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육문주의 휴대폰이 울렸다.송학진의 번호인 것을 확인한 육문주는 다소 귀찮아하며 전화를 받았다.중요한 일이 없으면 혼날 줄 알라고 말하려는데, 전화기에서 송미진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귀를 찢을 듯한 이 소리를 옆에 있는 조수아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옆으로 늘어져 있던 그녀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그녀는 송미진이 이렇게 울면서 전화하는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그녀가 육문주와 헤어지기 전에도 송미진은 자주 그랬다.매번 육문주는 아무리 늦어도, 무엇을 하고 있었든
그의 등장은 송미진의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것 같았다.육문주는 송미진의 울먹이는 소리에 공항에 있던 조수아도 나 몰라라 했다.그것도 모자라 그는 송미진한테 양복 재킷을 벗어주고 그녀의 심부름으로 물건 사러 갔다.육문주는 분명 다시는 송미진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었다.조수아는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치고는 매서운 눈길로 육문주를 쳐다봤다.몇 발짝 앞으로 내딛자 거대한 품이 뒤에서 조수아를 감싸 안았다.이윽고 허스키한 남자의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수아야. 할머니 오래 버티진 못하실 것 같아. 할머니께서 네가 보고
육문주의 검은 눈동자는 잔뜩 약이 오른 듯싶었다.“조수아, 넌 참 그 입이 문제야. 이 빚은 나중에 꼭 갚아야 할 거야.”“할머니께서 다리뼈가 골절되셔서 식사도 하기 싫으시대. 자꾸 너를 찾으셔. 이러면 내 말을 믿겠어?”조수아는 황애자의 도움을 받은 적 있었다. 황애자가 다쳤다는 소식에 조수아도 내심 신경이 쓰였다.조수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를 뵙게 해 줘.”육문주의 굳어있던 얼굴도 조수아의 말 한마디에 풀려졌다.그는 조수아의 손을 잡고 황애자의 병실로 향했다.그 둘 사이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한 송미
순간 병실 안은 정적이 흘렀다.방금까지도 온화하던 육문주의 눈빛은 한순간에 싸늘해졌다.그는 무덤덤하게 입을 뗐다.“그럼 뛰어내리라고 해.”진영택은 줄줄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대표님, 상황이 좀 복잡해요. 오늘 마침 기자분들이 병원에 인터뷰하러 오셔서 지금 상황이 기사로 쓰였어요. 지금 대표님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어요.”육문주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조수아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그는 조수아가 방금 황애자의 부탁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을 눈치챘다.조수아의 눈에서
옆에 구경꾼들 사이에 서 있던 이선정은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 나왔다. 그녀는 육문주한테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문주야, 지금 우리 미진이를 살릴 수 있는 게 너밖에 없어. 제발 우리 미진이 좀 살려줘. 미진이가 없으면 우리 가족 모두 망가지게 돼.”구경꾼들의 원성 소리와 이선정이 울먹거리는 소리가 육문주를 더 분노케 했다.육문주는 이런 똑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들어서 귀가 아팠다.그는 여태까지 두 집안 어른의 얼굴이라도 봐서 참아왔었다.하지만 더 참다가는 조수아가 곤란해질 수 있었다.만약 육문주가 송미진의 요구를 들어준다
연성빈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감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연성빈은 조수아가 존경해 오던 선배이다. 그런 선배가 오랫동안 자신을 좋아해 주니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조수아의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선배도 아시겠지만 저의 몸 상태로는 임신할 수 있는 확률이 박약해요. 아마 한평생 엄마가 될 수 없을지도 몰라요.”“네가 누구와 사귀었었지, 네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야. 나는 너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지 다른 건 심경이 안 쓰여.”연성빈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조수아를
“야. 이 덜돼 먹은 놈아. 한지혜 친구가 조수아 한 명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걔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육문주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허연후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는 애써 웃음을 참고 육문주를 위로했다.“나도 마음이 아파. 나도 거짓말이길 바랐는데 그 게시물을 봐. 내 기억이 맞다면 성빈 씨 손목에도 사진과 똑같은 짐을 가지고 있어. 성빈 씨는 벌써 수아 씨 부모님을 만나 뵙는데 너는 지금 뭐 하는 거야. 지혜 씨가 올린 게시물이 그리도 놀라웠어?”육문주는 미친것처럼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다.그는 지금이라도 바로
육문주는 조수아를 와락 껴안았다.그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수아야. 제발 나한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면 안 돼? 이번에 꼭 잘할게. 너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응?”육문주는 항상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자존심을 내려놓는 건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육문주는 조수아를 꼭 안고 아이처럼 울면서 기회를 바라고 있었다.조수아는 아랫입술을 질끈 물며 평정심을 되찾으려 노력했다.“미진 씨가 귀국했던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문주 씨는 모를 거야. 미진 씨가 전화할 때마다 문주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