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요한은 육연희가 상처를 미처 보지 못하도록 급하게 거즈를 감았다.치료를 끝낸 윌리엄 요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는 육연희를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별거 아니야. 집안끼리 싸우다 보면 상처도 생기는 법이지 뭐.”말을 마친 윌리엄 요한이 육연희의 볼을 쓰다듬으려 하자 그녀는 몸을 피하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윌리엄 요한을 보고 물었다.“결혼하기 전에 다친 거죠? 왜 나한테 말을 안 한 거예요? 상처가 있는데 날 그렇게 안았던 거예요? 윌리엄, 그러면 상처가 덧날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 그랬어요?”윌리엄
이러면 에바는 윌리엄 요한과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말을 마친 에바가 의자 하나를 당겨 육연희의 곁에 앉으려는 찰나 윌리엄 요한이 가로막았다.그는 한쪽 켠에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에바 공주, 궁 안의 규율을 잊은 거예요? 여왕의 옆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에요. 다른 사람은 앉을 수 없어요.”에바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말했다.“난 그냥 연희 언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싶었을 뿐이에요.”윌리엄 요한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기억이 맞는다면, 두 사람 서로에 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아닌가요?
예전 같았으면 육연희는 윌리엄 요한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방금 에바가 했던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윌리엄 요한이 필요했던 건 육연희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자리였다.만약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윌리엄 요한은 또 그녀한테 잘해줬겠지.여기까지 생각한 육연희는 입꼬리를 올리며 아무 감정도 들어있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사이에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요. 하나만 기억해요. 본분만 잘 지키세요. 그럼 그 자리는 영원히 당신께 될 테니.”말을 마친 육연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육연희의 말속에
박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우를 쳐다보며 물었다.“고모부한테 전화한 거야?”“그럼요.”“전화번호는 누가 알려줬어?”천우는 작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전번에 고모가 고모부한테 전화하는 걸 보고 외웠어요.”박서준은 웃으며 천우의 얼굴을 꼬집고 말했다.“한번 보면 기억하는 능력이 있어? 우리 꼬맹이, 삼촌은 네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데 비서가 들어오며 말했다.“박 대표님, 윌리엄 공자께서 천우 도련님을 데리러 오셨대요.”“들어오라고 해.”윌리엄 요한이 들어오자 천우는 그를 향해
육연희는 오랫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즉시 함께 가기로 대답했다.천우는 가면을 쓴 육연희를 보고 흥분한 채 작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너무 짜릿할 것 같아요. 고모부, 나도 쓸래요.”윌리엄 요한은 꼬마 돼지 가면을 천우에게 씌워준 뒤 허리를 굽혀 천우를 안고 육연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애기야, 가자.”윌리엄 요한이 부른 ‘애기’에는 천우뿐만 아니라 육연희도 포함되어 있었다.육연희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세 사람은 차를 몰고 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육연희는 천우의 입을 가로막고 안전띠를 풀어 천우를 품에 안은채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밖에 나와서도 육연희의 볼은 여전히 화끈거렸다.천우는 두 손으로 육연희의 볼을 만지고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고모,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는 신혼여행 갔을 때 뽀뽀에 정신이 팔려 날 까먹어서 내가 바지에 오줌까지 쌌어요.”천우의 말에 육연희와 윌리엄 요한은 웃음을 터뜨렸다.세 사람은 인파를 따라 다음에 탈 놀이기구를 향해 걸었다.곰돌이 롤러코스터를 본 천우는 격동하며 말했다.“고모부, 나 저거 타고 싶어
불꽃놀이는 밤 열시부터 시작됐다.광장에는 일찍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천우는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두 사람을 끌고 갔다.육연희는 천우를 품에 안고 윌리엄 요한은 뒤에서 두 사람을 품에 안았다.‘펑’하는 큰 소리와 함께 불꽃이 깜깜한 하늘을 수놓았다.천우는 흥분하며 소리쳤다.“와아, 이쁘다.”모든 사람의 관심은 불꽃놀이에 쏠려있었다.하지만 윌리엄 요한의 시선은 줄곧 육연희한테 머물러 있었다.화려한 불꽃은 육연희의 예쁜 얼굴을 더욱 화려하고 어여쁘게 비춰줬다.그뿐만 아니라 공작새 가면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요염함을 더
윌리엄 요한은 육연희의 말에 뜨끔해 났다.두 사람 사이는 이미 깨졌을 뿐만 아니라 아주 산산조각이 났다.윌리엄 요한은 그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 수밖에 없었다.그는 육연희와의 사이를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 마법이라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생각을 할 만큼 간절했다.머리를 숙여 육연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윌리엄 요한의 깊은 눈동자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이 일렁였다.“연희야,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날 용서해줄 수 있어?”윌리엄 요한은 슬픔이 가득 배인 목소리로 물었다.육연희는 눈썹을 찌푸리며 몇 초 동안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간 송학진은 차서윤을 아래 우로 훑어보고 관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나한테 연락해야지. 내가 걱정했잖아. 날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 맞아?”미간을 찌푸린 채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송학진을 차서윤이 빙그레 웃으며 달래줬다.“걱정하지 마세요. 강한나 씨를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요. 식사하는 내내 자꾸 저희를 보면서 친구들과 뭐라고 소곤거리더군요. 그 사람들이 무슨 수를 쓸 것을 먼저 예상하고 화장실로 간 거예요. 둘째 도련님이 다가올 때 먼저 스프레이를 뿌리고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전 그런 적 없어요. 바람피우다가 송 대표님한테 잡혀서 저한테 덮어씌우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요. 그만하시죠.”차서윤은 장사연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남자를 이용해서 저를 망가뜨리고 제가 바람났다고 학진 씨를 불러올 수작이었죠. 이런 수작에 제가 넘어갈 줄 알았어요? 제가 바보로 보여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화가 가시지 않는지 장사연의 나머지 반쪽 뺨을 후려쳤다.“제가 학진 씨와 결혼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가
강한나와 친구들은 시간이 됐다 싶어 화장실을 찾아가서 문이 잠겨있다며 호텔직원을 불러 모았다.그 소식을 들은 송학진도 아림을 데리고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무슨 영문인지 화장실 앞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은 송학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어떤 여자가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딱 보면 알리죠. 파렴치한 남녀가 지금 바람피우는 거죠. 정말 이상한 여자가 다 있네요. 방 하나 예약하면 될 일을 굳이 화장실에서 저러잖아요.”“더 스릴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저는 이런 장면 많이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
송학진이 차서윤과 아림을 데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나타난 것을 본 강한나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참을 길이 없었다.오늘 저녁은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해준 자리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송학진을 알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너무나도 거북한 장면에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색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송학진을 불렀다.“학진아.”강한나의 부름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서윤과 아림을 끌어안고 예약한 자리로 갔다.강한나의 친구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여보, 그건 너무했어. 벌써 금욕이라니! 내가 참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다음에 주의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 줘.”두 사람이 차 옆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아림을 데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왔다.아림은 팝콘을 품에 안고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빠, 엄마. 얘기 끝나셨어요?”송학진이 허리를 굽혀 아림을 안아 들고 어린이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웃으며 대답했다.“응, 얘기 다 끝났어. 근데 어쩌지?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화
송학진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차서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피팅룸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 앞에서 남자에게 입술을 약탈당하는 모습이 비쳐있었다.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차서윤은 너무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키스가 끝나자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송학진의 어깨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이건 너무했어요!”송학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근데 너 아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