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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돛배
“물론 진정한 상남자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니까 절대로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양진아는 조용히 한마디 덧붙이고는 매무새를 정리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임우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젯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듬직한 뒷모습을 떠올리자 감격에 겨운 나머지 먼저 입을 열었다.

“서방님, 어서 어머님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갑시다.”

예상외의 호칭에 임우진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방금 들은 말이 생각나서 저절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색함이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네.”

말을 마치고 나서 소매를 휘날리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양진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렇다면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설마 나리라고 해야 하나?

어젯밤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왜 갑자기 안면박대하는 거지?

양진아는 뻘쭘하게 서 있었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감사의 말도 결국 다시 삼켜버렸다.

아마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인이 바뀐 상황이 못마땅한 듯싶었다. 어제 도와준 것도 단지 제후 저택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일 테니까.

양진아는 입술을 앙다물고 임우진을 따라 한 발짝 뒤처진 채 본채로 향했다.

앞에서 걸어가던 임우진은 그녀가 따라오지 않자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채에 도착할 무렵 발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돌렸다. 이내 계집종의 부축을 받고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다시피 하는 양진아를 발견했다.

결국 후회와 분노가 치밀어올라 자기도 모르게 퉁명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좀 기다려달라고 하면 되잖아.”

양진아는 숨을 고르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창부수라고 했습니다. 시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오니 저는 알아서 따라갈게요.”

머릿속 밝고 활기차던 여자의 모습과 거리가 먼 모습에 임우진의 얼굴이 굳어졌고, 곧이어 몸을 돌려 먼저 마당으로 들어섰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양진아는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뒤를 따랐다.

본채로 향하자 이선화와 임재성이 상석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차례로 들어서는 두 남녀, 단아한 표정의 양진아를 본 이선화는 안색이 다소 누그러졌다.

이내 양진아가 건네주는 차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신 다음 팔찌를 손에 쥐여주었다.

반면, 임재성은 두둑한 엽전 뭉치를 꺼내놓았다.

양진아는 손목에 찬 맑고 투명한 팔찌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다시 한번 안정미와 바꿔치기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전생에 고씨 가문에 시집갔을 때 고정수의 어머니한테서 받은 거라고는 얇은 금팔찌 하나밖에 없었다.

고정수는 어머니의 혼수라고 했고,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와중에 제일 좋은 물건을 챙겨줬다고 생각해서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했다.

나중에 안정미가 옥팔찌를 선물 받았다고 자랑했을 때, 그제야 고정수의 어머니는 집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에게 비싼 걸 주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양진아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에 눈이 먼 듯싶었고, 앞으로는 이선화에게 꼭 효도를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선화는 양진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속으로 어떻게 며느리의 성질을 다스려야 할지 고민했다. 제후 저택은 결코 자기 집처럼 제멋대로 구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가르치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양진아가 먼저 운을 뗐다.

“어머님, 혼인 첫날에는 며느리로서 시부모님과 서방님을 위해 음식을 차리는 게 전통이잖아요. 비록 음식 솜씨가 형편없지만 조금이나마 성의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부엌에 가 봐도 될까요?”

예상외로 눈치 빠른 모습에 이선화는 흔쾌히 대답했다.

“마음이 참 기특하구나. 얼른 가보거라.”

양진아가 자리를 비우자 임우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체 무슨 목적이 있기에 부모님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쓰는 거지?

그에게 잘 보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집을 온 게 아니란 말인가?

임우진의 생각 따위 알 리 없는 양진아는 온통 이선화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전생에 고정수의 어머니를 모셨던 경험으로 볼 때, 안주인의 비위를 맞추는 게 바깥양반 시중을 드는 것보다 훨씬 더 유용했다.

이선화가 그녀를 마음에 쏙 들어 하는 시점부터 제후 저택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임씨 가문에서 자리를 잡아야만 파렴치한 간통자에게 복수할 여유가 생길 테니까.

어젯밤의 일은 이미 제후 저택에 소문이 파다했고, 비록 입 조심하라는 이선화의 엄명이 떨어졌지만 시종들은 원래 시집오기로 한 마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침 일찍 부엌에 나타난 그녀를 보자 식모들이 눈빛을 주고받더니 공기 취급했다.

“작은 마님, 아침 식사가 곧 준비될 예정이라 굳이 재촉하실 필요 없습니다. 워낙 지저분한 곳이라 옷이나 더럽히지 마시고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누군가 퉁명한 목소리로 양진아를 내쫓았다.

양진아가 시온을 쳐다보자 그녀는 얼른 다가가서 말했다.

“할멈, 작은 마님께서 직접 제후 나리 부부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내쫓는다는 건 불효라도 저지르라는 뜻인가요?”

식모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단지 작은 마님을 배려하는 마음에 충고했을 뿐, 직접 요리하실 거라면 얼른 들어오세요. 하오나 우리는 워낙 바빠서 딱히 도움을 드리기 어려울 듯싶습니다.”

시온이 발끈하며 외쳤다.

“이...!”

“시온아, 할멈들이 아침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을 텐데 네가 좀 도와주거라.”

양진아는 그녀를 제지하고 소매를 걷어붙인 다음 부엌으로 들어섰다.

뒤따라간 시온은 각종 요리 도구를 쳐다보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이내 옆에서 구경하던 식모를 힐끔거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아씨, 차라리 할멈들한테 은냥을 좀 쥐여주고 대신 만들어 달라고 할까요? 진짜 직접 요리하실 거예요?”

물론 이선화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걸 시온도 알고 있었다. 다만 괘씸한 식모들이 양진아를 우스갯거리로 삼을 줄을 몰랐다. 댁에 계실 때 요리해본 적이 없는 분이신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야, 내 말만 잘 따르거라.”

양진아는 생긋 웃으며 옆에서 지켜보는 식모들을 가뿐히 무시했다.

식모에게 은냥을 주고 도움을 받는 건 말보다 수레를 먼저 앞세우는 꼴이다. 고작 밥 한 끼 정도는 그녀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전생에 고정수의 어머니를 모시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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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내 본채로 돌아와 보니 이선화만 홀로 있었다.“어머님, 며느리 왔습니다.”양진아는 조신하게 걸어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물론 속으로는 조마조마했다.마당에서 안정미와 실랑이를 벌인 것도 모자라 제후 저택까지 끌어들였으니 무슨 벌을 내릴지 알 수 없었다.“밑반찬이 맛있더구나.”하지만 예상외로 이선화는 마당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감사합니다. 만약 입맛에 맞으시면 나중에 다시 만들어드리겠습니다.”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자 양진아는 서둘러 계집종의 손에서 찻주전자를 받아 들고 차를 따라주었다. 그러고 나서 깨끗한 손수건도 건네주었다.이선화의 눈썹이 까딱했다. 이내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돌려준 다음 느긋하게 말했다.“우리는 그렇게 꽉 막힌 집안이 아니란다. 우진의 부인으로서 부군을 잘 모시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겠느냐? 제후 저택의 며느리는 요리나 바느질에 소질이 없을지언정 현명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그리고 곁눈질로 생각에 잠긴 양진아를 힐긋 쳐다보더니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하오나 이미 시집온 이상 제후 저택의 일원으로서 얼굴에 먹칠하는 짓은 하지 말거라. 물론 우리도 너를 망신시키는 일은 안 할 것이다.”이선화는 결코 살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외모는 고상하고 기품이 흘러넘쳤고, 비록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오히려 더 위엄이 있어 보였다.양진아를 훈계하는 동안 방안의 계집종들은 감히 찍소리도 못 냈다.그러나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충고하는 건지 아니면 트집을 잡은 건지 어찌 모르겠는가?“말씀 감사합니다. 반드시 명심하여 제후 저택에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이선화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양진아가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은 몰랐고, 쓴소리를 더 하려고 했으나 순순히 꼬리를 내린 모습을 보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결국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됐다. 내 시중은 들 필요 없으니 방으로 돌아가거라. 우진이가 집에 있는 이상 부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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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으로 돌아온 양진아는 임우진이 서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민 끝에 직접 차를 끓여 서실로 향했다.임우진의 호위무사 남혁수가 문밖을 지키다가 양진아를 보자 서둘러 인사를 올렸다.“마님, 오셨습니까? 나리께서 독서 중이십니다. 어서 들어가 보십시오.”말을 마치고 나서 고분고분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모셨다.양진아는 눈을 깜빡였다. 서실처럼 중요한 장소에 보고도 없이 함부로 드나들어도 되는 건가?하지만 남혁수의 기대에 찬 눈빛을 바라보자 물어보기도 애매해서 경혜의 손에 든 다과를 받아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옆에 서 있는 경혜는 바보처럼 헤실거리는 호위무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아씨는 나리께 다과를 드리러 가는 건데 왜 본인이 더 신났죠?”“당연하지. 나리께서 나보다 더 기뻐하실지도 몰라.”남혁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경혜는 당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네?”“그러니까...”말을 이어가다가 뒤늦게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리고 정색했다.“어차피 말해줘도 넌 몰라. 나리와 마님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그랬어.”“그쪽만 좋으면 됐지요, 뭐.”경혜는 몰래 눈을 흘겼다. 단지 나리를 지키는 호위무사가 이렇게 듬직하지 못해서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변덕이 이리 심해서야, 원.남혁수는 묵묵부답하는 경혜를 힐긋 쳐다보더니 어깨를 콕콕 찔렀다.“네가 모시는 분이 이미 시집을 갔으니 마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단다. 계속해서 아씨라 불렀다가 나중에 할멈의 귀에 흘러 들어가면 혼날지도 몰라.”그러고 나서 의혹이 가득한 그녀의 눈빛에 목소리를 낮추었다.“제후 부인의 시중을 들어주는 할멈은 규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야.”“충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꼭 명심하겠습니다.”경혜가 활짝 웃자 남혁수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양진아는 다과를 들고 서실에 들어섰다.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을 지나자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긴 다리를 착생 위에 걸치고 앉은 임우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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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70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람들은 모두 여느 때보다 정색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지금 그들 앞에 서 있는 양진아는 애초에 호락호락하던 아씨가 아니었다.시집을 가서 진국후 저택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차지하게 되었으니까.한편 안정미는 여전히 내키지 않아 불만을 토로했다.“지금 우릴 협박해? 우린 다 한 가족이야. 고모도 우리한테 엄청 잘해주시고. 대체 언니는 왜 그렇게 못하는 거야?”양진아가 실소를 터트렸다.“네 말대로라면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닌 양씨 일가에 있어야겠네?”“너...”“됐다!”박정숙은 안정미를 째려보고 다시 양진아에게 시선을 옮겼다.“진아 말이 맞아. 하지만 이제 성균이가 잡혔으니 우리 모두 단합해서 어떻게든 구해내야지. 진아 너도 이번 일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양진아는 시선을 올리고 할머니께 답했다.“저는 단지 새색시일 뿐이니 책임지고 싶어도 그럴만한 능력이 못 돼요. 추월이가 돌아오거든 상세한 정황을 묻는 게 더 나을 겁니다.”다들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초조한 마음으로 추월을 기다려야만 했다.안혜선은 자꾸 양진아만 흘겨봤다. 하루빨리 임우진의 마음을 사로잡고 제후 저택을 손에 넣으라고 쉴 새 없이 딸을 설득하려는 어머니였다.양진아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그녀는 심지어 딸에게 손까지 댈 기세였다. 다만 이때 청연, 청하가 바로 가로막았다.안혜선이 분노가 폭발하려 할 때 양진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어머니, 이 두 아이 모두 제후 저택 사람입니다. 제가 저택에서 쫓겨나길 원치 않으신다면 얼른 그 입 좀 다물어요.”안혜선은 놀란 기색이 역력하더니 끝내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단지 딸아이가 친정에 보탬이 되길 바랄 뿐 제후 저택에서 쫓겨나는 건 원치 않았다.다만 그녀는 왜 양씨 일가의 상황이 특별하다는 걸 생각지 못했을까? 만약 양씨 일가에서 안혜선이 이렇게 못 미더운 사람이란 걸 알았다면 양 태부와 최영옥 모두 애초에 그녀를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다. 두 아이가 어머니를 여의게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9화

    박정숙은 슬픈 척하면서 눈가에 음모와 계략이 잔뜩 드러났다. 이 모습을 본 양진아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전에 대체 얼마나 멍청했으면 외할머니가 날 엄청 아껴주신다고 여긴 걸까?’다만 그녀는 전혀 티내지 않고 재빨리 다가가서 박정숙을 부축했다.“할머니, 괜찮으세요? 외숙모는 왜 울고 계세요? 어머니는 어디 가셨죠?”“진아야, 얼른 나 좀 구해줘.”이때 하진경이 불쑥 양진아에게 덮쳐들었다.“네 서방한테 말해서 외삼촌 좀 구해달란 말이다.”“...”양진아는 아무 말도 안 했다.“그 입 다물지 못할까! 관아가 무슨 진국후 저택에서 여는 줄 알아? 구하고 싶다면 구하게?”박정숙이 냉큼 쏘아붙였다.물론 그녀도 하진경과 똑같은 생각이지만 곧이곧대로 입밖에 내뱉을 순 없었다.“진아야, 방금 한 무리 위병들이 와서 네 삼촌을 잡아갔어. 우진이가 능력이 좋잖아. 어서 우진이더러 네 삼촌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아보게 해줄래? 그래야 우리도 대안을 세우지!”양진아는 곧장 대답했다.“예, 할머니, 걱정 마세요. 지금 바로 사람 보낼게요.”“추월아, 혁수 찾아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해.”“예, 마님!”추월이 나간 후 양진아는 박정숙을 부축해서 일으켰다.“남혁수는 서방님을 모시는 가장 든든한 사람이에요. 분명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낼 거니까 숙모도 그만 울어요. 이번 일은 제가 꼭 책임지고 알아봐 줄게요.”양진아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박정숙은 문득 그런 그녀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양진아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안 변했지만 예전처럼 그리 쉽게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그녀가 실눈을 뜨고 사색에 잠겨있을 때 하인이 달려와서 안정미가 왔다고 전해드렸다.안정미는 아직 아버지가 잡혀간 줄 모른 채 침울한 집안 분위기에 흐느끼는 어머니까지 살펴보더니 다짜고짜 양진아를 질책했다.“언니는 꼭 어머니 생신날까지 이렇게 괴롭혀야겠어? 사람들이 언니를 불효녀라고 삿대질할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봐?”“아니면 진국후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8화

    안순자는 허겁지겁 본채로 달려갔다.그 시각 안씨 일가 어르신 박정숙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짙은 보라색 비단의 옷을 입고 같은 색상의 장식용 머리띠를 두른 채 근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로 위엄이 넘치는 분위기였다.안순자가 홀로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자 박정숙이 물었다.“왜 혼자 오는 것이야? 진아는?”“그게... 큰 아씨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뭐라고?”박정숙이 탁자를 내리쳤다.“누가 돌려보낸 거야?”“다름이 아니라 아씨께서 정문이 닫혀있다고 그냥 가버리셨습니다. 게다가 함께 온 계집종이 돌아가서 제후 부인께 알리겠다고 했어요. 안씨 일가에서 큰 아씨를 능멸한다고요...”“뭐?”이때 안성균의 부인 하진경이 버럭 화를 냈다.“그냥 돌려보내면 어떡하란 말이냐? 걔가 가면 내 생일은 어쩌라는 거야?”박정숙이 옆에 앉은 안혜선을 보더니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너는 대체 딸을 어떻게 가르쳤길래 이 모양 이 꼴이니? 이제 하다 하다 내 앞에서까지 으름장을 놓으려고 해?”“정미 혼수를 거둬간 걸 네가 다시 돌려받았다니 뭐라 더 따지지 않았는데 오늘 또 보거라. 외숙모 생신연에 참석하라는 것도 이렇게 연신 거절하고 있잖느냐.”“네 눈엔 이 어미가 있긴 해? 우리 안씨 일가가 있긴 하냔 말이다!”안혜선이 황급히 대답했다.“어머니, 지금 당장 가서 이년을 따끔하게 혼내고 이리로 데려와서 사과하게 하겠습니다!”그제야 박정숙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계집종 두 명을 진아한테 보내거라. 그리고 양씨 일가에서 따라온 그 계집종들은 싹 다 돌려보내.”“오늘 그 계집종들이 이간질해서 이 사달이 난 거잖아. 어이가 없어서 원!”“예, 어머니.”다만 안혜선이 문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문 지킴이가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왔다.“큰일 났어요! 관아에서 나리를 잡아갔습니다!”“뭐라고?”안혜선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누굴 잡아가?”“나리요! 나리께서 금방 잡혀갔습니다.”문 지킴이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위병들이 다짜고짜 대문을 부수고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7화

    임우진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대체 이건 무슨 말이야? 누가 진아 앞에서 뭐라고 말한 게야?”요 이틀 관아에 일이 바빠서 거의 매일 심야에 돌아오는 임우진은 양진아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줄곧 서실에서 지냈다.그러나 지난번 호되게 겁을 준 이후로 아무도 감히 그에게 가까이하지 못한다.설마 누가 또 그가 서실에서 쉬는 걸 보고 양진아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꼼수를 부린 걸까?임우진이 오해하자 남혁수는 재빨리 해명했다.“아니요, 다름이 아니라 마님께서...”그는 양진아가 어떻게 안성균을 처리할지에 대해 낱낱이 전해드렸다.“마님의 이 방법은 저로서도 생각해낼 만한데 나중에 안성균이 알게 된다면...”“그야말로 야비한... 아니, 현명한 수단입니다!”임우진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남혁수는 얼른 태세를 바꿨다.임우진은 그를 힐긋 째려봤다.“얼른 가서 임 청지기더러 진아한테 무녀를 두 명 붙여두라고 하거라.”남혁수는 실로 어이없을 따름이었다.‘나리, 마님께서 언젠가 똑같은 수법을 나리께 쓸 거란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무예를 습득한 노비는 다소 구하기 어려웠다. 제후 저택이라 할지언정 무녀를 구하느라면 며칠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임태원은 3일도 채 안 돼서 양진아에게 무녀를 보내드렸다.양진아는 마침 안씨 일가로 가려던 참인데 청지기가 보내온 두 명의 무녀를 보더니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맙구나.”안 그래도 어멈을 몇 명 데리고 갈까 고민하던 참인데 마침 무녀를 보내왔으니 너무 다행이었다. 양진아의 어머니부터 시작해서 외할머니까지 다들 막무가내인 사람들이고 큰외숙모는 덩치 큰 체구에 인성이 나쁘기로 소문났다.전에 계집종을 데리고 갔을 때 감히 찍소리도 못 냈는데 이번엔 무녀라서 한시름을 놓았다.임태원이 그녀에게 답했다.“나리께서 친히 분부하신 일입니다. 마님이 걱정되어 무녀를 보내드린 겁니다. 마음에 안 든다면 제가 또 가서 물색해볼게요.”‘임우진이었어?’‘요즘 쭉 바쁜 것 같던데 보양식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6화

    임우진은 다음날 바로 남혁수를 양진아에게 보냈다.양진아는 앞쪽 별채에서 남혁수를 만난 후 바로 그에게 안씨 일가를 조사하라고 분부했다.“우리 외삼촌 안성균은 공부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다. 너는 가서 그자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법도를 어긴 일이 있는지 조사해 보거라. 하나도 빠짐없이 인증, 좌증 전부 조사해내야 할 것이야.”남혁수는 충격에 휩싸인 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이때 양진아가 눈썹을 치켰다.“무슨 문제라도 있느냐?”“아닙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그는 놀란 마음을 달래고 공손하게 대답했다.“반드시 이른 시일 내로 조사를 마치겠습니다.”양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보냈다.남혁수는 임우진의 지시를 받은 터라 아주 열심히 나섰다. 양진아가 임우진의 마음속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3일도 채 안 될 사이에 그는 안씨 일가에 관한 모든 일을 낱낱이 조사하여 양진아에게 보고했다.양진아가 문서를 꼼꼼하게 훑어보았고 남혁수가 옆에서 설명을 이어갔다.“마님, 안성균의 만행은 전부 여기에 적혀있습니다. 대부분 나쁜 성분의 물건을 좋은 물건으로 눈속임해서 거래했고 본인이 직접 도맡은 처사를 두 번씩이나 사고를 냈습니다. 상관은 그자가 양씨 일가에서 추천한 사람이라고 최대한 체면을 봐준 것 같습니다.”“그자의 동료들도 찾아가 보았는데 다들 그자와 함께 일하길 꺼렸지만 안씨 일가의 체면을 보고 참아온 것 같더라고요.”그는 말하다가 불현듯 양진아가 안씨 일가를 언급할 때 표정이 떠올라 한마디 덧붙였다.“사실 이것들은 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단속만 잘한다면 큰 사고는 면할 테지요.”이에 양진아가 시큰둥하게 쏘아붙였다.“안성균의 성격에 큰 사고를 빚을 일이 없다는 말이냐?”남혁수는 목을 움츠리고 감히 말을 내뱉지 못했다.“사람 한 명 보내서 안성균의 만행을 적발하고 체포한 뒤 내 소식을 기다리거라. 잘 들어! 이번 일은 제후 저택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임우진이 처가에 손을 댄 일이 알려지기라도 하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5화

    “들라 하라!”임우진은 곧장 한마디 더 보탰다.“앞으론 마님의 부탁이라면 제때 나에게 알려야 한다.”“예, 나리!”하선은 밖에서 반나절이나 기다렸다. 임우진이 양진아 때문에 화나서 일부러 그녀를 밖에 세워둔 줄 알았는데 모사 두 분이 서실에서 걸어 나왔다.‘내가 괜한 오해를 했네!’서실 안에서 임우진은 하선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더냐?”하선은 분명 마님께 남혁수를 빌려오라는 분부를 받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일은 반드시 나리께서 직접 마님을 찾아가 상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마님께서 찾으십니다, 나리.”“무슨 일로?”임우진이 눈썹을 치켰다.“그건 잘 모르겠습니다.”“알겠다. 지금 바로 간다고 전하거라.”하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물러났다.한편 임우진은 마음이 살짝 복잡해졌다.‘설마 내가 화난 걸 알고 달래주려는 거야?’‘이번엔 절대 쉽게 용서치 않아!’그는 양진아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정성껏 일정을 짜놓았지만 결국 고정수의 소식 때문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마음이 한없이 식어갈 따름이었다.임우진은 격하게 갈등하다가 마침내 뒤쪽 별채로 갔다.그 시각 양진아는 하선의 말을 듣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 임우진이 설마 남혁수를 빌려주기 싫어서 이러는 걸까?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임우진은 이렇게까지 속 좁은 남자가 아니니까. 고정수를 조사해보라고 해도 거절, 남혁수를 빌려서 안씨 일가를 조사해보려고 해도 거절하는 게 과연 무슨 경우란 말인가?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문 앞에 있던 계집종이 청아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인사를 올렸다. 양진아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임우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걸상에 앉았다.“그래, 무슨 일로 부른 것이냐?”양진아는 잠시 침묵했다. 일부러 이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남혁수를 빌려주기 싫어서인지 몰라서 마지못해 질문을 건넸다.“서방님, 남 호위를 잠시 제게 빌려줄 수 있나요?”임우진의 안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4화

    양진아는 고씨 일가에서 발생한 일을 전혀 모른 채 안씨 일가에서 보낸 청첩장을 받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때 경혜가 옆에서 살갑게 말했다.“이건 청지기가 보내온 거라 큰 마님은 몰라요.”“모르시길 다행이지. 내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잖아!”양진아는 화나서 청첩장을 내팽개쳤다.“제 주제를 알아야지, 어딜 감히 나더러 같잖은 관원 부인의 생신연에 참석하라고 하는 것이야? 뻔뻔스러운 것!”청찹장에는 양진아더러 외숙모의 생신연에 참석하라고 초대하는 내용이었다.청지기가 중도에 가로채길 다행이지 본채까지 넘어갔더라면 그녀는 시어머니께 무슨 오해를 받을지 모른다. 이제 슬슬 주제 넘치게 머리 꼭대기로 기어오른다고 여길 수도 있다.“노여움 푸세요, 마님. 그럼 이 초대에는 응하시겠습니까?”“가야지! 아주 푸짐한 선물도 해드릴 거야!”양진아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그녀가 안씨 일가를 한방에 기선제압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아마 안혜선을 쥐락펴락하듯 그녀도 쉽게 조종할 수 있을 거로 여길지 모른다.문제를 해결하려면 한방에 급소를 찔러야 한다. 안씨 일가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자가 바로 3대 독자 안현조이지만 실세는 양진아의 큰외삼촌 안성균이다.안성균은 현재 공부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어서 벌어들인 은냥으론 겨우 생계유지를 하는 처지였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그래서 안씨 일가는 양씨 일가의 피를 쪽쪽 빨아먹고 있다.하지만 욕망이란 골짜기는 메우기가 어려운 법이고 안성균 그 인간은 술과 여자, 도박 어느 하나 손을 대지 않은 게 없다. 양진아가 전생에 들었다시피 안성균이 벌어들인 돈은 죄다 더러운 돈이라고 했다.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하선을 불러왔다.“서방님이 돌아왔는지 가보거라. 만약 돌아왔으면 내가 혁수를 잠시 빌리고 싶다고 전하거라.”하선이 분부대로 나가서 알아보았더니 제후 나리가 이미 돌아온 상태였다.나리께서 서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마당으로 향했다.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3화

    “제가 생각이 짧아서 서방님을 난처하게 했군요.”양진아가 먼저 사과했다.그녀가 조바심 때문에, 전생의 일들이 떠올라서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이번 생은 임우진과 혼인했으니 전생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양씨 일가와 안씨 일가를 완전히 떼어놓을 거야!’안정미와 고정수가 아무리 그녀를 해치고 그녀의 집안까지 해치려 해도 전생처럼 쉽게 해낼 수는 없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저택까지 돌아갔다. 저택에 도착한 후 임우진은 곧게 서원으로 향했다.양진아는 그제야 알아챘다. 이 남자가 삐졌다는 것을 말이다.‘내가 뭘 잘못했지? 고정수 한번 조사해달라고 한 게 전부인데? 나도 다 저택과 친정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 대체 내가 무슨 사심을 부렸다고 이러는 거야?’양진아는 어리둥절한 채 하선에게 질문을 건넸다.“혹시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게야?”하선과 추월은 양진아의 시중을 드는 요 며칠 동안 애초의 조심스러웠던 태도서부터 이제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마님의 성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마님은 제후 나리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깊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서방님보다 시어머니를 더 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마님은 제후 나리와 서로 공경하는 부부로 지내고 싶어 하지만 제후 나리가 얼마나 거만한 사람인가?수많은 부잣집 따님들의 연모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마님과의 혼약을 지키고 단 한 번도 파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그런 제후 나리의 마음도 몰라주고 마님께서 무심한 태도로 임하고 심지어 하루가 멀다 하게 고 귀공을 언급하고 있으니 기분이 언짢아질 수밖에 없었다.다만 이런 것들은 계집종인 그녀가 말할 자격이 없다.하선은 고개를 푹 떨구고 공손하게 말했다.“소인은 모르겠습니다. 본채로 가시겠습니까, 마님?”양진아는 머리를 끄덕이고 이 일을 뒤로 한 채 본채로 향했다.그 시각 안정미는 백미가 문 앞에서 계집종과 함께 겨우 마차를 한 대 불러왔다.그녀는 고씨 저택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 양씨 일가로 향했다.서쪽

  • 나리, 마님을 탐하지 마십시오   제62화

    “왜 그렇게 웃는 것이야?”양진아는 고개를 내젓고 임우진과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한편 두 여자를 따라 나온 안정미는 모두에게 버림받았다. 정나현은 마차를 타고 떠나갔고 양진아도 딱히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안정미는 결국 백미가 문 앞에 덩그러니 남게 됐다.안달이 났던지 그녀가 대뜸 양진아를 향해 소리 질렀다.“언니, 잠깐만! 나 좀 실어줘!”다만 양진아는 뒤돌아보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안정미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언니...”“안 낭자가 기억력이 안 좋다면 내가 대신 안씨 저택에서 했던 말을 되새겨줄 수도 있소.”임우진이 고개를 돌리고 그녀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나는 여자를 안 때린다고 한 적이 없거늘.”순간 안정미는 사색이 되어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진국후 저택의 마차가 멀어져가는 걸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마차 안에서 임우진은 기분이 언짢은 양진아를 바라보며 물었다.“혹 저자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이냐?”이에 양진아가 머리를 흔들었다.“아니요. 저는 단지 나현 군주가 왜 정미랑 가깝게 지내는지가 의문입니다.”정빈 대군은 황제와 이복형제 사이이고 둘은 어려서부터 태후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라온지라 유독 돈독한 정을 쌓고 있다.정빈 대군은 황제의 왕위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당연히 황제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초월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하지만 안씨 일가와 정빈 대군 저택의 문벌은 천지 차별이다. 바로 이 때문에 양진아가 몹시 의아한 것이다.전생에도 안정미와 나현 군주가 이토록 가깝게 지냈을까?아쉽게도 전생에 양진아는 고씨 일가에 갇혀서 외부 소식을 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리하여 환생했지만 딱히 유용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여태껏 몰랐느냐? 고정수는 정빈 대군의 길을 걷고 있어. 지금 호부 금부사에서 사관 직을 맡고 있지.”임우진이 담담하게 말했다.“고정수는 나름 유능한 인재이고 정빈 대군 또한 예의 바르고 고결한 성품을 지녀서 고정수를 중히 여기고 있단다. 그러니 나현 군주가 안정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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