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서는 강유리를 따라 차에서 내리더니 바로 고자질을 하기 시작했다. “형, 그 감독 아무래도 문제 있는 것 같아. 오늘 형수님한테 술을 엄청 먹이더라니까! 게다가 형수님 주량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어. 아주 손쉽게 취하게 만들더라니까!”강유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강덕준이 무슨 흑심이 있다고 그런 짓을 하겠어? 그냥 내가 때릴까 봐 무서워서 그런 거야.”“…”“여보, 나 안아주면 안 돼? 나 못 걷겠어.”“…”육시준은 여자를 안아 올리더니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자를 소파에 내려놓더니 꿀물을 타려 몸을 일으켰다.강유리는 신고 있던 하이힐을 차버리고는 아무렇게나 소파에 기댔다. 그녀는 천장에서 반짝이는 크리스탈 샹들리에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눈이 부셨다. 눈이 아플 정도였다.성씨 집안사람들은 강도와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강유리의 모든 것을 뺏어간 걸로는 모자란 지 그녀를 통제하려 들기까지 했다.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한계를 모르는지 오히려 더 뻔뻔해졌다.“이거 마셔.”육시준은 그녀에게 다가왔다. 허리를 숙이던 순간,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얼굴은 왜 그래?”밖은 너무 어두웠다. 그래서 방금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제야 강유리의 얼굴이 조금 부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입가도 조금 찢어져 있었다.강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공허함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녀는 육시준을 지긋이 쳐다보았다.“강유리?” 그녀의 반응에 육시준은 눈썹을 찡그렸다.강유리는 몸을 일으키더니 그가 건네는 꿀물을 받아 들었다. “당신이 진짜 엄청난 억만장자였으면 참 좋을 텐데.”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녀의 말에 육시준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몸을 쭈그리더니 강유리와 시선을 맞추었다. “만약 그렇다면 뭘 하고 싶은데?”순간 강유리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쥐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신영이랑 성홍주 죽여버릴 거야
육경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형수님이 다쳤다고? 누가 감히 형수님을 때려?”그는 강유리가 얼마나 무섭게 사람을 때리는지 그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감히 강유리를 때리는 사람이 있다니.상대방은 얼마나 처참하게 맞았을까?잠깐만…“강 감독이 형수 달래주려고 하는 말을 들었거든? 막 욕하면서 성홍주 얘기를 하던데… 설마 성씨 집안이랑 연관 있는 거 아니겠지? 성신영이 전에 여자 조연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거든. 근데 오늘 여자 조연이 리딩 현장에 안 왔어.”이러면 모든 게 설명이 된다. 성홍주가 딸의 역할을 위해서 강유리에게 손을 댄 것이다.육시준은 눈을 어둡게 드리웠다. 순간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육경서는 형의 감정을 읽어냈는지 옆에서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성씨 집안 진짜 너무 하네! 형수를 이렇게 괴롭히고! 형! 지금 당장 신분 공개해 버리는 게 어때? 그 부녀를 죽여버리고 유강그룹을 다시 뺏어오는 거야! 이런 사람들한테는 폭력이 답이야!”육시준은 제안이 별로였는지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넌 어떻게 술 취한 사람이랑 똑같이 굴어?”“???”왜 인신공격을 하고 그러지?육경서의 의혹은 그리 오리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몸을 기울였다. “형수가 취해서 뭐라 했구나? 형한테 도와달라 그랬어?”육시준은 얼음주머니로 육경서를 밀어내며 가볍게 말했다. “그 사람들 죽여버리고 싶데.”“…”형수는 형수였다.폭력적이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육시준 성격으로는 절대로 쉽게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갓 데뷔했을 때, 육경서도 많은 고생을 고생을 했었다. 분명 같은 회사에 있었으면서도 형이라는 사람은 차갑게 방관하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에게 성장할 기회를 준다는 핑계였다.지금 형수에게는 아직 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능력이 없다. 그녀에게는 성장이 필요하다…“죽이는 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건 생각해 볼 만하지.” 남자는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이내 하나의 결론을 지었다.그가 성
강유리는 핸드폰을 챙겨 아래층으로 질주했다. 그녀는 육시준에게 이 상황을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거실에 벌려진 풍경에 그만 깜짝 놀라버리고 말았다.유니폼을 입고 있는 메이드들이 거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고, 주방에는 아주머니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정원사들이 꽃과 나무를 다듬는 모습이 눈에 안겨 왔다.강유리는 같은 자리에 한참이나 얼어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뺨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습! 아파!”꿈이 아니었다.육시준은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인기척을 벌써 알아채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질문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괴상한 행동을 할 거라고는…“깼어?” 남자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강유리는 어지러운 머리를 짚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육시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그때, 오씨 아주머니가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 “사모님, 대표님, 식사 준비 다 끝났습니다.”같은 시각, 육경서가 정원에서 걸어 나왔다. “형수 님, 드디어 깼어요? 아까 형한테도 말했는데, 이 사람들 다 제가 고용한 사람들이에요!”강유리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이 우리 집에 사람을 고용했다고요?”“아까 형이랑 얘기 다 끝났어요. 우리 집이 촬영장이랑 너무 멀어서 당분간 여기서 지내려고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공짜로 지낼 생각은 없으니까. 여기는 지내는 동안 집안일을 제가 고용한 하인이 도맡을 거예요. 그리고 지내는 동안 두 사람 사생활에는 일절 방해하지 않을게요…”육경서는 열심히 이 상황을 해명했다. 그의 입은 배속이라도 돌린 듯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였다.시끄럽고 어지러웠다.강유리는 한참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하지만 이내 뭐가 가장 중요한 일인지 생각났다. 당장은 육시준에게 주식에 대해 물어보는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그녀는 손으로 멈추라는 자세를 취했다. “알았어요. 일단 알아서 하세요. 저희는 일이 좀 있어서.”말을 끝낸 후, 그녀는 육시준을 서재로 끌고 갔다.그녀의
분석이고 나발이고, 강유리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녀는 운도 일종의 실력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 당연히 기억하지! 내 모든 분석에는 다 근거가 있어! 요즘 경제 관련 뉴스도 열심히 봤거든!”육시준은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는 게 너무 귀찮았다.지난 신혼 첫날밤 때부터 그는 알아채고 있었다. 강유리가 술이 약하다는 사실과, 다음날이면 필름이 끊긴다는 사실을.“앞으로 밖에서 술 그만 마셔. 어디 팔려 가도 모르잖아.”“…”강유리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육시준을 쳐다보았다.남자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깊었고 그 속에는 유감스러운 감정이 섞여 있었다.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눈빛에 강유리는 마음이 조금 켕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육시준 앞에서 취한 것도 아니었고, 필름이 끊기는 게 비밀은 아니었다.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은 그의 배려가, 그녀의 자존심을 챙겨주는 그의 행동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했다.일어나자마자 육시준을 오해하기나 하고… 그녀의 마음속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육시준, 월급 올려줄게.”여자는 책상 옆에 서 있었다. 몸에는 얇은 잠옷을 걸치고 있었고 긴 머리는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오히려 그녀의 자유롭고 나른한 분위기를 한층 더 강조시켰다.여자는 몸을 살짝 기울였다. 얇고 가는 목에 아래에는 쇄골이 예쁘게 나 있었다. 흔들리는 머리 사이로 그녀의 쇠골라인이 언뜻언뜻 눈에 들어왔다.육시준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다. 그는 매일 밤 가녀린 아내를 안고 잤다.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씩 그의 인내심을 건드렸다. 점점 더 유혹을 버텨내기가 힘들었다.그는 목젖을 들썩이더니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그는 손쉽게 여자를 자신의 다리위에 앉히고는 여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 나한테 비밀 들킨 게 싫어? 내 입 막아버리려고?”강유리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육시준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그의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허리에서 전해지는 찌
남자의 숨결이 그대로 강유리의 얼굴에 닿았다. 뒤엉키는 공기 속에서 여자는 숨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강유리는 문득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하는 건 잘 모른단 말이야.”“내 탓이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네.”남자는 점점 더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강유리는 계속 몸을 뒤로 젖혔다.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긴장감이 그녀의 몸을 뒤엎었다.할 거면 그냥 하지 왜 이렇게 뭉그적대는 거야.그녀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두 사람의 입술이 막 닿으려는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형, 형수님? 음식 다 식어요. 아직도 안 끝났어요?”강유리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나가요. 먼저 드세요.”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육시준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친구가 빨리 나오라고 보채네.”육시준은 여전히 방금 전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듯 지긋이 여자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면 항상 기세가 꺾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게다가 지금은 집에 손님까지 와있는 상황이었다.직원들에게 주눅 든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저기, 이건 어때? 내가 혼자 잘 생각해 볼게. 열심히 고민해 볼게.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다시 입막음 비용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로 하자. 어때?”육시준은 한참 동안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지던 그때, 부끄러움에 얼굴에 빨개지려는 그때 남자는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재 밖.육경서는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것만 같았다. 그는 그제서야 서재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목격했다.그는 불쌍한 모습으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형수님, 불만이 있으면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지! 굳이 형이랑 단둘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도 이렇게 오
“사모님, 브랜드에서 옷을 보내왔습니다.” 오씨 아주머니는 강유리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보고가 강유리의 생각을 끊어버렸다.강유리는 이 상황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브랜드요?”오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각종 럭셔리 브랜드의 옷들이 강유리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그녀는 그제야 그날 육시준이 백화점에서 한 말이 생각이 났다.그게 진짜였어?각종 유명 브랜드의 로고를 보자 강유리는 자신의 지갑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다들 괜한 걸음하게 해서 미안해요. 당분간은 새 옷 생각이 없어요.” 그녀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했다.그 말에 직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이미 결제가 끝난 상품들이라서요. 리미테이션 상품은 특성상 환불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다른 브랜드의 직원도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맞아요. 맞춤 제작한 드레스도 이미 선금을 지불했어요! 이제 와서 환불하신다고 해도 못 해드려요!”두 번째 직원은 확실히 첫 번째 직원보다 말투가 경박했다. 왠지 사람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강유리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환불하겠다고 말 한 적 없는데요.”그 직원은 여전히 비웃는 듯한 말투였다. “새 옷 생각이 없으시다고 하셨잖아요? 필요 없다는 뜻 아니셨나요?”강유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 직원이 들고 있는 옷의 브랜드를 확인했다. 요즘 뜨고 있는 해외 브랜드 DH였다. 젊은 여성들을 타겟팅하고 있는 브랜드였다.외할아버지가 아직 정정하셨을 때, 그녀도 공주 같은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다.각종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집으로 찾아와 옷을 맞춤제작해 주곤 했다.아무리 비싼 브랜드라고 해도 어느 누구 하나 공손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다.요즘은 직원 트레이닝을 이렇게 하나 보지? 저런 사람들도 맞춤 제작 서비스 일을 하는 거 보면?“전 소비자예요. 갖든 말든, 그건 제 권력 아닌가요?” 강유리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강유리란 사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 생각에 안심한 오씨 아주머니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나중에 회사에 연락 할 테니 일단 가져가세요.”마지막 한마디는 각박한 그 여자 들으라고 한 말이다.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이까짓 돈 때문에 명성을 걸만큼 어리석은 브랜드는 어디에도 없다.고객의 컴플레인을 받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강유리가 이렇게 나올 줄 생각조차 못 한 그 여자는 얼굴색이 바뀌었다. “사모님!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제 밥그릇을 빼앗아서 얻는 게 무엇입니까? 제 능력 아시잖아요. 사모님 갖고 싶은 건 다 남겨드릴 수 있습니다. 리미티드 에디션도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도 말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그녀가 자주 쓰는 전략이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사람을 꼬시는 수작 말이다.매장에서는 꽤 잘 먹힌다. 아무리 오만한 고객이라도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그녀와 잘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주문 제작 고객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선을 넘은 그녀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걸 지켜보던 타 브랜드 직원들은 이미 그녀의 사형선고를 묵인했다.냉철하게 그녀를 피해 물건을 나른다...“당연히 얻는 게 있죠. 내 기분이 좋아졌잖아요.”강유리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유유히 말했다. “고작 옷 두 벌로 내 앞에서 자랑이라니. 사치품 브랜드가 하나도 아니고 내가 너희들 없으면 어떻게 될 줄 알았나? 매장에서 어린애들 홀리는 수작은 집어둬. 누구에게나 먹히는 게 아니니까.”계단 위에 서 있어서 위치로 봐도 강유리가 우세였다. 가정복 차림에 편해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처음 만날 때의 수줍음과 난처함은 온 데 간 데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매장에서 만난 그 어느 부잣집 딸보다도 더 오만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여자는 갑자기 겁이 났다. “사모님...” “아주머니, 손님 보내세요.”강유리는 타 브랜드 직원들과 같이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골랐다.
옷상자들은 들어온 그대로 실려 나갔다.사치품 로고가 찍힌 승용차들이 천천히 동네를 빠져나갔다.옆 건물로 이사 중이던 성신영이 마침 그 모습을 보게 됐다.마당에 서 있던 그녀는 떠나는 승용차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시즌마다 브랜드들을 집으로 불러 고민 없이 신상들을 모조리 사버리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고용인들을 데리고 이삿짐을 나르던 임천강은 멍하니 서 있는 성신영을 바라보다 그녀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왜 그래?”“아니야, 매니저가 저 브랜드 모델을 논의 중 인데 문제없으면 다음 달에는 계약할 거 같아.”성신영은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웃음을 보였다.임천강은 성신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멋지네.”라고 말했다.성신영은 몸을 기대어 임천강의 품에 안겼다. “나 저 브랜드 여름 신상은 다 가지고 싶어.”남자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당연하지, 나중에 다 보내달라고 하자. 이 정도 모델 대접은 해야지.”성신영이 달갑게 웃으며 말했다. “마침 오늘 짐 정리도 해야 하는데 오늘 보내달라고 할까?”임천강은 사랑스러운 말투로 “네가 좋은 대로 해.”라고 답했다.오후 내내 바빴다.드디어 강유리의 옷방 정리가 끝났다.꽉 찬 옷들과 가지각색의 신발, 시계대에 놓인 장신구들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귓가에는 강덕준의 말이 맴돌았다. 투자로 진 빚이 수백억...처음에는 육시준도 얻고 싶은 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육시준이라는 사람이 필요했고 육시준은 그녀의 돈이 필요 할거라고.하지만 육시준이 돈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월급을 미리 받아서라도 그녀의 옷을 사주었고 빚을 진 상황임에도 그녀의 옷장을 채워줬다.부자 놀이에 재미라도 들린 걸까?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걸까?울리는 전화 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육시준의 문자였다. “브랜드 일은 신경 쓰지 마. 기분 나빠하지 말고,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게. 다른 옷들은 마음에 들어?”오씨 아주머니가 아까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줬나 보다.오랜 해외 생활로 강유리는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게 됐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