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그녀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약 일 분간 베란다 뒤에서 바라만 보다가 뒤돌아섰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차려준 음식을 들고 출근하려 했다.문을 나서기 전에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말했다.“나 출근 갈게.”“네, 운전 조심해요.”하예정이 당부했다.전태윤은 문을 닫은 후 도시락들 들고 아파트를 내려왔다.전태윤의 경호원 팀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혹은 갈 곳 없이 서성거리고 있었다.전태윤이 도시락을 두 개 들고 내려오자 경호원들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바라만 보며 아무도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전태윤은 어이가 없었다.‘도시락을 들었다고 날 못 알아보는 거야, 뭐야?’“도련님?”역시나 눈썰미가 좋은 강일구가 먼저 다가가 도시락을 받아서 들었다.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롤스로이스를 향해 걸어갔다.이내 롤스로이스는 경호원들의 차량 몇 대에 둘러싸여 아파트 단지를 나갔다.마침 하예정이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다가 자주 보는 롤스로이스가 기타 차량 몇 대의 보호를 받으며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 뒤로는 전태윤의 국산 차가 나가고 있었다.고급 외제 차를 만나면 절대 가까이에 가면 안 된다. 만일 하나 긁기라도 하면 배상이 어마어마하다.‘이 아파트 단지에 근 20억 하는 롤스로이스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거는 이곳 집값이 비싸다는 뜻일 텐데, 태윤 씨는 이 집 얼마 주고 샀으려나?’하예정은 전태윤이 큰 기업에서 한자리한다고 하나 정확히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는 몰랐으며 물은 적도 없었다. 워낙 전태윤이 그녀에게 편견이 있다 보니 그녀는 괜한 오해를 만들기 싫어 직장과 직위에 관해 하나도 묻지 않았다.전태윤이 나가고 하예정은 꽃에 물을 주고는 그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열어 댓글을 확인했다. 하예정의 진상 친척들을 욕하는 댓글을 확인한 하예정은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물론 어떤 누리꾼들은 시간도 오래 지난 데다가 어르신은 연세도 많고 중병에 걸리셨으니 그녀더러 원망은 내려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또
전태윤은 도시락 두 개를 사무용 책상에 올려놓으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형수님이 너랑 나 같은 회사에 출근한다는 걸 알고 너 먹으라고 챙겨줬어. 맨날 밖에 음식 먹지 마, 깨끗하지 않아.”“형 예전에 맨날 밖에서 먹었잖아.”비록 가문의 호텔이지만 그래도 밖은 맞다.전혁진은 커피를 내려놓고 다급히 도시락통을 열면서 말했다.“토요일에 형수님 손맛 보고 나 진짜 그 맛에 반했다니까. 오 마이 갓, 뭐가 이렇게 많아. 종류도 다양하고 게다가 보기까지 좋으니 맛은 더 말할 것 없겠지.”전혁재는 두 도시락통을 다 열어보고는 하예정의 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재주도 있는 데다가 음식 솜씨도 좋다며 말이다.‘어쩐지 할머니가 눈독 들이셔서 기어코 형한테 결혼하라 했지.’그도 그럴 것이 하예정은 장점이 많은 여자다.전재혁의 촐싹거리는 모습이 눈꼴 시려서 전태윤이 입을 열었다.“네 형수님이 나한테 고맙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상다리 부러지게 아침밥 차렸지, 뭐야.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서 너도 맛 좀 보라고 도시락 싸 온 거야.”전혁재는 멈칫했다.그러고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형수님이 나한테 가져다주라고 했으니 먹다 남은 건 절대 아니겠지.”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먹다 남은 거 먹게 하나씩 미리 다 맛보는 거였는데. 이 자식 못 까불게.’“형, 다른 볼일 있어?”“왜, 아침부터 먹을 거 가져다줬건만 벌써 내쫓는 거야?”전태윤은 불쾌하다는 듯 전혁재를 노려보다가 무의식중에 사무용 책상 끝머리에 놓인 수공 파키라 공예품이 보였다.전태윤은 파키라를 들어 이리저리 보다가 입을 열었다.“이거 할머니 거랑 같은 사람한테서 나온 작품 같은데.”할머니는 하예정의 선물을 집안 제일 환한 곳에 올려다 놓았기에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전태윤은 그 작품에 익숙했다.“형 눈썰미가 아주 그냥.”전혁재는 자리에 앉아 전태윤이 가져다준 도시락을 먹으며 기분이 잔뜩 나서 말했다.“그거 형
하예정은 이 순간 전태윤이 질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서점에 왔다. 서점은 조용했다. 하예정은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다.심효진은 파키라를 완성한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정아. 너 요즘 왜 파키라만 만들고 있어? 이거 잘 팔려?”완성품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있던 하예정은 심효진의 물음에 미소 지으며 답했다.“요즘 쇼핑몰 매출이 좋아. 제일 핫한게 바로 이 파키라야. 매출 완전 수직 상승.”“혹시 너 입장 발표하고 나서 사람들이 너랑 예진 언니 안쓰러워서 사주는 거야?”하예정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그건 아닌 거 같아. 어릴 적 사진이랑 번호만 올렸고 다른 정보는 공개된 거 없어. 지금은 그 글도 다 삭제됐잖아.”글을 올린 사람이 아마도 하씨 집안 사람들한테 불똥이 튈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뭐 마침 전씨 가문 도련님의 기사 때문에 그 일이 묻히긴 했지. 더 일이 크게 번지기 전에 내가 반격한 거고. 그러니까 그런 가능성은 적어.”심효진은 전씨 가문 도련님의 기사라는 말에 이내 관심을 보이며 신비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우리 고모가 그러는데 성소현이 너와 관련된 실검을 보고 자기가 묻힌 거 같아서 기분이 언짢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뒤에서 손 좀 써서 너에 관한 실검을 묻어버렸대.”이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성소현 씨가 결국 나 도와준 거네.”하예정은 뭔가 생각하더니 또다시 웃음을 지었다.“성소현 씨한테 고마워해야겠어. 그럼 나도 성소현 씨가 하루빨리 전씨 가문 도련님을 정복하길 기도해 줘야 하겠는걸. 재벌 집 딸이니 돈도 많고 권력도 있으니 전씨 가문 도련님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아내기 쉬울 거야. 우리끼리 하는 말이었으니 말이지 앞으로 입조심해야겠어.”심효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우리도 그냥 해보는 말이지, 뭐. 전씨 가문 도련님이 정말 몸에 이상이 있다 한들 성소현이 어떻게 알겠어? 그 도련님 주위에는 종래로 젊은 여자가 없었으니 그거에 대해서는 아
주우빈의 부름에 두 사람의 대화는 끊기고 하예정은 하예진이 주우빈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손에 든 것을 내려놓더니 카운터에서 나왔다.심효진은 하예정보다 더 행동이 빨랐다. 어느새 심효진은 어리둥절해하는 주우빈을 안아 들더니 볼에 뽀뽀 세례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주우빈에게 비행기 놀이를 해주니 주우빈은 신난다는 듯이 까르르 웃어댔다.“언니, 어떻게 왔어?”하예정은 시간을 확인했다. 때는 이미 10시가 넘었다. 이 시간에 하예진은 보통 집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주형인이 퇴근했을 때 식사 준비가 되지 않으면 또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을 것이다.“하도 심심해서 나왔어. 우빈이가 기어코 여기 오겠다 그러더라고.”하예진은 태양 모자를 벗더니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곧 11월인데 날씨 왜 이렇게 더워.”관성의 가을과 여름은 온도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겨울도 그리 춥지 않다.그저 아침과 저녁에 조금 쌀쌀할 뿐, 낮에는 해만 떴다 하면 푹푹 쪘다.“열 시 넘었는데 언니 식사 준비 안 해도 돼?”하예정은 하예진이 무조건 밥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은 점심때 밥을 먹어야 하니 그저 물은 것뿐이다.“우빈이는 다 먹이고 나왔어. 분유도 가져왔으니 오후까지 놀다 가도 괜찮아. 이따 너랑 배달이나 시켜 먹지 뭐. 아니면 나 지금 장 보고 와서 너희 가게 주방에서 밥해도 되고. 네 형부는... 쌀은 내가 씻었고 물도 맞춰놨어. 전기까지 다 꽂아 놨으니 알아서 해 먹겠지, 뭐. 채소는 다 씻어서 주방에 두었으니 데쳐서 먹든 볶아서 먹든 알아서 하라고 해.”하예진의 말을 들은 심효진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언니. 그럼 절반만 해둔 거예요?”“더치페이하기로 했으니, 반반만 하는 거지. 내가 다 하면 그게 어떻게 더치페이야? 더치페이가 돈에만 있는 줄 알아?”하예진은 요즘 주형인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러니 더치페이 앞에서 하예진은 똑 부러지게 행동했다. 이 기회에 주형인을 잘 다스릴 생각으로 말이다.하예진은 앞으로
“저번에 예정이랑 제부가 사 온 선물들, 그날 더치페이 일로 나 진짜 뚜껑이 열리더라고. 그래서 다 내 방에 가지고 들어갔어.”하예진은 걸상을 빼서 앉으며 말했다. 하예정은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 씻은 뒤 하예진의 입에 넣어주었고 심효진은 온수를 따라왔다.하예진은 물을 마시고 나서 하예진은 집에서 발생한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그녀는 꾹꾹 눌러 담은 화를 하예정에게 토로하고 싶어서 왔다.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우울증이 걸릴 것 같았다. 심효진과도 오랜 시간 봐 온 사이거니와 그녀도 입이 무거웠다.하예진이 말 했다.“다음날 깨나 보니 주형인이 이미 다들 집에 보냈더라고. 가면 갔지, 나도 빨리 갔으면 싶었어. 그런데 주형인이 글쎄 예정이 부부가 들고 온 선물을 다 보낸 거야. 우빈이 장난감까지 거의 다 털어갔어. 나 진짜 눈이 뒤집히더라니까. 게다가 주형인이 뭐라는 줄 알아? 우리는 부족한 게 없으니 자기 누나한테 다 줬대. 우리 시누이가 뭐가 부족한데? 두 사람 다 직장 있고 월급 또박또박 들어오고 게다가 우리 시부모님이 애까지 봐주고 있는데. 우리 시부모님은 퇴직금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받고 계시는데 매달 주형인한테서 돈 꼬박꼬박 다 받아 가셔. 그거 다 시누이한테 줄 걸? 그러고 자기들 월급은 다 적금 들어놓고 우리 시부모님 돈이랑 주형인 월급으로 생활하는 거 있지. 자기 동생이 장가를 안 갔으면 모를까, 장가도 갔고 대출도 매달 나가는데 어떻게 자기 동생 돈으로 생활하려고 들어.”하예진은 주형인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드리는 돈이 분명 주서인한테로 가는 걸 알면서 매달 돈을 보내주면서도 정작 하예진한테는 인색했다. 하예진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게다가 하예진의 시댁 식구들은 연기도 잘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는 세상 좋은 사람인 양 굴더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본 모습을 드러냈다.“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지만 누나랑 뭔 상관이야? 돈 주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적게 주라
하예정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녀는 주우빈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우빈이 어린이집 가고 싶어?”“싫어.”주우빈은 한창 엄마한테 엉겨 붙고 싶은 나이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하예진에게 말했다.“우빈이 어느 어린이집으로 보낼지는 생각해 뒀어? 다 생각하면 주말에 우빈이 데리고 미리 적응도 시킬 겸 놀러나 가자고. 재밌게 놀기만 하면 안 가겠다고 떼쓰지는 않을 거야.”이곳은 주말이면 많은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곧장 어린이집으로 놀러 다니기도 한다.하예진은 머리를 끄덕이고 말했다.“또 있어. 나 진짜 화났잖아. 나 그 시누이가 네 형부한테 뭐라고 했냐면. 자기 두 아이를 관성에서 학교 보낼 테니까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나더러 픽업하래. 그리고 밥 차려 주고 공부도 가르쳐주란다. 나는 뭐 돈 안 받아도 되는 도우미야? 네 형부가 월 30만 원 더 주겠다면서 어쨌든 아이 하나든 셋이든 같은 일이라면서 개소리 치는 거 있지. 내 새끼는 내가 낳았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키우지만 다른 집 애를 내가 왜 키우면서 고생을 사서 하겠냐고? 그것도 모자라서 집문서 명의 자기 누나 앞으로 돌린대. 그렇게 되면 학군지에 집이 있는 게 되니까 두 아이의 입학도 쉽다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집문서 명의 이전하면 다시 되돌려 받기가 쉬운 줄 알아?”하예정과 심효진은 할 말을 잃었다.가끔 인터넷에서 누군가 유사한 사건을 썰로 푸는 것은 본 적은 있으나 하예진이 직접 겪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하예진은 이미 말을 꺼냈으니 브레이크 없이 술술 얘기했다. 그녀는 물 두 모금을 마시고 계속 말했다.“예정아. 나 네 형부한테 만약 집문서 명의 이전할 거라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인테리어 비용은 나한테 돌려달라고 얘기했어. 인테리어 비용만 7,600만 원 썼는데.”하예진은 몇 년 동안 직장에 다니며 모은 돈을 전부 가정을 경영하는 데 썼다.“만약 인테리어 비용 돌려주지 않으면 이혼할 거야. 이혼해도 그 돈은 다 돌려받을 것이고. 예정아,
이내 하예진이 말했다.“모든 남자가 다 주형인 같은 건 아니야. 효진아, 너 언니 때문에 결혼이 두려워서 시집 안 가려고 하면 절대 안 돼. 그럼 나 죄인 될 거야.”하예진은 심효진이 아직 미혼이고 집안에서 결혼을 재촉하는 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알아요, 남자든 여자든 다 진상이 있기 마련이죠. 결혼은 내가 좋아하고 평생을 맡겨도 될만한 사람과 하는 거니까 언니 영향 안 받아요. 그런데 앞으로 결혼을 생각하기 전에 꼭 상대편 가족의 인품은 체크하고 결정해야겠어요.”그녀의 엄마는 결혼은 한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과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결혼할 남자의 가족과 친구들이라는 고인 물에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니 알아두어야 할 점이 아주 많다.심효진은 하예정을 한번 슬쩍 쳐다보았다.심효진은 마음속으로 탄복했다.하예진의 결혼 생활은 정말 힘들어 보였다.게다가 아이가 있으니 이혼이 하고 싶어도 충동적으로 움직이면 안 되었다. 미리 뒷길을 생각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든 다음에야 자신감 있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하지만 하예정은 초고속 결혼이라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결혼 전에는 심지어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었다.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심효진은 자기는 절대 모르는 남자와 초고속 결혼을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비록 지금의 상황으로 봤을 땐 전태윤은 주형인에 비해 훨씬 낫다. 최소한 하예정에게 곤란이 생겼을 때 전태윤은 발 벗고 나서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하예정과 반년 짜리 계약을 맺은 사람이니 심효진은 하예진의 앞날에 대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은 하예진과 단둘이 해야 했기에 말을 아꼈다.“드르릉...”하예정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휴대폰을 확인한 그녀는 주우빈을 하예진에게 넘겨주며 말했다.“태윤 씨야. 나 전화 좀 받고 올게.”하예정은 하예진이 두 사람의 통화내용을 듣고 비밀을 알아낼까 봐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
전태윤은 가볍게 대답하고 계속 말했다.“이번 일로 그 사람들도 더는 함부로 하지 못할 거야.”하씨 집안 사람들에게는 이젠 후회만 남을 것이다.“평소에 점심 식사는 어디서 해요?”“밖에서.”전태윤은 다시 물었다.“나한테 밥 사주고 싶구나.”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시간 되면 내가 밥 살게요. 도움을 받아서 고마운데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밥 사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비싼 곳은 안 돼요. 감당 못 할 수도 있어요.”전태윤은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서 밥을 사겠다며 비싼 곳에 갈까 봐 두려워하는 건 성의가 있다고 해야 할까, 없다고 해야 할까?“점심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퇴근하고 나면 외식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나 진짜 밥 사주고 싶다면 집에 일찍 들어갈 테니까 당신이 직접 해줘. 우리 둘만 먹을 수 있게 적당히 하면 돼.”전태윤은 전혁진에게 아내인 하예정이 만든 음식을 주기 싫었다. 아무리 사촌 동생이라고 해도 그건 안 되는 일이다.‘집 밥을 먹고 싶으면 자기도 빨리 장가가서 와이프한테 해달라고 하던가.’전혁진이 전태윤의 생각을 읽었다면 지금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우리 형 역시나 질투했네!”전태윤은 저도 모르게 창피해졌다.자기는 절대 질투가 뭔지도 모르고 어떤 기분인지 느껴본 적도 없다고 큰소리치더니 아마 지금쯤은 제대로 그 기분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저녁에 일찍 들어와요. 밥 차려 놓고 기다릴게요.”“수고해.”전태윤은 절대 하예정이 아내로서 무조건 밥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만약 그녀가 차려준다면 그것은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두 사람 다 출근해야 하고 직장이 있다 보니 각자 바쁜 건 사실이다.가정이 행복해지려면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힘을 써야 한다.두 사람은 5분도 안 돼서 통화를 종료했다.통화를 종료한 후, 전태윤은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사무용 책상에 올려놓고 혼자 중얼거렸다.“나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이상하네.”그는 왜 용건 없이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