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학부모들이 자녀들 하교 마중을 나왔다. 그 시간대를 바삐 돌아친 후 하예정은 언니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심효진은 소정남과 함께 데이트해서 저녁에 서점 문을 닫았다.하예정은 과일 두 팩을 사서 언니네로 들고 갔다.두 자매는 예전처럼 사이가 좋았다. 하예정이 전씨 일가 사모님이 됐다고 다른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하예정은 언니네 월셋집 열쇠가 있어 바로 문 열고 들어갔는데 안에 여자아이가, 아니, 정확히 말해서 주우빈인데 우빈이가 글쎄 예쁜 원피스를 입고 방 안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우빈아?”하예정이 안으로 들어오며 조카를 향해 활짝 웃었다.“왜 치마 입었어?”“이모.”아이는 쪼르르 달려와 제 치마를 자랑했다.“이모, 내가 입은 치마 예뻐요?”하예정은 과일 두 팩을 식탁에 올려놓고 조카를 번쩍 들어 올렸다.“예쁘지. 우빈이 치마 입으니까 공주님 같네. 하지만 우빈이는 남자아이라서 치마 입으면 안 돼요.”“나도 알아요. 남자아이는 힘든 일을 해야 해서 치마 입으면 불편해요. 여자아이는 가벼운 일을 해서 치마 입을 수 있어요. 남녀차별이란 뜻이죠.”녀석은 기억력이 좋아서 전태윤이 했던 말을 다 기억하고 있다.이때 하예진이 주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음식을 다 만들어놓고 동생이 와서 밥 먹기만을 기다렸다.“입고 나가진 않을 거래. 그냥 집에서 한번 입어보는 거래. 이 치마가 너무 예쁘다면서.”하예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한사코 입어보겠다고 해서 결국 갈아입혔더니 저렇게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신이 난 거야. 어린 녀석도 예쁜 건 안다니까. 효진이는 왜 같이 안 왔어?”하예정은 조카를 안고 다가오며 언니가 만든 음식을 쭉 훑어보았는데 그녀가 좋아하는 해산물이 있었다.“효진이는 데이트하러 나갔어. 정남 씨랑 한창 열애 중이라 둘이 데이트하러 나가면 태윤 씨도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돌아온다니까.”“제부는 대기업 대표라 안 그래도 일이 많고 시간이 금이야. 너한테 그 많은 시간을 퍼부은 것도 소중히 여겨. 너희 부부만 평생 알콩달
노동명은 1조 원 자산가라 물건 살 때 가장 좋은 거로, 가장 비싼 거로 산다. 가격을 흥정하지 않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하예진은 끝내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다.노동명의 소비 습관이 어떻든 그녀와 상관없으니까, 그녀는 단지 노동명의 세입자일 뿐이다.“이모, 난 언제쯤 여동생 생겨요?”주우빈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하예정은 웃으며 조카에게 음식을 집어줬다.“이모도 몰라. 임신했다 해도 남동생이면 어떡해?”그녀는 전에 전태윤과도 토론한 적이 있다. 전씨 일가는 왜 죄다 아들만 낳는 것인지, 집안 풍수가 딸을 낳기 불리한 풍수인지 심각하게 의논해 보았다.우빈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이모, 난 여동생 원해요. 남동생 싫어요.”“남동생은 왜 싫어?”“남동생이면 나처럼 치마 못 입잖아요.”하예정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하예진이 소식하고 고기도 안 먹자 그녀는 언니에게 잔소리해 댔다.“언니, 매일 꼭두새벽에 나갔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에 오는데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밥은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지. 이젠 다이어트 그만해.”“저녁엔 최대한 고기를 안 먹어. 이따가 나가서 달리기도 해야 해. 폭식하면 몇 바퀴 더 달아야 하거든.”이혼 전과 비기면 하예진은 살이 엄청 많이 빠졌지만 하예정처럼 늘 모델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과 비하면 그녀는 여전히 뚱뚱했다.하예정은 언니의 고집을 못 꺾고 결국 포기했다.“난 이렇게 먹는 데 습관 됐어. 다이어트 영양사가 준 식단대로 밥 먹고 매일 운동량도 충분해. 오랜 시간 견지해서 겨우 지금의 효과를 얻었는데 중도 포기하면 안 되지.”하예진은 동생의 몸매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난 앞으로도 쭉 체중 관리할 거야. 너처럼 표준적인 모델 몸매를 유지할래. 더는 폭식해서 백 킬로 뚱보로 돌아가지 않아.”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어떻게 폭식으로 백 킬로까지 찍었는지 참 한심할 따름이었다.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종일 귀찮게 굴고 부부 사이도 점점 안 좋아져 기분이 상하고 입맛이 없어야 할 텐데 그녀는 여전히
전태윤을 본 우빈이는 신나서 바로 그에게 안기려 했다. 전태윤은 손에 든 물건을 얼른 내려놓고 아이를 안았다.하예정은 허리 숙여 그가 사 온 과일 두 팩과 우유 한 박스를 들어주며 물었다.“왜 왔어요? 약속 있다고 했잖아요? 나도 과일 두 팩 사 왔는데 태윤 씨도 사 왔네요. 심지어 우리 둘 똑같은 과일로 사 온 거 알아요?”전태윤은 우빈이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우리 부부가 마음이 통해서 그런 거지. 바이어가 잠시 일이 생겨 못 오니 오늘 밤 일정도 취소됐어. 그래서 얼른 처형네 댁에 와서 밥 한 끼 얻어먹으려고 했지.”사랑하는 아내가 처형네 집에 있다고 한다.이게 바로 하예정에게 경호원을 붙인 좋은 점이다. 평소 굳이 그녀에게 행적을 묻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자유를 줄 수 있으면서도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을 때면 전화 한 통에 바로 찾을 수 있다.“처형.”전태윤은 하예진에게 인사했다.하예진은 제부가 온 걸 보더니 수저를 내려놓고 얼른 마중 갔다. 동생이 물건을 한가득 들고 들어오자 하예진이 말했다.“두 사람은 앞으로 우리 집 올 때 뭐 자꾸 사 오지 말아요. 내가 다 알아서 사니까. 이따가 갈 때 과일 두 팩 가져가요. 나랑 우빈이는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예정이도 사 올 줄은 몰랐어요.”전태윤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하예진은 속으로 사랑의 힘이 참 대단하다고 한탄했다.제부는 처형인 하예진을 처음 본 순간부터 깍듯이 대하긴 했지만 줄곧 차가운 태도였는데 이젠 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다.사랑으로 못 녹일 건 아무것도 없나 보다.“우리 막 저녁 먹고 있었어요. 손 씻고 와서 함께 먹어요.”하예진은 주방에 들어가 전태윤의 수저도 챙겨 왔고 맛있는 음식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하예정은 말문이 막혔다.전태윤만 오면 자신은 마치 주워온 동생처럼 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자리에 앉은 지 2분도 안 돼 초인종이 또 울렸다.주우빈은 또다시 문 열러 갔다. 이번엔 머리를 써서 작은 걸상을 들고 갔고 어른들은
하예진은 아무 말 없었고 하예정이 입을 열었다.“두 분 우빈이 키워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데려갔다가 아이가 적응 못 하고 울면 어떡해요? 아이 보고 싶으면 매일 낮에 이리로 보러 와요. 함께 놀다 가시면 되잖아요.”주경진이 뻔뻔스럽게 말했다.“예정 씨, 우리가 우빈이 키워본 적 없어서 지금이라도 보상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두 노인네가 집에서 할 일도 없고 마침 예진이를 도와서 우빈이를 돌보면 예진이도 가게 일에 전념할 수 있잖아요.”그는 또 품에 안긴 어린 녀석에게 물었다.“우빈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갈래?”아이가 되물었다.“엄마도 가요?”주경진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엄마는 못 가. 그렇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우빈의 아빠 있어. 우빈아, 우리랑 함께 집에 돌아가자. 그럼 너희 엄마도 이렇게 힘들지 않을 거야.”주우빈은 몸부림치며 바닥에 내려와 식탁 앞으로 달려가더니 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나 밥 먹을래요. 엄마 안 가면 나도 안 가요. 난 엄마 옆에 있을래요!”“...”“다들 식사는 하고 오셨겠죠? 따로 음식 준비 안 할게요. 소파에 앉아서 TV 좀 보세요. 우리 밥 다 먹고 다시 얘기해요.”하예진은 전 시부모님께 각자 온수 한 잔 따른 후 TV도 켜주고 식탁에 돌아가 동생네 부부랑 함께 저녁을 먹었다.주경진이 아첨하듯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린 TV 보고 있을게. 맛있게들 먹어.”노부부는 식탁에 놓인 과일 네 팩을 보더니 하예정 부부가 사 온 걸 바로 알아챘다.김은희는 군침이 돌아 나지막이 말했다.“예정이가 전부터 제 언니한테 먹을 것들을 자주 사주더니 이젠 돈이 생겨서 사 오는 과일도 급이 달라졌네요.”전부 비싼 과일들이었다.주서인이 보면 바로 두세 팩 챙겨서 집으로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전에 하예정이 언니네 집에 과일을 사가면 주서인이 올 때마다 하예진 몰래 과일을 엄청 많이 챙겨갔다.주형인은 그런 누나가 도둑과 다름없다고 했다. 친정에 오면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전부 채가니까.전에는 친누나라
김은희의 말로는 본인들이 고향 집으로 돌아가면 아들은 완전히 서현주에게 통제될 거라고 한다.게다가 두 사람은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다. 서현주는 신혼집 장식을 마친 후에 결혼식을 올려야 면이 선다고 했다.지금 월세방에 지내면서 결혼식을 올리면 친정 식구들이 와도 지낼 곳이 없다.주경진 부부가 우빈이를 돌보면 지루하지도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정을 쌓아갈 수 있다.어쨌거나 우빈이는 주씨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후대이고 서현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하예진은 채식만 먹어 곧장 저녁을 다 먹었다. 그녀는 전 시부모님이 나지막이 얘기 나누는 걸 보더니 가까이 다가가 동생네 부부가 사 온 과일 네 팩을 들어서 주방으로 가져갔다.몇 분 후.그녀는 과일 그릇에 과일 한 종류만 담아서 나왔고 나머지 과일은 씻지도 않았다.하예정과 성소현이 조카 우빈에게 사 온 간식거리도 몇 움큼 집어서 과일 그릇에 담고는 두 분 앞에 놓인 탁자에 내려놓았다.“예진아, 가게 장사 잘되지?”김은희는 스스럼없이 과일을 먹으며 하예진에게 물었다.“그럭저럭요.”“너도 평소에 바쁘면 우빈이 돌볼 시간 없잖아. 그냥 아이는 우리가 데려갈게. 우리가 그래도 우빈의 친할아버지, 할머니잖니. 설마 우빈이 해치기라도 하겠어? 우리도 꼭 우빈이 잘 보살필 테니까 걱정들 말아.”하예진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형인 씨한테도 이미 말했어요. 우빈이만 원한다면 데려가서 며칠 지낼 수 있지만 아이가 원치 않으면 더 강요하지 말라고요. 나랑 애 아빠가 이혼한 후 다들 우빈이 보러 왔을 때 나 단 한 번도 가로막은 적 없어요. 지금처럼 지내는 게 안 좋나요?”금방 이혼했을 때 하예진은 전 시댁과 아예 연락을 끊고 싶었지만 김은희가 수소문하고 뒤를 밟아서 그녀의 현재 거처를 알아냈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 건 전 시댁 식구들이 후회된다며 하루가 멀다 하게 그녀를 찾아왔다.“방금 우빈이도 말했듯이 안 가겠다잖아요.”하예진은 아들이 주씨네 집안에 들어가 지내는 걸
하예정 부부도 식사를 마치고 전태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예정아, 우빈이 데리고 나가서 앉아있어. 내가 설거지할게.”집에서도 그가 설거지해서 하예정은 이미 습관 됐다. 전태윤은 그녀와 우빈이를 소파에 앉아있으라고 했고 하예정도 고분고분하게 우빈이를 안고 언니 곁으로 다가갔다.자리에 앉자마자 세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언니랑 언니네 전 시부모가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언니, 다들 왜 이렇게 날 봐요? 내 얼굴에 밥풀이라도 묻었어요?”그녀는 손을 들어 얼굴을 어루만졌지만 밥풀은 없었다.“예정 씨, 지금 설마 전태윤 씨한테 설거지를 맡긴 거예요?”김은희가 물었다.“남자가 밖에서 종일 일하느라 힘들 텐데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돼서 제 남편을 잘 보살펴줘야 가족이 화목하고 집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생기죠.”하예정은 그제야 세 사람이 왜 자신을 그렇게 쳐다본 건지 알아챘다.“우리 언니도 전에 당신들 아들을 정성껏 돌봐줬는데 가족의 화목함이라곤 못 느꼈나 봐요?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것도 싫어했잖아요.”김은희는 목이 멨다.하예정은 우빈이를 옆에 앉히고는 아이를 교육하기 시작했다.“우빈아, 넌 앞으로 꼭 이모부 따라 배워야 해. 그래야만 훌륭한 남자가 될 수 있어.”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우리 남편 할머니는 남편한테 집안일을 시켜야 한댔어요. 집은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곳인데 왜 아내가 모든 집안일을 책임져야 하죠? 아내는 공짜 가정부가 되어서 온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라도 있어요? 우리 부부는 함께 집안일해요. 어느 한 명 양반으로 지내는 게 아니라.”“...”주형인의 부모는 말문이 막혔다.명색이 전씨 그룹 대표인 전태윤이 설거지를 하고 집안일을 하다니.여자의 입장에서 하예정은 정말 행복하기 그지없고 질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한참 후 김은희가 주우빈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우빈아, 할머니 안아줄까?”“싫어요.”주우빈은 머리를 홱 돌리며 거부하더니 이모의 다리에 기어 올라가
우빈이야말로 그들의 친손자이다.셋방으로 돌아온 그 둘은 아들과 며느리가 한참 TV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아빠, 엄마, 우빈이는요?”일어나 부모님을 맞이하던 주형인은 아들이 보이지 않자 물었다.그러자 서현주도 같이 다가와 물었다.“작은 방 다 치우고, 어린이 방으로 꾸며놨어요. 그리고 우빈에게 줄 새 장난감도 많이 사놨는데, 우빈이는요? ”그녀는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로부터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투명 백과 쪽지 한 장을 받았다. 그 여자는 투명 백에 들어있는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머니의 것이라며, 빨리 계획대로 우빈을 동물원이나 어린이 공원 같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데려갈 것을 요구했다.만약 그 여자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그녀 어머니의 손가락 두 개를 잘라서 보내겠다고 한다.쪽지 내용을 보고 매우 놀란 서현주는 시부모님이 우빈을 데려오기를 고이 바랐지만,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이제 계획은 어떡하지?’주경진과 김은희는 소파에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예진이가 따로 막지는 않았지만, 우빈에게 물어보고 우리와 함께 가려거든 그때 데려가라고 하더라. 우빈이가 우릴 따라올 리 있나.”뒤따라 소파에 앉은 주형인은 엄마의 말을 듣고 말했다.“그러게 예전에 왜 외손자만 이뻐한 거야? 친손자도 좀 봐주고 할 거지. 우빈이 지금 우리랑 서먹서먹하잖아.”“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넌 아빠의 책임을 다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 우빈이는 아빠인 너와도 친하지 않은데... ”속으로 화를 억누르며 입을 다물고 있던 주경진은 아들이 원망하자 결국 터져버렸다. 아빠가 화를 내자 주형인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그럼 이제 어떡하죠?”서현주가 묻자 김은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앞으로 자주 가 봐야지 어쩌겠어. 우빈인 아직 어려서 천천히 정 쌓으면 돼. 그리고 너도, 앞으로 형인이가 우빈이 보러 가면 헛된 생각을 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 형인인 아들을 보러 간 것이지, 예진이를 보러 간 게 아니니까. 항상 질투하지 말고
서현주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소리 내어 닫았다.“자기야! 자기야!”주형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렀다.“됐어, 신경 쓰지 마. 현주는 네가 예진이랑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 너랑 예진이 단둘이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 함께 가겠다는데 질투는 무슨. 자기도 예진에게서 널 빼앗은 거면서.”김은희는 새 며느리가 아주 눈에 거슬렸다. 전에는 자기 아들이 인기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서현주가 내연녀라는 생각에 꼴 보기 싫었다.주씨네 가족은 내일 점심에 하예진 모자와 함께 동물원에 놀러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봄나들이에 아주 적합한 날씨이니.한편, 하예정 부부도 언니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가는 길에 하예정은 남편에게 말했다.“예전에도 주씨네는 입으로만 우빈이를 귀여워했지 돌봐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빈인 언니 혼자서 피땀 흘려가며 키워온 거예요. 그래가지고 지금 와서 우빈이가 자길 따라갔으면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언니가 산후조리 할 때도 옆엔 나밖에 없었거든요, 그때 난 너무 피곤해서 한 달에 살이 3킬로나 빠진 거 있죠.”언니가 산후조리 할 때 하예정은 언니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잘 누워 쉬라고 했다. 그녀는 음식도 언니 앞에까지 가져다줬고,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도맡아 했었다.그 보름 동안, 아직 갓난아이였던 우빈은 때로는 밤새도록 울기도 했다.주형인은 출근하여야 한다면서 아예 객실에 가서 잤고, 우빈이 때문에 언니가 잘 쉬지 못할까 봐 걱정된 그녀는 혼자 아이를 안고 달래다 아이가 잠들어서야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그때 언니는 주형인더러 시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우빈을 좀 돌봐줄 수 없냐고 물었는데, 그는 자기 엄마는 임정한을 돌봐야 하기에 우빈이까지 돌볼 수는 없다고, 하예정이 언니와 조카를 돌보면 될 거라고 했다.“주씨네는 지금 우빈이가 자기 집 식구들보다 나와 더 친하다고 질투하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