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긴장했어?”설영준이 태연한 얼굴로 은근히 물었다.송재이는 서둘러 고개를 젓더니 그릇을 내려놓으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했다.설영준은 너무 치명적이었다.그에게는 눈빛 하나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일부러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른다.그러나 오히려 그런 무신경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담긴 짙은 욕망이 그녀를 자꾸만 심란하게 만들었다.다루기 어려운 야수처럼 거친 남자는 매력이 흘러넘치는 법이다.“밥 다 먹으면 돌아가려고?”송재이가 식탁 앞에서 입을 열었다.설영준은 젓가락을 들고 접시 안 음식을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네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뭐라고?”송재이는 이해하지 못했다.“내가 보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고, 날 보내는 게 아쉬우면 그냥 여기 남아있을게.”설영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장난기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송재이는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설영준이 과연 눈치채지 못했을까?설영준은 그녀가 직접 얘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내가 가지 말라고 하길 바라는 거야? 꿈 깨! 난 절대 말 안 할 거야!’식사를 마친 송재이는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난 다 먹었어. 이제 잘 거니까 돌아갈 때 문 잘 잠그고 나가.”말을 마친 뒤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난 듯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어젯밤 그녀는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오전 햇볕은 아주 따뜻하고 좋았다.송재이는 다시 침대에 누운 뒤 이불을 덮고 낮잠을 자려고 했다.그러나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잠이 들지 못했다.설영준이 밖에 있다는 걸 알아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탓이었다. 결국 송재이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설영준이 문을 열고 떠나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랑하는 남자에게 홀대받는 느낌이라 괴로웠지만 그 괴로움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이 틀림없이 떠날 거로 생각했다. 다만 그가 언제 떠
“여기서 자고 가는 남자는 내가 첫 번째인 거지?”끝날 때쯤에 송재이는 땀범벅이었다.그녀는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자신의 등 뒤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설영준의 말을 들었다.송재이는 후회되기 시작했다. 설영준을 굴복시킬 생각으로 시작한 것인데 결국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은 그녀였다. 참 창피한 일이었다.“첫 번째는 맞지만 마지막은 아닐 거야...”송재이는 이를 악물고 원망스레 대답했다.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소녀의 것처럼 귀엽고 매력적이었다.그런 부드러운 매력이 설영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설영준은 송재이가 가끔 토라져서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한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따질 생각은 없었다.이제 막 그 짓을 끝내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설영준은 피식 웃으며 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 말은 다른 남자도 만나보고 싶다는 거야? 그러면 못 써. 네가 다른 사람이랑 만나본 적 없어서,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서 그래. 날 소중히 여기라고...”“뻔뻔하긴!”송재이는 그가 뻔뻔하게 느껴졌다.그녀는 몸을 돌려 눈을 부릅뜨면서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설영준은 그녀를 침대 위에 눌러놓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송재이가 욕하고 때려도 설영준은 줄곧 태연했다.육체적으로 만족해서 화를 내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설영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 그의 눈에 송재이는 작은 동물 같아 보였다.오늘 오후에는 낮잠을 잘 생각이었으나 송재이는 몇 번이나 설영준에게 잡아먹혔다.온갖 수단을 다 써도 그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물론 설영준은 그녀에게 그럴 기회를 줄 생각도 없었다.송재이는 저녁쯤이면 살이 빠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배고파...”날이 저물어서야 송재이는 이불 속에서 작은 머리를 내밀었다.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침대에 앉아 옷을 입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오후에 그가 만들어준 파스타와 토스트, 과일도 먹었지만 또다시 배가 고팠다.설영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슈퍼 갔
휴가가 끝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설영준이 송재이에게 바란 건 잠자리뿐이었기에 그녀와의 미래를 그려본 적은 없었다.앞으로 결혼도 하게 되겠지만 그 상대는 절대 송재이가 아니었다.휴가가 끝나고 3일 뒤, 기업들은 정식으로 업무를 재개하기 시작했다.설한 그룹 회의실.각 계열사 대표들과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설한 그룹 사옥은 경주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사옥으로 백 년 된 기업의 기개와 대범함이 있었다.건물 전체에 하늘을 찌를 듯한 의욕과 생기발랄한 활력이 넘쳤다.아래층에서 위를 바라보던 도정원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느꼈다.제민 그룹도 나쁘지 않았으나 설한 그룹과 비교하면 아예 레벨이 달랐다.직원의 안내에 따라 도정원은 다른 회사 대표들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널찍하고 환한 회의실 안, 도정원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그가 들고 있는 두꺼운 서류뭉치는 최근 몇 년간의 비즈니스 운영 사례와 운영 방법들이었다.오전 열 시쯤, 설영준은 회의실 옆 방에 있었다.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짧은 머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귀티가 흐르면서도 엘리트 같아 보였다.어떤 이들은 강한 카리스마를 타고났고, 외모는 그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었다.오늘 설영준이 캐주얼한 차림이었다고 해도 그의 남다른 박력과 수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다.여진이 그에게 손목시계를 건넸다.설영준은 여유롭게 손목시계를 찼고 딸깍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말했다.“가죠.”...설영준은 서류를 챙겨서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의장이 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런 자리는 아주 익숙했다.설영준의 당당한 뒷모습 위로 화사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의장 자리에 앉았다. 도정원은 그의 대각선 오른쪽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설영준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뒤 무심한 얼굴로 도정원 쪽을 힐끗 바라봤다.“좋은 아침입니다. 새로운 분기의 시찰이 곧 시작될 겁니다. 전 의장 설영준입니다
설영준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도정원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는 비서에게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가라고 한 뒤 설영준의 차에 탔다.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햇빛 때문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도정원은 설영준이 자신에게 할 말이 있음을 보아냈다.그는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골프장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각자 휴게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이 골프장은 경주 상류층들의 집결지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지위가 높고 권세가 높은 사람들이고, 1년 회원권이 무려 몇천만 원이었다.휴게실 사물함 안에는 갈아입을 옷이 몇 벌씩 준비된다.설영준과 도정원은 캐주얼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안에서 나왔다.햇빛 아래 서자 그들은 평소 정장 차림 때보다 몇 살은 더 어려 보였고 청량함과 활력도 느껴졌다.설영준은 골프채를 들고 그늘 아래 서 있었다.잠시 뒤 도정원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섰다.두 남자는 키가 엇비슷했고 둘 다 훤칠하고 잘생겼으며 아우라가 남달랐다.그들은 조금 전 회의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공을 쳤다.그러다가 느닷없이 막 지난 설날로 화제가 돌려졌다.도정원은 웃으며 말했다.“저는 도씨 일가 사람들과 친분이 많지 않아서 그저 기본적인 예의만 차릴 뿐입니다. 그래서 설이면 아버지와 설을 보내는 경우가 잦죠. 예전에는 숙부들이나 친척들이 불평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안 그럽니다...”아주 겸손한 말이었다. 그러나 설영준은 충분히 이해했다.현재 도정원은 회사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더는 도씨 일가에서 무시당하던 그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권력과 지분으로 인해 집안에서의 권위도 꽤 높아졌을 것이다.원래 사람은 강해지면 괴롭힘 받는 일이 적어진다.설영준은 엷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도정원 씨는 승승장구하고 계시니 아버님께서도 분명 아들인 도정원 씨를 자랑스럽게 여길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설을 보낸다면 조금 쓸쓸하지 않나요? 재혼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주승아 씨도 돌아가신 지 꽤 됐는데
저녁때쯤, 가방을 들고 건물에서 나왔을 때 송재이는 눈에 익은 마이바흐를 발견했다.곧 훤칠하고 마른 젊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얼굴은 잘생겼지만 어쩐지 사람이 음흉해 보였다.송재이가 건물에서 나오자,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서도재는 처음으로 송재이를 보았다.사실 여러 번 만났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그녀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었다.전에는 오로지 연지수를 위해서 이곳에 왔었기 때문이다.잠자리를 가지기 전까지, 서도재는 파블로프의 개였다.연지수를 만나기만 하면, 그녀의 향기를 맡기만 하면 침을 흘리면서 그녀에게 다가가느라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연지수와 잠자리를 가진 지금, 새로운 맛은 아직 있었지만 처음처럼 그렇게 욕망이 강하지는 않았다.서도재는 예전에 비서에게서 연지수가 있는 오케스트라에 그녀보다 더 예쁘게 생겼지만 유명하지는 않은 여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허영심 또는 최초의 정복욕 때문에 그는 비서가 말했던 더 예쁜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그런데 지금 보니 조금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그는 송재이를 따라가다가 그녀가 손을 뻗어 택시를 잡는 걸 보았다.송재이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는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예뻐도 정말 너무 예뻤다....서도재는 움직임이 아주 빨랐다. 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송재이를 조사해 보라고 했다.비서도 이쪽으로는 경험이 많았었다. 서도재를 위해 이런 일을 많이 해봤었기 때문이다.세 시간 뒤, 비서가 송재이의 사진과 자료를 보냈고, 서도재는 휴대전화 속 그녀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송재이의 아름다움은 완전히 무해한, 아주 부드럽고 청순한 아름다움이었다.무표정일 때는 언제든 부서질 것만 같은 연약함이 느껴지기도 했다.서도재는 남자였고, 남자는 전부 짐승이었다.연약해 보이는 외모의 맛있는 사냥감이 눈앞에 있으면 갈기갈기 찢어서 먹어버리고 싶었다.이때 서도재는 연지수의 집에 있었다.연지수는 조금 전 샤워하러 갔다.욕실에서 나온 연지수는 아주 자연스럽게
연지수는 설영준에게 ‘버림’받은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 진정으로 세상 물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는 무시 당하고 놀림 받는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었다.“정말 그 여자가 마음에 든 거예요?”연지수가 눈을 치켜뜨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냥 갖고 노는 거예요. 지수 씨와는 절대 못 비기죠.”서도재는 아직도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있었다. 연지수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믿는 듯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어릴 적부터 남자는 너무 총명한 여자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어온 연지수였다. 연지수도 서도재의 행실이 바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송재이도 곧 이런 역겨운 남자랑 몸을 섞게 된다는 생각에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게다가 연지수는 송재이와 설영준의 관계를 늘 의심하고 있었다. 저번에도 설영준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송재이를 대신해 여론의 뭇매를 맞는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그녀를 마녀사냥하는 사람이 있었다. 설씨 집안과 주씨 집안의 혼인이 무산된 건 연지수가 설영준의 내연녀인 걸 들켰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모를까, 연지수는 설영준에게서 아무런 이점도 얻지 못했다.생각만 해도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에 연지수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서도재의 목을 휘감았다.“송재이와 식사하고 싶다는 부탁은 내가 들어줄게요. 하지만 그 전에 나랑 약속해요. 송재이는 그냥 갖고 노는 것일 뿐 진심은 주지 않는다고요.”지금 연지수는 사랑에 빠진 채 서도재가 한 말이라면 다 들어주면서 억울하고 불쌍한 눈빛으로 서도재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아니나 다를까 연지수의 표정에 기분이 좋아진 서도재가 깔깔 웃으며 냉큼 연지수를 안고 침대로 향했다.“지수 씨, 내가 만나는 여자들 중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지수 씨에요. 이렇게 착한데 내가 어떻게 지수 씨를 송재이랑 비기겠어요?”만나는 모든 여자라, 이 말은 서도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가 연지수 한 명만이 아니라는 것이다.연지수
송재이는 문예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지만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다행히 이때 송재이의 전화가 울렸다. 그제야 송재이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다시 긴장이 엄습하기 시작했다.[설영준]송재이가 문예슬을 힐끔 쳐다보더니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전화 좀 받고 올게.”이 말을 뒤로 송재이는 룸에서 나왔다.“섣달그믐날 밤에 우리 집에서 빚은 만두 있잖아. 그때 일부 덜어서 가져가지 않았어?”설영준은 매번 송재이에게 전화할 때마다 거두절미하고 용건부터 말했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안부를 묻는 것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어안이 벙벙한 송재이가 이렇게 말했다.“만두? 맞아. 내... 내가 아침으로 먹으려고 일부 덜어왔는데.”송재이는 박윤찬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그대로 똑같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근데 왜 갑자기 이걸 묻는 거지?설영준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차갑게 물었다.“송 선생님이 도벽이 있는지 지금 알았네.”송재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도벽이라니, 도대체 내가 뭘 훔쳤는데.”설영준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못 알아들은 척하긴. 우리 집 반찬통 훔쳐 갔잖아.”송재이는 그제야 설영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버벅거렸다.“그... 잠시만 빌린 거예요. 안 돌려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오늘 밤 장하로 갈 테니 와서 돌려줘.”“잉? 오늘 바로 달라고?”“무슨 문제 있어?”“아니...”송재이가 신속하게 머리를 굴렸다. 반찬통은 아직 도정원 손에 있었다. 시간 나면 민효연의 별장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했지만 가져다줬는지는 알 수 없었다.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데 설영준이 이렇게 말했다.“저녁에 봐.”수화기에서 이내 신호 연결음이 들렸다.송재이가 한참 동안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바로 도정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정원은 빨리 받았다.“송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현아도 요새 살이 많이 빠졌어. 그래도 정신은 점점 차리는 것 같더라. 괜찮아. 여자아이니 심술부릴 만도 하지.”민효연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주성 그룹도 요즘 인수 의향을 내비치던데 민 사장님은 알고 계셨나요?”설영준이 갑자기 물었다.장기 말을 들고 있던 민효연의 손이 멈칫했다.“설 대표, 주성 그룹이 인수한다는 회사를 귀띔해 주기라도 하려고?”“회사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입니다.”이 일은 주성 그룹도 매우 조심스러웠기에 성사하기 전에는 절대 외부에 알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바닥에 몸을 담그고 있는 설영준은 이런 소식을 알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이에 설영준은 역시 짬밥은 무시 못 한다고 생각했다. 설동훈도 전에 주정명은 속이 매우 좁은 사람이니 조심하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주정명이 노린 건 설영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설영준은 눈빛이 날카로웠고 표정은 웃는 듯 마는 듯 아리송했다.“사장님이 지금까지 한 제일 현명한 선택이 주성 그룹과 선을 그은 거예요. 그러니 제가 손을 쓴다 해도 사장님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민효연이 한참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내 생각은 여전히 같아. 주정명이 한 짓은 나랑 아무 상관 없어. 하지만 현아는 건드리지 마. 현아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그건 주현아가 사장님만큼 총명한지 봐야죠.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걸 잘해야 무사할 수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설영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주현아가 내 아이를 죽인 건 사실이잖아요. 내 사람을 함부로 건드렸으니 이 원수는 죽을 때까지 기억할 수밖에 없어요.”맞은편에 앉은 민효연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던 민효연이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내 딸은 내가 잘 교육할게. 전에 설 대표한테 한 짓은 내가 대신 사과하지.”“사과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앞으로 다시는 범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설영준이 싱긋 웃어 보였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