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도정원은 그녀가 밖에서 통화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똑''똑'그의 손이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녀는 설영준과 전화 통화를 끝내고 국숫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도정원이 물었다."나갈까요?""그래요."국숫집을 나선 후, 그녀는 도정원의 차에 올랐다. 가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송재이 마음도 많이 평온해졌다.그녀는 이미 도경욱과 도정원이 자기의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그저 헤프닝이었을 뿐이었기에 그렇게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 일로 그렇게 우울해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했다."아까 그렇게 말하셨잖아요. 앞으로도 친오빠처럼 대해도 된다고. 진심으로 한 말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도정원을 바라보면서 물었다.그는 운전 중이었는데 그녀의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 걸 보고 놀랐다.'아까까지 훌쩍거리면서 얼굴이 죽상이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고?'이렇게 생각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물론이죠, 제가 나이가 더 많으니 나이로는 오빠가 맞죠.”그 말을 들은 송재이는 눈매가 휘어지게 웃었다."그럼 정원 오빠, 앞으로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를 잘 지켜주셔야 해요. 오빠를 도와서 연우를 잘 돌볼 테니 오빠는 저를 지켜주세요, 알겠죠?”"당연하죠.”도정원은 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그는 시인의 얼굴에 미소를 보고 마음이 매우 괴로워 말을 잇지 못했다. 거의 송재이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갑자기 또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참, 지난번에 우리 집으로 보내준 만두 도시락은 제가 이미 씻어놨어요. 다음에 제가 사장님 집으로 보낼게요. 가는 김에 가져가세요.”"네, 그럴게요." 그녀는 도시락은 사실 자기의 것이 아니라 설씨 집안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도정원이 직접 설영준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왜 설씨 가문의 도시락이 왜 그녀의 손에 있는지
송재이는 얼떨결에 뭐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전에 영상통화에서 인연이 닿아도 함께 할 수 없는 사이라고 도정원과의 사이를 설명했던 적이 있었다.그러나 설영준이 송재이를 오해한 것이 분명했다."도정원 대표님 좋은 분이야. 인연이 있어도 남매 관계고, 오빠로 삼고 싶어."송재이는 진심이었다. 아무런 애매한 관계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현대인에게 혈육이 없다면 남매니 오빠니 하는 것은 추잡스러운 핑계라고 생각하기 쉬웠다.'남매?''X랄 하네!'설영준은 더욱 껴 끌어 안아 키스를 했다. 송재이는 아파서 숨을 들이 마셨다.송재이를 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실에서 나온 그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껴안았다.설영준은 송재이의 얼굴에 입술을 갖다댔다."왜 울었어? 응?"그녀를 울게 한 사람이 도정원이 맞는지, 이게 바로 그가 묻고 싶은 것이었다.하지만 이렇게 물으면 송재이가 자기가 질투하는 줄 알까 봐 묻지 않았다.그녀는 온몸에 힘이 다 풀렸다.설영준이 욕실에서 한바탕 저질러서 졸려 눈도 뜨지 못했다.얼버무리게 입을 열었다. "아니, 안 울었다니까…"송재이는 몸만 피곤했을 뿐, 정신은 멀쩡했다.설영준을 보니 자신과 도정원 사이에 뭔가 있다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만약 송재이가 아직도 울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또 자신이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웠다.그의 호르몬을 좋아했지만 체력이 바닥났다.하지만 설영준은 송재이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설영준은 송재이의 얼굴을 돌려 키스를 갈겼다. 그녀 위로 올라탔다."차라리 이전에 내가 너를 지원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는 내 말도 잘 들었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어! 나를 배신하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고혹적이고 허스키했다."오빠로 삼고 싶어? 그럼 나는? 말해봐!"설영준이 물었지만 송재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마치 큰 전쟁을 치르는 듯했다.방안에서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송재이의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설영준의 어깨를 힘껏 깨물었
“많이 긴장했어?”설영준이 태연한 얼굴로 은근히 물었다.송재이는 서둘러 고개를 젓더니 그릇을 내려놓으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했다.설영준은 너무 치명적이었다.그에게는 눈빛 하나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일부러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른다.그러나 오히려 그런 무신경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담긴 짙은 욕망이 그녀를 자꾸만 심란하게 만들었다.다루기 어려운 야수처럼 거친 남자는 매력이 흘러넘치는 법이다.“밥 다 먹으면 돌아가려고?”송재이가 식탁 앞에서 입을 열었다.설영준은 젓가락을 들고 접시 안 음식을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네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뭐라고?”송재이는 이해하지 못했다.“내가 보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고, 날 보내는 게 아쉬우면 그냥 여기 남아있을게.”설영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장난기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송재이는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설영준이 과연 눈치채지 못했을까?설영준은 그녀가 직접 얘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내가 가지 말라고 하길 바라는 거야? 꿈 깨! 난 절대 말 안 할 거야!’식사를 마친 송재이는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난 다 먹었어. 이제 잘 거니까 돌아갈 때 문 잘 잠그고 나가.”말을 마친 뒤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난 듯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어젯밤 그녀는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오전 햇볕은 아주 따뜻하고 좋았다.송재이는 다시 침대에 누운 뒤 이불을 덮고 낮잠을 자려고 했다.그러나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잠이 들지 못했다.설영준이 밖에 있다는 걸 알아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탓이었다. 결국 송재이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설영준이 문을 열고 떠나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랑하는 남자에게 홀대받는 느낌이라 괴로웠지만 그 괴로움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이 틀림없이 떠날 거로 생각했다. 다만 그가 언제 떠
“여기서 자고 가는 남자는 내가 첫 번째인 거지?”끝날 때쯤에 송재이는 땀범벅이었다.그녀는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자신의 등 뒤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설영준의 말을 들었다.송재이는 후회되기 시작했다. 설영준을 굴복시킬 생각으로 시작한 것인데 결국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은 그녀였다. 참 창피한 일이었다.“첫 번째는 맞지만 마지막은 아닐 거야...”송재이는 이를 악물고 원망스레 대답했다.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소녀의 것처럼 귀엽고 매력적이었다.그런 부드러운 매력이 설영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설영준은 송재이가 가끔 토라져서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한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따질 생각은 없었다.이제 막 그 짓을 끝내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설영준은 피식 웃으며 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 말은 다른 남자도 만나보고 싶다는 거야? 그러면 못 써. 네가 다른 사람이랑 만나본 적 없어서,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서 그래. 날 소중히 여기라고...”“뻔뻔하긴!”송재이는 그가 뻔뻔하게 느껴졌다.그녀는 몸을 돌려 눈을 부릅뜨면서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설영준은 그녀를 침대 위에 눌러놓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송재이가 욕하고 때려도 설영준은 줄곧 태연했다.육체적으로 만족해서 화를 내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설영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 그의 눈에 송재이는 작은 동물 같아 보였다.오늘 오후에는 낮잠을 잘 생각이었으나 송재이는 몇 번이나 설영준에게 잡아먹혔다.온갖 수단을 다 써도 그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물론 설영준은 그녀에게 그럴 기회를 줄 생각도 없었다.송재이는 저녁쯤이면 살이 빠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배고파...”날이 저물어서야 송재이는 이불 속에서 작은 머리를 내밀었다.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침대에 앉아 옷을 입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오후에 그가 만들어준 파스타와 토스트, 과일도 먹었지만 또다시 배가 고팠다.설영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슈퍼 갔
휴가가 끝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설영준이 송재이에게 바란 건 잠자리뿐이었기에 그녀와의 미래를 그려본 적은 없었다.앞으로 결혼도 하게 되겠지만 그 상대는 절대 송재이가 아니었다.휴가가 끝나고 3일 뒤, 기업들은 정식으로 업무를 재개하기 시작했다.설한 그룹 회의실.각 계열사 대표들과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설한 그룹 사옥은 경주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사옥으로 백 년 된 기업의 기개와 대범함이 있었다.건물 전체에 하늘을 찌를 듯한 의욕과 생기발랄한 활력이 넘쳤다.아래층에서 위를 바라보던 도정원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느꼈다.제민 그룹도 나쁘지 않았으나 설한 그룹과 비교하면 아예 레벨이 달랐다.직원의 안내에 따라 도정원은 다른 회사 대표들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널찍하고 환한 회의실 안, 도정원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그가 들고 있는 두꺼운 서류뭉치는 최근 몇 년간의 비즈니스 운영 사례와 운영 방법들이었다.오전 열 시쯤, 설영준은 회의실 옆 방에 있었다.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짧은 머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귀티가 흐르면서도 엘리트 같아 보였다.어떤 이들은 강한 카리스마를 타고났고, 외모는 그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었다.오늘 설영준이 캐주얼한 차림이었다고 해도 그의 남다른 박력과 수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다.여진이 그에게 손목시계를 건넸다.설영준은 여유롭게 손목시계를 찼고 딸깍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말했다.“가죠.”...설영준은 서류를 챙겨서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의장이 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런 자리는 아주 익숙했다.설영준의 당당한 뒷모습 위로 화사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의장 자리에 앉았다. 도정원은 그의 대각선 오른쪽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설영준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뒤 무심한 얼굴로 도정원 쪽을 힐끗 바라봤다.“좋은 아침입니다. 새로운 분기의 시찰이 곧 시작될 겁니다. 전 의장 설영준입니다
설영준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도정원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는 비서에게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가라고 한 뒤 설영준의 차에 탔다.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햇빛 때문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도정원은 설영준이 자신에게 할 말이 있음을 보아냈다.그는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골프장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각자 휴게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이 골프장은 경주 상류층들의 집결지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지위가 높고 권세가 높은 사람들이고, 1년 회원권이 무려 몇천만 원이었다.휴게실 사물함 안에는 갈아입을 옷이 몇 벌씩 준비된다.설영준과 도정원은 캐주얼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안에서 나왔다.햇빛 아래 서자 그들은 평소 정장 차림 때보다 몇 살은 더 어려 보였고 청량함과 활력도 느껴졌다.설영준은 골프채를 들고 그늘 아래 서 있었다.잠시 뒤 도정원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섰다.두 남자는 키가 엇비슷했고 둘 다 훤칠하고 잘생겼으며 아우라가 남달랐다.그들은 조금 전 회의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공을 쳤다.그러다가 느닷없이 막 지난 설날로 화제가 돌려졌다.도정원은 웃으며 말했다.“저는 도씨 일가 사람들과 친분이 많지 않아서 그저 기본적인 예의만 차릴 뿐입니다. 그래서 설이면 아버지와 설을 보내는 경우가 잦죠. 예전에는 숙부들이나 친척들이 불평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안 그럽니다...”아주 겸손한 말이었다. 그러나 설영준은 충분히 이해했다.현재 도정원은 회사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더는 도씨 일가에서 무시당하던 그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권력과 지분으로 인해 집안에서의 권위도 꽤 높아졌을 것이다.원래 사람은 강해지면 괴롭힘 받는 일이 적어진다.설영준은 엷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도정원 씨는 승승장구하고 계시니 아버님께서도 분명 아들인 도정원 씨를 자랑스럽게 여길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설을 보낸다면 조금 쓸쓸하지 않나요? 재혼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주승아 씨도 돌아가신 지 꽤 됐는데
저녁때쯤, 가방을 들고 건물에서 나왔을 때 송재이는 눈에 익은 마이바흐를 발견했다.곧 훤칠하고 마른 젊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얼굴은 잘생겼지만 어쩐지 사람이 음흉해 보였다.송재이가 건물에서 나오자,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서도재는 처음으로 송재이를 보았다.사실 여러 번 만났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그녀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었다.전에는 오로지 연지수를 위해서 이곳에 왔었기 때문이다.잠자리를 가지기 전까지, 서도재는 파블로프의 개였다.연지수를 만나기만 하면, 그녀의 향기를 맡기만 하면 침을 흘리면서 그녀에게 다가가느라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연지수와 잠자리를 가진 지금, 새로운 맛은 아직 있었지만 처음처럼 그렇게 욕망이 강하지는 않았다.서도재는 예전에 비서에게서 연지수가 있는 오케스트라에 그녀보다 더 예쁘게 생겼지만 유명하지는 않은 여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허영심 또는 최초의 정복욕 때문에 그는 비서가 말했던 더 예쁜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그런데 지금 보니 조금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그는 송재이를 따라가다가 그녀가 손을 뻗어 택시를 잡는 걸 보았다.송재이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는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예뻐도 정말 너무 예뻤다....서도재는 움직임이 아주 빨랐다. 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송재이를 조사해 보라고 했다.비서도 이쪽으로는 경험이 많았었다. 서도재를 위해 이런 일을 많이 해봤었기 때문이다.세 시간 뒤, 비서가 송재이의 사진과 자료를 보냈고, 서도재는 휴대전화 속 그녀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송재이의 아름다움은 완전히 무해한, 아주 부드럽고 청순한 아름다움이었다.무표정일 때는 언제든 부서질 것만 같은 연약함이 느껴지기도 했다.서도재는 남자였고, 남자는 전부 짐승이었다.연약해 보이는 외모의 맛있는 사냥감이 눈앞에 있으면 갈기갈기 찢어서 먹어버리고 싶었다.이때 서도재는 연지수의 집에 있었다.연지수는 조금 전 샤워하러 갔다.욕실에서 나온 연지수는 아주 자연스럽게
연지수는 설영준에게 ‘버림’받은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 진정으로 세상 물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는 무시 당하고 놀림 받는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었다.“정말 그 여자가 마음에 든 거예요?”연지수가 눈을 치켜뜨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냥 갖고 노는 거예요. 지수 씨와는 절대 못 비기죠.”서도재는 아직도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있었다. 연지수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믿는 듯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어릴 적부터 남자는 너무 총명한 여자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어온 연지수였다. 연지수도 서도재의 행실이 바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송재이도 곧 이런 역겨운 남자랑 몸을 섞게 된다는 생각에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게다가 연지수는 송재이와 설영준의 관계를 늘 의심하고 있었다. 저번에도 설영준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송재이를 대신해 여론의 뭇매를 맞는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그녀를 마녀사냥하는 사람이 있었다. 설씨 집안과 주씨 집안의 혼인이 무산된 건 연지수가 설영준의 내연녀인 걸 들켰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모를까, 연지수는 설영준에게서 아무런 이점도 얻지 못했다.생각만 해도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에 연지수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서도재의 목을 휘감았다.“송재이와 식사하고 싶다는 부탁은 내가 들어줄게요. 하지만 그 전에 나랑 약속해요. 송재이는 그냥 갖고 노는 것일 뿐 진심은 주지 않는다고요.”지금 연지수는 사랑에 빠진 채 서도재가 한 말이라면 다 들어주면서 억울하고 불쌍한 눈빛으로 서도재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아니나 다를까 연지수의 표정에 기분이 좋아진 서도재가 깔깔 웃으며 냉큼 연지수를 안고 침대로 향했다.“지수 씨, 내가 만나는 여자들 중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지수 씨에요. 이렇게 착한데 내가 어떻게 지수 씨를 송재이랑 비기겠어요?”만나는 모든 여자라, 이 말은 서도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가 연지수 한 명만이 아니라는 것이다.연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