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에 송지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녀가 아무리 멍청해도 그의 말에 담긴 의도를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애초에 저한테 접근한 게... 화인의 문서들을 가지려고 그런 거였어요?”“에이~ 설마 내가 그랬겠어? 넌 진짜 너무 귀여워, 난 너한텐 항상 진심이었어.”경희영이 말을 이어갔다.“그냥 내가 어디서 들은 게 있는데 그 문서가 너무 중요해서 서준혁이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조차 않는다더라고. 전에 그렇게 중요한 문서도 신유리씨보고 가져다 달라고 했다던데. 그래서 좀 궁금할 뿐이야. 대체 어떤 문서 길래.”경희영은 조금 뜸을 들이고 송지음을 힐끗 쳐다보더니 계속 말했다.“어찌나 중요한지 여자 친구한테도 안 보여주는데 신유리씨에게 맡긴다...”“지음아, 넌 안 궁금해?”경희영의 말들은 악마의 유혹과도 같이 송지음의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신유리가 서준혁에게 문서를 가져다줬다는 사실은 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 문서가 그렇게나 중요한 것인지는 몰랐다.서준혁은 그리도 중요한 문서에 대해 송지음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고 송지음의 눈빛은 조금씩 변해갔다.그녀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대체 어떤 문서기에 신유리는 되고 자기 자신은 안 되는지를.신유리가 다시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을 때 주국병이 신유리에게 할 말이 있어 보자고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연우진과 함께 교도소로 향하는 길이었다.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리야, 사진 아주 잘 빠졌더라. 언제 시간 되니?”“제가 지금은 좀 바빠서요, 며칠 뒤에 가지러 갈 게요.”신유리의 대답에 실망한 할아버지는 천천히 대답을 했다.“괜찮다, 일 봐야지. 내가 다른 사람보고 너한테 가져다주라고 하마.”그녀는 할아버지가 유씨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는 줄 알고 바로 승낙했다.전화를 끊자 차는 마침 교도소 안으로 들어섰다.신유리는 주국병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고 오랜만에 본 주국병의 얼굴엔 전의 당당하고 날선 모습이 아닌 많이 힘들었는지 폭삭 삭아 있었다.그는
서준혁의 안색은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날카로운 눈빛엔 싸한 냉기가 더욱 맴돌았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석민과 짧게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서준혁의 주위에는 차디찬 공기마저 느껴졌다.서준혁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신유리는 뒤에서 느껴지는 그의 냉기를 단숨에 알아차렸다.그녀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고 입술을 오므리고 발걸음을 떼려고 하고 있는 와중 서준혁은 한동안 신유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그가 신유리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은은하게 나는 향수냄새와 잔뜩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냉기는 그녀를 덮쳐왔다.서준혁의 밑에서 일한 시간이 있으니 신유리는 지금 그의 기분이 얼마나 나쁜지 자연스럽게 알아차렸다.화인그룹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신유리는 한동안 서준혁의 감정기복이 이렇게도 큰 모습을 보지 못했다.서준혁은 성큼성큼 자신의 차량 옆으로 가 차문을 열었고 앉기 전 신유리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할아버지께서 며칠 뒤에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잡니다.”그의 시선을 느낀 신유리가 잠시 긴장하며 슬그머니 서준혁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데리러 올겁니다 제가.”서준혁이 말을 이어갔고 신유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바로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신유리는 차문을 닫는 그의 힘으로 보아하니 그의 기분이 얼마만큼이나 뭣 같은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신유리는 그 자리 그대로 서서 가만히 있다가 한참 뒤에야 서류에서 그날 같이 찍었던 가족사진을 꺼내 쳐다보았다.전날 할아버지가 문자로 보내준 사진과 별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신유리는 대충 보고는 주머니에 그 사진을 넣어버렸다.같은 시각, 서준혁은 화인으로 돌아왔고 이석민은 사무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마중나오며 인사를 건넸다.“서대표님.”“모든 사람에게 지금 당장 회의 시작한다고 전하세요.”서준혁이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말을 했다.이번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는데 화인에서 거의 반년을 준비한 프로젝트를 태씨 집안이 참여하자마자 용화에서 먼저
서준혁의 말투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신유리는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서준혁을 빤히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뭔 뜻이야?”“말 그대로야, 그 서류는 너랑 나 말고 건드린 사람이 없거든.”서준혁도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게다가 넌 누구도 보지 않는 상태에서 접했으니까.”그는 피식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이어갔다.“그런데도 혐의가 없다고?”신유리는 서준혁이 오늘 그녀를 어르신께 데려온 건 이 일을 캐묻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챘다.그녀는 안색 하나 변함없이 맑은 눈동자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여전히 그대로야, 스스로 내 구덩이를 팔 이유가 없잖아.”서준혁은 덤덤하게 웃더니 차에서 내렸지만 신유리의 말을 믿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어르신께서는 일찍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보더니 즉시 류 사부님을 불러 식사를 준비하였다.신유리는 어르신을 모시고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서준혁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유리야,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는 거냐?”어르신께서 갑자기 물었다.“네가 이 씨네 셋째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건 알지만 예술로 먹고 살기는 안정되지 않았잖니. 앞으로 계획에 대해 생각해 봤니?”신유리는 눈을 껌벅이더니 입을 열었다.“버닝 스타 쪽도 나중에 비즈니스 라인을 밟을 테니 천천히 해봐도 될 것 같아요.” 신유리는 굳이 어르신을 속이는 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어르신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정말 화인 그룹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니? 요즘 화인 그룹 상황이 좀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전에 네가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제 얼마 지났다고 벌써 이런 일이 생겼다니.”신유리는 어르신께서 화인 그룹에 관한 얘기를 꺼낼 줄 몰랐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을 이었다.“비지니스를 하려면 오고 가는 게 정상이죠.”어르신은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계속 설득하려 했다.“만약 화인 그룹에서 네가 돌아가길 바란다면?”어르신의
신유리는 그를 따라 화인 그룹으로 들어갔다. 밤은 깊어졌고 화인 그룹에는 별로 사람이 없어서 서준혁과 신유리의 발자국 소리는 서로 뒤섞여 가벼운 메아리를 울렸다.엘리베이터 앞 신유리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먼저 회사 일부터 해결해. 나까지 올라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준혁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급히 회사로 돌아간 것을 보면 통화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했어도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어둑어둑한 주위의 광경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먼저 나가려고 했다.“아까도 말했지만 서류는 네가 가져온 거야.”바깥 가로등 없이 어두운 불빛 아래 서준혁은 마치 조금 전까지 그에게 남아 있던 온기는 한꺼번에 사라진 것 같았다.마치 밖에서 느꼈던 다정함은 신유리의 착각처럼 온데간데없었다.서준혁의 뜻은 분명했고 신유리는 그를 따라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서류는 그녀의 손을 거쳤으니 말이다.신유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서준혁을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1층의 적막함과는 달리 사무실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이석민과 쥴리, 그리고 신유리와 안면 있는 인턴도 있었다. 그 외에 회사의 고위층도 몇 명 있었다.그들은 서준혁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신유리를 보자 얼굴빛이 묘하게 변했다.신유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서준혁이 무엇을 하려는지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의외로 서준혁은 한마디만 내뱉었다. “석민 씨, 최근 일주일 동안 사무실 부근의 모든 감시카메라를 조정하고 겸사겸사 이번 주 안에 누가 내 사무실에 들어왔는지 집계해 보세요.” 그는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사무실을 비웠을 때 누가 왔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봐 주세요.” 어쨌든 서준혁의 사무실에 그가 없을 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신유리는 눈썹을 잠시 치켜올리더니 구석에 앉아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쥴리가 서류 때문에 이리저리 오갈 때 시선이 몇 번이고 그녀에게 꽂혔다.신유리는
서준혁의 얼굴에는 줄곧 아무런 표정이 없엇지만 송지음은 지금의 서준혁이 평소보다 더 무섭다고 느껴졌다. 그의 눈빛은 더없이 차가웠고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 송지음은 준비했던 말을 삼켜버렸다. 그녀는 심지어 뒤로 물러서며 당장이라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서준혁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화인 그룹의 서류를 네가 경희영에게 넘겨줬어?”송지음은 어리둥절했다. 서준혁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어쩔 바를 몰라 했다. 그녀는 원래 서준혁이 왜 경희영과 함께 있었는지 왜 다른 남자랑 함께 잤는지를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준혁은 오직 화인 그룹의 서류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송지음은 준비한 변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되려 서준혁에게 물었다. “오빤 나한테 더 궁금한 게 없어?”서준혁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며 눈동자에는 차가움을 제외하고 약간의 불쾌함이 어려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구부려 테이블을 두드리며 냉랭하게 물었다. “내 말을 못 알아듣겠어? 화인 그룹의 자료를 네가 경희영에게 줬어?”송지음의 얼굴에는 상처받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천천히 서준혁의 앞으로 다가가서 애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오빠,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 나 다른 남자랑 잤는데 아직도 서류에 신경 쓰고 있어?”“오빠는 도대체 나한테 관심을 갖고 있기나 해?!”송지음의 마지막 질문은 서준혁의 눈에 짜증이 더 철저해지게 했다. 그는 더 이상 숨기기도 귀찮은 듯 이석민에게 분부했다. “누군가 사업기밀을 빼돌렸다고 경찰에 신고하세요.”송지음은 갑자기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준혁을 바라보며 소리 질렀다. “오빠!”그녀는 외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지극히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오빠의 마음속에는 오직 일뿐이야? 그래서 날 신경 쓰지도 않는 거야? 오빠,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송지음은 마치 서준혁이 얼마나 박정
송지음은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오빠가 오늘 저녁에 야근해야 돼서 매우 바빠요.”“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어야지. 아이고 지음아, 설마 네 남자 친구한테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을 소개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겠지? 이러면 안 되지...”셋째 이모의 말투는 다소 불만스러워서 송지음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몇 마디 대충 대꾸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어머니는 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얼굴의 불쾌함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채 낮은 소리로 꾸짖었다. “너 준혁이랑 싸웠니?”송지음은 흠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게...”어머니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준혁이랑 싸우지 말랬잖아? 무슨 이유든지 얼른 사과해.”“그리고 요 며칠 그를 데리고 오거라. 식사 자리라도 만들게. 네 셋째 이모의 아들을 화인 그룹의 비서로 들여보내는 데 절대 문제없다고 보증했으니까.”어머니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고 송지음은 점점 더 짜증이 났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을 몇 번이나 끊으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노려보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어머니가 나가자 송지음의 굳어진 얼굴이 금세 무너졌다. 그녀가 어떻게 서준혁을 데리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단 말인가. 그녀는 지금 서준혁의 얼굴조차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준혁은 그녀를 화인 그룹에서 쫓아내려고 마음을 굳혔다. 송지음은 마음이 너무 초조한 나머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침대 위에 던져진 핸드폰에 메시지 여러 개가 와있었다. 그녀는 연속 뜨는 전화번호를 보더니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송지음이 화인 그룹의 비밀문서를 용화 그룹에 넘긴 사건은 빠르게 퍼졌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신유리 쪽에서도 예전 관계자들로부터 보낸 문자를 적지 않게 받았지만 그녀는 일체 몰랐다는 이유로 막아버렸다. 하지만 이 일은 결국 신유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졌다. 임아중은 소개팅 상대가 준 몇 개의 케이크를 손에 들고 왔다. 임
어르신께서 너무 직설적이라 신유리는 다소 의외였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와 서준혁은 이미 과거에요.”어르신은 한숨을 쉬더니 눈에는 서운함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다만 밥을 먹을 때도 기분이 좋지 않아 몇 입 드시지 않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신유리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그녀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환절기에는 날씨가 불안정해서 밥을 다 먹기도 전에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신유리는 한창 택시를 타고 먼저 할아버지를 모셔다드린 후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이미 류 사부님더러 연락하라고 했다. 류 사부님이 돌아왔을 때 그는 신유리를 보더니 어르신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도련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르신께서 밖에 계시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비가 오니 어르신을 모시러 오겠다고 합니다.”어르신은 짧게 대답했다.“오라고 해. 어차피 조만간 나한테 볼 일이 있을 테니”그는 말을 마치더니 이내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침 밖에 비가 오니 유리도 데려다주라고 하렴.”신유리는 듣자마자 거절했다.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요. 저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돼요.”할아버지는 애원의 눈빛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유리야, 조금만 더 나랑 함께 있어 줄 수 없겠니? 만약 준혁이때문이라면 나랑 뒷줄에 앉자. 팔순 노인이 아직도 이런저런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니, 난 네가 제일 편하다.”어르신의 많은 말들이 신유리는 듣기에 불편했다. 마치 어르신이 불쌍한 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르신의 기대에 찬 눈빛을 바라보면 그녀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서준혁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는 요즘 화인 그룹의 난장판을 처리하느라 바빴는지 피곤함이 역력했다. 살도 좀 빠진 것 같았고 워낙 훤칠한 이목구비는 더욱 뚜렷해졌다. 평소의 냉랭함보다는 날카로움이 더해졌다. 그의 눈빛은 신유리의 몸에 잠시 머물렀고 새까만 눈동자는 조금의
서창범의 목소리에는 말할 수 없는 위엄이 어려 있었고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준혁의 덤덤하던 얼굴이 갑자기 차가워지더니 새까만 눈동자는 서창범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만 그가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뒤에서 더욱 심각한 호통이 들려왔다. “너도 내가 한 말을 들은 적도 없으면서 지금 준혁이보고 말을 들으라고 하다니,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어르신은 류 사부님의 부추김을 받으며 천천히 들어섰다. 그는 비록 팔순이 다 되어가지만 몸의 기세는 오히려 그 당시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그는 서창범을 노려보며 말했다. “준혁이가 너한테 한 약속말고 네가 당시에 나한테 했던 약속부터 떠올려보거라, 그런 말 하기에 부끄럽지도 않으냐? ”서창범은 서준혁이 어르신을 모시고 올 줄은 몰랐다. 굳었던 표정을 천천히 거두어들이더니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내가 오지 않았다면 너한테 아직 나 같은 애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겠느냐?”어르신은 콧방귀를 뀌며 태도가 좋지 않았다. “우리 서씨 가문은 아직 준혁이를 혼인시켜야 할 정도로 망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서창범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 아직 주현을 만나본 적도 없어서 그래요. 저랑 정숙이도 그녀가 결혼하기에 적합한 아가씨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그 애를 봤더라면 분명 좋아했을 것입니다."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너랑 정숙이 생각에 결혼할 가치가 있다고?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혼은 너랑 하면 되겠네.”어르신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서준혁을 보며 말했다. “그만 가자.”서창범의 얼굴색도 말이 아니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서준혁을 보며 말했다. “ 서재로 오거라. 할 말이 있다.”어르신께서 또 입을 열려고 하자 그는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회사 일이다.”그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서재로 향했다. 어르신은 서준혁을 보며 고개를 슬며시 흔들었다. 서준혁이 서재에 들어가자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