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가 웃음을 참으며 설영준의 입가를 가리켰다.“여기, 부스러기 묻었어.”아마도 빵을 먹다가 묻은 것 같았다. 진지한 설영준의 표정과 부스러기는 묘하게 이질적이었다.설영준이 손을 들어 입가를 닦아냈다. 여러 번 반복해도 닦아야 할 위치를 닦지는 못했다.“거기 아니야.”가만히 보고 있던 송재이가 손을 내밀어 대신 닦아줬다.“이제 됐어.”송재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설영준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송재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이 매우 뜨거웠다.멈칫하던 송재이가 설영준과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송재이는 얼른 손을 빼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만약 다른 사람이 이랬다면 송재이는 느끼한 변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영준은 마치 플러팅에 최적화된 사람처럼 여자를 홀리는 데 능숙했다. 돌직구였지만 매우 자연스러웠다.송재이는 설영준이 어딘가 사악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직함과 사악함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 도대체 어느 쪽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설영준이 만약 고대 신화에 나왔다면 분명 남자 구미호로 나왔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결국 그의 남자다운 매력에 흠뻑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쪽일 것이다.송재이는 순간 박윤찬이 떠올랐다. 저번에 설영준의 집에서 설을 보낼 때 송재이의 얼굴에 밀가루가 묻은 적이 있었다. 이를 발견한 박윤찬이 핸드폰을 가져다 화면으로 송재이의 얼굴을 비춰주며 닦으라고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송재이는 박윤찬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홀릴 줄 몰랐기에 그냥 FM 답게 해결하면 그만이었다.박윤찬가 비기면 설영준은 정말 요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설영준은 송재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송재이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자 설영준의 입꼬리가 묘한 각도로 올라갔다. 원하는 걸 이뤘다는 의미였다.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을 홀리는 게 플러팅의 최고 경지 아닐까?...식사를
전화를 끊은 주현아의 머릿속엔 설영준과 송재이가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짜증 났지만 한편으로 서럽기도 했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질투도 섞여 있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주현아를 힘들게 했다.몇 분 뒤, 주현아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지금 바로 송재이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직접 얼굴 보고 대화하고 싶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의 차를 타고 오케스트라로 향했다. 하지만 너무 이목을 끌까 봐 설영준에게 길 맞은편에서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설영준도 바로 아래에 세울 생각은 없었지만 송재이가 이렇게 말하자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마치 설영준과의 사이가 떳떳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설영준이 송재이를 차갑게 쏘아봤다.“나 갈게.”송재이는 예의상 이렇게 말했다. 설영준이 송재이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앞을 바라보며 대꾸하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진 거지?송재이는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없던 터라 바로 차에서 내렸다.오전 훈련이 절반쯤 끝나고 잠깐 화장실에 들린 송재이는 거울 앞에서 두 여자애가 토론하는 걸 들었다.“너도 들었어? 누가 우리 오케스트라 인수한다고?”“나는 그냥 찌라시인 줄 알았는데 너도 들었구나.”“에이 설마. 이렇게 갑자기?”눈이 휘둥그레진 송재이가 얼른 화장실에서 나와 대화에 끼어들려 했다.“방금 한 얘기 뭐예요? 누가 오케스트라를 인수해요?”...이 소식은 아직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내부적으로 쉬쉬거리는 정도였고 단장에게 확인한 내용은 없었다.연습실로 돌아온 송재이는 마음이 불안했다. 인수라면 사안이 중대한데 아직 어느 회사에서 인수하는지도 모른다.송재이는 앞길이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연지수가 몸을 배배 꼬며 걸어왔다. 정교한 화장에 파마도 다시 한 것 같았다.송재이와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도 송재이는 연지수에게서 나는 독한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송재이는 자기도 모르게 재채기했다.연지수가 고개를 돌리더니 자기가 뿌린 향
점심을 먹고 돌아온 송재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현아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이곳은 주현아가 처음 파견 업무를 나온 곳이기도 했다. 주현아의 까만 눈동자가 송재이를 향했다.“나 찾으러 온 거예요?”송재이는 자기를 아래위로 훑는 듯한 주현아의 눈빛이 매우 거슬렸다.전에는 주현아가 설영준의 약혼녀였다면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니 송재이도 더는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주현아가 눈을 찌푸리더니 턱을 살짝 들었다.“잠깐 얘기 좀 할까요?”송재이는 주현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현아가 원한다고 그녀가 꼭 상대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송재이는 주현아에게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기에 이렇게 말했다.“마침 나도 물어볼 거 있었어요.”주현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송재이가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전에 설 대표님 약혼녀였으니 설 대표님 생일이 언제인지도 알겠네요. 언제였죠? 나는 기억이 잘 안 나서요.”아니나 다를까 주현아의 표정이 변했다. 송재이의 대담함과 직설적인 말투에 놀란 듯 보였다.어제 설영준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배짱이라도 생긴 건가? 그래서 이렇게 우쭐거리는 거겠지?송재이의 말투는 분명 도발이었다. 그리고 주현아에 대한 경고도 있었다.전에는 약혼녀일지 몰라도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말이다. 주현아가 아무리 오만한 자태를 보여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태도 표시기도 했다.“설 대표님과 파혼한 건 맞아요. 우리 사이도 과거형이 됐죠. 그러니 만났던 사람 또 만나는 송재이 씨와 비길 것도 없죠. 근데 직접 물어봐도 되는 건 본인한테 확인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주현아도 질세라 이렇게 비아냥댔다.송재이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 그러네요. 내 남자에 관한 걸 다른 여자한테 물어보고 있었네? 내가 헛짓거리했네요.”“내 남자요?”주현아가 눈을 부릅떴다.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 갈 정도였다. 만
주성 그룹에 도착한 주현아는 바로 주정명이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어딘가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다리를 꼰 채 주정명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주현아의 시선에 서둘러 몸을 일으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방현수라고 합니다.”그는 주성 그룹 협력 회사의 재무팀 팀장으로 오늘은 주정명과의 미팅 때문에 이곳에 방문했다.주현아는 싱긋 웃고는 그와 악수를 했다.그녀는 그제야 이 남자를 어디에서 봤는지 떠올렸다.방현수는 송재이와 함께 춤을 춘 적이 있었고 설영준과 연지수가 끌어안고 춤추고 있는 사진 속 뒤편에 찍혔었다.방현수는 당시 송재이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그 장면을 떠올린 주현아는 점점 미소를 지워갔다.방현수가 주정명과의 얘기를 다 마치고 사무실을 떠나려는 그때 주현아는 그를 불러세우더니 연락처를 교환하며 서로 카톡도 추가했다.그 모습을 보던 주정명은 눈썹을 꿈틀거렸다.방현수가 사무실을 나간 뒤 그는 주현아를 향해 물었다.“너 설마 쟤가 마음에 든 거냐?”방현수는 일개 팀장일 뿐이고 설영준보다는 한참이나 급이 낮은 그런 사람이다.주현아는 그의 질문에 코웃음을 쳤다.“아빠, 내가 미쳤다고 저런 사람이 마음에 들겠어요? 다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송재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방현수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설영준은 2시간이나 지나고 나서야 메시지를 확인했다.낯선 번호로 온 것이었지만 내용을 보는 순간 발신자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그는 메시지 내용을 캡처하고는 [내 남자]라는 세글자를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 말을 한 당사자인 송재이에게 캡처 사진과 메시지를 보냈다.설영준은 송재이가 주현아를 ‘도발’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저 마지막 말에만 초점을 두었다.[네 남자가 누군데?]송재이는 그 메시지를 보고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주현아가 이렇게 빨리 설영준에게 얘기했을 줄은 몰랐다.주현아를
설영준은 왼손에 휴대폰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이마를 짚은 채 생각에 잠겼다.그러다 오후 2시가 되었을 무렵 그는 주정명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레스토랑 룸.주정명은 설영준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고 나이도 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매번 아들뻘인 설영준과 만날 때면 이상하게 불편했고 심지어는 우스갯소리로 마치 주상전하를 모시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하지만 주현아와의 약혼이 무산된 일만큼은 설씨 가문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때 설영준이 안으로 들어오고 주정명은 그저 고개를 살짝 까딱할 뿐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다.웨이터가 들어온 후 설영준은 주정명이 즐기는 우롱차를 주문했다.“기억력이 좋구나. 이제는 예비 사위도 아닌데 내가 즐겨 마시던 것도 다 기억하고.”“그럼요. 그래서 누가 언제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 같은 것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웨이터가 나간 뒤 설준영은 주정명을 바라보며 뼈 있는 말을 꺼냈다.이에 주정명은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아무래도 설영준이 무언가를 단단히 준비하고 온 듯했다.그리고 그 무언가가 오케스트라 인수 건보다 더 강력하고 날카로운 무기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최근 주성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여자가 속해 있는 오케스트라를 인수하시겠다고요? 돌려 말할 생각 없습니다. 그 인수 건 계속 진행할 생각이라면 저도 대표님께서 몇 년 전에 저질렀던 일을 그대로 경찰서에 넘기도록 하겠습니다.”“...뭐야?”설영준은 그의 여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이름을 대지 않았다.주정명은 이미 머리가 새하얘져 입이 바짝 말라왔다.“설영준, 너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기나 해?”“20년 전, 대표님이 건설회사 대표직을 맡고 있었을 당시 부실공사로 다리 하나가 붕괴했었죠. 그때 3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은 인명피해가 있었고요. 사건이 일어난 뒤 대표님은 제일 먼저 다리 공사 총 책임자를 매수해 수치를 조작했고 가짜 증언을 하게 했죠.
저녁.송재이는 서유리와 함께 빌딩에서 걸어 나왔다.빌딩 바로 앞 도로변에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멈춰서 있었다.그 차가 설영준의 차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서유리는 옆에 있는 송재이에게 눈치를 주었다.설영준은 송재이를 발견하고는 창문을 내려 짧은 한마디를 던졌다.“타요.”그의 얼굴을 본 순간 송재이는 그가 ‘네 남자’라 했던 말이 생각나 어딘가 모르게 민망하고 또 어색했다.저녁 바람이 솔솔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트려놓았다.송재이는 머리를 뒤로 한번 쓸어넘긴 다음 운전석에 앉은 그를 향해 말했다.“유리 씨랑 가야할 곳이 있어요. 먼저 가요.”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서유리는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은 피식 웃더니 능글맞은 얼굴로 말했다.“정말 안 탈 거예요? 악단이 곧 인수되게 생겼다던데 그 인수하려는 사람이 나란 생각은 못 하나 봐요?”그 말에 송재이와 서유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서유리는 서둘러 송재이를 차량 쪽으로 떠밀며 말했다.“빨리 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요. 그리고 인수하려는 사람이 정말 대표님이라면 그때는 미인계로 어떻게 해봐요, 알겠죠?”송재이는 어이가 없었다.미인계라니!그때 빌딩 안에서 사람들이 밀려 나왔고 그들을 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어쩔 수 없이 송재이는 서유리와 인사하고 난 후 차에 올라탔다.한동안 설영준에게서는 처음 맡아보는 여자 향수 냄새가 났었다. 그 냄새가 주현아의 향수 냄새였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하지만 최근 그에게서 그녀의 향수 냄새는 사라졌고 지금도 설영준의 차 안에서는 은은한 우디향만 풍겼다.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송재이는 시트에 등을 편히 기댔다.그리고 차에 시동이 걸리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물었다.“인수된다는 거 알고 있었어?”“응, 들었어.”그 말은 인수하려는 사람이 설영준은 아니라는 소리였다.‘아까는 그냥 하는 소리였나 보네. 설영준이 아니면 대체 누구지?’“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가?”송재이
저녁 8시.차량은 유럽풍 건축물 앞에서 드디어 멈춰 섰다.송재이는 안젤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조금은 쌀쌀한 공기가 불어왔다.건축물 앞에는 돌로 된 담장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설영준은 담장 옆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는 듯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이 안쪽에 라벤더 꽃밭이 있어. 거기는 여기처럼 춥지 않을 거야.”송재이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출입문을 향해 걸었다.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 입구 쪽 바닥은 온통 넝쿨로 덮여 있었다.‘이래서 손을 잡으라고 한 거구나.’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넝쿨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평평한 바닥까지 왔음에도 설영준은 손잡은 걸 잊은 것인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송재이도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그의 뒤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니 탁 트인 라벤더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은은한 달빛 아래 꽃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주위는 무척이나 조용해 마치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또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송재이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라벤더 향기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러고는 대자연 한가운데서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만끽했다.설영준은 고개를 돌려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내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아봤어?”갑자기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송재이는 그제야 두 눈을 떴다.“누구한테 물었는데?”‘누구한테 물었냐니,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주현아가 메시지에서 다 얘기했을 텐데?’송재이는 고개를 돌려 할 말 가득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가 또다시 말을 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정말 네 생일을 모른다고 생각해? 7월 17일이잖아! 너야말로 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지?”그녀의 말투에는 원망과 속상함이 묻어있었다.설영준은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드는 것을 보고 물었다.“예를 들면?”“셀 수도 없이 많아.”송재이는 기분이 확 나빠져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을 입에 올렸다.“나는 몇 년 전
주정명에게 맞은 후 주현아는 방안에 틀어박혀 한참을 울었다.송재이에게 했던 짓을 아빠에게 전부 다 들켜버렸다.주현아는 줄곧 아빠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아빠의 마음속 1순위는 자신이 아닌 아빠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주현아는 시커먼 방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하지만 서럽게 울면서도 휴대폰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코를 훌쩍이며 카톡을 훑어보던 그때 방현수라는 이름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주현아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 불을 켰다.그러고는 소파에 다시 앉아 방현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그녀는 방현수에게 여자친구는 있는지, 만약 없다면 그에게 관심이 있는 여자가 있는데 소개받을 의향은 있는지 물었다.그러나 방현수는 좀처럼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어쩌면 시간이 늦어 휴대폰 확인이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주현아는 내일 다시 연락해도 늦지 않기에 일단은 바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다.그녀는 친구 목록에서 송재이가 소속된 오케스트라의 단장을 찾아내 말을 걸었다.단장과 말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그녀는 별다른 인사 없이 친구 집 아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한다며 송재이의 카톡 ID를 요구했다.단장은 주현아와 송재이가 원한이 깊은 사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송재이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아무런 고민 없이 바로 카톡 ID를 보내주었다.그 시각, 송재이는 샤워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그러다 카톡 친구 추가 알림음을 받았다.상대방은 정체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바로 자신이 주현아라고 밝혔다.송재이는 그걸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두 사람이 친구 추가까지 해서 할 얘기가 뭐가 있을까 싶었다.주현아가 며칠 전 송재이에게 한 방 먹고서는 자존심도 없이 먼저 친구 추가를 보낸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송재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현아가 이러는 이유가 궁금해 결국 친구 신청을 수락했다.몇 분 후, 주현아에게서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