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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작가: 박혜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2-29 21:57:21
신유리는 새 입주자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짐을 싸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외할아버지의 물건은 모두 상자에 담겨 있었고, 신유리는 상자를 열어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한 후 짐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은 그녀가 정규직이 된 직후 서준혁이 직접 집 열쇠를 건네주었던 곳이다.

당시 신유리는 성북의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었고, 서준혁은 그녀가 왔다 갔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그냥 그녀를 럭셔리 하우스에 살게 해줬다.

신유리는 이곳에서 6년을 살았고, 이것 저것 지니고 있는 물건이 많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진짜 그녀의 물건은 고작 몇 가지가 전부라 상자 하나와 여행가방 두 개에 다 들어갔다.

오히려 서준혁의 것이 더 많았다.

그가 멋대로 두고 간 옷과 넥타이, 신유리가 준비해 주었던 숙취약,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퓨저, 평소 즐겨 착용하던 커프스단추, 사용했던 컵 등 그의 물건이 매우 많았다.

거의 온 집안 곳곳에 서준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하고 방이 텅 빈 뒤에야 신유리는 이 집의 인테리어 스타일마저도 서준혁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남의 집에 사는 것 같은 처량한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이제 그들이 그녀를 원하지 않으니 그녀는 떠나야만 했다.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신유리는 고개를 숙이고 상자를 옮기려 했다. 그때 마디가 굵은 손이 튀어나와 그녀를 막아 세웠다.

이신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할게.”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신유리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곧바로 상자를 옮겼다.

신유리의 상자가 크지는 않았지만, 안에 책이 많아 무거웠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같이 옮기는 게 어때?"

이신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별로 안 힘든데?"

신유리는 시한에서 그가 그녀를 한 손으로 안아 올렸던 것을 떠올렸다. 또한 평소 이신이 무대 세팅을 할 때도 수백 킬로그램의 나무 자제를 손 쉽게 옮겼던 것을 생각하니 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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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50화

    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하성을 찾으려고 두리번 거렸지만 연회에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신유리가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송지음은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떠났다.그런데 갑자기 신유리가 물었다. "서준혁은 어디 있어?"송지음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고, 그녀가 말했다. “유리 언니, 오빠를 찾으시는 거면 제가 대신 전해 드릴게요. 오빠가 지금 바빠서요.”신유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 선생님도 여기 오셨어?"송지음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고 침착한 척 신유리에게 물었다. "그건 왜 물어보세요?"송지음과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신유리는 휴대폰을 꺼내 서준혁에게 직접 전화해 하성이 왔냐고 물어보려했다.만약 그가 여기 있다면 그녀는 오늘 그를 꼭 만나야 한다.그러나 전화기를 꺼내자마자 뒤에서 하정숙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인이 준비한 국수가 정말 맛있어. 비서실의 직원들도 모두 나와 문 앞에서 귀빈분들을 맞이하고 있단다."송지음은 하정숙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하정숙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하정숙이 자신을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맞닥뜨리기 싫었다.조용히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최대한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신유리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하정숙 뒤에 있는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오고 있던 사람은 하정숙과 하성이었고 서창범과 서준혁은 없었다.신유리는 주먹을 꽉 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또박또박 말했다. "하 선생님, 저는 신유리입니다. 왕 선생님이 저에게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의 상황에 대해 말씀드려도 될까요?"하성의 목소리는 감미로웠고, 진지한 표정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왕호원 씨가 말한 환자분의 가족이십니까?"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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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51화

    서준혁의 말에는 가시가 가득했다. 신유리는 그를 쳐다보며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끝내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만나든 이제는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담담한 말투에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것 같았다. 서준혁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상관이 없다고?”“신유리, 넌 여기 할아버지 때문에 온 거지?”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큰 키를 가진 서준혁이 신유리를 내려다보았는데, 모든 것이 가소롭다는듯한 눈빛과 태도였다.“그냥 그분은 성남에서 이틀만 머무를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그 사람이 누군지 서준혁은 말하지 않았지만, 신유리는 그제서야 하성이 서준혁의 삼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신유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성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았다. 그저 하정숙이 집안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정도만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서준혁은 계속 집안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하성은 자신을 만나주지 않을 테지만 만약 서준혁이 같이 만나러 간다면 만나줄지도 몰랐다. 신유리는 순간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금세 표정관리를 했다. 신유리가 고개를 들고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무슨 조건이 있는데?”신유리는 서준혁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을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준혁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깊은 눈동자에 신유리의 모습이 비쳤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무슨 소리야! 네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말을 마치고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신유리도 따라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작은 그림자 하나가 옆으로 다가왔다.갑자기 나타난 송지음은 신유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고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언니, 방금 오빠가 하는 말 다 들었잖아요. 언니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한 것 같아 보이니 먼저 가시는 게 어때요?”하정숙의 비웃음을 받은 데다가 서준혁에게도 무시를 당하니 송지음은 지금 기분이 매우 불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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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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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을 기다리고 있던 신유리는 왕호원이 인턴 2명과 함께 아래층으로 급히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는 마음속으로 하성이 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신유리는 어제 왕호원은 하성과 찍은 사진들과 병원에 대한 각종 소식들을 인스타에 올렸던 것을 봤다. 권위 있는 전문가는 어디서에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고, 특히 신경내과와 뇌과 일부 수술에도 관련되어 있기에 왕호원은 오랫동안 하성을 존경해 왔었다.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왕호원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리고는 신유리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세미나는 15분 후에 시작되니 허 교수님은 지금 아래층에서 쉬고 있을 거예요. 기회를 잡고 싶다면 한 번 가봐요.”멈칫하던 신유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왕호원은 원래의 표정을 되찾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그리고 한참후에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신유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병실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할아버지의 병세는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신유리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할아버지도 평생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매우 강인한 사람이었다.고개를 내린 신유리는 큰 다짐을 한 듯 회의실로 향했다.2층 회의실에서는 하성은 의사와 함께 환자 케이스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성의 휴대폰이 울렸다.업무가 중단되자 하성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전화를 끊으려던 그는 발신자를 확인한 후 인내심을 갖고 전화를 받았다.상대 뭐라 했는지 하성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그만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내가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이린히는 난감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사이를 봐서라도 도와줄 수 없어? 게다가 그 사람도 사람을 구하려고 그러는 것인데 왜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 당신의 친구가 누가 됐든 난 돕지 않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내 원칙이야.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먼저 끊을게.”하성은 차갑게 말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때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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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6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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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636화

    태송백은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연을 노려봤다. 한참 후에야 이를 악문 채 말을 내뱉었다.“뒤에서 숨고만 있다가 부하들만 짖게 놔두더니 이제야 직접 나선 거냐? 나한테 기회를 준다고? 신연, 너 진짜 죽을 때까지 정신 못 차리는구나?”태송백은 태지연을 흘겨보며 비웃음을 흘렸다.“너 내 동생을 완전히 속였잖아. 지금도 태지연이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고.”태송백의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태지연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오빠, 제발 진정 좀 해요.”“태지연, 넌 입 다물어. 계속해서 그 새끼 편을 들면 넌 더 이상 내 여동생도 태씨 가문의 딸도 아니야!”태송백은 격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우리 태씨 가문이 이 꼴이 된 건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아버지께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데다 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숨어 다녀야 하지. 내가 밖에서 무슨 꼴을 당하는지 알기나 해? 모든 게 다 저 새끼 때문이라고.”“엄마는 창녀에 아빠는 손님이고. 참, 너도 신유리 알지? 걘 얼마나 똑똑한지 저 새끼랑 상종도 안 해. 너 혼자 보물인 양 여기고 있는 거야.”태송백은 쌓여 있던 울분을 쏟아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이미 단순히 말로 풀 수 있는 정도가 아닌 자존심 문제였다.그는 반드시 신연에게 자신이 당한 굴욕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태송백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독설을 내뱉었다.“태지연, 넌 더럽지 않냐?”그녀는 마치 얼어붙은 듯 제자리 굳어버린 채 태송백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오빠, 그만해요... 제발 그만 말하세요.”그녀는 차마 신연을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목이 바싹 말라오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신연 앞을 막아서며 무시해 버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치 나무 말뚝에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태송백의 독설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악의 어린 말들이 허공에 울려 퍼지

  • 나 말고 다   제635화

    성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도련님께서 문이 열릴 때마다... 전에 우리 쪽 사람들이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신연은 바닥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흘겨보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아직도 부술 게 남아있어?”성한빈은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태지연은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지도 못한 채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잠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어? 오빠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신연은 눈을 내리깔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약속하듯 말했다.“아무것도 안 할게. 믿어줘, 응?”“아직 불안정할 텐데. 너희 둘만 남겨둘 수 없어.”“걱정 마.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래도 내 오빠잖아. 어렸을 때부터 나를 가장 아껴주던 사람이야.”태지연은 신연을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물건을 너한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나야말로 누구보다도 이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어.”“우리도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예전처럼 되지 못하더라도 이 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태지연의 목소리는 다소 지친 듯했다.“연아, 나 정말 너무 힘들어.”신연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한번 얘기해 봐.”태지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근데 나가진 않을 거야. 보다시피 최근 태송백 상태가 불안정해. 단둘이 두는 건 불안해서 안 되겠어. 여기서 기다릴게.”현관에서는 안쪽 상황을 볼 수 없었다.그녀는 신연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걸 알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안쪽은 더 엉망이었다. 바닥에는 온갖 유리 파편들과 장식품들이 흩어져 있었다.태송백은 원래 성격이 좋지 않은 편인데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녀는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해 가며 간신히 거실까지 다가갔다. 순간 태송백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나가라고

  • 나 말고 다   제634화

    다음 날 아침, 신연은 평소처럼 아침을 준비해 두었다.테이블 위에는 더 이상 초콜릿케이크가 보이지 않았고 신연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는 우유 한 잔을 따라 식탁 위에 놓더니 입을 열었다.“얼른 씻고 아침 먹어. 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점심에 못 올 거야. 점심은 호텔에서 보내줄 거야.”태지연은 순간 마음이 움찔하며 신연에게 물었다.“회사? 아니면 어디?”신연은 동작을 멈추더니 속눈썹을 내리깐 채 일부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응, 회사.”“연아.”태지연은 의자 등받이를 꽉 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어젯밤 한 말은 전부 진심이야. 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절대 용서 못 해.”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았고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의자 등받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신연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지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나중에 내가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조금 이기적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에 들은 말로만 신연이 정확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태도를 봐서는 만약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태송백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태지연은 손에 힘을 풀더니 힘겹게 신연 곁으로 다가갔다.“연아,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대신 찾아줄게.”순간 신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젖을 울렁이며 태지연을 내려다보았다.“내가 물건을 찾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태지연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오빠가 말했어. 자기 손에 너한테 아주 중요한 게 있다고. 연아... 내가 찾아줄게. 내 오빠잖아, 내가 말해볼게.”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다소 잠겨 있었다.순간 머릿속이 약간 혼란스러워졌다.신연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급해진 그녀는

  • 나 말고 다   제633화

    태지연은 말을 마치고 신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신연은 눈을 내리깐 채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일으켜 세웠다.“네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왔어. 얼른 먹어봐.”태지연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신연을 쳐다보며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되레 단단히 잡혔다.신연은 식탁 앞으로 가서 조심스레 케이크 상자를 열고는 라즈베리 초콜릿케이크를 꺼냈다.태지연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의 케이크였다. 평소에도 그녀는 신연한테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 오라고 조르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녀는 가장 즐겨 먹던 케이크를 보면서도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다.그녀는 태송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오빠가...”그러나 신연이 바로 말을 끊어버렸다. “케이크 가게 주인이 또 둘째를 낳았대. 너도 기억하더라. 시간 되면 한번 들르라고 하길래 내가 대신 대답했어.”“신연...”“맛 좀 봐.”신연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건네며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태지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지금 먹고 싶지 않아. 연아, 다시는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줘. 네가 오빠를 데려갔어?”태지연의 말이 끝나자 거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신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이것뿐이야?”태지연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뱉어냈다. “대답해.”신연은 말했다. “일단 케이크부터 먹어봐.”태지연은 움직이지 않고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갔다.순간 가족과 신연 사이에서 고민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연과 가족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야 그토록 바라던 작은 소망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신연과 태씨 가문은 이미 끊어진 실처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사이였다.모두가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직 그녀만이 되돌릴 수 있다는

  • 나 말고 다   제632화

    태은정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그녀를 지치게 했다.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연아, 신연이 송백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어?”태지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언니, 왜 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내가 무조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마치 사람들이 모든 걸 나에게 털어놓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태지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유일하게 그녀뿐이었는데 말이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태은정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태지연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반응하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그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미안해. 지연아, 내가 너무 급했나 봐.”태은정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썹을 만지작거렸는데 이는 태은정이 곤란할 때 나오는 작은 습관이었다.태지연은 고개를 저었다.“방금 신연이 오빠를 데려갔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태은정은 지금도 상황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꼈다. 태송백은 이미 이틀째 연락 두절인 상태였고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닿지 않았다.전혜린과 태성민은 신연의 짓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태지연과도 연락이 닿지 않다 보니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달래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태송백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야 했다.게다가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외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바쁜 적이 없었다.태은정은 한숨을 내쉬며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그럼 신연이 요즘 뭐 하고 있는지는 알아?”태지연은 대답했다.“대부분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회사에 있을 거야.”그녀는 잠시 멈춘 후 덧붙였다.“근데 나도 확신할 수 없어. 보통 자세한 건 나한테 말하지 않

  • 나 말고 다   제631화

    태지연은 마땅한 핑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연은 그녀에 대해 잘 알다 못해 속마음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태지연은 눈물을 흘리며 처량한 모습으로 바라봤다.“왜겠어? 연아, 네가 생각해 봐.”“우리 아빠는 지금 병원에 있고 엄마랑 오빠는 널 원수처럼 대하는데 도대체 내가 어떡해야 하는 건데?”“누굴 탓해야 할까? 내 의사를 물어본 사람은 있어? 나도 모르겠어.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는지...”다들 그녀가 당연히 자신의 편에 서야 할 뿐만아니라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의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태지연은 바닥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은 채 서로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녀의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 그녀를 아껴주던 부모와 오빠조차 이제는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했다.모두 그녀를 속이면서 정작 그녀한테는 진심을 다하라고 요구했다.태지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왜 내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날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날 속이는데 왜 난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야? 난 전혀 원하지 않는다고. 진실만을 원할 뿐이야. 그게 다야.”“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해줄 수 없는 거야?”“왜? 내가 바보 같아? 난 그냥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왜 너희는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그녀의 눈물은 순식간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를 무릎에 묻은 채 어깨가 떨릴 정도로 흐느꼈다.진실이 그녀 앞에 명백히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그들은 태지연이 절망에 빠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속이려고만 했다.무언의 눈물에서 작게 흐느끼다 마지막에는 이를 악문 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태지연은 자신이 고집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입술이 터져 피비린내가 느껴질 때까지 입술을 깨물었다.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신연은 그녀의

  • 나 말고 다   제630화

    신연은 언제나 태지연에게 다정하게 대했다.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하지만 태지연은 마치 약점을 찔린 듯 몸이 굳어버린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신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지나치게 평온한 시선이 되레 태지연의 마음을 한껏 졸여왔다.“왜?”신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연아, 너도 그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거지?”“착하지, 그만 돌려줘.”신연은 아이를 타이르듯 다정하게 말했다. “너한테 있는 거 알아.”“...없어.”태지연은 점점 눈빛이 흐려지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계약서라니, 난 모르는 일이야.”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그제야 의지와는 다르게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켰다.그녀는 오빠가 신연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신연이 오빠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태지연은 누구에게도 그 계약서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며 모든 생각을 숨기려 했다.신연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나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해.”태지연은 순간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 아니야...”“정말이야?”신연이 다시 물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응.””그럼 이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신연은 말을 마치고 서랍에서 약병과 약을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전에 침대 옆 서랍에 숨겨둔 비타민 약병과 피임약이었다.최근에 산 피임약을 아직 비타민 약병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 태송백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다.신연은 순간적으로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말해 봐. 집에 왜 이런 약이 있는 거야?”그녀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신연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잠긴 목소리로 변명했

  • 나 말고 다   제629화

    태지연은 눈앞이 흐려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갔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오직 신연만이 떠올랐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까? 신연이 그렇게 말하기를 꺼렸던 그의 가정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더군다나 신기철이 진정 신연에게 미안하다면 왜 그에게 한 번도 어떤 보상을 하지 않았을까?모두가 신연이 차갑다고 말했지만 태지연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연은 단지 그녀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을 지켜준 소년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역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녀는 고등학교 뒤편 작은 정원에 항상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았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신연이 작은 난간에 기댄 채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항상 신연 주위에 모여서는 그의 다리를 비볐다.그는 분명 귀찮아하는 표정이 있었지만 고양이들을 밀어내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새끼 고양이가 그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도 허락했다. 동물들의 감각은 예리한 법이다. 그들은 항상 신연을 잘 따랐다.그런 신연의 모습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애써 억눌렀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사랑했던 신연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갑자기 손목이 세차게 잡히며 태지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눈앞의 상황이 서서히 선명해지며 뒤에서 태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는 거야?”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 있었다. 방금 태은정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환자를 밀고 지나가던 간호사랑 부딪힐 뻔했다.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태은정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데려갔다.차에 타고 나서야 태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고마워.”“고맙긴. 내가 네 언니인데.”태은정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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