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나이는 치마를 못 입나요?”노동명이 대답했다.“그거야 남자와 여자가 다르니까.”우빈은 알듯 모르듯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빛으로 노동명을 쳐다봤다.전태윤은 바지 한 벌을 골라 우빈을 안고 입혀주며 말했다.“남자는 힘든 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치마를 입으면 불편해.”“왜 남자는 힘든 일을 해야 하죠?”“우빈이 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한다는 말 들은 적 있어? 그래서 우린 남자에게 중한 일을 시키고, 엄마와 이모와 같은 여자들에겐 경한 일을 시키는 거야.”우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우빈이도 크면 중한 일을 하고, 경한 일은 엄마와 이모한테 시킬래요.”전태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우빈이 잘한다.”“...”띠리링!내선전화가 울렸다.전태윤은 우빈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다.그는 곧 전화를 내려놓고 우빈이에게 말했다.“우빈아, 엄마가 데리러 왔어.”“엄마!”꼬마 녀석은 엄마가 왔다는 말을 듣고 즉시 치마를 쇼핑백에 쑤셔 넣고 자신의 오줌에 젖은 바지도 찾았다.“이모부, 우빈이가 입고 온 바지는요?”“그 바지는 오줌에 젖어서 세탁기에 넣어 빨았어.”노동명이 재빨리 대답했다.우빈은 더는 말하지 않고, 힘겹게 커다란 쇼핑백을 끌고 혼자 나가려고 했다.“이모부, 바지가 깨끗하게 세탁되면 잊지 말고 돌려줘요.”“알았어, 이모부가 우빈이 바지를 깨끗이 세탁해서 가져다줄게. 우빈이 바지는 너무 작아서 이모부가 남겨도 소용없어.”꼬마 녀석은 뜻밖에도 오줌에 젖은 바지마저도 집에 가져갈 생각을 했고있었다.“우빈아, 그 치마는 가져갈 필요 없어. 동명 아저씨한테 가져가서 환불해 달라고 하자. 우빈인 치마를 입을 수 없잖아.”우빈은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이모부, 이 치마 잘 뒀다가 이제 이모가 여동생을 낳으면 입힐 거예요.”전태윤은 꼬마 녀석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꼭 껴안았다. “우빈인 이모가 여동생을 낳을 것 같아?”“네. 엄마 말로는 이모가 나중에 예쁜 여동생을
하예진은 쭈그리고 앉아 아들에게 물었다.“우리 우빈이 말 잘 들었어? 이모부 일하는데 방해하지 않았지?”“우빈이 말 잘 들었어요. 근데 엄마... 우빈이 오줌 쌌어요.”우빈은 말하면서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어디에 오줌을 쌌어?”“이모부 침대 위에요.”“...”“그리고 동명 아저씨가 새 옷을 많이 사주셨어요. 그리고 새 치마도 사주셨는데, 그 치마는 나중에 이모가 여동생을 낳으면 입힐 거예요.”“아... 그랬어?”‘우빈이에게 치마까지 사주다니... 이런 세심하지 못한 면도 있었네.’노동명은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새 옷이 들어있는 커다란 쇼핑백을 하예진에게 건넨 다음 우빈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가자, 아저씨가 데려다줄게.”“고마워요, 하지만 저 스쿠터를 타고 왔어요. 그리고 이 옷 사는 데 얼마나 드셨나요? 제가 돌려드릴게요.”“그럴 필요 없어.”“이건 돌려 드려야죠.”하예진은 돈을 돌려주겠다고 고집하자 노동명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40만 원 안 되게게 썼으니 30만 원만 주면 돼.”하예진은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놓으며 그가 옷을 살 때 아마도 흥정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가게 사람들이 가격을 부르는 대로 내버려두면, 이만큼 사는데 거의 40 만이 들 것이다.하예진은 지갑에서 30만 원을 세어 노동명에게 건네주었다.“대표님, 여기 옷 사신 돈이에요.”노동명은 우빈을 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그 돈을 건네받고는 세지도 않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사무실 건물을 나온 후, 노동명이 다시 한번 물었다.“정말 데려다주지 않아도 괜찮아?”“네, 고마워요, 대표님.”노동명은 아쉬운 듯 우빈을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그럼 천천히 타고 가. 그리고 우빈이에게 모자를 씌워줘, 오늘은 바람이 좀 센 것 같아.”“알겠어요, 스쿠터에 우빈이 모자가 하나 있어요.”한 손으론 우빈을, 다른 한 손으론 쇼핑백을 든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했다.“우빈아, 아저씨한테 작별 인사해야지.”우빈은 노동명에게 손을
하예정은 배가 꼬르륵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그녀는 잠에서 깨자마자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만졌는데 아무도 없었다.이불 밑이 차가운 걸 보니 전태윤이 일어난 지 한참 된 것 같았다.막 날이 밝았을 거로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2시가 다 되었다.하예정은 멍하니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어쩐지 배가 고프다고 했는데 이 시간까지 자고 일어났으니 배가 고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태윤 씨 나 좀 깨울꺼지...’하예정은 서둘러 옷 한 벌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가 갈아입고는 세수를 한 후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태윤이었다.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서 전화를 받으며 낮은 목소리로 불평했다.“태윤 씨 일어난 후 나도 좀 깨울 거지, 여태 자다가 방금 일어났단 말이에요.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되었지 뭐예요.”전태윤은 전화기 너머에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너무 달콤하게 자길래 일부러 깨우지 않았어. 그리고 효진 씨에게도 당신이 오늘 좀 피곤하여 오후쯤에 가게로 돌아갈 거라고 전화했어.”‘당신이 이렇게 말하면 효진이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하지만 어젯밤에 절제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 앞으론 조심해야겠다.’“당신 퇴근하셨죠?”“방금 회의 끝나고 밥 먹으러 가는 길이야. 당신도 잊지 말고 밥 챙겨 먹어.”전태윤은 그녀가 밥도 안 먹고 부랴부랴 외출할까 봐 걱정됐다.“당연하죠, 걱정하지 말아요.. 그럼 당신도 밥 먹으러 가요.”“그래, 자기야 사랑해.”“당신이 갑자기 이렇게 달콤한 말을 하니 조금 낯서네요. 나도 사랑해요.”그녀는 지난번에 심효진이 소정남과 통화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휴대폰에 대고 쪽! 하고 뽀뽀하는 소리를 냈다.“어때요? 내 뽀뽀 느껴져요?”전태윤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응, 느껴져.”어제 로맨틱한 밤을 보낸 후로부터, 하예정은 남편에게 아주 친절해졌다.전태윤은 앞으로도 로맨스를 더 많이 준비해 아내가 항상 자기에게 열정을 가질
강일구는 하예정에게 다가가 십여 가닥의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비닐백을 건네주며 말했다.“사모님, 이것은 도련님께서 아침에 외출하실 때 분부하신 것입니다.”“이게... 우리 할아버지 머리카락인가요?”하예정은 비닐백을 받으며 물었다.어젯밤 그녀와 전태윤이 토론한 결과 하지철을 시켜 하씨 영감의 머리카락을 뽑아 혈연 확인 검사를 하기로 했다.“네, 그렇습니다.”하예정은 강일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이거, 하지철이 도와 한 건가요?”“넵, 사모님이 두려웠던지, 제가 사모님께서 시키신 거라 했더니 바로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십여 가닥 뽑아서 저한테 줬습니다.”하지철이 무슨 방법으로 하씨 영감을 달래서 머리카락을 뽑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결과만 얻으면 되니까.“그 녀석은 아직 젊었을 뿐, 뼛속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하지철은 아직 만 18세가 되기까지 두석 달이 남았다. 한창 젊고 에너지 넘칠 때다.하씨 영감의 머리카락을 얻은 하예정은 강일구에게 자신을 유전자 검사 센터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하예정은 지난번에 이모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한 경험이 있기에 그 센터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강일구는 먼저 큰 도련님과 연락한 후 사모님을 센터까지 모셔다드렸다.검사를 마친 하예정이 센터에서 나오니 전태윤의 전용차들이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차에서 내리고 있는 남편에게로 다가가면서 말했다.“오후에 한가하신가 봐요? 여기까지 다 오시고. 강일구 씨가 데려다줘도 되는데...”전태윤은 두 걸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차에 올라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만 있으면 내 아내는 내가 직접 데려다줬으면 좋겠어.”그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하예정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다행히 지금의 그는 그녀에게 충분한 자유와 존중을 주었고, 예전처럼 그녀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았다.“나 아침에 처형한테 가서 우빈이를 회사로 데려갔어.”“당신 일도 바쁜데 우빈이를 데려가서 어떻게 돌봐요?”“사무실에서 놀게 했는데 말 잘
“난 예정 씨가 할머니의 천억 원 상금을 받았으면 좋겠어.”전태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던 하예정이 말을 꺼냈다.“여러 대에 걸쳐 딸이 없는 것은 풍수 구도의 문제일 거예요. 아마도 당신 집은 아들이 흥성한 풍수 같아요.”“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예전에 우리 가문에도 여자애가 태어났었는데 그만 요절하고 말았대. 그 여자애가 요절한 뒤부터 우리 가문에서는 더는 딸이 태어나지 않았어. 작은어머니께서 아홉째를 임신하시기 전에 산성 체질이면 딸을 낳는다고 온갖 산성 음식을 찾아 드시던 기억이 나. 아홉째를 임신한 뒤 첫 두 애와 임신반응이 달라서 틀림없이 딸을 낳을 줄 알았대. 태아의 모습이 형성된 후 사람을 찾아 알아보았는데 딸이라니 모두 엄청나게 기뻐했어.”전태윤은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그때 난 10대여서 작은어머니께서 아홉째를 임신하셨을 때가 기억에 생생해. 난 작은 어머니께서 여동생을 낳아주실 것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거든. 남몰래 여동생한테 줄 장난감도 많이 준비해 두었었어. 집에 어른들이 핑크색 옷과 신을 많이 사 오시는 걸 보고 나와 둘째, 셋째 동생도 몰래 핑크색 치마를 사두었지.”“태윤 씨도 여동생을 몹시 기대하셨군요.”“작은어머니께서 아홉째를 낳는 날은 마침 토요일이어서 우리 가족 남녀노소, 그리고 우리 전씨 가문의 친척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병원 복도를 가득 메울 정도여서 명절 때보다 더 흥성흥성했어. 손녀를 안을 생각에 입이 귀에 걸려서 기뻐하시던 할머니께서는 간호사가 포동포동한 남자애를 안고 나오자 분명히 여자애를 임신하였는데 어떻게 남자애를 낳을 수 있냐며 간호사가 잘못 안아온 것이 틀림없다고 멱살을 잡고 따지셨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상황에 간호사는 산실에는 우리 작은어머니 혼자만 있고, 틀림없이 아들을 낳았다고 거듭 설명했어. 간호사는 다른 집은 남자애를 낳으면 기뻐하는데 우리 집은 마치 병원에서 여자애를 숨긴 것처럼 여자애를 내놓으라고 성화이니, 참 이상한 집이라며 도리머리를 저었고.”그 장면을 상상해 본 하예정의 입가
할머니의 부탁으로 전태윤과 하예정의 궁합을 봐주던 점쟁이는 풍수를 볼 줄도 알겠지? 하지만 깊은 연구가 없다면 아마 전씨 가문의 난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전태윤 부부는 딸 낳는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사이 어느새 관성중학교 앞에 도착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을 책 가게로 데려다주고는 곧장 회사로 돌아갔다.오는 길에 줄곧 딸 얘기만 나누었다는 생각에 하예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데, 혼자서 웃고 있는 거야? 말해봐, 나도 좀 웃게.”심효진이 하예정 앞에 과자 한 접시를 놓았다.“정남 씨가 후식으로 먹으라고 사람을 시켜서 보내왔어.”“소 이사님은 정말 너한테 잘해주는구나. 친절하고, 자상하고. 너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하예정이 간식을 하나 집어 들었다.“정남 씨도 너의 집 전 대표님을 따라 배운 거야, 만약 전 대표님이 본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그가 부유한 N 세인지 몰랐을 거야.”하예정이 웃었다.“태윤 씨가 나를 속인 일은 모두에게 예를 보여줬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어.”하예정의 기분이 들떠있는 것을 본 심효진이 떠보듯 물었다“오전에 무슨 일 있었어? 아까 전 대표님이 네가 오전에 가게로 돌아갈 수 없으니, 나더러 가게 일을 맡아달라고 전화 왔었어. 어찌나 말투가 사근사근하던지. 너의 집 전 대표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오늘 오전처럼 부드럽게 말을 한 적이 없었어.”하예정을 짝사랑하는 사촌 동생 김우진을 도와주지 않는 심효진을 보고 전태윤은 심효진이 하예정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알았지만, 동시에 하예정과 사이가 각별한 심효진을 경계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별일 아니야, 어젯밤에 태윤 씨한테서 감동하여서 늦게 잔 것뿐이야. 태윤 씨가 만들어 준 낭만적인 순간을 다 찍어놓았어, 나중에 늙으면 다시 꺼내보려고.”하예정이 말하면서 자신이 찍은 영상을 심효진에게 보여주자, 심효진이 놀리는 듯한 눈길로 하예정을 바라보며 웃었다.“이러느라고 늦게 잔 거구나, 하하!”심효진의
EQ와 IQ가 모두 뛰어난 소정남은 평소에도 자주 심효진한테 서프라이즈를 주곤 한다.하지만 IQ는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EQ가 낮은 전태윤은 ‘사랑 상담사’소정남한테서 꽉 막혔다고 늘 놀림을 받는다.전태윤이 하예정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하예정이 이토록 감동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하예정이 달콤한 어조로 말했다.“태윤 씨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바꾸었으니, 나도 태윤 씨를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어.”부부는 서로 베풀고, 진심으로 대해야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네가 부러워, 살짝 질투도 나고.”“너야말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질투의 대상이지.”심효진이 히죽히죽 웃었다.“그래, 난 남들의 선망 대상으로 사는 것이 좋아. 정남 씨와 사귀면서부터 난 너무 행복해. 그리고 맞선을 보라는 부모님 잔소리를 안 들어서 너무 좋아. 고모도 이젠 잠잠해졌어.”“너 고모님께선 지금 엄청나게 기뻐하고 계실 거야. 너를 부잣집에 시집보내 호강시키려고 얼마나 애쓰셨는데.”“난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이 없었어. 하지만 정남 씨 집안과 같은 부잣집에는 시집가고 싶어, 평생 심심하지 않을 거야. 난 지금 소씨 도련님이 너무 궁금해, 얼마나 대단한 여자라야 그렇게 대단한 남자한테 어울릴 수 있을까?”“때로는 딱 어울릴 것 같은 대단한 가문끼리 맺어지는 것도 아니더라. 주로는 소씨 도련님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가에 달렸지.”“내 생각에 소씨 도련님은 눈이 꼭대기에 붙은 것 같아, 아니면 정남 씨보다 나이도 몇 살 위이고, 또 싱글인데 왜 여태껏 혼자였겠니, 그렇게 훌륭한 남자가 연애도 결혼도 안 하고?”“사업에 너무 신경 쓰느라 연애결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나 보지.”심효진은 발밑에 바람이 일 지경으로 바삐 돌아치는 소정남을 생각하며 웃었다.“아마 우리 같은 여자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하예정도 그 말에 수긍하며 떠라 웃었다.공예품을 짜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맡긴 터라 이젠 서두를
소정남이 보낸 과자를 먹고 난 심효진이 소정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정남 씨가 보낸 과자 너무 맛있어요. 사랑해요!”소정남에게서 바로 회답이 왔다.「효진 씨가 좋아한다니, 내일 두 박스 더 갖다 줄게요.」먹방을 만족시키는 것은 소정남에게 가장 쉬운 일이다.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되니까.“소현 언니가 오늘 안 보이네.”심효진이 물었다.“언니는 친한 친구가 실연당해서 위로하러 갔어.”하지만 사실 성소현은 실연당한 절친을 위로하러 간 게 아니라 새 이웃을 만나러 간 거였다.오후에 외출하려고 차를 몰고 이웃의 큰 별장 앞을 지나던 성소현은 별장 문이 열려 있고 예준하가 늘 타고 다니던 차가 별장에 주차된 것을 보았다. 마침 마당에 서 있던 예준하를 보고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예준하가 별장으로 초대하는 바람에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예준하를 따라서 별장으로 들어갔다.이 큰 별장은 성씨 저택과 가까워서, 예전에 부모님을 따라서 놀러 간 적이 있는 성소현은 별장의 정원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준하를 따라 발 가는 대로 걷던 성소현이 말을 꺼냈다.“이 정원은 크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화초와 나무 모두 잘 자랐어. 다시 심더라도 이렇게 자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싹 다 바꾸려고 했는데, 소현 씨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내가 싫어하는 식물들을 옮겨버리고 좋아하는 것으로 바꿔 심으면 되겠네.”방의 구조는 변경해야 한다. 그리고 별장의 대문 방향도 바꿔야 한다.예준하가 청한 풍수 선생은 이 집의 풍수 구조는 이미 운이 끝났다고 하였다. 원래의 집주인이 제때 용한 사람을 불러서 다시 운이 돌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계속 원래의 운이 끝난 풍수 구조를 사용하면, 자연히 점점 쇠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풍수 구조는 기한이 있는데, 기한이 다 차면 그 구조를 다시 쓸 수 없다.“내 안목이 별로여서, 소현 씨가 잘 봐줘. 이 별장을 리모델링하는데 어떤 스타일이 더 좋은지? 난 이 별장을 관성에 있는 내 집으로 생각
심효진도 말을 건넸다.“그러니까. 낯선 사람이 오면 소씨 가문의 동의를 받아야 해?”소정남이 웃으면서 대답했다.“난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 그냥 내 부하들이 전한 소식을 말해줬을 뿐이야.”일반적인 업계 거물들이 오면 소정남은 전태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민감한 시기였다.하예진이 강성으로 떠났다.그리고 오래전에 세상을 뜬 이경희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작은 딸로서 하예진의 친어머니이기도 했다.이씨 가문은 여러 재벌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그들은 모두 하예진이 강성으로 가게 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거물이 관성으로 오게 되었다. 아직 상대방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바삐 관성으로 왔다가 급하게 떠났기에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 민감할 수도 있는 인물을 소정남에게 보고한 것이다.소지훈이 아직도 연성 쪽에서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성의 일은 전부 소정남이 맡고 있었다.하여 소씨 가문의 부하들도 무슨 일이 있으면 자연스레 소정남에게 보고했다.소정남이 처리할 수 없는 일만이 소지훈에게 알려주게 된다.“정남 씨, 강성에서 누군가가 왔다고 의심하고 계시는 거예요?”하예정이 갑자기 물었다.전태윤의 눈치를 보던 소정남은 전태윤이 말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더니 그제야 하예정의 물음에 대답했다.“아직은 잘 몰라요. 우리가 그 사람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채 급히 왔다가 급히 돌아가는 바람에 상대방의 모양을 잘 파악하지 못했거든요. 우리 가문의 정보 시스템이 대단하지 못했더라면 그런 사람이 왔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제가 이씨 가문에 대해 알아본 바로는 이씨 가문에서 보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씨 가문의 주인은 이 대표님인데 이 대표님은 이미 강성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우리는 그 신비한 중년 남자의 모양을 포착하지 못했어요.”소정남이 말은 이씨 가문에서 이은화 모녀를 제외하고는 내세울 만한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이씨 가문의 남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빈은 소정남의 목을 껴안고 그의 볼에 뽀뽀해 주었다.소정남은 그제야 만족하며 웃었다.“잘했어. 자, 아저씨가 우빈에게 조종 비행기 한 대를 선물해 줄게.”“감사해요. 아저씨.”우빈은 즐겁게 그 큰 선물 상자를 받았다.소정남은 기회를 보며 우빈을 내려놓았다.“용정아, 우리 비행기 장난감을 놀러 가자.”우빈은 용정을 불러 함께 놀자고 했다.집 안에 있던 용정을 보던 소정남은 그제야 말했다.“용정이도 있는 줄 몰랐네. 다음에 사줄게.”“용정아, 이 새로운 비행기를 너에게 줄게. 내가 가서 한 대 더 가져올게. 우리 밖에 나가서 놀자.”우빈은 흔쾌히 소정남이 준 선물을 용정에게 건네주었다. 우빈에게는 전태윤과 소정남, 그리고 성소현이 준 조종 비행기가 많았다.조종 자동차도 엄청 많이 가지고 있다.바람개비는 더 많았다.노동명은 우빈에게 바람개비만 선물해 주었다.그러나 노동명은 요새 우빈이 바람개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다른 장난감으로 바꾸어서 그에게 선물했다.노동명은 장난감 한 가지를 우빈에게 선물했다가 녀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매일 똑같은 것으로 선물하곤 한다.다른 사람들처럼 다종다양한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용정도 거절하지 않고 우빈이가 건네준 선물을 받았다.우빈이가 또 다른 장난감 비행기를 가져오자 두 녀석은 아기들과 놀지 않고 정원으로 달려가 비행기를 가지고 놀았다.예준성 부부는 분유를 타서 쌍둥이에게 먹인 뒤에야 한 명씩 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았다.“이 시간이면 아기들이 낮잠을 자야 하거든요. 안고 재우다가 잠이 들면 또 조심스레 침대에 놓아야 해요.”예준성은 딸 예지연을 안은 채로 자애롭게 내려다보았다.소정남은 손을 뻗어 예지연의 작은 얼굴을 살며시 꼬집었다.“살결도 부드럽고 너무 귀엽네요.”이때 예준성이 소정남의 손을 밀쳐냈다.“정남 씨, 제 딸의 얼굴을 만지지 마세요. 아파할 거예요.”“울지 않는데요.”예준성이 말을 이었다.“제 딸이 울면 제가 정남 씨와 싸울 수도 있어요. 우리 딸
“우빈아, 이리 와.”모연정은 우빈을 향해 손짓했다.우빈이 모연정에게 다가갔고 모연정은 그를 끌어안아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용정이랑 싸웠어?”우빈은 싸운 사실을 부인하며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하지만 용정의 말이 맞는걸요. 지연이는 용정의 여동생이에요. 용정이가 모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기 때문에 지연이가 용정의 여동생 맞아요. 저는 지연이가 너무 좋아요. 저도 여동생을 갖고 싶은데 여동생을 저에게 주시면 안 돼요?”모연정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그건 안 돼.”예지연은 예진 리조트에서 보물 같은 존재로 어린 나이에 수많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사람들이 조금만 더 길게 안아도 예씨 가문 사람들은 예지연을 안아 갈까 봐 걱정했다.“왜 안 돼요? 제가 사면 안 돼요? 모 아줌마, 저에게 돈이 있어요. 저의 모든 돈을 모 아줌마께 드리면 안 돼요?”모연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팔 수도 없는걸. 지연이는 물건이 아니기에 팔면 안 돼. 우빈아, 너도 지연이 오빠잖아. 용정이가 하는 헛소리를 믿으면 안 돼. 용정이도 지연이 아빠처럼 지연이를 너무 아껴서 그래.”두 사람은 친부자는 아니지만, 예지연에 대한 사랑은 똑같았다.“모 아줌마는 거짓말쟁이예요. 저보다 어린 여동생들은 모두 저를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걸요. 용정을 부르는 오빠와 다르잖아요.”우빈은 진지하게 대답했다.“모 아줌마. 우리 엄마께서 제가 올해 4살이라고 하셨거든요. 제가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 저를 놀리면 안 되죠.”우빈은 아주 똑똑했다.“그래, 그래... 우리 우빈은 이미 많이 컸어. 이젠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니 더는 널 놀리지 않을게. 하지만 난 지연이를 팔 수는 없어.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아줌마 집에 와서 놀아. 그러면 지연이도 자주 볼 수 있을 거야.”우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더니 말을 건넸다.“하지만 저는 매일 유치원에 가야 하고 주말에도 이틀밖에 못 쉬어요. 우리 엄마도 보고 싶고 동명 아저씨와 놀아주어
몇 개월 된 두 아기는 이미 그들 스스로 몸을 뒤엎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과 아기 소리로 교류도 할 수 있었기에 한창 재미있을 때였다.용정이 말했다.“난 지연이와 자주 놀아주기 때문에 지연이가 나를 알아보거든. 그래서 날 보면 잘 웃어. 지연이는 우빈이 너가 잘 놀아주지 않으니까 너를 보아도 잘 웃지 않거든. 넌 지호랑 놀아. 내가 지연이랑 놀아줄 테니까.”예지호는 두 종아리로 우빈이가 유모차 위에 올려놓은 손을 걷어차곤 했다. 그 꼬마 녀석은 매일 잠을 자지 않는 한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울고불고하며 어른들에게 안아달라고 졸랐다.장난감 갖다 주어도 놀다가 몇 분도 안 돼 던지면서 “응애응애” 울었다.예지연은 예전처럼 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만약 예지연 남매가 동시에 누워 있으면 예지호가 끊임없이 울 때 예지연은 자신의 작은 발로 예지호를 차기도 했다. 마치 울보 예지호를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우빈은 몸을 숙여 예지연에게 뽀뽀하려 했지만, 용정이가 즉시 막았다.“뽀뽀하면 안 돼. 아저씨가 그러셨어. 우리 모두 지연에게 뽀뽀하면 안 된다고. 지연이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했거든. 뽀뽀하고 싶으면 지호한테 해. 아저씨가 지호한테 뽀뽀해 주어도 괜찮다고 하셨어.”“왜?“우빈이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용정은 당당하게 대답했다.“무슨 물음이 이렇게 많아!”두 녀석의 대화를 듣던 하예정은 전태윤과 함께 앉아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준성을 힐끗 쳐다보았다.이를 본 모연정이 어쩔 수 없는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딸이 몇 개월밖에 안 됐는데 애 아빠는 벌써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다니까요. 남의 집에 있는 남자아이들이 지연이를 앗아갈까 봐 어찌나 걱정하는지 참.”하예정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준성 씨도 너무 과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긴, 우리 태윤 씨도 그럴걸요. 평소에도 연정 씨가 돌보고 있는 거예요? 다시 출근하셨어요?”“아직요. 가끔 출근해요. 우리 남편은 제가 아기들이 6개월 되고 나서야 출근하기를 바라거든요. 우
용태호는 일부러 말했다.“저는 그딴 일에 관심 없어요. 그런데 운별 씨가 화풀이하고 싶으시다면 제가 사람을 시켜 복수해 드릴 수는 있어요. 저만 믿고 따라오시고 저의 일에 협조 잘하신다면 제가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운별 씨를 괴롭혔던 사람들도 그때 가서 복수 해드리죠.”용태호가 토템을 손에 넣게 되면 진정한 권력자로 되어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그날이 다가오면 그는 전씨 가문도 안중에 넣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소씨 가문이라면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출 수도 있지만...“당신 대체 정체가 뭐죠?”“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아무튼, 저만 믿고 따라오신다면 행복한 생활만 누리게 될 거에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제가 이곳에 두 사람을 남겨 운별 씨를 보호해 드리게 할게요. 저는 돌아가야 해요. 일이 너무 많아서 바빠요.”용태호는 여운별의 허벅지를 다시 만지더니 일어나 두 경호원에게 남으라고 지시했고 다른 경호원들은 바로 여운별의 셋집을 떠났다.용태호가 떠난 후 경호원 중 한 명이 여운별에게 말했다.“운별 씨, 집주인에게 가서 이 셋집을 반환하겠다고 전하시고 우리와 함께 가요. 용 사장님께서 이미 운별 씨에게 별장을 사고 새 차를 사주셨으니, 오늘부터 별장에 들어가서 생활하시면 됩니다.”“당분간 돌려주지 않고 남겨둘 거예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여운별은 인피 가면을 쓰고 하예정과 주우빈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그리고 신임을 얻고 나서 언젠가 하예정과 예씨 가문의 사모님이 만나 주우빈과 용정이 만나게 되면 용정을 유괴하여 용태호에게 넘겨줄 것으로 생각했다.만약 여운별은 갑자기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다면 전태윤 일행의 성격으로 반드시 여운별의 흔적을 찾아다닐 것이 뻔했다.차라리 이 셋방을 그대로 두어 여운별이 하예정 곁에 없을 때마다 인피 가면을 벗고 여운별 모습으로 나타나려고 계획했다.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여운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관성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고 또한 하예정의 곁에 새로운 얼굴로 나타난다고 해도
여운별은 의아한 표정을 물었다.“A시 예씨 가문의 큰 사모님 양자가 목표라면 왜 직접 A시에서 당신 도와줄 사람을 찾지 않으세요? 관성과 A시는 거리가 너무 멀고 또 하예정 씨와 예씨 가문의 사모님 관계가 가깝다 해도 그분이 하예정 씨와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닐 텐데.”용태호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A시에서는 용정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용정이 예준성 부부의 양아들이라는 것 외 그 꼬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외부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게다가 용정은 A시에 거의 있지 않았기에 그가 평소에 어디에 숨어 있는지 잘 몰랐다.예씨 가문 뒤에는 곽씨 가문이 배후에 서 있고 또 만성의 남씨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또 예씨 가문의 넷째 사모님은 신의의 제자였기 때문에 용태호는 그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예전에 경솔하게 용정의 신분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예준성이 누군가가 용정의 뒤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그 뒤로 용태호는 용정에 대한 소식을 잃었다.최근에야 겨우 알아낸 소식인데, 용정은 하예정의 조카 주우빈과 함께 놀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녀석은 나이가 비슷해서 분명 친구로 될 수 있었을 것이다.하여 용태호는 돌고 돌아 하예정의 주위에서부터 착수해 용정을 끌어낼 방법을 궁리했다.용정이 그들이 줄곧 찾던 사람인지 아닌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그리고 토템도 찾고 있었다.“예씨 가문 댁 큰 사모님 친정집은 만성의 남씨 가문이에요. 운별 씨가 아실지 모르지만 남씨 가문은 엄청 대단한 가문이에요. 저는 남씨 가문의 사람의 양자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거든요.”용태호는 그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예씨 가문의 넷째 사모님 정겨울의 배후에 서 있는 그 늙은이, 신비한 고수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그는 단지 용정을 납치하려고 했다.최대한 정면충돌을 하지 않기로 했다.여운별이 말을 이었다.“하예정 씨 배후에 사람이 없는 줄 아세요? 하예정 씨는 친구를 사귈 때 집안 형편이 아닌 인
용태호는 한바탕 웃더니 여운별의 눈을 보며 말했다.“운별 씨, 그건 제가 허락할 수 없네요. 운별 씨가 동의하면 가장 좋은 선택이겠지만 동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이미 이곳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당신이 나가서 저에 관한 말을 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제가 당신을 죽이는 수밖에 없어요. 운별 씨가 아마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제 부하들을 보셨죠? 열 명도 넘어요.”여운별의 얼굴은 금세 하얗게 변했다.“그럼, 저와 연합하실 건가요? 아니면 죽기를 바라는 거죠? 몇 분 드릴 테니 잘 생각해 보세요.”여운별은 열댓 명의 경호원을 쳐다보고는 또 용태호를 쳐다보았다.그녀는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호기심을 품었다.‘자꾸 사람을 죽인다는 소리를 해대다니! 설마 살인마는 아니겠지?’여운별은 갑자기 땅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제발 저를 놓아주세요! 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저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죽고 싶지 않아요.”여운별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용태호는 일어나서 그녀의 곁으로 가더니 그녀를 일으켜 세워 가로 안았다.여운별은 그의 뜻을 알고 있었지만, 얼굴이 더 창백해졌을 뿐 반항하지 않았다.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방안에서 나왔다.여운별의 얼굴은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눈에 원망으로 가득 찼다.용태호는 여운별을 부축하여 소파에 앉게 했고 그녀에게 말했다.“저를 탓하지 마세요. 미워할 거면 운별 씨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을 미워하세요. 그녀들 때문에 운별 씨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당신이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했어요.”나쁜 짓을 한 사람은 용태호였지만 그는 여운별을 하예정과 여운초 일행을 원망하라고 설득했다.용태호는 휴지를 뽑아 여운별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자, 그만 울어요.”그는 지갑을 꺼내 안에서 카드를 꺼내더니 여운별의 손에 쥐여 주며 말을 건넸다.“이 카드 안에 4억 원이 들어있거든요. 저 가방 안의 현금도 운별 씨한테 드리는 거예요.”여운별은 카드를 건네받고 눈물을 훔치더니 용태
여운별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태호 씨, 지금 저더러 당신의 내연녀 노릇을 하라고요?”여운별은 겨우 스무 살인 젊고 아름다웠기에 그녀의 출신으로 보면 부잣집으로 시집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용태호처럼 중년 남자가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여운별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일 텐데, 그런 그녀를 이 늙은 남자의 내연녀로 연기를 하라고 하다니!너무 어이없는 상황이다.용태호가 허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운별 씨, 운별 씨는 특기도 없고 현실에 굴복하는 것도 싫어하고 게다가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돈을 버는 일도 성에 차지 않을 텐데, 그러면 어떻게 생활을 할 건가요? 정말 당신 남동생이 주는 백만 원으로 생활할 건가요?”여운별은 깜짝 놀랐다.‘나와 천우가 사적으로 한 말을 어떻게 알았지? 설마 줄곧 나를 주시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누구를 만났고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고 있는 건가?’이 남자는 너무 무서운 사람이다!전태윤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는 하지 못할 것이다.“운별 씨가 예쁘고 젊고 몸매 좋은 것 말고 또 뭐가 있죠?”용태호가 여운별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건방졌다.여운별은 마침내 용태호의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용태호는 그녀를 자신의 노리개로 생각할 뿐이다. 왠지 그녀에게 약속한 조건이 그토록 후하더라니!별장에 새 차, 그리고 매달 6000만 원의 용돈을 주려고 하더니, 결국 여운별의 몸을 탐내고 있었다.그녀는 그런 의심을 하긴 했으나 용태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용태호는 일어나서 여운별의 곁에 앉아 한쪽 손을 여운별의 허벅지에 올려놓았다.“운별 씨, 저를 따라오셔야지만 계속해서 좋은 삶을 계속 살 수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여씨 가문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고요. 앞으로 여운초 씨를 발밑에 밟고 싶지 않으세요? 여운초 씨 남편을 운별 씨에게 넘어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이런 관계이긴 하지만 만약 운별 씨가 전씨 가문의 도련님을 꼬실 수만 있다면 저도 흔쾌히 손을 놓
여운별은 의아했다.“제가 왜 얼굴을 바꿔야 하죠? 저는 저의 자연스러운 얼굴이 마음에 들어요. 바꾸고 싶지 않아요.”용태호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얼굴에 칼을 대는 것이 싫으시면 가면을 쓰고 다니세요. 문을 나설 때마다 인피 가면을 쓰고 다니시면 돼요. 제가 준비해 드린 이 가면을 쓰면 누구도 운별 씨를 알아보지 못할 거에요. 손오공이 온다 해도 운별 씨인 것을 알아보지 못할걸요. 그리고 제가 새로운 신분도 드릴게요. 우리의 협력이 끝날 때까지 운별 씨는 여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 신분을 회복할 수 없어요. 제가 장담하건대, 저의 일이 잘 처리되면 당신이 원하는 여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운별 씨에게 드릴게요.”“그리고 운별 씨의 장님 언니는 제가 개미 한 마리 죽이듯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 운별 씨가 저에게 협조하여 저의 일이 잘 처리된다면 제가 운별 씨가 원하는 모든 것을 빼앗아 드릴 수 있어요.”용태호는 마치 그가 전이진을 쥐어 죽이는 것이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것과 같이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매우 오만방자하게 말했다.이어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태호 씨가 그 정도로 능력이 있다고요? 저의 장님 언니는 이미 시력을 회복했고 또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거든요. 태호 씨는 관성의 사람이 아니죠? 전씨 가문의 지위를 모르시는 것 같은데. 감옥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우리 부모님조차 전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감히 큰소리도 못 치고 조심스럽게 비위를 맞춰야 했단 말이에요.”“전씨 가문은 재력이 풍부하고 인맥이 넓을 뿐만 아니라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재벌가에요. 또한, 그들의 자손도 많기에 관성에서 많은 재벌가가 전씨 가문과 친척 관계를 맺고 있었고 따라서 전씨 가문을 건드린다는 것은 관성의 상위층 재벌가들 전체와 적이 되는 것과 다름없어요.”여운별은 어리고 그녀의 부모님 밑에서 버릇없이 자라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능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씨 가문이 관성에서의 지위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은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