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결혼 준비도 해야 하고 곧 있으면 결혼 휴가라 대표님 곁에 사람이 비어있으면 안 되잖아요.”비서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대답했다.손은경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노동명은 자리를 떠난 후 엄마와 손은경이 비서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을 줄은 몰랐다. 다행히 그의 비서가 빈틈없이 차분하게 대답하여 윤미라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한편 동물원의 돌발상황도 두 사람과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우빈이가 발렌시아 아파트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노동명은 곧장 발렌시아 아파트로 향했다.집에 도착하니 전태윤과 성기현은 없었고 몇몇 여자들만 안에 있었다.성소현도 자리에 함께했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전화를 받자 노동명이 물었다.“예진아, 우빈이랑 아직도 예정 씨 집에 있어?”“네, 예정이가 밥 다 먹고 우릴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에요 대표님?”“오늘 일 전해 들었어.”노동명이 차분하고 온화하게 말했다.“뉴스까지 났더라고. 나도 뉴스 보고 알았어. 방금 태윤이한테 전화해서 우빈이 괜찮다는 걸 알았는데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아이 보려고 왔어. 나 지금 발렌시아 아파트 입구야. 마중 나올 수 있어?”하예진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뉴스까지 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듯싶었다. 그 당시 혼잡한 상황에서 아이까지 유괴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니 뉴스에 날 법도 했다.노동명이 우빈이라고 예측한 것도 아마 성기현과 전태윤 두 기업 총수가 동시에 나타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알았어요.”노동명이 우빈이가 걱정돼 친히 아이를 보러 왔다는데 하예진은 그를 문전박대할 리가 없었다.“몇 분만 기다리세요, 지금 바로 나갈게요.”전화를 끊은 후 그녀는 동생에게 말했다.“예정아, 너희 집 키랑 출입문 카드 좀 줘. 내가 나가서 노 대표님 모셔 와야겠어. 우빈이 보러 왔대.”하예정은 집 키와 출입문 카드를 언니에게 건넸다.하예진이 나간 후 성소현이 말했다.“예정아, 노 대표님 진짜 우빈이 많이 관심하
“에헴...”할머니가 마른기침하자 노동명은 곧바로 시선을 옮겼다.“동명아, 우빈이 나쁜 놈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너 때문에 놀라겠어. 어서 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것 좀 봐.”“아저씨, 나 좀 풀어줘요.”우빈이가 또다시 요구했다.녀석은 잔뜩 화나서 얼굴이 빨개졌다.아저씨의 힘이 워낙 세다 보니 아이는 도저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노동명은 황급히 그를 내려주곤 잇따라 쪼그리고 앉아 아이의 어깨를 꽉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우빈이 무사하면 됐어. 아무 일 없어서 참 다행이야.”우빈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노동명을 빤히 쳐다봤다.동명 아저씨는 사실 그에게 참 잘해준다.우빈이는 아저씨의 진심이 느껴졌다. 장난치며 그를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해 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우빈이는 작은 손을 들어 노동명의 얼굴에 난 칼자국을 가볍게 어루만지더니 무서운 듯 바로 손을 거두어들였다. 노동명이 아픈 내색이 없자 아이는 다시 작은 손을 꺼내 칼자국을 쓰다듬었다.“아저씨 아파요?”“이젠 안 아파.”그해 다쳤을 땐 엄청 고통스럽고 피로 얼굴을 물들여서 윤미라를 바닥에 주저앉게 했다. 아들이 극심한 상처로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에 휩싸였다.엄마인 윤미라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몸이 편찮은 그의 할머니는 상처 입은 그의 모습에 하마터면 숨넘어갈 뻔했다. 비록 그 후에 얼굴만 다친 거라고 알게 되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아 병세가 더 위독해지셨고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었다.노동명은 그제야 후회가 밀려와 모든 일을 접고 그 바닥에서 깨끗이 손 씻은 후 새출발 하기로 했다.칼자국은 줄곧 함께했다. 그건 노동명의 젊은 시절 패기이고 그의 반항으로 할머니를 일찍 여읜 죄의 대가이다.의사가 말하길 몸조리를 잘하고 건강을 신경 쓰면 할머니는 3년에서 5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했다...할머니는 죽기 직전까지 여전히 이 손자가 제일 걱정됐다.손자의 얼굴에 난 칼자국을 쓰다듬으며 뭐라 말
노동명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사건 경과를 물었다.“내가 볼 땐 놈들의 목표가 우빈이를 뺏어가는 거였어.”그의 직감은 하예정 부부와 일치했다.“예진아, 그놈들 얼굴 기억나? 한번 그려줄 수 있어? 내가 사람 시켜서 그 새끼들 찾아볼게.”노동명은 비록 그 바닥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어 손만 벌리면 선뜻 도와주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다들 검은색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얼굴은 못 봤고 덩치 큰 체구에 힘이 아주 셌어요. 보통 강도라기보단 오히려 경호원 같았어요.”전태윤이 외출할 때 경호팀을 거느리고 다녀서 하예진은 제부를 따라다니는 경호원들을 자주 봐왔었는데 하나같이 덩치 큰 체구에 포스가 차 넘쳤다. 동물원의 유괴범들은 왠지 경호원에 더 가까웠다.노동명은 눈빛이 짙어졌다. 그는 하예진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곤 더 자세한 내용도 물어봤다.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고 어마마마께서 또다시 재촉 전화를 걸어왔다.노동명은 발신자 표시를 힐긋 보고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동명아, 누구 전화길래 안 받아?”어르신이 한마디 했다.노동명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음식을 집어 먹으며 하예정의 요리 솜씨가 좋다고 칭찬했다.“태윤이는 먹을 복이 타고났네요.”“부럽지? 질투 나지? 너도 이후에 요리 잘하는 마누라 찾으면 먹을 복이 생겨.”할머니가 장난치듯 말했다.“전화 받으렴.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벨 소리가 너무 요란스러워서 다 늙은 이 할미는 귀가 아프구나.”“할머니, 저 밥 다 먹고 받을게요.”노동명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밥을 먹으며 가끔 공용젓가락으로 우빈에게도 음식을 집어줬다.“우빈이 오늘 놀랐지? 많이 먹고 진정 좀 해.”“나 안 놀랐어요.”우빈이가 정색하며 반박했다.“그래, 안 놀랐어. 우빈이는 꼬마 사나이라서 아주 용감하지. 무서울 게 전혀 없다고.”노동명의 칭찬에 아이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모부도 그를 꼬마 사나이라고 칭찬했었다.“예진아, 우빈이 호신술 가르쳐주는 건 어
“오늘 밤에 집에 와서 밥 먹겠다고 했잖아.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윤미라가 아들을 다그쳤다.“당장 돌아와. 은경이가 널 위해 직접 요리를 만들었어. 내가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 오성급 호텔 셰프 수준이라니까.”“엄마, 나 밥 먹으러 못 가요. 아직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어요. 엄마랑 은경 씨 먼저 드세요. 아 그리고 은경 씨는 우리 집 손님인데 주방에서 음식 만들게 하면 돼요? 그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윤미라는 미간을 찌푸렸다.“아직도 처리하지 못했어? 그래도 일단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날도 어두워졌겠다, 얼른 집에 와서 밥 먹어. 다 먹고 가서 계속하면 되잖아.”“엄마, 나 이미 밖에서 다 먹었어요.”윤미라는 분노가 들끓었다.“은경이가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려놨는데...”“그럼 엄마가 맛있게 드세요.”그녀는 아들 때문에 화나서 목이 꽉 멨다.안간힘을 써가며 아들을 위해 기회를 마련해줬건만 이 녀석은 죽기 내기로 피하거나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손은경은 참 괜찮은 아이이고 두 사람은 또 일찌감치 알고 지내서 일단 서로 잘 어울리기만 하면 스파클이 튀기 마련이다.“동명아, 엄마는 은경이가 참 마음에 들어.”“그럼 은경 씨더러 며칠 더 머물라고 해요. 엄마랑 함께 있어 주고 좋잖아요.”“은경이도 일이 바빠서 며칠 뒤에 집으로 돌아가야 해.”노동명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엄마가 은경 씨 따라가면 되겠네요. 여행인 셈 치고 아줌마도 만나고 힐링하고 좋잖아요. 내가 전용기 마련해 드릴게요. 어때요 엄마? 이참에 아빠도 함께 가요. 두 분 이젠 정년퇴직해서 일적인 스트레스도 없겠다, 실컷 놀다가 내년에 돌아와요.”윤미라는 기가 막혀 전화를 꺼버렸다.한심한 녀석이 손은경에게 일말의 호감도 없다니!그녀는 휴대폰을 탁자에 내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못난 놈, 눈이 머리 꼭대기에 붙었어. 은경이가 얼마나 우수한데 이런 애도 눈에 안 차? 평생 결혼 안 할 거야 뭐야?!”그녀의 남편 노진규가 입을 열었다.“그
어찌 됐든 노씨 일가와 조건이 비슷해야 한다.“그래도 은경이가 제일 괜찮은데 자식이 기회도 안 주고. 은경이랑 잘 지내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내일 내가 전씨 그룹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요.”노규진이 물었다.“거긴 뭐 하려고?”“동명이랑 태윤이, 그리고 정남이까지 절친 삼인방이잖아요. 태윤이랑 정남이는 이젠 임자 있는 몸이라 사랑의 달콤함을 맛보았을 거예요. 걔네 둘을 찾아가서 동명이 좀 어떻게 은경이랑 잘해보라고 부추겨야죠. 부모 말은 안 들어도 친구들 말은 들을 거예요. 동명이 지금 태윤이네 집에서 지내요. 여보, 태윤의 전화번호 나한테 보내요. 이따가 전화해야겠어요, 내일까진 못 기다려요!”윤미라는 전태윤과 소정남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태윤이 그 무딘 녀석이 우리 동명이보다 나을 것 같아? 정남이한테 연락해 봐. 걔가 그래도 말재주가 좋아서 동명이를 잘 타이르면 성공할 확률이 높을 거야.”“맞아요, 그럼 정남이한테 연락해 봐야겠어요.”소정남은 만능형 인간일까? 왜 다들 무슨 일만 있다 하면 그를 찾는 건지......심야 시각.늦게 귀가한 전태윤이 살며시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선 후 가볍게 문을 닫고 안으로 잠갔는데 집안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몸을 돌려보니 하예정이 잠옷 바람으로 방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예정아, 아직 안 잤어?”그는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흘러내린 머릿결을 뒤로 넘겨주었다. 다정한 제스처와 함께 그녀의 예쁜 얼굴이 고스란히 그의 눈에 담겼다.“이제 막 깼어요. 문소리가 들려서 태윤 씨 돌아온 걸 알았어요.”하예정은 말하면서 그의 정장 외투를 벗겨주었다.“배 안 고파요? 내가 야식 만들어줄까요?”“난 야식 먹는 습관 없어. 살찌면 네가 싫어할까 봐.”하예정은 가볍게 웃었다.“이 세상 사람들을 다 싫어해도 태윤 씨는 아니죠.”부부는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깨실까 봐 전태윤은 문도 살며시 닫았다.방안에 들어선 후 하예정이 그의 외투를 옷장에 걸어두곤 샤
그가 문을 닫은 후 하예정은 졸음이 쏟아져 하품하며 침대에 누웠다.그녀는 전태윤과 성기현, 소정남까지 동물원 사건 조사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야 했기에 남편이 샤워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었다.나중에 노동명도 조사에 돌입한 듯싶었다.그는 발렌시아 아파트를 떠난 후 틀림없이 전태윤을 찾아갔을 테니까.한참 후 전태윤이 욕실에서 나왔다.하예정은 발걸음 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떴다. 전태윤은 상의도 걸치지 않은 채 축축하게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하예정은 냉큼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깨끗한 수건을 들고 가서 머리도 말릴 줄 모르는 남자를 화장대 앞에 앉혔다.그녀는 엄마처럼 전태윤의 축축한 머리를 닦아주며 말했다.“이렇게 늦은 시각에 머리는 왜 감아요? 다 감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야지, 어차피 남자들은 머리가 짧아서 수건으로 몇 번만 닦으면 바로 마를 텐데, 쯧쯧. 봐요, 그새 바닥에 물로 흥건해졌잖아요.”전태윤은 아내의 자상한 손놀림과 잔소리에 흠뻑 도취했다.밖에서 종일 바삐 돌아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의 잔소리가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그는 역시 남들과 달랐다.다들 집에 돌아가면 아내의 잔소리가 싫다고들 하는데 전태윤은 유난히 이 과정을 즐겼다.왜냐하면 하예정은 잔소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게다가 아직 잔소리할 나이대도 아니다.“잠옷 챙겨줬는데 왜 바지만 입고 나와요? 상의는 어디 뒀어요?”전태윤이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바로 잘 거잖아. 어차피 잘 때 벗으니까 아예 안 입었지.”하예정은 그의 등을 살짝 내리쳤다.머리를 다 말린 후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전태윤의 상의를 찾아내서 기어코 입혀주었다.“태윤 씨 잠들고 나면 가끔 이불을 걷어차서 상의도 입어야 해요. 감기 걸릴라.”그는 또 보일러 켜는 것도 엄청 싫어한다.뭐 물론 이젠 보일러를 켤 필요도 없고...보일러를 안 켜면 하예정이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파고들 테니까.일단 보일러만 켰다 하면 그녀는 전태윤을 저 멀리 차버리고 품에 안길 생각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물원은 소란을 일으키기 쉽고, 그 기회를 틈타 아이를 데려가기도 쉽다.번화한 도시 중심가에는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손을 쓰기가 쉽지 않다.전태윤의 추측에 따르면 적어도 몇 달이 지나야 다시 한번 손을 쓸 것이다.“당신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럼 동물원 사건을 평범한 사고로 생각하고 평소대로 행동하며 그놈들이 다시 나타나 미끼를 물기를 천천히 기다릴게요.”“우리 마누라님이 점점 똑똑해지고 있는데?”“예전에는 멍청했다는 말인가요?”“당연히 아니지. 당신은 늘, 항상 똑똑해. 난 당신의 이 똑똑함이 너무 좋아.”그는 잘 보이려고 무지 애를 썼다.“내가 멍청하대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맨날 당신에게 속아 쩔쩔매는데.”그는 서둘러 자신의 입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그리고 키스를 한 뒤,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여보, 밤이 깊었으니 이제 자자.”“당신도 좋은 꿈 꿔요.”전태윤은 딥키스로 옛일을 다시 언급하려는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굿 나이트 인사를 한 그녀는 다시 꿈나라로 들어갔다.그는 한 손을 그녀의 허리에 걸치고 잠자는 그녀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그녀의 얼굴에 뽀뽀하고 나서야 함께 잠에 들었다.전태윤 부부는 달콤한 잠을 잤지만, 셋집에 누워있는 서현주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옆에 잠들어 있는 주형인이 깨기라도 할까 봐 긴장하게 들여다 봤다.그리고 휴대폰도 띄엄띄엄 들여다 봤지만 낯선 전화도, 낯선 메시지도 없었다.‘그 여자... 또 다른 계획이 있을까? 오늘 계획이 실패한 건 내 잘못도 아닌데, 내 가족에게 화풀이하면 어떡하지?’그녀는 이미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했다.경호원을 데리고 있는 하예정은 소란이 일어났을 때 이미 경호원의 보호 아래 해양관에서 철수했다.임정한을 데려간 건 양동 작전일지도.아무튼 결국 우빈이는 무사하다.그녀는 우빈이가 유괴당할 뻔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다는 것
“그리고 정한이도 하마터면 유괴당할 뻔했고요. 예정 씨가 사람을 시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형님은 얼마나 애가 탔을지 몰라요.”아들을 되찾은 주서인은 바로 하예정에게 무릎을 꿇고 고마움을 표했는데, 서현주는 그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엄마는 자기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태윤 씨가 그 많은 사람을 데리고 마중 온 걸 못 봤어? 그리고 성 대표도 경호팀까지 거느리고 왔고. 우빈이를 보호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내가 어디 끼어들 데가 있겠어? 우빈이 앞에서 한마디 할 기회조차 없었단 말이야.”“...”“정한이가 이번에 많이 놀란 것 같아, 누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마찬가지야.”비록 주형인은 요즘 누나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조카인 임정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무지 자책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동물원에 가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도 누나와 조카를 불러오지 않았을 테고,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조카를 되찾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한평생 자책했을지도 모른다.아이를 잃은 가정은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다.“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놀러 가지 말자. 가더라도 아이들을 꼭 잘 지켜봐야 해. 특히 위험이 뭔지도 모르고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우빈 또래의 아이들은 더욱 그래.”그는 동물원에서 생긴 사고를 떠올리기만 하면 소름이 돋았다.아빠인 그도 아들이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다만 아들 우빈을 관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빠인 그가 발 디딜 틈도 없었다.그는 자기가 아빠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사실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다.당시 그는 조카를 찾을 생각만 하였는데, 자기 아들도 곤경에 빠졌을 줄이야.그때 하예정이 아들 옆에 있었기에 다행이지...그는 자신이 아빠로서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자책했다.“동물원은 너무 크고 복잡하여 사고가 나기 쉬워. 나중에 아이들이 놀러 가고 싶어 하면 동네의 작은 놀이터에 데리고 가서 놀자.”“사고가 한번 났다고 하여 아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
모연정네 다섯 식구는 저녁에 전용기를 타고 A시로 돌아갈 계획이었다.예준성도 거대한 예진 그룹을 관리하느라 매우 바빴다.“언니가 어젯밤에 늦게 잠들어서 아직도 엄청나게 졸려. 언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 조금만 더 잘게.”하예진은 정신이 몽롱했고 머리도 약간 아팠다. 그녀는 동생한테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계속 잠을 청하기로 했다.“언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나한테 먼저 말해줘. 알았지?”“난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집에서 몸조리 잘하고 맘 편히 일하면서 우리 우빈이를 잘 돌봐주면 돼. 언니 걱정은 하지 마. 얼른 일 봐.”하예정은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언니, 나랑 우빈이는 언니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이모가 맡기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너희 보러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카가 태어나면 꼭 보러 돌아갈 거야.”그녀의 유일한 여동생이 아이를 낳으면 그녀는 반드시 돌아가 지킬 것이다.그녀는 동생의 가족이니까.“내년에야 출산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배도 안 나왔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2개월이 지나면 배가 나오기 시작할 거야. 다시 출근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중요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태교하면서 쉬어. 어차피 세 사람이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니까 소현이가 주요하게 관리할 거고 너랑 효진 씨는 태교에 집중하면 돼.”“나 아직 움직일 수 없는 단계는 아니야. 뭔가 하긴 해야 해. 매일 집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짜증만 나서 태교에 더 안 좋아.”전태윤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태교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임신 후기에 집에서 태교해도 너무 늦지 않았고 임신 8개월까지 회사에 나가겠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알았어. 네가 좋을 대로 해. 아무튼 몸조심하고 절대 무리하지 마. 무리하면 언니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나 임산부인데 자꾸 뭐라고 할 거야?”“당연히 해야지. 넌 분명히 나 때와 달리 집에서 편안하게 태교할 수 있단 말
“오빠, 난 이제 빈털터리인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정일범은 그래도 이윤정을 많이 아꼈다. 그는 지갑을 꺼내서 연 후 안에 있는 모든 현금을 꺼내 이윤정의 손에 쥐여주고 또 카드 한 장을 꺼내 이윤정에게 쥐여주면서 말했다.“오빠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야.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할 거야.”“일단 호텔을 찾아서 머물고 몸조리를 해. 며칠 후에 엄마 화가 풀리면 내가 네 상황을 엄마한테 설명해 볼게.”이윤정은 현금과 카드를 받고 울면서 말했다.“오빠 정말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어.”정일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얼른 가봐. 그 사람들이 내가 너한테 돈을 준 걸 알면 다시 뺏어올 거야. 그때 가서 넌 진짜 빈털터리 되는 거야.”이윤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세 형수로부터 온갖 수모와 모욕을 당할 거란 걸 알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하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과 이윤미의 고고한 자태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을 찌르기에는 충분했다.“정일범!”큰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곧바로 이윤정한테 달려들어 현금과 카드를 뺏어갔다.정일범이 아내를 끌어당기려고 손을 뻗자 그녀는 돌아서서 그의 뺨을 내리쳤다.“정일범, 나랑 애들이 집에서 쫓겨나게 하고 싶어? 어젯밤에 어머님이 이 년을 쫓아내라고 할 때 뭐라고 했는지 당신도 들었잖아! 근데 감히 어머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년한테 돈과 카드를 주다니! 죽고 싶은 거면 당신 혼자 죽어. 나랑 애들을 끌어내리지 마!”아내한테 화를 내려고 했던 정일범은 욕을 얻어먹은 후 찍소리 못했다.큰 사모님은 남편이 더 이상 이윤정을 돕지 못하도록 끌고 갔다.오늘과 같은 결과는 그녀가 열심히 판을 짜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얻은 속 시원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대로 남편이 이윤정을 도와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꺼져. 당장 안 꺼지면 사람 불러서 쫓아낼 거야!”큰 사모님은 남편을 끌고
정일범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이윤정은 그의 품에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자신도 피해자인데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정일범은 그녀를 안아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저 사람들이 너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 기회만 잡으면 널 계속해서 괴롭히려고 할 거야.”이윤정은 오빠들의 편에 섰단 이유로 그의 아내의 미움을 샀다.그녀가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그들의 여동생으로서 그녀는 당연히 오빠들 편이었다. 시누이로서 형수 편에 서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이윤미가 세 형수의 편에 선 것은 그녀의 정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오빠들에 대한 정이 없어서였다.“오빠, 나 안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다 설명해 드릴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난 정말 모르겠어. 난 피해자고 누군가 날 해치려고 하는 게 분명해. 어젯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일까?”“누군가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꾸민 짓인 게 틀림없어.”그녀를 해친 사람은 그녀보다 훨씬 더 악랄했다.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게 분명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분석해 보면 누가 그랬는지 짐작이 가긴 했다. 하지만 정일범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이윤정이 마신 반병의 술은 그가 자신의 방에서 다 마시지 못하고 술장에 넣어뒀던 거였다.그날 아버지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에게 술 한 병을 달라고 하셨다.그는 아버지가 취하실까 봐 걱정되어 한 병 통째로 드리지 않고 그가 마셨던 걸로 드렸다.그 술에 누군가가 약을 타서 아버지와 이윤정을 해치려고 한 거였다.누구일까?그가 아니라면 그의 아내일 것이다.그의 아내가 왜 약을 탔을까?그날 밤 정일범은 술 한 병을 따서 잔을 채우고 두 모금 마신 후 소변이 급해서 화장실에 갔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가 섹시한 잠옷을 입고 바에 앉아
“처음부터 네 것 아니었잖아. 20 년 넘게 남의 인생 훔치고 부유하게 살아온 넌 이제부터 짐승보다 못한 가난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금 당장 시골로 꺼져.”“감히 네가 우리 윤미를 촌년이라고 불러? 진짜 촌년은 너잖아! 아퉤!”모든 것을 잃게 된 이윤정에 대한 사모님들의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그들은 온갖 비꼬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윤정은 앉으면서 말했다.“절대 못 나가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거라고 엄마한테 다 설명할 거예요. 누가 나를 해치려고 했는지 알아내면 그 사람 가만히 안 둘 거예요! ”그녀가 갑자기 세 사모님을 노려보며 물었다.“날 해치려고 한 사람이 설마 당신들이에요?”이씨 집안 큰 사모님은 이윤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 같은 짝퉁이 내 손을 더럽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싸구려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갖춘 거니? 이년아, 잘 들어. 네가 아무리 변명해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어머님 머릿속에 새겨져서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넌 이제 끝났어.”이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몸을 돌려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다시 나왔다.그녀는 모든 사람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윤정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악!”이윤정은 비명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가뜩이나 날씨가 추운데 찬물까지 끼얹었으니, 이윤정은 너무 추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흠뻑 젖었고 심지어 바닥에 있는 옷들도 꽤 많이 젖어버렸다.“셋째 동서, 가서 물 한 바가지 더 가져와요. 저년이 덮을 수 있는 옷들을 싹 다 적셔버리고 얼어 죽게 내버려둬요. 언제까지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요.”큰 사모님은 셋째 사모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나도 같이 가요.”둘째 사모님도 뒤를 따랐다.곧 두 사모님은 각각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마찬가지였다.고현은 눈이 높아 그 누구도 좋아해 본 적 없었다.참, 남자를 좋아했었지!이제 고현과 전호영은 짝을 지어 다녔다.전호영이 있는 장소에서 종종 고현을 볼 수 있었다. 고현이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전호영도 따라서 나타났다.젊고 예쁜 아가씨들은 한 남자에게 졌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왜 이렇게 됐지?”이윤정이가 중얼중얼 혼잣말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이윤정은 여전히 이씨 가문의 둘째 딸이었다.그러나 오늘 그녀는 이미 이씨 가문의 쓰레기로 되었다.이은화는 이윤정을 내던졌다.이윤정도 그녀의 양부모님을 대할 면목이 없다.그녀가 친부에게 찾아가려고 해도 그녀의 친아버지는 아직 감옥에 계시고 친어머니는...이윤정은 그녀의 친가족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더니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이윤정의 친엄마 김현미가 이윤정을 매우 사랑하더라도 이윤정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김현미 부부가 이윤정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심지어 이윤정에게서 이득만 얻어내려고 할 뿐이다.하지만 김현미 부부에게 쫓겨나게 되면 이윤정은 또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지금 이윤정은 가진 게 하나도 없다.또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이윤정은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다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이 바로 그녀의 세 형수님이었다.이윤정은 희망 섞인 눈빛을 거두어들였다.예전 같았으면 조윤 일행이 그녀의 편 들었을 텐데, 지금은...“형수님.”이윤정은 조윤 일행을 향해 인사했다.“어머, 윤정이 아니야? 너야? 머리를 풀어헤치니 너무 초췌해 보여. 난 거지가 온 줄 알고 동서들이랑 널 내쫓으려고 했는데 너구나. 응? 날 형수님이라고 불렀어? 하지 마. 난 네 형수님이 아니야. 난 거지 시누이가 없어. 윤미가 내 친시누이거든. 너처럼 짝퉁 시누이는 자기 처지도 모르고...”이때 이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 김여희가 말을 이었다.“내 말이. 짝퉁은 여전히 짝퉁일
이윤미는 너그럽게 대답했다.“우리 엄마 앞에서 조심하세요. 엄마가 지금 여전히 화내고 계시거든요.”이윤미는 집 밖으로 나갔다.집사는 그녀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큰아가씨, 실례지만 어젯밤에 어르신과 둘째 아가씨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가주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둘째 아가씨를 내쫓으셨고 또 정 어르신께서도 병원에 실려 갔잖아요. 둘째 아가씨께서 어르신을 해친 거예요?”진숙녀는 예전의 집사가 아니지만,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이은화가 가주 자리에 오른 뒤 진숙녀가 이씨 가문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일했다. 그리고 정군호 부부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이윤정이 정군호를 다치게 했어도 진숙녀는 이은화가 이토록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아줌마, 저희 엄마가 아줌마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묻지 않으시는 게 나을 거에요 너무 많이 아시게 되면 다치실 거에요. 저도 아줌마를 위해서 하는 소리예요”집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얼른 아침 운동 하세요. 저는 이만 주방에 가서 아침 식사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볼게요. 아가씨가 아침에 건강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겠습니다.”진숙녀는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이윤미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서서 집안으로 돌아갔다.이윤미는 먼저 정원에서 몸을 풀고 두 바퀴를 뛰다가 별장 대문으로 향했다.대문이 아직 잠겨 있었지만 이윤미는 열쇠를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열쇠로 문을 열었다.문 여는 소리에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이윤정이 깨어나게 되었다.이윤정은 고개를 들어 별장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더니 재빨리시 일어나 앉았다. 피곤한지, 옷을 너무 많이 입은 탓인지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비틀거리다가 결국 땅에 넘어졌다.이윤정은 마침 이윤미의 발밑으로 엎어지게 되는 바람에 이윤미에게 큰절하게 된 셈이다.이윤미는 멈춰 서서 이윤정을 내려다보았다.이윤정은
이윤미가 입을 열었다.“형수님 혼자 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둘째 형수님이랑 셋째 형수님과 함께 봐야 재미있죠. 우리 엄마가 돌아오셔서 형수님들을 보시게 된다고 해도 엄마는 형수님들을 나무라지 않으실 거예요. 엄마가 홧김에 윤정이를 쫓아내서 이씨 성을 따르지 못한다고 하셔도 윤정이가 협조하지 않으면 그뿐이에요. 윤정이는 절대로 성씨를 바꾸지 않을걸요. 윤정이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엄청나게 싫어하거든요. 저번에 윤정이 친어머니가 윤정을 찾아왔는데 거지 취급하며 친어머니를 쫓아냈거든요.”지난번에 이윤정의 친어머니 김현미가 이윤정을 찾으러 왔는데 때 이윤정이 김현미에게 어떻게 대했었는지 이윤미는 잘 알고 있다.김현미가 이윤미를 그토록 못되게 굴더니, 이윤정의 미움을 사는 것도 김현미의 업보였다.“저는 저의 엄마가 화가 풀리게 되고 윤정이가 울고불고 사정하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걱정이에요.”조윤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이 정도로 배반했는데도 어머님께서 또 윤정이를 데려온다고요?”“제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이은화가 이윤정을 끔찍이 사랑하는 모습을 떠올린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가능성도 있어. 내가 네 둘째 형수님과 셋째 형수님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윤정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싶은지 물어볼게.”어젯밤에 그녀들은 감히 밖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이윤정이 조윤 일행에게 끌려가 저택 문 앞에 던져진 뒤로 그녀들은 더는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집안으로 바로 돌아갔다.이은화의 노여움이 이씨 집안 전체를 불태우려고 했으니, 그녀들은 얌전히 있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형수님, 그럼 저는 운동을 하러 나가볼게요.”“추운 날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다니, 난 네 끈기에 감복할 수밖에 없어. 난 아침 일찍 달리기를 못 하겠어. 내 배를 봐. 점점 더 커지고 있어.”조윤은 자신의 뱃살을 만지며 말했다.“형수님 몸매가 잘 유지되고 있는 편이에요. 중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여자가 살이 찌고 옆으로 퍼지는지 아세요? 형수님은 조금만 조절을 하
전태윤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우빈이 녀석은 놀음을 잘 탐내는 아이지. 평소 우빈이는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고 있었어. 우리가 함께 놀아준다고 해도 늘 외로워했지. 애들은 역시 또래 아이들과 놀아야 재미있게 놀 수 있나 봐.”그는 하혜정의 배를 만지며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이 꼬마는 내년에나 만날 수 있겠지? 이 꼬마가 우빈이만큼 크면 우빈은 아마도 이 꼬마랑 놀아주지도 않겠지?”“우빈이는 우리 아기를 예뻐할 거에요. 큰오빠처럼 잘 대해줄걸요.”“그럼. 얼른 자. 안 자면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라.”하혜정이 말을 이었다.“잘게요. 저는 이미 잠들었어요.”하혜정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전태윤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잠들어 있는데도 말하고 있네.”“잠꼬대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웃으며 하혜정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다시 그녀를 껴안고 꿈나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하룻밤을 푹 잤다.다음 날 아침, 강성 이씨 가문.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이윤미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살금살금 걸어갔다.어젯밤 일은 아주 늦게까지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정군호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이씨 가문의 저택은 조용해 졌다.이윤미는 정군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어젯밤 이은화가 이윤미와 정일범 형제를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위층에서 아버지의 비명이 들렸고 그 뒤로 구급차가 도착하여 구급대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떠났다. 병원에 따라간 사람은 이은화와 그녀의 경호원들뿐이었고 다른 사람은 병원에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정군호가 비명을 지른 이유를 묻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이윤미는 정군호가 살아계신 것만 알면 되었다. 이은화도 네 남매를 생각해서라도 정군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계단 입구로 가기도 전에 다른 방의 문 여는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발소리가 들려 앞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형수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