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는 천진난만한 어조로 형사에게 물었다.형사는 난색을 보였다.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도움을 청하는 그의 시선이 신하균 곁에 있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말했다.“바론 공작, 부인, 이 사건은 아주 악질적인 사건이에요. 그런데 아주 순조롭게 해결되었죠. 만약 릴리 씨가 솔직히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건 단지 결과뿐만이 아니라 진실이 밝혀지는 것 아닌가요?”위엄있는 목소리였다.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어조라 뭐라고 하기가 그랬다.바론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바론은 아주 침착했고 위엄 넘쳤다.형사는 순간 흠칫하면서 감히 그의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고 서둘러 시선을 옮겼다.“저희는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겁니다. 이 사건을 더욱 크게 키우지 않으려면 협조해 주셔야 해요.”잠깐 겁을 먹긴 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상황을 보니 서울에 있는 고정철의 세력이 꽤 큰 듯했다.아직도 그들의 편을 들어주려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바론의 눈빛이 신하균에게로 향했고 신하균은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 형사는 감히 어쩌지 못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그리고 신하균은 덤덤한 어조로 형사에게 당부를 했다.“릴리 씨는 피해자입니다. 심문을 하고 싶으신 거라면 조금 전 잡힌 범인을 심문하는 게 어떤가요? 그리고 사건을 크게 키우다뇨? 양 형사님은 제가 서장님께 이 사건을 알리기를 바라는 겁니까?”“신하균 씨...!”“두 분 다 그만하시죠. 양 형사님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저희는 지금 한국에 있으니 당연히 형사님 말씀에 따라야죠.”강미영이 미소 띤 얼굴로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었다.양수혁은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어두운 안색이 조금 환해졌다.그러나 곧 바론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하지만 따지고 보면 당신들은 내 딸의 말을 믿지 않는 거군.”양수혁은 다
포크의 무게와 크기를 가늠하던 손이 멈췄다.그녀의 형부는 아주 세심했다. 강유리뿐만 아니라 강유리의 가족들까지 전부 챙겼으니 말이다.앞으로 남자 친구를 찾는다면 육시준 같은 남자를 찾는 것이 좋을 듯했다.넓은 거실에 선 릴리는 고개를 들어 신하균 옆에서 자꾸만 딴지를 걸던 양수혁을 바라보며 포크를 쥐었다.“말로 설명하는 건 소용 없을 것 같네요. 그렇게 믿기 어려우시다면 어디 한번 직접 경험해보시겠어요?”신하균은 바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육시준이 예리한 무기와 둔기에 관해 얘기할 때야 뒤늦게 깨달았다.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호통을 쳤다.“뭐 하는 거예요?”릴리는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신하균이 호통을 치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왜요? 안 돼요? 아, 혹시 전에 했던 말 때문에 그래요? 경찰을 습격하면 안 된다던 거?”“그 문제가 아니에요. 어쨌든 절대 안 돼요.”신하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릴리는 맥이 빠졌다.“그 문제가 아니라면 상관없는 거 아니에요? 양 형사님은 그 경호원들보다도 약할 텐데요? 어차피 제가 이기면 제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는 게 증명되는 셈이잖아요.”신하균의 입가가 떨렸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설명했다.“양 형사님은 특수부대 출신이었어요. 부상 때문에 일찍 퇴직하긴 했지만 그래도 절대 약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둬요!”릴리는 말문이 막혔다.신하균의 말을 정리해 보자면 양수혁은 싸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게다가 퇴직해 놓고 이 사건에 간섭하려는 걸 보면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양수혁은 릴리의 도발에 의아했었다. 그는 자신이 이 가녀린 소녀를 다치게 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릴리가 이렇게 건방을 떨 줄은 몰랐다.게다가 릴리는 그가 경호원보다 약할 거라고 했다.참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공작님의 수양딸이라는 이유로 내가 공격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나?’고씨 일가가 아니라 고한빈을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릴리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밝혀야 했다.그래야만 이 사
신하균은 긴장한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릴리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참았다.그러다 마지막에는 말리는 걸 포기하고 진지하게 관전했다.보면 볼수록 놀라웠다.릴리는 겉보기엔 귀여웠지만 싸우는 모습은 아주 과격하고 무자비했다.게다가 대부분이 치명적인 공격이었다.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란 그녀가, 애지중지 길러진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한 격투 기술을 알고 있는 걸까?마치 자주 싸움을 해본 듯 말이다.양수혁 역시 신하균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한 손으로 목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힘없이 축 늘어뜨렸다. 릴리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경악이 가득했다.가녀리고 약해 보이는 릴리에게 이렇게 폭발적인 힘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캐번디시 일가의 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그 경호원의 상처와 똑같은지 한 번 확인해 보실래요? 참, 그 사람 오른팔도 제가 부러뜨린 거예요. 오른팔을 부러뜨린 뒤에는 경찰들이 오기 전에 저한테 반격할까 두려워 왼팔까지 부러뜨렸어요.”말을 마친 뒤 릴리는 앞으로 걸어갔다.양수혁은 저도 모르게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겁먹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만하세요. 이젠 믿어요.”“믿는다니 다행이군. 우리 딸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았어. 지력도 체력도 모두 또래보다 훨씬 더 뛰어나지. 릴리는 아주 훌륭한 아이야. 물론 강한 만큼 책임도 뒤따르지만 말이지. 일반인들은 릴리의 똑똑하고 대범한 모습만 알아. 오직 릴리와 싸워본 사람만이 릴리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축하해, 양 형사.”바론은 낮은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는 갈색 눈동자로 양수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다.릴리를 얕봤던 양수혁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크게 좌절했다.그저 대놓고 얘기하지 않았을 뿐, 바론은 일찌감치 그의 의도를 눈치챘을 것이다.강미영은 꽤 심각한 상황에서도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얘기는 그만하시죠. 조사도 끝났으니 얼른 양 형사님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혹시
“고우신은 공범이에요. 그가 속은 건 사실이죠. 고씨 일가에서는 그를 지키기 위해, 그가 심한 처벌을 받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신하균이 갑자기 말했다.릴리는 미간을 구겼다. 사실 그녀는 그 문제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기에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절 불러낸 이유는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인가요?”신하균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릴리의 오른손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상처에 물 닿으면 안 돼요.”릴리는 작은 손을 펼쳐 보였다.“샤워는 해야죠. 안 묻을 수가 없어요.”“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해요.”“...”시선을 내리뜨린 릴리는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들어 신하균을 바라보았다.릴리는 사실 농담을 던지려고 했는데 신하균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눈빛에서 약간의 기대를 보았다.결국 릴리는 어쩔 수 없이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그녀는 의아했다. 신하균은 뭘 기대하는 걸까?빠르게 머리를 굴린 릴리는 몇 초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뭐,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릴리는 고도로 집중한 상태로 밤을 새운 데다가 기분이 오락가락해서 지금은 조금 피곤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몸을 곧추세우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또 뭐 할 말 있어요?”신하균은 기대와는 다른 그녀의 차가운 반응에 은근히 실망했다. 하지만 확실히 볼일이 있었다.“어젯밤에는 릴리 씨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었어요.”릴리는 자기보다 목소리가 더 애교스럽고, 더 끈질기게 달라붙던 김솔을 떠올렸다. 그녀가 물었다.“그래서요?”“그런데 릴리 씨는 화장실로 간 뒤로 돌아오지 않더군요. 그러다 종업원이 와서 릴리 씨가 떠났다고 알려줬어요.”그가 살짝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릴리는 그의 원망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결과가 궁금했다.“그 뒤에는요?”“...”신하균은 당황했다.“그래서 저도 돌아갔어요.”릴리는 의아했다.“김솔 씨를 집까지
해가 떠올랐고 은하타운은 여전히 고요했다.점심 때쯤 되어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은 강학도였다.그는 잠을 적게 잤고 낮잠을 자는 것에 익숙지 않았기에 점심시간이 되자 바로 깨어났다. 그가 도우미에게 점심 식사를 준비하라고 분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별장에 생기가 감돌았다.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고성 그룹의 새로운 집권자 납치 사건의 배후가 고씨 일가라는 기사가 뉴스 헤드라인에 걸리며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졌다.강학도는 돋보기안경을 쓴 뒤 태블릿을 들고 기사와 댓글을 열심히 읽었다.기사는 제대로 보도된 듯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 소식을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소방관들이 화재를 거의 다 진화한 상태였다. 물론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사람들이 구체적인 상황을 알게 된 이유는 고한빈 부자가 체포되었다는 공문 때문이었다.곧 그 빌라의 구매 정보와 또 다른 큰 지출들이 줄줄이 발각되었다.끝없이 업로드되는 기사들을 보며 네티즌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세상에, 재벌들은 다 이런가? 재산 분배가 고르지 않아서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재산 분배가 고르지 않다니, 이건 아예 주지 않은 거지.][난 기자회견이 절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 정말 열릴 줄은 몰랐어. 사람들이 재벌가 상속권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긴 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데 또 예상 밖이기도 해. 정말 무시무시하네.][내가 기억하기로 저 사람 실력도 있고 수완도 좋은데 명예와 이익 같은 거엔 관심이 없었거든? 고씨 일가 가주가 저 사람에게 제발 상속자가 돼 달라고 애원할지도 몰라.][재벌가 중에 명예와 이익에 관심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어제 기자회견 진짜 살벌했지. 고정철은 릴리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비아냥댔는데 릴리가 바로 그래서 재산을 빼돌렸냐고 반박했었잖아.][맞아, 맞아. 나도 그 영상 봤어. 진짜 웃긴 건 고씨 일가가 아직도 여론 조작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면 책임자를 찾아가시든가요! 고승원 씨를 찾아가든, 전 회장님이신 고정남 씨를 찾아가든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의 손녀딸은 이 일에 대해 책임이 없으니까요.”“어르신, 저희 이사회에서 전에 잘못한 부분은 인정합니다. 아가씨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말씀 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급해서요.”“...”눈을 부릅뜬 강철우는 별로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손녀딸이 고성 그룹을 받고 싶어 했기 때문에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지금은 전화 받을 수 없어요. 다쳐서 그러는데 이따 말씀하시죠!”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리고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상대방이 개인 전화번호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면 정말 대단했다.핸드폰을 꺼버리자마자 2층에서 발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자, 강유리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2층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유리야, 이렇게 일찍 깼어?”“네. 고성 그룹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깼어요. 할아버지한테 전화오셨어요?”“정말 급했나 봐. 괜찮아.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지 뭐.”“방금 릴리가 다쳐서 전화 받기 어려워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신 거 맞아요?”강유리가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강철우가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바로 거절할 수는 없잖아. 어차피 릴리도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데.”강유리도 동의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급해 할 필요 없겠네요.”강철우는 이 말에 의문이 가득했다.10분 뒤, 고성 그룹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관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는 병원에서 아가씨께서 무사히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병원 사진까지 첨부되어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사람들은 일제히 신임 집권자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처음부터 릴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도 정정당당하게 프로세스를 따라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남의 재물을 탐내어 목숨까지 해치려고 했던 고한빈은 결국 작전에 실패하고 말았다.아직도 그의 편을 들고 있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게시판에 글이 올라오자 이사회 주주
어젯밤 릴리가 갑자기 실종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었다.다치지도 않았고, 소문이 가짜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사라지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육시준은 바로 신하균에게 문자를 보냈다.강철우도 고성 그룹에 전화해서 물었고, 바론 공작과 강미영도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릴리를 찾기 시작했다...강릴리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할 때, 가냘프고도 익숙한 그림자가 집안으로 걸어들어왔다.“맛있는 냄새. 뭐 드시고 계세요?”“...”온 가족이 밥상 앞에 모이고, 화제가 순식간에 바뀌었다.강릴리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그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방에서 자지 않고 왜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건데?”“잠이 안 오는데 어떻게 자요?”“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못 들었어?”“밖에 나쁜 남자가 얼마나 많다고! 그렇게 밖에서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어젯밤...”마지막 이 한마디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겉보기에 걱정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노파심에 불안했기 때문이다.바론 공작은 바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그냥 네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말했을 뿐이지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야.”자기도 포함시켜 욕하면 안 되었다.딸한테 잘 보여야 할 판에 흠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제가 어제 나가서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하마터면 다시 만나지도 못했는데... 왜 화만 내고 그러세요!”강릴리는 억울한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하지만 그래도 갈비찜이 너무 맛있어 보였는지 한입 베어 물었다.강철우가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했다.“그러니까! 왜 그러는 거야! 급한 건 알겠는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살살 말하면 되잖아.”“저...”“맞아요. 너무했어요! 다음부턴 살살 말씀하세요. 릴리야, 어젯밤 그놈이 뭐라고 했는데?”강미영이 물었다.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의 시
아무리 한 치도 오차 없이 계획했다고 해도 순조롭게 흘러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육시준은 나중에 신하균의 전화를 받아서야 릴리와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우신 오빠가 데리러 와서 제가 궁금해하던 화제를 꺼내길래...”릴리는 우물쭈물 속았던 과정을 상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마침 강유리가 궁금했던 것도 다른 부분이었다.“그 사람이랑 갔는데 하균 씨가 뭐라고 안 해?”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픽업하러 온 사람이 있어서 데리러 올 필요 없다고 문자 보냈거든요.”“이 좋은 기회를 잡지 그랬어.”바론 공작도 강유리의 의도를 알고 물었다.“아니, 제가 한 말이 사실이라니까요! 관심이 없다는 데 왜 다들 안 믿는 거예요?”릴리가 멈칫하더니 이어서 말했다.“하균 씨도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하고 있다니까요.”“...”잠깐 침묵의 시간이 다가왔다.강유리는 그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릴리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긴 해도 마음이 식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강유리가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마음이 맞는다는 그 사람이랑은 정말 남녀 사이의 관계인 거야? 만약 하균 씨가 너를 좋아한다고 해도 포기할 거야?”릴리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더욱이 가능성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차라리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저는 진짜로 벌어질 일도 아닌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궁금해하지 말라고요. 다른 얘기 좀 해봐요. 어젯밤 고한빈 씨가 하는 행동을 보면 무조건 외국에 손잡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아빠는 언제 돌아가려고요?”총명한 릴리는 화제를 바론에게 돌렸다.바론이 여기 남아있는 이유는 훤히 보였다. 그래서 바론과 강유리가 더는 침묵하지 말고 문제를 직시하라고 일부러 끄집어냈다.고개 숙여 밥먹고 있던 강유리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여느 때와 같이 이 일은 자신과 아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