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주문에 매번 너무 기뻐하는 탁유미의 모습에 임유진은 싫은 내색도 못 한 채 말없이 스쿠터에 음식을 실었다.하지만 생각해보면 배달 주문이 많아져서 탁유미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윤이도 하루빨리 인공와우를 착용할 수 있게 된다.임유진은 이제 윤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져 왔다.어린 나이에 듣지 못하게 된 것도 서러운데 임유진이 며칠을 지켜본 결과 윤이는 아버지도 없는 것 같았다. 윤이의 성이 탁 씨라는 걸 들었을 때 아마 탁유미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을 것이라고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말이다.임유진이 스쿠터를 타고 GH 그룹에 도착해 로비에 들어서니 경비원들은 그녀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익숙한 듯 음식을 받아들고는 그녀를 도와 엘리베이터 층수까지 눌러주었다.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허리를 숙여 그녀를 반기기도 했다. 이러한 대접은 아마 배달원이 임유진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임유진 역시 이 모든 것이 강지혁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임유진이 배달음식을 한가득 들고 걸어 들어오자 강지혁의 비서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질서정연하게 음식을 하나하나 가져가더니 예의를 갖춰 인사까지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상관인 임유진이 부하직원들을 위해 음식을 하사하는 것처럼 보였다.임유진은 도시락 2인분을 손에 든 채 천천히 강지혁이 있는 대표이사실로 걸어갔다. 두 번 노크하니 강지혁의 ‘들어와’ 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지만 그녀는 이내 놀란 눈을 하고 말았다. 강지혁만 있어야 할 공간에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강지혁의 책상 앞에 있었으니까. 그중에는 빌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포스터에 걸려있던 임원들의 얼굴도 있었다.임유진은 양손에 도시락을 든 채 임원들과 눈을 마주쳤다."왔어? 거기 앉아."임유진은 천천히 소파에 앉은 후 음식을 내려놓고 또다시 임원들과 눈을 마주쳤다."먼저 먹고 있어. 이것만 끝내고 금방 갈게."강지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임유
임유진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강지혁은 맞은 편에 앉아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임유진이 떠날 생각을 안 하고 자의적으로 자신의 곁에 영원히 붙어 있을지.그는 이제 임유진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식사만 해도 마냥 좋았다.지금 돌이켜보면 강지혁은 아마 자신이 ‘혁이’였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강지혁을 ‘혁아’라고 불렀을 때 임유진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향해 웃어 줬고 다정하게 머리도 말려주며 언제나 입이 닳도록 ‘혁아’라고 불러줬었다.마치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강지혁은 항상 임유진이 다시 한번 그를 향해 ‘혁아’라고 불러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식사를 끝마친 임유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강지혁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도시락에 손도 대지 않았다.‘그럼 내가 밥 먹고 있는 동안 계속 나만 보고 있었던 거야?’임유진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고 얼른 자리에 일어섰다."나... 나 이제 가볼게."임유진은 허리를 숙인 채 도시락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강지혁이 임유진의 손등에 손을 올리더니 고개를 살짝 들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누나, 나 한 번만 ‘혁아’하고 불러줄래?"강지혁은 마치 애원하듯 그녀를 절절하게 쳐다봤다. 임유진은 그의 부탁에 몸이 굳어버렸고 목구멍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갑자기 왜...""‘혁아’라고 불러줘. 난 지금 누나가 나를 ‘혁아’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어."임유진이 난감한 얼굴을 하며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자 강지혁이 얼굴을 더 가까이 붙여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딱 한 번만, 응?"임유진은 강지혁의 입술이 서서히 자신의 입술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다급하게 외쳤다."혁아!"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의 입술이 딱하고 멈추더니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말했다."듣기 좋네."그녀를 잡고 있던
"고마워요."임유진이 책을 건네받으며 말했다."내가 더 고맙죠.""윤이가 듣지 못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유진 씨가 이렇게 수어까지 배우겠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탁유미가 미소를 지었다."윤이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나를 좋아해 줘서 너무 다행이고요. 윤이가 좋은 인연이라서 이렇게 일도 할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들어요."임유진의 말에 탁유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다 결국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그러게요... 정말 좋은 인연인가 봐요.""그럼 언니, 저 먼저 가볼게요.""그래요. 잘 가요."임유진이 퇴근한 후 탁유미는 가게 문을 닫고 가게 뒤편의 작은 집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서는 탁유미의 엄마가 잠든 윤이를 옆에서 토닥토닥해주고 있었다."윤이 잠들었어요?"탁유미는 윤이가 자신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를 낮춰 물었다."응, 막 잠들었어."답을 한 탁유미의 엄마는 이내 임유진에 대해 물었다."임유진 씨, 정말로 수어가 배우고 싶대?""네, 진심으로 배우고 싶은 것 같아요. 아까 수어책을 선물해 주니까 고맙다고 하더라고요."탁유미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그래, 사람은 좋아 보이더라. 윤이한테도 잘하는 것 같고."탁유미 엄마는 요 며칠 임유진을 다시 보게 되었다."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도 뭔가 누명을 쓴 것 같더라고요."탁유미가 말을 이었다."전에 우연히 유진 씨가 친구랑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사건을 뒤집는다는 소리를 했어요. 누명이라도 썼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닐까요?""너처럼 기구한 운명인가 보다."탁유미 엄마는 안타까운 듯하면서도 화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너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지 않았더라면 감옥까지 가지도 않았어. 심지어!""엄마, 그만 해요."탁유미가 고개를 저으며 진정하라는 듯 타일렀다."뭐가 어떻게 됐든, 나는 지금 윤이랑 엄마랑 이렇게 같이 살게 된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병실은 조용했고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임유진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강문철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강문철이 그녀를 혐오 가득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강문철의 옆에는 간병인 한 명과 임유진을 여기로 데려온 강문철의 비서가 서 있었다."내가 왜 아가씨를 여기로 불렀는지 아나?"오랜 정적을 깨고 강문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네, 강지혁 때문이잖아요."병원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임유진은 긴장되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했지만, 강문철의 혐오가 담긴 눈빛을 본 후로는 이상하게 다시 평정심을 되찾게 되었다.아마 이보다 더한 상황도 많이 겪어봤는데 고작 혐오감쯤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임유진의 대답에 강문철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알긴 아는구먼.""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거죠?"임유진이 거두절미하고 물었다."지혁이가 아가씨를 우리 집안까지 들일 줄은 몰랐네. 아가씨는 자신이 우리 집안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나?"강문철이 차갑게 물었다.강문철이 자신을 여기까지 부른 이유가 겁주려는 것임을 알아챈 임유진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한들 강문철이 믿어주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임유진이 아무런 말도 없자 그는 재미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비서를 보며 말했다."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내 손자가 대체 이 아가씨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을 것 같나?""글쎄요. 강 대표님 마음에 들만한 뭔가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비서가 딱딱하게 대답하자 강문철이 혀를 차며 말했다."얼굴이 좀 예쁘장하게 생긴 것 빼고는 특별한 뭔가는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그럼 저 얼굴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리면 되겠네. 우리 지혁이가 그 모습을 보고도 저 아가씨를 좋아하는지 보고 싶군.""알겠습니다."임유진이 그 말에 얼른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강문철을 바라보았다.한 사람의 얼굴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리겠다니, 강문철은 저녁 식사 메뉴를
애초에 그녀가 법조계를 택한 이유는 정의구현을 위해서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권리조차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똑똑하네."비서가 피식 웃었다.임유진은 주먹을 꽉 쥔 채 남에게 휘둘리는 삶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다시금 느꼈다.비서가 든 칼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다가오자 임유진도 서서히 몸이 떨려오며 두려워 났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몸을 숙이고는 빠르게 비서의 팔을 스쳐지나 병실 문 쪽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하지만 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금세 문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호원들에 의해 제압을 당했다.비서가 천천히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난 또 아가씨가 대단한 강심장이라도 되는 줄 알았네요. 단지 도망가기 위한 수작이었을 뿐인데, 그렇죠? 아가씨는 여기서 도망갈 수 없을 것입니다."임유진도 자신이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대로 반항 한번 못 해본 채 억울하게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임유진은 경호원들에 의해 다시 한번 병실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비서의 칼이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그때 병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자는 단숨에 임유진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눈 깜짝할 새에 비서의 손에 들린 칼을 뺏어 들고는 발을 올려 비서를 구석 쪽으로 차버렸다."할아버지, 너무 급하신 거 아니에요?"강지혁이 뺏어 든 칼을 돌리며 침대에 누워있는 강문철을 향해 말했다."이 여자 건드리지 말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강문철은 강지혁이 나타날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너와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야.""그건 내가 정하는 거지, 할아버지가 정하는 게 아니죠."강지혁은 고개를 돌려 임유진에게 물었다."어디 다친 곳은 없어?"임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강지혁이 제때 나타나 준 덕에 임유진은 불상사를 면할 수 있었다.그때 강지혁에 의해 나가떨어진 비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그걸 본 강지혁이 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차
강지혁은 매년 이날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강씨 저택을 떠나지 않았고 아버지 곁을 지켰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강지혁 손에 이끌린 채 병원 밖에 나와보니 거기에는 검은색 세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후 임유진은 여전히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처럼 정신이 없었다. 아까는 악몽이 되려던 순간 강지혁이 나타나 솔직히 많이 놀랐다."무서워?"강지혁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며 물었다. 임유진은 아직도 손을 떨고 있었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운명이 남들 손에 쥐어진 채 어떠한 반항도 그들에게는 닿지 않았는데. 그녀는 아까 마치 제 죽음까지도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 쉽게 결정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내가 방심했어. 노인네가 아무리 급했어도 그렇지... 하필 오늘 누나를 건드릴 줄은 몰랐어."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이 물었다."오늘이... 무슨 중요한 날이야?"임유진의 질문에 강지혁의 얼굴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예쁜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은 마치 그녀를 한 입에 집어삼키려는 듯했다.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는 어느새 그녀를 억압하듯 감싸 안았다. 그에 임유진이 움찔하며 강지혁에게서 손을 빼려고 했다.하지만 강지혁이 더 빠르게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았고 그렇게 한참을 더 그녀를 쳐다보다 천천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아까 강지혁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을 때 임유진은 마치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두 사람을 태운 차가 서서히 강씨 저택 앞에 멈춰 섰고 임유진도 강지혁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늦었으니까 일찍 쉬어. 노인네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으니 이제는 누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이제 겁먹지 않아도 돼."역시 강문철의 핏줄이라 그런가? 강지혁은 오는 길에 강문철이 굳이 임유진을 데려와 이런 일을 벌인 이유를 눈치챘다."알겠어."강지혁은 임유진을 방 앞까지 데려다주었
그럼 강지혁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임유진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 봤지만, 거기에도 강지혁은 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대체 왜 이런 야심한 시각에 이렇게까지 강지혁을 찾고 있는지 임유진 자신도 몰랐다.강씨 저택은 강지혁과 임유진이 있는 본채를 제외하고 사용인들이 묵는 방, 정원, 그리고 연못에 정자까지 있었다.이 저택에 살게 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태껏 임유진은 집을 둘러본다거나 하지 않았던지라 저택에 뭐가 있는지, 얼마나 큰지를 모르고 있었다.시간은 이미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저 멀리 길가에서 은은히 비추는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다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쌀쌀한 바람에 임유진은 옷을 여미며 자기 자신에게 대체 왜 이 시간에 밖에까지 나온 건지 물었다. 대체 강지혁을 왜 찾고 있는 거지?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여기가 강지혁 집인데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임유진은 고민 끝에 오늘 강지혁이 구해주러 와서 자신이 지금 이러는 거라고 자기 멋대로 합리화를 했다.그때 본채 옆 멀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빛 한 줌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고 이에 그녀가 천천히 다가가 보니 거기에는 작은 별채가 있었다.임유진이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꽤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고 고개를 들어보니 벽에는 한 남성의 흑백사진이 걸려있었다.잘생긴 얼굴에 따듯함까지 보이는 남성은 강지혁과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눈이었다. 사진 속의 남자는 사람을 홀릴 것 같은 눈을 한 강지혁과는 달리 굳이 말하자면 강문철의 눈과 더 닮아있었다.임유진은 금세 사진 속의 사람이 바로 강지혁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분일 줄은 몰랐지만.임유진은 강지혁의 입에서 그의 엄마가 그와 그의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크게 동요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유사한 사건들을 변호사로 있었을 때 많이 접해봤기 때문에.다만 이토록 다정한 얼굴을 한 남자를 대체
임유진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별 건 아니고, 아까 나 데려다주고 나서 네가 다른 데로 가길래 무슨 일 있나 해서 그냥... 그냥 잠도 안 온 김에 이리저리 둘러본 거야. 별일 없어 보이니 난 그만 갈게..."임유진이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등을 보이자 강지혁이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았다."그래서, 내가 걱정됐다는 거지?"임유진은 강지혁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온몸이 굳어버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내가 강지혁을 걱정했다고?’임유진은 오늘 그가 자신을 구해준 것 때문에 그를 강지혁이 아닌 ‘혁이’로 생각했던 걸까? 그래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걱정까지 했던 걸까?그때 임유진을 안고 있던 강지혁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 같더니 이내 신음을 내며 그녀를 안고 있던 팔도 점점 풀기 시작했다.임유진이 뒤를 돌아보자 강지혁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는 한 손으로 자신의 복부를 움켜쥐고 있었다.전에도 이런 모습을 본 적 있던 임유진이 다급하게 물었다."너 설마 또 위가 아파?""기억하고 있었네."강지혁이 아픈 와중에도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강지혁의 약해진 모습에 당황한 임유진이 주위를 둘러보다 옆방 안에 소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그를 소파까지 부축해주었다."갑자기 아픈 거야?"임유진이 옆에 있던 티슈를 뽑아 강지혁 이마의 땀을 닦아주며 물었다."사실은 아까 전부터 살짝 아프기 시작했는데 금방 괜찮을 줄 알고 가만히 내버려 뒀었거든. 근데 누나, 나 아픈 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네. 내가 계속 신경이 쓰이긴 했나 봐?"임유진은 그의 말에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약은 있어?""나 약 먹는 거 싫어해.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약 먹는 걸 싫어한다고? 하지만 내가 그때 약 사줬을 때는...""그건 누나가 사준 거니까."강지혁은 임유진이 사준 약은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하지만 그때는 주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