히 침실 문을 닫았다.그리고 방을 나선 뒤에야 비로소 큰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전호영이 먼저 물었다.“형, 형수님은 아직 안 깼지?”“아니. 임신 중이라 잠들면 깊은 잠을 자거든. 우리 처형이 무슨 일이라고 생겼어?”전호영이 한밤중에 한가하게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전태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하예진이 강성에 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만약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하혜정은 결코 견딜 수 없을 것이다.“사고가 났긴 났지. 우리도 방금 호텔에 돌아왔거든. 내가 예진 누나를 먼저 방에 들어가서 쉬라고 했어. 이 사실은 형한테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이렇게 전화를 걸었어. 내가 지금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일이 되면 형도 알게 될 거야.”하예진이 강성으로 데려간 경호원들은 세 가문의 경호원이었기에 전태윤이 배치한 경호원도 내일이면 전태윤에게 보고할 것이다. 노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경호원들도 그들의 지도자에게 알려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진이 이미 호텔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한숨 돌렸다.아무 일 없으니 당행이었다.“무슨 사고? 다친 사람은 없고?”전태윤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우리 쪽에는 다친 사람이 없어. 이씨 집안의 경호원 한 명이 돌아가셨고 내 차 한 대가 파손됐어.”하예진이 강성에서 사용하는 차량은 전호영의 차였다.“내가 너에게 차 한 대를 배상해 줄게.”그러자 전태윤이 대답했다.사촌 동생 전호영에게 부탁해서 하예진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전호영의 차가 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