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구는 하예정에게 다가가 십여 가닥의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비닐백을 건네주며 말했다.“사모님, 이것은 도련님께서 아침에 외출하실 때 분부하신 것입니다.”“이게... 우리 할아버지 머리카락인가요?”하예정은 비닐백을 받으며 물었다.어젯밤 그녀와 전태윤이 토론한 결과 하지철을 시켜 하씨 영감의 머리카락을 뽑아 혈연 확인 검사를 하기로 했다.“네, 그렇습니다.”하예정은 강일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이거, 하지철이 도와 한 건가요?”“넵, 사모님이 두려웠던지, 제가 사모님께서 시키신 거라 했더니 바로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십여 가닥 뽑아서 저한테 줬습니다.”하지철이 무슨 방법으로 하씨 영감을 달래서 머리카락을 뽑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결과만 얻으면 되니까.“그 녀석은 아직 젊었을 뿐, 뼛속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하지철은 아직 만 18세가 되기까지 두석 달이 남았다. 한창 젊고 에너지 넘칠 때다.하씨 영감의 머리카락을 얻은 하예정은 강일구에게 자신을 유전자 검사 센터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하예정은 지난번에 이모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한 경험이 있기에 그 센터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강일구는 먼저 큰 도련님과 연락한 후 사모님을 센터까지 모셔다드렸다.검사를 마친 하예정이 센터에서 나오니 전태윤의 전용차들이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차에서 내리고 있는 남편에게로 다가가면서 말했다.“오후에 한가하신가 봐요? 여기까지 다 오시고. 강일구 씨가 데려다줘도 되는데...”전태윤은 두 걸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차에 올라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만 있으면 내 아내는 내가 직접 데려다줬으면 좋겠어.”그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하예정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다행히 지금의 그는 그녀에게 충분한 자유와 존중을 주었고, 예전처럼 그녀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았다.“나 아침에 처형한테 가서 우빈이를 회사로 데려갔어.”“당신 일도 바쁜데 우빈이를 데려가서 어떻게 돌봐요?”“사무실에서 놀게 했는데 말 잘
“난 예정 씨가 할머니의 천억 원 상금을 받았으면 좋겠어.”전태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던 하예정이 말을 꺼냈다.“여러 대에 걸쳐 딸이 없는 것은 풍수 구도의 문제일 거예요. 아마도 당신 집은 아들이 흥성한 풍수 같아요.”“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예전에 우리 가문에도 여자애가 태어났었는데 그만 요절하고 말았대. 그 여자애가 요절한 뒤부터 우리 가문에서는 더는 딸이 태어나지 않았어. 작은어머니께서 아홉째를 임신하시기 전에 산성 체질이면 딸을 낳는다고 온갖 산성 음식을 찾아 드시던 기억이 나. 아홉째를 임신한 뒤 첫 두 애와 임신반응이 달라서 틀림없이 딸을 낳을 줄 알았대. 태아의 모습이 형성된 후 사람을 찾아 알아보았는데 딸이라니 모두 엄청나게 기뻐했어.”전태윤은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그때 난 10대여서 작은어머니께서 아홉째를 임신하셨을 때가 기억에 생생해. 난 작은 어머니께서 여동생을 낳아주실 것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거든. 남몰래 여동생한테 줄 장난감도 많이 준비해 두었었어. 집에 어른들이 핑크색 옷과 신을 많이 사 오시는 걸 보고 나와 둘째, 셋째 동생도 몰래 핑크색 치마를 사두었지.”“태윤 씨도 여동생을 몹시 기대하셨군요.”“작은어머니께서 아홉째를 낳는 날은 마침 토요일이어서 우리 가족 남녀노소, 그리고 우리 전씨 가문의 친척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병원 복도를 가득 메울 정도여서 명절 때보다 더 흥성흥성했어. 손녀를 안을 생각에 입이 귀에 걸려서 기뻐하시던 할머니께서는 간호사가 포동포동한 남자애를 안고 나오자 분명히 여자애를 임신하였는데 어떻게 남자애를 낳을 수 있냐며 간호사가 잘못 안아온 것이 틀림없다고 멱살을 잡고 따지셨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상황에 간호사는 산실에는 우리 작은어머니 혼자만 있고, 틀림없이 아들을 낳았다고 거듭 설명했어. 간호사는 다른 집은 남자애를 낳으면 기뻐하는데 우리 집은 마치 병원에서 여자애를 숨긴 것처럼 여자애를 내놓으라고 성화이니, 참 이상한 집이라며 도리머리를 저었고.”그 장면을 상상해 본 하예정의 입가
할머니의 부탁으로 전태윤과 하예정의 궁합을 봐주던 점쟁이는 풍수를 볼 줄도 알겠지? 하지만 깊은 연구가 없다면 아마 전씨 가문의 난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전태윤 부부는 딸 낳는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사이 어느새 관성중학교 앞에 도착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을 책 가게로 데려다주고는 곧장 회사로 돌아갔다.오는 길에 줄곧 딸 얘기만 나누었다는 생각에 하예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데, 혼자서 웃고 있는 거야? 말해봐, 나도 좀 웃게.”심효진이 하예정 앞에 과자 한 접시를 놓았다.“정남 씨가 후식으로 먹으라고 사람을 시켜서 보내왔어.”“소 이사님은 정말 너한테 잘해주는구나. 친절하고, 자상하고. 너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하예정이 간식을 하나 집어 들었다.“정남 씨도 너의 집 전 대표님을 따라 배운 거야, 만약 전 대표님이 본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그가 부유한 N 세인지 몰랐을 거야.”하예정이 웃었다.“태윤 씨가 나를 속인 일은 모두에게 예를 보여줬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어.”하예정의 기분이 들떠있는 것을 본 심효진이 떠보듯 물었다“오전에 무슨 일 있었어? 아까 전 대표님이 네가 오전에 가게로 돌아갈 수 없으니, 나더러 가게 일을 맡아달라고 전화 왔었어. 어찌나 말투가 사근사근하던지. 너의 집 전 대표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오늘 오전처럼 부드럽게 말을 한 적이 없었어.”하예정을 짝사랑하는 사촌 동생 김우진을 도와주지 않는 심효진을 보고 전태윤은 심효진이 하예정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알았지만, 동시에 하예정과 사이가 각별한 심효진을 경계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별일 아니야, 어젯밤에 태윤 씨한테서 감동하여서 늦게 잔 것뿐이야. 태윤 씨가 만들어 준 낭만적인 순간을 다 찍어놓았어, 나중에 늙으면 다시 꺼내보려고.”하예정이 말하면서 자신이 찍은 영상을 심효진에게 보여주자, 심효진이 놀리는 듯한 눈길로 하예정을 바라보며 웃었다.“이러느라고 늦게 잔 거구나, 하하!”심효진의
EQ와 IQ가 모두 뛰어난 소정남은 평소에도 자주 심효진한테 서프라이즈를 주곤 한다.하지만 IQ는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EQ가 낮은 전태윤은 ‘사랑 상담사’소정남한테서 꽉 막혔다고 늘 놀림을 받는다.전태윤이 하예정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하예정이 이토록 감동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하예정이 달콤한 어조로 말했다.“태윤 씨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바꾸었으니, 나도 태윤 씨를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어.”부부는 서로 베풀고, 진심으로 대해야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네가 부러워, 살짝 질투도 나고.”“너야말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질투의 대상이지.”심효진이 히죽히죽 웃었다.“그래, 난 남들의 선망 대상으로 사는 것이 좋아. 정남 씨와 사귀면서부터 난 너무 행복해. 그리고 맞선을 보라는 부모님 잔소리를 안 들어서 너무 좋아. 고모도 이젠 잠잠해졌어.”“너 고모님께선 지금 엄청나게 기뻐하고 계실 거야. 너를 부잣집에 시집보내 호강시키려고 얼마나 애쓰셨는데.”“난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이 없었어. 하지만 정남 씨 집안과 같은 부잣집에는 시집가고 싶어, 평생 심심하지 않을 거야. 난 지금 소씨 도련님이 너무 궁금해, 얼마나 대단한 여자라야 그렇게 대단한 남자한테 어울릴 수 있을까?”“때로는 딱 어울릴 것 같은 대단한 가문끼리 맺어지는 것도 아니더라. 주로는 소씨 도련님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가에 달렸지.”“내 생각에 소씨 도련님은 눈이 꼭대기에 붙은 것 같아, 아니면 정남 씨보다 나이도 몇 살 위이고, 또 싱글인데 왜 여태껏 혼자였겠니, 그렇게 훌륭한 남자가 연애도 결혼도 안 하고?”“사업에 너무 신경 쓰느라 연애결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나 보지.”심효진은 발밑에 바람이 일 지경으로 바삐 돌아치는 소정남을 생각하며 웃었다.“아마 우리 같은 여자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하예정도 그 말에 수긍하며 떠라 웃었다.공예품을 짜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맡긴 터라 이젠 서두를
소정남이 보낸 과자를 먹고 난 심효진이 소정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정남 씨가 보낸 과자 너무 맛있어요. 사랑해요!”소정남에게서 바로 회답이 왔다.「효진 씨가 좋아한다니, 내일 두 박스 더 갖다 줄게요.」먹방을 만족시키는 것은 소정남에게 가장 쉬운 일이다.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되니까.“소현 언니가 오늘 안 보이네.”심효진이 물었다.“언니는 친한 친구가 실연당해서 위로하러 갔어.”하지만 사실 성소현은 실연당한 절친을 위로하러 간 게 아니라 새 이웃을 만나러 간 거였다.오후에 외출하려고 차를 몰고 이웃의 큰 별장 앞을 지나던 성소현은 별장 문이 열려 있고 예준하가 늘 타고 다니던 차가 별장에 주차된 것을 보았다. 마침 마당에 서 있던 예준하를 보고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예준하가 별장으로 초대하는 바람에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예준하를 따라서 별장으로 들어갔다.이 큰 별장은 성씨 저택과 가까워서, 예전에 부모님을 따라서 놀러 간 적이 있는 성소현은 별장의 정원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준하를 따라 발 가는 대로 걷던 성소현이 말을 꺼냈다.“이 정원은 크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화초와 나무 모두 잘 자랐어. 다시 심더라도 이렇게 자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싹 다 바꾸려고 했는데, 소현 씨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내가 싫어하는 식물들을 옮겨버리고 좋아하는 것으로 바꿔 심으면 되겠네.”방의 구조는 변경해야 한다. 그리고 별장의 대문 방향도 바꿔야 한다.예준하가 청한 풍수 선생은 이 집의 풍수 구조는 이미 운이 끝났다고 하였다. 원래의 집주인이 제때 용한 사람을 불러서 다시 운이 돌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계속 원래의 운이 끝난 풍수 구조를 사용하면, 자연히 점점 쇠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풍수 구조는 기한이 있는데, 기한이 다 차면 그 구조를 다시 쓸 수 없다.“내 안목이 별로여서, 소현 씨가 잘 봐줘. 이 별장을 리모델링하는데 어떤 스타일이 더 좋은지? 난 이 별장을 관성에 있는 내 집으로 생각
성소현이 흔쾌히 대답했다.“여기 오면 전화 줘, 내가 준하 씨 미래의 와이프가 매우 만족하게끔 힘이 닿는 대로 도울게. 그땐 나한테 보너스를 두둑이 챙겨줘야 해.”예준하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큰 보상이 있을 거야.”성소현은 예준하가 말할 때면 언제나 말보다 웃음을 먼저 짓는 것을 발견했다. 그 웃음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포근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좋아, 내가 인테리어 컨설턴트 해 줄게.”예준하가 빙그레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내가 커피 살 테니 함께 가.”“난 오후에는 보통 커피나 차를 마시지 않아.”“...”어찌할 바를 모르는 예준하를 보고 성소현이 깔깔 웃어댔다.“내가 오후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커피숍에 갈 수 없는 것은 아니잖아? 나를 어느 커피숍에 초대하려고?”“난 한가할 때면 관성 호텔 1층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긴장을 풀곤 해. 우리 A 씨에 가면, 난 형수님과 형수님 친구가 꾸린 소원 카페에 자주 가. 소원 카페는 장사가 아주 잘 돼서 지금 분점 두세 군데를 열었어. 제일 핫한 곳은 본점인데, 많은 사람이 우리 형수와 선우씨 가문 막내 사모님인 양 아가씨의 신분을 보고 찾아가.”성소현는 예준하의 큰형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나중에 시간이 되면 A 씨에 가서 소원 카페 커피를 맛보게 해줘. 우리 관성의 소희 카페에 비하면 어때?”예준하도 소희 카페에 간 적이 있다.“우리 형수님 소원 카페는 인플루언서 카페에 더 가까워.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리 형수님의 신분을 보고 가기 때문이야. 반면에 소희 카페는 조용하고 안전하고. 서로 각자의 장점이 있어.”소희 카페가 전 씨 할머니의 산업이라는 걸 예준하도 전씨 그룹과 협력한 후에 알게 되었다.웃으며 밖으로 나가던 성소현은 몇 걸음 걷다가 예준하가 우두커니 선 채로 따라오지 않자,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사준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안 가려고?”“그럴 리가.”예준하는
성소현은 어이가 없었다.“...나를 부적으로 생각하는 거야?”예준하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대답했다.“내가 부적을 살 돈을 줄게.”성소현이 웃으며 놀림조로 말했다.“예전에는 예씨 가문에 대해 잘 몰랐는데, 준하 씨를 알게 된 후 오빠한테 물어보니, 준하 씨가 형제 중 가장 약해서 항상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던데?”“맞아, 난 어렸을 때 뚱뚱했어. 너무 뚱뚱한 사람은 운동을 싫어하잖아? 난 무공을 배울 때 항상 게으름을 피웠는데, 결국 형제 중 내가 제일 무공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경호원을 청했어.”그들 형제는 10명인데, 다닐 때 항상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확실히 다섯째 예준하뿐이고, 다른 형제들은 가끔 경호원 몇 명을 데리고 다니는 시늉만 하고 있다.예준하는 경호원이 곁에 없으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성소현이 차를 운전하면서 말했다.“나처럼 약한 여자도 경호원 없이 외출하는데. 쇼핑하러 갈 때만 물건을 들어달라고 경호원을 데리고 가.”“소현 씨는, 무공을 할 줄 알아?”“우리 같은 가정 출신은 자기관리를 위해 다소 훈련을 해왔지만, 실전 경험은 없어.” 관성에서 성격이 까칠하고 드센 성소현에 대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다. 게다가 성씨 가문은 관성에서 매우 지위가 높아서 누구도 감히 성소현의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설사 성소현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웬만한 건달들은 성씨 아가씨의 차만 보면 모두 멀찍이 피하고 있다.관성의 상류층 사람 중 가장 요란하게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건 전태윤이었다. 하지만 전태윤은 주로 경호원을 자기를 따라다니는 여자들을 막는 데 이용한다. “여 협객님, 앞으로 저를 보호해 주세요.”성소현이 피식 웃었다.“실전 경험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지켜줄 수 있겠어? 게다가 배운 건 거의 다 잊어버렸어, 지금은 동작도 기억이 안 나. 준하 씨는 앞으로 주먹이 센 와이프를 찾으면 되겠어. 특수경찰이 제일 좋겠네. 데이트할 때 위험에 처하면 준하 씨를 보호해 줄 수 있으니.”
“소현 씨, 우린 이제 친구 맞지?”예준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성소현한테 물었다.성소현도 예준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웃었다.“우리는 친구지, 이웃이기도 하고.”예준하는 조용히 성소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밝고 화려한 이미지의 여자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숨김이 없고 꾸밈이 없는 아름다움이다.“그럼, 프라이버시에 관해 물어봐도 돼?”“물어봐, 준하 씨한테 말할 수 있는 거면 대답할게. 하지만 대답 안 해도 준하 씨가 이해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권리가 있으니까.”“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전 대표 같은 유형은 빼고.”성소현이 전태윤을 쫓아다닌 일은 전씨 그룹과 친분이 있고 깊은 협력관계도 있는 예준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게다가 성소현이 처음에 전태윤을 대놓고 쫓아다녀서 예준하가 모를 리 없었다.성소현이 침묵했다.“소현 씨, 미안해, 그냥 궁금해서 물었어, 난 소현 씨가 아주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 전 대표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소현 씨 문제가 아니라, 전 대표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야.”자신이 성소현의 상처를 들춰냈다고 생각한 예준하가 얼른 사과했다. “괜찮아. 전 대표한테는 이미 오래전에 단념했어. 예나 지금이나 태연하게 대할 수 있어. 전 대표도 나에게 미안해할 것 없어. 왜냐하면 나를 좋아한 적도 없고, 내 감정을 받아준 적도 없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와 전 대표 사이는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추구했던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훌륭한 남자는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기 마련이야. 그것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지. 좋은 여자도 마찬가지로 많은 추구자가 있는 것처럼. 나는 단지 그 베일을 벗겼을 뿐이고, 다른 여자들이 하고 싶지만,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많이 했을 뿐이지. 비록 결과는 없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성소현이 말하면서 웃었다.“난 많은 사람이 전 대표가 내 사촌 동생을 좋아하고 있는데 성격이 좋지 않은 내가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