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러지.” 은시후는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말이지.. 짝퉁을 자꾸 진품이라고 생각하니 참 대단해..?”진동오는 그에게 몇 마디를 듣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고개를 돌려 구경꾼들을 향해 말했다.“저기! 박 사장님, 이 사장님, 이 물건이 진품인지 짝퉁인지 감정 좀 해주시죠.”그가 호명한 두 사람이 갑자기 난색을 표하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골동품을 감정하는 일은 진품이 되어도, 짝퉁으로 판명이 나도 모두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며, 잘못하면 동업자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아이구.. 저희 둘도 견식이 좁아 저 것이 진품인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진동오는 “그냥 잔소리 말고 제대로 감정해 주시죠. 하지만, 만약 사장님들이 날 농락한다면, 나중에 다시 감정할 사람을 찾을 겁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용서를 할 수 없기 때문이죠?“아이구, 도련님! 화내지 마십시오!”두 사람은 놀라 앞으로 걸어 나왔다.골동품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 중에 감히 진동오에게 미움을 사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그래서 이 두 골동품 가게 사장들은 어쩔 수 없이 팔찌를 받아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몇 분 후 사장 중 한 명이 벌벌 떨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허허허..”“웃지만 말고 당장 말해요!” 진동오는 차갑게 말했다.사장은 당황하여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이게.. 제가 한 번 살펴보니.. 진짜 옥이 아니라 수제로 만든 짝퉁입니다..”그의 말을 들은 진동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가 순식간에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은 것 같은 색이었다.그의 성대는 마치 화를 참고 있는 듯 심하게 꿀렁거렸다. 두 사장들은 놀라서 몸을 움츠리고 사람들 뒤로 숨었고, 다시는 머리를 내밀지 않았다.은시후는 “이제 내 말을 믿겠나?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짝퉁을 사다니.. 아무래도 진동오 씨는 돈이 참 많은 가 보죠?”“이번엔 내가 잘못 고른 거야!” 진동오는 이를 악물
진동오의 강경한 말투에 은시후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비웃었다. “넌.. 정말.. 이런 것도 구분 못하는 거야? 고대 의학 서적에 ‘구규(九竅)’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이 구규는 몸에 있는 9개의 구멍을 말하지. 이 구규를 옥으로 덮으면, 죽은 사람은 불멸한다는 말이 있는데.. 설마 이 정도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뭐? 죽은 사람이라니? 불멸은 또 뭐고?” 진동오는 난생 처음 듣는 단어들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은시후는 “후우.. 애송이는 정말 질색이라니까..”라며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런 것도 모른다고? 그럼.... 이런 모양으로 만든 껴묻거리도 들어본 적 없겠군?”진동오는 골동품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사실 물건을 고를 때 이렇게 치밀하게 연구하고 입찰 받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저 주변에서 좋다고 하면 그냥 사버린 뒤 밖에서 허세를 부리는 게 다였다.“이 멍청한 자식!” 은시후는 조소하며 말했다. “부장품으로 옥을 썼다고. 죽은 사람의 시신에 이런 옥으로 장식을 하는데, 귀∙코∙입∙눈을 포함하면 7개의 구멍인데, 생식기와 항문까지 다 합쳐서 9의 구멍이라고 하는 거다.”“죽은 사람?!!” 진동오는 입을 크게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동공은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목에 걸린 옥을 한 번 쳐다보았다. 온 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니미.. 이게 뒤진 사람의 몸에 걸치던 거라고?”은시후는 “하아.. 진짜 바보도 아니고.. 네가 차고 있는 건 죽은 사람의 배설구.. 즉 항문에 넣던 건데.. 그걸 목에 걸고 있으면 흉측하지 않냐고..”진동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손에 들려 있던 옥 목걸이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속에서 심한 메스꺼움이 일었다.‘지금.. 이..이..건 그 더러운 곳에 쑤셔 넣었던 거라고?! 그걸.. 마스코트 삼아 목에 걸고 3년이나..’“우엑..!”진동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조금 전
진동오는 상대방이 발걸음을 돌리는 것을 보고, 은시후가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소리를 지르며 “저 놈을 잡아라! 감히 나에게 트집을 잡다니, 누군가 뒤에서 시킨 것이 분명해!”라고 말했다.“네가 아무리 그렇게 날뛰어봤자, 날 못 건드려.”“못 건드려? 허허.. 한국에서 내가 못 건드리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진동오는 이어 말했다. “저 자식을 잡아서 다리를 하나 부러뜨린 다음, 한 번 물어봐.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우리 그룹에 이렇게 짜증나는 일을 만들고 싶어하는지.”그는 은시후를 자신의 그룹을 시기하는 경쟁사가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가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했던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경호원 몇 명이 즉각 움직여 은시후의 앞을 가로막았다.또 다른 경호원 2명은 김상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거칠게 그를 잡아 끌었다.김상곤은 굉장히 놀랐다. 골동품을 찾아냈다고 좋아하다가 이런 화를 자초하다니...경호원이 김상곤을 잡으려 하자 은시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던 큰 키의 남자를 걷어차고, 서너 걸음을 간 뒤 김상곤을 붙잡고 있던 사내들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퍽!”경호원은 김상곤을 잡으려다 갑자기 뺨을 한 대 맞고 코피를 쏟으며,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뒤로 물러섰다.또 다른 보디가드는 은시후가 주먹을 날리자 재빨리 전기봉을 꺼내 은시후를 향해 세차게 가격했다.“아!” 김상곤은 “시후야, 조심해라!”라고 소리쳤다.장인어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시후는 날렵하게 몸을 돌리며 날아오는 봉을 피했고, 다른 손으로 보디가드의 왼쪽 손목을 잡아당겨 약간 힘을 줬다.“파악!”전기봉를 든 경호원은 어깨로 넘어진 채 땅에 부딪혔고, 고통에 이를 악물고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김상곤은 말문이 막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청년이 자신의 사위가 맞는지 반신반의했다.우리 사위가 언제부터 이렇게 싸움을 잘했지?시후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있던 전기봉을
주변에서 있던 구경꾼들은 모두 은시후의 말이 사실인 줄 알고 하나같이 집에 돌아가 다시 한번 그 채널을 자세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멍하니 서있던 진동오는 정신을 차리고는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이게 웬 망신이야!? 거금을 들여서 경호원을 데리고 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TV에서 기술을 배운 풋내기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가 당할 줄이야?!진동오는 이런 싸움과 관련된 지식에는 문외한이라 은시후의 수준을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경호원들은 그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전문가들은 손만 잡아봐도, 서로의 실력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한 눈에 봐도 은시후가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분명 고단수다!’그러자 경호원 몇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은시후를 바라보며 경외하는 표정을 지었다.김상곤이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 역시 진동오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었기에, 자신의 사위가 정말 싸움을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힘이 세서 그런 것인지 그의 실력을 알 수가 없었다.은시후는 이때 진동오에게 “자 그럼 덤벼 보시지? 누가 먼저 선빵 칠래?”라며 미소를 지었다.“너..너, 오지 마! 거기 서!”진동오는 놀라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섰다.그의 이런 꼬락서니를 보고 은시후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진동오는 겁에 질려 그를 노려보다가 황급히 뒷걸음질쳤다.자기가 만약 그에게 당한다면, 분명 보름 정도는 병실 신세를 져야 할 것이 뻔했다!그 때.. 검은색 세단이 천천히 다가와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기사가 뒷문을 열자 누군가가 차에서 걸어 나왔다.이를 본 진동오는 크게 기뻐하며, “누나! 누나! 나 지금 이 자식에게 맞았어.. 흑..! 빨리 와서 나 좀 구해줘!”은시후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사람들이 양 옆으로 갈라서 길을 내주고 있었고,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성이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
“너무 약하잖아?!” 은시후는 짜증을 내며 순식간에 몸을 옆으로 휙 돌렸고, 곧이어 다리를 들어 진설아의 엉덩이를 걷어차 그녀를 날려버렸다.이 상황에 놀라 하마터면 턱이 빠질 뻔한 진동오는 물끄러미 이 장면을 바라보며, “저..저게... 말도 안 돼!”라며 나지막이 말했다.진설아는 수치스러움에 분노했다. 무술을 배운 후 지금까지 이렇게 굴욕적인 적이 없었던 데다가, 상대방이 조금 전 발로 걷어찬 곳도 민망한 부위였기 때문이다.그녀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로 일어나자마자 은시후를 향해 돌진했고, 그녀는 내심 오늘 반드시 이 자식에게 자신을 망신 준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결심했다!“설아야! 그만둬라!! 은 선생님께 무례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며 갑자기 중년의 사내가 달려와 진설아를 붙잡았다.“아버지, 저리 비켜요~~~! 내가 저 자식을 죽여버릴 거라고!!”“아버지도 내 엉덩이를 감히 걷어찰 수 없어! 그런데 저 자식이 내 엉덩이를 찼다고요!! 아직도 아픈데?!! 그런데 지금 날 말리고 있어, 아버지?!”“입 다물어!”중년 남성은 진설아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이어 겸손한 얼굴로 은시후에게 다가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은 선생님, 여기서 또 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 딸과 조카를 대신하여 사과를 드립니다.. 돌아가서 제가 잘 타이르고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진설아와 진동오는 지금 이 상황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를 지켜봤다.자신들의 아버지는 손꼽히는 재력가에 그만큼 능력도 좋은데, 어찌 저 촌뜨기에게 이렇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가?은시후는 이 중년 남자가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보았다.앞서 송민정과 감정을 하러 갔을 때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진원호였다.그러자 은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어르신, 아무래도 저 진동오라는 조카는 확실히 잘 가르치셔야 할 것 같습니다..”진원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진설아를 노려보았다. “어서 와서 은 선생님에게 사과하거라.”
진원호는 은시후의 말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우리 그룹이 망할 것이라고?대가가 너무 참담할 정도로 큰 것이 아닌가?진원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한참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제 평생 한 번도 양심에 거슬리는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선행을 하면서 덕을 쌓아 왔는데.. 어찌 이런 꼴이 됐는지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은시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번 로만 글라스 건도 다 집안에 일어나고 있는 불길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진원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 지는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가 여러 수단과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만 은 선생님을 만나기 전 까지요.” 지난 번 그는 은시후를 그저 골동품에 조예가 깊은 젊은이로만 생각했기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그가 불길한 기운을 사라지게 만들고 나서야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가문을 구할 방법에 대해 그에게 묻게 된 것이다.그는 재빨리 은시후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으며 간청했다. “은 선생님!! 제발 저희 그룹을 살릴 수 있도록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말을 마치자, 그의 옆에 있던 보디가드가 귓속말로 그에게 몇 마디를 속삭인 뒤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은시후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집안의 일은 직접 해결하시죠.”그와 진원호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그저 지난 번 로만글라서 건으로 만난 것이 다일 뿐이었다.더구나 눈앞에 있는 진동오는 자신에게 잘못까지 저지르지 않았던가.한편, 진원호 옆에 서 있던 놀란 표정의 진설아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녀는 성격이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여리여리한 몸매와 흰 피부에 검은색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 모두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신의 아내도 아니며, 더욱이
은시후의 장인도 눈만 껌벅거리며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평생 이런 일은 당해본 적이 없었는데....은시후는 팔찌를 보고도 받지 않고, 웃는 듯 마는 듯 진원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르신의 가문을 살릴 수 있다고 어찌 그렇게 확신 아시는지요?”진원호는 “은 선생님께서 못하신다면 아마 이 세상에 아무도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며 경건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은시후는 담담하게 웃었다. 사실 진원호의 말은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지난 번 예인당에서 읽었던 『구현보감』에 이러한 살기와 관련된 내용과 이것을 푸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은시후는 팔찌를 힐끗 쳐다보고는 덥석 받았다.팔찌가 반짝이는 것이 유나의 팔목에 있으면 정말 예쁠 것 같았다.이 진원호라는 사람은.. 솔직히 말하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그저 가문의 후손을 잘 다스리기만 한다면 큰 죄는 아니게 될 것이다.이렇게 부탁하는 이상 그를 도와주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러자 은시후는 “자, 어르신께서 이렇게 정성으로 부탁하시니..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그리고는 팔찌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시후가 팔찌를 받자 진원호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소리쳤다. “선생님! 이번 생에 선생님의 가문을 대신해 해결할 일이 있다면 저희가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그의 큰 목소리는 사방에 서 있던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저렇게 필사적으로 돕는다고? 은시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렇게 되긴 했지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어르신의 집안도 이렇게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진원호는 “선생님께서 말하시는 대로 저희가 따르겠습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은시후는 옆 골동품 가게에서, 노란 종이와 붉은 주사(朱砂)를 얻어와서, 주사를 찍은 붓으로 종이에다 용과 봉황이 날고 있는 그림을 몇 장 그렸다. 그리고는 그 그림들을 진
진원호는 “저희는 선생님의 도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오늘은 급하여 준비하지 못했으니 내일이라도 저희 그룹에 한 번 모실 수 있는지요? 크게 대접해 감사를 표하고 싶은데요.”“괜찮습니다. 전 또 볼일이 있어서요.”은시후는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일은 어르신께서 덕을 많이 쌓으신 분인 것 같아 도와드린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시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진원호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젠가는 저희 그룹이 도움을 드릴 만한 곳이 있을 테니 그 때가 되면 저희를 찾아오십시오.”그러더니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은시후는 명함을 보지도 않고 받아 든 뒤 돌아서서 장인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진원호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진동오를 매섭게 노려보며 “이후에 저 선생님을 뵙게 되면 무조건 공손히 인사를 하고 절대 사고 치지 말 거라! 알아들었니?”라고 쏘아붙였다.진동오는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전 그냥 거리에 매대에서 물건 하나 샀을 뿐인데.. 이렇게도 큰 죄가 되는구나....”한편 진설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은시후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은시후의 능력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은시후가 자신의 엉덩이를 걷어찬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자존심 센 여자에게는 이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원호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위로했다. “후우.. 설아야, 복수는 생각도 하지 마라.. 우리 가족의 앞날은 선생님의 손에 달렸어...”“정말 저 사람이 한 말이 효과가 있을까요?”라며 진동오는 투덜거렸다.진원호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하면,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네 다리를 분질러 버리겠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진동오는 깜짝 놀라 목을 움츠리며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진설아는 치욕스러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알았어, 아빠... 건드리진 않을게요...”하지만, 여전히 쓰라린
시후 은 웃으며 말했다. “형님,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괜찮습니다...” 나훈구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은혜를 알면 반드시 갚아야지. 만약 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내와 자식들은 제가 실종된 줄 알고 평생 불안에 떨며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헤맸을 겁니다. 결국 제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경찰로부터 자세한 내막까지 듣게 될 테고, 그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비통해 했겠죠...” 이 말을 하며, 나훈구는 시후를 바라보다가 목이 메어 말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건 물론이고, 제 아내와 자식들이 그런 극도의 슬픔을 겪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도 구하신 겁니다. 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최선의 결과가 될 테니까요. 생활고야 어찌 되든, 저는 가족들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만 조금 힘들게 살 뿐이죠.”시후는 나훈구의 단단한 표정과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는, 마음속 깊이 감동을 느꼈다.잠시 후, 그는 성도민을 불러 곁으로 오게 하더니 말했다. “성도민 씨, 이 분은 IT 분야의 전문가, 나훈구 씨입니다. 나는 블랙 드래곤에 반드시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그를 데리고 중동으로 돌아가도록 하세요.”성도민은 기쁘게 말했다. “그거 정말 잘 됐습니다! 지금 블랙 드래곤에서는 IT 분야 하드웨어 구축을 강화하려는 참이었는데, 바로 이런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IT 인프라와 미래 로드맵을 같이 설계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거든요!”시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 블랙 드래곤은 IT 기업들과 협력해서 자체 위성을 제작하고, 상업 위성 발사 기업을 통해 발사하여 자체 위성 통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블랙 드래곤 내부의 통신은 보안 수준이 매우 높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 통신망이나 서비스 업체에 의존하면 100% 보안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시후의 질문을 들은 나훈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계획이 있겠습니까. 간신히 은 선생님의 은혜로 살아남았으니, 일단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죠...”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이미 멕시코까지 와서 선원 일을 하려 하셨던 걸 보면, 미국으로 돌아가도 마땅한 일을 찾기는 힘들지 않을까요?”시후의 이 말을 들은 나훈구의 표정엔 다소 민망함과 무력감이 함께 떠올랐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괜찮은 일을 못 찾으면, 그냥 허드렛일이라도 해야지 뭐... 우리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하셨는데, 저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형님, 제 생각엔 차라리 이렇게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제 밖으로 나오셨으니 굳이 그렇게 서둘러 돌아가실 필요는 없잖아요? 형님은 IT 쪽 일을 하셨다면서요. 그렇다면 이후엔 블랙 드래곤에서 일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블랙 드래곤은 현재 중동을 거점으로 해서 해상과 항공 양쪽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분명 IT 분야의 수요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고, 수준도 높아질 겁니다. 형님 같은 인재가 절실히 필요해요.”시후가 이 말을 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 만약 나훈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최상의 결과일 것이었다. 그는 성도민에게 충분한 보상을 준비시키고, 곧바로 중동으로 데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훈구가 거절한다면, 여기서 벌어진 비밀들을 알고 있는 그를 미국으로 그냥 돌려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구출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일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야 할 것이다.다만 시후는 가능하면 그 두 번째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이고, 이렇게 큰 사건을 겪은 이상 그에 걸맞은 기회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워버리면, 그에겐 이 피비린
때로는, 평생을 바쳐도 이성 무인에서 삼성 무인으로의 도약조차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성 무인이란, 사실 대부분의 무인들이 평생 머무는 한계점과도 같았다. 하물며, 삼성에서 사성, 사성에서 오성, 오성에서 육성으로의 도약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이번에 시후가 건넨 이 한 잔의 술이, 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단숨에 수련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었다는 건, 그들에겐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블랙 드래곤에서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성도민은 자신과 함께한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수련 능력이 상승한 것을 발견하고는, 성도민은 가슴 속 깊은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시후를 다시 바라보며, 감격과 동시에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은 뒤 공손히 말했다. “저 성도민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다른 블랙 드래곤의 구성원들도 즉시 정신을 차리고, 성도민을 따라 시후 앞에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소리 높여 외쳤다. “저희들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 역시도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들을 하겠습니다!”시후는 눈앞에 있는 100여 명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시후는 그들의 눈에 맺힌 눈물과 결연한 표정을 보고는 이들이 자신의 확고한 동료가 되어줄 것임을 느꼈다. 만족스러운 마음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은시후는, 앞으로 결코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블랙 드래곤이든 여러분 각자든, 앞으로 반드시 날개를 펼쳐, 저 넓은 하늘을 훨훨 날게 될 겁니다!”이 말을 들은 대원들은 곧바로 가슴이 뜨거워지며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이때, 지하 수술실을 불태우고 있던 화염은 이미 지상까지 뜨겁게 달궈 놓았고, 불꽃은 땅 위의 건물까지 번지고 있었다. 이에 시후는 성도민에게 말했다. “성도민 씨,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다. 모두 질서 있게 철수하도
시후의 구호가 떨어지자, 그와 함께 모든 대원들이 술잔을 들어 잔 속의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시후에게 있어 이 술에 담긴 영기는 이미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기에, 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이 느끼는 기운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애초에 이 술에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가 담겨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원들이 술을 한 번에 들이켰을 때 온몸에 강렬한 온기가 복부에서 시작해 단전으로 몰려들었고, 곧이어 기운은 마치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쪼개는 듯한 맹렬한 기세로 팔맥을 향해 폭발적으로 밀려들었다!무술가들에게 있어 자신의 실력 향상은 두 가지 핵심 요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첫 번째는, 기경팔맥 중 몇 개의 경맥이 열려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술가들의 경지와 실력을 판단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다. 경맥을 많이 열수록, 무술가의 등급과 전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미 열린 경맥이 얼마나 잘 순환되고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무술가들은 몇 개의 경맥 만을 겨우 열 수 있을 뿐, 모든 경맥을 완전히 순환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코에 있는 양쪽 콧구멍과도 같아서, 누가 더 뚫려 있느냐에 따라 들숨의 양이 달라지듯 경맥도 얼마나 원활히 순환되느냐에 따라, 에너지 흡수량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이 소주 안에 담긴 영기는 그들에게 단순히 경맥을 몇 개 더 열게 해준 것이 아니라, 기존에 뚫려 있던 경맥까지 더 넓고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즉,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무술가들의 실력을 향상시킨 것이다.그래서 이 순간 블랙 드래곤 대원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몸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 엄청난 기운이 자신이 오랫동안 뚫지 못했던 다음 단계의 경맥까지 열도록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잠시 후 누군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나 네 번째 경맥을 뚫었어! 진짜야! 네 번째 경맥이 열렸어!!”곧이어 또 다른 사람이 외쳤다. “나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시후는 지하 수술실에 있었고,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과 함께 들어오긴 했지만, 지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시후는 이제서야 소이연도 멕시코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이 순간, 소이연은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보며,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은 선생님... 리더가 선생님께서 업무가 있다고 삼성 이상 무인들만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딱 맞는 위치라... 바로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시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물었다. “이번엔 본래 신분을 사용하진 않았겠죠?”“아니에요.”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에게 등을 돌린 채, 시후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고는 말했다. “이번엔 완전히 새 신분으로 왔어요~”“좋습니다.” 시후는 미소 지으며 손에 든 소주를 그녀에게 건넸고, 조금 전 다른 대원들에게 했던 것처럼 공손히 말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소이연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은 선생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건, 제게는 큰 영광이에요!”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됐어, 자리에 돌아가요.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 더 하는 걸로 하고. 오늘 밤엔 나랑 같이 미국으로 돌아가죠. 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서요.”소이연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은 선생님, 탐정... 아직도 절 추적하고 있잖아요. 제가 미국에 가면 혹시 폐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요...?”시후는 고개를 저으며, 감회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제이크 한은 이제 이연 씨를 추적하지 못해요. 얼마 전 그 친구한테 사고가 있었거든. 그 이후로 그가 맡았던 사건들도 대부분 흐지부지 종결됐죠. 게다가 이연 씨는 이미 새로운 신분으로 바꿨잖아. 문제없을 겁니다.”“그럼 정말 다행이에요! 은 선생님께 폐만 안 된다면 저는 뭐든지 다 좋아요! 은 선생님 말씀만 따를게요!”그제야 소이연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시후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경계심과 신중함 또한 한껏 갖추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의 전체 전력은 분명 강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알려진 세상 안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였다. 세상 어딘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더 강대한 존재들은 어쩌면 블랙 드래곤보다 훨씬 더 막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래서 시후는 생각했다. 앞으로는 자신 개인의 실력 향상은 물론, 블랙 드래곤 전체의 실력도 체계적으로,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고... 만일 훗날, 그 미지의 강적들과 정면으로 맞설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적어도, 승산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성도민은 시후의 성격을 잘 알기에, 즉시 몸을 낮춰 공손하게 다짐했다. “은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저는 절대 개인적인 실력이나, 블랙 드래곤의 전력이 강해졌다고 자만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로 인해 방심하거나 적을 얕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시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나도 블랙 드래곤의 미래에 대해, 한층 더 기대하게 되는군.” 말을 마치고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자, 대원들이 줄을 서서 술을 받도록 하죠!”“예!” 성도민은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가 마당에 모인 100여 명의 정예 부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대원들! 은 선생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귀중한 술이 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대원들을 위해, 축하와 보상의 의미로 준비하신 것이다! 자 이 술은 천금의 가치가 있고, 너희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다!” 그러면서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전원 주목! 첫 번째 줄부터,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줄지어 입장해 술을 받아라! 단, 절대로 술을 흘리거나 쏟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평생 후회할 거다!”하지만 듣고 있던 대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술이길래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건지,
시후가 막 첫 잔을 따르려던 순간, 지하실 쪽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엄청난 충격과 함께, 땅 전체가 흔들렸다! 지하 수술실 입구가 숨겨진 방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는데, 폭발의 위력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었다.시후는 알고 있었다. 김미희를 포함한 악마들이 이 불꽃 속에서 재로 변해, 그 죄악의 생을 완전히 끝냈음을.그리고 그 순간, 시후는 손에 쥐고 있던 동작을 멈췄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방금 막 따른 술잔을 들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한 잔의 술을 그분들께 바칩니다. 부디 구천에서도 이 원한이 풀렸음을 알아주시길...”그 말과 함께, 그는 두 손으로 잔을 들어, 그 안의 술을 천천히 땅에 부었다. 이 한 잔의 술을 만약 정말 필요한 이에게 팔았다면, 아마 수천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후에게 있어, 이 술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한 경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이 술을 땅에 쏟는 이유였고, 결코 낭비라 할 수 없는 행위였다.이후, 시후는 한숨을 내쉬고, 다른 잔들에도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곧, 100여 개의 술잔이 모두 채워졌고, 두 병의 소주도 정확히 사람 수에 맞춰 딱 떨어졌다.그때, 10분이 흘러 성도민이 공손히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은 선생님, 모두 마당에 모였습니다.”시후는 가볍게 답하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예.” 성도민은 대답한 후 문을 열고 들어왔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강렬한 술 향기를 느꼈다. 소주는 본래 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코를 찌르는 이 향은 평소에 느끼던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도민은 놀랍게도 술 향 속에서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선선한 가을날, 아무 걱정 없이 꿀잠을 자고 난 후 온몸이 개운하고 상쾌해지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그
몇 분 전.지하 수술실에서 악행으로 가득한 살인범들이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을 때, 시후는 구출된 피해자들을 진정시킨 후, 성도민에게 물었다. “성도민 씨, 내가 미리 준비해달라고 했던 것들, 준비해 놨습니까?”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은 선생님, 말씀하신 물건들은 모두 제 차량 트렁크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필요하시면 바로 옮기겠습니다.”“좋아요.” 시후가 말했다. “그럼 가져와요.” 그러고는 가까운 빈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으로 옮겨 놓도록 하죠.”“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성도민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곧이어 차 트렁크에서 커다란 종이박스 하나를 꺼내 안고 돌아왔다. 성도민은 두 손으로 종이박스를 안고 오면서, 한 손엔 묵직한 쇼핑백도 들고 있었다.박스에는 소주의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고, 이는 시후가 특별히 부탁해 미리 준비하게 한 축하주였다.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1.8리터짜리 소주가 두 병 들어 있었고, 또 다른 쇼핑백에는 소주잔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성도민이 시후에게 말했다. “은 선생님, 요청하신 물건이 여기 있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0분 후에 모두 마당에 집합시켜요. 다 함께 축하주를 나눌 거니까.”성도민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은 선생님, 축하주를 마신다 하셨는데, 술이 좀 부족하지 않습니까? 백 명이 넘는데, 고작 이 소주를 나눠 마시면 1인당 양이 얼마 안 될 텐데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우리 블랙 드래곤은 주량도 셉니다. 이 정도 술은 그냥 목만 축이는 정도 아닐까요...”시후는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잠시 후 모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과음은 좋지 않죠. 이 술은 형식일 뿐이고, 진짜로 실컷 마시고 싶다면 미국에 돌아가서 마음껏 마시면 되지 않겠어요.”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시후는 말했다. “좋아요. 성도민 씨, 그럼 이젠 가서 할 일 보고, 10분 후에 나를 찾아오도록
김미희는 뒤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부하들이 다 죽었는데, 누가 널 구하러 온다는 거야?”후아레스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내 여자친구! 내가 계속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 나를 찾으러 올 거야! 그녀가 올 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구출될 수 있어!”김미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네. 그런 머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보스를 해먹었는지.” 그러고는 위를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잊지 마. 밖에는 블랙 드래곤의 대원 백 명이 넘게 포진해 있어.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그 자들은 절대 떠나지 않아. 네 여자친구가 오면, 그저 죽으러 오는 거라고!”후아레스는 한순간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불만 붙이지 않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하루만 더 버텨도 살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 기적은 절망 속에서 일어나는 거잖아? 어쩌면 은시후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멕시코 경찰이 여길 찾아낼 수도 있고, 혹시 그 은시후에게 다른 원수가 있어서, 그 원수가 찾아와 그들을 처치해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어!”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흥분해서, 모두를 설득하려 들었다. “원래 백만 분의 일 확률이라 해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슈퍼 로또처럼 말이야. 백만 분의 일이어도 당첨자는 반드시 나오잖아? 그게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어. 단 조건은 뭐다? 일단 로또를 사야 되는 거지! 살아 있어야 그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그의 말에 김미희를 비롯한 이들이 조금씩 설득되는 듯했다.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회가 희박해도, 아예 끝내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김미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기다려 보자고.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옆에 있던 민영건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다리자! 나도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